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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매력 알릴게요" 한남대 신입생 2019 대전방문의해 홍보서포터즈

2월 26일 한화이글스파크에서 '2019 대전방문의해 홍보서포터즈 협약식'이 열렸습니다. 이날 허태정 대전시장과 이덕훈 한남대 총장, 한남대 신입생, 재학생 등 3,00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요. 한남대 신입생들은 대전방문의해 홍보서포터즈로  올한해 대전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 활동을 펼칩니다.  대전시는 관광정보와 대전방문의 해 관련 사업 및 프로그램 정보를 한남대 신입생들에게 제공하고요. 한남대는 신입생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대전을 홍보해서 대전방문의 해를 성공적으로 이끄는데 보탬이 되기로 했습니다. 대학생들의 톡톡튀는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즐겁게 대전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대전시 출범70주년 광역시 승격 30주년, 3·1 운동 100주년되는 아주 뜻깊은 해죠. 다양하고 멋진 행사들이 많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대전 시민 한 분 한 분이 전부 다  대전을 알리는 홍보 대사랍니다. 저도 열심히 발로 뛰면서 많은 대전소식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날은 한남대 신입생들을 축하하는듯이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는데요. 한남대 신입생의 대학입학과  2019 대전방문의해 의 앞날을 축하해주는것 같았어요! 2월 26일 한밭체육관에서는 대학 창업과 취업 마인드 확산을 위한 '2019년도 한남대 신입생 프리 칼리지' 행사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대학교 오리엔티션을 가던날이 생각나서 설레었는데요. 이렇게 많은 학과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신입생들을 안내 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신입생들을 이끌어주는 선배들의 든든한 모습과 새내기들의 흥겨운 기운이 더해져서 축제의 현장이었답니다. 나를 표현해봐! 우리를 만나다! 뻔뻔한 클래식의 축하공연이 있었답니다. 나이는 저만 먹는 가 봅니다. 여전히 너무 이쁘시고 열정넘치는 정진옥 단장과 뻔뻔한 클래식 오페라 단원들! 학생들의 행복한 대학생활을 위한 염원이 가득담긴 노래들을 불러줬어요. 한남대에 입학한 학생 여러분! 대학입학과 대전에 온 것을 축하합니다!

대전시도시철도공사 제12기 시민모니터 위촉, 1250원으로 누리는 교통복지

안녕하세요? 여기는 갈마역에 자리한 갈마울모임터입니다. 모임이나 배움의 장소가 필요한 대전시민에게 활짝 열려있는 모임터이지요(문의 : 갈마역 역무실 ☎042-483-6113). 지난 2월의 마지막 화요일, 이곳에서는 대전도시철도공사 제12기 시민모니터 위촉식이 열렸습니다. 시민모니터라니, 알쏭달쏭하시죠? 대전도시철도를 일주일에 3일 이상 이용하는 저도, 올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시민모니터에 대해 살짝 알려드릴게요~   대전도시철도공사 시민모니터 활동 안내 1. 시민모니터란? 대전도시철도 이용 중 불편사항이나 개선요구 사항이 있을 때, 공사 누리집(http://www.djet.co.kr/) 시민모니터 토론방에 제시하거나 간담회에 참여하여 대전도시철도 서비스가 더욱 향상되는데 이바지 합니다.   2. 활동기간은? 위촉된 날부터 매년 12월 31일까지   3. 의견처리 절차는?   4. 주요 모니터링 대상은? 역사 시설물의 운영상태, 열차 이용 시 불편사항, 미담사례, 고객 서비스 정도 등을 모니터링 합니다. - 상시 모니터링 : 직원 응대태도, 시설물 고장신고, 청소상태 등 - 연계 모니터링 : 공사 정책 과정에서 필요시 - 기획 모니터링 : 공사에서 제시하는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 제시 - 자유 모니터링 : 도시철도 이용전반 및 사회약자부문 중점 모니터링   5. 활동보상은? 무보수 명예직이며, 분기 및 연도별 우수회원을 선정하여 소정의 보상을 합니다.   대전도시철도는 2006년에 개통했으니 14년차에 이릅니다. 그 사이 4억 5천만 명이 이용하였고, 그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전국에서 유일하게 무사고 행진을 이어왔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기록에는 12년 동안, 단순한 이용객을 넘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대전도시철도를 아껴온 시민모니터의 힘도 한 몫 할 겁니다. 그 뜻에 저도 동참하고 싶어 지원하였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제12기 시민모니터 33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학생과 주부, 회사원, 작가, 강사 등 하고 있는 일도 사는 곳도 연령도 다양하답니다.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대전시민으로서의 자부심과 대전도시철도에 대한 애정으로, 평일 낮이었음에도 20여 명이 귀한 시간을 쪼개 달려와 힘찬 출발을 다짐했습니다. 지난해 제11기 시민모니터는 모두 96건의 의견을 제시하였고, 그 중 72건의 보완개선사항이 적용됐습니다. 삶의 질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대전도시철도의 서비스 질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겠죠? 이때 시민모니터가 시민의 입장에서 또한 고객의 입장에서 좀 더 나은 서비스가 제공되도록 불편사항과 칭찬, 문의 등을 제시하면 관련부서에서 발빠르게 해결하고 있답니다.  위촉식에 참가하니, 전년도 경영성과와 대전방문의 해를 맞은 2019년 사업계획, 도시철도 2호선 트램 현황 등 평소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대전도시철도공사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도 안내받았습니다. 그 중에서 인상깊었던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릴게요. 1. 무사고 안전운행 기록과 청정 공기질 대전도시철도는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무사고 안전운행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전국 도시철도 중에서도 유일하다니, 정말 대단하죠? 그 사이 반석역부터 판암역까지 오가며 2천 1백만 km라는 거리를 뛰었습니다. 이 거리는 지구에서 달까지 27번 왕복할 수 있는 거리와 맞먹는다고 합니다. 또한 지하를 오가는 교통수단이다보니 역사와 전동차 안의 공기질에 대해서도 궁금하시죠? 소리없는 살인자라 불릴 만큼, 심각한 환경문제로 대두된 미세먼지 농도를 측정했더니 42.5㎍/㎡으로 기준치인 150㎍/㎡의 28% 수준이라고 합니다. 와~ 정말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공교통수단이죠? 2. 4차 산업혁명 기술을 활용한 즐길거리 이곳이 어딜까요? 예, 바로 정부청사역입니다. 지난 여름, 디지털 콘텐츠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ICT 무한상상체험존'이 설치되어 사랑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지상에서 역사로 진입하는 터널에서 '대전방문의 해'를 홍보하는 3D 홀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고, 체험형 스마트 영상제작 장치까지 선보였지요. 조만간 실시간 대화가 가능한 로봇까지 만날 수 있다니, 기대 만발입니다. 또한 시청역에는 스포츠융복한 체험관이 설치될 예정이라니, 교통수단을 넘어 시민 놀이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더군요. 참, 전동차 뿐만 아니라 22개 역사와 그 주변까지 무료 와이파이존이라는 사실~ 3. 전 역사 밀폐형 스크린도어와 스프링쿨러 설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입니다. 다른 지역에서 일어났던 지하철 참사 기억하시지요? 대전도시철도의 차별점 중의 하나는 모든 역사 승강장에 설치된 스크린 도어입니다. 수도권과 달리, 처음부터 천장부터 바닥에 이르는 전체 가림막 형태로 만들어, 전동차 내 화재가 역사 안으로 혹은 역사 안의 화재가 전동차로 퍼지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합니다. 다만 그 중 9개 역사는 천장과 스크린 도어 사이가 몇 cm 정도 떨어져 있는 반밀폐형이라, 올해는 그 틈을 다 막아 전 역사의 스크린도어 22개를 밀폐형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스프링쿨러까지, 정말 든든합니다. 4. 대전의 공공교통을 책임지는 비전 2019년을 기점으로 대전도시철도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대전을 지하로 잇는 전동차가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대전도시철도를 중심으로 버스와 택시, 마을버스, 장애인 콜택시까지 그 범위를 넓히고자 합니다. 특히 충청권역 철도망의 건설을 맡게 되었는데, 이 철도망과 대전도시철도 1호선이 만나는 용두역을 신설하여 대전과 충청을 아우르게 됩니다. 이미 대전시청과 협약을 맺었고, 그 시기와 범위에 대한 검토가 남았다고 합니다. 머지않아 대전의 공공교통을 책임지는 대전교통공사로 발돋음할 계획이라니, 열심히 응원하렵니다. “최고의 안전을 최상의 서비스로” 대전도시철도공사의 슬로건입니다. 대전시민들의 대전시민들을 의한 대전시민들에 위한 공공교통수단, 대전도시철도. 2019년 대전방문의 해를 맞아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인들이 많이 많이 이용해 보셨으면 합니다. 교통카드 한 장이면 3번까지 무료환승, 계절마다 냉난방 확실하고, 전 구간 밀폐형 스크린 도어로 화재 등의 비상상황이 발생해도 안전한 대전의 자랑, 대전도시철도. 여기에 65세 이상 어르신들과 장애인,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상이자, 5·18민주화운동부상자, 특수임무부상자, 다자녀가정 부모(셋째아 만12세까지)에게는 무료운임 혜택을 제공하여, 교통 소외 대상이 없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들 무임 수송인원이 전체 이용객의 39.5%에 다다르고, 수송원가 손실이 없으려면 지금의 1250원(2구간 이동시 1350원)이 아니라 2799원까지 운임을 올려야 한다고 합니다. 대전의 교통복지 수준이 확인되는 대목이었습니다. 이렇게 좋은데, 직접 타보지 않으면 모르겠죠? 대전도시철도, 많이 많이 사랑해 주세요~~ 여기에 제12기 시민모니터들의 활약도 기대해 주세요~!

대전 최초의 호텔은 자유헌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나온 수많은 신문들을 보면, 당시 대전의 풍경, 생활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920년부터 1949년까지 발행된 신문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전의 근대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겁니다. 화려함과 아픈 풍경이 동시에 스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우리의 과거겠죠. 자유헌, 대전 최초의 호텔 그리고 양식당 1912년 부산 철도호텔을 기점으로 일본 호텔들이 하나둘 개업을 합니다. 이때 생긴 호텔들은 대부분 열차역 앞에 있어, 역전 호텔이라 불렀습니다. 1920년대 중반 일본인이 세운 호텔이 대전에도 들어섰습니다. 위치는 대전역 앞, 호텔의 명칭은 ‘자유헌(自由軒, 지유켄)’. 자유헌은 3층으로 된 벽돌건물로, 호텔이자 서양요리를 제공하는 경양식과 일본인들의 지역 행사가 열리는 연회장, 사교장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필자가 최초로 발굴한 자유헌 신문 광고입니다. (아래 오른쪽, 자유헌 신문광고. '대전역전' '양식'이라는 인쇄가 선명하다. 출처: 1927년 6월 28일 조선신문) 1932년 10월 12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대전역 근처 코트에서 제6회 전조선개인정구 대회 결승전이 개최되었습니다. 경기 후에 선수들과 대회 주최자들은 자유헌으로 가서 다화회(茶話會)를 열었습니다. 다화회는 차와 화과자를 비롯해 간단한 요리를 즐기는 자리였는데 일본인들에게는 인간관계를 잇고 유대감을 형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유헌에는 양식당이 있었는데 “나이프, 스푼들이 신기해서 자주 고객들이 호주머니에 넣어가”(출처: 경향신문 1974년 12월 28일)는 해프닝이 벌어지곤 했답니다. 대전에 최초로 생긴 호텔이자 양식당 자유헌은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서양음식을 구경할 수 있던 진기한 곳이었습니다.   (대전역 앞에 있는 3층 건물들 자리에 자유헌 건물이 있었다. 2019년 2월의 풍경) 보문산에 풀장이 생기다 1934년 3월 28일 보문산에 풀장이 준공식을 합니다. 1928년에 이미 보문산공원이 생긴 걸 보면, 보문산은 이미 개발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보문산 등산로의 안내석. 1962년 4월 5일에 세워졌다.) 3월 28일 풀장 준공에 앞서 개장을 하여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사에는 보문산 풀장의 개발에 대전읍 조선인 유지들이 조합을 조직해서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시절에 풀장을 이용하는 조선인들이 얼마나 됐을지는 의문이 듭니다. 이듬해 1935년 8월에 대전읍 수영대회가 보문산 풀장에서 성황리에 열렸다는 기사가 보도 됩니다. 초중고생, 회사원, 일반청년 70여 명의 선수들이 출전을 했는데 입상자 명단에는 일본인 이름뿐입니다. 그때가 식민지 시대였음을 말해주는 풍경입니다. (보문산 풀장이 문을 열다. 출처: 1934년 3월 28일 매일신보) (보문산 풀장에서 열린 수영대회. 출처: 1935년 8월 27일 매일신보) 보명수, 대전에서 만든 국민 소화제 지금도 유명한 동화제약의 활명수는 일제강점기에 나온 소화제입니다. 당시 활명수가 큰 인기를 끌자 엇비슷한 상표를 단 소화제들이 쏟아집니다. 통명수, 회생수, 소생수, 낙천약수, 민생수, 위활수, 보명수… 등등. 해방이 끝난 1949년 충청매일신문에는 보명수 광고가 등장합니다. “명성이 놉고 정평 있는 보명수의 효능 새삼스렇이 말슴 안켔음니다 총판매 대전부 원동 충청남도제약주식회사” (보명수 신문광고. 대전시가 되기 직전 대전부 시절이다. 출처: 1949년 8월 6일 충청매일) 보명수(保命水)는 서울을 비롯해서 몇 곳에서 제조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대전 대흥동(현재 뾰족집 인근)에 있던 공민제약에서 제조를 한 것입니다. 공민제약은 자매회사격으로 충청남도약품주식회사를 따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보명수가 비록 활명수의 인기에 편승하긴 했지만, 대전에서는 인기가 많은 제품이었다고 합니다. 대전 사람들에게만은 활명수에 못지않은 소화제가 보명수였던 모양입니다.   대전 최초의 호텔이자 양식당 자유헌, 보문산의 풀장, 그리고 보명수…. 이제는 모두 사라져 기록으로 만 존재하지만, 대전의 삶과 역사가 된 소중한 흔적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제59주년 대전3·8민주의거 기념식 및 재현행사 안내

지난해 충청권 최초의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3·8민주의거'. 1960년 3월 8일, 대전지역 고등학생 1,000여명이 이승만 독재정권의 부정부패를 규탄하며 민주 정의를 위한 시위를 전개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의 시위는 같은 시기 대구 2.28민주화운동과 마산 3.15의거와 함께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죠. 1960년 3월 8일 대정부투쟁을 전개 중인 대전지역 학생들   제59주년 3·8민주의거 기념식 및 재현행사가 3월 8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열립니다. 이날 기념식은 3·8민주의거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에 첫 번째 열리는 정부 기념식인데요. 대통령을 대신해 이낙연 국무총리를 포함한 정부 주요인사와 3.8민주의거 참여자, 각계대표, 시민, 학생 등 약 1,500여명이 참석합니다. 이날 3·8민주의거의 뜻을 기리는 기념공연과 결의문 낭독, 기념노래 제창 순으로 진행되고요. 부대행사로 대전시청사 둘레길(1.1㎞)을 배경으로 기념식 참석자가 함께하는 출정식 퍼포먼스, 가두행진, 시위진압 퍼포먼스 등 3·8민주의거 재현행사가 이어집니다. 3월 8일 민주화를 열망했던 그 뜨거운 함성을 대전시청에서 함께 재현해보는 건 어떠신지요?

보문산 남쪽 유회당을 거닐며, 조선후기 문신 권이진을 만나다

대전에서 오래 살면서도 '유회당'이라는 곳을 처음 찾아가봤습니다.  유회당은 권이진(1668∼1734) 선생의 호를 따서 지은 건물과 그에 소속된 재실인데요. 보문산 남쪽 기슭 아늑한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유회(有懷)는 '부모를 간절히 생각하는 효성스러운 마음을 늘 품고 싶다'는 의미를 지녔습니다. 정면에 유회당이 보입니다. 중국 명나라 때 학자인 전목제의 ‘명발불매 유회이인(明發不寐 有懷二人)’이라는 시에서 '유회'라는 글자를 따왔다고 하는데요. 이곳에 있는 건물 중 기궁재는 유회당, 삼근정사 등을 관리하기 위한 재실 건물로 묘사(墓祀)를 지낼 때나 종회(宗會)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거닐다보니 공자가 한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남의 나쁜 점을 떠들어대는 것을 미워하고, 낮은 지위에 있으면서 윗사람을 헐뜯는 것을 미워하며,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는 것을 미워하고,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고 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남에게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효도는 그렇지 못합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했더라도 미워할 수 없고 모른 체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륜이 아니라 천륜이라고 부르지 않을까요.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늘 부모의 마음을 살피고, 공경하며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을 효도의 으뜸으로 삼았다고 하는데요. 권이진과 그의 후손들은 선현의 뜻을 이어받아 이곳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지극한 효심 덕분에 오늘날까지 유회당 원림이 전해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대전을 대표하는 동춘당 못지 않게 고택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권이진은 1668년 7월 공주의 탄방리(지금의 서구 탄방동)에서 출생했습니다. 그의 외조부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입니다. 권이진은 글씨에도 능했으며, 사람됨이 강직했습니다. 저서로는 『유회당집』이 남아 있습니다. 시호는 공민(恭敏)입니다. 1695년 함평현령(咸平縣令)·전라도도사, 정언·홍문관 수찬을 두루 역임하였지만 이때 김춘택(金春澤)의 전횡을 방관한 죄로 파직되기도 했습니다. 유회당 뒤로 안동 권 씨의 묘역이 있고요. 산 중턱 사이로 난 길을 따라 1㎞정도 오르면 야트막한 산자락이 거업재와 여경암을 품고 있습니다. 권이진은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컸고, 이에 일본에 대한 경계심을 강화하고, 국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임진왜란에 대한 현창(顯彰) 사업을 적극적으로 벌였다고 합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의 유회당을 거닐며 조선후기 문신 권이진의 이야기를 곱씹어봅니다. 유회당 : 대전 중구 운남로 85번길 3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