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경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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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경마의 네팔 여행기 - 1
왜 네팔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말은 없다 군대전역후에 막연히 떠났던 몽골 여행처럼 스물 아홉의 끝자락에 서있는 나는 어디로든 떠나고싶었고 그냥 그게 네팔이었을뿐이었다 스물아홉 백수라는 거창한 타이틀은 인생의 막연함이라는 단어로 정리될수있는 삶이기도했고 내가 떠나는 여행은 인생의 막연함이라는 안개속에서 더욱더 깊은 막연함이라는 의미를 갖기도했다 술먹고 들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던 김광석 형아의 라이브 영상에서는 "이십대의 끝자락에 무언가를 붙잡고 삼십대에 그 붙잡은 그것을 무조건 당기고 본다"면서 인생의 막연함을.... 다들 그렇게 사는거라면서 인생선배로서의 훈계 같은걸 해주나 싶기도했지만 정작 광석이형은 스스로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해버리는 아이러니를 보

히말라야 산장에서 생긴일
먼저 앞으로 쓰게될 글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조금은 혐오스러울수있는 본인의 사진을 올게된 점을 양해부탁드립니다 푼힐에 오르는 길은 그렇게 만만치않았다 여덟시간이 조금 넘게 걸릴것이라는 비렌탄티 선라이즈 호텔 사장의 말만 철썩같이 믿고 출발한 산행길은 해지는 고레빠니에 어둑어둑 해져서야 도착할수있었고 더욱이 아침에 헤어진 포터는 낙오했는지 한시간을 넘게 기다려도 보이지않는 상태 롯지에 등산객과 롯지 사장모두 포터가 낙오해버린 흔하지않은 경우를 두고 모두들 재미있어 하는듯했다 -비렌탄티에서 출발한 사람은 보통 울레리나 울레리 조금넘어서 하룻밤을 잔다는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때 내 복장은 군대에서나 입던 깔깔이와 반바지 한개 여벌의 양발이 전

네팔 포카라 집창촌 바글룽 버스팍
어느덧 네팔 여행이 한달을 넘기는 시점으로 다가올때쯤 미뤄두었던 집창촌을 탐방해보기로했다 내가 집창촌에 가는이유에대해서 누누히 부연설명을 하지만 집창촌 방문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 집단의 1등은 절대로 그집단을 평가하는데 척도가 될수없다 이를테면 삼성은 대한민국에서1등이고 세계적으로도 1등이기때문에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에대한 이미지는의 일부는 될지몰라도 전부를 대변하는 척도는 아니기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반드시 여행중에 빈민촌과 집창촌을 방문하는데 이것은 그 집단에 가장 소외받고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않는 사람들의 생활 모습이야 말로 그 집단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여줄수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난번 일본 집창촌편을 작성하면서 한국에서 성매매가 불법이지 외국

네팔 비렌탄티 1박2일
무료했다 ......집 두채를 다싸인(네팔 최대명절 추석의 개념이다) 전에 끝낸다는 일념아래 번개같이 짓고나선 할일이 없었다 나도 이렇게 네팔에서 집짓기가 빨리 끝날줄은 몰랐다 더욱이 10년만에 처음 온다는 10월 장마는 4일동안 포카라전역을 축축하게 젖게 만들었고 그나마 취미생활이던 활쏘기와 축구를 비롯한 간단한 산책마저도 흥미를 잃게만들었다 - 아예 할수가 없었다 소비따네가서 아침부터 술퍼먹고 낮잠도 자보고 책읽기에 빠져 지내보아도 심심하기는 마찬가지 해가 밝기를 기다려 어제 (10월 17일) 아침 네팔 친구"바부" 와 "엉클" 을 데리고 작년 코이카의 꿈 촬영지 비렌탄틴을 향해 출발하기로 했다 내가 지은 첫번째 집 아이들 "엉클" 과 "바부" 바부는 네팔어로 작은 아

일본 또다른 얼굴 오사카 신이마야마
일본을 여행하면서 느꼈던 감정중에 가장 큰 감정을 꼽으라면 아마 부러움 일 것이다 동남아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느끼는 감정들 - 나라는 좁은데 인구가 많아서 도저히 행복하거나 잘살수가 없다 라는 아시아의 과제를 훌쩍 뛰어넘는 클래스를 보여주는것이었으니까 정부가 터프한 싱가폴의 반강제적 깔끔함과는 또다른 의미의 선진국 의 모습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일본의 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친구가 한가지 제안을 하였다 그것은 오사카의 빈민가를 둘러보자는 것이었는데 유명하고 이름난 랜드마크를 찾아 다니면서 출석도장사진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는 여행이 아닌 남들이 쉽게 할수없는 유니크 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정신세계와 부합되는 발걸음이었다 친구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