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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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프럼 어스 The Man From Earth (2007)

멧가비|2018년 11월 27일

언제였는지 기억도 희미하지만 '바닐라' 사진을 처음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아이스크림 표준 맛 쯤 되는 그 바닐라 말이다. 말갛고 보드랍게 생겼을 줄 알았던 실제 바닐라는 시커먼 나뭇가지 모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닐라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장담컨대 백이면 백 아이스크림 색깔을 떠올릴 것이다. 이게 내가 일상에서 직접 체험한 최초의 "시뮬라크르"였다. 이 영화는 [블레이드 러너] 이상으로 시뮬라크르에 대한 이야기다. 장 보드리야르가 말 한 시뮬라크르, 간단히 말 해, 본질과 기호 사이의 헤게모니에 대한 관념이다. 본질을 흉내내어 기호화 된 가짜가 오히려 본질의 가치를 압도해버리는 현상, 쯤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주인공 존은 혈거인이다. 그러나 혈거인이 아니다. 우리가 혈거인이

스트레인지 데이즈 Strange Days (1995)

멧가비|2018년 11월 25일

주인공 레니 네로는 말하자면 감각을 파는 장사꾼이다. 이른바 "스퀴드"라는 기술은 단말기 착용자의 오감을 디스크에 저장하는 기술. [토탈리콜]에서의 체험이 일종의 가상현실이라면 이쪽은 실제 체험의 공유. 영화 속 묘사에 의하면 디스크에는 비교적 짧은 분량의 기억만 담을 수 있는 것 같지만, 오히려 짧다는 것 때문에 더욱, 게다가 누군가의 "실제 체험"이라는 사실 때문에라도 더더욱 스퀴드의 중독성은 거의 흡입형 마약 이상인 것으로 표현된다. 감각이 저장된 기억을 파는 밀매상 레니는, 동시에 그 자신부터가 자신의 호시절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이다. 흔한 얘기다. 기억이란 잊히기 때문에 더 가치있다 어쩌고 하는 그 흔한 메시지를 위해 영화는 쓸 데 없이 두 시간을 달리는 것이다. 영화는 크

코드명 J Johnny Mnemonic (1995)

멧가비|2018년 11월 25일

이 영화는 영화 자체보다 외적으로 할 얘기들이 더 재미있다. 당시 키애누 리브스는 [폭풍 속으로], [스피드]를 통해 젊고 곱상하게 생긴 차세대 액션 스타의 등장? 쯤의 느낌으로 주목 받는 중이었고, 이 영화 역시 한국에서도 꽤 적극적으로 홍보 된다. 그러나 뚜껑 까 보니 정작 내용이란 게, 뒷통수에다가 USB 케이블 같은 걸 꽂더니 '뇌'를 이동식 디스크로 이용한다고? 키애누 리브스가 뛰고 구르고 하는 거 보려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잘 이해도 안 가는 미래 기술에 당황한다. 인터넷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이고 아직 플로피 디스크가 대세이던 시절이니 대중 관객에게는 지나치게 미래지향적이었다. 한국은 물론이고 사이버펑크 자체가 대중적인 장르였던 역사 자체가 없으니 더군다나 어리둥절할 수 밖에. 윌리엄

자도즈 Zardoz (1973)

멧가비|2018년 11월 25일

종교 풍자가 기본 골격인 영화다. 자도즈는 야만인이라 일컬어지는 지상인들을 지배함에 있어서, 총과 총알을 무상 분배하시어 폭력을 숭배토록 부추기고, 남성의 성기에 대해서는 폭력과 죽음의 씨앗이라 정의 내린다. 이렇게나 비생산적이로 비생명적인 복음을 전파하는 자도즈를 따라 주인공 제드가 도착한 곳은 보텍스. 영생인들이 살고 있는 땅 보텍스는 많은 종교에서 묘사하는 이상향에 대한 모순적 풍자다. 영생인들은 서구 기독교의 보수적인 종교화에 나오는 천사와 같은 외모를 하고 있는데, 낙원의 인류처럼 묘사되는 첫인상과 달리 이들에게는 가시적인 욕망이 없고 오로지 끝없이 반복적인 일상 뿐. 이들에게 주어진 미래란 죽지도 못하는 비참한 노화의 징벌 혹은 무감각의 징벌 뿐이다. 제드는 알파벳 Z의 코먼웰스 영

시계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멧가비|2018년 11월 25일

'스웨이드 헤드'라든가 '스무디' 등 아무튼 6, 70년대 반사회적 집단에게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네 명의 거리 폭력배. 일단 영화의 발단은 통제불능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사회고발처럼 운 띄워진다. 일본 만화에도 자주 등장하는 "노인 사냥" 같은 짓을 일삼는 '알렉스 드 라지' 일당이 그 주인공. 알렉스 역을 맡은 말콤 맥도웰은 당대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웠던 뮤지컬 넘버를 흥얼거리며 처음 본 유부녀를 강간한다. 빌어먹게도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중 하나다. 역설적으로 작품의 주제의식과도 가장 밀접한 장면이 아닐 수 없는데, 영화의 전반부는 단순히 폭력을 위한 폭력, 그런 순수한 것이 아닌, 무언가를 짓밟고 더럽히고 싶어 행하는 악질 폭력을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토벤을 즐겨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