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RA's Showca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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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판과 상업영화판

AURA's Showcase|2013년 2월 5일

그전부터 야구는 있었지만 상업이 가미된 프로야구로만 한정하자면 1982년 이후로 어느덧 만 30년이 지났습니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한국 최초의 영화는 1919년 김도산이 만든 이니 한국의 영화역사는 어느덧 100년에 다가서고 있지요. (지난한 과거는 애써 모른 척 해보자면,) 문득 최근의 프로야구판과 상업영화판을 팬과 생업종사자로 관계 맺고 지켜보면서 이 둘이 꽤나 닮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프런트 위주의 구단운영으로 전환되면서 야구감독들은 눈치를 보며 파리 목숨을 연명하는, 이제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이 대형투자배급사에게 목줄이 잡혀 찍는 기계로 전락해가는 상업영화 감독과 닮았고, 그러다보니 각 구단 특유의 야구 스타일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

자유의 새, 콘도르

자유의 새, 콘도르

AURA's Showcase|2012년 9월 6일

조금 여유가 생기면 유럽여행도 좋지만 그보다는 남미대륙의 최남단 파타고니아에 갈 것 같다. 가서 어마어마한 대자연의 위를 활강하는 콘도르를 보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 콘도르. 콘도르는 성대가 없어 노래를 하지 못하고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점이 무언가 드라마를 준다. 한번 커플이 되면 6~70년 동안의 장수를 누리는 동안 평생 같이 살며 집단생활을 하는데 소리를 내지 못하니 눈빛과 몸짓으로 의사교환을 하는 새이다. 또한 콘도르는 절대 날갯짓을 하지 않는 것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양 날개를 반듯이 펼쳐 바람을 타면서 활강비행을 하는데 도도해보이기도 하는 그 유려한 비행은 나의 눈을 황홀하게 해준다. 무엇보다 콘도르는 자유의 상징이다. 눈, 비, 바람 등 어떤 기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야구감독

AURA's Showcase|2012년 7월 7일

야구만큼 감독의 역량이 중요한 경기는 드물다. 이는 플레이가 이루어지는 시간보다 멈춰있는 시간이 더 많은 야구라는 특수성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공 일구 일구 사이에, 타석과 타석사이 변화된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감독은 경기의 흐름에 관여를 할 수 있고, 또 적극적으로 이를 이용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개입을 하지 않는 것도 감독의 작전이고 역량이다.) 이런 이유로 경기가 끝나면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시합의 임팩트 있는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의 이름과 함께 감독의 잘잘못이 팬들에게서 항상 오르내리게 되는 것이 야구다. KBO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야구시장은 트레이드도 많지 않고, 보수적인 FA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좁은 시장 탓도 있고, 자팀에 대한 이익보다 혹시 부메랑이 되어 자팀에 피해

영화제

영화제

AURA's Showcase|2012년 7월 6일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두 배우를 위한 영화제를 같은 날짜에 개최해 보자. 한곳의 멀티플렉스에서 열리는 것이 불가하다면 가급적 두 영화제가 열리는 극장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겠다. 그리고 같은 날 같은 시간, 즉 동시에 두 영화제의 폐막작으로 라쎄 할스트롬 감독의 영화 를 필름으로 상영한다면 참으로 멋진 일이 될 것이다. 줄리엣 루이스가 아쉬워하겠지만 그녀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이다.

감성여행, 쉼표

AURA's Showcase|2012년 6월 26일

- 삶은 유랑과 회귀의 반복이라고 말한 적 있거니와 나는 여전히 시도 때도 없이 그 사이클을 따라 흐르고 있다. 천지간 떠돌지 않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깊이 들여다보면 호수도 머물러 있는 게 아니라 흐르고 있다. 햇빛이 흐르는 것처럼. - 사랑이 없는 삶은 음악이 사라진 오르골 같을 것이다. 아무리 반짝이며 돌아가는 일상일지라도 문득 생의 상자를 열었을 때 아무런 울림이 없다면 그 반짝임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 홧김에 떠나겠지만 언제나 여행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그렇게 여행은 내 삶에 처방전이고 글을 쓰는 것은 내 삶의 가스등 같은 것이다. 매일 밤 켜지는 가스등처럼 나는 매일 글을 써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 몸이 머물러 있는 것과 정신이 정체되어 있는 것은 다르다. 평생 한곳에 살았다고 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