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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Blade Runner 2049 (2017)
"후속작"이라 함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작의 설정을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이야기를 개진하는 경우.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영화들이 주로 그러하고 [007] 시리즈는 극단적으로 그러하다. 또 하나의 부류는 철저하게 전작에 종속적인 경우. 이 영화가 그렇다. 리들리 스콧이 쌓아올린 놀랍고도 끔찍한 디스토피아 비전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하는 대신 전작의 '릭 데커드'와 넥서스 모델들의 후일담을 다루는 영화. 드니 빌뇌브가 전작의 "흉내"를 내리란 건 시작부터 자명했다. 여기서 걱정이 시작된다. 원작 없이도 빌뇌브는 "있는 척"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게 내가 봐 온 그의 영화들에 대한 인상이었으니까.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가 주는 시청각적 매력은, 80년대 특유의 근본없이 조야

아이캔디와 드라마 사이에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아이캔디가 가득한 드라마입니다. 걱정했던 것보다는 철학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 다만 해리슨 포드옹이 왜 나왔나 싶을 정도로 그의 비중이 좀 심히 쩌리긴 합니다. 비중 문제가 아니라 1편에서 데커드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메세지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기도 해요. 단순히 팬보이심에 '이랬다면 어떨까?' 라는 시나리오를 현실화시킨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도 꽤나 흥미로운 이야기죠. 데커드에게 자식이 있다면? 이라는 왠지 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꾸몄으니까요. 더불어 본 작은 레플리칸트의 입장에서 진행되는데요. 원작에서 인간과 레플리칸트의 모호함과 인간의 부조리를 지적한다면, 본 작품은 레플리칸트가 가질 수 있는 페이소스를 극대화시키는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거의 모든 "장르 이름"이 조금씩은 모호한 구석을 내포할텐데, 그 중에서도 '사이버 펑크'라는 장르는 특히나 그 대상이 특정되지 않는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의 편의에 의해 고안된 어떠한 기술이 고도로(혹은 극단적으로) 첨단화(cyber)된 세상과 그에 반(反)하는 부적응자(PUNK)를 다루는 이야기라고 정의 내린다. 이 영화가 사이버 펑크의 야훼 까지는 아니더라도 아담 정도의 취급을 받는 것 역시 그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쫓는 자인 릭 데커드와 쫓기는 자인 로이 배티. 그 둘은 통제하는 조직의 말단 그리고 탈주 조직의 리더라는 점에서 대비된다. 하지만 그 둘은 영화에서 묘사하는 레플리컨트 관련 규제, 그리고 그 탄생 배경인 2019년의 세계관에 대한 부적응자들이라는 점에서 동류이기도 하

브라질 Brazil (1985)
주인공 샘 라우리는 홀어머니와도 사이가 나쁘지 않고 그럭 저럭안정적이고 능력을 인정해주는 직장에 다니는 소시민이다. 그런 그에게 있는 단 하나의, 그러나 너무 추상적이고 거대한 고민은 바로 "진짜"가 주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 한 가지가 그의 삶 전체를 부정하고 그의 모든 환경을 가짜로 규정짓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라고는 공장 굴뚝에 그려진 그림으로나 볼 수 있는 회색의 콘크리트 도시. 집은 맘 편히 쉬는 대신 숨막히는 관료제 세계관의 또 다른 통제 대상일 뿐이며, 하나 뿐인 혈육인 엄마는 자연스러운 노화를 거부하고 진짜 얼굴을 조금씩 가짜로 교체하고 있다. 즉, 샘에게는 돌아갈 곳은 커녕 그가 태어난 "자궁"마저 상징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 그가

![[CV] [Comi] 'ダンダダン'(단다단) 24권. 레드 바론](https://img.zoomtrend.com/2026/06/11/1781228393-EB829CED838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