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Han 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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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posts10_부엌에서(1) 공부가 제일 쉬웠어여?
스물 하나, 나이 스물 하나의 봄에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을 무렵, 나는 수업도 가지 않고 기숙사에 틀어 박혀 음악만 들었다. 공부엔 영 흥미가 생기지 않고, 미래는 보이지 않고, 연애는 어차피 안되고, 뛰어가는 친구들 뒤꽁무늬만 보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우울이 찾아오는 그런 무렵이었다. ...하지만 그릇 다섯 장을 한 번에 깨뜨린 지금 이 순간 나는 '세상에서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어느 변호사님의 말에 백프로 동감하고 있었다. 이번 주 들어 일곱 장, 한번에 다섯 장이라니 신기록이다. 접시가 깨지는 굉음에 놀란 모두가 잠시동안 하던 일을 멈추고 내 쪽을 바라보았고 주방에는 뎀뿌라 튀겨지는 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왔다. 흰 사기 조각들이 음식물 찌꺼기와 뒤범벅이 되어 주방 바닥을 가득 덮
09_일 구하기(4) 다함께, 웨스트 코스트!
하지만 그 후로도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꾸준히 이력서를 돌렸지만 인터뷰를 보러 오라는 전화는 한 곳에서도 오지 않았다. 도착한 지 열흘이 넘어가자 잔고는 200달러(20만원) 밑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많은 일이 있었는데 아직 두 주도 지나지 않았다니. 더 이상 멜번 내에서 직업을 구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아직도 호주는 전국적인 불황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 중에서도 사람이 제일 많이 몰리는 멜번이 직업을 구하기 힘든 곳임은 자명했다. 어떻게든 와서 몸으로 부딪쳐 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과 이상은 그렇게 내 눈앞에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있었다. 룸메이트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농장일을 알아보았지만, 그 마저도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철에 따라 수확작물과 일의 종류가 달라져 많은 사항을 알
08_일 구하기(3) 취업난과 유쾌한 친구들
멜번 컵이 끝나고도 한동안 허탕을 치는 나날이 계속 되었고, 갈수록 내 표정은 나빠져 갔다. 도시에서 일을 구하고 중간중간 공연을 보는 것이 내 희망사항이었는데 이렇게 일이 구해지지 않는다면 곧 농장으로 가야할지도 모른다. ”챙, 일 못 구했어?” 며칠 째 계속 시무룩한 얼굴로 방에 들어오는 나를 보고 율리안이 물어본다. "아 몰라. 안되네 시발." 일부러 퉁명스레 대답하며 배낭을 침대로 던졌다. 배낭이 벽에 맞고 떨어지며 둔탁한 쿵 소리를 내었다. 웃으며 대답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력서를 돌리며 보낸 최근 일주일은 일은 일대로, 날씨는 날씨대로 최악이었다. 뿌리는 이력서가 늘어나고 기대가 증가하는 것에 비례하여 조바심도 늘어만 갔다. 하지만 하다 못해 면접이라도 보러 오라는 전화 한 통
07_일 구하기(2) 인생이 어디 그리 쉽나?
다음 날 이른 아침 눈이 번쩍 떠졌다. 긴장으로 온 몸의 근육이 탄탄하게 굳어 있었다. 벌떡 일어나 아침을 먹고 숙소 가까운 PC방에서 이력서를 30장 정도 복사했다. 차례로 뽑혀져 나온 이력서에 호치키스 심을 박아넣고 위아래를 가지런히 정돈했다. 한 부를 뽑아들고 내용을 훑어본다. 구라까지 쳐가며 빈 칸을 채웠는데도 아랫 부분이 허옇게 비어있는 내 이력서가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 없다. 이른 아침부터 복사비를 받고 있는 저 예쁜 PC방 알바생도 한국인처럼 보이는데, 그녀 앞에서 내 꾸질한 모습과 비어있는 이력서를 보이기 싫었다. 부끄러움에 얼른 복사비를 내고 PC방을 나왔다. 어제와 오늘, 이력서를 쓰고 검토하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점이었다. 대학에서는 생명과학을 공부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