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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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형무소 독방 구치감을 아시나요? 1919 대전 감옥소 특별전!

따뜻한 햇볕에 불어오는 바람은 겨우내 잠들어 있던 나무를 깨우고 봄이 왔음을 알려줍니다. 잠에서 깬 나무들은 저마다 기지개를 켜고 앞을 다투어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 맞을 준비를 합니다. 하지만 일기예보에선 하루가 멀다하고 미세먼지 얘기를 하니 환절기에 감기도 조심해야 하고 이젠 미세먼지까지도 걱정하게 만드네요. 그래서 실내에서 볼거리를 찾던 중에 올해 3월 1일, 3·1 운동 100주년을 맞아 옛 충남도청사 본관 1층에서 뜻깊은 '1919 대전감옥소'라는 특별전을 하고 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대전의 3·1만세운동은 1919년 3월 3일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대규모 집회로 이여진 것은 3월 16일 인동장터에서였으며 지금의 인동시장이 된 인동장은 5일장으로 그날도 많은 사람이 모인 장날이였답니다. 주도자는 양사길이란 인물로, 정오 무렵 가마니 더미위에 올라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운동을 외쳤고 그 외 장운심, 권학도 등이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독려했다고 합니다. 그때의 사진과 기록이 문서로 남아있습니다. '1919 대전 감옥소' 특별전은 기획전시실에서 오는 6월 30일까지 열립니다. 안에 들어서면 앞에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수감자의 수형기록카드에 있는 사진이 영상으로 나오고 그 앞에 대전형무소의 모형을 본뜬 조형물이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종이로 만든 것 같았는데요. 이 모형은 실제 대전형무소의 1/77의 비율로 제작되었다고 하네요. 작업방식은 '아이소핑크'로 덩어리작업과 함께 입면의 세부를 표현한 다음 석고로 틀을 뜨고 마지막으로 신문지로 만든 종이죽을 부어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대전형무소 모형 자세히 살펴보니 예전에 탈을 만들때랑 비슷한 신문지 모양이 보이네요. '건축도면으로 보는 대전형무소'는 대전형무소를 분석하여 구조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대전형무소의 흔적들 '대전형무소의 흔적들'에서는 항공사진으로 본 대전형무소 사진과 망루, 우물, 관사에 대한 위치 사진, 그리고 그것에 관한 내용들이 상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선병원앞에 중촌동 현대아파트가 들어서고 망루와 우물만 남아있네요. '대전형무소 연혁'은 1919~1945년까지의 대전형무소의 역사적인 기록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어 그때 당시의 형무소에 있었던 일들을 알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대전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선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수감자들의 수형기록카드가 빼곡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이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구속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수형기록카드에 기록되지 않은 아니 분실된 카드의 주인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요? 대전형무소 직원 사진첩과 문서들 대전형무소 직원 사진첩과 일제강점기 대전형무소 문서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네요. 대전형무소 직원 대부분은 일본인이며 이 사람들이 수감자들을 얼마나 괴롭혔을지 짐작이 되네요. 지금은 없어진 대전형무소 발굴조사에선 2018년 8월 대전광역시의 '옛 대전형무소 역사관광 자원화 조성사업' 공사 중 대전형무소의 유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9월초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긴급한 구제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요. 단시간의 조사였지만 의미있는 조사 결과를 얻었다고 하네요.  대전형무소 기록 영상은 '원재:전쟁포로'라는 영상(7분 47초)입니다. 1950년 10월 30~31일 대전형무소의 미군 25사단 기지에서 민간인과 북한인민군 포로들이 수용되는 장면, 포로들을 심문하는 미군, 사복을 입은 민간인들을 몸수색하는 장면, 형무소 내 감방을 순찰하는 군인 모습등이 섞여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조용히 흑백영상을 보며 그때 당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대전형무소는 없어졌지만 지도상으로 남아있는 기록으로 대전형무소가 어느 정도의 규모로 어디쯤에 있었는지 알 수 있으며 그 대전형무소에 있던 망루(수감자들의 탈옥과 외부의 동향등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와 우물(형무소에 있었던 총 4기의 우물 중 하나)이 남아있어 그 위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전형무소 독방 '구치감'이란 공간은 일제강점기 건축도면을 토대로 재현, 주로 사상범들을 수감했던 대전형무소의 구치감이였는데요. 다른 재소자들과의 격리를 위해 독방으로 설계되었고 방안에 화장실이 있고 1.5평정도의 크기였다고 합니다. 특징으로는 바깥쪽 벽면을 사선의 톱니모양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창문을 통해 옆방의 수감자와 대화를 나누는 것 방지하기 위한 조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 핍박받던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수감되었던 대전형무소의 흔적을 찾아 그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을 이렇게 전시를 하는 목적은 과거의 역사를 잊지 말고 사실의 증거로 남겨놓기 위함이였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꾸 안일해지고 나태해지며, 잊기 쉬운 우리에게 다시한번 나라사랑에 대한 애국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3월이 지나도 3.1운동이 100년이나 되었지만 그때의 간절했던 만세운동을 잊지 말고 그 많은 분들의 희생으로 지켜낸  지금 우리나라를 잘 가꾸고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1절 100주년 기념 독립의 횃불 대전릴레이, 독립만세 울려퍼져

올해의 3.1절은 다른 해와 달리 100주년을 맞아 많은 행사가 개최되었습니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가보훈처가 주관하는 '독립의 횃불, 전국릴레이 행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독립의횃불 주자집결지 3월 1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출정식을 하고 전국 17개 시. 도의 23개 만세운동 지역을 돌아 4월 11일 서울 임시정부 수립 기념식장으로 입장하는 행사입니다.  대전에는 4월 2일 오후 2시 으능정이 스카이로드 ~ 대전역 ~ 만세로 광장으로 이어지는 독립의 횃불, 대전릴레이 행사가 진행되었습니다. 대전으능정이 스카이로드 행사장 이번 행사는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와 연계해 개최되었으며 대전지방보훈청, 대전시, 동구, 중구가 역할을 분담해 많은 시민과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진행되었습니다. 횃불봉송자와 아이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즐겁게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대전의 3.1운동은 1919년 3월 3일로 기록되어 있지만, 대규모 집회는 3월 16일 인동장터에서 열렸습니다. 지금의 인동시장이 된 곳인데요. 예전에 5일장이던 인동장터 장날에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양사길이란 인물이 주도하고 장운심, 권학도 등이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며 만세운동을 독려했습니다. 중구청장및 광복회 대전광역시 지부장의 환영사를 들으며 뜻깊은 3·1 만세운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정왕진 애국지사와 피우진 보훈처장 정완진 애국지사 및 피우진 보훈처장 외 많은 관계자분과 일반시민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주고 계셨습니다. 이화선 작가의 퍼포먼스 대형 붓을 이용하여 대한독립만세 작품을 만드는 퍼포먼스가 열렸습니다. 말을 탄 기수는 그때 당시 독립운동가의 모습을 재현하였고, 풍물단 및 축하공연이 끝나고 대형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 작품을 들고 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대전원도심 목척교 횃불 봉송주자는 정완진 애국지사, 국가유공자, 대표 시민, 국가보훈처장, 대전시장, 기관 단체장 등 100여 명이 참석하여 2개 그룹으로 나누어 봉송합니다. 이곳에서는 세계경찰 무도연맹 어린이시범단의 어린이 무도공연이 펼쳐졌습니다. 대한독립만세가 쓰인 대형 현수막 앞에서 횃불을 들며 그때 당시의 만세운동을 재현하고 있고, 천천히 대전역 쪽으로 행진하고 있습니다. 대전역에서는 한국머슬핏 댄스협회의 깜짝 플래시 몹과 함께 환영 주민이 봉송 대열에 합류하였습니다. 대전우체국에 도착하니 대전서구, 유성구, 대덕구, 동구 등의 기관 단체장과 내빈이 이곳에서 합류했습니다. 대전우체국에 도착하니 이색봉송으로 과학의 도시 대전을 상징하는 로봇 및 드론이 봉송 대형에 합류하여 보훈처장과 함께 일정 거리를 봉송한 후 대전시장에게 횃불을 인계했습니다. 인동장터 만세로광장 만세로 광장엔 다양한 태극기가 걸려있어 그때 당시의 3. 1운동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대 위에선 횃불 봉송주자들이 횃불을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치며 만세삼창으로 이번 행사를 더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이곳엔 이미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시민분이 나왔습니다. '인동장터 독립만세운동 재현행사'를 하며 횃불 환영 및 점화를 하고 만세운동 당시의 상황을 연출하는 주제 공연과 기념식이 진행됐습니다. 만세로 광장엔 '인동장터 만세운동의 유래'라는 기념비에 대전 최초의 만세운동에 대한 설명을 적어 놓아 대전 만세운동의 시초를 알려주고 있고, 만세로광장에는 3.1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를 들고 일본군에 저항하던 대전시민들의 모습을 설치 조형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이 독립의 횃불은 행사 후 충남 예산으로 출발하였으며 하지만 우리의 독립횃불은 꺼지지 않고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 불타고 있을 것입니다.

대전 봄꽃 축제가 열리는 테미공원에서 벚꽃 데이트를 즐겨요!

봄 하면 역시 벚꽃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노래를 흥얼거리며 벚꽃을 구경하기에 너무나도 좋은 날씨입니다. 대전에도 벚꽃의 명소들이 참 많습니다. 산책처럼 거닐며 볼 수 있는 벚꽃거리는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번지는데요. 하지만 산 전체에 벚나무가 있어 봄이 되면 하얀 벚꽃으로 덮이는 테미공원은 단연 벚꽃의 명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벚꽃의 명소 테미공원을 미리 가 보았습니다. 제 16회 테미봄꽃축제 해마다 이맘때면 테미공원에서는 테미봄꽃축제를 개최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제16회 테미봄꽃축제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이번 축제는 4월 5일(금)부터 7일(일)까지 3일간 진행되며 축제기간에는 플리마켓과 각종공연, 먹거리 장터도 펼쳐진다고 하니 그 축제기간에 와서 보시면 더욱 좋겠죠? 테미근린공원 종합안내도 테미근린공원의 안내도입니다. 길이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고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테미공원은 백제 시대 '테 모양으로 둥글게 축조한 산성'을 테미식산성이라고 하는데 테미공원이라는 이름은 이로부터 지어졌다고 합니다. 또한 공원 부근에는 테미고개가 있습니다.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 상반기 오픈스튜디오 전시 2019 프리뷰 그 옆의 옛테미도서관은 대전테미예술창작센터로 탈바꿈하여 상반기 오픈 스튜디오 및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2019 프리뷰'라는 이름으로 3월 28일부터 4월 10일까지 전시와 개막식, 오픈스튜디어가 운영되고 있으니 오셔서 같이 둘러보시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테미공원은 보문산 줄기인 해발 108m의 수도산에 조성된 공원이며 1955년 상수도 배수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가 1995년 다시 개방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전 수돗물에 관한 안내가 나와 있습니다. 테미공원 왕벚나무 이제 테미공원으로 올라가 볼까요? 미세먼지가 없는 파란 하늘에 이제 막 고개를 내민 벚꽃이 하나둘씩 피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활짝 핀 벚꽃은 별로 없지만 따뜻한 봄 햇볕을 맞으면 하루가 다르게 풍성하고 화려한 벚꽃이 필 것입니다. 테미공원 노란개나리와 새로설치된 포토존 테크 테미공원에는 벚꽃뿐만 아니라 개나리꽃도 활짝 펴서 봄꽃축제를 더욱 예쁘게 만들어 줍니다. 대전테미예술센터 보물과 보물찾기 에코백 선물 제가 찾은 보물찾기 상자입니다. 3월 28일부터 시작된 보물찾기는 테미공원 곳곳에 이런 상자를 숨겨놓았습니다. 운이 좋아 발견했는데 이 상자를 주제 예술창작센터 1층 운영실로 가져가면 이렇게 예쁜 에코 백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대전 테미공원 왕벚나무 햇볕이 잘 드는 높은 곳에 있는 벚꽃은 예쁘게 피었네요. 하나 둘씩 피는 벚꽃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벚꽃은 꽃잎이 작아 한두 송이가 아닌 많이 피어있고 같이 모여있어야 더욱 예뻐 보입니다. 더구나 이 테미공원은 오래된 왕벚나무가 많기로 소문난 곳입니다. 그래서 이곳의 벚꽃은 더 풍성하고 예쁘다고 합니다. 테미근린공원 정비공사 안내문 테미근린공원 정비공사로 데크설치, 산책로 조성, 파고라 교체등 공원 리모델링을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조금 불편해도 멋진 테미공원을 위해서 참아야겠죠? 새로설치된 파고라 테미공원엔 이런 휴식공간이 있어 그늘에 있는 의자에 앉아 쉬며 얘기도 나누고 가지고 온 도시락이나 음식을 먹을 수 있습니다. 테미공원 봄꽃 이 길은 아직 공사가 안 되었는지 예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벚나무들도 이제 곧 꽃을 피우기 위해 분홍 꽃망울을 만들고 있습니다. 테미공원 자목련나무 간혹 자목련도 만날 수 있는데요, 자목련도 아직 활짝 피지 않았지만, 벚꽃이 만개할 즘엔 자목련도 활짝 펴서 예쁜 모습을 보여주겠죠? 테미공원은 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하는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합니다. 곳곳에 벚나무들이 너무 많아 어디를 가든 멋진 풍경과 함께 예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테미샘물과 안내문 테미샘물도 있네요. 수질검사에 적합으로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하루에 3번만 나오니 그 시간에 맞춰야 물을 마실 수 있겠네요. 테미근린공원 입구 테미공원은 누구든지 편하게 올 수 있는 벚꽃공원입니다. 공원 전체가 벚꽃으로 덮여 만개한 벚꽃이 바람이 불어 흩날리면 꼭 봄에 눈이 내리듯 멋진 광경이 펼쳐집니다. 테미공원의 봄꽃축제에는 플리마켓의 다양한 체험과 멋진 공연, 맛있는 먹거리 장터도 운영됩니다. 또한 테미공원 옆 테미오래와 주제 예술창작센터까지 둘러보신다면 더욱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될 것입니다.

대전스토리가 있는 오감만족길 정려의 길(고흥류씨 정려각, 회덕 쌍청당)

싱그러운 꽃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히고 따뜻한 날씨는 자꾸만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합니다. 뿌연 하늘과 황사,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아니라면 어디든 떠나고 싶은 계절 봄입니다. 여유로움과 숲 향기, 그리고 조선 시대의 멋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대전 도시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효와 예를 중시하던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멋진 별장과 정려비를 보며 우리 과거 조선 시대로 떠나볼까요? 대전시 대덕구 중리동에는 오감만족길로 '스토리가 흐르는 정려의 길'이 있습니다.  표지판을 보고 따라가며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살짝 귀담아 들어보려 합니다. 고흥 류씨 정려각 (유형문화재 제25호)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고흥 류씨 정려각(유형문화재 제25호)입니다.류씨 부인은 류준의 딸로서 진사 송극기에게 시집갔으나 22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네 살 난 아들과 함께 회덕의 시댁에 내려와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고요. 아들 송유를 훌륭히 키우는 등 정절과 행적이 남달라 송준길 일가가 상의하고 조정에 아뢰어 조선 효종 4년(1653년)에 열녀로 정려각이 세워졌습니다. 고흥 류씨 정려각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죠? 정려각을 알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는 빨간 대문 안에 고흥 류씨 정려각이 있습니다. 고흥 류씨 정려각과 비에 관한 내용이 이곳에도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안에는 화려한 문양의 팔각지붕이 멋진 모습으로 세워져 있으며, 들어갈 수가 없어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며 찍은 사진입니다. 주변의 다른 건물들 속에 이런 멋들어진 정려각이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르셨죠? 이 정려문에는 정려의 은전을 받게 된 내력 및 부인의 행적이 자세히 적혀 있답니다. 이제 슬슬 쌍청당으로 가 볼까요? 아까 둘러본 고흥 류씨가 훌륭하게 키운 아들 송유의 별장입니다. 쌍청당 (유형문화재 제2호)  여기에도 쌍청당의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나와있습니다. 하지만 읽기 번거로우시죠? 제가 간략하게 소개해 드릴게요. 쌍청당(유형문화재 제2호) 고려말 조선 초기에 부사정을 지낸 송유(1389~1446)의 별장이며 쌍청당은 평소 교분이 두터운 박팽년이 지어준 당호로서 청풍과 명월의 기상을 가슴에 새긴다는 의미를 가진 송유의 호에서 따온 것입니다. 이 쌍청당은 은진 송씨 대종가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진 송씨송 씨 대종가는 대전 대덕구 중리동에 대대로 은진 송 씨의 종가입니다. 은진 송씨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은 고려 시대부터이며 입양조는 '송명의'지만 그의 손자로 쌍청당을 지은 송유에 의해 가문이 번성해서 은진 송씨들은 '송유'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답니다. 이곳 대종가는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므로 조용히 들어와서 둘러보시면 좋겠네요. 문이 잠겨 있으면 초인종을 누르고 문을 열어달라고 하시면 됩니다. 은진 송씨 대종가 모습도 참 멋지지요? 조선시대의 번성한 집안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줍니다. 그 옆으로 돌아서 가면 쌍청당이 나옵니다. 쌍청당이라는 비석이 보이시죠?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서면 멋진 별장 쌍청당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과거 우리가 TV에서나 볼 수 있는 멋진 모습이 눈앞에 있으니 참 신기하죠? 이 쌍청당은 화려한 단청으로 유명합니다. 단청의 재료가 중국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해서 사용하므로 1429년 세종은 사치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민가에 단청을 금지하였습니다. 국법에도 어긋나고 사대부의 성리학적 규범에도 어긋나는 일인데 왜 그랬을까요? 이 쌍청당은 개보수를 하면서 계속 단청을 입혔는 데 그 이유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3년동안은 아버지의 도를 고치지 않아야 효라 할 수 있다는 공자의 예를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물끄러미 쌍청당을 보고 있으면 왠지 과거 조선시대로 돌아간 느낌이 들어 참 신기했습니다. 멋진 시조라도 한번 읊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단청 색깔이나 모양이 정말 화려합니다. 이런 화려한 단청은 궁궐 또는 큰 절 같은 곳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이런 별장에서 보다니 또 다른 경험이네요. 이제 쌍청당을 다 둘러보았으니 조금 걸어 송애당을 둘러볼까요? 송애당 (유형문화재 제8호) 송애당은 조선중기 문신 김경여(1596~1653)가 세운 별장 건물입니다. (유형문화재 제8호) 경주 김씨 종중에서 소유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병자호란 때 독전 어사를 지낸 송애당 김경여가 병자호란의 수치를 당하고 부모를 모시고 이곳에 집을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송애당이라 현판을 걸고 은거하였으며 송애는 눈서리를 맞아도 변하지 않는 소나무의 곧은 절개와 높이 우뚝 선 절벽의 굳센 기상을 마음에 간직하겠다는 뜻으로 김경여의 기재와 충성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곳도 잠겨있어 안에 들어가 볼 순 없지만 단아한 팔각지붕의 별장이 놓여있습니다. 쌍청당의 화려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죠? 이제 은진 송씨 정려각으로 가 보겠습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경여의 어머니 송씨 부인의 정려기를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유형문화재 제24호) 조금 전에 본 김경여의 별장 송애당을 기억하시죠? 그 김경여의 어머니가 바로 은진 송씨랍니다. 우리가 둘러본 '스토리가 흐르는 정려의 길'엔 표지판이 자세히 나와 있어 찾아가시기에 편리합니다. 은진 송씨 정려각으로 가 보겠습니다. 은진 송씨 정려각 (유형문화재 제24호) 조선중기의 문신 김경여의 어머니 송씨 부인의 정려기를 보관하는 건물입니다. (유형문화재 제 24호) 조금 전에 본 김경여의 별장 송애당을 기억하시죠? 그 김경여의 어머니가 바로 은진 송씨랍니다. 은진 송씨는 임천군수를 지낸 송남수의 딸로 계림군 김정의 후손인 진사 김광유의 아내입니다. 그녀는 회덕면 백달촌 중리에서 태어나 22세 때 결혼하였는데 결혼하고 몇 달 만에 26세로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남편을 따라 자결하려 하였으나 당시 임신 중이라 죽지 못하고 회덕 송촌에서 부모에 의지하며 유복자인 김경여를 낳아 훌륭하게 키웠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부친이 노환으로 위독하자 약지를 베어 피를 마시게 하고 손가락뼈를 가루 내여 먹여 아버지를 소생케 함으로써 90수를 누리게 하였으며 모친이 등창으로 위급하자 역시 손가락을 잘라 가루 내어 아픈 곳을 발라서 병을 낫게 했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죠? 이런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그들이 살던 고을에 영조 때 정려를 기리기 위해 은진 송씨 정려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정말 옛날이야기지만 대단하죠? 그 내용이 이곳에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은진 송씨 정려각의 모습입니다. 생각보다는 조금 단출한 느낌입니다. 아까 보신 송애당과 같이 화려한 단청이 없고 그저 평범한 팔각지붕으로 만들어진 누각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자식을 잘 키우는 건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데 실천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더 어려운 시기에 살았던 우리의 어머니의 모습을 되새기며 과거 효와 예를 중시한 조선시대의 어머니상을 살짝 엿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계절, 봄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하듯 도심 속 조선시대의 멋진 별장과 그 시대 어머니의 마음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