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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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posts여행 828일차, 찬찬 고고 유적지대와 히피들의 휴양지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야간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간혹 남미가 얼마나 거대한 대륙인지 잊고 여행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보다 크니 도시 간 이동하는데 보통 반나절은 기본이다. 리마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도 역시 야간 버스를 타게 됐다. 페루의 중앙에 있는 리마에서 에콰도르까지 한 번에 올라가기는 어려웠으니 자연스레 트루히요(Trujillo)를 거치게 되었다. 에콰도르까지 같은 루트라 리마에서 만났던 충희와 함께하게 되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버스가 고장나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 오래 전 라오스를 여행했을 때 버스에서 불이 나서 뛰쳐나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언제 고쳐질지 모를 버스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정도 후에 트루히요에 도착했다.어쨌든 트루히요에 도착했으니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보통 광장 주변에 숙소가 몰려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어느 아저씨가 싸구려 숙소를 소개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가봤는데 간판도 없는 이상한 건물 내부에 정말 배낭여행자를 위한 싸구려 숙소가 있었다. 숙소는 허름했지만 그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워낙 이상한 숙소를 많이 봐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트루히요에서는 하루만 지낼 계획이었으니. 도미토리에는 침대 6개가 놓여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다른 여행자 2명도 있었다. 키가 아주 컸던 여자 2명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는데 18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낭을 메고 떠나는 젊음이 부럽다. 이 숙소에 독일인 2명이 없었으면 여행자 숙소로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남미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면 중 하나가 도로에서 빨간불이 들어오는 짧은 찰나에 묘기를 하며 돈을 받는 히피들이었는데 여기에는 그런 히피들로 보이는 몇 명이 투숙하고 있었다.히피들은 옥상 위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일단 무사히 도착해서 짐을 풀었으니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이름 모를 식당에 갔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제육덮밥과 비슷한 점심을 먹고, 맥주도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다. 트루히요는 페루 북부에 1,100년 동안 존재했다고 하는 치무왕국의 도시인 찬찬고고유적지대(Chan Chan)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루히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를 쉽게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투어가 적당할 것 같았다. 보통 찬찬 투어는 아침 일찍 출발하니 광장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 다음날 출발하는 것을 알아보고 오늘은 트루히요를 가볍게 돌아보기로 했다.트루히요 역시 도시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작은 조각상과 분수가 있었지만 여태 지나온 다른 도시에 비해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1820년, 이 광장에서는 토레타글레 후작이 스페인으로부터의 트루히요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한다.광장 주변에는 17세기 시대의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짙은 노란색의 성당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물론 이제는 성당을 하도 많이 봐서 크게 아쉬울 것도 없었지만. 발이 내키는 대로 걸어 다녔다. 다른 도시에 비해 관광객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동네 자체는 크게 볼거리가 없었다. 우리는 시장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본 후 과일 주스를 한 잔씩 마셨다.밤거리 역시 특별하진 않았다.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낯선 곳에서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 즐겁다.날이 맑아서인지 아르마스 광장은 원색의 건물과 어우러져 좀 더 산뜻하게 느껴졌다. 투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돼 곳곳에 있는 외국인 여행자를 태우고는 외곽에 있는 메마른 땅으로 데려다 줬다. 첫 번째 장소는 페루 북부에 독립적인 왕국인 모체 문명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와카데라루나(La Huaca de la Luna)였다. 해석하자면 '달의 신전'이라고나 할까.그런데 유적지를 가기 전에 박물관부터 갔다. 나랑 충희는 굳이 박물관에 들어갈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입장료는 별도라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꼭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생각되면 선택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박물관에서 나온 여행자들과 합류하게 됐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와카데라루나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독특한 무늬의 벽돌을 확인할 수 있다.단순한 무늬를 넘어 독특한 형태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모체 문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림이 외계인이나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까지 복원하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로 와카데라루나는 계속해서 발굴, 2017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거의 사막과 다름 없는 건조한 지역인데 다행히 유적지에는 지붕이 있어 관람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모체왕국은 잉카제국과는 별개로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600년까지 페루 북서부에서 융성했던 문명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번성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페루에 지역마다 여러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와카데라루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벽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거대한 규모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모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부조가 있다.페루에서 여러 유적지를 가봤지만 대부분 덩그러니 흙벽돌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는 그림이나 무늬가 그대로 남아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원래는 치무왕국의 찬찬고고유적지를 볼 생각으로 투어를 시작했지만 트루히요에 존재했던 또 다른 문명인 모체왕국을 알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와카데라루나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페루에서는 세비체를 즐겨 먹곤 했는데 이날도 세비체로 점심을 해결했다. 찬찬고고유적지는 모체왕국과는 다른 치무왕국의 유적지다. 치무왕국은 900년부터 1790년대까지 페루 북서부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잉카에 의해 멸망했고, 다들 알겠지만 잉카는 스페인에게 정복되어 사라졌다. 찬찬은 페루 북서부의 고대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가장 먼저 마을 한복판에 있는 와카델드래곤(Huaca del Dragón)이라는 유적지를 갔다. 복원을 했는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고, 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부조를 확인할 수 있다.단순화하게 표현한 무늬가 인상적이다.다시 이동해 이번엔 거대한 규모의 찬찬 유적지로 이동했다. 리마에서 봤던 파차카막과 마찬가지로 메마른 지역에 위치한 이 문명은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약탈로 많은 유물이 사라진 상태고, 페루 정부도 보존과 복원에 관심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람쥐 무늬일까? 아니면 다른 동물을 의미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유적지를 돌아보면 물고기 무늬의 부조도 발견할 수 있다.찬찬 유적지는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찬찬을 통해 치무왕국의 도시 구역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흙벽돌만 보여 관람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가장 독특한 구역으로 느껴졌던 이곳은 닉안(Nik An)이라고 불리며 과거 찬찬인들이 중시했던 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찬찬 유적지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동했던 곳은 완차코(Huanchaco)였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트루히요보다 더 유명한데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 휴양지 분위기가 느껴지고, 파도가 적당해 서핑을 즐기기 좋기 때문이다. 만났던 한국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초보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재미있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신 갈대로 만든 보트(Caballitos de totora)와 여행자가 실제로 타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완차코에는 거대한 늪지대가 있어 갈대를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약 3,000년 전부터 갈대를 이용해 배를 만들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지역에서는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낚시를 한다고 한다.딱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 주어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보통이라면 완차코로 이동해 며칠 지낼 법도 하지만 우리는 투어로 왔기 때문에 다시 트루히요로 돌아가야 했다.투어를 마치고 트루히요로 돌아온 후 야간 버스를 타고 만코라(Mancora)로 향했다. 사실 만코라로 가기 전에 고민을 엄청 했다. 또 다른 유적지 쿠엘랍(Kuelap)을 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최소 3~4일의 시간을 페루에서 더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페루에서 한 달 이상 시간을 보낸 나는 조금 더 빨리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결국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에콰도르로 가기 전 한 군데 더 들릴 수 있었는데 그곳이 만코라였다.만코라에는 새벽에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해변가라 그런지 곳곳에 숙소가 있었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아무리 아침이지만 내가 상상했던 휴양지 느낌이 아니었고, 여행자도 별로 없어 보였다. 숙소를 찾아 한참 걷다가 술에 잔뜩 노르웨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자신은 밤새 술 마시고 놀다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가 반가웠는지 아니면 말이 잘 통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몇 분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아침부터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 일단 우리는 숙소부터 찾아야 하니 짐을 풀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헤어졌다. 정말 유쾌한 친구였다.숙소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추천해줬던 숙소 위치도 정확히 어딘지 몰라 걷다가 결국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봤던 로키델마르로 가보기로 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지냈던 로키 호스텔과 이름이 같은 체인으로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파티형 호스텔이었다.숙소 찾는 것도 지쳐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리조트에 온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시설이 너무 좋아 깜짝 놀랐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만 도미토리였을 뿐이지 밖에는 잔디가 깔린 넓은 공간과 수영장이 있고, 식당과 바가 있어 언제나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허름한 숙소의 트윈베드룸도 비슷한 가격으로 가능했지만 여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아까 길에서 만났던 노르웨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우리는 어쩌다 아침부터 맥주와 데낄라를 마시게 되었는지. 그래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한 시간 후 더 마셔도 끄덕 없다고 장담하던 노르웨이 친구가 진득하게 취해 숙소로 돌아갔다.만코라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훨씬 조용한 분위기였다. 어느 유명한 휴양도시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동네는 한적함이 넘쳐 흐른다. 골목에는 독특한 차림의 히피가 많은 것을 보니 어쩌면 히피들의 휴양지가 아닌가 싶다. 점심은 호스텔로 돌아와 해결했다. 밖에서 먹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싼 편이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다. 파티 호스텔이라 그런지 여기서 투숙하는 여행자들 역시 밖에 나가기 보다는 주로 안에서 먹고 즐긴다. 밖은 한적한데 호스텔 안은 늘 북적인다. 낡은 건물과 촌스러움이 묻어 있는 거리를 걸었다. 대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해변과 가까운 거리도 날씨가 더워서인지 텅텅 비어있다.해변을 따라 계속 걸어봤다. 특별한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곰치처럼 보이는 죽은 물고기가 파도에 밀려 해변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변을 걷다 이 물고기를 여럿 봤다.페루 북부에서 나름 유명한 해변가라고 해서 며칠 지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굳이 오래 지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곧장 에콰도르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봤다.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로 정한 쿠엔카(Cuenca)까지는 약 8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타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쿠엔카에는 아침에 도착해 여행을 이어가기 더 쉬워 보였다.호스텔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조금 더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해가 떨어지는 순간은 고요하다.외국인 여행자가 몰려 있는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저녁으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스프와 메인으로 나온 치킨은 풍성해 무척 만족하며 먹었다. 무엇보다도 10솔이라는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밤이 되면 해변 근처에 있는 술집은 서로 경쟁하듯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 그런데 신이 나야 할 가게는 텅 비어 있었고, 알록달록하고 조명과 시끄러운 분위기는 촌스러움을 연출했다. 밤에는 좀 더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 한 잔 마시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호스텔 내부의 분위기는 축제였다. 파티 호스텔이라 짐작은 했지만 바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음악과 술에 취해 흥겨운 분위기가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바깥 해변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트루히요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와 우연히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너무 많이 돌아다녔는지 자정이 되자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뻗어버렸다. 페루에서는 길거리에서 먹었던 세비체가 더 맛있었던 경우가 많다. 날 생선이라 뜨거운 날씨가 염려되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는 위생만 괜찮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며 자주 먹곤 했다. 보통 길거리에서 파는 세비체는 선선한 오전에만 볼 수 있다. 식당에서 먹었던 세비체보다 훨씬 맛있었다.에콰도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은 한참 남아 호스텔 수영장에서 놀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남은 돈으로 기념품을 샀다. 점심에는 호스텔에서 무제한 바베큐 파티가 있었는데 딱히 맛있지는 않았다.아무튼 페루에서 참 오래 있었다.
여행 805일차, 찬찬 고고 유적지대와 히피들의 휴양지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야간 버스를 타게 되는 경우가 참 많다. 간혹 남미가 얼마나 거대한 대륙인지 잊고 여행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우리보다 크니 도시 간 이동하는데 보통 반나절은 기본이다. 리마를 떠나 북쪽으로 이동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때도 역시 야간 버스를 타게 됐다. 페루의 중앙에 있는 리마에서 에콰도르까지 한 번에 올라가기는 어려웠으니 자연스레 트루히요(Trujillo)를 거치게 되었다. 에콰도르까지 같은 루트라 리마에서 만났던 충희와 함께하게 되었다. 사막 한 가운데서 버스가 고장나도 그러려니 해야 한다. 오래 전 라오스를 여행했을 때 버스에서 불이 나서 뛰쳐나갔던 순간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번에는 그런 긴박한 상황은 아니었다. 그저 언제 고쳐질지 모를 버스 주변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냈다.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 정도 후에 트루히요에 도착했다.어쨌든 트루히요에 도착했으니 숙소를 찾아 돌아다녔다. 보통 광장 주변에 숙소가 몰려있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광장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을 때 어느 아저씨가 싸구려 숙소를 소개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가봤는데 간판도 없는 이상한 건물 내부에 정말 배낭여행자를 위한 싸구려 숙소가 있었다. 숙소는 허름했지만 그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워낙 이상한 숙소를 많이 봐서 크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트루히요에서는 하루만 지낼 계획이었으니. 도미토리에는 침대 6개가 놓여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지내고 있는 다른 여행자 2명도 있었다. 키가 아주 컸던 여자 2명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는데 18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배낭을 메고 떠나는 젊음이 부럽다. 이 숙소에 독일인 2명이 없었으면 여행자 숙소로 생각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남미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장면 중 하나가 도로에서 빨간불이 들어오는 짧은 찰나에 묘기를 하며 돈을 받는 히피들이었는데 여기에는 그런 히피들로 보이는 몇 명이 투숙하고 있었다.히피들은 옥상 위에서 텐트를 치고 지내고 있는 모양이다.일단 무사히 도착해서 짐을 풀었으니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골목 깊숙한 곳에 있는 이름 모를 식당에 갔는데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사람들이 꽤 많았다. 제육덮밥과 비슷한 점심을 먹고, 맥주도 마시니 조금 살 것 같았다. 트루히요는 페루 북부에 1,100년 동안 존재했다고 하는 치무왕국의 도시인 찬찬고고유적지대(Chan Chan)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트루히요 주변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를 쉽게 돌아보려면 아무래도 투어가 적당할 것 같았다. 보통 찬찬 투어는 아침 일찍 출발하니 광장 근처에 있는 여행사에서 다음날 출발하는 것을 알아보고 오늘은 트루히요를 가볍게 돌아보기로 했다.트루히요 역시 도시의 중심부에는 어김없이 아르마스 광장이 있다. 작은 조각상과 분수가 있었지만 여태 지나온 다른 도시에 비해 규모가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1820년, 이 광장에서는 토레타글레 후작이 스페인으로부터의 트루히요의 독립을 선언했다고 한다.광장 주변에는 17세기 시대의 건축물이 여전히 남아있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건 역시 짙은 노란색의 성당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성당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물론 이제는 성당을 하도 많이 봐서 크게 아쉬울 것도 없었지만. 발이 내키는 대로 걸어 다녔다. 다른 도시에 비해 관광객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동네 자체는 크게 볼거리가 없었다. 우리는 시장에 들어가 한 바퀴 돌아본 후 과일 주스를 한 잔씩 마셨다.밤거리 역시 특별하진 않았다. 북쪽으로 올라와서인지 약간 쌀쌀함을 느꼈다.낯선 곳에서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 즐겁다.날이 맑아서인지 아르마스 광장은 원색의 건물과 어우러져 좀 더 산뜻하게 느껴졌다. 투어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돼 곳곳에 있는 외국인 여행자를 태우고는 외곽에 있는 메마른 땅으로 데려다 줬다. 첫 번째 장소는 페루 북부에 독립적인 왕국인 모체 문명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와카데라루나(La Huaca de la Luna)였다. 해석하자면 '달의 신전'이라고나 할까.그런데 유적지를 가기 전에 박물관부터 갔다. 나랑 충희는 굳이 박물관에 들어갈 정도로 흥미를 느끼지 않았고, 입장료는 별도라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꼭 봐야 할 것이 아니라 생각되면 선택적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꽤 오랜 시간 기다린 끝에 박물관에서 나온 여행자들과 합류하게 됐다. 우리는 본격적으로 와카데라루나로 들어가 관람을 시작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독특한 무늬의 벽돌을 확인할 수 있다.단순한 무늬를 넘어 독특한 형태의 그림도 볼 수 있었다. 모체 문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림이 외계인이나 도깨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근까지 복원하고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실제로 와카데라루나는 계속해서 발굴, 2017년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거의 사막과 다름 없는 건조한 지역인데 다행히 유적지에는 지붕이 있어 관람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았다.모체왕국은 잉카제국과는 별개로 기원전 1,000년부터 기원후 600년까지 페루 북서부에서 융성했던 문명이다. 과거에는 얼마나 번성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페루에 지역마다 여러 문명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와카데라루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벽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언뜻 봐도 거대한 규모였다. 가까이 다가서니 모체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부조가 있다.페루에서 여러 유적지를 가봤지만 대부분 덩그러니 흙벽돌만 남아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기는 그림이나 무늬가 그대로 남아있어 나름 흥미로웠다. 원래는 치무왕국의 찬찬고고유적지를 볼 생각으로 투어를 시작했지만 트루히요에 존재했던 또 다른 문명인 모체왕국을 알게 되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와카데라루나 관람을 마친 후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페루에서는 세비체를 즐겨 먹곤 했는데 이날도 세비체로 점심을 해결했다. 찬찬고고유적지는 모체왕국과는 다른 치무왕국의 유적지다. 치무왕국은 900년부터 1790년대까지 페루 북서부에 존재했다고 하는데 잉카에 의해 멸망했고, 다들 알겠지만 잉카는 스페인에게 정복되어 사라졌다. 찬찬은 페루 북서부의 고대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가장 먼저 마을 한복판에 있는 와카델드래곤(Huaca del Dragón)이라는 유적지를 갔다. 복원을 했는지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었고, 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부조를 확인할 수 있다.단순화하게 표현한 무늬가 인상적이다.다시 이동해 이번엔 거대한 규모의 찬찬 유적지로 이동했다. 리마에서 봤던 파차카막과 마찬가지로 메마른 지역에 위치한 이 문명은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미 벌어진 약탈로 많은 유물이 사라진 상태고, 페루 정부도 보존과 복원에 관심이 부족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다람쥐 무늬일까? 아니면 다른 동물을 의미하는 것일까? 잘 모르겠다. 유적지를 돌아보면 물고기 무늬의 부조도 발견할 수 있다.찬찬 유적지는 규모가 꽤 큰 편이었다. 찬찬을 통해 치무왕국의 도시 구역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흙벽돌만 보여 관람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가장 독특한 구역으로 느껴졌던 이곳은 닉안(Nik An)이라고 불리며 과거 찬찬인들이 중시했던 물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찬찬 유적지를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이동했던 곳은 완차코(Huanchaco)였다.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트루히요보다 더 유명한데 화려하지 않지만 나름 휴양지 분위기가 느껴지고, 파도가 적당해 서핑을 즐기기 좋기 때문이다. 만났던 한국 사람들에게 듣기로는 '초보 서퍼들의 천국'이라는 재미있는 별명도 있다고 한다. 늦은 오후라서 그런지 서핑을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신 갈대로 만든 보트(Caballitos de totora)와 여행자가 실제로 타는 모습은 볼 수 있었다.완차코에는 거대한 늪지대가 있어 갈대를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약 3,000년 전부터 갈대를 이용해 배를 만들고 낚시를 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지역에서는 갈대로 만든 배를 타고 낚시를 한다고 한다.딱 30분이라는 짧은 시간만 주어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는 어려웠다. 보통이라면 완차코로 이동해 며칠 지낼 법도 하지만 우리는 투어로 왔기 때문에 다시 트루히요로 돌아가야 했다.투어를 마치고 트루히요로 돌아온 후 야간 버스를 타고 만코라(Mancora)로 향했다. 사실 만코라로 가기 전에 고민을 엄청 했다. 또 다른 유적지 쿠엘랍(Kuelap)을 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그렇게 할 경우 최소 3~4일의 시간을 페루에서 더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미 페루에서 한 달 이상 시간을 보낸 나는 조금 더 빨리 이동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 결국 시간과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야간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이동했다. 에콰도르로 가기 전 한 군데 더 들릴 수 있었는데 그곳이 만코라였다.만코라에는 새벽에 이른 새벽에 도착했다. 해변가라 그런지 곳곳에 숙소가 있었는데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아무리 아침이지만 내가 상상했던 휴양지 느낌이 아니었고, 여행자도 별로 없어 보였다. 숙소를 찾아 한참 걷다가 술에 잔뜩 노르웨이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여자친구는 숙소에서 자고 있는데 자신은 밤새 술 마시고 놀다 들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어떻게 봐도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이른 새벽, 아무도 없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가 반가웠는지 아니면 말이 잘 통했던 것인지는 몰라도 몇 분간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다 아침부터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한다. 일단 우리는 숙소부터 찾아야 하니 짐을 풀게 되면 연락을 주겠다고 헤어졌다. 정말 유쾌한 친구였다.숙소를 찾아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원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추천해줬던 숙소 위치도 정확히 어딘지 몰라 걷다가 결국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으로 봤던 로키델마르로 가보기로 했다.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지냈던 로키 호스텔과 이름이 같은 체인으로 외국인 여행자를 대상으로 하는 파티형 호스텔이었다.숙소 찾는 것도 지쳐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 리조트에 온 것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시설이 너무 좋아 깜짝 놀랐다. 우리가 사용하는 방만 도미토리였을 뿐이지 밖에는 잔디가 깔린 넓은 공간과 수영장이 있고, 식당과 바가 있어 언제나 먹고 마실 수 있었다. 사실 다른 허름한 숙소의 트윈베드룸도 비슷한 가격으로 가능했지만 여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일단 심심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체크인을 하자마자 아까 길에서 만났던 노르웨이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우리는 어쩌다 아침부터 맥주와 데낄라를 마시게 되었는지. 그래도 길에서 우연히 만난 친구와 한참 동안 수다를 떨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냈다. 한 시간 후 더 마셔도 끄덕 없다고 장담하던 노르웨이 친구가 진득하게 취해 숙소로 돌아갔다.만코라는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훨씬 조용한 분위기였다. 어느 유명한 휴양도시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지만 동네는 한적함이 넘쳐 흐른다. 골목에는 독특한 차림의 히피가 많은 것을 보니 어쩌면 히피들의 휴양지가 아닌가 싶다. 점심은 호스텔로 돌아와 해결했다. 밖에서 먹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싼 편이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다. 파티 호스텔이라 그런지 여기서 투숙하는 여행자들 역시 밖에 나가기 보다는 주로 안에서 먹고 즐긴다. 밖은 한적한데 호스텔 안은 늘 북적인다. 낡은 건물과 촌스러움이 묻어 있는 거리를 걸었다. 대낮에는 사람이 거의 없다.해변과 가까운 거리도 날씨가 더워서인지 텅텅 비어있다.해변을 따라 계속 걸어봤다. 특별한 풍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곰치처럼 보이는 죽은 물고기가 파도에 밀려 해변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해변을 걷다 이 물고기를 여럿 봤다.페루 북부에서 나름 유명한 해변가라고 해서 며칠 지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굳이 오래 지낼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곧장 에콰도르로 가는 버스편을 알아봤다. 에콰도르의 첫 번째 도시로 정한 쿠엔카(Cuenca)까지는 약 8시간 걸린다고 하는데 밤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야간 버스를 타는 게 가장 합리적일 것 같았다. 가격도 저렴하고 쿠엔카에는 아침에 도착해 여행을 이어가기 더 쉬워 보였다.호스텔 반대 방향으로 걷다 보면 조금 더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해가 떨어지는 순간은 고요하다.외국인 여행자가 몰려 있는 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저녁으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간 스프와 메인으로 나온 치킨은 풍성해 무척 만족하며 먹었다. 무엇보다도 10솔이라는 가격이 마음에 들었다.밤이 되면 해변 근처에 있는 술집은 서로 경쟁하듯 시끄러운 음악을 튼다. 그런데 신이 나야 할 가게는 텅 비어 있었고, 알록달록하고 조명과 시끄러운 분위기는 촌스러움을 연출했다. 밤에는 좀 더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야외 테이블에 앉아 칵테일 한 잔 마시는 동안에도 변함이 없었다. 오히려 호스텔 내부의 분위기는 축제였다. 파티 호스텔이라 짐작은 했지만 바에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음악과 술에 취해 흥겨운 분위기가 늦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바깥 해변과는 완전히 대조적이었다. 트루히요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와 우연히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침부터 술을 마시고 너무 많이 돌아다녔는지 자정이 되자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뻗어버렸다. 페루에서는 길거리에서 먹었던 세비체가 더 맛있었던 경우가 많다. 날 생선이라 뜨거운 날씨가 염려되기도 하지만 눈으로 보는 위생만 괜찮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며 자주 먹곤 했다. 보통 길거리에서 파는 세비체는 선선한 오전에만 볼 수 있다. 식당에서 먹었던 세비체보다 훨씬 맛있었다.에콰도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은 한참 남아 호스텔 수영장에서 놀고, 동네를 한 바퀴 돌며 남은 돈으로 기념품을 샀다. 점심에는 호스텔에서 무제한 바베큐 파티가 있었는데 딱히 맛있지는 않았다.아무튼 페루에서 참 오래 있었다.
여행 824일차, 페루의 수도 리마
버스 창밖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던 사막이 저녁이 되자 갑자기 거대한 도시로 바뀌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대해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나 확실히 기존에 지나온 곳과 확연히 다른 대도시라고 생각했다. 버스터미널에 내린 후 택시를 타고 한인민박으로 향했다. 보통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를 가지 않지만 어쩌면 택배를 받아야 할 수도 있기에 조금 편한 곳으로 선택했다. 숙소는 리마의 신도시라 할 수 있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에 있었다.리마가 대도시이고 처음 도착한 낯선 곳이라 걱정을 했는데 미라플로레스는 깨끗하고 넓어 서울의 어느 대로를 걷는 줄 알았다. 심지어 늦은 밤이었는데도 말이다. 볼리비아와 페루를 지나면서 무너질 것만 같은 집만 보다 멀쩡한 건물을 보니 완전히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리마에서 오래 지낼지도 모른다는 생각하니 첫날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숙소에서 여러 여행자를 만나 같이 돌아다닐 기회가 저절로 생겼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걷기도 하고, 오랜만에 한식당에 가서 김치찌개도 먹었다.하루는 숙소에서 만난 한별이형과 동갑내기 미진이랑 구 시가지(Centro Histórico)를 같이 가기로 했다. 내가 지나온 작은 도시들은 대게 중심부에 아르마스광장(Plaza de Armas)이라고 하는 큰 광장이 있고, 여행자들이 머무는 거리 근처에 있었다. 그에 반해 리마는 워낙 큰 도시라 올드타운, 그러니까 구 시가지가 우리가 있던 미라플로레스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메트로폴리타노라는 BRT를 타고 무려 1시간이나 걸렸다.리마도 역시 끔찍한 교통난을 겪고 있는지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갔다. 1시간 동안 매달려 메트로폴리타노를 타는 것으로도 피로감이 느껴졌다. 구 시가지에 도착한 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을 때 가장 반가웠던 건 상쾌한 공기였다.구 시가지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아르마스 광장(마요르 광장으로도 불린다)으로 향했다.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아르마스 광장에는 중요한 건물이나 큰 교회가 자리 잡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역시 리마 대성당이다. 성당으로 가는 계단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어느 아저씨는 우리를 보더니 웃으며 반갑다고 인사를 건넸다. 성당 내부를 들어가는 건 입장료가 있어 당연하게도 지나쳤다.넓은 광장 중앙에는 원래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의 동상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허물고 잉카를 상징하는 콘도르나 퓨마가 물을 뿜고 있는 작은 분수가 있다. 광장의 정면에는 대통령궁이 있다. 시간을 잘 맞춰 가면 대통령궁 경비원들의 교대식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경비원들의 교대식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만약 알았더라도 딱히 시간에 맞춰 올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 같다.구 시가지는 스페인 식민시대의 건물이 다수 남아있다. 원래 리마는 잉카의 해안 마을에 불과했다. 잉카를 침략하고 정복한 피사로가 본국인 스페인과 연락 및 무역을 위해 세운 도시가 바로 리마다. 잉카제국의 도시는 대부분 안데스 산맥에 위치하고 있어 더 발전하기 어려운 반면, 리마는 해안이라는 이점을 바탕으로 페루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로 더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인구 800만 명이 넘는 남미에서 손꼽히는 대도시다. 구 시가지의 문에는 하얀 점선으로 표시를 했는데 이는 이곳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자료라고 한다. 오래된 집이니 계속해서 덧칠을 하고, 또 덧칠을 해서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구 시가지 주변을 이곳저곳 둘러봤다. 차가 다니지 않는 널찍한 골목길을 걷어보고 어느 이름 모를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기도 했다. 음침하고 복잡하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여행자를 반기는 구 시가지의 매력이다. 우연히 볼리비아 데스로드 투어를 같이 했던 네덜란드 커플을 만났다. 비슷한 루트로 여행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길에서 우연히 만나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얼떨결에 안부 인사를 하고 헤어졌는데 생각해 보니 그들의 이름도 몰랐다. 잠깐의 휴식은 달콤하다. 카페 야외 테이블에 걸터앉아 카푸치노를 한 모금 마시고, 주변을 살폈다. 세련된 카페에 외국인 손님이 앉아 있는 모습은 이곳에서 그리 눈에 띄는 풍경은 아니었다.리마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분수공원(Parque de la Reserva)이 있다. 구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다.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분수공원 근처는 굉장히 어두컴컴했다. 근처에 축구 경기장이 있는데도 조명은 별로 없고, 입구는 잘 보이지 않았다. 분위기를 대변하듯 마침 지나가던 사람은 우리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전했다. 실제로 많은 여행자들이 이곳을 찾을 때는 택시를 추천한다. 잠깐 더 걸으니 알록달록한 화단과 조명이 반전을 만들어냈다. 분수공원 근처는 이렇게나 화려하고 밝았다. 입장료는 고작 4솔로 약 1,200원 정도였다.분수공원을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물기둥이 우리를 반겼다. 물론 저녁에도 시원한 분수를 볼 수 있지만, 아무래도 조명과 함께 어우러지는 분수쇼는 밤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어두워진 뒤에 오는 편이 좋다.막상 들어와 보니 공원의 규모에 놀랐다. 총 13개의 분수가 각기 다른 모양의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는데 실제로 리마의 분수공원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커서 기네스북에도 등재되었다고 한다.가족 단위로 나온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구경하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물줄기가 여기저기서 뿜어져 나온다. 큰 기대를 했던 곳은 아닌데 생각했던 것보다 볼거리가 정말 많았다.입구 근처에 있는 이 분수가 가장 높이 올라가는 듯 하다. 언뜻 봐도 10m 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우리는 중앙에 있는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미리 중앙에 있는 분수대에서는 저녁 7시 15분, 8시 15분, 9시 30분에 분수쇼를 한다고 들었다. 알록달록 분수가 올랐다가 시간이 되자 분수의 물줄기를 스크린으로 삼아 영상과 레이저를 쏘기 시작했다. 번쩍이며 순식간에 지나가지만 주로 페루의 역사나 문화를 아름답고 입체감 있게 보여줬다. 화려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정도였다.분수쇼를 보고 난 후 다시 다른 분수대를 향해 이동했다. 여러 개의 층을 이루며 솟아 오르는 분수가 인상적이었다.분수공원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다리 아래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가면 작은 또 하나의 공원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여러 모양의 분수가 있다.가장 인기가 많았던 분수. 사람들은 분수 아래에서 걷고, 사진을 찍고 즐거워했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촬영하는 커플도 보였다.입장료가 4솔이 아니라 20솔이었어도 전혀 아깝지 않았을 공원이었다. 다양한 종류의 분수가 있어 볼거리도 풍부했다.며칠 뒤 한별이형과 다시 구 시가지로 나왔다. 남미를 여행하다 보면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보는 전망대를 쉽게 찾을 수 있는데 대부분 '산크리스토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리마도 마찬가지다. 다만 리마의 산크리스토발은 걸어서는 가기 어렵고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표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안내판을 들고 있던 아주머니로부터 구입했다.산크리스토발로 가는 버스는 다른 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티투어버스와 비슷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주변 경치를 감상하거나 사진 찍기 좋다.구 시가지에서도 저 멀리 산크리스토발이 보인다.산크리스토발에에 올라 가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2층 버스 위에서 보는 구 시가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우리를 태운 버스는 구 시가지를 여러 번 돌더니 이제 도심 밖으로 달리기 시작했다.구 시가지를 벗어났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얼기설기 대충 지어진 집들이 빼곡했다. 벽돌과 슬레이트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눈에 봐도 빈민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마찬가지지만 리마 역시 극심한 빈부격차가 존재한다. 돈을 벌기 위해 리마로 몰려든 사람들은 점점 불어나 800만(통계에 따라 1,000만이 넘기도 한다)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으니 잘 사는 지역과 못 사는 지역이 극명하게 나뉘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데 시에서는 빈민촌의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싫었는지 아예 구역을 나누는 벽을 세웠다. 때문에 같은 리마에 살고 있는 사람도 벽 너머로 가라면 한참 돌아 가야 한다. 누구는 돈이 있고 없음으로 사람을 갈라 놓은 이 벽을 가리켜 '수치의 벽'이라고 부른다.여기선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뚝뚝이 일반적인 대중교통인가 보다.본격적으로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산크리스토발 아래 어지럽게 늘어선 전선과 벽돌 사이로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지난다.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는 듯 했다. 2층 버스 위에 있으니 더 아찔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산크리스토발 정상이 보였다. 다른 도시의 산크리스토발에는 보통 예수상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는 커다란 십자가가 있었다. 정상에 도착한 후에는 버스에 내려 잠깐의 시간을 준다. 볼거리가 많지는 않지만 리마를 내려다 볼 수 있다.안타깝게도 리마의 하늘은 회색빛이었다. 날씨가 안 좋아서인지 아니면 스모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빌딩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전경이었다. 반대쪽도 볼 수 있는데 이쪽 방향은 하늘이 깨끗했다. 산크리스토발에 올라 리마 시내를 여유롭게 구경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었다. 비록 세계일주를 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가만히 변화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 페루에서 이렇게 참여를 했다. 나 역시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 싶었다. 결국 리마에서 택배를 받지 못하고 어영부영 시간만 보내게 됐다. 장기 여행을 하다 보면 이렇게 허무하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여행은 어떻게 해야 할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때였다. 하루는 한별이형과 리마 외곽에 있는 파차카막 발물관(Museo de Pachacamac)을 가보기로 했다. 사실 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한별이형이 리마에서 가볼 만한 박물관이라고 꼬셔서 얼떨결에 따라가게 되었다. 파차카막 박물관은 리마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여러 번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완전한 사막이었다. 리마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황량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이곳에는 과거 문명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파차카막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당시에 사용했던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다.우스꽝스러운 가면이 있다.전시관을 나서면 복원된 것으로 보이는 유적지가 보인다.흔히 페루하면 잉카의 유적지만 떠올리는데 당연히 여러 문명이 존재했다. 파차카막 역시 잉카와는 별개의 문명으로 1,300년간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잉카인들은 이곳을 신성한 곳이라 여겨 태양신을 섬기는 피마미드를 세웠다.유적지는 굉장히 넓다. 하지만 유적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다.거대한 피라미드를 향해 올라갔다. 이렇게 건조한 땅 위에 1,300년 동안 문명이 있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아쉽게도 내부로 출입은 금지되어 있다. 주변을 크게 한 바퀴 돌아볼 수만 있다.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이렇게 가깝다.작은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데 표지판도 없고, 날씨는 더워 지친다. 따가운 햇빛을 가려줄 어떤 공간도 없다. 내가 피스코에서 봤던 탐보콜로라도와 비슷한 형식인지 피라미드는 흙벽돌로 만들어졌다. 허물어진 벽면이 세월의 흔적을 대신 말해준다. 피라미드 정상에서는 황량한 사막과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유적지는 굉장히 거대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복구가 많이 필요해 보인다. 진흙을 구워 만든 벽돌을 촘촘히 쌓아 올려 만들었다. 파차카막에서는 이런 흙벽돌이 5천만 개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멀리서 보였던 마을은 경계선이 분명했다. 보통 마을은 어느 지점이 끝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계속 이어지곤 하는데 여기는 케이크를 자른 단면처럼 너무 정확하게 경계선이 있었다. 사실 난 뙤약볕에서 봤던 서로 비슷했던 파차카막 유적보다 나가기 직전에 본 야마에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다.리마에서 머무는 동안 놀라운 일이 있었다.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을 보고 자신도 지금 리마에 있다고 당장 만나자는 친구가 있었으니 캐나다인 마이키였다. 마이키는 여행 8개월 차에 코소보에서 아주 잠깐, 정말 딱 하루 만나고 헤어졌던 여행자였다. 나는 중동과 아프리카, 마이키는 유럽과 북미를 여행하다 남미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서로 연락도 없이 여행하다 우연히 같은 나라, 같은 도시에서 만나게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밖으로 나가 마이키와 맥주라도 한 잔 할까 생각했는데 숙소에서 초대해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불렀다. 다시 만난 마이키는 나를 보자 정말 반가워했다. 코소보에서 몇 날 며칠을 여행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여행은 인연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준다. 마이키는 캐나다인이었지만 어머니가 한국 사람이라 매콤한 부대찌개도 잘 먹었다. 우리는 맥주를 계속해서 마시며 쉴 새 없는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리마 구 시가지와 완전히 다른 분위기인 미라플로레스는 걷기 무척 좋은 지역이다. 해안을 따라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고, 깨끗한 데다가 공원도 몇 개 있다. 뭔가 어울리지 않지만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이 정말 많다.세련된 고층 빌딩과 쇼핑몰, 절벽 아래는 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다. 걷다가 바다를 내려다 봤을 때 새까만 무언가 둥둥 떠다니길래 처음에는 물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전부 서핑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해안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사랑의공원이 나온다. 이름만이 아닌 듯 유난히 이곳에는 커플이 많았다.사진을 찍으며 공원을 둘러보고 있을 때 마침 사랑 고백하는 이벤트가 바로 앞에서 벌어졌다. 분위기로는 청혼인 것 같았다.여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일몰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해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비롭다. 감상에 빠지기 딱 좋은 시간이다.숙소에서 키우고 있던 작은 고양이의 이름은 '꾸이'였다. 꾸이는 페루에서 즐겨 먹는 기니피그 요리인데 귀여운 고양이에게 붙이면 이상할 법한 이름이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여행은 80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숙소에서 만났던 다른 한국인 여행자 충희, 그리고 이제 막 도착해 정신이 없었던 혜영, 혜민이와 함께 마이키를 만나러 바랑코(Barranco)에 갔다. 바랑코는 미라플로에서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저렴한 숙소가 꽤 있어 이곳 역시 배낭여행자가 찾아 온다. 미라플로레스에서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돼 걸어갔다. 우리는 페루식 염통꼬치인 안티쿠쵸를 먹어보기로 했다. 일단 어두워지기 전 바랑코를 한 바퀴 돌아봤다. 확실히 깨끗하고 현대적이었던 미라플로레스와 비교해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오래된 건물이 많이 보이고, 벽면에는 흥미로운 벽화가 가득했다.오늘도 일몰을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갔다. 육교를 건넌 후 모래사장에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다시 지평선을 붉게 물들였다. 어제보다 더 아름다운 일몰이었다.드디어 안티쿠쵸 만났다. 안티쿠쵸는 소의 염통(심장)으로 만드는데 흔하게 볼 수 있는 요리라고 한다. 그런데 페루를 여행하는 동안 세비체나 치파(페루식 중국 요리)는 무수히 많이 먹었어도 안티쿠쵸를 먹을 기회는 없었다. 마침 바랑코에 안티쿠쵸를 파는 전문 식당이 몇 군데 있다고 들어 같이 가보게 된 것이다. 맛은 기대했던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갑자기 만나게 된 여러 사람들과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쿠스코 이후 오랜만인 것 같다.
[페루] 쿠스코 숙소, 워크온인 호스텔(Walkon Great Hostel)
[기본정보]- 6인 도미토리 21솔- 조식 포함 - 주방 사용 불가- 언덕을 한참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힘듦페루 최대 관광지라 숙소는 넘쳐 난다. 쿠스코에서 꽤 오래 지내면서 여러 숙소를 옮겨 다니곤 했는데 워크온인 호스텔(Walkon Inn)도 그 중 하나다. 마추픽추를 다녀오니 원래 지내던 숙소에 방이 없어 어쩔 수 없이 근처에 있는 다른 숙소를 찾아보다 이곳까지 오게 됐다.쿠스코 자체가 언덕 위에 있어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힘들 때가 있는데 여기는 거의 꼭대기나 다름 없는 곳에 있어 아르마스 광장까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기가 조금 겁난다. 확실히 위치는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다.안으로 들어가면 카운터와 작은 공간이 나오고, 여러 개의 방으로 직접 연결되어 있다.도미토리는 깔끔하긴 했으나 많이 비좁았다. 전에 있던 호스텔 역시 좁았고, 이곳도 가격 차이가 거의 나지 않는 저렴한 곳이었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게다가 인터넷은 꽤 빠른 편이었다. 딱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이라면 주방은 있었는데 사용할 수 없었다. 가뜩이나 언덕 위에 있어 밥 먹으러 가는 게 불편했는데 요리를 할 수 없으니 매번 내려가야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일상] Eave 65와 목새 택타일 | 토프레 무접점 느낌 | 타건 영상 있음](https://img.zoomtrend.com/2026/06/07/1780838085-SE-77297eb3-90bf-43a7-9629-75fd8530e3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