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518 posts여름 날 대청호반 자연생태공원을 거닐다
호수와 땅이 맞닿는 곳에는 보통은 공원이 조성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지역을 보통 호반이라고 부른다. 대청호에 자리한 대청호반은 대청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더운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고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너무나 더운 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밖에서 조금만 걸어 다녀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합니다. 조금만 무리하면 열사병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을 보기 위해 찾아왔지만 너무 빨리 걸어 다닌 탓일까요. 속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은 체온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는 체온을 조절하는 체온조절 중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 뜨거운 햇볕에서 무리를 하게 되면 체온조절 중추가 제기능을 못하는데요. 이때 열사병이 나타납니다. 열사병 직전 증상으로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경련, 시력 장애 등이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풍광을 담고 있는 저는 솔직히 힘들어 죽겠습니다. 날이 어찌나 더운지 밖에 나와서 있는 사람들이 거의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음식을 가지고 그늘이 있는 곳에 가서 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해서 낮에 돌아다니다가 보면 몸의 어느 곳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청호 오백리 길 4구간에 위치한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은 다양한 생태식물과 인공호수, 풍차 등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대청호반 관광명소죠. 이렇게 뜨거운 날씨만 아니라면 걸어 다닐만할 텐데 나무 그늘만 자꾸 찾게 됩니다. 30℃ 중반을 넘어가는 온도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날이 좋으면 좋을수록 색감이 참 진해지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굳이 후보정을 하지 않아도 사진의 색감이 좋은 날입니다. 대청호가 생겨난 때는 1980년 12월. 대청댐이 완공되고 나서입니다. 호수 둘레만 무려 80km. 대전 대덕구, 중구와 충북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에 걸쳐 있습니다. 대청호 수변 생태공원은 대청호를 지척에 두고 조성됐습니다. 이곳 주변에는 원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마을이 있습니다. 대청호오백리길탐방지원센터 맞은편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은 대청호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내륙의 바다라고도 불릴 정도로 큰 규모의 대청호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토착 어종인 중고기를 비롯해 큰 납지리, 납자루 등 다양한 물고기와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철새, 텃새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유유히 생태연못을 채우고 있는 연꽃 옆으로 평화롭게 서 있는 풍차. 자유롭게 노닐 것 같은 양 떼가 그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연을 느끼고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 대청호 자연생태공원은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볼만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저 앞에 보이는 네덜란드 풍차는 참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이곳에 생태공원은 없었습니다. 풍차가 많이 있다는 네덜란드의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언제 한 번은 가보고 싶네요. 풍차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기계입니다. 예로부터 터키 등에서 제작되어 낮은 곳에 있는 물을 퍼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죠. 쏟아지는 햇빛을 보며 '수리야 나마 스카라(Surya=태양, Namaskara=인사, 경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동춘당공원 소대헌ㆍ호연재 고택에서 아름다운추억
대전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대전에서 꼭 가보고 싶은 명소, 사진 찍기 좋은 곳, 한복 입고 나들이하기 좋은 곳을 찾고 계시나요? 대표적인 고택을 꼽으라고 하면 대덕구의 '동춘당 역사공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덕구 송촌동에 있는 동춘당공원은 동춘 송준길 선생의 출생부터 어린시절, 업적, 시대적 상황 등을 알 수 있는데요. 이곳은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선비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동춘당공원에는 우리나라꽃 무궁화와 배롱나무꽃이 어우러진 고택들이 있는데요. 이번에 동춘당공원 중에서 국가 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된 소대헌ㆍ호연재 고택 주위만 취재해 보았습니다. 대전시 민속문화재 제2호인 송용억 가옥이라고도 하는 소대헌ㆍ호연재고택은 동춘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가 1674년 분가하여 건립한 고택인데요.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와 소대헌 송요화의 부인 호연재 김 씨가 거주한 건물입니다. 조선시대 충청지역 사대부가의 건축양식이나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가옥입니다. 현재는 대전시민대학 송촌캠퍼스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다양한 시민 교육이 되고 있는 학습의 장이기도 합니다. 고택은 큰사랑채인 소대헌과 작은 사랑채인 오숙재가 있는데요. 소대헌과 오숙재 사이의 안채에서는 지난가을 '소대헌. 호현재 부부를 그리다'라는 주제로 행사가 열렸습니다. 달빛을 벗 삼아 호연재의 삶 이야기와 시를 만난 적이 있었죠. 지금은 공사중이라 들어갈 수 없지만 안채 뒤뜰에는 조상들의 위패를 모시고 추모하는 '송 씨 가묘'라고 쓰인 사당도 있습니다. 동춘당공원에는 배롱나무가 가장 많이 있습니다. 봄에는 영산홍, 자산홍, 철쭉이 만개합니다. 고택과 꽃을 배경으로 인생 샷도 남기고 웨딩촬영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지난 주말은 태풍과 장맛비의 영향으로 많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다가 쨍~~하고 해가 뜨니 높은 습도로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를 듯했네요. 그래도 신록이 우거진 나무와 화사한 꽃들을 보면서 잠시 마음의 안정을 찾곤 했습니다. 곱게 입은 한복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니 마치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온 듯 합니다. 가던 길을 다시 돌아 이분들과 함께 대화도 나누면서 촬영했습니다. 새롭고 흥미진진한 내용을 전세계에 방송한다는 인터넷 TV에서 나왔는데요. 배롱나무와 고택, 한복이 잘 어울리는 곳은 동춘당 만한 곳이 없다고 하면서, 이날 촬영한 사진과 영상은 편집 후 전 세계로 방송된다고 합니다. 한국을 알리는 것이죠. 동춘당 원형광장과 소대헌ㆍ호연재 고택의 중간에는 '송씨3세 효자정려 구허비'가 있습니다. 이는 송 씨의 삼대 효자정려의 옛터로 송촌동 동춘당에 이르는 길가에 있었는데 1861년 후손들이 이사하면서 정문도 함께 대화동으로 옮겨지자 그 터를 기념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한복을 입고 거니는 모습. 단아하면서도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시간여행 온 듯합니다. 한복과 너무 잘 어울리는 고택에 배롱나무꽃! 여기에 한복 입은 사람들까지 합하니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순 없죠. 백일 동안 피고 지고를 반복한다고 해서 배롱나무라고 하는데요. 백일동안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호연재 김 씨의 시 세계가 적혀있는 조형물을 보면서 조선시대 사대부의 아녀자로 삶이 평탄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독을 참아내고 위로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시와 술이었다고 합니다. '삼산 군수에게 쌀을 빌리며'라는 시를 보면 쌀을 빌릴 정도로 살림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강술래 영상 마침 동춘당공원으로 대전 스토리 투어 오신 분들도 만났습니다. 오른쪽의 바위는 금암 송 몽인이 거문고를 연주했다고 전해지는 바위입니다. 금암의 글이라는 설과 동춘의 글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대헌ㆍ호연재 고택은 지금 안채 및 가묘 보수 정비사업 공사로 8월 중순까지 문화재 관람 및 외부인 출입이 금지되고 있습니다. 정비가 완료되면 어떤 모습으로 개방되는지 궁금해집니다. 입구 쪽에는 뜨거운 햇볕 아래 잡초도 제거하면서 상사화를 심고 있다고 하니 조만간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호연재는 浩然, 즉 마음이 넓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그녀의 삶을 잘 말해주는 호입니다. 호연재는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여성입니다. 조선시대의 선비보다 더 뜨거운 삶을 사셨던 호연재 김 씨(1681~1722)는 244수의 한시를 남겼습니다. 그녀를 기리는 '김호연재 여성문화축제'도 벌써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는데 올해는 9월 28일(토)에 열립니다. 도종환 시인의 '목백일홍'의 내용처럼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이 꼭 호연재를 닮은 꽃 같았습니다. 피고 지고 또 피는 꽃... 전통 고택과 어울려 더욱 고귀해 보입니다. 품격과 아름다운 멋이 느껴지는 고택의 기와는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서 품고 싶은 친숙하고 편안한 풍경으로 다가옵니다. 고택의 후문 쪽에는 호연재 김 씨 시비가 있습니다.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 /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 / 안개 바람 댓잎에 스치고 / 비 이슬 매화에 엉긴다 /삶이란 석 자는 시린 칼인데 /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 서러워라 한 해는 또 저물 거는 /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 '그의 행실은 규범이 될 만하고 사상은 넓고 깊어 이 비에 새겨 그를 기린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동춘당 공원 근처에는 이시직 공 정려각, 송애당, 은진 송 씨 정려각 등 우리 고장의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동춘당공원을 찾으면 덤으로 볼 수 있는 문화재입니다. 고택의 뒤에는 푸르른 소나무와 대나무의 기상이 함께하니 천하의 명당인 듯합니다. 뜨거운 햇살과 맞대며 곱게 피어나는 꽃을 넋을 놓고 바라보면 저도 분홍빛에 물들어 갑니다. 동춘당 공원에는 연못이 세 군데가 있으며 수련도 많이 피었고, 잉어와 거북이도 살고 있어 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이 찾기도 합니다. 도랑물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까지 들리니 요즘처럼 폭염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역사공원으로 불리고 있는 동춘당공원 안에는 대덕마더센터 북카페 노리와 대전 무형문화재 전수회관까지 있습니다. 많은 다양한 모임이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습니다. 동춘당 소대헌. ·호연재 고택은 대전시 대덕구 동춘당로 70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주차장도 있지만 시내버스 103, 311, 314, 617번을 이용하셔도 됩니다.
한국조폐공사 화폐박물관에서 만난 화폐이야기
돈을 누구나 사용하지만 돈이라는 것에 대한 교육을 잘 알려주는 부모는 많지 않습니다. 단순히 아끼고 잘 쓰라는 모호한 표현은 부족하고 돈에 대한 관념을 가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는 정말 좋은 집과 멋진 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가진 좋은 집과 멋진 차를 부러워합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그는 정말 행복할 거라고. 물론 표면적으로 행복해 보일지 모르지만 저마다 다 사연이 있죠. 대전에는 한국 조폐공사가 있고 그 옆에는 화폐박물관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화폐는 경제 분야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만약 화폐체계가 매일매일 불안하게 변한다면 도량형 표준인 미터가 시시각각 변하는 것처럼 황당하겠죠. 화폐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화폐박물관에 가봤습니다. 인류는 수많은 화폐와 동전을 보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했는데요. 중국 내륙지방에서는 생선이 귀해서 건어물이 지불수단으로 사용됐다고 합니다. 또 곡물은 가장 대표적인 물품화폐로 국가에 대한 세납과 지불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화폐의 본질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돈은 필요하지만 어떻게 필요한지 모르는 것이죠. 다한 국가가 경제 성자을 이루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저축을 통해 그 자본을 투자에 이용해 실질적 재산을 창출하는 모델로, 전체적으로 건전하면서 균형을 이루지만 효과는 더디다고 합니다. 대신 부작용이 적습니다. 다른 하나의 모델은 채무를 통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은행 등을 통해 채무 화폐를 거액으로 만들어내서 단기적으로 신속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그렇지만 이는 재산의 거품을 형성하고 화폐의 가치를 절하시킵니다.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각종 부작용 중 자산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동전외에도 정말 많은 모양의 동전이 눈에 띱니다. 식물전, 동물전, 실패전, 부채전, 중국별전 등 가지각색의 모양의 화폐가 사용됐습니다. 오래전에 사용되었던 화폐는 엽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엽전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금속활자를 만들 때와 마찬가지로 나뭇가지의 원리를 이용해 대량생산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떼어내기 전의 모습이 나뭇가지에 달린 잎사귀 같다 하여 엽전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10진법을 사용하여 '십 량=백전=일천 문'으로 통일시켰습니다. 한 국가의 중요한 권리로 조폐권이 있습니다. 한일합방이 된 다음 해에 조선은행법이 공표됐는데요. 그 해 8월 15일부터 조선은행법이 시행됨에 따라 조선총독부 인쇄국에서 1914년부터 '조선은행'이 적힌 백 원권을 발행했습니다. 이곳에서 화폐의 하나로 만나볼 수 있는 금은 재산의 최종 형식으로 줄곧 인정받아왔다고 합니다. 금본위제와 작별을 하게 된 역사적인 해는 1971년인데요. 이때 미국은 달러와 금을 연동한다는 국제적 약속을 이행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본위제가 전면 폐지되어 극소수의 국가를 제외하고 금과 지폐의 연관성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한 국가의 화폐는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화폐의 운명이 국가와 같이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1910년 국권이 상실된 후에 자취를 감추고 일본이 발행한 주화를 사용하기도 했죠. 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흘러 1958년 10월 미국 필라델피아 조폐국에서 도입한 십환, 청동화, 오십환, 백환 백동화를 발행함으로써 반세기 만에 우리의 주화가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해외여행을 다녀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다른 국가의 다양한 화폐를 바꾸고 사용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 국가의 화폐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인물사진이라고 합니다. 화폐제도는 한 사회를 대변하는 도덕윤리의 기반이라고 합니다.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데 화폐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성실하게 저축하는 사람은 제도적인 보호와 체계적인 격려를 받도록 하는 것이죠. . 화폐박물관에는 조상의 멋과 풍속이 담긴 별전, 다양한 기념주화와 주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지폐는 서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17세기 초 중세 영국에서 처음으로 지폐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금장이 발생한 예치증서로 오늘날 은행권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상업의 발달로 여행지가 많았던 시기에 여행 중의 도난방지를 위하여 탄생한 것인데요. 금융 업무를 수행하던 금장에게 돈을 맡기고 예치증서를 받은 뒤 목적지의 지정된 금장에게 가서 보여주고 돈으로 교환받은 것이 지금의 화폐의 원형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도 화폐박물관에서 화폐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작지만 알찬 유성의 용반들 근린공원
요즘 유성사거리에서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이 근처에 있다보니 주변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갔던 그 곳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중 작은 공원인지 알았는데 나름 있을 것 은 다 있으면서 유성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 용반들 근린공원이 보이더라구요. 우연하게 건너편건물에서 내려다보았다가 근린공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앞에 있는 상업건물과 뒤에 있는 주거단지와의 완충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아파트단지 근처에 있는 용반들근린공원은 작은 공연장과 잔디밭이 있어 좋고, 특히 화장실과 관리사무소 건물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장애인들이 이동하는데 어려움이 없어 휴식공간으로 좋습니다. 내려와서 직접 용반들근린공원으로 나들이를 해봅니다. 간단한 그늘막과 함께 아래는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CCTV와 함께 미디어폴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기기로, 이곳 주변에는 U-CITY관제센터가 있습니다. 직접 정보를 이용하기 위해서 앞으로 와봤는데요. 대낮에는 이용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반사가 심합니다. 낮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사광등을 어떻게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듯 합니다. 용반들근린공원은 안쪽으로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는데 긴 산책로는 아니지만 가볍게 식사하고 돌아보기에 적당합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야외무대공간도 따로 갖추고 있습니다. 용반들 근린공원에서 공연이 열린다는 소식은 개인적으로 들어본 적은 없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공연 같은 것을 열어도 좋을 것 같네요. 화장실같은 편의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관리실도 따로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독특한 것은 유성을 소개하는 공간과 시설물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유성의 봉소사에 있는 석조보살입상에 대한 내용과 수운교 도솔천을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저도 평소에는 그냥 지나쳐갔을 유성 문화재들입니다. 유성하면 온천이죠. 유성온천이 어떻게 유래되었는지 알리는 내용인데 저도 재미있게 읽었네요. 백제시대에 아들이 전투에 나갔다가 다쳐서 왔는데 아들을 낫게 할 방법을 찾다가 꿈에 학이 내려와서 웅덩이에 다친 다리를 넣었더니 나았다고 합니다. 그 곳에서 아들의 상처를 나을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학이 다쳐 애처롭게 울은 곳이라고 해서 명학소라고 불렸으며 날라간 곳은 학하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늘날 봉명동이라는 지명은 명학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네요. 백제시대부터 신라시대, 고려, 조선,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성의 역사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유성 관광지도를 맵으로 그려서 표시를 해두었습니다. 유성구의 상징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정리를 해두었습니다. 유성구의 상징은 원자궤도와 핵을 조형화해서 표현을 하였다고 합니다. 작지만 의미있는 공원이면서 유성구에 대해서 조금더 알 수 있는 시간이어서 저에게는 유익했습니다. 용반들근린공원 주변에 거주하시는 분들이나 이곳을 오가는 분들에게 휴식처가 되어주는 이곳에서 유성에 대한 이야기와 만나보세요.


![[CV] [Comi] 'ダンダダン'(단다단) 24권. 레드 바론](https://img.zoomtrend.com/2026/06/11/1781228393-EB829CED8380.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