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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8월 7일 |
호수와 땅이 맞닿는 곳에는 보통은 공원이 조성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그런 지역을 보통 호반이라고 부른다. 대청호에 자리한 대청호반은 대청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곳이지만 더운 여름날 더위를 식혀주고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곳입니다. 너무나 더운 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밖에서 조금만 걸어 다녀도 에너지 소비가 상당합니다. 조금만 무리하면 열사병에 걸리기 십상입니다.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을 보기 위해 찾아왔지만 너무 빨리 걸어 다닌 탓일까요. 속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은 체온이 항상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능이 있는데 이는 체온을 조절하는 체온조절 중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오랜 시간 뜨거운 햇볕에서 무리를 하게 되면 체온조절 중추가 제기능을 못하는데요. 이때 열사병이 나타납니다. 열사병 직전 증상으로 두통, 어지러움, 구역질, 경련, 시력 장애 등이 있습니다.
이곳저곳을 거닐면서 풍광을 담고 있는 저는 솔직히 힘들어 죽겠습니다. 날이 어찌나 더운지 밖에 나와서 있는 사람들이 거의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음식을 가지고 그늘이 있는 곳에 가서 쉬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무리해서 낮에 돌아다니다가 보면 몸의 어느 곳이 무척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대청호 오백리 길 4구간에 위치한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은 다양한 생태식물과 인공호수, 풍차 등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냅니다. 대청호반 관광명소죠.
이렇게 뜨거운 날씨만 아니라면 걸어 다닐만할 텐데 나무 그늘만 자꾸 찾게 됩니다. 30℃ 중반을 넘어가는 온도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날이 좋으면 좋을수록 색감이 참 진해지는 것을 보면 참 아이러니합니다. 굳이 후보정을 하지 않아도 사진의 색감이 좋은 날입니다. 대청호가 생겨난 때는 1980년 12월. 대청댐이 완공되고 나서입니다. 호수 둘레만 무려 80km. 대전 대덕구, 중구와 충북 청주시, 옥천군, 보은군에 걸쳐 있습니다.
대청호 수변 생태공원은 대청호를 지척에 두고 조성됐습니다. 이곳 주변에는 원래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마을이 있습니다. 대청호오백리길탐방지원센터 맞은편 대청호 자연 수변공원은 대청호의 축소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다채로운 풍경을 보여줍니다.
내륙의 바다라고도 불릴 정도로 큰 규모의 대청호는 ‘생태계의 보고’입니다. 토착 어종인 중고기를 비롯해 큰 납지리, 납자루 등 다양한 물고기와 이를 먹이로 살아가는 철새, 텃새가 관찰되기도 합니다.
유유히 생태연못을 채우고 있는 연꽃 옆으로 평화롭게 서 있는 풍차. 자유롭게 노닐 것 같은 양 떼가 그림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자연을 느끼고 문화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 대청호 자연생태공원은 최대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면서 거부감이 들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볼만한 경관을 보여줍니다.
저 앞에 보이는 네덜란드 풍차는 참 오래전에 본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이곳에 생태공원은 없었습니다. 풍차가 많이 있다는 네덜란드의 풍차마을 잔세스칸스는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언제 한 번은 가보고 싶네요.
풍차는 바람의 힘을 이용해 동력을 얻는 기계입니다. 예로부터 터키 등에서 제작되어 낮은 곳에 있는 물을 퍼 올리는 데 사용되었다죠.
쏟아지는 햇빛을 보며 '수리야 나마 스카라(Surya=태양, Namaskara=인사, 경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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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공식블로그 | 2019년 1월 21일 |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라"- 충암 김정-
선비들이 죽음을 겪거나 유배를 가는 등 정치적인 탄압을 받는 사건을 보통 '사화(士禍)'라고 부르는데요. 당대 권력은 지우려고 했지만 세상은 기억하는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러 대전시립박물관 기획전 '1519 선비의 화- 김정과 그의 조선'을 찾았습니다.
이번 전시는 대전지역의 중요한 역사인물인 '충암 김정' 선생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1519년에 발생한 정치적 사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재조명해 보는 자리입니다.
대전시립박물관에는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이 따로 운영이 되고 있는데요. 기획전시공간은 두 곳이 있어 주제가 다르거나, 주제가 이어지는 전시를 동시에 만날 수 있습니다.
충암 김정은 정암 조광조 등과 함께 개혁정치에 참여했다가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36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충암은 겨우 목숨을 건져 금산에 유배됐다가, 진도를 거쳐 제주로 옮겨졌는데요. 충암은 외로운 섬 제주도에서 36년의 삶을 마감하면서 사약을 들고 '임절사'를 읊조립니다.
"외딴섬에 버려져 외로운 넋이 되려 하니
어머님 두고 감이 천륜을 어기었네
이 세상을 만나서 나의 목숨 마쳐도
구름을 타고 가면 하늘문에 이르리
굴원을 따라 떠돌고도 싶으나
기나긴 어두운 밤 언제면 날이 새리
빛나던 일편단심 쑥밭에 묻게 되면
당당하고 장하던 뜻 중도에서 꺾임이니
아! 천추만세에 내 슬픔을 알리리"
충암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중종을 옹립한 정국공신의 공을 가려내는 '위훈삭제'를 추진하다가 기존 세력인 훈구파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충암은 중종 14년(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연루돼 그 화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이야 정치적인 생명이 끝나는 선에서 머물 수도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개인적인 이야기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선의 정치적인 생명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입니다. 화를 당해 유배를 당하기도 하고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할 수도 있었지만 새로운 깨달음 얻거나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고 빛나는 계기로 삼은 이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첫 사화는 역사상 유명한 폭군인 연산군 때 일어났습니다. 조선시대에 사화를 일으키게 만든 왕들은 정치적으로 자신의 입지를 확고하게 만들기 위해 활용했죠.
연산군 역시 초기에 폭정의 결과라기보다는 자유로우면서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기 위해 삼사와 사관들에게 정치적인 경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등장한 유배지는 모두 408곳이라고 합니다. 지역별로 보면 경상도가 81곳, 전라도가 74곳, 충청도는 70곳에 달하며 횟수로 보면 전라도는 915회, 경상도는 670회, 충청도는 320회에 이릅니다. 지역으로는 제주도가 81회로 가장 많습니다. 가장 먼 섬이고 지금이야 쉽게 갈 수 있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제주도는 아주 멀고 쉽게 갈 수도 없고 나오기도 힘든 곳이었죠.
지금도 적지 않은 정치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만 사화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통치자에 의해 죽음에 이르기까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김정이 출사 한 것은 연산군이 폐위된 직후였다고 합니다. 연산군을 몰아내고 이복동생인 진성대군(중종)을 왕으로 추대한 사건인 '중종반정'은 충을 숭상하는 성리학을 국가철학이자 통치이념으로 삼아 건국한 나라였기에 그 의미가 상당히 컸습니다.
충암은 11가지 잠언이라는 '십일잠'을 적었는데, 이는 그가 약관의 나이에 방대한 고금의 문헌들을 읽고 그것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1515년(중종 10) 8월 순창군수 김정은 담양부사 박상과 함께 폐비 신 씨의 복위를 주청 하는 상소를 올렸다. 신 씨는 중종의 즉위와 함께 왕비가 되었으나 반정세력들은 신 씨의 아버지 신수근이 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그를 폐위시켰다. 감정의 상소는 부부의 연을 강제로 끊어버린 반정공신들의 폐륜과 자신의 아내를 지키기 못한 중종의 무능, 모두를 공격한 것으로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대간들조차 김정을 비난했고 결국 파직된 그는 충북 보은에 유배되었다."
현재 김정을 배향하는 서원들은 충북 보은의 상현서원, 충북 청주 신항서원, 대전의 숭현서원, 정북 장수 화산사가 있습니다. 또 지금은 사라졌지만 화산서원, 성곡서원, 귤림서원이 있었습다.
화를 입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안위보다는 자신의 소신을 밝혔다는 의미의 반증이기도 합니다. 소신으로 세상을 살았던 사람만이 겪었던 화를 보면서 소신의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충암 김정은 1576년(선조9)에 문간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758년(영조34) 영의정에 추증됩니다.
한편, 기획전시실 입구에 가면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근정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1395년에 지은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렸고, 현재의 건물은 1867년 중건되었는데요. 앞면 5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으로 아래층의 고주가 위층의 변주가 되는 구조로,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중에서 가장 높고 규모가 크며, 조선 후기 다포계 건축의 특징을 대표하는 건물입니다. 신하들의 조하를 받던 곳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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