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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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리머스 Screamers (1995)
채광 노동자 출신들로 구성된 연합군과 행성 시리우스의 식민지 사업 주도 회사인 NEB간에 유지되고 있는 20년 전쟁. 그러나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땅 밑에서 움직이며 비명을 질러대는 살인 로봇 '스크리머'들이다. 막상 영화 안에서는 두 집단 간 치열한 전투 대신 소강 상태가 더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아니나 다를까 원작은 냉전시대 미소(美蘇)간 긴장 상태와 매카시즘을 SF 호러로 치환해 묘사했던 사회 풍자 소설. 원작의 미국과 소련을 노동자와 기업으로 각색함으로써 90년대 초반까지의 미국 경제 불황이라는 시대상을 담아낸다. 영화 처음부터 등장하는 초기형 스크리머는 마치 [환타즘]의 "날으는 공"처럼 생긴, 단순하면서도 섬뜩한 모델이다. 그러나 전초기지를 떠나 사막을 향할 수록 더욱

거미집의 성 蜘蛛巢城 (1957)
일본의 무속 신앙에는 "언령(言霊)"이라는 개념이 있다. 말 그 자체가 주술적인 힘을 발휘해 어떠한 작용을 한다는 건데, 이 영화에서는 사람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키워드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언으로 흥하고 예언으로 망한 사무라이의 이야기로 볼 수 있겠다. 애초에 거미숲의 요괴 노파는 와시즈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믿거나 말거나인 예언 몇 줄을 던졌을 뿐. 와시즈의 흥망을 결정한 것은 예언 그 자체가 아닌, 예언에 대한 기대감과 걱정 그리고 그 아래에 있는 욕망이다. 예언을 믿지 않았더라면 쿠데타는 없었을 것이며 와시즈 그 자신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말의 무게"에 대한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 하는 것은 요괴 설화의 충돌이다. 일본에 전승되는 요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
전국 시대의 막바지, 존재 가치를 잃고 낭인이라는 이름의 사회 잉여가 된 사무라이들이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인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사무라이들을 배척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도적떼가 아닌, 애초에 그들을 고용한 농민들이다. 이것은 "배후의 아군이 진짜 적이었다"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뜻을 모아 한 공간 안에 섞이게 됐으나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계급간 벽에 대한 이야기다. 세끼 식사마저 보장되지 않는 조건을 수락하며 명예롭게 죽을 자리를 찾아 고매한 사무라이 정신을 지키지만, 그들이 보호하는 농민들은 도적떼나 사무라이나 똑같이 약탈자로서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먹이서열 맨 아래의 약자들이었던 것. 지키려는 자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때문에 영화는 일곱 사무라이들을 마치 활극의 주인공

카게무샤 影武者 (1980)
주인공인 좀도둑 혹은 카게무샤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작은 그릇의 인물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뭐가 두렵겠냐 싶으면서도 당대의 호걸인 타케다 신겐의 디코이로서 일생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여기서의 공포는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으로 산다는 공포보다 더한 것은 남이 되어, 내가 아닌 채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게무샤는 결국 좀도둑이라는 "이드(id)"를 감추고 100퍼센트 카게무샤라는 "초자아"만으로 타케다 신겐이라는 "자아"를 형성하기를 선택한다. 고통스러운 일일 것임을 스스로도 알았으나 어찌됐건 그 길을 가기를 선택한 것. 카게무샤는 적절한 임기응변 등으로 거의 완벽하게 타케다 신겐 "역할"을 수행한다. 현실에도 가식이 오래되면 그게 곧 성격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