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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필라델피아에서 만난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와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haddeus Kosciuszko)

정확히 10년전 여름에 하이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던 딸을 위해 다녀왔던 아이비 리그(Ivy League) 대학투어 8박9일 미동부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했던 도시가 필라델피아(Philadelphia)였다. 하지만 3년전에 미동부로 이사와서는 인근의 유명한 정원을 구경하기 위해 스쳐지나간 적만 있을 뿐, 시내로는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대도시였다. 참, 그래서 딸 자식은 투어를 다녀온 4년 후에, 아이비리그 8개 중 6개에 합격을 해서 그 중 한 곳을 졸업했고, 벌써 직장인 2년차로 맨하탄에서 혼자 살고 있다... 시간 참 겁나게 빠르다! 76번 고속도로가 스퀼킬 강(Schuylkill River)을 만나서부터 정체가 시작되어서, 앞차와의 거리를 충분히 두고 10년만에 다시 만난 필라델피아 빌딩숲의 사진을 한 장 찍었다. 하지만 이제 찾아가는 곳은 저 시내가 아니라, 대부분의 여행객은 듣도 보도 못한 장소인데, 이 때가 위기주부 홀로 작년 12월초에 떠났던 '4차 듣보잡 여행'의 오후였기 때문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지자마자 표지판이 역시 필라델피아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인디펜던스 홀(Independence Hall)의 방향을 알려주는데,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가족여행의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그 곳의 여행기를 클릭해 보실 수 있다. 그러면 위기주부는 도대체 어디를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신 분을 위해 아래 지도를 준비했다. 최근 업데이트 된 국립공원청 앱의 지도로 필라델피아를 확대하면 위와 같이 4개의 장소가 표시된다. 그러나 제일 아래쪽 Gloria Dei Church는 제휴된(affiliated) 장소라서 현재 433개의 NPS official unit들에 포함되지 않고, 가운데 인디펜던스 국립역사공원은 10년전에 다녀왔으니, 나머지 2개의 장소를 이제 방문하려는 것이다. 첫번째는 에드거앨런포 국립사적지(Edgar Allen Poe National Historic Site)로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약 6년간 시인, 비평가, 편집자로 살며 거의 매년 옯겨다닌 거주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란다. 다른 오래된 집들처럼 철거될 예정이었지만 열혈팬이 1933년에 구입해서 박물관으로 개장했고, 유언으로 필라델피아 시에 기증한 것을 다시 연방정부가 인수해서 1980년에 국립사적지로 재개장을 했다. 하지만 작은 "Closed for construction" 표시가 비지터센터 문앞에 예상대로 붙어 있었다. 몇 달 전에 확인했을 때는 겨울에 다시 오픈할 예정이라고 했었지만, 미국 공무원들 일하는 스타일로 봐서 언제 재단장이 끝날지 기약이 없는 것을 알기에... 겉모습이라도 구경하려고 찾아왔던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에 따르면 그는 뒤쪽의 작은 건물에서 어리고 병약한 아내 Virginia Clemm Poe와 고모인 동시에 장모였던 Maria Poe Clemm과 함께 1843-44년 기간에 살았고, 현재 비지터센터로 사용되고 있는 앞쪽의 큰 건물은 1848년에 추가된 것이다. 그런데 앞쪽 건물의 붉은 벽에 석양의 햇살을 받아 살벌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던 동상이 있었으니... 그가 1845년애 발표한 시(詩)의 제목이기도 한 까마귀(The Raven, 갈가마귀)이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en Poe)는 한국에서는 등의 공포/추리 소설의 작가로 많이 알려졌지만, 영문학에서는 를 쓴 시인으로 더 유명해서 그 시에서 까마귀가 읊조리는 말로 처음 등장했던 "Nevermore"라는 단어는 유치원생들도 출처를 알 정도라고 한다. 또한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 생활을 시작했고 또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던 도시인 볼티모어를 연고로 하는 미식축구 팀의 이름이 '레이븐스(Ravens)'인 것도 그 시에서 유래했다. 건물 내부에서 가장 인기있는 장소는 바로 안내판에서도 대표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는 지하실인데,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다른 대표작인 에서 벽 속의 시체와 함께 한쪽 눈이 없는 검은 고양이가 나타나는 지하실이 바로 이 곳을 모티브로 했기 때문이란다. 약간은 허전한 느낌을 가지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하려다 잠시 옆건물로 눈을 돌렸는데, 특유의 애매한 눈빛으로 위기주부를 바라보는 포(Poe)가 거기에 있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그의 일생에 대한 나무위키의 설명을 참 재미있게 읽어서, 언젠가는 여러 작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볼티모어에는 그의 묘지와 함께 그가 살았던 집이 사설 박물관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는데, 여기를 클릭하시면 블로그 이웃이신 짱남님이 방문했던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남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려서 두번째 목적지인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국립기념관(Thaddeus Kosciuszko National Memorial)을 찾아왔는데, 다닥다닥 붙은 오래된 아파트들 중에서 눈에 띄는 삼각형 지붕의 건물이다. 예전에 백악관과 그 주변을 소개한 글에서 미국독립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외국인 4명을 모아 놓은 라파예트 공원에 있는 그의 동상을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으로 보여드린 적이 있다. 폴란드 군사학교를 졸업한 코슈추슈코(Kosciuszko)는 1776년에 30세의 나이로 아무 연고도 없는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독립 전쟁에 자원해 6년간 공병장교로 활약해서 준장 계급을 받는다. 그 후 유럽으로 돌아가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위해 또 싸우다가 러시아에 붙잡혀 징역을 살고 석방되는데, 이 곳은 그 후에 그가 다시 미국을 방문한 1797년 겨울부터 이듬해 봄까지 지냈던 숙소이다. 이 곳은 이유도 없이 그냥 "Closed"가 붙어 있는데, 그 이유는 방문했던 겨울철에는 아예 문을 열지 않고, 여름철에도 주말 오후에만 잠깐 오픈할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기 때문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래도 안내판 정도는 하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모퉁이를 돌아보니, 예상대로 국립공원청에서 세워 놓은 설명판이 눈에 띄었다. 무작정 신생 독립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로 와서는 대륙군에 들어가기 위해서, 벤자민 프랭클린을 찾아가 수학 실력을 보여주고는 공병장교로 추천을 받아서 입대를 할 수 있었단다. 특히 미국 독립전쟁 초기의 가장 중요한 승리로 기록되는 새러토가 전투(Battles of Saratoga)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 후 허드슨 강변의 웨스트포인트(West Point)를 요새화 하는 것을 지휘했다. 전쟁이 끝나고 그 곳에 미국 육군사관학교가 들어설 때, 제일 먼저 세워진 동상의 주인공이 코시치우슈코라고 한다. 안내판의 초상은 좀 영웅적이고 근엄한 모습이지만, 브로셔의 표지로 사용된 아래의 그림은 아주 앳된 얼굴이다. 참고로 그는 폴란드의 국민영웅이기도 해서 공원 브로셔의 뒷면은 특이하게 폴란드어로 만들어져 있었다. 미국 화가 Benjamin West가 런던에서 우연히 만나 그린 그림이라는데, 이 때의 코시치우슈코 나이가 45세라고 하니 굉장히 동안인 것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전혀 무골(武骨)이 아닌 공학도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얼굴인데, 그가 처음 대서양을 건넜던 이유는 첫사랑의 실패로 지구 반대편에 가서 죽을 작정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가담했다는 설도 있단다.^^ 이상과 같이 두 위인의 체취가 남았을 지도 모르는 잠겨진 두 문짝만 구경을 하고는 짧은 필라델피아 방문을 마치고 떠나며, 신호를 기다리다가 운전석 차창 밖으로 기념관의 전체 모습을 담아봤다. 정확히 건평이 81제곱미터인 저 건물만 1972년에 국가기념물(National Memorial)로 지정이 되었는데, 현재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넓은 의미의 국립 공원들 433개 중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곳이라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자연보호에 기여한 대통령을 기리는 국가기념물인 시어도어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

자연보호에 기여한 대통령을 기리는 국가기념물인 시어도어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

반응형 지난 여름에 갑자기 이 동네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또 이사를 갈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워싱턴DC 지역에서 안 가본 국립 공원과 박물관 등을 일부러 부지런히 찾아 다녔었다. 그래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 5일 동안 짬짬이 총 12곳의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공원과 다른 3곳의 박물관을 부지런히 방문했었는데, 그 '우리 동네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과 박물관들' 시리즈 시즌1의 마지막 15번째 포스팅이다. 화강암 덩어리 하나가 거의 전부인 제36대 존슨 대통령 기념물이 있는 컬럼비아 섬을 구경한 후에, 포토맥 강의 바로 상류에 있는 시어도어 루즈벨트 섬(Theodore Roosevelt Island)을 찾아왔다. 공원 간판의 아래쪽이 특이하게 녹색으로 보이는게, 섬을 의미한다거나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잠깐 생각했었는데... 그냥 페인트 칠이 불량이라서 벗겨지고 있는 것이었다.^^ 제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에 대해서는, 뉴욕 롱아일랜드에 있는 그의 저택을 방문했던 여행기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렸었는데, 이제 사진의 다리로 건너가려고 하는 섬 전체가 워싱턴DC에 있는 그를 기리는 '살아있는 기념물(Living Memorial)'이다. 자연주의자(naturalist)였던 그는 1901년에 얼떨결에 대통령이 된 후에 많은 국립공원, 모뉴먼트, 국유림 등을 지정해서 미국의 자연을 보호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특히 두번째 임기중인 1906년에 유물법(Antiquities Act)을 제정해서, 연방정부 소유의 땅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국가기념물(National Monument)에 지정해서 보호될 수 있도록 한 것이 중요한 관련 업적으로 꼽힌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국립공원 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 이 흑백사진 한 장은 꼭 보여드리고 싶은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03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방문해서 존 뮤어(John Muir)와 함께 글레이셔 포인트에 오른 사진이다. 그는 목장 생활을 한 경험으로 캠핑같은 야외 활동에 익숙했고, 특히 뛰어난 사냥꾼으로 유명했다. 봉제 곰인형을 테디베어(teddy bear)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의 이름 Theodore의 애칭인 Teddy에서 유래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보행교를 건너다가 북쪽을 바라보면, 키브리지(Key Bridge)의 멋있는 아치와 조지타운(Georgetown) 대학교 건물의 첨탑이 어우러져서 마치 유럽 어디의 풍경을 보는 듯 한데, 여기를 클릭해서 저 동네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보실 수 있다. 다리를 다 건너오면 이끼가 잔뜩 낀 낡은 지붕의 설명판과 나지막한 어린이용 안내판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어서, 이 섬에 뭐 대단한게 있을까 싶지만... 섬의 가운데로 향하는 넓은 트레일을 조금만 걸어가면, 나무들 사이로 숲속 한가운데 누가 손을 흔들고 있는게 보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북전쟁 당시에 군부대가 주둔했다가 민간 소유로 바뀐 섬을, 루즈벨트 기념재단이 구입해 1932년에 연방정부에 기증하면서 서류상으로는 기념물이 만들어졌지만, 높이 17피트(5.2m)의 이 동상을 포함해 실제로 모든 공사가 끝나서 헌정식이 열린 것은 1967년 10월이란다. 부지런히 돌아다녔던 여름 시즌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포스팅이고 하니, 그 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셀카도 한 장 올려본다~ 가까이서 바라보니까 KFC 할아버지를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ㅎㅎ 동상의 포즈가 누구 귀싸대기를 한 대 때릴 분위기처럼 보이지만, 연설을 할 때 항상 격정적으로 손을 휘저으며 했던 모습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런데, 동상만 있는게 아니라 중앙의 넓은 광장에 2개의 분수대를 비롯해서, 저 너머 사람들이 건너온 계단과 그 아래에는 인공 연못도 광장을 감싸며 좌우로 만들어져 있었다. 섬의 숲속에 만들어져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LBJ 기념물과 함께 리빙메모리얼(Living Memorial)로 불리기는 하지만, 의외로 인공적인 구조물이 크게 만들어져 있어서 좀 놀랐던 기억이다. 거기에다 동상의 좌우로 4개의 석판을 더 만들고 어록 등을 새겨놓아서, 비록 진입로가 대리석 계단이 아니라 비포장 흙길에 기둥과 지붕만 없다 뿐이지, 이 정도면 링컨이나 제퍼슨 기념관하고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약간 들었다. 이상으로 인공적인 Memorial Plaza 구경은 마치고, 계단을 넘어서 섬의 트레일을 한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이런게 자연주의자의 길이지...! 먼저 섬의 북쪽 끝까지 올라가봤지만, 강가로 내려가는 트레일은 막아 놓아서, 뒤돌아 다시 Upland Trail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섬 전체가 대통령 기념물이다 보니 트레일 중간에도 안내판들이 가끔 등장한다. 이 섬은 작년 벚꽃구경 포스팅의 마지막에 잠깐 소개했던 조지 메이슨 가문이 대대로 소유해서 원래는 메이슨 섬(Mason's Island)으로 불렸는데, 남북전쟁 때 연방정부가 점령해서 군부대를 만들고 흑인 병사들 훈련장으로 사용했단다. 안내판의 큰 사진은 1898년 쿠바에서 벌어진 미국-스페인 전쟁에 "Rough Riders"라는 의용병을 끌고 참전한 루스벨트로 함께 싸운 흑인 부대를 칭찬한 그의 말이 왼편에 적혀있다. 그런데, 트레일에 뭔가 커다란게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서 가까이 가보니 국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크기의 거북이였다! 이미지 검색을 해보니까, 이스턴박스터틀(Eastern Box Tutle) '북미 상자거북'으로 미동부에서는 굉장히 넓은 지역에 서식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종으로, 한국에서는 애완용으로 키우시는 분들이 있단다. 섬의 남쪽 끝에는 집에서 내셔널몰 구경갈때 항상 지나는 다리인 시어도어루스벨트 기념다리(Theodore Roosevelt Memorial Bridge)의 교각이 섬에 세워져 있다. 여기서 트레일의 작은 다리를 건넌 후는 습지라서 길이 모두 보드워크로 만들어져 있고 이름도 Swamp Trail이다. 플로리다라면 딱 악어가 나오기 좋을 듯한 길이고, 중간에 벤치와 안내판을 만들어 놓았는데, 작은 안내판에는 여기서 관찰할 수 있는 새(bird)에 대해서 설명을 해놓았다. 동그란 흑백사진이 10살때의 루즈벨트로 뉴욕 맨하탄의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틈만 나면 자연에서 새와 동물들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렸단다. 확대해서 보실 수 있는 작은 스케치가 두더지의 일종인 'shrew(뾰족뒤쥐)'를 그린 것인데, 이 단어가 성질 더러운 여자를 뜻하기도 한단다. (셰익스피어 5대 희극의 하나로 익숙한 제목인 의 원제가 The Taming of the Shrew라고 함) 섬 동쪽으로 오면 강 건너 케네디 센터(Kennedy Center)와 워터게이트 호텔(Watergate Hotel)이 잘 보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둘 다 나무와 덤불에 가려서 깨끗이 보이지는 않았다. 계속 북쪽으로 섬을 한바퀴 돌 수도 있지만, 그럴 필요는 없을 듯 해서 뒤돌아 돌아가기로 했다. 루즈벨트 다리 아래로 보이는 작은 섬은 이름도 그냥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로 여기와 떨어져 있고 아무 시설도 없다. (뉴욕의 '리틀아일랜드'는 여기를 클릭) 그런데, 저 작은 섬에 엄청나게 큰 빌딩이 세워지고 루즈벨트 섬 전체에도 건물이 만들어져, 두 섬이 완전히 하나로 연결된 모습이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다. 2014년에 개봉했던 마블 영화 에서 S.H.I.E.L.D. 본부인 The Triskelion 건물이 위치한 곳이 바로 이 섬들이다. 유튜브를 클릭해서 보시면 내셔널몰을 내려다 보는 쉴드 기지의 위용이 소개되는데, 영화에서는 기지 옆의 포토맥 강물이 갈라지며 그 아래에 숨겨져 있는 '날으는 항공모함'인 헬리캐리어(Helicarrier)가 이륙하다가 추락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서 주차장으로 돌아가면, 아직까지 이사 안가고 계속 잘 살고 있는 버지니아(Virginia) 주이다.^^ 정면의 고층건물들은 알링턴 시의 다운타운인데, 저 중에 꼭대기 전망대가 무료로 개방되어서 DC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 있던데 한 번 찾아봐야겠다. 이렇게 지난 여름의 우리 동네 국립 공원 도장깨기 시즌1은 막을 내렸지만... 가을/겨울의 시즌2가 벌써 시작되어서 그 첫번째 포스팅을 올린 지가 이미 오래 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이 성공한 장소인 라이트형제 국가기념물(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

반응형 가끔 줄여서 '노바(NoVA)'라고 부르는 워싱턴DC 인근의 북부 버지니아(Northern Virginia)로 작년에 이사를 와서는, 계속 뉴욕과 보스턴이 있는 북쪽으로만 차를 몰고 올라갔었기 때문에, 그래서 9월에는 하루 휴가를 내서 처음으로 집에서 남쪽으로 자동차여행을 가보기로 여름부터 마음을 먹고 있었다. 최초 계획은 집에서 약 500마일 남쪽에 있는 미지의 국립공원과 그 아래 미국남부의 문화를 대표하는 도시인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 주의 찰스턴(Charleston)을 2박3일로 여행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구경을 하기에는 일정이 너무 빠듯한 것 같아서, 그냥 남부 버지니아의 역사 유적지들과 그 아래 노스캐롤라이나의 유명한 바닷가를 1박2일에 둘러보는 것으로 계획이 축소되었다. 이번 여행의 주요 방문지와 경로, 그리고 숙박을 한 도시인 버지니아비치(Virginia Beach)를 모두 지도에 표시해봤는데, 버지니아와 노스캐롤라이나의 주경계가 가로 점선으로 표시가 되어 있다. 제일 아래 등대까지 도로가 이어지는 노스캐롤라이나 바닷가의 가느다란 섬들이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자 배경이기도 했던 '아우터뱅크스(Outer Banks)'이다. 이제 소개하는 여행지는 그 '바깥 제방'에 있는 라이트브라더스 국가기념물(Wright Brothers National Memorial)인데, 집에서 5시간이나 걸리는 곳이 첫번째 방문지가 된 이유는... 새벽 4시에 집에서 출발을 하는 바람에, 가는 중간의 장소들은 문을 안 열었기 때문이다. "요즘 밤잠이 없어서~" 비지터센터로 들어가기 전에, 여기 마을의 이름이 '키티호크(Kitty Hawk)'라는 것부터 알려드린다.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이 성공한 여기 지명을 따서 미군이 항공모함 USS Kitty Hawk 등 여러 항공기와 함선을 명명했다고 하는데, 원주민들이 "거위를 사냥하는 장소"라는 뜻의 Chickahawk라 부른 것이 서양인들에게 '고양이+매' 즉 Kittyhawk로 와전된 것이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누구나 어릴 때 한 번쯤은 들어봤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롸이트 형제"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하이오 주의 데이턴(Dayton)이 고향인 형 윌버 라이트(Wilbur Wright)와 동생 오빌 라이트(Orville Wright)의 사진들인데, 가운데 보이는 흰색 종이는 둘의 고등학교 성적표였다.^^ 둘은 자전거 공장을 만들어서 사업에 성공한 후에, 신문 등을 통해서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나는 글라이더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함께 만들어 보기로 했단다. 그들은 1900년에 당시 오하이오에서 기차로 7일이나 걸리는 여기 노스캐롤라이나 시골에 와서는 그들의 글라이더를 처음으로 테스트하게 된다. 연고도 없는 멀리 대서양 바닷가까지 온 이유는 미국 기상청에서 바람이 강하면서 인적이 없는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장소로 소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 해에도 방문해 임시 판자집을 지어 생활하면서, 저 큰 글라이더를 끌고 모래언덕을 올라간 후에, 사람이 타고 내려오는 것을 수백번 반복하며 기본적인 비행의 원리와 조종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그리고는 마침내 1903년 겨울에 소형엔진과 두 개의 프로펠러를 달고 평지에서 이륙할 수 있는 '동력 비행기'인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를 테스트하게 된다. 제비뽑기로 형인 윌버가 먼저 올라서 12월 14일에 비행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고꾸라지는 바람에 앞쪽을 수리해야 했다고 한다. 여기서 일단 실내 전시실의 이야기는 끝내고, 이 후의 스토리는 비지터센터 밖에서 계속 이어지는데, 나가기 전에 옆방으로 가보면... 세계최초 동력 비행기의 실물모형이 그 발전과정과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전시내용과 함께 간단히 보실 수 있다. (다음 해 1904년부터는 고향인 오하이오에서 비행기 테스트를 계속했다고 하며, 연구실로 사용한 자전거 공장과 비행연습을 한 들판 등이 역시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역사공원인 Dayton Aviation Heritage National Historical Park로 지정되어 있음) 밖으로 나오면 멀리 글라이더 연습을 위해 올랐던 모래언덕인 킬데블힐(Kill Devil Hill)에 기념비가 세워진 것과 오른편에 숙소로 사용했던 판자집이 보인다. 형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제일 위에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씌여있다. " THEY TAUGHT US TO FLY " 이 두 건물은 옛모습으로 복원을 한 것인데, 왼편의 텅 빈 건물은 비행기를 보관하는 격납고로 사용했단다. 오른편은 라이트 형제의 숙소였다고 하는데, 잠긴 문의 유리를 통해서 내부를 찍어보니까, 이렇게 여러 소품들을 이용해서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을 해놓았다. 고향에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일부러 바람부는 바닷가의 판자집에서 지내며 고생을 한 것을 보면, 정말 하늘을 날고 싶은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형이 땅에 처박은 것을 수리해서 3일 후인 17일에, 이번에는 동생 오빌이 올라타서 비행을 시도하게 된다. 처음 3회는 10여초 동안 7~8미터를 나는데 그쳤지만, 4회째 시도에서 약 1분 동안 260미터를 날아서 인류 최초의 동력비행에 성공을 한 것이다! (안내판의 내용들은 모두 원본을 확대해서 직접 읽으실 수 있음) 들판에 세워놓은 앞쪽 3개의 표석과 멀리 보이는 1개가 이 4회의 비행에서 날았던 거리를 각각 표시해놓은 것이다. 라이트플라이어가 이륙했던 지점에 미국 항공협회에서 25주년이 되던 1928년에 만든 이정표를 아내가 읽어보고 있다. 그 아래에 놓여진 기다란 레일은 모래사장에서 이륙을 위해 라이트 형제가 고안했던 것으로 세계최초의 활주로라 할 수 있겠다. 멀리 마지막 착륙지점까지 가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냥 뒤돌아서 기념비가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높이 90피트로 부근에서 가장 높은 모래언덕이었던 저 Big Kill Devil Hill에 글라이더를 들고 올라가는 모습의 사진이 안내판에 보이는데, 바닷가 인명구조대 등 동네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다고 한다. 1929년부터 모래에 잔디와 식물을 심어서 언덕을 안정화시키며 꼭대기에 기념비 공사를 시작해서, 1932년에 높이 60피트의 이 기념탑(Memorial Tower)이 완성이 되었단다. 원래는 내부의 작은 전시실을 구경하고 탑의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는데, 지금은 특별한 날에만 개방을 하고 평소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아쉬웠다. 기념물의 가장자리에 서서 동쪽으로 대서양의 망망대해를 내려다 보시는 사모님의 뒷모습~ 좌우에 세워진 두 형제의 흉상과 기념탑의 옆모습, 그리고 뒤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벌판의 모습 등을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지터센터에서 격납고 판자집을 지나서 여기까지 우리가 걸어온 길이 가운데 일직선으로 보인다. 또 이 사진에는 안 보이지만 왼편으로는 실제로 경비행기가 이착륙을 할 수 있는 짧은 활주로가 있는 간이공항인 First Flight Airport도 공원 안에 만들어져 있다. 주차한 곳으로 돌아오니까, 막 가이드투어가 시작되어서 레인저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습할 때 봤던 실물크기의 사람과 비행기를 금속으로 만든 조각을 못 본 것 같아서, 공원지도를 다시 봤더니 기념탑 뒤쪽에 만들어져 있길래, 차를 몰고는 그리로 향했다. 2003년에 비행 100주년 기념식이 당시 부시 대통령과 달에 착륙했던 닐 암스트롱 등의 유명인사들을 포함해 12만명이 이 곳에 모여서 개최되었는데, 그 때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제작한 이 동상들이 새로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한다. 그늘이 져서 잘 보이지 않지만 올라타서 조종하는 동생 오빌이 비행기의 가운데에 엎드려 있고, 그 옆에서 달리던 형 윌버가 이륙 순간에 앞으로 손을 뻗으며 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을 아내가 따라하고 있다. 형제뿐만이 아니라 이륙 모습을 사진으로 찍은 John T. Daniels와 비행을 도운 인명구조대원 Willis Dough 및 동네 사람들도 현실감있게 조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윌리스씨, 사람이 저런 하늘을 나는 기계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는 날이 올거라고 생각하세요?" 여기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키티호크 마을의 한적한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처음 날아오른 저 라이트플라이어(Wright Flyer)에서, 지금 우리가 타고 다니는 여객기와 음속보다 훨씬 빠른 제트기는 물론이고, 우주왕복선과 로켓까지 인류의 모든 비행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1969년에 아폴로 우주선이 라이트 형제가 사용했던 천과 나무조각을 싣고 달에 착륙했으며, 작년 2021년에 화성에서 비행에 성공한 헬리콥터 '인제뉴이티(Ingenuity)'도 라이트플라이어의 날개 천조각을 품고 날았고, 지구밖에서 인류가 최초로 동력비행에 성공했던 그 붉은 땅을 Wright Brothers Field라고 명명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