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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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미국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미서부를 떠나와서 앞으로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들 중의 하나가,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여행기가 34편이나 있는 요세미티 국립공원이다. 그 중에서 12년전에 쓴 글을 클릭해서 보시면, 서두에 미국 최초의 국립공원은 1872년에 지정된 옐로스톤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방정부에서 법으로 특별히 보호한 역사는 요세미티가 1864년으로 더 빠르다고 알려드렸다. 그런데 그렇게 따지자면 훨씬 더 오래된 진짜 1등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1832년에 미국 연방정부가 국가의 보호구역(Reserve)으로 지정하는 법을 통과시킨 미국남부 아칸소 주 핫스프링스(Hot Springs) 지역의 온천이다. (위키피디아의 해당 국립공원 설명에도 '설립된(established)' 일자가 1832년 4월 20일로 되어있음) 대륙횡단 4일째 아침을 맞은 이 곳은 아칸소(Arkansas) 주의 핫스프링스(Hot Springs)라는 이름의 도시에 있는 숙소인 해피할로우(Happy Hollow)로, 동명의 건물 뒤 약수터와 이 땅이 모두 핫스프링스 내셔널파크(Hot Springs National Park) 영역에 포함되는 국립공원 내의 숙소이다. 지난 3일 동안 모두 하루 9시간 이상을 운전했기 때문에, 이 날 오전은 온천욕을 하면서 릴렉스를 하기로 했다~ 숙소는 일단 체크아웃을 하고 목욕가방만 따로 챙겨서 시내로 걸어 내려오니 넓은 잔디밭이 나왔다. 뒤로 보이는 큰 건물은 1924년에 지어진 484개의 객실이 있는 알링턴 호텔(Arlington Hotel)로 1930년대에는 알카포네(Al Capone)가 단골손님이었고, 지금까지 4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숙박한 기록을 가지고 있단다. 우리가 서있는 잔디밭에서부터 남쪽으로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 즉 '온천장 길'이 시작되는데, 바로 뒤를 돌아보면... 이렇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천온천탕이 잘 만들어져 있다. 이 곳의 온천수는 서양인들이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부근의 여러 원주민 부족들이 치료 등의 목적으로 이용했는데,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온천수가 흐르는 계곡에는 서로 적대적인 부족들도 무기를 놓고 들어와서 평화적으로 함께 이용하기로 약속을 했었다고 한다. 비디오를 클릭해서 보시면, 뜨거운 온천수가 산에서 바로 흘러내리는 모습과 함께 주변 풍경을 보실 수 있다. 1803년의 루이지애나 매입으로 이 곳이 미국땅이 되고, 1819년에 아칸소 준주(Arkansas Territory)가 만들어진 후에 온천수의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 위해서 연방정부 차원의 보호를 요청했기 때문에, 1832년에 미국 최초로 '국립공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여러 시설들이 마구 들어서고 소유권 분쟁도 생겼는데, 1878년의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탄 후에 하천을 복개하는 등 정부 주도로 체계적인 개발이 진행되게 된다. 20세기 들어서 현대식 건물들이 차례로 만들어져서 지금의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가 형성되었고, 1921년에 당시로는 미국의 18번째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로 지정이 되었는데, 이제 남쪽으로 걸어가면서 차례로 건물들을 소개해보자. 아쉽게도 첫번째로 나오는 1916년에 지어진 슈피리어(Superior) 건물은 모르고 그냥 지나쳤는데, 1983년에 온천이 문을 닫은 후에 지금은 미국 국립공원 내의 유일한, 또 세계적으로도 유일하게 온천수가 들어가는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brewery)로 운영이 되고 있단다. 가장 오래된 1892년 건물의 헤일(Hale)은 1978년까지는 온천탕으로 운영되다가, 리모델링을 해서 지금은 각 방에 온천수 욕조를 가진 호텔로 운영이 되고 있다. 전날 알아봤을 때 빈 방이 딱 하나 있어서, 여기서 자볼까 고민을 했었는데... 마지막에 소개하는 커다란 대중 온천탕을 이용해보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처음의 숙소로 예약한 것이다. 그 아래 하얀 모리스(Maurice) 건물은 현재 비어있어서 일반에 공개되지는 않고, 대신에 건물 뒤쪽의 이 Maurice Historic Spring을 구경할 수 있다. 바위 속의 동굴과 벽에 만들어 놓은 샘에서 온천수가 조금씩 흘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지만, 앞서 잔디밭의 커다란 야외 온천탕을 이미 봤기 때문에 감흥은 별로 없었다. 1915년에 만들어진 포다이스(Fordyce)는 1962년까지는 고급 온천으로 운영이 되었고, 그 후에는 국립공원의 비지터센터 겸 옛날 온천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사용이 되고 있는데, 온천욕 후에 둘러본 내부의 모습은 다음 편에서 소개를 해드릴 예정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짜잔~ 우리가 오늘 이용할 온천탕인 쿼포(Quapaw)로 중앙의 둥근 돔이 타일로 장식되어 있는 Bathhouse Row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1922년에 문을 열어서 1984년까지 옛날 스타일로 운영을 했고, 그 후에 내부 수리를 거쳐서 지금은 현대식 대중 온천탕과 스파(spa) 시설을 갖추고 2008년에 재개장을 했다고 한다. 목욕탕 앞에서도 커플셀카 인증샷 한 장 찍었는데, 쿼포(Quapaw)는 이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의 이름이라고 한다. 목욕탕이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지 않으면 많이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일찍 왔지만, 아직 다른 기다리는 사람도 전혀 없고 해서 아래쪽까지 다 둘러보고 다시 오기로 했다. 오자크(Ozark)라는 지명은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시즌3까지 나온 범죄드라마의 제목으로 유명해졌지만, 위기주부는 옛날에 월마트의 저렴한 캠핑용품 브랜드의 이름으로 처음 알았다. 항상 그 어원이 궁금했었는데 오자크(Ozark) 온천을 보면서 이번에는 꼭 찾아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의외로 인디언 부족의 이름이나 말이 아니라, 프랑스어 "aux Arcs"에서 나왔는데, Arcs는 인디언 부족 Arcansas의 줄임말이라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원호(arc) 또는 아치(arch)를 의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참, 1922년에 만들어져서 1977년까지 운영했던 이 온천은 지금은 무료인 미술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는데 역시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진짜 미국 국립온천의 진수를 오리지널로 느끼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여기 벅스태프(Buckstaff)를 이용하시면 된다. 1912년에 문을 열었고 유일하게 지금까지 옛날 방식 그대로 중단없이 운영을 해오고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수영복 없이 발가벗고 온천탕에 들어가야 하며 당연히 남탕과 여탕이 분리되어 있다고 한다. "사모님, 우리 거기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Bathhouse Row 제일 아래에 마지막으로 지어진 라마르(Lamar) 건물의 내부 로비의 모습으로, 지금은 핫스프링스 국립공원의 기념품가게로 운영이 되고 있다. 1923년에 문을 열어서 1985년까지 온천으로 운영을 했다고 하며, 건물의 이름은 국립공원청이 속한 내무부의 장관을 역임하고 나중에 대법관이 된 Lucius Quintus Cincinnatus Lamar의 성에서 따왔다고 한다. 국립공원 간판이 보이는 제일 남쪽까지 내려왔는데, 가운데 보이는 노란 2층 건물은 1936년에 국립공원 관리소로 지어진 것으로 온천은 아니다. 오른쪽 언덕 위에 거대하게 우뚝 서있는 건물은 1933년에 당시 전쟁부(War Department)에서 온천수를 이용한 부상병들의 치료와 휴양의 목적으로 건설한 육군/해군 종합병원(Army & Navy General Hospital)이었다. 지금은 아칸소 주정부 소유의 건물로 국립공원 밖이지만, 별도로 국가유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이 되어있다고 한다. 공원관리소였던 노란 건물 앞에는 이렇게 뜨거운 온천수가 나오는 분수가 만들어져 있다. 여기 핫스프링스 지역의 모든 온천수는 국립공원청에서 한 곳에 모아서 수질을 관리하고 온도를 낮춘 후에 앞서 소개한 온천장들로 공급을 했기 때문에, 온천의 수질은 어디를 가도 똑같다고 한다. 이렇게 시내 한가운데에 국립공원 간판이 있다는 것이 참 신기하고, 그래서 '접근성(accessible)'이 좋다고 공원안내에 되어 있지만 그것은 이 도시까지 왔을 때 이야기이고, 전체적으로 봐서는 미본토에서 가장 와보기 어려운 국립공원들 중의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2018년까지는 미국에서 가장 면적이 작은 내셔널파크(National Park)의 기록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사모님, 이제 온천하러 가실까요?" '쿼포탕'으로 돌아와서 줄을 서러 가보니 다른 노부부가 우리보다 먼저 입구 의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문을 여는 오전 10시까지 1시간 가까이 남았었는데 말이다... 우리도 그냥 기다리기로 했는데, 계속 사람들이 몰려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이 30명 정도 되니까, 직원이 조금 일찍 문을 열고 선착순 입장을 받아줘서 첫번째 팀으로 온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연방정부 국립공원 내에 있는 '국립온천'이라서 혹시 코로나로 문을 닫았거나 또는 이 온천이 쉬는 날인 화요일과 겹치면 어떡하나 대륙횡단 계획을 세우며 걱정을 했었는데, 모든게 잘 맞아 떨어져서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던 것 같다. 미리 이삿짐에서 빼서 따로 챙겨놓고 준비해 간 수영복과 샌달을 신고 시원한 물 한 잔 들고 있는 아내의 모습이다. 탈의실에서 잠깐 핸폰을 들고 나와서 이렇게 내부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했고, 직원이 물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찍어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코로나로 온천탕에 한 번에 입장하는 이용객 수를 제한을 했기 때문에, 일단 들어가서는 아주 널널한 환경에서 원하는 만큼 온천을 즐길 수가 있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온천수 이야기를 하자면, 온천을 아주 좋아하는 아내의 말로는 유황 냄새도 전혀 안 나면서 온천수의 효능은 지금까지 들어가본 온천들 중에서 최고였다고 하면서, 정말로 괜히 미국의 '국립온천'으로 지정된 것이 아니라고 감탄을 하셨다! 30분 이상 모든 풀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충분히 릴렉스를 한 후에 쿼포탕을 나왔고, 그 후에 비지터센터 건물의 박물관을 구경한 것과 첫번째 사진에 살짝 보이는 전망탑을 올라간 이야기는 핫스프링스 국립공원 여행기 다음 편에서 계속 이어진다. P.S. 블로그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 건강하고 즐거운 연말연시 보내시고, 2022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미국의 서부개척과 인디언들의 한 맺힌 역사가 있는 아칸소 주의 포트스미스(Fort Smith) 국가유적지

미국의 서부개척과 인디언들의 한 맺힌 역사가 있는 아칸소 주의 포트스미스(Fort Smith) 국가유적지

미국의 50개 주들 중에서 남부 시골에 아칸소(Arkansas) 주가 있다는 것을 위기주부가 처음 알게 된 것은 1992년에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에 당선된 빌 클린턴(Bill Clinton) 때문이다. 그는 아칸소 주에서 태어나서 결손가정에서 소년시절을 보냈지만, 1978년에 불과 32세의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주지사가 되었고, 1993년 1월에 사상 3번째로 젊은 46세에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자동차로 대륙횡단을 하지 않고서는 미국에서 평생을 살아도 왠만해서는 발을 들여놓기 어려운 그 아칸소 주의 이야기가 이제 시작된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인터스테이트 40번을 타고 2시간반 정도 동쪽으로 달리다가, 주경계를 만나기 직전에 64번 국도로 빠지니까 아칸소 주의 환영간판이 나왔다. 아내가 스마트폰으로 급하게 찍어서 화질이 좋지 않은데, 주 이름 바로 밑에는 "The Natural State"라고 작게 적혀 있다. 환영간판은 여기 서있지만 실제로는 미시시피 강의 지류인 아칸소 강(Arkansas River)을 건너는 멀리 보이는 다리를 넘으면 나오는 도시인 포트스미스(Fort Smith)부터 아칸소 주가 시작된다. 강을 건너 바로 오른쪽 강가에 대륙횡단 3일차의 마지막 목적지인 포트스미스 국가유적지(Fort Smit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다. 역사상 최대의 부동산 거래의 하나인 1803년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으로 미시시피 강의 서쪽이 미국땅이 된 후에, 백인 서부개척자(Western Frontier)들의 보호와 원주민들간의 분쟁 해결을 위해 1817년에 최초로 미군이 주둔하는 요새(fort)가 여기 아칸소 강가에 나무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836년에 아칸소가 미국의 25번째 주가 된 후에, 강 건너 서쪽 인디언 영토(Indian Territory)의 원주민들이 혹시 도시를 침략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사진 왼편의 막사(Barracks) 등을 지어서 튼튼한 요새를 다시 만들었다. 그 후 남북전쟁이 끝난 다음인 1871년에 군부대는 철수하고, 오른편 건물이 추가되어 연방법원(Federal Court)으로 1896년까지 사용되어서 약 80년의 격동의 역사가 남아있는 장소이다. 내부를 구경하려고 현관쪽으로 갔더니, 입구는 건물 왼쪽이라고 해서 급히 가봤는데... 나무그늘 아래로 보이는 건물 옆쪽의 비지터센터 입구의 철문을 잠그고 나오는 공원직원과 마주쳤다~ 시계를 보니까 4:50분... 아직 10분쯤 남은 것 아니냐고 하니까, 일찍 왔어도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건물 내부는 공개하지 않는다면서, 바깥만 마음껏 둘러보고 가라고 공원브로셔 하나만 쥐어주고는 칼퇴근을 하셨다.^^ 당시 예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하나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바로 뒤쪽에 왠지 서늘한 기운을 뿜으며 눈길을 확 끄는 곳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하얀색으로 깨끗하게 만들어진 교수대(Gallows)로, 1873년부터 1896년까지 24년간 86명이 여기서 교수형에 처해졌는데, 그 범죄자들의 이름이 안내판 아래에 순서대로 빼곡히 적혀있다. 단, 법원이 문을 닫은 후에 교수대가 바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지금 보이는 것은 옛날 사진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안내판 속의 인물은 "Prince of Hangman"으로 불리며 저 무대 위에서 올가미를 죄수 목에 걸고 절반 이상의 교수형을 직접 진행했던 사형집행인(hangman)인 George Maledon이다. 누군가가 몰래 찍었던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교수형 집행 당시의 스케치와 설명이 옆 안내판에 있었다. (클릭해서 확대하면 읽으실 수 있음) 우측 위 사진의 Issac C. Parker는 이 법원의 판사로 21년간 재직하면서 160번의 사형선고를 내려서 "교수형 판사(The Hanging Judge)"라는 별명으로 불렸지만 그 중 79명만 실제로 처형되었으며, 당시 살인과 강간 등의 강력범죄 344건의 절반 미만만 사형선고를 했던, 오히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I do not desire to hang you men. It is the law." 이제 강가쪽으로 좀 더 과거의 역사를 찾아서 거슬러 올라가보자. 안내판 제일 아래쪽에 보면 트레일오브티어스(Trail of Tears), 즉 번역하자면 '눈물의 길' 또는 '눈물의 여정'이라고 씌여있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슬픈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 전에 녹슨 화물열차가 서있는 철길을 배경으로 꼭 인물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셔서 잠시 모델을 해야했다.^^ 여기 안내판은 백인들의 미서부 개척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고 눈물의 길 전망대까지는 조금 더 가야 하지만, 빨리 차로 돌아가서 숙소를 예약한 곳까지 또 달려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미국의 20달러 지폐 속 인물인 제7대 대통령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주도로 1830년에 통과된 으로 미시시피 강 동쪽의 고향을 잃고 쫓겨난 원주민들이 저 너머 지금의 오클라호마 땅으로 강제 이주를 해야만 했는데, 아래의 지도를 보면서 그들의 눈물의 여정을 살펴보자. 지도에 다섯 색깔로 그려진 경로를 따라서 표시된 각각의 부족이 1830~50년 사이에 강제로 지금의 오클라호마 주인 Indian Territory로 추방되었는데, 도합 약 6만명의 인디언이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수가 길 위에서 죽었다. 특히 지금의 조지아(Georgia) 주의 북쪽에 모여살던 체로키(Cherokee) 족은 1938년 겨울에 약 1만3천명이 북쪽 육로로 이동을 하면서 혹독한 추위와 기근, 질병으로 약 4천명이나 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당시 인디언들이 눈물을 흘리며 걸었던 길들은 현재 Trail Of Tears National Historic Trail로 지정되어서 국립공원청에서 별도로 관리를 하고 있는데, 여기 미국남부 아칸소 주의 포트스미스 강가에서 위기주부는 처음으로 그들의 한 맺힌 역사를 가까이 접한 것이라서 자세히 소개를 해봤다.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국가유적지(National Historic Site)는 2021년 현재 74곳이 있는데, 여기는 그 중 위기주부가 7번째로 방문한 NHS인 셈이다. 동부로 갈수록 이런 미국의 역사 유적지는 점점 갈 기회가 많아지는 것 같고, 덩달아 포스팅을 쓰기 위해서 역사공부를 해야하는 시간도 늘어나고 있다~ 잔디밭 너머로 왠지 범선의 돛대같은 높은 기둥에 성조기가 걸려있고, 그 아래에 돌로 만든 2층 건물은 1838년에 만들어진 Commissary Building으로 1846~48년의 미국-멕시코 전쟁에서 중요한 보급창고 역할을 했던, 이 공원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지금은 비지터센터로 사용되는 처음 소개했던 막사-법원 건물의 지하는 한동안 교도소(Jail)로 사용되었는데, 좁은 철창 안에 최대 50명까지 한 번에 감금하는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서 "Hell-on-the-Border"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사모님이 안 보여서 어디 가셨나 했더니... 그 '국경의 지옥'으로 끌려가는 사람들을 태웠던 법원의 죄수호송용 마차를 직접 끌고 계셨다~^^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찍고는 서둘러 다시 차에 올랐다. 예약해놓은 숙소까지는 2시간반이나 더 달려야 했기 때문에, 도시 남쪽에 월마트(Walmart)에서 운영하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었던게 신기한 경험이었다. 길은 오치타 국유림(Ouachita National Forest)을 관통해야 해서, 2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유일하게 완전히 깜깜한 산길을 운전해야 했던 날이다.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미국남부 이 숲의 이름은 부근에 살았던 원주민인 워시타(Ouachita) 부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대륙횡단 3일째였던 이 날 9시간45분 동안에 596마일(960 km)을 달려서 최장기록을 세웠고, 3일을 연달아 밤까지 운전을 해서 합계 2,630 km를 이동해 전체 횡단거리의 60% 이상을 벌써 달렸기 때문에, 다음 날은 늦잠도 자고 오전에는 온천도 하면서 좀 쉬어갈 계획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 브릭타운(Bricktown)에서 점심을 먹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추모공원 방문

오클라호마시티 브릭타운(Bricktown)에서 점심을 먹고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추모공원 방문

LA에서 워싱턴DC까지의 대륙횡단 이사 3일째는 텍사스의 북쪽에 있는 오클라호마(Oklahoma) 주를 하루만에 완전히 통과하는 날이었다. 그래서 주도인 오클라호마시티(Oklahoma City)에서 점심을 먹은 1시간여가 관광의 전부였고 여행기도 이 한 편으로 끝나기 때문에, 이 생소한 주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앞서서 글을 시작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현대식 고층건물인가?" 아내가 점심을 먹을 장소로 선정한 오클라호마시티 다운타운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었다. 다운타운 남쪽에 브릭타운(Bricktown)이라 불리는 쇼핑몰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곳에서, 우리는 저 간판에 보이는 텍사델피아(Texadelphia)라는 가게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텍사스'와 '필라델피아'를 합쳐서 가게 이름을 만들었으니까. 그 단어들이 하나씩 들어간 메뉴 두 개에 커다란 생맥주도 한 잔 곁들여 야외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었다. 처음 와보는 미지의 땅에서 잠깐의 여유를 만끽하면서, 마침내 정말 대륙횡단을 하고 있음을 실감했던 당시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다. 레스토랑 옆으로는 브릭타운 운하(Bricktown Canal)가 있어서, 관광객들을 태운 수상택시가 그 물길 위로 천천히 떠다니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뒤로 보이는 조명탑이 서있는 갈색 건물은 마이너리그 야구장인 Chickasaw Bricktown Ballpark인데, 홈팀 이름이 오클라호마시티 다저스(Oklahoma City Dodgers)란다~ 운하를 따라서 쇼핑몰이 있는 곳까지 걸어와서, 빠질 수 없는 커플셀카 한 장 또 찍었다. 오클라호마(Oklahoma)는 1830년대에 남동부에서 여기로 강제 이주된 다섯 부족 중의 하나인 촉토(Choctaw) 원주민의 언어로 '붉은 사람들' 즉 백인이 아닌 모든 인디언들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운하를 건너는 다리 위로도 올라가 보았는데, 뒤로 보이는 것은 미니 골프장이다. 한동안은 강제 이주된 원주민들만 살아서 인디언 준주(Indian Territory)로 불렸지만, 결국은 또 백인들이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서쪽에 오클라호마 준주(Oklahoma Territory)가 생겼고, 결국은 두 지역이 하나로 합쳐져서 1907년에야 미국의 46번째 주가 되었다. 한국 속담에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말이 있는데, 오클라호마에는 "쑤너(Sooners)"라는 말이 있다. 미국정부가 1889년 4월 22일 정오를 기해서, 오클라호마에서 비어있는 땅에 아무나 먼저 가서 깃발만 꼽으면 자기 땅이 되도록 했는데, 미리 알고 빈 땅에 '더 먼저(sooner)' 가있다가 땅주인이 된 사람들을 말하는데 일종의 새치기라고 할 수 있겠다. 지금은 오클라호마 주민들을 부르는 애칭으로, 또 오클라호마 대학교의 미식축구팀을 부르는 말로 사용된다. 반대방향으로도 운하를 따라 좀 걸어보고 싶었지만, 꼭 들러봐야 할 곳이 하나 있어서 주차장으로 돌아갔다. 주의 북동부 중심도시인 털사(Tulsa)는 '20세기 원유의 수도'라고 불리며 석유산업이 성장했고, 텍사스 아마리요(Amarillo)에서 오클라호마시티를 지나서 털사까지 루트66(Route 66) 구간이 1927년부터 최초로 건설된 후에 동쪽으로는 시카고, 서쪽으로는 로스앤젤레스까지 연결이 되어 미국의 '마더로드(Mother Road)'가 되었다. 주차장 옆 건물 꼭대기에 유홀(U-Haul) 이사트럭이 놓여있는게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우리 차의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보고 여행객이라 생각했는지, 지나가던 사람이 토네이도가 불어서 트럭이 저기까지 날려서 올라갔다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잠깐 운전을 해서 찾아간 곳은 오클라호마시티에서 꼭 방문해야 하는 장소로, 미국에 오클라호마 주가 있다는 것이 전세계에 뉴스로 알려진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 사건이 터졌던 곳이다. 1995년 4월 19일 아침에 미국 연방정부 사무실이 있는 오클라호마시티의 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에 폭탄테러가 발생해서 168명이 사망하고 600명 이상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했는데, 이는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미국 영토에서 발생한 가장 심각한 폭탄테러 사건이었다. 추모공원의 서쪽 출입구 역할을 하는 까만 벽에는 아래와 같은 글귀가 위에 새겨져 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We come here to remember those who were killed, those who survived and those changed forever. May all who leave here know the impact of violence. May this memorial offer comfort, strength, peace, hope, and serenity." 안쪽으로 들어가면 동서로 좁고 길게 만들어진 얕은 리플렉팅풀(Reflecting Pool)이 나오고, 그 동쪽끝에도 까만 벽이 세워져 있다. 이 물이 채워진 풀이 있는 위치는 당시에 9층 건물의 북쪽 출입구와 접한 도로가 있던 곳으로,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2톤이 넘는 사제폭발물을 실은 트럭을 주차해놓고 폭파시킨 장소이다. 리플렉팅풀의 남쪽을 따라서 걸어가고 있는데, 오른편으로 보이는 잔디밭이 연방청사 건물이 서있던 장소이다. 그 잔디밭에는 사망자 168명을 상징하는 168개의 빈 의자가 놓여있어서 'Field of Empty Chairs'라고 부른다. 의자는 9줄로 배열되어 있는데 1층부터 9층까지 각 층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각각 새겨져 있다고 한다. 리플렉팅풀의 북쪽에는 당시 폭발로 피해를 입었던 다른 건물을 보수해서 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Museum이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이 추모공원은 참사 5주년인 2000년에 문을 열때는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내셔널메모리얼(National Memorial)에 포함되었지만, 2004년부터는 추모재단의 소유로 운영되고 국립공원청은 협조만 하기 때문에, 현재 NPS 오피셜유닛 423개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동쪽 출입구의 안쪽에는 9:01 시간이 새겨져 있고, 반대편 서쪽 출입구에는 9:03 시간이 새겨져 있는데, 우리는 지금 그 사이의 폭발이 일어났던 순간인 오전 9:02분에 서있는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두 문을 Gates of Time이라 부르는데 9:01은 폭탄테러 이전의 평화롭고 순수했던 시간을, 9:03은 그 후에 치유와 회복이 시작되는 시간을 각각 의미한단다. 풀 북쪽의 박물관은 유료입장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내부를 둘러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빈 의자들을 한 번 더 바라보면서 주차해 놓은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360도 비디오를 찍은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이 야외 추모공원은 24시간 개방을 하며 연간 35만명 이상이 방문을 하고, 미국의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이 되어 있다. 빈 의자들 중에는 작은 의자도 많은데, 168명의 희생자 중에는 건물 안의 탁아소에 있던 영유아가 19명이나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폭탄테러를 일으킨 극우주의자 티모시 맥베이는 2001년 6월에 독극물 주입으로 사형되었는데, 1963년 이후 38년만에 연방정부에서 집행하는 사형이었다 한다. 또한 이례적으로 원하는 희생자 유족들이 모두 볼 수 있도록 폐쇄회로TV로 중계를 했는데, 이는 65년만에 처음으로 일반에게 공개 집행된 사형으로 찬반논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루트66의 가장 유명한 스팟인 텍사스 주의 캐딜락랜치(Cadillac Ranch)를 구경하고 오클라호마 주로~

루트66의 가장 유명한 스팟인 텍사스 주의 캐딜락랜치(Cadillac Ranch)를 구경하고 오클라호마 주로~

1차 대륙횡단 이사의 경로를 짜면서 잠시 고민했던 것이 텍사스(Texas) 주이다. 그것은 댈러스, 휴스턴 같은 대도시 때문이 아니라, 남쪽의 멕시코 국경에 있는 빅벤드 국립공원(Big Bend National Park)을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아래까지는 아무래도 너무 돌아가는 것이라서, 그냥 제일 북쪽으로 통과만 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는데, 아래의 텍사스 지도(?)를 보면 이해가 더 빠르실 것으로 생각된다. 6년전 아리조나-뉴멕시코 여행에서 텍사스를 스쳐 지나가면서 하룻밤 숙박했던 엘파소(El Paso)에서와 같이 모텔의 와플이 텍사스 모양이었다. (글씨는 와플에 찍혀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포토샵으로 넣은 것임^^) 지도를 약 45도 반시계방향으로 돌려서 봤을 때, 제일 북쪽에 사각형으로 툭 튀어나온 '프라이팬 손잡이' 팬핸들(Panhandle)에 있는 아마리요(Amarillo)가 지금 있는 곳인데, 남쪽 빅벤드 국립공원까지는 직선거리로만 약 700 km나 된다. 그래서 텍사스는 나중에 비행기로 와서 렌트카로 돌아보거나, 아니면 언젠가 미국 남부를 다시 횡단할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텍사스 모양의 와플을 맛있게 먹고 모텔을 나왔더니, 요상한 날씨에 아침 무지개가 사진 가운데 멀리 보였다. 전날 어두워져서 그냥 지나쳤던 곳을 찾아가기 위해서 40번 고속도로를 약 10마일 정도 대륙횡단과는 반대방향인 서쪽으로 달려야 했는데, 그 때 기분이 참 묘했다~ 인터스테이트40과 나란히 달리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고, 아내가 손을 흔드는 건너편 너머 멀리 보이는 곳이 이 날 이른 아침의 목적지인 캐딜락랜치(Cadillac Ranch)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0개의 물체가 비스듬히 땅에 박혀서 지평선 위로 솟아있고, 벌써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다도 먼저 와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땅에 거꾸로 박혀있는 것은 모두 1949~1964년 사이에 생산된 캐딜락(Cadillac) 자동차로, 1974년에 앤트팜(Ant Farm)이라는 샌프란시스코의 예술가들이 이 지역의 백만장자였던 Stanley Marsh 3 (이름 뒤의 숫자 3은 로마자 Ⅲ 대신에 사용한 '3세'라는 뜻이라고 함) 후원을 받아서 만든 설치미술이었다. 아침부터 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그 자동차들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하고있는 모습이다... 설치되고 2년정도 지난 1976년에 누군가가 처음 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를 했고, 앤트팜에서는 페인트를 지우기 보다는 그들의 행위도 이 작품의 일부라고 하면서, 오히려 페인트 낙서를 장려(?)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래에 찾아 본 깨끗한 원래의 모습이 보존되었더라면 더 멋있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차들을 거꾸로 박아놓은 이유는 위의 오리지널 사진에 잘 보이는 트렁크 좌우로 돌출되어 있는 캐딜락의 상징인 테일핀(tailfin) 디자인의 진화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제일 앞쪽에 가장 오래된 1949년형부터 마지막 10번째 1964년형 모델까지 연도별로 차례로 설치를 한 것이란다. 그리고, 위 사진의 원래 설치장소는 지금보다 2마일 동쪽의 밀밭이었는데, 아마리요(Amarillo) 도시가 확장하는 것을 피해서 지금의 옥수수밭으로 1997년에 옮겨서 다시 설치를 했다고 한다. 비록 1974년에 '새로' 만들어진 예술작품이지만,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루트66(Route 66)의 여러 명소들 중에서 가장 인기있는 로드트립의 필수방문코스가 되었다. 특히 루트66을 소재로 2006년에 만들어진 픽사 애니메이션 에서는 라디에이터스프링스 마을의 배경이 되는 바위산인 '캐딜락레인지(Cadillac Range)'로 이름을 바꿔서 등장을 하기도 했다. 그 만화영화를 현실에 그대로 재현해서 LA 캘리포니아어드벤쳐 놀이공원에 카스랜드(Cars Land)가 2012년에 오픈했을 때, 디즈니랜드 담당자의 초청권을 받아서 가족이 직접 방문해서 찍었던 사진이다. 뾰족한 바위산처럼 보이는 캐딜락 테일핀의 모습이 확실히 보이는데, 위 사진이나 여기를 클릭하시면 하루에 약 9만명이 위기주부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만들었던 당시 포스팅을 보실 수 있다. 그래서 루트66의 명소들을 찾아다닌 팬의 한 사람으로서, 이 곳은 대륙횡단 방향을 거슬러서라도 꼭 보고 가야했다.^^ 한 때는 빈 스프레이 캔들을 바닥에 마구 버렸다지만, 지금은 사용한 스프레이 캔을 버리는 쓰레기통들이 역시 스프레이 낙서를 뒤집어 쓰고 옆에 놓여있었다. 아마도 저 앞에 가지런히 놓여진 캔들은 스프레이가 좀 남아있지 싶은데 확인을 해보지는 않았다. 제일 앞에서부터 마지막 캐딜락까지 걸어가면서 찍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스프레이를 뿌리고 있는 모습을 보실 수 있다. 아마도 페인트 스프레이를 만드는 회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들 중의 하나가 이 곳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은 아무 의미 없이 여러 사람들이 마음대로 칠한 낙서와 그림으로 덮여 있지만, 가끔은 갑자기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전부 흰색이나 까만색, 또는 핑크색이나 무지개색으로 칠을 하기도 한단다. 물론 그렇게 하는데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무슨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깨끗하게 칠한 위에다가 다시 마구 낙서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라고 한다. 스프레이 캔은 없지만 위기주부도 무언가 뿌리는 자세로 포즈를 한 번 잡아봤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다가 마지막으로 옥수수밭 사이로 들어가서 캐딜락랜치(Cadillac Ranch)의 사진을 멀리서 찍어봤다. 아래에 다시 설명을 하겠지만 아마도 여기를 떠나는 것이 위기주부에게는 루트66과의 작별처럼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주차한 도로를 따라서 조금 더 서쪽으로 가서, 여기 러브스(Love's) 휴게소에서 기름을 넣고 출발하기로 했다. 이 때 텍사스에서의 기름값이 지난 10월에 2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가장 저렴했던 가격으로, 이틀 전에 캘리포니아 니들스에서 할 수 없이 넣었던 5불이 넘던 가격의 거의 반값이었다. 사실 이 Love♥s는 미국전역에 있기 때문에, 진짜로 텍사스에서 꼭 가보고 싶은 휴게소는 따로 있었다. 바로 텍사스를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고속도로 휴게소 체인점인 버키스(Buc-ee's)였는데, 아쉽게도 40번 고속도로에는 없고 댈러스 근처까지 가야만 해서, 역시 다음 기회에 가보기로 하고 텍사스를 떠났다. 40번 고속도로를 정동쪽으로 1시간반 정도를 달려서 처음으로 오클라호마(Oklahoma) 주로 들어섰는데, 여러 주들 중에서 가장 현대적인 디자인의 환영간판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거짓말처럼 고속도로 좌우의 잔디가 점점 파래지기 시작했고, 조금 가니까 웰컴센터(Welcome Center)가 나와서 화장실도 들릴 겸 해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아주 크게 잘 만들어 놓았던 비지터센터의 벽에 그려진 오클라호마 주의 지도이다. 우리는 지금 루트66과 인터스테이트40이 겹치는 Elk City 쪽으로 들어왔는데, 오클라호마시티(Oklahoma City)에서 루트66은 북동쪽으로 갈라져서 세인트루이스를 지나 시카고까지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40번으로 정동쪽으로 달려야 하므로, 이제는 사실상 루트66과도 작별을 해야하는 셈이다. 놀이터에 공룡을 세워놔서 당시에는 그냥 어린이들이 좋아하니까 만들어놓은 줄 알았다. 하지만 찾아보니까 오클라호마도 공룡화석이 제법 나오는 것으로 유명하고, 특히 Saurophaganax라는 육식공룡이 오클라호마의 '주공룡(state dinosaur)'으로 지정되어 있다니까 아마도 그 분인 것 같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커플셀카가 빠진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한 장 보여드리고...^^ 1차 대륙횡단의 3일째,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린 도시인 오클라호마시티(Oklahoma City)의 이야기가 다음편에서 이어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