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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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랜드 맨션(Graceland Mansion)의 엘비스 프레슬리 묘지를 참배하고 멤피스를 떠나 내슈빌로
이삿짐을 싣고 LA에서 워싱턴DC로 떠났던 대륙횡단 여행의 5일째 아침을 맞은 곳은 미국남부 테네시 주의 멤피스(Memphis)였다. 전날 오후에 도착해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4년에 가수로 데뷔했던 녹음실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8년에 암살당한 장소 등을 구경하고도 이 도시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꼭 이른 아침에만 '공짜로' 방문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장소가 한 곳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엘비스프레슬리의 로큰롤 기타인지 아니면 비비킹의 블루스 기타인지는 모르겠지만, 숙박한 모텔이 가운데 수영장을 기타 모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재미있었다. 아침도 거르고는 급하게 짐을 챙겨서 체크아웃을 한 후에 바로 도로 건너편의 그레이스랜드 맨션으로 향했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는 지도와 같이 엘비스가 살았던 커다란 저택의 주변으로 호텔과 전시장 등을 만들어서 입장료를 받고 운영을 하는 멤피스 최고의 관광지이다. 하지만 가장 핵심인 맨션의 내부를 구경하는 투어의 입장료가 현재 성인 $77부터 시작해서, 우리 부부는 그냥 포기하고 전날 밤에 멤피스를 떠나려고 했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도 안내가 전혀 없지만 매일 아침 7시반부터 8시반까지 1시간 동안은 맨션에 있는 엘비스의 묘지는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기 그레이스랜드 바로 아래에 있는 모텔을 예약했던 것이다. 모텔에서 차를 몰고 나와서 Elvis Presley Blvd로 좌회전을 하자마자 도로 오른쪽에 잘 만들어진 주차공간에 차를 세웠다. 거의 정확히 7시반에 주차를 했는데, 이미 우리 앞쪽에 두 대의 차가 도착해 맨션의 정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바로 우리 뒤에도 한 대가 더 주차를 했다. 그런데 앞차의 번호판에 엘비스의 모습이 있어서 자세히 확대해서 봤더니... Elvis Presley Memorial Trauma Center를 후원하는 테네시 주의 공식적인 특별 디자인의 자동차 번호판이었다! 그레이스랜드 맨션의 빨간 벽돌 담장에는 칸칸마다 추모나 사랑의 글귀들이 가득했고, 열려있는 정문의 문짝에도 기타를 치는 엘비스의 모습이 들어가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잘 가꾸어진 잔디밭 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서 조금 걸어 올라가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TV 출연으로 전국적인 대스타가 된 후인 1957년에 당시 약 10만불에 구입해서, 1977년에 욕조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져 죽을 때까지 살았던 그의 집이 나온다. 참, 아내 앞에서 쌀쌀한 아침 날씨에도 불구하고 반바지에 반팔 차림으로 걸어가시는 금발의 여성이 트라우마센터 번호판의 차를 몰고 오신 분이다. 당시 미국은 징병제를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엘비스는 인기가 절정이던 1958년에 일반 사병으로 입대해서 서독의 미군부대에서 18개월간 복무했단다. (예전 한국의 가수 누군가가 떠오름^^) 군복무를 마치고 1960년에 대대적인 환영을 받으며 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주로 영화 출연에 전념했고, 서독에서 처음 만났던 프리실라(Priscilla)와 1967년에 결혼해서 이듬해 외동딸인 리사 마리(Lisa Marie)를 낳았지만, 부인과는 결혼 5년만에 이혼을 했다. 공짜손님인 우리들은 당연히 맨션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고, 그 옆에 만들어진 여기 엘비스 가족의 묘지가 있는 메디테이션가든(Meditation Garden)만 둘러볼 수가 있었다. 원래 엘비스는 1977년 8월 사망 후에 어머니가 묻혀있던 공동묘지에 함께 매장되었지만, 수 많은 추모객들로 관리와 보안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가 멤피스 시의 특별허가를 받아서 바로 10월에 아들과 아내의 묘를 집안의 이 명상정원으로 이장을 한 것이라고 한다. '로큰롤의 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묘지 앞에 선 아내... 바닥에 파란 테이브로 화살표 표시를 붙여놓은 것으로 봐서, 맨션투어를 할 때는 한 방향으로만 지나가면서 잠깐 볼 수 있는 모양이지만, 이 날 아침에 우리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마음껏 이 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가운데 곰인형과 꽃들이 많이 놓여진 것이 엘비스의 묘이고, 그 오른쪽에 차례로 2년 후인 1979년에 사망한 아버지, 엘비스가 군복부 중에 일찍 사망한 어머니의 묘이다. 그리고 이 사진에서 오른쪽 끝에 노란 꽃만 살짝 보이는 곳에 작은 명판이 하나 더 있는데, 사산한 엘비스의 쌍둥이 형을 추모하는 것이라 한다. 또한 엘비스의 왼쪽에도 묘지가 하나 더 만들어져 있는데, 1980년에 90세로 돌아가신 엘비스 프레슬리의 할머니의 묘지라고 한다. 꺼지지 않는 불꽃까지 만들어 놓은 것은 좀 오버가 아닌가 싶었지만, 20세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를 위한 그냥 하나의 장식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런데 비문의 가장 아래쪽 가운데에 번개 모양과 함께 TCB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앞서 보여드렸던 트라우마센터 번호판의 자동차 뒷유리창에도 같은 문양의 스티커가 붙어있다. TCB는 "Taking Care of Business"라는 뜻으로 엘비스의 전속밴드를 포함해서 음악 활동을 가까이서 도운 사람들을 의미하는데, 대부분이 엘비스의 고등학교 친구들이나 군복무 동기 등으로 구성되어서 '친위대'같은 역할을 했단다. 그들은 엘비스가 가는 곳마다 검정색 양복에 선글라스를 끼고 주위에 나타나서 '멤피스 마피아'라고 불렸다고 한다. 위기주부의 18번이 트로트이고, 한국 트로트 계의 대부인 남진이 엘비스의 스타일을 한 때 차용했으니, 본인과도 음악적으로 연결이 된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음악계 대선배님의 묘지를 바라보는 위기주부... ♪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 그렇게 참배를 마치고 나와서 다시 맨션을 가까이서 한 번 바라봤다. 현재 이 집과 대지는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의 단독 소유지만, 주변의 전시장과 호텔을 포함한 전체 그레이스랜드는 전문적인 회사가 상업적으로 운영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입장료가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간 약 65만명이 입장을 해서 화이트하우스 및 허스트캐슬 등과 함께 가장 방문객이 많은 개인소유 주택들 중의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백악관이 개인소유의 주택인가? 이른 아침의 산책을 겸한 관광을 잘 마치고 길가에 세워둔 차로 돌아간다. 미래에 다시 멤피스를 지나갈 기회가 또 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런다고 해도 우리 부부가 비싼 입장료를 내고 굳이 저 맨션의 내부를 구경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Elvis Presley Blvd 도로 건너편으로는 엘비스가 타던 전용 비행기가 세워져서 관광객들을 받고 있는데, 비행기 이름이 딸인 Lisa Marie 이다. 리사마리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과 결혼을 했으니까, 로큰롤 나라의 공주가 팝의 나라 황제와 왕족끼리 결혼을 한 셈인가? 리사에게 마이클 잭슨은 두번째 남편이었고, 세번째 남편은 영화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였는데, 그 결혼 후에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뒤늦게 가수로도 데뷔를 했다고 한다. 테네시 주에서 세워놓은 안내판 뒤로, 다시 손님들을 받기 위해서 정원의 낙엽을 치우는 직원의 모습이 보인다. 그레이스랜드(Graceland)는 연방정부에서 1991년에 국가사적지(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ces) 지정 후, 2006년에는 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등록되었는데, 대중음악과 관련된 곳으로는 모두 미국 역사상 최초라고 한다. 이상으로 거의 '엘비스 3부작'이었던 짧은 1박2일의 멤피스 여행은 모두 마쳤고, 우리는 점심 약속이 잡혀있는 테네시의 주도인 내슈빌(Nashville)을 향해서 40번 고속도로를 다시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멤피스 다운타운의 빌스트리트(Beale Street)와 마틴루터킹이 암살당한 로레인모텔(Lorraine Motel)
미국남부 테네시 주의 서쪽 끝, 미시시피 강변의 항구도시로 세계 최대의 목화 시장인 멤피스(Memphis)를 소개하는 대표적인 말은 '블루스의 본고장'이다. 음악에 문외한인 위기주부도 아는 블루스 기타리스트 겸 가수, 비비 킹(B.B. King)은 1925년 미시시피 주 인디애놀라(Indianola)에서 태어났고 본명은 라일리 킹(Riley King)이었다. 그는 1946년 멤피스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DJ로 활동하던 중 ‘블루스 보이(Blues Boy)’라는 뜻의 ‘BB’라는 별명을 얻었고, 1949년에 멤피스에서 데뷔를 해서 60년 이상 활동을 한 '블루스의 왕(King of the Blues)'이다. 바로 그 '블루스의 본고장(Home of the Blues)' 파란색 사인을 볼 수 있는 곳이 멤피스 다운타운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이다. 사실 여기 Main St 교차로를 찾아온 원래 이유는 빌스트리트 남쪽 작은 공원에 있는 아래의 엘비스 동상(Elvis Statue)을 보기 위해서였다. 대륙횡단 여행기 전편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멤피스에서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데뷔 당시의 젊었을 때 모습을 보여주는 동상이라고 한다. 음악 역사상 최초로 십대 팬들의 광적인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가 된 엘비스의 로큰롤도 직접적으로 블루스 음악에서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흑인 음악을 훔친 백인 가수"라고 비난하기도 했단다. 그리고 동쪽으로 조금 걸어 가보니 왼편의 하드락카페부터 Beale St 좌우로 많은 라이브카페와 레스토랑, 음악 스튜디오 등이 모여있다는 곳이 보였는데, 오른편의 BB King's Blues Club을 시작으로 해서 2nd St 부터 4th St 까지는 보행자전용 도로로 되어있다. 그 가장 중심에서 남북으로 교차하는 도로의 이름인 비비킹 블러버드(B.B. King Blvd)의 표지판이 멀리 보인다. 저기 어디 들어가서 블루스 음악에 맥주 한 잔 곁들여 저녁을 먹으며 오늘을 마무리할까 잠시 고민을 했지만, 사실 둘 다 블루스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또 다른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더 남아있어서 그냥 돌아섰다. 예의상 멤피스 여행기에 사진 한 장은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비비 킹의 대표곡이라는 의 1993년 공연실황 영상을 하나 걸어본다. 비비 킹은 2006년에 대중음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미국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의 메달'을 받았고, 2015년에 그가 89세로 사망했을 때 여기 미국에서는 몇 일 동안 내내 톱뉴스로 보도가 되었다. (2012년에 시카고의 House of Blues에서 비비킹의 공연을 직접 보셨던 요세미티님의 추모 포스팅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그냥 우리는 엘비스 동상 앞에서 셀카나 한 장 남기고 다음 장소로 이동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야기는 '멤피스 여행기 3부작'의 마지막 3부에서 다시 계속해서 들려드리기로 하고, 이 2부에서는 멤피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킹(King)'의 이야기로 넘어가도록 하자~ 다운타운 조금 남쪽에 있는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이라는 곳인데, 오늘 밤 우리가 여기에 숙박하는 것은 아니고... 작은 흑백화면 속의 오른쪽에 서있는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1968년 4월 4일에 암살을 당한 장소가 여기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화면 왼쪽에 마지막으로 함께 서있던 사람은 아직 살아있는 민주당 정치인인 제시 잭슨(Jesse Jackson) 목사이다. 그는 화환이 놓여진 2층 306호 앞에 서있다가 건너편 건물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아서 숨졌다. 일찌기 1964년에 노벨평화상을 받은 세계적인 유명인이었지만, 흑인 청소노동자들이 백인들과 차별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항의하기 위한 파업에 연대하기 위해 멤피스 시를 방문 중이었던 것이다. 그가 1956년 앨라배마 주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이끌어서 승리한 직후에 결성했던 남부 그리스도교도 지도회의(Southern Christian Leadership Conference, SCLC)에서 만들어 놓은 추모 석판에는, 다음과 같이 번역할 수 있는 창세기 37장 19~20절의 말씀, 소위 "꿈 꾸는 자"에 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보라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 그를 죽여서 ...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라" 위 글귀가 추모판에 적힌 이유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마틴루터킹 목사가 1963년에 워싱턴DC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 했던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 때문일 것이다. 위기주부는 1989년에 성문종합영어 장문독해에서 이 연설문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영어자막이 들어간 당시 연설의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참고로 2분 20초 정도부터 "I have a dream"으로 시작되는 부분이 나온다. 한글자막이 들어간 동영상이나 번역문도 쉽게 찾아서 보실 수 있고, 아마도 마틴루터킹의 이 연설은 그 연설장소 부근에 세워진 그의 기념비를 방문한 후에, 블로그에 다시 상세히 소개를 할 기회가 또 올 것이다. 아내가 보고있던 안내판의 왼쪽 가운데에, 그 날 오후 6시 1분에 쓰러져있는 킹 목사와 주변의 사람들이 총알이 날라온 곳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다. (사진을 클릭해서 원본보기를 하시면 내용을 읽으실 수 있음) 바로 길 건너에 오른쪽에 보이는 뒤쪽 빨간 벽돌건물의 열려있는 2층 창문이 바로 과격파 백인단체 소속의 제임스 얼 레이(James Earl Ray)가 총을 쏜 곳이다. 범인은 캐나다를 거쳐서 영국으로 도망갔지만 가짜 여권이 발각되어 미국으로 추방된 후 체포되어서 99년형을 받고 복역하다가 1998년에 교도소에서 70세로 지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킹 목사를 공산주의자로 몰던 에드가 후버의 FBI가 암살을 사주한 것이라는 등의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여기서는 그냥 팩트만 전달을 해드리는 것으로... 이 곳은 암살사건 이후에도 계속 모텔로 운영이 되다가 결국 폐업 후에 1982년에 건물이 철거될 뻔 했지만, 지역 흑인사회 지도자들의 노력으로 국가민권운동 박물관(National Civil Rights Museum)의 일부가 되었다. 여기서 'National'을 국립이 아니라 국가로 개인적으로 번역한 이유는, 이 박물관은 나라에서 세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문을 닫은 후였기 때문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어서 우리도 돌아섰지만, 이 때는 찾는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좀 씁쓸하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1950년대 스타일로 세워놓은 로레인 모텔(Lorraine Motel)의 간판 아래에 'I HAVE A DREAM'과 함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의 영어 첫글자만 모아서 자주 쓰는 표현인 'MLK'가 적혀있다. 그렇게 MLK가 암살당한 장소를 짧게 방문하고, 그 옆의 넓은 주차장에서 뒤를 돌아보니... 어디서 갑자기 나타났는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여기 추모의 공간을 찾아온 것을 보니, 앞서 씁쓸한 마음이 사라졌다~ 미국에서는 그의 탄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1월 세번째 월요일을 마틴루터킹 데이(Martin Luther King, Jr. Day)라는 연방 공휴일로 지정했는데, 올해 2022년은 1월 17일로 정말 신기하게도 마침 이 포스팅을 올리는 날이다! (실제 생년월일은 1929년 1월 15일) 다음날 아침에 여기 멤피스에서 꼭 더 들러야 할 곳이 하나 남았기 때문에,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공항 근처에 숙소를 잡고는 Piccadilly Cafeteria라는 곳에 저녁을 먹으러 왔는데, 굉장히 큰 이 식당에 백인도 거의 없었고 우리 부부 빼고는 전부 흑인이었다. 몇 일 후에 테네시 주에 사는 아내의 친구집을 잠시 방문하게 되는데, 그 친구분 말씀이 특히 멤피스 남쪽은 흑인들이 아주 많은 위험한 동네라서 자기는 절대로 안 간다고... 그래서 약 한 달간 두 번의 미국 대륙횡단을 하면서, 저녁을 먹은 장소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 곳들 중의 하나였다.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 녹음을 한 테네시 주 멤피스(Memphis)의 선스튜디오(Sun Studio)
미국에는 미시시피(Mississippi)라는 긴 이름처럼 실제 길이도 긴 강(river)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영어를 잘 읽지도 못하던 국민학교 시절에 누나들의 사회과부도(요즘도 이렇게 부르는지 모르겠지만?) 교과서의 세계지도를 볼 때부터 기억했던 것 같다... 미서부 LA에서 동쪽으로 향한 대륙횡단 여행 겸 이사의 4일째 오후에, 아주 오래 전부터 내 머리 속에 추상적으로만 들어있었던 그 미시시피 강을 마침내 자동차를 몰고 직접 건너게 되었다. 인터스테이트 40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에르난도데소토 다리(Hernando de Soto Bridge)로 미시시피 강을 동쪽으로 건너면, 환영간판에 붓글씨처럼 적혀있는 테네시(Tennessee) 주가 시작되면서, 시경계의 남쪽이 바로 미시시피(Mississippi) 주와 접해있는 도시인 멤피스(Memphis)가 나온다. 이집트 나일강변의 고대도시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답게 강가에 거대한 피라미드가 보이는데, 1991년에 실내 경기장으로 만들어졌다가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아웃도어 브랜드인 배스프로샵(Bass Pro Shops)의 초대형 매장이 있는 호텔 겸 전망대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단다. 아무래도 미시시피강(Mississippi River)의 지도 한 장은 보여드리고 지나가야 할 것 같아서 네이버 두산백과에서 가져왔다. 미국 50개 주들 중에서 미시시피 강의 유역이 포함되는 주가 31개라고 하니, 미국의 지리를 이해하는데 이 강을 빼놓고는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앞서 보여드린 고속도로 다리의 이름은 1540년 전후로 미국남부를 탐험하면서 미시시피 강을 건넌 기록을 최초로 남긴 스페인 탐험가 Hernando de Soto에서 유래했는데, 그 다리와 멤피스는 지도에서 빨간 '미시시피강' 글자의 두번째 모음 'ㅣ'의 꼭대기 위치라고 보시면 된다. 멤피스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이 도시의 관광에 대해 벼락공부를 했는데, 꼭 가봐야하는 1등 관광지는 이 낡은 빨간 벽돌건물에 위치한 선스튜디오(Sun Studio)라는 녹음실이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대륙횡단 여행의 4일째만에 처음으로 좁은 실내의 관광지에 들어간 셈인데, 남부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잘 착용하고는 있었다. 이 곳은 바로 우측의 커다란 흑백사진 속에 앉아있는 "로큰롤의 왕(King of Rock and Roll)"이라 불린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첫번째 녹음을 하고 음반을 냈던 곳, 즉 전설적인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들어 낸 음반사인 선레코드(Sun Records)가 있던 곳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 날의 마지막 투어만 남겨두고 매진이라는 표시가 앞에 있었다. 하지만, 여직원에게 투어를 하겠다고 하니까 아무 고민 없이 두 장의 표를 더 판매를 했다... 코로나로 기본 투어인원이 줄었기 때문에 추가가 가능했는지?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고 해서 특별히 배려해 준 것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참가자로 스튜디오 투어에 참가할 수 있었다. 1970년대초에 녹음실이 문을 닫은 후에 이 건물은 건축회사, 자동차부품 가게 등으로 사용되다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죽고 10년 후인 1987년에 다시 음악 스튜디오 겸 카페와 기념품가게로 문을 열었다. 그 후 전세계 엘비스 팬은 물론 멤피스를 방문하는 우리같은 일반인들로부터도 큰 인기를 끌어서 최고의 관광지가 되었고, 2003년에는 공식적으로 미국역사유적(National Historic Landmark)으로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자~ 그럼 여기 화장실 문 위에 걸린 사진속에 핫바지를 입고 껄렁한 자세로 서 있는, 포레스트 검프에게서 개다리춤을 배워서 세계적인 대스타가 된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합시다." 그 전에 화장실부터... 커다랗게 걸려있던 흑백사진은 "Million Dollar Quartet"이라고 알려진, 이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즉흥연주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엘비스가 대형음반사인 RCA레코드로 이적하고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하던 1956년 겨울에 우연히 옛날 스튜디오를 방문했다가, 당시 선스튜디오 소속의 다른 가수들을 만나서 즉흥적으로 여러 노래를 함께 다양한 시도로 부르는 것을 녹음한, 락큰롤 역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는 사건으로 동명의 뮤지컬로 만들어지기도 했단다. 카페 내부에도 옛날 LP판과 녹음기계 등등의 많은 전시가 있으므로, 꼭 투어를 하지 않더라도 잠시 들러서 구경할만 했다. 물론 이렇게 좌우의 벽에 가득 쌓여있는 판매용 기념품들이 훨씬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오후 4시반이 되자 밖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긴 줄이 만들어졌고, 차례로 입장을 해서 안쪽의 좁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지난 1년여 동안에 국립공원 등 곳곳에서 거리두기를 해달라는 다양한 사인을 많이 봐왔지만, 이 안내문이 가장 재미있고 딱 맞아 떨어졌다. "Please keep ONE ELVIS apart" 하지만, 사실상 2층 전시실에서의 거리두기는 불가능하게 사람들이 많았다... 이 스튜디오는 프로듀서이자 라디오 진행자인 사진 속의 Sam Phillips가 1950년에 Memphis Recording Service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는데, 당시 흑인들만의 음악이었던 블루스(Blues)를 널리 알리는데 주력해서, 나중에 '블루스의 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 비비킹(B. B. King)도 1952년에 이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 가운데 까만 마스크를 쓴 투어가이드가 계속해서는 아마 이런 이야기를 했을거다... 1953년 여름 어느날, 기타를 멘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는 어머니 생일선물로 드릴 음반을 하나 자비로 녹음하고 싶다고 여기를 찾아왔다. 그 때 사장인 샘 필립스는 없었기 때문에 여직원이 기술자와 함께 그가 두 곡을 부르는 것을 녹음해서 주고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받은 다음에 "좋은 발라드 가수, 꼭 붙잡을 것"이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위의 동영상이나 여기를 클릭하면 당시 녹음을 투어에서 잠깐 틀어서 들려주는 장면을 보실 수 있다.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던 그 청년은 낮에는 트럭운전을 하고 밤에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며 1년이 흘렀고, 1954년 여름에 "흑인 창법으로 노래하는 백인 가수"를 찾던 샘은 그에게 다시 연락을 해 정식녹음을 하면서 라는 곡을 그의 독특한 창법으로 불렀던 것을 7월 10일 밤 9시 30분경에 처음으로 멤피스 라디오로 방송을 하게 된다. 그러자 청취자들의 전화와 엽서가 방송국으로 폭주했고...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가 탄생하게 된다. 이 정도 설명하고 2층의 전시물들을 관람하는 자유시간을 좀 줬는데,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사진 아래에 보이는 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이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남동쪽으로 100마일 정도 떨어진 미시시피 주의 투펠로(Tupelo)에서 1935년에 쌍둥이로 태어났지만 형은 바로 죽어서 외아들로 자랐는데, 집은 아주 가난했으며 아버지가 무능하고 폭력적이라서 모자관계가 아주 돈독했다고 한다. 1948년에 가족이 멤피스의 빈민가로 이사를 했고, 로큰롤을 부를 때의 반항아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고등학교 때는 전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착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엘비스의 고등학교 졸업사진을 보고 있는데, 바로 옆에 계시던 분이 하는 말씀이... 엘비스 왼쪽에 있는 여성이 바로 자신의 숙모, 즉 아버지의 여동생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때 뭔가 알 수 없는 시공간을 거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직접적으로 우리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하면 좀 심하게 과장이겠지? 투어는 1층으로 내려와서 카페 옆의 녹음실로 계속 이어졌는데, 엘비스가 1955년에 매니저를 "Colonel" Tom Parker로 바꾸고 RCA Victor 레코드와 계약하기 전까지의 모든 녹음과, 또 이후에도 앞서 소개한 Million Dollar Quartet을 포함해 다른 몇 번의 녹음을 여기서 했다. 흑인의 블루스에 백인의 컨트리 음악이 섞인 로큰롤이 사실상 여기서 탄생하는 과정을 가이드가 몇 곡의 음악과 함께 설명을 했던 것 같다. 가이드는 로큰롤 특유의 기타사운드를 내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고, 모든 투어를 마치면서 하는 말이... 사진에 파란 모자 위로 보이는 오래된 마이크가 이 곳을 스튜디오로 복원할 때 선레코드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당시 담당자 말이 1950년대에 엘비스가 이 마이크를 잡고 녹음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 원하시는 분은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이렇게 차례로 얌전히 마이크를 잡고 기념사진을 찍으시길래, 저 분들은 엘비스가 저런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신 것 같다는 생각이 좀 들었다. 그래서, 모두 찍으실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수 없이 이 몸이 직접... 가볍게 포즈를 한 번 잡아드렸다~ 엘비스의 개다리춤까지 췄으면 대박이었겠지만...^^ 선스튜디오(Sun Studio) 투어를 마치고 나오니까,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많아서 우리도 한 장 부탁했는데, 둘 다 고개를 왜 갸우뚱하고 찍었을까? 여기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가수로 데뷔한 이야기만 해드렸다고 섭섭해 하지 않으셔도 된다. 앞으로 이어질 나머지 두 편에서도 엘비스의 이야기는 계속되니까, 사실상 멤피스 여행기는 '엘비스 3부작'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다음 편 2부에서는 다른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가 주무대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핫스프링스(Hot Springs)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박물관과 마운틴타워(Mountain Tower) 전망대 풍경
명실상부한 미국 유일의 '국립온천'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부 아칸소(Arkansas) 주에 있는 핫스프링스 내셔널파크(Hot Springs National Park)의 두번째 여행기이다. 참고로 미국의 여러 주들을 묶어서 지역으로 구분하는데는 많은 방법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인구통계국에서 서부(West), 중서부(Midwest), 남부(South), 북동부(Northeast)의 4개 지역으로 나누는 방법이다. 여기 아칸소를 포함한 그 남부의 주들은 사회적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크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지역이라서 "바이블 벨트(Bible Belt)"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칸소 중서부에 인구 4만명 정도의 작은 도시인 핫스프링스(Hot Springs)의 중심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데, 도로 오른편으로 건너가면 바로 국립공원 땅이다.^^ 아칸소 주 첫번째 여행기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미국의 제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Bill Clinton)은 아칸소 남부의 호프(Hope)라는 시골에서 태어나 새아빠를 따라서 여기 핫스프링스로 이사해서 고등학교까지 다녔다. 그래서 이 근처 어디에 빌 클린턴의 얼굴이 크게 그려진 안내판도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찾지를 못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돔이 있는 건물이 우리가 조금 전에 미국 국립온천 엄청난 수질을 체험할 수 있었던 '쿼포탕(Quapaw Baths)'이다. (국립공원에 대한 소개와 온천욕을 하는 모습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해서 1편을 보시면 됨) 이제 그 바로 옆에 있는 다른 온천장 건물에 들어선 국립공원 비지터센터(Visitor Center)를 둘러볼 차례인데, 간판 오른편에 흔들의자에 앉아서 온천을 해서 보들보들해진 손을 흔들고 계신 사모님이 보인다~ 옛날에 포다이스(Fordyce) 온천으로 운영된 건물의 입구로, 국립공원청 직원들이 서있는 뒤로 귀중품을 보관하던 금색의 작은 락커들이 클래식한 멋을 풍겼다. 여러 커다란 온천이 줄지어 서있는 Bathhouse Row에서 이 곳이 1962년에 제일 먼저 폐업을 했기 때문에, 아마도 국립공원 비지터센터로 개조가 된 것 같다. 그냥 국립공원 브로셔만 챙겨서 나올 뻔 했는데, 박물관으로도 운영된다는 것이 생각나서 2층으로 올라갔다. 이 곳의 온천들은 1930~50년대에 그 전성기였다고 하는데, 당시의 여러 모습을 아주 그대로 잘 복원해 놓았다. 마사지실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재현을 해놓았는데, 새하얀 타일과 쉬트들과 함께 흰 천을 덮은 마네킹까지 누워 있어서 처음부터 약간은 으스스한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 여기 치료실의 고압호스와 저 아내가 가까이 목을 대고 있는 스팀캐비넷(steam cabinet)을 보면서는 약간의 공포까지 밀려왔다. 왜냐하면 작년에 봤던 넷플릭스 드라마 에서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한다는 명목으로 사람을 저 스팀캐비넷으로 고문을 하고, 나중에는 저기 가두고 뜨거운 물로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는 정신병원이 아니라 온천휴양지이긴 하지만 말이다... 남자 탈의실의 중앙에는 인디언이 스페인 병사에게 여기 온천수를 바치는 듯한 모습의 동상과, 그 위로는 멋진 스테인드글라스 천정이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다. 여기 포다이스(Fordyce) 온천이 이렇게 가장 럭셔리하고 그래서 이용요금이 비쌌기 때문에, 1960년대 온천문화가 쇠락기로 접어들면서 가장 빨리 망한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개인 마사지실의 모습으로 왼편 테이블에 놓인 것은 처음에는 전화라고 생각을 했는데, 안내판의 설명을 다시 읽어보니 전기를 이용한 마사지 기계라고 한다. 앞서 스팀캐비넷을 봤더니 저 기계도 혹시 전기고문 용도로 사용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이...^^ 여자 탈의실인데 당시 상류층이 이용을 하던 곳이라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각각의 작은 방으로 탈의실이 만들어져 있어서 안에서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올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탈의실의 유령...은 아니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렇게 목만 옆으로 내고 사진을 찍으시겠단다~ 3층으로 올라갔더니 체조연습장같은 마루바닥의 체육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요즘도 수영장이나 스파에는 헬스시설이 있는 것 처럼, 러닝머신이나 웨이트트레이닝 등은 없지만 이런 운동으로 땀을 흘릴 수 있는 공간이 옛날 온천에도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예쁜 타일바닥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여성 휴게실에는 그랜드피아노도 있고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입었던 옷들도 전시가 되어 있었다. 건물 안에는 오래된 엘리베이터도 동작을 하고 있어서 한 번 타볼까 하다가, 밀폐된 공간은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계단으로 걸어서 1층으로 내려갔다. 로비 위에 씌여진 예레미야 30장 17절의 성경말씀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를 보니까, 이 곳이 단순한 온천이 아니었음을 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바이블벨트에 속하는 미국남부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남부에 와있다는 것은 여기 점심을 먹기 위해서 들린 팬케잌 가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영어듣기가 잘 안 되는데 이 동네 사람들이 하는 말은 더욱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물론 더 남쪽의 루이지애나 또는 알라바마 등의 '딥사우스(Deep South)'로 가면 사투리가 훨씬 심해진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아침에 지나갔던 노천온천탕이 있는 Arlington Lawn 잔디밭이 길 건너로 보이는데, 공원 간판이 도로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아침에는 못 봤던 것이었다. 시내 중심가 도로 옆에 세워진 내셔널파크 사인은 다시 봐도 어색하면서 재미있었다. 알링턴 호텔(Arlington Hotel)의 로비에 잠시 들어가서 구경을 했는데, 알 카포네가 단골손님이었고 4명의 미국 현직 대통령이 숙박했던 장소답게 화려하기는 했지만, 역시 쇠락한 분위기가 느껴져서 밤이 되면 유령이 나오기에 딱 좋은 호텔이라는 생각을 하며, 우리가 숙박했던 호텔로 돌아가서 차를 몰고 뒷산으로 올라갔다. 국립공원 영역에 포함되는 산 정상에 이런 전망타워가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약간 의외였는데, 1877년부터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서있던 자리에 1982년에 지금의 높이 216피트(66 m)의 마운틴타워를 새로 만들었다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꼭대기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입장료가 있는데,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보여주면 조금 할인이 되었던 기억이다. 오른편 삼거리의 큰 건물이 알링턴 호텔이고, 거기서 남쪽으로 좁고 긴 배스하우스로우(Bathhouse Row)가 이어지고, 그 끝에 큰 성같이 서있는 옛날 육군/해군 종합병원(Army & Navy General Hospital) 건물이 보인다. 제일 꼭대기 야외 전망대에서는 360도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바람이 아주 상쾌했던 것이 사진으로도 느껴진다. 아내가 두 번의 대륙횡단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들 중의 한 곳으로 꼽았던 남부 아칸소 주의 핫스프링스 국립공원(Hot Springs National Park)... 온천을 하러 다시 꼭 오고싶다고 해서, 만 60세 환갑잔치 대신에 여기 다시 데리고 와주겠다고 했는데, 과연 언제 다시 이 외진 곳을 방문하게 될 지 위기주부도 궁금하다~ 아래층 실내 전망대로 내려오면 잘 만들어진 설명판과 함께 파노라믹뷰로 핫스프링스 지역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다. 아칸소 주는 "The Natural State"라는 별칭답게 사방이 숲이었는데, 이 때가 약간씩 단풍이 들려고 하는 시기였다. 주차장으로 내려가 다시 차에 시동을 걸고 오른편 멀리 보이는 70번 국도를 잠시 거쳐서, 텍사스와 아칸소에만 있는 인터스테이트 30번을 타고 동쪽으로 대륙횡단 이사를 계속했다. 캘리포니아에서부터 시작되는 40번 고속도로를 다시 만나는 주도인 리틀록(Little Rock)에는 주 의사당과 함께 1957년 흑인인권운동의 역사가 있는 Little Rock Central High School National Historic Site 등이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미시시피 강을 만날 때까지 약 3시간을 쉬지 않고 동쪽으로 계속 달렸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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