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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posts토피카(Topeka)의 캔사스 주청사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국립역사공원
반응형 작년 10월에 LA에서 워싱턴DC까지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지나간 주(state)의 갯수는 모두 18개인데, 그 중에서 오클라호마, 아칸소, 테네시, 캔사스, 웨스트버지니아 5개주의 주도(state capital)를 차를 몰고 통과했었다. (30분 이내 거리로 스쳐지나간 미주리 제퍼슨시티와 켄터키 프랑크푸르트를 포함하면 모두 7개주) 하지만, 그 도시들 중에서 주청사를 직접 구경한 곳은 캔사스 주도인 토피카(Topeka) 한 곳 뿐이었던게, 지금 생각해보면 많이 아쉽고 좀 후회도 된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보면 나머지 주들은 주청사 이외의 다른 굵직한 볼거리들이 있었던 반면에, 캔사스 주는 구경거리가 하도 없으니까 커다란 주청사 건물이라도 보고 지나가자고 생각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미국의 50개 주도가 표시된 지도를 찾아봤는데, 딸이 초등학교 4학년 정도에 50개 스테이트와 캐피탈을 학교에서 배우면서, 몇 일동안 함께 생소한 도시 이름들을 외웠던 기억이 난다.^^ 위기주부가 겉모습이라도 직접 본 주청사는 2015년에 뉴멕시코 산타페와 메사추세츠 보스턴, 2019년 콜로라도 덴버, 그리고 작년에 캘리포니아를 떠나기 직전에 방문한 새크라멘토의 4개 뿐이었는데, 대륙횡단을 하면서 불과 단 하나만 더 추가가 된 셈이다. 미본토의 중앙에 있는 캔사스(Kansas)의 주도는 인터스테이트 70번 고속도로가 지나는 토피카(Topeka)이다. 주의회 의사당의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웠는데,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의 벽을 돔지붕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엘리베이터는 바로 광장의 지하로 연결되어 주도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들을 지나서, 주청사 비지터센터까지 바로 걸어갈 수 있었다. 성조기에 그려진 별의 갯수와 같이 캔사스는 미연방에 34번째 주로 1861년에 가입을 하는데, 바로 그 해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다. 새로 연방에 가입하는 이 주를 노예주로 할 것이냐 자유주로 할 것이냐는 문제를 주민투표로 결정한다는 1854년에 통과된 '캔자스-네브라스카법' 때문에, 각각 남북에서 이주해 온 노예제 찬반론자들 사이에 끔찍한 유혈사태가 발생을 해서 '피흘리는 캔자스'로 미국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면서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비지터센터가 있는 주청사(State Capitol) 건물의 1층 중앙홀에 선 아내인데, 머리 위로 돔지붕의 끝까지 보이는 모습이 멋있었다. 한가운데에 서서 올려다 보면 윗층의 동그란 난간을 따라서 8개의 깃발을 꽂아놓은 것이 보인다. 지금의 캔사스 땅을 전체 또는 일부라도 지배했던 세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사진 9시 위치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차례로 영국, 프랑스 왕국, 프랑스 공화국, 스페인, 멕시코, 텍사스, 미국, 캔사스 깃발이 걸려있다. 2층으로 올라오니까 노란 빛을 띠는 내벽과 황동색 철제난간, 그리고 대리석 바닥에 조명이 어우러져서 아주 고급스럽고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4층과 5층의 벽들이 팔각형을 이루면서 그 위의 둥근 돔과 연결되는 것이 특이한 모습이다. '허허벌판' 캔사스에 딱 어울리는 초원의 풍경이 그려진 벽화 등을 지나서 주요 시설의 입구가 있는 3층으로 올라갔다. 먼저 건물 서쪽에 있는 하원(House of Representatives) 본회의장 모습이다. 지금까지 사진들의 등장인물을 봐도 짐작을 하시겠지만, 작년 10월말 주중 목요일에 오후 2시에 주차장에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마주친 다른 사람은 비지터센터에 있던 직원과 경비의 딱 두 명이었다. "하원의장님, 이의있습니다!" 마누라가 우영우 변호사야? 거기 서서 이의있다고 하게...^^ 다른 사람들도 없으니 마스크 벗고 커플셀카 한 장 찍고는 다음 방으로 이동한다. 북향에 있는 주의회 도서관인데 여기도 불은 환하게 다 켜놓고 아무도 없다... "캔사스 주의 공무원들은 다 어디 간거야?" 마지막으로 상원(Senate) 회의실까지 구경을 하고는 다시 중앙홀로 돌아 나갔다. 마치 이 넓은 건물을 둘이서 전세낸 듯한 착각이 들면서, 그냥 지나치지 않고 주청사 구경을 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내려가서 건물 밖으로 나가봤다. 1866년부터 건설을 시작해서 1903년에 완공된 이 캔사스 주청사(Kansas State Capitol)는 워싱턴DC의 미국 국회의사당을 본따서 설계했다고 한다. 전체적인 건물의 크기는 당연히 작지만, 아내가 서있는 광장에서 저 돔 꼭대기까지의 높이는 304피트(93 m)로 국회의사당의 288피트(88 m)보다 더 높다는 것이 포인트다. 이 방향에서 찍은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돔의 꼭대기에 세워진 높이 약 7미터의 동상은 북극성을 향해서 활을 쏘는 칸사(Kansa) 부족 원주민의 모습으로 2002년에야 처음 설치가 되었다고 한다. 캔사스 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동상과 여러 다른 기념물 등의 볼거리가 야외에도 있다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는 관계로 구경을 마치고 지하주차장으로 바로 돌아갔다. 주청사 조금 아래쪽에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국가유적지가 하나 있어서 잠시 들러보기로 했다. 비포장 주차장에 이삿짐 차를 세웠는데, 사모님은 차안에 그대로 계시고 위기주부만 우산도 없이 차에서 내려서 정면에 가로수들 너머로 보이는 건물을 찾아갔다. 1952년에 여기 먼로(Monroe) 초등학교에 다니던 두 딸의 아빠인 Oliver Brown은 토피카 교육위원회에 집에서 가까운 섬너(Sumner) 초등학교로 딸들을 전학시켜 달라고 요청하지만, 그 학교는 백인전용이라서 흑인인 브라운의 딸들의 전학이 거절된다. 당시 미국은 1896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분리하되 평등(Seperate but Equal)"이라는 논리로, 모든 분야에서 흑인과 백인의 이용시설을 분리하는 것이 합법적으로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이 소송은 2년 후인 1954년에 대법관 9인의 만장일치로 기존 판례를 뒤집으며 "분리 자체가 불평등"이라서 공립학교에서 인종에 따른 학교 분리가 위헌이라는 역사적 판결을 내리게 된다. 사실 그런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후 1960년대말까지 이어지는 흑인민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역사적 의미로 이 곳이 1992년에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국가유적지(Brown v. Board of Education Natonal Historic Site)로 처음 지정이 되었고, 위기주부가 다녀온 다음 해인 2022년 5월에 국회에서 통과된 법률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위의 지도에 표시된 1950년대 초 당시에 유사한 소송이 진행되었던 미동부 델라웨어, 워싱턴DC,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학교 건물들이 추가되어서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승격이 되었다. 아내는 차에서 기다리고, 갈 길은 먼데다 빗방울까지 또 굵어져서, 건물 안은 들어가지도 않고 옛날 운동장 옆 건물에 그려진 벽화만 구경하고는 동쪽으로 대륙횡단을 계속했다. 여기 토피카에서 캔사스시티까지의 70번 고속도로 구간은 약간의 통행료를 내야 했는데, 작년 10월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유일하게 이 날 오후에만 통행료가 있었던 것도 추억이다. 대도시권에 들어선데다 빗길의 퇴근시간까지 겹쳐서 오랜만에 차가 밀리는 경험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캔사스시티(Kansas City)라는 이름의 도시는 캔사스 주에도 있고, 바로 인접한 주경계 너머 미주리 주에도 있어서 함께 광역도시권을 형성하지만, 대도시로 고층건물이 있고 프로스포츠팀의 연고가 있는 곳은 여기서 강 건너 미주리 주의 캔자스시티이다. 그래서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고속도로 표지판 사이에서 처음 방문하는 미주리(Missouri) 주의 작은 환영간판을 발견하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토피카에서 여기 캔사스시티까지 1시간이 걸렸는데, 캔사스시티를 구경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쉬지 않고 연달아 2시간반을 더 달려서 저녁 7시에 미주리 주의 컬럼비아(Columbia)에서 2차 대륙횡단의 9일째 밤을 보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의 밸리포지(Valley Forge) 국립역사공원과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
반응형 지난 2015년에 미동부 아이비리그 대학투어 여행을 하면서 펜실베니아 주는 필라델피아만 구경을 했었는데, 동부로 이사온 후로 봄방학 여행 때 처음 다른 몇 곳을 둘러봤다. 펜실베니아는 영국 퀘이커 교도였던 윌리엄 펜(William Penn)의 '신성한 실험'으로 1681년에 건설된 식민지로, 당시 유럽에서 박해받던 모든 신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지상낙원을 만들고자 했단다. 그래서 특히 종교개혁의 중심지였던 독일로부터의 이민이 많았는데, 봄방학 여행에서 둘쨋날 숙박을 한 도시가 '프로이센의 왕'이라는 뜻인 킹오브프러시아(King of Prussia)라는 독특한 이름인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이 곳에 있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Valley Forge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를 아침 일찍 찾았는데, 3월 중순에 밤사이 내린 눈으로 하얀 설경을 보여주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참고로 필라델피아의 위성도시인 킹오브프러시아에는 매장면적 기준으로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쇼핑몰이라는 King of Prussia Mall이 있는데, 사모님께서 나중에 알고는 안 데리고 갔다고 가이드를 나무라셨다~ (4위는 LA지역에 있는 South Coast Plaza로 옛날에 가봤고, 1위는 미네소타 주라서 가망이 없지만, 2위는 뉴저지 주라서 앞으로 모시고 갈 수 있음^^) 거의 문 여는 시간에 맞춰 들어가서 다른 손님도 없고 모든 것이 반짝반짝했는데, 이 비지터센터와 박물관은 우리가 방문하기 바로 전달에 워싱턴의 생일이었던 2월 21일에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새로 문을 열어서 그렇다. 그 생일의 주인공인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이 이렇게 '백마를 탄 왕자님'처럼 위풍당당하게 전시장 입구에 서있지만... 실상은 미국이 필라델피아에서 독립선언을 한 다음해인 1777년 12월 19일에 영국군에게 그 필라델피아를 내어주고 자신이 이끄는 패퇴한 대륙군(Continental Army) 약 12,000명을 이끌고 쫒겨온 곳이 여기 밸리포지(Valley Forge)이다. 패잔병과 함께 불을 쬐면서 돌을 데워서 굽는 빵이 익기를 기다리는 모녀인데, 벽화와 같이 실제로도 밖에 얇게 눈이 덮힌 상태라서 현실감 백배였다~ 당시 필라델피아를 점령한 영국군이 워싱턴을 여기까지 추격하지 않은 이유는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는데, 만약에 그 때 영국군이 계속 여기까지 진격해서 대륙군을 완전히 섬멸하거나 워싱턴을 죽이기라도 했다면 전세계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아무도 모른다고... 추운 겨울 동안에 군대를 주둔(encampment)하기 위해서 나무들을 잘라서 임시 통나무집을 만드는 것을 우리가 도와주고 있다. "이런 조립해서 만드는 일은 내가 잘하지~" 왼쪽 투명상자에 들어있는 샘플과 똑같이 위기주부가 순식간에 한 채 만든 것이 앞쪽에 보이고, 지혜가 만들다가 포기한 통나무집은 아내가 이어받아서 계속 만들고 있다. 약 1,500채의 통나무집을 만들어서 그나마 추위는 피했지만, 식량부족에 전염병까지 돌아서 1778년 봄까지 약 2,000명이 캠프에서 사망했다고 한다. 가운데 벽에 독립전쟁 당시에 사용되었던 무기들을 전시해놓은 것을 지혜가 보고 있는데, 총기류 보다도 칼들이 더 많았고 제일 아래에는 아주 기다란 창도 보인다. 총이 있었다고는 해도 그 때는 서로 코 앞에서 한 발씩 쏘고는 그냥 달려가서 베고 찌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실제 큰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고, 단순히 워싱턴이 총사령관이었던 퇴각한 대륙군이 통나무집만 많이 지어서 겨울 동안 피신했던 장소라면 왜 국립역사공원으로 지정되었을까? 이 뒤쪽으로 그에 대한 전시가 있었지만, 소개영화를 볼 시간이 다 되어서 기념품 가게를 지나서 비지터센터 위쪽으로 나갔다. 비지터센터와 붙어있는 극장은 아직 재단장이 끝나지 않아서, 여기 별도의 건물에서 대형 TV로 봤는데, 이전 여행기에도 말씀드렸지만 정말 역사공원에서는 소개영화를 꼭 봐야된다. 얼떨결에 독립을 한 미국은 대륙군을 소집해서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앉혔지만, 대부분이 전투경험이 없는 의용군이라서 당시 세계최강 영국군에 상대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여기 밸리포지에 주둔하는 동안에 군사고문으로 와있던 프러시아의 전직장교 Von Steuben이 체계적으로 전투하는 방법과 규율을 가르쳤는데, 이 기간의 훈련으로 오합지졸이던 대륙군이 진정한 군대로 거듭났기 때문에 이 곳을 '미군의 탄생지(Birthplace of the American Army)'라 부르며 기념하는 것이다. 진짜 잘 만들었던 소개영화를 보고나서는 차를 몰고 이 곳의 여러 유적지들을 한바퀴 둘러보면 된다. 첫번째로 조금 전에 우리가 만들었던 것과 같은 통나무집들을 재현해놓은 곳을 차로 지나쳤는데, 저기 걸어서 구경하시는 분들은 타주에서 단체로 관광버스를 타고 온 미국인들이었다. 첫번째로 차를 세우고 이 역사공원에서 가장 유명한 볼거리인 내셔널메모리얼아치(National Memorial Arch)를 보러 눈 내린 잔디밭을 걸어가는 중이다. "야~ 파리 개선문이다!" 여기서 겨울을 보내며 단련된 미군이 다음 해 이 밸리를 떠나서 영국군을 추격하기 시작한 6월 19일에 맞춰서, 연방정부의 예산으로 1917년에 워싱턴과 병사들을 위해서 헌정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면 모양은 비슷하지만 높이는 약 18미터로 파리 개선문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Freemason)의 회원이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그래서 이 아치가 1990년대에 전면적인 보수를 할 때 그 자금을 지원한 곳이 펜실베니아 주의 프리메이슨 조직이었다고 한다. 눈 내린 들판 위의 앙상한 나뭇가지... 불과 한 달 전에 펜실베니아는 이런 모습이었는데, 4월 중순인 지금은 들판의 잔디와 나무의 나뭇잎들이 여기 버지니아처럼 모두 무서운 속도로 파래지고 있겠지? 도로 옆으로 멋진 청동 기마상이 나와서 또 워싱턴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차를 세우고 자세히 보니 General Wayne Statue라 되어있다. 동상의 주인은 펜실베니아 출신의 Anthony Wayne으로 당시 워싱턴의 부관들 중의 한 명으로 지역연고를 이용해서 신병모집과 보급을 담당했단다. 조금 더 운전하니까 왼편으로 지붕이 있는 다리가 보이길래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올랐다~ 동부의 옛날 나무다리는 사계절의 변화무쌍한 날씨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지붕을 만드는 것이 일반적으로, 아이오와(Iowa) 주의 매디슨 카운티에 있는 그 다리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다리를 지나가지 않고 계속해서 공원 순환도로를 조금 더 달려서, 강가를 따라 기찻길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차를 세웠다. 미군이 이 곳에 주둔하는 동안 워싱턴이 숙박했던 집인 Washington's Headquarters를 찾아왔는데, 가운데 보이는 것은 기차역이고 그 왼편으로 나무에 가려진 본부가 살짝 보인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봐야 어차피 건물내부는 못 들어간다고 해서, 그냥 여기서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출발~ 마지막으로 차를 세운 곳은 Washington Memorial Chapel로 1921년에 만들어진 기념예배당이다. 가운데 본관은 문을 닫아서 들어가 볼 수 없었고, 오른쪽에 높이 서있는 종탑의 내부만 잠깐 둘러보았다. 1953년에 추가로 건설된 이 종탑의 이름은 National Patriots Bell Tower로 성조기를 이용한 천정의 장식 등 내부 전체가 애국적인 분위기가 팍팍 풍기는데, 특히 예배당과 함께 스테인드글래스 장식이 유명하다는데, 스테인드글래스 그림이 이렇게 워싱턴의 일생이나 독립전쟁 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것으로 미국 독립군이 패퇴해서 주둔했던 장소를 미군의 탄생지로 기념하는 밸리포지 국립역사공원 구경은 마치고, 서쪽으로 1시간 정도 운전을 해서 인터코스(Intercourse)라는 좀 거시기한 이름의 마을을 찾아갔는데, 그 곳은 아래의 옛날 명작 영화가 촬영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위기주부에게는 영원한 인디애나존스이자 한솔로인 해리슨 포드가 주연한 1985년 영화 는 이제 간단히 소개할 아미시(Amish) 사람들의 존재를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린 작품이다. 그 해 아카데미에서 주요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서 각본상과 편집상 2개를 수상해 작품성도 인정받아 옛날 KBS '주말의 명화'의 단골 방영작이었다. 제일 처음에 언급한 것처럼 초기 펜실베니아 주로 독일계 이민자가 많았는데, 그 중에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되어 성서적 생활방식을 고수하는 메노나이트(Mennonite) 교인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새로운 문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아미쉬 공동체로 아직도 전기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는다. 인터코스 마을에서부터 '마차주의' 표지판이 도로에 등장해서 설마했더니, 이렇게 차도 옆으로 까만 마차(buggy)들이 많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주로 농업을 생계로 조용히 살아가기 때문에, 관광지라 부르기는 좀 그렇고 투어를 통해서만 그들의 생활상을 볼 수가 있단다. 그냥 지나갈까 하다가 가장 널리 알려진 투어가 진행되는 곳인 아미시빌리지(Amish Village)라고 씌여진 곳에 잠깐 들러보기로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옛날 모뉴먼트밸리 여행을 갔을 때도 나바호 부족의 생활상을 보는 투어를 할 기회가 있었지만,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있는 모습을 유료투어로 구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그냥 투어는 생략하고 아미시 사람들이 전통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살구잼만 기념으로 하나 사서 아미시빌리지를 나왔다. 그리고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랭카스터(Lancaster)로 가서 점심을 먹었는데, 그 곳의 코스트코에는 이렇게 아미시 마차를 세워둘 수 있는 별도의 주차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제 다시 30번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여를 더 달려서, 2박3일 봄방학 자동차여행의 마지막 방문지이자 가장 중요한 목적지를 이제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뉴베드포드 고래잡이 국립역사공원(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과 포경 박물관
반응형 보스턴에서 워싱턴까지 짧은 봄방학 여행계획을 세우면서 어디를 들러야 하나 참 고민이 많았다. 왜냐하면 캘리포니아에만 9개나 있는 내셔널파크(National Park)가 그 750 km의 경로 부근에는 하나도 없을 뿐더러, 그 아래 레벨의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도 자연의 경치로 지정된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립공원청이 지정한 '다른 국립공원들'은 많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역사와 관련된 곳들이라서, 그 중 몇 곳만 골라서 구경하기로 했다. (물론 경로 가운데 있는 도시인 뉴욕이 최고의 관광지이기는 하지만, 올여름에 몇 번 방문할 기회가 오기 때문에 이번에는 들리지 않았음) 그나마 자연의 경치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라 할 수 있었던 케이프코드 국립해안(Cape Cod National Seashore) 구경을 마치고, 1시간 정도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아직 매사추세츠 주에 속하는 뉴베드포드(New Bedford)라는 항구도시였다. 일단 점심을 먹기 위해서 아내가 검색으로 찾은 '까만고래' 블랙웨일(Black Whale) 식당으로 들어가고 있다. 오전 11시가 좀 지나서 거의 문 열자마자 들어와서 창가에 여유있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서 그랬는지 1시간여 후에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에는 사진에 보이는 자리가 모두 만석이었다는... 시원한 맥주가 한 잔 먼저 나왔다~ 창밖으로는 항구의 풍경이기는 한데, 요트가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는 어업기지(?)의 모습이었다. 최근에 따님과 같이 여행할 때는 먹고 자는데 급을 조금씩 올려보고 있다. "지금은 우리 카드로 계산하지만, 좀 있으면 너 카드로 계산하지 않겠어? 이렇게 미리 급을 좀 올려서 선심을 써놔야 나중에 너가 좋은데 데려갈거 아니야~ 시간 금방 간다." 모녀의 뒤로는 까만 고래 한마리가 지나가고 있다. 점심을 잘 먹고 잠깐 차를 몰고 뉴베드포드(New Bedford)의 구시가지로 왔는데, 도로가 어느 유럽의 뒷골목처럼 돌멩이를 박아서 만들어져 있었다. 왼편에 커다란 '대왕 오징어'가 보이는 곳은 오징어 박물관이 아니라, 그걸 먹고 사는 고래를 잡는 것에 관한 뉴베드포드 포경 박물관(New Bedford Whaling Museum)이다. 비지터센터를 찾다가 먼저 마주친 이 Seaman's Bethel 건물은 1832년에 만들어진 '선원들의 예배당'으로, "Call me Ishmael."로 시작하는 허먼 멜빌(Herman Melville)의 1851년 소설 에 등장하는 장소이다. 내부에는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존 휴스턴 감독 및 그레고리 펙 주연의 1956년 영화 에 등장하는 보트 모양의 설교단(pulpit)이 만들어져 있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작년으로 25주년이 되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뉴베드포드 고래잡이 국립역사공원(New Bedford Whaling National Historical Park)의 비지터센터를 찾았는데, 이 건물도 예전에 은행으로 사용되었던 역사적인 Corson Building이라고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우리를 아주 반갑게 맞아주고, 위기주부가 수집하는 공원 브로셔도 먼저 뽑아서 건네 주었던 직원의 뒷모습이 나왔다. 그가 건넨 브로셔는 2개였는데 다른 하나는 남부 흑인노예들의 탈출을 의미하는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에 관한 것으로, 당시 뉴베드포드가 남부를 탈출한 흑인들이 자유를 얻어서 생활한 대표적인 북부의 도시들 중 하나이다. 지난 연말에 동네 근처 내셔널하버 여행기에서 소개했던 노예제 폐지론자인 프레더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도 자유인으로 처음 뉴베드포드에 정착했고, 앞바다 낸터컷(Nantucket) 섬의 집회에서 1841년의 연설로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서 소개영화를 보기 위해서 극장으로 이동하는 통로의 벽에 아래와 같은 소설 에 나오는 글귀가 씌여있고, 이 항구를 출발한 포경선들이 돌아다녔던 바다들이 표시된 세계지도가 벽에 걸려있다. "For many years past the whale-ship has been the pioneer in ferreting out the remotest and least known parts of the earth." 다른 국립공원은 몰라도 역사공원을 방문하면 비지터센터에서 보여주는 영화를 반드시 봐야 한다. 라는 영화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불을 밝히는데 사용된 고래기름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곳이 여기라고 한다. 왼쪽의 포스터는 영화에도 나오지만 알래스카에서도 제일 북쪽에 사는 부족의 마을까지 가서 고래잡이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곳에 가면 Iñupiat Heritage Center라고 미국 국립공원청 홈페이지에 소개된 가장 높은 위도의 장소가 있단다. 비지터센터를 나와서 Water St와 만나는 정면에는 지금도 은행으로 사용되는 1831년에 지어진 The Double Bank 건물이 신전처럼 우뚝 서있다. 포경업의 전성기이던 19세기에는 뉴베드포드(New Bedford)가 세계 최대의 포경항구였고, 거주민들의 평균소득으로 따져본다면 한 때 '전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the wealthiest city in the world per capita)'였을거라고 한다. 앞서 정면 모습을 보여드린 뉴베드포드 포경 박물관(New Bedford Whaling Museum)의 고래꼬리 조형물로, 국립역사공원 안에 위치하기는 하지만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그냥 지나치려던 곳인데, 아까 친절한 비지터센터의 직원이 박물관 로비를 구경하는 것은 공짜라고 해서 들어가 보았다. 아주 예전에 "미국에서 꼭 가봐야할 '고요하고 놀라운' 아름다움이 있는 10곳"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을 올린 적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낸터컷 섬에 있는 고래뼈가 천정에 매달린 포경 박물관이었다. 비록 그 섬은 비싼 뱃삯 때문에 이번에 못 갔지만, 이렇게 고래뼈는 여기서 원 없이 볼 수가 있었다. 바닥에 놓인 핑크색은 고래의 심장 모형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통과하며 놀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여러 종류 고래의 꼬리 크기를 비교한 전시물 앞에서 아직은 실내 마스크를 한 모녀의 모습이다. 고래의 뼈도 종류별로 매달려 있고, 앞쪽에 보이는 까만 것은 고래의 입과 혀의 모형이었던 것 같다. 로비의 벽에도 많은 전시가 있어서 입장료도 없이 둘러보기가 미안할 정도였는데, 유료인 박물관 내부에는 포경선을 생생하게 재현해 놓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충분해요~" 지혜와 함께 고래들에 관한 기본적인 설명이 씌여있는 안내판을 읽고있는 모습을 아내가 광각으로 찍었다. 옛날옛적 위기주부의 18번이 송창식 선배님의 이었다~ ♪ 술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 뿐이네 ... 자 떠나자 동해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 그런데, 동해를 건너고 태평양을 건너고, 또 대륙을 건너서 참 멀리도 왔다... 갈 길이 멀어서 우리는 다시 출발해 4시간 가까이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 뉴욕 주를 차례로 논스탑으로 지나 뉴저지 턴파이크를 탄 후에야 휴게소에 들렀다. 맨하탄의 스카이라인이 멀리 보이던 휴게소의 이름은 빈스 롬바르디(Vince Rombardi)로 미식축구 우승컵이 바로 그의 이름을 땄는데,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지만 코치 경력을 뉴저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잠깐만 쉬면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는 철지난 봄눈이 조금씩 내리는 고속도로를 2시간 이상 더 달려서, 보스턴으로 올라갈 때는 지나가지 않았던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로 들어가서 숙박을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 주의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
미국의 50개 주들 중에서 '동서남북'의 영어단어가 이름에 들어간 주는 North & South Carolina와 North & South Dakota, 그리고 West Virginia의 딱 5개 주이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의문은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와 짝인 버지니아 주의 이름은 왜 East Virginia가 아니고, 그냥 Virginia일까?"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남북으로 구분되어서 함께 사이좋게 미연방에 각각 가입한 앞의 두 쌍과는 달리, 웨스트버지니아는 미국이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에 남부 동맹(Confederacy)에 속했던 버지니아 주의 북서부 공업지역이 독립해 나와서, 따로 북부 연합(Union)에 새로운 주로 가입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 위기주부가 살고있는 버지니아(Virginia) 주를 중심으로 주변의 다른 주들을 보여주는 지도인데, 북쪽의 웨스트버지니아(West Virginia)와 메릴랜드(Maryland)를 보면 주경계가 마치 직소퍼즐을 끼워서 맞춘 것처럼 특이하게 들쭉날쭉한 것이 보인다. 이사 와서 처음으로 점심 도시락을 직접 만들어서 2월 중순의 나들이를 떠난 곳은 위의 지도에서 그 3개의 주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마을인 하퍼스페리(Harpers Ferry)이다. 그 마을은 구시가지인 로워타운(Lower Town)과 주변의 언덕 등이 모두 1944년부터 하퍼스페리 국립역사공원(Harpers Ferry National Historical Park)으로 지정되어 있다. (한여름에 찍은 구글 스트리트뷰 사진을 가져온 것임) 깊은 산골이지만 연간 5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국립공원이라서 마을 외곽에 1천대를 수용하는 큰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공원 입장료도 차 1대당 $20을 내야 한다. 물론, 우리는 국립공원 연간회원권을 보여주고 그냥 통과~ 날씨가 추워서 차 안에서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비지터센터에서 공원브로셔와 지도를 받은 후에 마을로 들어가는 셔틀버스에 탑승을 하는 모습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즉, 여기는 셔틀버스를 운행하기 위한 주차장이라고 보는 것이 맞고, 실제 역사공원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는 안내소와 기념품 판매 등은 모두 구시가지의 건물들에 나누어져 있다. 로워타운 정류소에서 버스를 내리니 제퍼슨의 말이라는 "Worth a voyage across the Atlantic"과 함께 공원에 대한 소개와 사진이 안내판에 보인다. 강 건너 언덕에서 내려다 본 강물에 둘러싸인 이 마을의 모습은, 아래와 같이 연말에 딸이 선물 받았던 내셔널지오그래픽 <100 Parks, 5000 Ideas> 책에도 전체사진으로 등장할 만큼, 미동부를 대표하는 자연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대서양을 건너와서 구경을 해야 할 정도의 절경은 아니지만, 위와 같이 특히 가을단풍이 들었을 때의 모습이 가장 인기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에 나뭇잎이 하나도 없는 겨울의 끝자락인 2월 중순이었다... 흑흑~ 국립공원청에서 직접 관리하는 구시가지의 건물들은 각각의 용도로 활용되고 있는데, Bookshop과 Fancy Goods 간판이 붙은 건물은 기념품 가게로, 그 옆 건물은 1800년대 소총을 제작하던 공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Industry Museum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너편 두 곳은 돌아오는 길에 들렀고 먼저 도로 이 쪽에 있는 역사를 소개한 전시실을 구경했다. 이 곳은 이름에서 유추가 가능하듯이 1747년에 Robert Harper가 강을 건너는 페리를 운항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난 작은 마을이었지만, 1796년에 사진 제일 왼편의 미국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이 곳에 미군이 사용하는 총기류를 제작하는 병기창을 건설하기로 한다. 상류의 철광석과 석탄을 배로 운송해 와서 두 개의 강이 제공하는 풍부한 수력으로 총을 만들고, 다시 하류에 있는 수도까지 배로 운송하면서 이 곳은 공업도시로 발전을 했다. 그러다가 1859년에 급진적 노예해방론자였던 존 브라운(John Brown)이 (가운데가 젊었을 때, 왼쪽 두번째가 말년 모습) 흑인들의 무장을 위해서 여기 무기고를 습격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는 노예제에 대한 남과 북의 갈등을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결국 1861년에 연방군이 주둔한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섬터 요새를 남부군이 습격하면서 내전이 발발한 것이다. 강가에 주춧돌만 남아 있는 여기가 당시 무기고(arsenal)의 자리이고, 주변에 요새와 건물들의 잔해가 남아있다. 결국 모두 파괴되기는 했지만 병기창과 무기고가 있는데다 지리적 요충지였기 때문에, 남북전쟁 중에 격전지가 되어서 1865년에 전쟁이 끝날때까지 무려 10번 이상 이 곳의 점령군이 바뀌었단다... 역사공부는 일단 이 정도로 하고, 이제 땅끝으로 걸어가 풍경을 감상해보자~ 사진 왼편에서 흘러와 가운데 멀리 흘러가는 누런 흙탕물이 본류인 포토맥 강(Potomac River)이고, 오른편에서 흘러와 합류하는 청록색의 맑은 물이 쉐난도어 강(Shenandoah River)이다. 이렇게 두 강이 합쳐져서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DC로 흘러가므로, 이 곳을 '미국판 양수리'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강물에 의해 끊기기는 했지만 앞에 보이는 언덕들이 블루리지 산맥(Blue Ridge Mountains)이니까, 유명한 존 덴버의 노랫가사가 어쩌면 여기를 말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노래에 대해서는 웨스트버지니아를 처음 밟았던, 작년의 2차 대륙횡단 여행기에서 소개할 예정) 또한 여기는 남부 조지아(Georgia)에서 북동부 메인(Maine) 주까지 연결되는 약 2,100마일의 국가경관로(National Scenic Trail, NST)인 애팔래치안 트레일(Appalachian Trail)이 지나는 곳이다. 특히 안내판에 알 수 있듯이 전체 트레일의 거의 중간에 해당하는 곳이라서 그런지 Appalachian Trail Conservancy 본부 겸 비지터센터가 여기 하퍼스페리에 있다.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우리가 자동차로 건너왔던 버지니아 쪽 다리로 쉐난도어 강을 건너 웨스트버지니아의 이 마을을 통과하고, 다시 이 오래된 철교를 따라 포토맥 강을 건너 메릴랜드 주로 이어진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줬는데, 밖에서도 마스크를 하고있는 이유는 강바람에 얼굴이 추웠기 때문이다. 거기에 필수품인 털모자까지... 이 추운 겨울은 언제 끝나는거야? 참, 뒤로 보이는 로워타운까지도 직접 차를 몰고 올 수는 있는데, 기차역 등에 마련된 공영주차장들도 모두 NPS가 관리하는 곳이라서 공원 입장료 $20을 자율적으로 내는 것이 원칙이다. 철교가 바로 이어지는 터널의 앞에 빨간 신호등이 켜져 있는 것으로 봐서, 오래된 철로지만 지금도 비정기적으로 화물열차 등이 다니는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정면의 바위산을 돌아서 올라가면, 앞서 보여드린 책에 나온 사진과 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절벽 위의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하지만, 하이킹은 우리 나들이 계획에 없었던 관계로 그냥 여기서 돌아섰다. 마을의 오르막길을 따라서 하퍼스페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물인 1833년에 지어진 St. Peter's Roman Catholic Church까지 올라왔는데, 남북전쟁 중에 당시 5개의 교회들 중에서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라고 한다. 지금도 매주 일요일 아침 9시반에 예배가 열린다고 되어 있지만, 우리가 간 오후에는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 옆으로 이 돌계단의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서 언덕 위로 더 올라가면 이 곳의 마지막 구경거리가 나온다. 오른편에 보이는 폐허는 St. John's Episcopal Church가 남북전쟁 중에 파괴된 모습이고, 정면에 보이는 멋진 가정집은 전후 1887년에 만들어져서 1962년까지 개인소유였다가, 지금은 Potomac Appalachian Trail Club에 기증되어서 A.T. 하이커들의 유료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버지니아 출신의 미국의 3대 대통령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1783년에 이 언덕에 올라서 '엄청난 풍경(stupendous scene)'이라고 불렀다는데, 저 멀리 사람들이 있는 곳에 특이하게 놓여진 바위가 제퍼슨락(Jefferson Rock)이다. 참, 제퍼슨 대통령은 미국 2달러 지폐의 앞면 모델인데, 문제는 2달러 지폐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므로, 얼굴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보시기 바란다. 그레이스 켈리를 모나코의 왕비로 만들었다는 행운의 미국 2달러 지폐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일까? 두 개의 납닥한 바위가 원래는 그냥 아슬아슬하게 포개져 있어서, 올라가서 흔들면 위에 큰 바위가 조금씩 움직였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계속 흔들어서 위에 바위가 완전히 굴러 떨어질 상황이 되자, 1855~60년 사이에 동네 사람들이 저렇게 4개의 기둥을 만들어서 받쳐놓은 것이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저 위로 올라가는 것 자체가 국립공원청에 의해서 금지되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 없이, 명당 자리에 앉아서 제퍼슨의 정기를 받는 포즈로 열심히 사진을 찍으시던 여성분~ 여기서 두 강이 합류해서 흘러가는 동쪽 방향으로 바라본 이 모습을 일러스트로 만든 자석과 엽서 등이 기념품 가게에 많이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반대편으로 애팔래치안 트레일을 따라 더 걸어서 마치 쓰루하이커(thru-hiker)인 것처럼 트레일 본부 건물 앞에서 인증사진도 남기고, 차를 세워둔 곳까지 걸어서 돌아갈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냥 아무 말 않고 왔던 길로 돌아서 셔틀버스를 타러 내려갔다. 북스토어 간판을 달고있는 건물답게 기념품가게에는 남북전쟁과 특히 여기서 만들었던 당시 총기류에 관한 책들이 많았다. 미동부에서 "아는만큼 보이는" 여행을 다니려면 미국의 역사공부는 정말 필수라 할 수 있고, 다녀와서 이렇게 블로그에 여행기를 쓰는데도 옛날 LA에 살 때보다 시간이 엄청 더 걸리는데, 이 수고를 알아주시는 분이 계실랑가 모르겠다~ T_T 함께 셔틀버스를 기다리던 다른 분들의 복장을 보니 이 날 우리만 추웠던 것이 아니었다.^^ 다음에 날씨가 풀리고 나무에 잎들이 파랗게 돋아나면, 도시락과 간식을 배낭에 넣어와서 애팔래치안 트레일도 더 걸어보고, 강 건너 언덕의 전망대까지도 올라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위기주부가 5번째로 방문한 미국의 국립역사공원(National Historical Park)인 하퍼스페리(Harpers Ferry) NHP의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리스버그 프리미엄아울렛(Leesburg Premium Outlets)으로 향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