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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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티벹에서 7년 (영화 2~2)
오스트리아 친구와 이별을 앞 둔 달라이 라마입니다 포탈라 궁 안 입니다 1960년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망명을 떠났는데 10만 명의 티벹 지도층과 지식인들 그리고 티벤 인민들이 함께 갔습니다. 인도의 배려로 만들어진 티벹 난민촌은 국경과 가까운 산자락에 위치하는데 티뱉 임시정부 청사도 있고, 난민들의 자활을 위해서교육도 시키고 있는데 주로 카펱 짜기, 수공예품 만들기 등으로 자력으로 난민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1989년 달라이 라마가 그동안 중국과의 관계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를 갈구했던 활동 등을 높이 평가하여 노벨평화상을 수여받게 됩니다 14대 달라이 라마의 즉위식이 열립니다. 티벹 국가원수로 추대가 되고 절차에 따라 의식이 엄중한 분위기에서 진행 됩니다 티벹 라마교 신도들도 달라이 라마에게 축복을 올리며 예를 표 합니다 이 자리에는 오스트리아 주인공의 얼굴도 보입니다 친구가 티벹의 전통 소유차(酥油茶 여기서는 버터 차라고 했음)를 따라 줍니다. 티벹인들이 하루에도 여러 잔의 소유차를 수시로 마시는데 야크 버터와 차 그리고 우유를 섞어 만드는데 입에 잘 안맞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싸를 떠나게 된 주인공입니다 이별을 하는 자리에서 첫 잔은 떠나가는 친구에게 내고 다음 잔은 그대로 두는데 친구가 돌아와서 마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을 합니다 티벹 라사에 함깨 와서 7년을 함께 시간을 보낸 오스트리아 친구와도 이별을 해야 합니다. 이 친구는 라싸에서 결혼을 하고는 계속해서 라싸에 티벹 부인과 함깨 머물기로 했습니다 친구의 티벹 부인 얼굴입니다 친구 내외가 오스트리아로 혼자서 떠나가는 친구의 뒷 모습을 보면서 전송하는 장면은 보는 이의 마음을 애잔한 마음이 들게 합니다 혼자서 떠나가는 주인공 뒷 모습 입니다 포탈라 궁에서 어린 달라이 라마와 7년이란 세월을 함께 하면서 어떤 친구보다도 가까운 사이가 되었으니 그동안에 많은 추억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주인공과 달라이 라마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이 사진은 명장면이라고 생각 됩니다 , 달라이 라마가 " 고난 없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 바란다"고 오스트리아 친구에게 이별을 앞두고 말을 합니다 궁 밖에는 탱크와 대포 그리고 무장한 군인들이 오성기 깃발 아래에서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습니다 1950년 인민해방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이 때 사망한 티벹인이 100만 명이 넘었으며, 6천 개 이상의 사찰들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티벹 역사와 문화의 유산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포탈라 궁을 나설 때 쿤뚠이 보낸 선물을 받아들고 떠나는데 쉽게 발걸음이 떼지지 않는 모습입니다 오스트리아에 돌아 왔습니다 7년만의 가족과의 상봉인데 아들은 이미 거의 성인으로 훌쩍 자란 모습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주인공은 아들과 함께 눈 덮인 알프스 산을 오릅니다 저 알프스 산맥 너머에 히말라야 산맥이 있고, 그 산 자락에 포탈라 궁이 있는 라싸가 있습니다 티벹의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티벹에서 7년 (영화) 2~1
“티벹에서 7년(Seven Years in Tibet"이란 영화가 있는데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주인공은 달라이 라마와 옛 친구로서 가깝게 지낸다고 했습니다영화의 배경과 이야기를 간략히 소개를 합니다 영화 소개에 앞서 영화의 내용 이해를 돕기 위해서 티벹의 역사 소개를 먼저 하기로 합니다 7세기에 송찬감포가 등장하면서 티벹은 그동안 여러 작은 왕국으로 쪼개져 있던 것을 토번(土蕃 지금의 티벹)으로 통일하여 막강한 나라를 세웁니다 당나라에서는 막강해지는 토번국에 대하여 군대를 보내 더 강해지기 전에 정리를 하려고 합니다. 송찬감포는 오히려 장안의 경계가 누슨해진 틈을 타서 수도인 장안(長安 지금의 西安)까지 진격을 합니다. 화들짝 놀란 당나라 황실에선 송찬감포에게 화친을 내걸고 문성공주와 결혼을 시키겠다고 회유합니다. 송찬감포는 이 조건을 받아 들이고 군대를 돌려 라싸로 돌아 갑니다. 라싸로 돌아 온 송찬감포는 문성공주를 맞이 하기 위래 조캉사(大昭寺)를 대대적으로 확장 보수 공사를 시작 합니다 불교가 티벹에 전파 된 것은 3세기입니다. 인도에서 수입된 탄트라 불교의 밀교적 행위와 결합되어 티벹 불교로 진화해 왔습니다. 1641년에는 겔룩(格魯 황모)파가 라이벌이던 닝마(寧瑪 적모)파를 물리쳤습니다. 황모파의 지도자는 달라이 라마입니다 티벹에서는 달라이 라마가 모두 지난 번 라마의 환생으로 간주 합니다. 달라이 라마가 죽으면 승려들이 전임자의 영혼을 구현한 징후를 보이는 새로 태어 난 아이를 찾아 전국을 다 뒤져서라도 찾아 냅니다 1911년 청나라가 망할 당시 티벹은 사실상 독립을 획득했고 1950년까지 이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1950년 중국은 “해방”이란 기치를 내걸고 티벹 라사로 탱크와 대포를 알 세우고 침공을 했습니다. 티벹에서의 7년(Sevem Years in Tibet) 영화의 내용 일부를 발췌해서 여기에 올립니다 티벹 남성들이 전통 복장에 모자를 쓰고 말타고 있는 모습입니다 달라이 라마가 어렸을 적의 수행 모습입니다 “어차히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하지 못할 일은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달라이 라마의 말입니다 7년이란 세월을 티벹 라사의 포탈라 궁에서 머물면서 아린 달라이 라마에세 영어와 수학,과학,지리,천문학 등 다양한 산 지식을 가르쳐 준 오스트리아의 젊은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달라이 라마가 국가원수로 추대되어 즉위식을 가지는데 즉위식이 끝나면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돌이가서 가족과 7년만의 상봉을 하게 됩니다
티벹 라싸에서 순례길은 세 가지, 상가 거리인 바코르
조캉사에서 “낭꼬“라고 하는 짧은 순례의 길을 돌아 봅니다. 순례자들이 한 손에 마니차를 돌리면서 시계방향으로 걸어 가는 길을 따라가면서 사찰 안을 구경 합니다. 티벹 사람들은 사찰을 찾아 갈 때 대개 야크 버터(촛불에 사용하는 기름)와 향, 신성하다고 생각하는 물을 공양하며, 필요한 곳 마다 마음이 담긴 적은 돈을 바치곤 합니다. 비록 적은 돈이지만 공양으로 바칠 곳이 워낙 많아서 티벹인들에겐 결코 적은 돈은 아닐 것 같습니다 문성공주가 장안에서부터 가져 온 큰 불상은 사진 찍기가 금지되어 있어서 그냥 눈으로만 보고 자리를 뜹니다 순례자들이나 중국 관광객들은 조캉사를 “낭꼬”로 돌고 나면 좀 더 크게 돌기도 하는데 “파코”라고 하며, 포탈라 궁 주위로 크게 하여 도는 것은 “링꼬”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행자들은 이 세 가지의 순례길을 다 따라 갈 수는 없겠습니다 조캉사를 나오면 바로 넓은 광장이며 그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바로 유명한 “바코르”(八角街)로 연결됩니다 라싸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는데 구시가지 특히 바코르엔 주로 티벹인들이 상점이나 노점상에서 티벹의 특상품을 진열해 놓고 팝니다. 물건 값은 다소 비싸게 호가를 하므로 살 물건에 대하여는 값을 흥정해서 잘 깎아야 합니다. 성지인 라싸라고 해서 상인들 마음까지 순수하지는 않습니다 ~ 티벹의 특산물로는 야크 털로 짠 모자, 담요, 야크 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장화, 마니차, 진주, 고산 차(茶) 등이 있습니다 신시가지는 한족들이 정부의 지원하에 지어 놓은 새 주택으로 이주를 하게 해서 뉴타운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여행자들에게 티벹에서의 볼거리는 대부분이 구시가지에 몰려 있으며, 신시가지로는 식사 때 방문하곤 합니다 라싸에서의 볼거리 중 하이라이트는 역시 해발 3200m의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포탈라 궁입니다. 조캉사와는 10km 떨어져 있어서 차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포탈라 궁 전경 입니다 조캉사 출입구 근처는 순레자들과 신도들로 항상 붐빕니다 바코르(八角街 중국어로는 빠지아오지에이지만 바코르가 주로 통용됨 ) 입구부터 어느 길이나 사람들로 붑빕니다 티벹에서는 모자 쓴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높은 해발에 위치하고 있는 곳이어서 하늘과 가까워서인지 직사광선이 무척 따갑게 느껴 집니다. 선글라스도 휴대하면 좋습니다 티벹의 진주(珍珠)도 유명세를 탑니다 마니차 입니다 티벹의 가면 입니다 오색의 헝겁에는 소원을 적은 글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데, 이런 것은 "타르초"라고 하며, 몽골 여행에서도 쉽게 볼 수 있으며 중국 사천성의 구채구에 가서도 또는 라마식 불교 사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할머니들이 걸으면서 마니차를 열심히 돌리고 있습니다
조캉사(大昭寺)와 문성공주(文成公主)
조캉사(大昭寺)와 문성공주(文成公主) 조캉사는 티벹인들에겐 성지로 여기는 사찰로서 문성공주가 장안에서부터 가져 온 큰 황금 불상이 봉안 된 이래 부처님의 자비와 문성공주의 은덕으로 더욱 티벹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담겨 있는 사찰입니다 문화혁명 시기에는 불교 탄압이 극심하여 많은 유물들이 난동을 피우은 홍위병들에 의해 마구 파손됨은 물론 사찰 경내를 돼지우리로 만들어 많은 수모를 안겨 주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조캉사를 둘러보게 되면 사라지고 없는 유물의 자리에 서 모사품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조캉사는 아침 6시에 출입문을 여는데 이 때 밖에서 기다리던 신도들이 와르르 입장을 합니다 . 입장을 한 신도들은 한 손에 든 마니차를 돌리면서 모두 한결같이 시계방향으로 걷습니다. 따라서 여행자들은 이들 신도나 순례자들의 걸음에 방해가 되는 시계 역방향으로 걸으면 이들과 맞부딛히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조캉사를 구경하면서 불상들이 있는 내부를 사진에 담는 일은 금지되고 있습니다. 감시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진을 찍게 되면 주변의 티벹인들이 바로 고발을 합니다. 티벹에서는 티벹인 모두가 티벹의 문화 전통을 지키려는 감시자라는 점을 미리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조캉사의 외모 입니다 당나라와 토번 왕국(티벹)이 맺은 화평협정 기념의 당번회맹비(唐蕃會盟碑)가 조캉사 맞은편에 있습니다 또한 당과 토번의 관계를 삼촌과 조카의 사이라고 만들어 세운 비가 출입이 통제되어 있는 담장 너머에 보이는 것을 제 사진에 담아 블로그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대 이 삼촌과 조카 사이룰 나타내는 비 뒷면에는 옛날 새겨 놓았던 글이 모두 지워져 있었습니다 ~ 티벹 식의 음식을 파는 레스트랑 입니다 "툭바"라는 티벹의 전통 국수이며 아래는 대개 함께 나오는 밥 입니다.
청해성 시닝(西寧)과 티벹 라싸의 칭짱(靑藏청장 )기차
청해성의 성도인 시닝(西寧)에서 출발한 기차는 히말라야 산맥의 해발 5000m의 고지대 탕꾸라(唐古拉)를 넘어서 달립니다. 저녁에 출발하면 다음 날 아침에 도착합니다. 저는 2008년 7월 라싸에서 저녁에 출발하여 다음 날 새벽에 시닝에 도착하는 일정을 보냈는데 철로의 경사가 매우 완만해서 고산지대를 달리고 있다는 느낌은 별로 오지 않았습니다 기차는 꺼얼무(격이목) 역에서 잠시 멈추지만 침대칸의 객차 문은 열어주지 않기 떼문에 승객들은 잠시라도 밖에 나가지 못합니다. 아마도 고산지대여서 승객이 내렸다가 의외의 사고가 날까봐 출입을 통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티벹의 라싸 역사 안 입니다 라싸에서 승차 할 때 역사 밖에서 미리 안전검사를 철저히 합니다. 인화질물에 대하여 검사가 철저 하여 여성들의 액체형의 화장품 특히 향수 등을 미리 큰 짐 속에 넣지 않고 헨드 백에 넣은 경우는 무조건 압수를 하니까 여성분들은 특히 유념해야 합니다 창 밖으로는 여름일지라도 만년설에 덮인 히말라야 산맥 줄기가 계속 이어 집니다 이 청장기차는 총 길이가 2000km이지만 일차로는 1984년에 시님~꺼얼무 구간이 먼저 개통되었고, 난공사였던 꺼얼무~라싸 구간은 2006년에 개통되었으니 저는 전 구간이 개통된 다음 2008년 7월에 청장기차를 탔으니 비교적 일찍 경험을 한 셈이지요 ~ 창 밖으로 보이는 푸른 물은 중국에서 염수호로는 가장 큰 청해호(靑海湖) 입니다 해발 3205m의 고원지대에 길이 70km, 폭30km의 큰 호수인데 이곳 모래 밭 위에서는 승마나 사막 자동차를 타거나 또는 호수 위를 모터 보트를 타고 30문 가량 신나게 달릴 수 있습니다 꺼얼무 역에서는 잠시 정차를 하는데, 고산을 넘어가야 하므로 동력 보충을 위한 기관차를 하나 더 달게 됩니다 l 이 청장기차는 라싸에서 베이징까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라싸에서 승차한 일반 관광객은 시닝에서 거의 대부분이 하차를 했습니다 라싸 역사 안 입니다. 이곳에서 시닝으로 가는 승객들이 타거나 시닝에서 온 여갯들이 종착역으로 내리는 곳이기 떼문에 다른 중국의 역사들처럼 사람들로 붐비지 않습니다 티벹 사람들이 성지로 여기는 조캉사(大昭寺) 입니다 전형적인 티베트의 주택 입니다 포탈라 궁은 시내와 10km 떨어져 있습니다 여행자들은 라싸에 도착하고 첫 날은 가볍게 하궁(夏宮) 등 높지 않은 곳을 가볍게 구경 하면서 현지의 고지대에 적응을 합니다 따라서 포탈라 궁은 라싸 도착 다음 날 구경하게 됩니다 ~ 라싸 도착 첫 날은 술은 마시지 않는 것이 좋으며, 샤워는 하지 않도록 주의를 주는데 아마도 고산지대에 와서 감기라도 걸리면 티벹 여행 시작도 하기 전에 고산증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 염려가 되기 때문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