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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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 posts포털 다음 분사 이후 티스토리와 다음 모두 서비스 종료가 예상된다
이순신 장군님 야후는 다음이 물리치겠습니다라고 시작한 포털 다음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일이 얼마 안 남은 듯합니다. 당장은 아니고 10년 후가 될 수도 있지만 확실한 건 사라질 것이 확실해 보이네요. 누가 포털 다음을 인수하겠습니까? 구글 아니면 국내 기업 중에 포털 다음을 인수하려고 하는 기업이 나올까요? 다음은 카카오의 우회상장 도구였을 뿐 키울 생각도 없었다 어제 뉴스를 보니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분사한다고 하는 뉴스가 떴네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할 것이라고 예상을 했습니다.왜냐하면 2년 전인가 카카오가 포털 다음과 티스토리 그리고 브런치를 사내 독립 기업으로 뭉쳐서 내팽개 칠 때부터 알아봤죠. 뭐 말로는 소통과 결정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함이라고 위장을 했지만 까놓고 말해서 버릴려고 뭉친 것 아닌가요? 뭉쳐 놓아야 버리기 편하니까요. 솔직히 카카오가 다음을 인수한 건 우회 상장의 도구로 활용한 것이죠. 물론 카카오와 다음의 시너지 효과를 내려고 # 검색이나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콘텐츠 큐레이팅 서비스를 카카오와 연동하려고 시도했지만 다 망했습니다. 지금 카카오와 다음의 시너지가 뭐가 있나요? 티스토리 같은 경우는 카카오 기본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정도죠. 이런 식이면 갈라서는 게 더 낫고 실제로 분사 시켜서 버린다고 하네요. 뭐 버리는 것이야 예상을 했지만 웃겼던 건 카카오가 AI와 카카오톡에 집중한다네요. 카카오가 AI를? 수준 떨어지는 AI 기술력으로 무슨 AI을 외치는지 모르겠네요. 카카오가 시도하던 수 많은 AI 서비스 다 숨겨 놓았습니다. 세상 부끄러운 수준의 AI 기술력에 한숨만 나오더라고요. 2024년 월드IT쇼에 나온 카카오 기술력을 보면서 이런 걸 자랑이라고 공개하나 할 정도입니다. 너무나도 기초적이고 수준 낮은 AI 기술력에 카카오 주주 속임용 기술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습니다. 올해 카나나라는 AI를 선보인다고 하는데 아주 조악한 수준으로 나올 것이고 시장에서 외면받을 겁니다. 카카오는 앞으로 서서히 침몰할 배입니다. 기술력도 도덕성도 아주 낮은 기업으로 이런 기업은 하루 빨리 망하는 것이 한국 IT 산업의 거름이 될 겁니다. 카카오가 포털 다음을 키울 생각이 있었을까요? 카카오가 다음을 점령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각종 다음 서비스를 종료하는 거였습니다. 다음 클라우드, 다음 TV팟, 다음 키즈 등등 수많은 서비스를 종료시킨 점령군이 카카오입니다. 카카오가 이후 한 일은 자회사를 분할 상장하는 아주 쓰레기 같은 짓만 했고 수 많은 개미 주주들이 큰 피해를 받았습니다. 이번에 상법을 개정하는 주된 이유가 카카오 같은 악덕 기업의 분할 상장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역대 가장 쓰레기 같은 IT 기업이 카카오이고 그 우두머리인 김범수는 악덕 사업주의 표상입니다. 지금까지 멀쩡하게 다음 메일을 사용하던 다음 아이디를 사용하던 사람들은 강제로 카카오 ID로 변경해야 했는데 단물만 빨아먹고 버리는 것을 넘어서 막대한 피해를 주고 떠나네요. 분사되면 다시 카카오 ID 버리게 해야 하는데 이걸 누가 할까요? 다른 기업이 인수한다면 모를까. 다른 어떤 기업도 포털 다음을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있다면 구글 코리아인데 이 회사가 한국에서 이런 누더기가 된 서비스를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포털 다음이 망하는 이유! 현재 포털 다음은 카카오의 콘텐츠 CIC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카카오 브런치, 티스토리, 다음 카페, 포털 다음이 있습니다. 다음 웹툰이 든든한 캐시카우였는데 이걸 카카오가 낼름 먹어서 카카오 엔터에 넘겨 버렸습니다. 알짜배기 서비스는 카카오 보약으로 들어가고 쭉정이만 남은 것이 현재 콘텐츠 CIC입니다. 오히려 카카오 브런치같은 수익이 일도 안 나오는 천덕꾸러기를 떠안고 있죠. 이 콘텐츠 CIC를 이끄는 수장은 수시로 바뀌었는데 현재는 양주일이라는 분이 이끕니다. 네이버 출신인데 이분의 행한 일이 다음을 멸망하는 지름길로 안내하고 있네요. 몇 달 전 다음은 로고를 장례업체 로고로 바꾸었습니다. 시커먼 색으로 바꾸고 숏폼을 늘리고 콘텐츠 및 버티컬 콘텐츠 앱으로 변신시켰습니다. 다음 앱을 삭제한 지는 1년 이상되었고 가지도 않는 포털이라서 뭘 어떻게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지만 예상보다 폭망 속도가 아주 가파른 걸 보면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다음을 외면하나 봅니다. 1. 대형 커뮤니티 글이 침투한 후 추락하는 다음 검색 점유율 다음은 포털 서비스와 동시에 네이트까지 사용하는 검색 서비스 업체이기도 합니다. 한때 30%까지 올랐던 다음 검색 점유율은 꾸준히 내려다거니 이제는 최후의 마지노선인 3%까지 붕괴한 2.74%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추락했는지 빙 검색보다 낮습니다. 이 정도면 망했다고 봐야죠. 2005년 경부터 다음이 너무 예뻐서 못나도 꾸준히 쓰던 저도 이제는 다음 검색을 사용하지 않는 걸 보면 다음이 참 검색 품질이 이제는 못 견딜 수준까지 올라왔네요. 가장 싫은 건 다음 검색에는 극혐하는 디씨인사이드나 각종 말 많은 우익화 된 대형 커뮤니티 글이 검색이 됩니다. 심지어 욕설이 담긴 글도 검색 상단에 노출을 하는 모습에 항의까지 했네요. 이제는 항의도 안 합니다. 하던 말든 망하든 말든 신경도 안 씁니다. 2. 뉴스 댓글 개편 및 아고라 같은 정치색 빼기가 오히려 악재가 되다 네이버 뉴스 댓글 보면 험악함에 치를 떨게 됩니다. 상식적인 댓글은 없고 무조건 문재인 이재명 비판하는 댓글이 베스트에 오릅니다. 이미 네이버는 극우가 점령한 포털입니다. 네이버는 이런 걸 방치하고 있습니다. 방치해도 좋습니다. 진보 세력은 다음 뉴스 댓글이 있고 실제로 다음은 2000년대부터 2017년 전후까지는 진보 세력의 아지트였습니다. 그 대표주자는 아고라였죠. 수 많은 정치 이슈글을 올리고 토론하는 말 그대로 민주주의의 성지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카카오 점령군이 아고라를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뉴스 댓글도 정치색 묻는 거 싫다면서 거의 삭제했습니다. 있으나 마나 한 포털 다음 뉴스 댓글을 보면 이게 뭔가? 하고 현타가 오다가 이제는 사용 안 합니다. 포털 다음은 진보로 남았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보 성향의 유저들이 모입니다. 지금 다음은 진보 성향 유저들마저 떠나 버렸습니다. 그러니 검색율이 2%대로 추락하고 계속 사용시간이 추락하다 못해 이제는 앱 사용 시간에서 10위 밖으로 밀려난지 꽤 오래되었습니다. 이런 서비스가 안 망하는 게 신기할 정도로 폭싹 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망테크를 가속하는 것이 현재의 다음 운영진과 대표입니다. 로고를 바꾸고 숏폼 시대에 전문 콘텐츠 생산자업자들을 모시고 앞으로는 검색 결과에도 반영한다고 합니다. 다음이라는 뜻 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 운영하고 있네요. 다음은 다양한 소리를 듣는 포털인데 업자들의 목소리만 담는다? 자신들의 이름의 뜻조차 모르는 무지렁이들이 운영하고 있네요. 티스토리의 미래? 종료를 대비해야 한다 포털 다음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티스토리 서비스도 종료될 겁니다. 아니 그 전에 사라질지도 모르죠. 국내 TOP10 안에 드는 트래픽 유발 지수가 높은 티스토리이지만 망하고 있습니다. 먼저 수익이 크게 줄었습니다. 얼마나 줄었는지 제가 운영하는 네이버 블로그 수익보다 줄었습니다. 구글은 티스토리 블로그보다 네이버 블로그를 우대하고 있습니다. 각종 AI 툴로 쓴 글이 범람하는 정보 쓰레기통이 된 티스토리 도메인보다 네이버 블로그가 더 낫다고 판단한 결과죠. 격세지감이네요. 구글 + 티스토리 + 애드센스 삼각 편대가 한국 검색 시장을 뒤흔들던 2010년 그 시절이 참 그립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요. 그래서 각종 제품 리뷰 요청이 티스토리보다는 네이버 블로그 쪽으로 오네요. 티스토리 서비스는 망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합니다. 워드프레스도 좋고 네이버 블로그도 좋습니다. 어디든 대비를 해야 합니다. 전 서비스 종료하면 제 네이버 블로그로 이전할 생각입니다. 워드프레스가 수익은 더 높을 수 있지만 운영하기가 너무 번잡하고 복잡합니다. 또한 불편하고요. 차라리 네이버 블로그에서 명성을 쌓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입니다. 또한 네이버가 네이버 블로그 서비스를 포기할 일은 높지 않다는 판단입니다. 물론 네이버도 블로그 서비스 종료할 수 있습니다만 네이버가 키우고 주력 콘텐츠라서 쉽지 않을 겁니다. 반면 다음은 티스토리 서비스 버렸습니다. 보세요. 올해 들어서 티스토리 공식 블로그에 단 1개의 글도 안 올라오고 있습니다. 개발을 중단했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회사 자체가 분사하는 마당에 신경 쓰겠습니까? 더 놀라운 건 포털 다음을 분사할 때 남고 싶은 직원은 카카오 직원으로 남게 해주겠다고 하네요. 그럼 다들 남겠다고 하죠. 분사는 하는데 직원은 남는다? 서비스 종료와 다를 게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티스토리 종료에 대비하시길 바랍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를 만날 수 있는 고희동 박물관
북촌은 골목이 참 많아서 좋아요. 진짜로 골목이 많아서 좋아요. 미로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촌을 대로로만 다니는데 그냥 골목길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골목길을 돌면 작은 계단을 품은 골목이 빼꼼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름도 있네요. 무슨 희망길이라고 적혀 있고 넘어가는 길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런 골목길은 주민 아니면 모를거에요. 골목의 허전함을 벽화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 골목을 지나서 원서동이 나옵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온 동네죠. 한옥이 가득한 동네로 북촌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입니다. 북촌 하면 가회동 일대만 둘러보시는데 그 가회동이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최근 과태료까지 물리면서 오전 일찍과 오후 5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를 시켰더라고요. 그러나 여기 원서동은 아는 사람만 옵니다. 오히려 이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이 꽤 많습니다. 최근에는 말 많고 탈 많은 예화랑의 창덕궁 100도 생겼더라고요. 말 많고 탈 많다는 일은 이 예화랑이 지난 대선 관련 이슈가 있고 정권이 바뀌면 탈탈 털릴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는 자동차 광고를 촬영하던 곳이자 영화 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원서동은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희동 화가가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된 고희동 박물관이 있습니다. 1918년에 지어졌으니 일제 강점기에 지은 도시형 한옥이네요.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그리고 고희동 박물관 고희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입니다. 춘곡 고희동은 1886년에 태어나 1965년에 돌아가십니다. 1886년 종로에서 태어나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1907년에 동양화를 배우고 1909년에 미술 연구를 위해 동경 출장을 갔다가 9월에 동경미술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잘 사는 집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또한 시대 순응주의자였기에 일제 강점기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하는 사람 대부분이 순응주의자들이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이건 뭐건 그냥 순응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다만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존경하고 우러러봐야죠. 내가 못한 일을 누군가는 했고 그 일이 훌륭하면 받들어 모셔야죠. 그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1915년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양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중앙, 보성, 휘문고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이집을 1918년에 직접 설계하고 짓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딱히 모르겠네요. 최초라는 타이틀이 강한 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죠. 자화상은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이 오래된 한옥을 현재는 고희동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일반인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고희동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정을 둔 한옥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도시형 한옥은 유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비싼 건축 자재인 유리가 일제 강점기에는 수월하게 공급되어서 창호지를 밀어내고 유리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들어가면 복도가 있고 중정이 있는 한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도는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정도로 좁습니다. 게다가 다 마루입니다. 창살이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마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희동 화백의 초기 작품 또는 서양화가지만 꾸준히 동양화인 꽃과 새가 노니는 조화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선조들은 왜 꽃나무와 새를 많이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하기야 보이는 게 그게 대부분이고 내가 생각해도 조선 땅에서 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꽃과 새겠네요. 이런 풍경화도 그렸네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어 학교를 다니고 안중식,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어서 지필묵을 배웠습니다. 이때 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도쿄로 유학 가서 서양화를 배우고 옵니다. 도쿄미술학교는 졸업할 때 자화상 1점을 내야 하는데 그때 낸 자화상이 대감 모자인 정좌관을 쓴 자화상입니다. 이 그림이 졸업작품입니다. 이 도쿄미술학교에는 평양 출신의 화가도 많았는데 혼자만 조선 한복을 입고 정좌관을 쓴 그림을 그렸네요. 뿌리를 잊지 않은 모습입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유화는 딱 3점 그것도 모두 자화상만 남겼습니다. 왼쪽부터 1915년, 1915년, 1918년 그린 작품입니다. 보시면 개혁을 통해서 상투를 자르고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발령이 1895년에 내려졌으니 조선 사람 대부분은 청결과 활동을 위해서 머리를 잘랐을 겁니다. 마당에는 장독과 마사토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은 이런 조화도가 많았습니다. 색이 아주 예쁜 그림입니다. 이런 동양화들이 슴슴하지만 매혹적입니다. 서양화의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도 좋지만 좀 더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고 여백이 많아서 매력적입니다. 또 한국의 산새가 좀 아름다워야죠. 그래서 언덕의 나라이기도 하죠. 한편에는 체험 공간도 참 많았습니다. 직접 자화상을 만드는 공간도 있는데 AI 자화상 코너가 있네요. 서 있으면 자화상을 그려줍니다. 또한 자화상 엽서 그리기 코너도 있고 나만의 아트배지 만들기 코너도 있네요. 아이들 데리고 체험하기 딱 좋네요. 이 공간은 계속 변경되더라고요.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았는데 이제는 체험 공간으로 바꾸었네요. 원서동 고희동 미술관을 나온 후에 위로 쭉 올라가면 창덕궁에서 나온 계곡 물이 지나는 원서동 빨래터도 있습니다. 여기서 빨래를 했다고 해요. 지금은 여기서 빨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복원해 놓았네요. 이 원서동이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인데 조용하고 한옥이 많고 동네가 예뻐서 정말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배경이 됩니다. 저는 자주 들리니 딱 봐도 알겠더라고요. 원서동에서 촬영했구나를요. 혁신대학교 태재대 그리고 여기도 참 독특해요. 현재는 태재 대학교로 활용하고 있는데 박공 지붕이 연달아서 올라가 있습니다. 2023년에 태재 대학교가 생겼습니다. 이 학교는 독특한 대학교더라고요. 한 곳에 머물면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 미래형 혁신 대학교로 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오프라인과 메타버스 강의를 통해서 영어로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대학이라고 합니다. 서울, 도쿄, 홍콩, 뉴욕 등의 글로볼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하네요. 교환학생 제도의 확장판 같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대학교면 큰 건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공간에서 대학교를 만들었네요. 학생이 100명이 넘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대학교 교육, 초중고 교육도 선생님들이 많이 노련한다지만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구닥다리 교육 시스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이들어서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해요.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정부. 그러나 한국이 인재를 잘 기르는 교육 시스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지방대학교는 동남아나 중국 학생들 아니면 안 굴러갈 정도이고요. 동네 구경하기 딱 좋은 원서동이고 그 안에 고희동 미술관이 있습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를 만날 수 있는 고희동 박물관
북촌은 골목이 참 많아서 좋아요. 진짜로 골목이 많아서 좋아요. 미로 같아서 좋아요.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북촌을 대로로만 다니는데 그냥 골목길로 들어가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길이 나올지 모르는 골목길을 돌면 작은 계단을 품은 골목이 빼꼼히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름도 있네요. 무슨 희망길이라고 적혀 있고 넘어가는 길이라고 친절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런 골목길은 주민 아니면 모를거에요. 골목의 허전함을 벽화가 채우고 있습니다. 이 골목을 지나서 원서동이 나옵니다.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나온 동네죠. 한옥이 가득한 동네로 북촌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입니다. 북촌 하면 가회동 일대만 둘러보시는데 그 가회동이 오버투어리즘으로 인해 최근 과태료까지 물리면서 오전 일찍과 오후 5시 이후에는 통행금지를 시켰더라고요. 그러나 여기 원서동은 아는 사람만 옵니다. 오히려 이 근처에 가볼 만한 곳이 꽤 많습니다. 최근에는 말 많고 탈 많은 예화랑의 창덕궁 100도 생겼더라고요. 말 많고 탈 많다는 일은 이 예화랑이 지난 대선 관련 이슈가 있고 정권이 바뀌면 탈탈 털릴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는 자동차 광고를 촬영하던 곳이자 영화 의 촬영지이기도 합니다. 원서동은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여기에 고희동 화가가 직접 설계한 한옥으로 된 고희동 박물관이 있습니다. 1918년에 지어졌으니 일제 강점기에 지은 도시형 한옥이네요.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그리고 고희동 박물관 고희동은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입니다. 춘곡 고희동은 1886년에 태어나 1965년에 돌아가십니다. 1886년 종로에서 태어나서 관립 한성법어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1907년에 동양화를 배우고 1909년에 미술 연구를 위해 동경 출장을 갔다가 9월에 동경미술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잘 사는 집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죠. 또한 시대 순응주의자였기에 일제 강점기를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일제강점기 시절 소설 쓰고 그림 그리고 하는 사람 대부분이 순응주의자들이죠.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닙니다. 저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이건 뭐건 그냥 순응하면서 살았을 겁니다. 다만 그럼에도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존경하고 우러러봐야죠. 내가 못한 일을 누군가는 했고 그 일이 훌륭하면 받들어 모셔야죠. 그게 가장 합리적인 행동 아닐까 합니다. 아무튼 각설하고 1915년 동경 미술학교를 졸업하고 서양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중앙, 보성, 휘문고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합니다. 그리고 이집을 1918년에 직접 설계하고 짓습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자화상입니다. 그러나 다른 작품들은 딱히 모르겠네요. 최초라는 타이틀이 강한 분이라서 그런 것도 있겠죠. 자화상은 정말 멋진 작품입니다. 이 오래된 한옥을 현재는 고희동 미술관으로 개조해서 일반인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고희동 화가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중정을 둔 한옥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좋습니다. 도시형 한옥은 유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비싼 건축 자재인 유리가 일제 강점기에는 수월하게 공급되어서 창호지를 밀어내고 유리가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들어가면 복도가 있고 중정이 있는 한옥을 만날 수 있습니다. 복도는 딱 한 사람만 지나갈 정도로 좁습니다. 게다가 다 마루입니다. 창살이 가득한 유리창 너머로 마당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희동 화백의 초기 작품 또는 서양화가지만 꾸준히 동양화인 꽃과 새가 노니는 조화도를 많이 그렸습니다. 선조들은 왜 꽃나무와 새를 많이 그렸는지 모르겠어요. 하기야 보이는 게 그게 대부분이고 내가 생각해도 조선 땅에서 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사체는 꽃과 새겠네요. 이런 풍경화도 그렸네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불어 학교를 다니고 안중식, 조석진의 문하생이 되어서 지필묵을 배웠습니다. 이때 화가로 변신합니다. 이후 도쿄로 유학 가서 서양화를 배우고 옵니다. 도쿄미술학교는 졸업할 때 자화상 1점을 내야 하는데 그때 낸 자화상이 대감 모자인 정좌관을 쓴 자화상입니다. 이 그림이 졸업작품입니다. 이 도쿄미술학교에는 평양 출신의 화가도 많았는데 혼자만 조선 한복을 입고 정좌관을 쓴 그림을 그렸네요. 뿌리를 잊지 않은 모습입니다.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지만 흥미롭게도 유화는 딱 3점 그것도 모두 자화상만 남겼습니다. 왼쪽부터 1915년, 1915년, 1918년 그린 작품입니다. 보시면 개혁을 통해서 상투를 자르고 짧은 머리를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발령이 1895년에 내려졌으니 조선 사람 대부분은 청결과 활동을 위해서 머리를 잘랐을 겁니다. 마당에는 장독과 마사토가 깔린 작은 정원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림은 이런 조화도가 많았습니다. 색이 아주 예쁜 그림입니다. 이런 동양화들이 슴슴하지만 매혹적입니다. 서양화의 사물을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도 좋지만 좀 더 주관적인 느낌이 강하고 여백이 많아서 매력적입니다. 또 한국의 산새가 좀 아름다워야죠. 그래서 언덕의 나라이기도 하죠. 한편에는 체험 공간도 참 많았습니다. 직접 자화상을 만드는 공간도 있는데 AI 자화상 코너가 있네요. 서 있으면 자화상을 그려줍니다. 또한 자화상 엽서 그리기 코너도 있고 나만의 아트배지 만들기 코너도 있네요. 아이들 데리고 체험하기 딱 좋네요. 이 공간은 계속 변경되더라고요.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아틀리에를 재현해 놓았는데 이제는 체험 공간으로 바꾸었네요. 원서동 고희동 미술관을 나온 후에 위로 쭉 올라가면 창덕궁에서 나온 계곡 물이 지나는 원서동 빨래터도 있습니다. 여기서 빨래를 했다고 해요. 지금은 여기서 빨래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렇게 복원해 놓았네요. 이 원서동이 창덕궁 돌담을 끼고 있는 동네인데 조용하고 한옥이 많고 동네가 예뻐서 정말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 배경이 됩니다. 저는 자주 들리니 딱 봐도 알겠더라고요. 원서동에서 촬영했구나를요. 혁신대학교 태재대 그리고 여기도 참 독특해요. 현재는 태재 대학교로 활용하고 있는데 박공 지붕이 연달아서 올라가 있습니다. 2023년에 태재 대학교가 생겼습니다. 이 학교는 독특한 대학교더라고요. 한 곳에 머물면서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닌 미래형 혁신 대학교로 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오프라인과 메타버스 강의를 통해서 영어로 토론을 하면서 스스로 공부하는 대학이라고 합니다. 서울, 도쿄, 홍콩, 뉴욕 등의 글로볼 도시를 돌아다닌다고 하네요. 교환학생 제도의 확장판 같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대학교면 큰 건물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이 공간에서 대학교를 만들었네요. 학생이 100명이 넘지 않아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네요. 그리고 대학교 교육, 초중고 교육도 선생님들이 많이 노련한다지만 시대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구닥다리 교육 시스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나이들어서 한국 사람들은 공부를 안 해요. 인재를 만들어야 하는 정부. 그러나 한국이 인재를 잘 기르는 교육 시스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네요. 지방대학교는 동남아나 중국 학생들 아니면 안 굴러갈 정도이고요. 동네 구경하기 딱 좋은 원서동이고 그 안에 고희동 미술관이 있습니다.
3.5인치 대형 LCD가 달린 짐벌 카메라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
보면서 괴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이한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짐벌 카메라 시장은 DJI 오즈모포켓3가 평정을 했습니다. 1인치 이미지센서에 흔들림 없는 짐벌 카메라라는 장점으로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분들에게는 이만한 카메라가 없습니다. 액티비티 한 활동을 하는 분들 여행 블로거들에게는 카메라 화각을 바로바로 바꿔야 하는데 짐벌이라서 액션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분들에게는 딱 좋은 것이 오즈모포켓 3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카메라가 나왔네요. 사실 이 짐벌 카메라 시장은 DJI 오즈모 포켓과 몇몇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지만 워낙 DJI 오즈모 포켓이 뛰어나서 대부분 잘 팔리지 않습니다.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 코닥, 후지, 아그파 3강이었던 필름 시장의 그 아그파 맞습니다. 아그파포토는 필름 사업부를 매각하고 현재는 디카와 모바일 포토 프린터 등을 만들고 있네요. 이 아그파포토에서 뜬금없이 모바일 짐벌 카메라인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를 선보였습니다. 이 제품은 눈에 확들어오는 것이 거대한 LCD입니다. 무려 LCD가 3.5인치나 됩니다. 이건 풀프 미러리스 LCD의 3인치보다 커요. 오즈모포켓도 LCD이 작다는 지적에 이렇게 획 돌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획 돌리면서도 무려 3.5인치네요. 3월 6일 출시되었는데 4K 동영상 2000만 화소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미지센서는 소니 IMX 317을 사용하는데 이 이미지센서 크기가 1/2.5인치라서 크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오즈모 포켓2의 1/1.7인보다 작아요. 그냥 이런 액션캠 수준의 크기네요. 카메라 렌즈는 120도의 광각 렌즈를 사용합니다. 이점은 좋네요. LCD는 접거나 그냥 펼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얼굴 자동 추적 기능도 있고 와이파이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에 전송도 가능합니다. 완충하면 동영상은 170분까지 촬영 가능하고 USB-C 타입으로 충전합니다. 엄청 커서 좋긴한데 조악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대신 가격이 저렴하겠죠. 가격은 363달러로 한화로 52만 원 정도 합니다만 오즈모 포켓2가 40만 원대라서 가격 경쟁력도 없습니다. 이미지센서가 더 큰 오즈모 포켓2가 더 저렴하고 더 성능이 좋은데 누가 저걸 살까요? 이런 카메라 볼 때마다 이런 제품은 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3.5인치 대형 LCD가 달린 짐벌 카메라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
보면서 괴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이한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짐벌 카메라 시장은 DJI 오즈모포켓3가 평정을 했습니다. 1인치 이미지센서에 흔들림 없는 짐벌 카메라라는 장점으로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분들에게는 이만한 카메라가 없습니다. 액티비티 한 활동을 하는 분들 여행 블로거들에게는 카메라 화각을 바로바로 바꿔야 하는데 짐벌이라서 액션성은 좀 떨어지지만 이동하면서 촬영하는 분들에게는 딱 좋은 것이 오즈모포켓 3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카메라가 나왔네요. 사실 이 짐벌 카메라 시장은 DJI 오즈모 포켓과 몇몇 기업들이 시도하고 있지만 워낙 DJI 오즈모 포켓이 뛰어나서 대부분 잘 팔리지 않습니다.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 코닥, 후지, 아그파 3강이었던 필름 시장의 그 아그파 맞습니다. 아그파포토는 필름 사업부를 매각하고 현재는 디카와 모바일 포토 프린터 등을 만들고 있네요. 이 아그파포토에서 뜬금없이 모바일 짐벌 카메라인 아그파포토의 리얼무브 MC3X를 선보였습니다. 이 제품은 눈에 확들어오는 것이 거대한 LCD입니다. 무려 LCD가 3.5인치나 됩니다. 이건 풀프 미러리스 LCD의 3인치보다 커요. 오즈모포켓도 LCD이 작다는 지적에 이렇게 획 돌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획 돌리면서도 무려 3.5인치네요. 3월 6일 출시되었는데 4K 동영상 2000만 화소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이미지센서는 소니 IMX 317을 사용하는데 이 이미지센서 크기가 1/2.5인치라서 크지는 않습니다. 심지어 오즈모 포켓2의 1/1.7인보다 작아요. 그냥 이런 액션캠 수준의 크기네요. 카메라 렌즈는 120도의 광각 렌즈를 사용합니다. 이점은 좋네요. LCD는 접거나 그냥 펼쳐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얼굴 자동 추적 기능도 있고 와이파이로 촬영한 영상을 스마트폰에 전송도 가능합니다. 완충하면 동영상은 170분까지 촬영 가능하고 USB-C 타입으로 충전합니다. 엄청 커서 좋긴한데 조악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대신 가격이 저렴하겠죠. 가격은 363달러로 한화로 52만 원 정도 합니다만 오즈모 포켓2가 40만 원대라서 가격 경쟁력도 없습니다. 이미지센서가 더 큰 오즈모 포켓2가 더 저렴하고 더 성능이 좋은데 누가 저걸 살까요? 이런 카메라 볼 때마다 이런 제품은 왜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