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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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 postsSTK 전시회에서 본 한국에 출시한 샤오미 스마트폰들
스마트테크 코리아라는 전시회는 AI 기술, 로봇, 빅데이터 등등 IT와 첨단 전자 정보 기술을 선보이는 전시회입니다. 이 전시회에 샤오미 코리아가 참가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LG전자도 참가 안 하고 AI와 로봇, 보안 관련 전시회인데 가전 및 스마트폰 제조사인 중국 샤오미가 참가를 해서 좀 놀랬습니다. 한국에 본격 진출한 샤오미코리아가 선보일 샤오미 제품들 대륙의 실수라는 샤오미가 한국에 알려진 지 10년이 넘어가네요. 디자인이 뛰어나서 중국의 애플이다. 가성비의 끝판왕이다해서 인기가 높은 샤오미는 한국에 본격 진출한 지는 몇 년 안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여기저기서 우리가 총판이다. 뭐 다해서 난립했었습니다. 샤오미 매장은 가끔 보였지만 다 총판 비스꾸리한 곳이고 공식 대리점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수년 전에 용산 아이파크몰 복도에 간이 부스를 설치해서 찾았갔다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성의 없는 모습에 샤오미가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왔네요. 그러나 2025년 봄에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샤오미 14T라는 중저가폰을 선보이면서 한국에 본격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샤오미 부스에서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6월 말에 여의도 IFC몰에 국내 최초 샤오미 공식 체험 매장을 선보인다고 하네요. 샤오미 공식 매장은 없었지만 샤오미는 이미 온라인에서 여러 업체가 판매하고 있었고 A/S센터도 몇 곳 있었습니다. 저도 샤오미 스마트워치 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고장 날 일도 없고 고장 나도 너무 저렴해서 그냥 버려버립니다. A/S 기간 지나면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나으니까요. 한국에서 TV와 공기청정기와 진공청소기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샤오미 TV는 베젤이 엄청 얇네요. TCL 같은 중국 TV가 인기를 끌고 있고 샤오미도 A/S 망만 잘 갖추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무선 진공청소기 시장은 중국제가 국산과 다이슨을 씹어 먹고 있을 정도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로봇 청소기는 중국 로보락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샤오미는 태블릿도 판매하고 있는데 성능이 좋으면서 가격도 살짝 있는 샤오미 패드 7을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공식 판매가는 46만 원입니다. 샤오미 레드미 시리즈, 포코 시리즈, 샤오미 시리즈의 차이 홍미노트라고도 하는 샤오미 레드미 노트 시리즈는 중저가 폰으로 카메라에 좀 더 방점을 둔 스마트폰 시리즈입니다. 40만 원 이하대 제품이 많습니다. 샤오미 레드미 노트 14 프로 5G 이 제품만 해도 IP68에 2억 화소 메인 카메라에 저가 AP인 미디어텍 AP를 사용해서 가격이 40만 원 밖에 안 됩니다. 게게임 성능에 좀 더 집중을 한 20,30대들을 위한 포코 시리즈 포코 시리즈는 외모가 좀 더 단단하고 그립감도 좋습니다. 카메라 성능이나 화소수가 낮지만 AP 성능이 좋아서 비슷한 가격대의 레드미 시리즈보다 게임하기 좋습니다. 보통 10~30대 남자들이 게임 아주 좋아하죠. 그래서 젊은 층을 위한 폰입니다. 포코는 M7 프로가 28만 원대로 가장 저럼하고 그 위가 45만 원 대의 X7 프로, 그위가 F7 프로로 72만 원 대입니다. F7 프로는 스냅드래곤 8 Gen3로 고성능 AP가 들어갔습니다. 포코 시리즈는 꽤 매력적인 시리즈로 가격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샤오미 시리즈의 샤오미 14T와 샤오미 15 울트라 샤오미 시리즈는 중고가 시리즈인데 이 시리즈도 제품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정말 샤오미는 제품이 너무 많아요. 다만 이 중에서 한국에서 공식 판매하는 제품은 일부입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팔릴만한 제품만 한국에 공개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난봄에 선보인 샤오미 14T가 6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했습니다. 당시 유명 유튜버들에게 홍보를 맡겼는데 다들 라이카 카메라 어쩌고 사진 동영상 결과물 미쳤다는 반응에 웃었습니다. 아니 딱 봐도 이미지센서 크기도 작고 중저가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인데 무슨 플래그십에 비교를 하는지요. 카메라 특화폰이 아님에도 억지 홍보를 하는 모습에 안 팔리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중국 스마트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습니다. 개인 정보 유출 때문이죠. 이는 결코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샤오미 14T는 판매 폭망했죠. 라이카 카메라 들어갔다고 하는 소리에 속지 마세요. 라이카가 영상 처리 엔진을 개발하면서 협력을 하고 렌즈 제조할 때 도움을 줬을 뿐이지 사진 결과물이 엄청 뛰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에 라이카 로고 박아주고 로열티 받고 있습니다. 라이카에 현혹되지 말고 이미지센서 크기와 성능을 믿으세요. 그래서 추천하는 게 1인치 소니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샤오미 15 울트라가 낫습니다. 샤오미 15 울트라입니다. 이상하게 중국폰들은 후면에 가스레인지 후드 같은 둥근 걸 넣더라고요. 만듦새도 아주 뛰어나고 무엇보다 사진 및 동영상 결과물이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낫죠. DXOMARK 스마트폰 카메라 순위에서 13위에 올랐을 정도로 성능이 좋습니다. 샤오미 15 울트라는 포토그래피 키트도 판매하는데 이걸 끼면 카메라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녹화 버튼과 휠 다이얼 줌레버가 있습니다. 아쉬운 건 녹화 버튼을 눌러서 녹화가 가능한데 다시 사진 모드로 전환은 안되고 후면 디스플레이를 터치를 해서 사진 모드로 변경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포토그래피 키트 가격인 20만 원 정도에 가격이 무척 싸다고 하시던데 샤오미 15 울트라는 170만 원입니다. 포토그래피 키트 끼면 190만 원으로 엄청 비쌉니다. 샤오미 폰이 이렇게 비싸도 되냐고 할 수 있지만 샤오미폰은 더 이상 가성비 폰과 태블릿이 아닙니다. 요즘은 가격이 올라서 삼성전자 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샤오미코리아가 본격 진출해도 매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샤오미는 2가지의 산을 넘어야 합니다. 1.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간다는 불안감 2. 결코 가성비가 뛰어나지 않다 따라서 샤오미 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많이 팔리기 어렵고 이런 스마트워치는 삼성전자를 가볍게 발라버릴 정도로 가성비에 성능까지 좋아서 이 스마트워치는 불티나게 많이 팔릴 것으로 보입니다.
STK 전시회에서 본 한국에 출시한 샤오미 스마트폰들
스마트테크 코리아라는 전시회는 AI 기술, 로봇, 빅데이터 등등 IT와 첨단 전자 정보 기술을 선보이는 전시회입니다. 이 전시회에 샤오미 코리아가 참가했습니다. 한국의 삼성전자도 LG전자도 참가 안 하고 AI와 로봇, 보안 관련 전시회인데 가전 및 스마트폰 제조사인 중국 샤오미가 참가를 해서 좀 놀랬습니다. 한국에 본격 진출한 샤오미코리아가 선보일 샤오미 제품들 대륙의 실수라는 샤오미가 한국에 알려진 지 10년이 넘어가네요. 디자인이 뛰어나서 중국의 애플이다. 가성비의 끝판왕이다해서 인기가 높은 샤오미는 한국에 본격 진출한 지는 몇 년 안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여기저기서 우리가 총판이다. 뭐 다해서 난립했었습니다. 샤오미 매장은 가끔 보였지만 다 총판 비스꾸리한 곳이고 공식 대리점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수년 전에 용산 아이파크몰 복도에 간이 부스를 설치해서 찾았갔다가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성의 없는 모습에 샤오미가 한국 시장에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왔네요. 그러나 2025년 봄에 기자간담회를 하면서 샤오미 14T라는 중저가폰을 선보이면서 한국에 본격 진출을 선언했습니다. 샤오미 부스에서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6월 말에 여의도 IFC몰에 국내 최초 샤오미 공식 체험 매장을 선보인다고 하네요. 샤오미 공식 매장은 없었지만 샤오미는 이미 온라인에서 여러 업체가 판매하고 있었고 A/S센터도 몇 곳 있었습니다. 저도 샤오미 스마트워치 등을 사용하고 있는데 고장 날 일도 없고 고장 나도 너무 저렴해서 그냥 버려버립니다. A/S 기간 지나면 수리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더 나으니까요. 한국에서 TV와 공기청정기와 진공청소기등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샤오미 TV는 베젤이 엄청 얇네요. TCL 같은 중국 TV가 인기를 끌고 있고 샤오미도 A/S 망만 잘 갖추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 수 있습니다. 무선 진공청소기 시장은 중국제가 국산과 다이슨을 씹어 먹고 있을 정도로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로봇 청소기는 중국 로보락이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샤오미는 태블릿도 판매하고 있는데 성능이 좋으면서 가격도 살짝 있는 샤오미 패드 7을 국내에서 판매하고 있습니다. 공식 판매가는 46만 원입니다. 샤오미 레드미 시리즈, 포코 시리즈, 샤오미 시리즈의 차이 홍미노트라고도 하는 샤오미 레드미 노트 시리즈는 중저가 폰으로 카메라에 좀 더 방점을 둔 스마트폰 시리즈입니다. 40만 원 이하대 제품이 많습니다. 샤오미 레드미 노트 14 프로 5G 이 제품만 해도 IP68에 2억 화소 메인 카메라에 저가 AP인 미디어텍 AP를 사용해서 가격이 40만 원 밖에 안 됩니다. 게게임 성능에 좀 더 집중을 한 20,30대들을 위한 포코 시리즈 포코 시리즈는 외모가 좀 더 단단하고 그립감도 좋습니다. 카메라 성능이나 화소수가 낮지만 AP 성능이 좋아서 비슷한 가격대의 레드미 시리즈보다 게임하기 좋습니다. 보통 10~30대 남자들이 게임 아주 좋아하죠. 그래서 젊은 층을 위한 폰입니다. 포코는 M7 프로가 28만 원대로 가장 저럼하고 그 위가 45만 원 대의 X7 프로, 그위가 F7 프로로 72만 원 대입니다. F7 프로는 스냅드래곤 8 Gen3로 고성능 AP가 들어갔습니다. 포코 시리즈는 꽤 매력적인 시리즈로 가격에 민감한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샤오미 시리즈의 샤오미 14T와 샤오미 15 울트라 샤오미 시리즈는 중고가 시리즈인데 이 시리즈도 제품 종류가 엄청 많습니다. 정말 샤오미는 제품이 너무 많아요. 다만 이 중에서 한국에서 공식 판매하는 제품은 일부입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팔릴만한 제품만 한국에 공개한다고 하네요. 그래서 지난봄에 선보인 샤오미 14T가 6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판매를 했습니다. 당시 유명 유튜버들에게 홍보를 맡겼는데 다들 라이카 카메라 어쩌고 사진 동영상 결과물 미쳤다는 반응에 웃었습니다. 아니 딱 봐도 이미지센서 크기도 작고 중저가폰에 들어가는 카메라 모듈인데 무슨 플래그십에 비교를 하는지요. 카메라 특화폰이 아님에도 억지 홍보를 하는 모습에 안 팔리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중국 스마트폰에 대한 인식이 안 좋습니다. 개인 정보 유출 때문이죠. 이는 결코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그렇게 샤오미 14T는 판매 폭망했죠. 라이카 카메라 들어갔다고 하는 소리에 속지 마세요. 라이카가 영상 처리 엔진을 개발하면서 협력을 하고 렌즈 제조할 때 도움을 줬을 뿐이지 사진 결과물이 엄청 뛰어나지 않습니다. 사진에 라이카 로고 박아주고 로열티 받고 있습니다. 라이카에 현혹되지 말고 이미지센서 크기와 성능을 믿으세요. 그래서 추천하는 게 1인치 소니 이미지센서를 사용하는 샤오미 15 울트라가 낫습니다. 샤오미 15 울트라입니다. 이상하게 중국폰들은 후면에 가스레인지 후드 같은 둥근 걸 넣더라고요. 만듦새도 아주 뛰어나고 무엇보다 사진 및 동영상 결과물이 아주 좋다고 소문이 낫죠. DXOMARK 스마트폰 카메라 순위에서 13위에 올랐을 정도로 성능이 좋습니다. 샤오미 15 울트라는 포토그래피 키트도 판매하는데 이걸 끼면 카메라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녹화 버튼과 휠 다이얼 줌레버가 있습니다. 아쉬운 건 녹화 버튼을 눌러서 녹화가 가능한데 다시 사진 모드로 전환은 안되고 후면 디스플레이를 터치를 해서 사진 모드로 변경해야 합니다. 어떤 분이 포토그래피 키트 가격인 20만 원 정도에 스마트폰 가격이 무척 싸다고 하시던데 샤오미 15 울트라는 170만 원입니다. 포토그래피 키트 끼면 190만 원으로 엄청 비쌉니다. 샤오미 폰이 이렇게 비싸도 되냐고 할 수 있지만 샤오미폰은 더 이상 가성비 폰과 태블릿이 아닙니다. 요즘은 가격이 올라서 삼성전자 폰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샤오미코리아가 본격 진출해도 매력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샤오미는 2가지의 산을 넘어야 합니다. 1. 개인정보가 중국에 넘어간다는 불안감 2. 결코 가성비가 뛰어나지 않다 따라서 샤오미 스마트폰은 한국에서 많이 팔리기 어렵고 이런 스마트워치는 삼성전자를 가볍게 발라버릴 정도로 가성비에 성능까지 좋아서 이 스마트워치는 불티나게 많이 팔릴 것으로 보입니다.
198769757922의 뜻을 아시나요? 6.10 민주항쟁을 돌아보다
지난봄 연세대 교정을 거닐다가 이 거대한 돌과 그 앞에 쓰여 있는 숫자를 한참 봤습니다. 198769757922 암호 같아 보이는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숫자는 끊어서 봐야 이해가 갑니다. 1987 = 1987년 69 =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6.10 출정을 위한 연세대 궐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6월 9일에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준비했습니다. 호헌 철폐란 전두환이 헌법에 있는대로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 즉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이에 전 국민들이 일어나서 헌법을 고쳐서 다시 민주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을 우리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바꾸라는 소리가 바로 호헌 철폐입니다. 이 6월 9일에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를 하던 이한열 군이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날입니다. 전경의 최루탄 총은 곡사로 싸야지 직사로 쏘면 사람이 맞아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직격을 쐈고 그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서 이한열 군이 사망합니다. 최루탄을 쏜 사람은 알 겁니다. 자신이 쐈는지를요. 그 전경도 이한열과 같은 또래일텐데요. 75 = 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군은 7월 5일 새벽 사망을 합니다. 부검 결과 최루탄 피격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습니다. 79 = 7울 9일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가 민주국민장으로 장례식이 열립니다. 전국에서 16여만 명이 참여한 추모식은 연세대 본관을 출발해서 신촌로터리를 지나 서울시청 앞까지 이어집니다. 영화 1987에서 김태리가 본 장면이 그 장면입니다. 22 = 그때 이한열 군의 나이 단지 22살이었을 때 1987년 6월 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점인 6.10 민주 항쟁 역사를 일베에서 배운 20,30대 청년들이 참 많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심어 놓은 혐오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독재를 찬양하고 혐오와 조롱이 일상인 세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준석이라는 혐오의 아이콘이 남녀 갈라 치기를 심화시켰습니다. 한국사에서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같은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과가 있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승만은 윤석열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이 거의 없는 조선으로 만하면 선조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자국민을 반공청년단을 지원해서 학살을 자행하고 친일 역사를 청산하려는 반민특위를 해산시킨 아주 아주 못난 대통령이죠. 그러나 건국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하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이명박 정권이 바꾼 삐뚤어진 역사 인식은 이제는 뿌리를 잘 내려서 정착단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그냥 뽑기로 뽑은 건 줄로만 아는 분들에게 그 1987년 공기를 전하고자 이 포스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대학생 시위가 극렬했던 그 해 일반 시민들이 일어서게 된 2개의 사건 모든 내용은 영화 <1987>에 잘 담겨 있고 현대 역사 교과서로 활용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영화가 바로 <1987>입니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은 계엄령 강국으로 무려 10번 이상의 계엄을 때렸던 나라입니다. 툭하면 계엄을 때렸습니다. 그게 군사 독재 정권 박정희였습니다. 법을 고쳐가면서 2선, 3선을 지나서 평생 대통령 해 먹겠다고 하자 대학생들은 연일 시위로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죠. 이에 박정희 정권은 군홧발로 때려 잡고 강제로 군대에 입대시켜서 정신 교육을 시키는 등 폭압을 시전 했습니다. 그러다 부하의 총탄에 사망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 에 잘 나옵니다. 박정희가 아끼던 전두환이 대통령이 됩니다. 이후 폭정은 더 심해졌고 결국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남도청 앞에 있던 시민들에게 공수부대가 총을 쏴서 학살을 일으킵니다. 그 이야기는 한강 작가의 소설 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1980년에 광주에 무슨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만 접하고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988년 여소아대의 정국에서 물 태우라고 하는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라는 야당이 진행한 5공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를 통해서 5.18의 참혹상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야기는 많았습니다만 제대로 알게 된 것은 1988년입니다. 이렇게 여소야대로 이끌어내고 대선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 사건이 6.10 민주 항쟁입니다. 1. 1987년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매일 시위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85~6년도에 대학생 시위가 극심했습니다. 건국대에서는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기도 했고요. 여기저기서 분신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얼마나 시위가 심했는지 흐린 날 바람이 불면 교실에 최루 가스가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근처에 시위를 한 곳이 없는데 얼마나 많은 최루탄을 쐈는지 바람에 날려서 학교까지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과격한 대학생 형 누나들이 불만이 많아서 나라가 싫어서 시위를 하나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절대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교사가 침묵했습니다. 단 딱 한 분의 선생님만이 제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왜 시위를 하는지 정부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더라고요. 그러나 그건 한 사람의 목소리라서 다들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친구 누나의 이야기를 친구가 들려주었는데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대학생들이 폭도가 아닌 독재자인 전두환의 잘못된 점과 광주 민주화 항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안 믿었죠. 주변 어른들도 제대로 알려주던 사람도 없었고요. 지금같이 SNS가 있던 시대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까요. 그러다 대림시장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도망쳐온 대학생 형이 평상에서 마을 어른들과 나눈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 다른 이야기가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안 믿었습니다. 그러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인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건이 터집니다. 이때부터 동네 어르신들도 부모님들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생을 죽여? 드디어 시민들까지 들고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여러 의식있는 언론사의 힘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점점 독재 정권 시위가 일반 시민들까지 함께하기 시작합니다. 명동 성당으로 피해있던 대학생들을 응원하는 당시 회사원들이 넥타이 부대가 되어서 이 반독재 시위에 참여하고 동조하자 전두환 정권은 겁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987년 내내 매일 같이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6월 9일 이한열군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다 한국의 역사를 바꾼 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사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형의 이야기도 친구의 이야기도 선생님 1분의 이야기도 믿지 않거나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화염병 던지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해도 너무했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연대생의 모습을 당시 로이터 통신 서울주재 사진기자였던 정태원 사진기자가 촬영을 합니다. 이 사진은 다음 날 많은 신문사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이 사진은 그 파급력이 엄청 났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보던 조간신문에 이 사진이 실리자 어른들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1987년 6월 내내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대학생 시위는 시민 시위로 확대됩니다. 그렇게 매일 강렬한 시위가 계속되자 노태우가 6월 29일 간선제를 폐지하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직선제를 선언합니다. 그게 바로 6.29선언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에 노태우가 되지 못하면 전두환은 망명을 생각할 정도로 그의 악행이 바로 드러날 겁니다. 그러나 말로는 국민 염원을 받들어서 직선제 개헌을 선언합니다. 그럼 노태우가 전두환이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음 선거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직선제를 허락합니다. 이 6.29 선언에는 중요한 내용이 있었는데 대선 후보에 나올 수 없는 내란범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을 사면 복권 시켜줍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같은 민주 인사이고 같은 뿌리의 정당에서 나온 신진 민주 인사였지만 지역 기반이 달랐습니다. 출생지가 전라도인 김대중은 전라도에서 출생지가 경남 거제인 김영삼은 경상도 특히 경상남도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은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닌 시작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랍니다. 두 청년의 죽음이 피워낸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죠. 그럼 영화처럼 해피엔딩일까요? 삶은 엔딩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이어질 뿐입니다. 6.29 선언으로 잠잠해진 시위는 그해 연말에 있었던 1987년 제 13대 대선에서 결과를 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생각대로 김대중을 사면 복권시켜줬더니 표가 갈렸습니다. 그럼 두 야당 후보 중 한 사람이 사퇴를 하고 표를 몰아주면 됩니다. 그러나 두 엘리트 군인의 생각대로 둘은 결코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출마를 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표를 합치면 노태우보다 많지만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한 김영삼, 김대중 덕분에 노태우가 쉽게 당선됩니다. 노태우의 노림수가 먹혔습니다. 여기에 김영삼은 1988년 총선 후에 1990년 김종필과 함께 민주정의당과 합당을 합니다. 그렇게 민자당이라는 새로운 거대 여당이 탄생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전두환 못지 않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 싫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대통령 하고 싶다고 군사독재정권과 손을 잡습니까? 노태우 정권은 낫지 않았냐는 말도 있지만 노태우 정권 때도 수많은 시위가 있었고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을 구타해서 죽게 한 인간들이 그 유명한 하이바 쓴 백골단 경찰입니다. 노태우도 잔혹한 군사 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살인 정권과 손을 잡다뇨.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용서가 안 됩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다. 2024년 12월 3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군사정권은 멸종했고 쿠데타는 사라질 줄 알았지만 행정력을 장악하고 있던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차지하기 위해서 군인을 동원해서 국회를 봉쇄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쿠데타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바로 친위 쿠데타입니다. 공화정은 입법,사법, 행정이라는 3개의 권력으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게 한 사람에게 몰려 있으면 그게 바로 왕정국가이자 독재 국가죠. 그날 저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되면 또 하나의 박정희, 전두환이 태어나는 것이고 막을 수가 없을 줄 알고 절망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방송에서는 1987년 개헌을 하면서 쿠데타를 너무 자주 하니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도 국회의원 과반 이상이 참석해서 과반이 반대하면 계엄 선포가 무효가 됩니다. 그래서 윤석열이 150명이 넘었냐고 계속 물어보고 끌어내라고 지시했죠. 이 법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1987년 개헌할 때 이 조항을 넣었습니다. 계엄령을 막는 안전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조항은 광주민주화항쟁과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아니었다면 넣지 못했을 겁니다. 이 안전장치 덕분에 그 새벽에 계엄령이 해제가 되었습니다. 살아보니 기술과 과학은 매년 발전하는데 인간의 성품이나 마음씨는 발전하는 게 아닌 반복되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미국도 한국도 점점 마음의 양극화에 거짓 뉴스에 휘둘리고 혐오와 갈등을 먹고 자라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인간의 무능을 점점 더 깨닫게 되네요.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과 반성없고 성찰 없는 삶이 늘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숏폼에 물들고 자극만 찾고 거짓뉴스를 검증도 못하는 낮고 얕은 판단력이 또다시 독재자를 나오게 하고 쿠데타가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한국은 그 어려운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 낸 나라로 이제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롤모델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인들도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하지만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왜곡해서 가르치는 늘봄학교 같은 사회의 암들을 제거해야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은 연세대 이한열 동산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198769757922의 뜻을 아시나요? 6.10 민주항쟁을 돌아보다
지난봄 연세대 교정을 거닐다가 이 거대한 돌과 그 앞에 쓰여 있는 숫자를 한참 봤습니다. 198769757922 암호 같아 보이는 이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 숫자는 끊어서 봐야 이해가 갑니다. 1987 = 1987년 69 = 6월 9일 연세대학교에서 6.10 출정을 위한 연세대 궐기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6월 9일에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조작, 은폐 규탄 및 호헌 철폐 국민대회 출정을 준비했습니다. 호헌 철폐란 전두환이 헌법에 있는대로 간선제로 다음 대통령을 뽑겠다 즉 전두환의 친구인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했고 이에 전 국민들이 일어나서 헌법을 고쳐서 다시 민주주의의 상징인 대통령을 우리 국민이 직접 뽑는 직선제로 바꾸라는 소리가 바로 호헌 철폐입니다. 이 6월 9일에 연세대 정문에서 시위를 하던 이한열 군이 전경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날입니다. 전경의 최루탄 총은 곡사로 싸야지 직사로 쏘면 사람이 맞아서 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직격을 쐈고 그 최루탄에 머리를 맞아서 이한열 군이 사망합니다. 최루탄을 쏜 사람은 알 겁니다. 자신이 쐈는지를요. 그 전경도 이한열과 같은 또래일텐데요. 75 = 27일 동안 사경을 헤매던 이한열군은 7월 5일 새벽 사망을 합니다. 부검 결과 최루탄 피격이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었습니다. 79 = 7월 9일 6월 민주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가 민주국민장으로 장례식이 열립니다. 전국에서 16여만 명이 참여한 추모식은 연세대 본관을 출발해서 신촌로터리를 지나 서울시청 앞까지 이어집니다. 영화 1987에서 김태리가 본 장면이 그 장면입니다. 22 = 그때 이한열 군의 나이 단지 22살이었을 때 1987년 6월 10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점인 6.10 민주 항쟁 역사를 일베에서 배운 20,30대 청년들이 참 많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심어 놓은 혐오의 씨앗이 무럭무럭 자라서 독재를 찬양하고 혐오와 조롱이 일상인 세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이준석이라는 혐오의 아이콘이 남녀 갈라 치기를 심화시켰습니다. 한국사에서 현대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다 보니 같은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과가 있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오히려 잘 되어 있는 편이지만 이승만은 윤석열이 나오기 전까지는 공이 거의 없는 조선으로 만하면 선조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자국민을 반공청년단을 지원해서 학살을 자행하고 친일 역사를 청산하려는 반민특위를 해산시킨 아주 아주 못난 대통령이죠. 그러나 건국의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하는 세력들이 등장하는 걸 보면 이명박 정권이 바꾼 삐뚤어진 역사 인식은 이제는 뿌리를 잘 내려서 정착단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그냥 뽑기로 뽑은 건 줄로만 아는 분들에게 그 1987년 공기를 전하고자 이 포스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대학생 시위가 극렬했던 그 해 일반 시민들이 일어서게 된 2개의 사건 모든 내용은 영화 <1987>에 잘 담겨 있고 현대 역사 교과서로 활용해도 좋을 정도로 뛰어난 영화가 바로 <1987>입니다. 대학생들의 시위는 박정희 정권 시절부터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은 계엄령 강국으로 무려 10번 이상의 계엄을 때렸던 나라입니다. 툭하면 계엄을 때렸습니다. 그게 군사 독재 정권 박정희였습니다. 법을 고쳐가면서 2선, 3선을 지나서 평생 대통령 해 먹겠다고 하자 대학생들은 연일 시위로 박정희 정권을 비판했죠. 이에 박정희 정권은 군홧발로 때려 잡고 강제로 군대에 입대시켜서 정신 교육을 시키는 등 폭압을 시전 했습니다. 그러다 부하의 총탄에 사망합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영화 에 잘 나옵니다. 박정희가 아끼던 전두환이 대통령이 됩니다. 이후 폭정은 더 심해졌고 결국 1980년 5월 18일 광주 전남도청 앞에 있던 시민들에게 공수부대가 총을 쏴서 학살을 일으킵니다. 그 이야기는 한강 작가의 소설 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 사는 저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1980년에 광주에 무슨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만 접하고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1988년 여소아대의 정국에서 물 태우라고 하는 노태우 정권은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이라는 야당이 진행한 5공 청문회와 광주 청문회를 통해서 5.18의 참혹상을 알게 됩니다. 물론 이전에도 이야기는 많았습니다만 제대로 알게 된 것은 1988년입니다. 이렇게 여소야대로 이끌어내고 대선을 간선제에서 직선제로 바꾼 사건이 6.10 민주 항쟁입니다. 1. 1987년 1월 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매일 시위였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85~6년도에 대학생 시위가 극심했습니다. 건국대에서는 학생들이 건물을 점거하고 시위를 하기도 했고요. 여기저기서 분신 사건이 참 많았습니다. 얼마나 시위가 심했는지 흐린 날 바람이 불면 교실에 최루 가스가 들어올 정도였습니다. 근처에 시위를 한 곳이 없는데 얼마나 많은 최루탄을 쐈는지 바람에 날려서 학교까지 날아오기도 했습니다. 당시는 과격한 대학생 형 누나들이 불만이 많아서 나라가 싫어서 시위를 하나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절대로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모든 교사가 침묵했습니다. 단 딱 한 분의 선생님만이 제대로 말해주었습니다. 왜 시위를 하는지 정부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주더라고요. 그러나 그건 한 사람의 목소리라서 다들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친구 누나의 이야기를 친구가 들려주었는데 우리가 아는 이야기와 달랐습니다. 대학생들이 폭도가 아닌 독재자인 전두환의 잘못된 점과 광주 민주화 항쟁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물론 안 믿었죠. 주변 어른들도 제대로 알려주던 사람도 없었고요. 지금같이 SNS가 있던 시대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니까요. 그러다 대림시장 앞에서 시위를 하다가 도망쳐온 대학생 형이 평상에서 마을 어른들과 나눈 이야기를 듣고 내가 알고 있던 세계와 다른 이야기가 있음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안 믿었습니다. 그러다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학생인 박종철 군이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건이 터집니다. 이때부터 동네 어르신들도 부모님들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생을 죽여? 드디어 시민들까지 들고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사건은 여러 의식있는 언론사의 힘으로 세상에 알려지고 점점 독재 정권 시위가 일반 시민들까지 함께하기 시작합니다. 명동 성당으로 피해있던 대학생들을 응원하는 당시 회사원들이 넥타이 부대가 되어서 이 반독재 시위에 참여하고 동조하자 전두환 정권은 겁을 먹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1987년 내내 매일 같이 대학생들의 시위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6월 9일 이한열군 최루탄에 맞고 쓰러지다 한국의 역사를 바꾼 사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사진 보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 형의 이야기도 친구의 이야기도 선생님 1분의 이야기도 믿지 않거나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화염병 던지는 게 좋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건 해도 너무했다고 할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연대생의 모습을 당시 로이터 통신 서울주재 사진기자였던 정태원 사진기자가 촬영을 합니다. 이 사진은 다음 날 많은 신문사의 1면을 장식했습니다. 이 사진은 그 파급력이 엄청 났습니다. 아침밥을 먹으면서 보던 조간신문에 이 사진이 실리자 어른들도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렇게 1987년 6월 내내 전국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고 대학생 시위는 시민 시위로 확대됩니다. 그렇게 매일 강렬한 시위가 계속되자 노태우가 6월 29일 간선제를 폐지하고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선거로 뽑는 직선제를 선언합니다. 그게 바로 6.29선언입니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통령에 노태우가 되지 못하면 전두환은 망명을 생각할 정도로 그의 악행이 바로 드러날 겁니다. 그러나 말로는 국민 염원을 받들어서 직선제 개헌을 선언합니다. 그럼 노태우가 전두환이 국민의 뜻을 따른 것일까요? 아닙니다. 다음 선거에서도 이길 자신이 있었기에 직선제를 허락합니다. 이 6.29 선언에는 중요한 내용이 있었는데 대선 후보에 나올 수 없는 내란범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은 김대중을 사면 복권 시켜줍니다. 김대중과 김영삼은 같은 민주 인사이고 같은 뿌리의 정당에서 나온 신진 민주 인사였지만 지역 기반이 달랐습니다. 출생지가 전라도인 김대중은 전라도에서 출생지가 경남 거제인 김영삼은 경상도 특히 경상남도에서 지지를 받았습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은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닌 시작점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랍니다. 두 청년의 죽음이 피워낸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하죠. 그럼 영화처럼 해피엔딩일까요? 삶은 엔딩이 없습니다. 사람들의 삶이 이어질 뿐입니다. 6.29 선언으로 잠잠해진 시위는 그해 연말에 있었던 1987년 제 13대 대선에서 결과를 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생각대로 김대중을 사면 복권시켜줬더니 표가 갈렸습니다. 그럼 두 야당 후보 중 한 사람이 사퇴를 하고 표를 몰아주면 됩니다. 그러나 두 엘리트 군인의 생각대로 둘은 결코 손을 잡지 않고 그대로 출마를 합니다. 김영삼, 김대중 표를 합치면 노태우보다 많지만 국민들의 염원을 외면한 김영삼, 김대중 덕분에 노태우가 쉽게 당선됩니다. 노태우의 노림수가 먹혔습니다. 여기에 김영삼은 1988년 총선 후에 1990년 김종필과 함께 민주정의당과 합당을 합니다. 그렇게 민자당이라는 새로운 거대 여당이 탄생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 전두환 못지 않게 김영삼 전 대통령이 참 싫습니다. 어떻게 자기가 대통령 하고 싶다고 군사독재정권과 손을 잡습니까? 노태우 정권은 낫지 않았냐는 말도 있지만 노태우 정권 때도 수많은 시위가 있었고 1991년 명지대 강경대 군을 구타해서 죽게 한 인간들이 그 유명한 하이바 쓴 백골단 경찰입니다. 노태우도 잔혹한 군사 정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살인 정권과 손을 잡다뇨.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용서가 안 됩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리다. 2024년 12월 3일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군사정권은 멸종했고 쿠데타는 사라질 줄 알았지만 행정력을 장악하고 있던 대통령이 의회 권력까지 차지하기 위해서 군인을 동원해서 국회를 봉쇄하려고 했습니다. 이게 무슨 쿠데타냐고 할 수 있지만 그게 바로 친위 쿠데타입니다. 공화정은 입법,사법, 행정이라는 3개의 권력으로 서로를 감시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게 한 사람에게 몰려 있으면 그게 바로 왕정국가이자 독재 국가죠. 그날 저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렇게 되면 또 하나의 박정희, 전두환이 태어나는 것이고 막을 수가 없을 줄 알고 절망의 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방법이 있다는 소리에 놀랐습니다. 방송에서는 1987년 개헌을 하면서 쿠데타를 너무 자주 하니까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도 국회의원 과반 이상이 참석해서 과반이 반대하면 계엄 선포가 무효가 됩니다. 그래서 윤석열이 150명이 넘었냐고 계속 물어보고 끌어내라고 지시했죠. 이 법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1987년 개헌할 때 이 조항을 넣었습니다. 계엄령을 막는 안전장치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조항은 광주민주화항쟁과 박종철, 이한열 열사가 아니었다면 넣지 못했을 겁니다. 이 안전장치 덕분에 그 새벽에 계엄령이 해제가 되었습니다. 살아보니 기술과 과학은 매년 발전하는데 인간의 성품이나 마음씨는 발전하는 게 아닌 반복되는 걸 절실하게 느낍니다. 미국도 한국도 점점 마음의 양극화에 거짓 뉴스에 휘둘리고 혐오와 갈등을 먹고 자라는 젊은 세대를 보면서 인간의 무능을 점점 더 깨닫게 되네요.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의 나약함과 무능함과 반성없고 성찰 없는 삶이 늘기 때문이 아닐까 하네요. 숏폼에 물들고 자극만 찾고 거짓뉴스를 검증도 못하는 낮고 얕은 판단력이 또다시 독재자를 나오게 하고 쿠데타가 나오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있다면 한국은 그 어려운 탄핵과 새로운 대통령을 만들어 낸 나라로 이제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롤모델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인들도 한국을 부러워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하지만 역사를 가르치지 않고 왜곡해서 가르치는 늘봄학교 같은 사회의 암들을 제거해야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될 겁니다. 위 사진은 연세대 이한열 동산에서 촬영한 사진입니다.
1988년 일본 시대상을 돌려서 담은 애니 아키라 속의 숨은 의미
1988년에 제작된 일본 애니 는 재패니메이션의 최고봉으로 지금도 칭송받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 한국에 소개된 적은 없습니다. 일본 애니건 영화건 다 수입이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다만 80년대 후반부터 아이큐 점프라는 월간 만화잡지에 '드래곤 볼'이 연재되면서 애니 및 만화 강국 일본의 위력을 실감했습니다. 차원이 달라요. 한국 만화와 애니와 질적인 차이가 너무나도 커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1980년대의 일본 애니는 한국을 빼고 전 세계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도 일본 애니는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지만 80년대 일본은 자유 진영 국가에서 미국과 함께 형 동생할 정도로 경제 강국이자 문화 강국이었습니다. 2016년에 봤을 때는 뭔 소리인지 하나도 몰라서 혹평했던 아키라 에 대한 명성을 잘 알고 있었죠. 그렇게 미루다 미루다 2016년에 드디어 를 봤습니다. 보면서 2019년 네오 도쿄를 배경으로 한 폭주족들의 우정과 대결을 담은 애니인가? 초능력자들이 나오는 건 괴이하다는 느낌만 들어서 작화만 칭송하고 스토리는 혹평을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영화도 나이 들어서 보고 더 많이 알고 보면 시선이 달라집니다. 지난 10년 동안 제가 많이 성장했나 봅니다. 안 보이던 것들이 참 많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왜 이 애니 가 1980년대 일본 사회를 담은 애니인지 보이더라고요. 제가 요즘 세계사와 동아시아 역사 및 국사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유튜브나 책들을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 영향인지 1980년대 일본 사회에 대한 돌려 까기가 꽤 많이 보이네요. 아키라는 한국에서 일본 영화 상영이 금지되었던 시기에 홍콩 영화로 속여서 1991년 으로 개봉했습니다. 마치 사이버 전사가 지구를 지키는 듯한 모습으로 그렸네요. 그러나 내용은 전혀 이런 내용이 아닙니다. 에 대한 명성은 불법 비디오로 자자했는데 이걸 속여서 개봉하다 보니 신고가 들어갔고 결국 상영 중단이 됩니다. 2019년 네오도쿄의 폭주족과 초능력자를 키우는 군부가 충돌하다 시대 배경은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난 후 31년이 지난 2019년 네오도쿄입니다. 어느 나라와 어느 나라가 싸웠는지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1988년은 냉전의 정점으로 치닫고 있던 시기여서 소련과 미국의 대결이 심했던 시절이었습니다. 핵전쟁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지배했죠. 이미 핵공포를 잘 아는 일본인들에게는 더 심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로부터 31년이 지난 2019년은 현재로는 과거지만 1988년 개봉 당시는 먼 미래였습니다. 네오도쿄에는 지금은 멸종한 폭주족들이 도로를 질주했습니다. 80년대 일본은 폭주족이 사회 문제가 되었고 한국 뉴스에서도 수시로 일본 뉴스라고 소개했습니다. 주인공은 카네다와 테츠오입니다. 테츠오와 카네다는 절친입니다. 카네다가 리더이고 모든 능력이 뛰어납니다. 반면 테츠오는 모든 것이 카네다보다 못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카네다는 훔친 붉은 오토바이를 잘 타지만 카네다는 오토바이 타다 넘어지는 등 어리숙합니다. 이에 테츠오는 카네다에 대한 열등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카네다 몰래 붉은색 오토바이를 타고 나가기도 합니다. 그날도 카네다와 함께 폭주를 하던 중 테츠오가 이상한 아이와 충돌하게 됩니다. 애 늙은이 같은 아이 때문에 쓰러진 테츠오는 이 아이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헬기가 내려오면서 어린아이 타카시와 함께 테츠오도 데리고 갑니다. 이 아이는 일본 군부가 실험 중인 실험체이자 초능력자입니다. 일본은 초능력 아이들을 키워서 국가의 무기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컨트롤이 잘 되지 않고 힘이 쎄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테츠오가 이 타카시와 충돌 후에 초능력이 생깁니다. 새로운 초능력자 그것도 힘이 막강한 초능력자가 등장하자 일본 군부와 과학자는 동요하기 시작합니다. 초능력을 가진 아이는 3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일본 재건을 위해서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로는 뭘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일본을 이끌 영웅 같은 테츠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테츠오는 꿈에서 본 아키라라는 존재를 인지하고 아키라와 만나고자 합니다. 아키라는 2019년 도쿄 올림픽 주 경기장 지하에 봉인되어 있는데 이 아키라를 직접 만나고자 하죠. 그러나 테츠오가 자신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예지력이 있는 아이가 아키라와 만나면 또다시 핵폭발이 일어난다는 말에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과 군부와 정부 그리고 케이라는 반정부 세력 인물까지 함께 합니다. 아키라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는 핵무장과 전쟁 가능한 국가로 향하는 일본에 대한 경고 표면적으로는 두 폭주족 학생의 우정을 담은 애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등감이 가득한 테츠오가 폭주를 하고 그 테츠오의 폭주를 막으려고 총을 든 카네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고등학생의 우정의 질투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죠. 실제로 그렇게 보이게 이게 표피에 흐르는 서사입니다. 그러나 이 는 80년대 일본의 문제점이자 사회적인 이슈가 숨어 들어가 있습니다. 바로 2차 대전을 일으킨 추축군인 일본의 재무장과 핵무장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원래는 독일처럼 남과 북으로 갈라놓을 생각이었습니다. 북쪽은 소련이 남쪽은 미국이 위탁 통치를 하려고 하려고 했죠. 그런데 애먼 한반도만 남북으로 갈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패전과 동시에 군대가 해산되었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위대가 있지 않냐고 하지만 자위대는 말 그대로 일본을 방어하는 용도로만 사용 가능한 자국 방위대입니다. 군대는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도 있죠. 그러나 일본은 다른 나라 침공 못합니다. 또한 핵무기도 개발 못합니다. 미국이 막고 있습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좀 기류가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경제 강국이 되고 일본이 자신감을 찾자 핵무장 이야기도 나오기 시작했고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군대를 바라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평화헌법을 바꾸자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만약 일본이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이 허용되면 여러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군이 한국에서 싸울 수 있습니다. 한미일 동맹인데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일본이 그렇게 한반도에서 전쟁을 한 후에 미군처럼 계속 머물면 우리는 그걸 어떻게 봐야 할까요? 그게 바로 일제 강점기 아닌가요? 또 한 번의 일제 강점기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무기 지원만 하고 군대가 한반도에 와서는 안 됩니다. 이런 군국주의의 부활을 는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대사로 힘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건 위험하다는 소리가 많이 나오죠. 그 힘이란 바로 핵입니다. 아키라는 제어되지 않는 힘입니다. 이에 군부는 테츠오라는 컨트롤이 가능한 핵을 가지고 싶어 해서 계속 실험을 합니다. 는 일본의 군국주의와 핵에 대한 열망과 위험을 다루고 있습니다. 영화 결말 부분은 좀 난해하게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이 마치 양자의 모습과 비슷하죠. 여러모로 아키라가 은유하는 건 핵무기 같네요. 뛰어난 작화와 놀라운 음악. 지금은 더 매끄럽게 만들 수 있지만 셀 애니메이션의 시대였던 80년대 치고 놀라운 작화를 보여줍니다. 보통 셀 애니메이션은 배경과 움직이는 피사체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 애니를 보다 보면 어떤 부분이 앞으로 움직일지 안 움직일지 색깔로 구분했습니다. 같은 바위라도 색이 다른 부분이 부서지겠구나를 미리알 수 있었죠. 그러나 는 배경과 움직이는 피사체가 구분이 안 갑니다. 역동성도 엄청나게 좋습니다. 여기에 오토바이의 빛의 궤적은 창의적이기까지 합니다. 마치 장노출 사진처럼 표현한 것은 아이디어와 실력의 결합이었습니다. 여기에 음악도 꽤 좋습니다. 일본 애니가 작화 실력만 좋은 게 아닌 뛰어난 음악도 많습니다. 의 음악이 그래서 유명한데 이 의 음악도 무척 뛰어나네요. 음악은 포스트모던한 음악 그룹인 게노야마시로구미가 맡았습니다. 타악기와 합창이 극의 긴장감을 서서히 끌어올리는데 큰 역할을 합니다. 마치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노래 같다고 할까요? 80년대 후반 세계의 주인공이었던 일본의 자신감이 충만한 애니 80년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이 참 부러웠습니다. 일본 음악과 영화는 절대 수입이 안 되던 시절에 우리는 많은 걸 일본에서 가져왔습니다. 80,90년대 가요 중에 J팝 베낀 노래가 엄청 많았고 애니도 일본 애니를 그대로 베껴서 상영하기도 했죠. 드라마도 심지어 개그 아이디어도 일반인들은 모르는 일본 방송을 베끼거나 영감을 얻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소니 워크맨, 아이와, 산요, 파나소닉 등등 일제 가전의 기술력에 한탄을 했습니다. 우리는 절대 일본을 뛰어넘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에서는 빨래방이 나오는 등등 당시 일본의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폭주족도 80년대 일본 문화죠. 여기에 시위 장면들도 68 혁명이 스며든 일본의 모습입니다. 68 혁명은 유럽에서 시작된 전염병 같은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사회 개혁 운동으로 전 세계에 자유를 갈망하는 목소리를 키웁니다. 한국만 이 68 혁명의 흐름이 군부 독재 정권으로 들어오지 못했지만 일본은 60~70년대에 걸쳐서 화염병을 필두로 한 격렬한 대학생들의 시위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순종주의 국가가 되었죠. 반전운동가 케이의 무리들을 보면 바로 일본의 전학공투회의를 연상케 합니다. 세계의 왕이 되고 싶었던 일본, 테츠오가 도쿄 올림픽 경기장의 왕좌에 오르는 모습이 당시 일본이 꿈꾸던 세계 1등 국가의 모습이 오버랩되네요. 그러나 이는 열등감의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진짜 1등인 국가는 2등으로 부르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열패감만 가득했던 테츠오라는 당시 일본은 경제라는 힘을 얻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면서 왕좌에 앉지만 미국의 속국임을 깨닫게 할 뿐이죠. 보고 있으면 이성적인 카네다가 미국 같고 항상 카네다의 부하라는 생각에 찌든 테츠오가 초능력을 얻어서 폭주하는 모습은 일본처럼 느끼 지네요. 테츠오를 막는 것도 그를 구원하는 것도 카네다의 몫입니다. 지금도 비슷하죠. 일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는 미국입니다. 다만 88년과 달리 현재는 일본도 친구가 생겼습니다. 바로 한국입니다. 한국과 일본이 경제력을 바탕으로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두 나라 모두 군사통제권은 미국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카네다 같은 미국에서 폭군 대통령이 당선됩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L.A에 주방위군을 보내서 내전 일보직전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항상 이성적인 국가였던 미국이 테츠오처럼 폭주하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제가 스스로 놀란 건 같은 애니를 2016년에 볼 때는 뭔 내용인지 모르다가 2025년 보니 꽤 많은 것이 보여서 놀랐습니다. 그동안 제가 많이 성장했나 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2019년을 배경으로 한 1988년 개봉한 애니에서 2025년 현재를 보고 있네요.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어려운 애니입니다. 모든 것이 과격합니다. 따라서 고등학생 이상 학생만 볼 것을 권하고 15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 올라왔으니 찾아보세요. 별점 : ★ ★ ★ ★ 40자 평 : 30대에는 작화만 보이다가 나이들어서 보니 보이는 80년대 일본 사회와 현재의 우리 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