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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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린 북촌 한옥 마을의 북촌 4경 5경 6경 7경과 삼청동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월 7일|사진

반응형 눈 내리면 모든 것이 다 사랑스럽게 느껴지죠. 특히 삼청동과 가회동의 북촌한옥마을은 더 아름다워집니다. 그래서 종묘 찍고 원서동 찍고 계동 지나서 가회동까지 흘러왔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은 좁은 의미로는 가회동 일대를 말합니다. 삼청동도 포함이라면 포함이지만 관광객들이 관광버스에서 집단으로 내리고 둘러보고 바로 떠나는 곳은 가회동 31번지 일대입니다. 여기가 바로 그 북촌한옥마을 올라가는 큰 도로입니다. 최근에 한 화장품 업체의 플래그십으로 활용하는 한옥을 지었더라고요. 이 동네는 한옥을 지으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요. 가로수도 은행나무도 플란타너스도 아닌 소나무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눈이 내리면 운치가 있어요. 이 한옥밀집지역은 원래 한옥이 많았지만 최근에 지어지는 상업 공간들도 한옥으로 깔맞춤하면서 조선의 향기를 가득 내고 있습니다. 고궁은 관광 공간이지만 이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북촌 한옥 마을인데 이 곳에 최근 한옥 공간에 상업 및 비상업 및 전시 공간들이 늘면서 한옥 체험 공간이 크게 늘었습니다. 여기는 인사동 찍고 쭉 올라가면 송현 공원 찍고 정독 도서관 찍고 올 수 있습니다. 걷기 싫으시면 마을버스 타고 오셔도 됩니다. 주말에 가면 관광버스가 관광객 내려놓고 멀리 갔다가 시간되면 다시 옵니다. 위 사진에도 관광버스가 보이네요. 북촌 한옥 마을에 가면 꼭 봐야할 북촌 4경 북촌 8경이라고 있어요. 아는 분들은 잘 알고 전 위치 다 알아요. 이중에서 핵심은 북촌 4경, 5경, 6경, 7경인데 여기가 북촌 한옥 마을에 있어요. 이중에서 대부분이 모르는 곳이 북촌 4경입니다. 보통 북촌 5~7경만 보고 가죠. 북촌 5경 올라가기 전에 있는 북촌 4경은 좁은 골목길이라서 잘 몰라요. 북촌 4경을 추천하는 이유는 이 풍경 때문입니다. 눈오면 더 예쁜 곳으로 한옥 지붕을 가득 볼 ㅅ 있어요. 전주 한옥 마을은  바로 뒤에 큰 언덕이 있어서 내려다 볼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는데 북촌한옥마을은 이 북촌 4경이 그 역할을 해요. 다만 위 풍경을 담으려면 한 집의 계단을 올라야 해요. 대문 앞 계단에서 사진 찍고 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저를 보더니 관심을 보이기에 몇 장 찍고 내려오니 올라가시네요. 우연히 북촌 4경 왔어도 올라갈 생각들을 못하는 곳이기도 해요. 정말 눈이 많이 내린 12월 30일이었습니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지나가기에 길을 비켜줬는데 프랑스 20대 청년들 같네요. 제가 사진 찍으니 담장 너머를 보더니 사진 찍네요. 여기가 북촌 5경입니다. 그 유명한 북촌한옥마을 가회동 31번지입니다. 여기 처음 왔던 때가 자주 생각나요. 그때가 2006년 이었는데 여기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한옥 마을이고 아이들이 학원 끝나고 뛰어가던 그냥 서울의 한 동네였어요. 심지어 자동차도 지나다녀서 비켜줘야 했어요. 지금은 이 길로 차 올라가지 못해요 갈 수는 있는데 낮에는 돌아가죠. 북촌 5경에서 6경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왼쪽으로 향하는 골목길이 있습니다. 이 골목길로 쭉 올라가면 북촌 7경이 나옵니다. 여기가 더 북촌 한옥 마을 느낌이 강렬하게 담겨요. 가장 유명한 북촌 6경이 바로 옆에 있으니 같이 담으면 좋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그 유명한 북촌 6경이 나옵니다. 저 언덕 아래가 북촌 5경입니다. 북촌 6경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삼청동이 나옵니다. 가회동과 삼청동은 이어져 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청와대 뒷산인 북악산입니다. 눈 쌓이니 더 아름답네요. 삼청동은 동산 기슭에 건물을 지어서 그런지 계단이 엄청 많습니다. 이중에서 가장 가파른 계단 앞에서 바라본 삼청동 사진입니다. 이 계단 이름이 돌계단입니다. 저 멀리 국립민속박물관 건물 지붕이 보이네요. 경복궁 전각도 보이고요. 이 돌계단은 지도앱에도 안 나옵니다. 따라서 북촌생활사박물관 찍고 오시면 그 바로 앞에 있습니다. 이 삼청동에는 여전히 한옥이 참 많습니다. 그 지붕을 구경하는 재미가 삼청동 여행의 매력이죠. 여기가 총리공관 앞 삼청동인데 밤에도 아름다운 곳입니다. 반응형

영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영화 거미집 그러나 참 지루한 영화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월 6일|사진

반응형 1998년 을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은 그 한 편의 영화로 신성으로 추앙받았고 ,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흥행 감독이 됩니다. 이후 놈, 놈, 놈과 , 까지 스타일이 살아 있는 흥행 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감을 많이 잃은 느낌입니다. 그 감 떨어짐은 2023년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끌지 못한 까지 이어지네요 영화 로 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그러나 설정만 비슷할 뿐 개봉 전에 (故) 김기영 감독 유족들이 김기영 감독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고인의 인격권과 초상권을 침해했다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을 했다가 극적으로 합의를 합니다. 그래서 김기영 감독의 대표작인 를 모티브로 했나 했고 저도 그렇게 알고 영화가 너무 재미없어서 중간에 끊고 급하게 를 다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 와 영화 속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모티브를 얻은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어디를 봐도 김기영 감독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아니고 김기영 감독과 연관되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잘 합의되었지만 괜히 를 챙겨 보게 되었네요. 전혀 상관없어요. 아! 괜히는 아니죠. 영화 의 좋은 점은 영화 를 제대로 보게 해주었다는 것이고 별 5개 영화를 뒤늦게 보게 해 준 점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그 를 보고 난 후 을 다시 보니 영화가 더 재미없어졌다는 점입니다. 제가 영화 와 연관성이 없다고 한 이유는 의 배경입니다. 는 1960년 작품이고 속의 영화 은 1970년대입니다. 그리고 영화 내용이 전혀 다릅니다. 초반 오정세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과 방직공장 여공의 모습에 구나 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다른 영화더라고요. 는 하녀와 집주인 사이의 불륜과 갈등이 내용이라면 은 불륜이 있지만 그냥 흔한 3류 막장 드라마이고 재산을 가지고 다투는 솔직히 뭔 내용인지 알고 싶지도 재미도 없는 내용입니다. 그냥 1970년대 반공 시대의 흔한 영화 촬영장을 배경으로 한 코믹극입니다. 재촬영을 하기 위해서 다시 모인 배우와 스텝들 영화 배경은 1970년대 한 영화 스튜디오입니다. 아마도 신필름을 모티브로 했다면 안양에 있는 영화 스튜디오일 것으로 보입니다. 김열 감독(송강호 분) 은 신 감독이라는 존경하는 감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항상 비교가 됩니다. 고민 끝에 김열 감독은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결말을 바꿔서 새로운 영화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재촬영하려면 제작비가 더 늘어나고 무엇보다 서슬 퍼런 공안정권이 허락을 해줄 리가 없습니다. 모든 영화를 시나리오 단계부터 검열하고 촬영 장소도 촬영본도 검열하는 암흑기였죠. 김 감독이 영화를 재촬영하겠다는 이유는 멸시 때문입니다. 신상호 감독 밑에서 머슴살이한다는 소리까지 듣자 모멸감에 재촬영을 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그게 선언한다고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죠. 이에 신상호 감독의 아내인 백 회장(장영남 분)을 설득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러나 딸인 신미도(전여빈 분)가 김열 감독의 수정된 시나리오를 보더니 명작이라면서 재촬영을 지원합니다. 그렇게 배우들을 다시 불러서 재촬영을 하는데 시나리오가 너무 달라지고 영화의 결말에 다들 말이 되냐고 말을 합니다. 그럼에도 감독의 말에 따라서 일사분란하게 영화 재촬영 준비를 합니다. 다만 한유림(정수정 분)이 드라마 촬영 중에 와서 컨디션이 좋지 못합니다. 그렇게 영화 재촬영을 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각종 소동극을 담은 영화가 입니다. 영화 전반에 관한 은유를 곳곳에 숨겨 놓은 영화 거미집 2023년 개봉한 의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은 영화에 관한 영화였습니다. 영화를 소재로 한 영화죠. 도 비슷합니다. 영화 촬영장을 소재로 해서 영화 문화 전반에 대한 은유가 가득합니다. 예를 들어서 난봉꾼인 주연 배우와 배역과 실제를 구분 못하는 메타포 연기를 지향하는 자. 관객 입장에서 나도 저렇게 연기하겠다는 사람이 직접 연기를 하자 혹평을 받는 모습 그리고 줄타기 저울질을 하는 조감독과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고 판단하는 기획자 등등 영화 제작 전반에 걸쳐서 펼쳐지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에 1970년대 유신정권 아래에서 검열이라는 엄청난 압박도 잘 녹였습니다. 사실 이 검열이라는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 70~80년대 군부독재정권에서 왜 세계적인 영화나 노래가 안 나온지 아세요? 특히 영화사를 보면 한국의 영화 암흑기는 70~80년대였습니다. 박정희 그리고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 정권은 문화 활동을 억압했습니다. 가수 앨범마다 건전가요가 강제로 들어가야 했고 영화 시작 전에 대한 뉴우스라는 국정 홍보 영상을 봐야 했습니다. 모든 영화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검열을 받아야 했고 완성 후에도 검열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그 무시무시한 사전검열 제도가 있었죠. 그래서 만화를 영화로 만든 이 공포라는 단어가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제목이 수정되었습니다. 여기에 고난위도 촬영술인 롱테이크 과정을 어떻게 촬영하는지를 생동감 있게 담습니다. 여기에 사망한 신상호 감독(정우성 분)이 등장해서 김열 감독을 압박하는 모습 등 크리에이터의 고뇌까지 전체적으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고 상영하는 모든 과정을 담았습니다. 감독 인터뷰에서도 나왔지만 영화 제작과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마치 거미집에 걸린 듯한 배우와 감독의 빛이자 어두움도 담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가장 크게 부각한 것은 창작자로서의 감독의 위치와 무게와 한계입니다. 창작자의 고통을 잘 담은 영화 창작은 극심한 고통을 유발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처럼 정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강박들을 크리에이터들은 가지고 있죠. 그러나 너무 생경스러운 걸 만들면 대중이 외면합니다. 그렇다고 대중 취향적인 요소만 잔뜩 넣어서 만들면 또 식상하다고 안 봅니다. 그래서 가수 윤종신의 말처럼 남들보다 한 두 발짝 앞서가야지 너무 멀리 가버리면 대중이 쫓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대중과 함께 가면 유치하다고 하고 너무 멀리 가면 난해하다면서 외면받습니다. 김열 감독의 고통은 신상호 감독이 친 거미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으로 재촬영을 하지만 결국 그 거미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관객들은 환호하는 모습에 더 무표정하게 변해갑니다. 이런 전체적인 영화 제작에 대한 다양한 고통과 고민과 코믹을 잔뜩 넣었습니다만 영화 은 재미가 없습니다. 영화 마니아가 아니면 뚱하게 보게 될 영화 영화 마니아가 아니라면 영화 은 재미없게 볼 겁니다. 영화 자체가 큰 재미가 없어요. 영화를 좋아하는 저도 영화 보면서 그래서 뭘 어쩌라고 식인 태도로 보게 되네요. 영화 제작 과정의 분란과 모습을 이미 다 아는 이야기이고 이걸 다양한 캐릭터로 보여주는 건 알겠는데 그 은유를 엮을 강력한 서사가 없습니다. 열등감에 사로 잡힌 감독이 명 감독이 친 거미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창의적인 내용을 넣어서 재촬영 하고 그 영화를 짧게 영화 속에 집어넣고 다시 스크린에서 나오는 과정 자체는 신선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놀라운 창의력이나 재미를 주지는 않습니다. 그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 관객 동원수가 아닐까 합니다. 저도 김지운 감독이라는 이름만 믿고 개봉할 때 보려고 했다가 너무 저조한 흥행 성적과 평을 보면서 뒤로 물러났습니다. 영화관람료 1만원 시대라면 조조를 선택해서라도 봤겠지만 1만 5천 원 시대에는 함부로 보기 쉽지 않고 최대한 살펴보고 보게 됩니다. 너무 저조한 흥행 성적에 안 봤는데 안 보길 잘했네요. 영화가 재미가 없습니다.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은 알겠지만 관객은 감독의 넋두리 같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닌 재미를 요구합니다. 그런 면에서 재미를 거미줄에 걸리게 하지 못했네요. 차라리 2020년 현재를 배경으로 했으면 어땠을까 하네요. 검열의 시대의 엄혹함을 담으려면 제대로 담아야 하는데 요즘 20,30대 관객들은 검열 시대의 엄혹함을 이해하지도 그게 뭐가 중헌디~~라고 볼 것 같네요. 나이 들수록 자기 고집보다는 남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김지운 감독의 아집도 좀 느껴졌습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지만 잘못 담으면 개인적인 넋두리로 담길 수도 있다고 생각되네요. 별점 : ★ ★ 40자 평 : 관객들에게 영화 제작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담은 거미줄을 쳤지만 재미는 다 빠져 나가다 반응형

1960년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왜 봉준호 감독이 추앙하는 지를 알게 되다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월 5일|사진

반응형 김지운 감독의 을 보면서 한국 명감독들이 존경하고 추앙하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품인 를 보고 봐야 하나 할 정도로 그 상황을 재현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없나 할 정도로 영화는 너무 지루하네요. 김지운 감독이 부터 예전 느낌이 많이 사라졌네요.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할 수 있지만 형식미만 가득하고 뭔 소리를 하고 싶은 건지 몰라서 1시간 정도 보다가 관람 중단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본 영화가 1960년 작품인 입니다. 놀랍게도 제가 를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네요. 클립 영상으로 부분 부분 본 게 전부였네요. 잘 알죠. 김기영 감독의 는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이고 역대 최고의 한국 영화에 TOP 5안에 들어갈 정도로 명성 높은 영화입니다. 보고 싶은 분들은 유튜브에서 '1960년 하녀' 또는 '김기영 하녀'라고 검색하면 바로 볼 수 있습니다. 김기영 감독 하녀의 줄거리 배경은 1960년대입니다. 대형 방직공장에서  여공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음악부 선생님인 동식(김진규 분)은 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경북 김천에서 주인이 하녀를 데리고 살다가 사건이 생겼어라는 말을 합니다. 이에 아내는 남자들은 비겁하다면서 하녀 따위에 관심을 가지냐고 합니다. 이에 동식은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하녀가 밥도 하고 빨래도 하고 우리와 삶을 공유하는 시간도 길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그리고 오프닝 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어린 남매가 실뜨기를 하는 장면을 담습니다. 수 없이 연습을 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실뜨기는 2분 이상 진행됩니다. 남자 아역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인 안성기입니다. 80,90년대 대표 한국 배우였던 안성기의 아역 시절을 볼 수 있는데 안성기 느낌이 전혀 안 들어서 알고 보지 않으면 잘 모르겠더라고요. 동식은 그날도 방직공장에 가서 피아노를 치면서 합창을 하는데 여공 곽선영이 연애편지를 유부남 동식에게 줍니다. 그러나 동식은 부도덕한 일이라면서 이걸 공장 관리자에게 알립니다. 관리자는 공론화하면 여공에게 큰 피해가 갈 수 있기에 이쯤에서 멈추길 바랐지만 동식의 강력한 의지에 곽선영을 부릅니다. 그렇게 곽선영은 정직 처분을 받지만 수치심을 이기지 못한 곽선영은 공장을 그만둡니다. 그런데 그 연애편지를 쓰라고 부축인 조경희(엄앵란 분)는 그걸 빌미로 개인 피아노 레슨을 받고 싶어 합니다. 마침 동식은 새 저택으로 이사를 갑니다. 그렇게 조경희는 동식의 두 아이들에게 호감을 사면서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옵니다. 동식은 경희에게 아내가 아프다면서 하녀를 구해달라고 하죠. 공장에서 담배를 피다가 경희에게 눈에 띈 동료 여공을 동식 집의 하녀로 소개합니다. 하녀(이은심 분)는 집에 오자마자 쥐를 때려잡는 용감무쌍함을 잘 보여줍니다. 이름이 하녀라서 그런지 가장 직설적인 캐릭터인 동식의 아들 창순(안성기 분)은 권력관계를 잘 알아서인지 하녀에게 반말을 하고 하대를 직접적으로 합니다. 그렇게 하녀는 동식 가족의 아랫 사람 취급을 당하면서 지냅니다. 아래에 있으면 위로 올라가고 싶은 게 인간 욕망이죠. 최소한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 합니다. 영화 초반은 별 내용이 없어서 좀 지루합니다만 중반부터 영화가 크게 요동칩니다. 같은 여공이지만 경희는 피아노 레슨을 받을 수 있고 같은 집에 살지만 동식은 절대로 피아노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녀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동식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여공 경희가 여공 곽선영이 고향에서 죽었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동식에게 사랑 고백을 합니다. 흑심을 꺼내서 보여주자 동식을 따귀를 때리면서 내쫓습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창가에서 모두 지켜본 하녀는 이 모든 것을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협박을 합니다. 대신 자신도 피아노를 치게 해 주고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아내에게 말을 했어야 하지만 동식은 반협박 반욕정으로 하녀와 동침을 합니다. 이후 영화는 관계의 전복이 일어납니다. 하녀가 상녀가 되자 파국으로 치닫다 인간 세상이 평등한 거 같지만 인류세 전체를 살펴보면 평등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평등한 세상이라면 허슬리의 에서 처럼 공동 보육의 시대가 되어야죠. '부모팔자 반팔자'라고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출발선상이 다릅니다.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계급 사회는 줄이거나 최소한 책임 관계로 전환을 해야죠.  사장과 말단 직원이 동등한 대우를 받고 특권 의식이 없는 세상이 되어야죠. 그러나 여전히 계급 사회입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고 외치지만 현실은 여전히 사람 위에 사람 있고 사람 밑에 사람 있습니다. 하물며 1960년대는 더 심했죠. 하녀라는 말을 직접적으로 쓰던 시대였습니다. 영화 은 하녀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작품입니다. 당시 는 극심한 계급 사회가 아닌 그냥 계급 사회 그 자체였습니다. 하녀가 2층에서 기거하는 걸 지하로 바꾼 것뿐이죠. 동식은 하녀를 하대하거나 막대하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진 않습니다. 교양인이니까요. 그러나 동레벨인 다른 여공인 경희에게만 피아노를 허락하는 건 차별입니다. 같은 계급이라고 해도 차별 대우는 모욕으로 느끼는 인간들입니다. 흥미로운 시선이에요. 계급 사회 타파를 뭉쳐서 외쳐야 하는데 계급 사회는 인정하면서 차별 대우는 못 참습니다. 계급 사회는 계급이 역전 당하면 더 험한 꼴을 보게 됩니다. 보면서 2022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떠올랐습니다. 하녀가 동식 집안을 박살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게 되자 동식 가족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에서 호화 유람선에서 하층민 같았던 승무원이어던 여자가 식량이라는 권력으로 권력 최상위층에 오르자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했습니다. 상위레벨인 줄 알았던 남자들이 먹이 앞에서 굴종을 하는 모습에 낄낄거리면서 보더라고요. 하녀는 이 계급 역전극을 후반 1시간 동안 보여주는데 파격과 파격의 연속입니다. 1960년 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영화가 왜 전 세계에서 극찬을 받고 한국 영화 중 대표작인지 잘 보여줍니다. 얼마나 좋으면 '마틴 스콜세지'가 이 영화 보고 봉준호, 박찬호 감독 등에 영향을 준 영화라고 대번이 인정하고 1억을 투척해서 복원 사업에 도움을 줍니다. 그래서 영상 초반에 '마틴 스콜세지' 재단에서 도움을 받았다는 영문 자막이 나옵니다. 파격적인 내용과 영상 연출에 탐복을 하다 뭔 영화이기에 이렇게 극찬을 하나 하고 봤지만 초반 1시간은 이런 영화를 왜 칭찬을 하고 극찬을 하지 했는데 집주인 동식과 하녀가 동침을 한 후 그 관계를 무기로 아내에게 알리면서 영화가 휘몰아칩니다. 보통 지금의 아내라면 남편의 불륜 사실에 당장 이혼하고 소송을 통해서 재산을 갈라치고 끝낼 겁니다. 그러나 동식의 아내는 가정을 지킵니다. 아내는 같은 여자라는 점을 이용해서 하녀를 설득합니다. 그리고 하녀에게 계단에서 굴러서 낙태를 유도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치정극인가 했는데  아내가 셋째인 막내를 낳습니다. 같은 아버지에서 태어났는데 하녀의 아기는 낙태를 당하고 아내가 낳은 아들은 애지중지 키우는 또 하나의 차별 대우에 하녀는 폭발을 합니다. 이후 하녀는 이 가정을 분쇄시킵니다. 이 과정이 주는 파격은 놀랍기만 하네요. 영화가 갑자기 스릴러로 전환합니다. 계급은 인정하지만 차별 대우는 하지마! 영화 는 실화를 모티브로 했습니다. 하녀가 주인집 유아 살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실화를 그대로 따르는 건 아니고 감독이 직접 창작한 시나리오입니다. 영화 에서도 내가 직접 쓴 창작 시나리오라고 강조 오브 강조를 하죠. 하녀는 악녀는 아닙니다. 그녀의 행동이 과한 것은 있지만 그렇다고 공감이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행동은 슬프기도 하면서 동시에 충격적인 장면이기도 합니다. 거의 모든 장면이 실내 촬영으로 이루어지지만 뛰어난 미장센과 스타일로 영화의 몰입감은 후반 내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성긴 점도 꽤 있는데 1960년대는 이제 막 경제 개발이 시작되던 시절이고 돈이 많던 시절도 아닌데 공장 음악 클럽 교사가 2층 집을 사는 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클래식 성악 가수나 유명 피아니스트도 아니고요. 그리고 엄앵란이 여공인데 공주원피스 같은 걸 입고 다니는 것도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남은 돈을 고향에 보내는 여공이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공주 원피스를 입고 그것도 개인 피아노 레슨을 받습니까? 한 달 월급 5천 원인데 1천 원을 하녀에게 주겠다는 엄앵란이 연기한 경희라는 캐릭터는 너무 과장이 심했습니다. 하지만 계단을 기가 막히게 사용했습니다. 2층 집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로망이죠. 전 한 번도 2층집에서 살아보지 못했고 고등학교 당시 친구 집이 2층 집인 점에 크게 놀랐습니다. 이 2층집은 중산층 이상을 표식 하는 도구인데 이 계단을 통해서 영화 내의 결정적인 갈등 구조를 잘 담고 있습니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진정한 사랑을 찾고 낙태를 당하고 죽음의 도구 등으로 계단이라는 간단명료한 도구로 영화 속 삶과 사랑과 계급 이동을 잘 보여줍니다. 이걸 보고 봉준호 감독이 지하로 내려가는 숨은 계단을 만든 것이 아닐까 하네요.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내 역을 한 주증녀 배우는 눈이 부리부리해서 화면을 잡아먹는 눈빛을 보여줍니다. 천상 배우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을 정도의 카리스마와 매력이 있습니다. 김진규야 워낙 잘 생기고 연기 잘하는 배우였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녀를 연기한 이은심이라는 배우입니다. 필모를 보니 1964년 에서 멈췄네요. 이 좋은 배우가 왜 더 오래 활동 못했을까요? 다행인 건 지금도 살아 계십니다. 1960년 제1회 한국 최우수 영화상 신인상을 받았네요. 그렇게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지만 파격은 계속 이어집니다. 이는 스포라서 담지 않겠지만 1960년 영화가 이런 연출을 했다는 것이 쇼킹하네요. 갑자기 배우가 카메라를 응시하고 관객에게 대사를 치는데 이런 기법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이 1953년 영화 에서 처음 사용한 기법입니다. 사진은 정면 응시를 요청하지만 영화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관객님들 불편하게 한다고 금기시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배우가 정면을 응시하고 관객에게 치는 대사가 기가 막힙니다. 인간 욕망을 직설적으로 말합니다. 그 한마디가 정곡을 제대로 찌르네요.  넌 안 그럴 걸 같아???? 에 뜨끔했네요. 영화 를 다 보고 영화 을 계속 봤습니다. 영화 에서 촬영하는 영화 내용이 하녀와 동일한가 했는데 아닙니다. 다릅니다. 완죤 달라요. 속의 영화는 3류 막장드라마네요. 보면 재미가 살아나나 했는데 오히려 비교가 더 되어서 더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거장 김기영 감독이라는 소리를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정말 대단한 연출력과 시나리오와 표현력입니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을 직접적으로 또는 은연적으로 담은 영화들이 꽤 있습니다.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김기영 감독의 하녀를 뒤늦게 보고 뒤늦게 탐복하네요. 별점 : ★ ★ ★ ★ ★ 40자 평 : 하녀를 통한 인간 세상과 욕망을 맛깔스럽게 담은 명작 영화 하녀 헌신적인 가장 동식, 아내를 위해 젊은 여인을 하녀로 맞이하다 방직공장의 음악선생인 동식은 헌신적인 아내와 함께 다리가 불편한 딸, 어린 아들을 보살피며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잘 생긴 외모로 인해 여공들에게 흠모 이상의 지나친 관심을 받고 난감해진다. 집을 근사하게 리모델링한 지 얼마 후 손바느질로 맞벌이를 해온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자 하녀를 찾기로 결심, 동식을 사모하던 여공 경희의 소개로 젊은 여인을 하녀로 맞이한다. 하녀는 품행이 방정치 못하지만 나쁜 여자처럼 보이진 않는다. 하녀와의 하룻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임신 이제 그의 가정과 삶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그러던 어느 날, 임신한 아내가 요양을 위해 친정에 간 사이 경희가 집으로 찾아와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그는 이를 매몰차게 거절한다. 이 장면을 지켜본 하녀는 경희가 나간 후 동식을 유혹해 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임신한다. 사실을 알게 된 동식의 아내 하녀를 계단에서 넘어뜨려 유산시키고, 아이를 잃은 하녀는 잔인한 복수를 시작하는데.. 평점 8.6 (1960.11.03 개봉) 감독 김기영 출연 김진규, 주증녀, 이은심, 엄앵란, 안성기, 고선애, 강석제, 나정옥, 나옥주, 옥경희, 최남현, 조석근, 남방춘 반응형

동네주민만 아는 숨은 아름다운 골목길 북촌 종로 계동4길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월 4일|사진

반응형 북촌은 보통 가회동 31번지 일대를 말하죠. 하지만 북촌은 남촌인 충무로 일대의 일본인들의 북쪽 진출을 막기 위해서 조선 건축왕 정세권이 지금의 주택처럼 다닥다닥 작은 한옥 지금 말로는 도시형 한옥을 가득 심어 놓은 곳을 말합니다. 팔판동, 삼청동, 가회동, 계동, 재동, 익선동, 원서동을 아우르는 동네를 말합니다. 최근에 읽은 책 에서 이 북촌에 대한 장단점을 소개했습니다. 단점부터 말하면 약국, 슈퍼, 전통시장, 대형마트, 아이들 학원 등등 다른 동네에는 흔하게 있는 것들이 없습니다. 가장 불편한 건 주차죠. 주차장이 많지도 않고 공용 주차장은 주말에는 관광객들이 차지하는 등등 전체적인 생활 편의는 떨어집니다. 그러나 골목이 많고 운치가 있고 풍광이 좋고 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공예박물관 각종 맛집과 종로의 많은 핫플레이스가 지근거리라는 점이 장점입니다. 북촌 골목길 고인물인 나만 알고 싶은 골목길 2006년 처음으로 삼청동과 원서동 일대를 다니면서 서울에 이런 곳이 있구나? 할 정도로 한옥이 많고 골목길이 많은 이 북촌에 홀딱 반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17년 넘게 매달 1번 정도 이 동네를 습관적으로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내가 사는 동네도 아닌데 자주 간다? 그만큼 이 북촌은 참 매력 넘치는 동네입니다. 지금은 관광지화 되어서 주민들과 갈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모든 곳이 관광객들이 많은 것은 아니라서 나만 아는 골목길과 공간을 주로 다니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처음 알게 된 한옥 공간도 알게 되었고요. 안타깝게도 주민들이 떠난 한옥 건물을 서울시가 매입해서 갤러리나 공유 공간으로 개방하거나 민간 업체들이 제품 체험 공간이나 전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더라고요. 원서동을 지나서 계동으로 향했습니다. 종로구는 1동, 2동 같이 갑작스럽게 사람이 불어서 생긴 동이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있던 4대문 안에 있던 동이 많아서 동 이름이 다 달라요. 중앙고가 있는 계동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앞으로 한 분이 지나가면서 마을버스가 눈 때문에 안 다닌 다는 말에 다들 걸어가시네요. 여기가 언덕이 많고 마을버스가 작아서 눈이 내리면 오르내리기 어려운가 봅니다. 이거 열선 맞죠? 여기만 눈이 녹아 있어요. 열선이 모든 언덕길에 다 깔려 있는 건 아닌가 보네요. 사실 연탄 때던 시절에는 눈이 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와서 눈을 쓸고 지나가는 사람 넘어지지 않게 연탄재 깨서 뿌리곤 했죠. 원서동은 창덕궁 돌담 옆 동네인데 저 멀리 창덕궁의 운치 있는 껑충한 소나무 위에 눈이 소복하게 쌓였네요. 이 원서동에서 계동 가는 언덕길에는 예쁜 카페와 공방들이 많아요. 2단, 3단 눈사람이 입구에 있네요. 그런데 이 언덕길에서 옆으로 쑥 들어가면 동네 사람만 아는 골목길이 많습니다. 골목길도 종류가 많아서 차가 다니는 골목길이 있고 사람만 다니는 골목길이 있는데 이 계동, 원서동, 가회동, 삼청동에 사람용 골목길이 엄청 많아요. 이 골목길은 저도 한 5년 전에 알았을 정도로 동네 사람 아니면 모릅니다. 그중 소개할 골목길이 창덕궁 4길 중간에 있는 골목길이에요. 35와 39 사이네요.  그리고 위 계단은 계동 4길입니다. 계동4길은 정말 우연이 올라가 봤는데 그 아름다움에 반했습니다. 올라가면 두 사람만 겨우 지나가는 돌담이 있는데 돌담에 글미이 그려져 있네요. 10년 전에는 사진이 걸려 있기도 했어요. 담벼락이 하나의 갤러리가 됩니다. ㄱ자로 된 골목왼쪽은 대동세무고등학교가 있습니다. 조심 조심 내려갔습니다. 보시면 지나가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눈 위의 발자국이 적네요. 사실 여기는 관광객이 찾기 어려운 골목입니다. 저같이 종로 북촌 고인물만 알죠. 그래서 저만 아는 골목길인줄 알고 계동 4길을 내려가는데 관광객 두 분이 사진 찍고 있네요. 이 계동 4길은 중앙고 앞의 계동길과 연결되는데 그 끝에 북촌 한옥 역사관이 있습니다. 여기서 조선건축왕 정세권의 일생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북촌 일대에 다닥다닥 작은 도시형 한옥을 만든 이유은 일본인들이 북촌으로 진출하려고 하자 집주인을 많이 만들면 이 일대를 대량 매입해서 개발하기 어렵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지금도 재개발이 어려운 지역을 보면 집주인들이 많은 지역으로 이해타산이 다 달라서 개발이 어렵습니다. 그걸 노렸어요. 집주인이 한 두 사람이면 그냥 싹 개발하고 일본인 거주지로 변신했겠죠. 자주 찾는 길도 눈이 내리니 전혀 다른 길이 되네요. 이 길이 빌라나 주택 같이 지붕이 평평한 곳이라면 이런 풍경  안 나오죠. 기울어진 기와 위에 소박하고 소복하게 내린 눈이 운치를 만듭니다. 그래서 눈 오면 전 이 북촌으로 자주 가요. 제대로 된 눈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중앙고등학교 앞 계동길 주변의 숨은 한옥 체험 공간 여기가 계동길입니다. 저 끝에 있는 학교가 중앙고등학교입니다. '겨울연가'의 배경이 되어서 한 때 일본인 관광객들이 준상이 다니는 학교라서 많이 찾았죠. 그나저나 배용준이나 서태지나 한 시대를 주름잡던 연예인들이 활동을 거의 안 하네요. 그러고 보면 서서히 늙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아남은 연예인들이 참 대단해 보여요. 계동길은 최근에 뜨는 길입니다. 이 길은 중앙고에서 시작해서 현대건설 계동 본사까지 이어집니다. 이 동네가 예쁜 결정적인 이유가 2가지 있는데 아파트가 안 보여서 하늘이 많이 보인다는 겁니다. 계절의 변화를 온 몸으로 받아야 해서 춥고 더울 때는 짜증 날 수 있지만 봄가을에는 사람이 정말 많이 찾을 정도로 관광객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한옥 건물이 많다는 겁니다. 한옥이 살기 좋은 건물은 아니죠. 춥고 더우니까요. 그러나 작지만 마당이 있고 운치가 좋아서 한옥에 거주하는 분들도 많아요. 여기는 사진전문 갤러리였는데 김치 아카데미로 바뀌었네요. 좋은 전시 공간이었는데 아쉽네요. #북촌라운지 계동길에는 북촌라운지가 있어요. 서울시는 최근 한옥을 매입해서 공공 한옥으로 만들고 있어요. 서촌 라운지와 함께 북촌라운지는 다도, 북촌 산책 프로그램들을 운영합니다. 들어가보니 다도 체험을 하고 있는지 수다가 들렸습니다. 어떻게 활용하는지 몰라서 구경만 하고 나왔네요. 한옥의 창호지 대신 유리로 툇마루를 막았네요. 이게 이제시대에 사용한 계량 한옥 방식인데 이걸 좀 더 현대화했네요. #모두의 갤러리 여기는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예요. 여기는 최근에 알게 된 곳인데 계동을 그렇게 다니고서도 최근에 알았어요. 하기야 최근에 한옥을 매입해서 공공에 개방한 곳일 수도 있겠네요.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거의 망했어요. 대표적으로 독산동 우시장 일대 도시재생이 대표적이죠. 세금만 들이고 변화는 없어요. 재생이 아닌 현상 유지도 못하고 있어요. 도시재생 망한 케이스면 독산동 도시재생 찾아보면 됩니다. 반면 여기 북촌 일대, 서촌 도시재생은 아주 잘했습니다. 먼저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 확 늘고 한옥 체험 공간이 늘었어요. 주민 참여 프로그램도 많고요. 북촌도시재생지원센터 옆에는 북촌주민 사랑방과 모두의 갤러리가 있어요 위 사진 왼쪽에 수다 소리가 나오는데 동네 사랑방이에요. 한옥 건물 안에서 동네 분들이 수다 삼매경이네요. 여기는 모두의 갤러리로 수시로 좋은 전시회를 해요. 지금은 운영 안 하는데 또 날 좋아지면 좋은 전시회 많이 할 거예요. 옆에도 한옥 건물이 지어지고 있네요. 접근성은 안 좋지만 이런 공간이 이 북촌 일대에 크게 늘어나고 있어요. 위치는 지도로 소개하겠습니다. 반응형

눈 내린 창덕궁 옆 원서동의 아름다움

사진은 권력이다|2024년 1월 2일|사진

반응형 서울에서 걷고 싶은 길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로 일대는 골목이 많아서 걷기 좋고 걷고 싶은 길이 많습니다. 차만 안 다녀도 걷기 좋은 길이 만들어지지만 서울에서 차가 안 다니는 도로는 익선동 골목 같이 사람만 겨우 지나다니는 골목 아니면 어렵습니다. 그래서 거의 모든 길이 차와 사람이 경쟁을 하는 도로인데 차가 갑이라서 사람은 수시로 차량 오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차와 사람이 같이 다니는 길 중에서 걷고 싶은 길들은 북촌한옥마을 일대입니다. 지금도 북촌에는 차량이 참 잘 다닙니다. 다만 차량이 덜 다니죠. 안 다녔으면 좋겠지만 여기 북촌한옥마을 일대는 주거지라서 차가 다녀야 합니다. 그럼에도 걷기 좋은 길로 추천하는 이유는 동네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눈내린 서순라길 지나 원서동까지 종묘 옆 서순라길은 종묘 담장을 끼고 걷는 길이라서 운치가 아주 좋습니다. 가로수를 죄다 잘라서 새로 심는 바람에 예전만큼의 운치가 있는 건 아니지만 돌담은 그대로라서 여전히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네요. 최근에는 20,30들을 위한 펍과 음식점 카페가 많이 생겼습니다. 돌담뷰가 아주 좋죠. 주얼리홍보센터 건물도 참 예쁘네요. 이 근처에 종로3가 귀금속 거리가 있어요. 종묘 돌담길 따라서 창경궁으로 가려다가 너무 멀어서 그냥 북촌한옥마을로 향했습니다. 북촌한옥마을은 그 크기가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아요. 물리적 위치는 가회동 일대이지만 크게 보면 팔판동, 삼청동, 가회동, 계동, 원서동까지 아우릅니다. 창덕궁 주변은 한옥 건물이 참 많아요. 한옥 밀집 지역이 달리 밀집 지역이 아니에요. 눈은 같은 공간도 달리 보이게 하는 마법의 가루입니다. 창덕궁은 안 들어갔습니다. 종묘갔다와서 좀 더 색다른 풍경을 담고 싶어서요. 이날 외국인 관광객들은 날 제대로 잡으셨네요. 날도 따땃하고 폭설에 보기 드문 광경을 보셨을거에요. 저도 한 10년 만에 폭설 제대로 경험했네요. 습기 가득한 눈이라서 눈 뭉치기도 좋았어요. 눈사람이 여기저기에 세워졌는데 한 세대 전과 달라진 점은 이 정도 눈이면 동네 아이들이 장갑도 안 끼고 눈 싸움 할텐데 아이들이 없어요. 최근에 읽은 책 에서 원서동에 사는 경험을 들을 수 있었는데 창덕궁이 자신의 정원이라는 소리에 무척 부러웠어요. 저를 포함 많은 사람들이 이 풍광에 반해서 여기서 살아볼까 하죠. 그런데 주차, 학생들 학원, 대형마트 및 각종 쇼핑 등등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불편을 각오해야 한다고 해요. 그래도 전 다 포기하고 이 근처에서 살고 싶어요. 정말 간절하게요. 그래서 준비 중입니다. 노무현 시민센터도 있고 각종 문화 공간과 전시 체험 공간이 많은 것은 장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에서 느낄 수 없는 정겨움도 있고요. 제가 원서동을 처음 간 게 2006년이었어요. 그때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만 가득했던 시기였어요. 그때 원서동과 북촌 여행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무려 20년 가까이 되는 지금도 즐겨 찾고 있네요. 이만한 곳을 서울에서 볼 수가 없어요. 이렇게 한옥 건물도 많고 동네 조용하고요. 최근 핫플레이스가 되어서 유동인구 관광객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조용합니다. 북촌한옥마을이 있는 가회동 일대는 정말 북적이지만 바로 옆인 원서동은 잘 몰라요. 여기가 북촌 1경이에요. 창덕궁 건물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제가 사진 찍으니까 다른 외국인 관광객도 함께 찍더라고요. 창덕궁 돌담길 옆 원서동을 걷다 보니 눈사람이 참 많네요. 자세히 보면 새끼도 있어요.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소나무가 부러졌습니다.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서 부러지네요. 눈이 습기가 많고 폭설인데 침엽수 위에 쌓이니 그 무게가 꽤 무거운가 봅니다. 원서동은 자동차 CF에도 나오고 드라마에서도 참 많이 나온 동네에요. 봉준호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을 하러 가끔 오는 카페도 있고요. 설국열차 개봉 당시에는 '틸다 스윈튼'과 '봉준호' 감독이 같이 커피를 마셨다고 하네요. 한국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의 미술관도 있어요. 위 사진에서 왼쪽 건물이에요. 이 독특한 건물은 태재대학교에요. 신설대학교라고 하는데 여기는 들어가고 싶은데 기회가 없네요. 2023년에 생겼으니 최근에 만들어진 대학교네요. 글로벌 리더 양성이 목표라고 하네요. 태재대학교 앞 풍경이 정말 좋네요. 여기는 가끔 올 때마다 더 갈 수 없어서 아쉽고 들어가볼 수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바로 옆에는 원서동 백홍범 가옥이 있어요. 그리고 원서동 빨래터가 있습니다. 이 원서동은 6.25 전쟁 이후에 허물어진 창덕궁 담장을 끼고 한옥과 판자촌이 가득했어요. 지금은 판자촌이 사라졌지만 피난민들이 많이 정착했습니다. 그 피난민들이 빨래하던 곳이 이 원서동 빨래터입니다. 물론 조선시대부터 빨래터였어요. 창덕궁에서 내려온 물에 빨래를 하던 곳입니다. 원서동을 10년 넘게 다녔지만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릴 때 가본 적은 처음인데 눈이 내리니 더 아름답네요. 행운이 가득한 하루였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