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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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3 posts파친코 시즌2 감동과 재미가 더 늘어난 완벽한 드라마
이민진의 소설 는 요 몇 년 사이에 본 드라마 중 최고의 드라마였습니다. 완벽에 가깝다는 말, 역대급이라는 말이 난무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 과잉된 단어가 딱 맞는 드라마도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입니다. 시나리오, 연출, 연기, 음악과 미술과 CG까지 할리우드 자이 가득 묻은 한국 아니 정확하게는 모국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에게는 잊혀진 존재인 자이니치(재일동포)를 세상에 알리는 훌륭한 드라마입니다. 파친코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건 재일동포들의 고통 친일 대통령이 세상에 나올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승만이 반민특위라는 친일부역자들을 색출해서 퇴출시키는 위원회를 이승만 대통령이 박살을 낸 이후 그 서슬 퍼런 군부 정권이었던 박정희 정권 때도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도 친일을 외치지 않았죠. 왜냐하면 그게 국민 정서였으니까요. 명백히 일본은 한국을 강탈한 가해 국가이고 그 가해의 사실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머리 숙여 사과한 적이 없습니다. 한 번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서울 고고학과의 아주 늙은 교수가 강연을 하는데 일제강점기를 미화하는 말에 구역질이 났습니다. 생각보다 한국 엘리트 중에 친일파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일제를 대놓고 미화하지 못하는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현 대통령의 묵인 아래 친일파들이 다시 들끓어 오르고 있습니다. 황석영 작가의 한 인터뷰에도 나오지만 도둑이 물건 훔치려고 사다리까지 동원해서 훔쳐갔는데 사다리를 놓고 갔다고 고마워해야 한다. 신문물 사다리를 준 도둑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쥐고 있습니다. 최근 개편한 교과서에 뉴라이트 계열의 집필진이 들어가는 걸 봐도 나라가 거꾸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일제강점기의 피해는 많이 아물긴 했습니다. 다만 여전히 일본은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고 독도를 자기네들 땅이라고 줄기차게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도 일제 강점기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재일동포들입니다. 이 재일동포는 한국 사람들도 잊은 존재들입니다. 파친코에서 모자수 역을 연기하는 재일동포 배우 박소희의 인터뷰를 보면 재일동포로 사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재일동포 국적 중에 한국도 있지만 정대세 같은 북한의 국적을 가진 조선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적을 가진 분들은 한국에 방문을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 김대중 정부 때는 100%에 가깝게 허용했지만 이명박 박근혜 같은 보수 정권 때는 조선적을 가진 재일동포의 입국 허가율이 50%도 안 되었습니다. 참 웃기죠. 남북으로 갈리고 동포도 남북으로 갈립니다. 이분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또는 그 이전에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분들도 많은데요. 물론 드라마 파친코에서처럼 자발적으로 간 분들도 있습니다. 강제로 끌려간 분들은 한국에 돌아와서 환영을 받았을까요? 아니죠. 화냥녀도 그렇고 아무 죄도 없이 나라가 힘이 없어서 끌려간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오면 그렇게 돌팔매질을 했습니다. 한국인들이 요즘 젊은 세대나 좀 개방적이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 분들이 참 많아요. 이런 존재가 세상에 있을까요? 모국이 없는 분들이죠. 모국이 왜 없어? 한국이 모국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박소희 배우는 자신의 태어난 나라는 일본이라서 모국은 일본이지만 할머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즉 할머니가 자신의 모국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일본으로 온 할머니를 선택했습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풍경입니까? 내 뿌리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할머니라고 말하는 자체가 이 재일동포들의 고통을 잘 담고 있습니다. 이런 재일동포의 고통을 잘 담은 영화가 , 입니다. 재일동포들의 삶이 어떤지를 아주 잘 표현한 아주 좋은 영화입니다. 손정의가 1990년에 한국 국적에서 일본 국적으로 바꾼 걸 봐도 한국 국적이든 조선적이든 뿌리를 지키고 사는 건 참 쉽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손정의 집안이 큰돈을 번 건 아버지가 파친코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기 때문입니다. 왜 파친코인가? 재일동포들이 일본어를 유창하게 해도 특정 발음을 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드라마 에서도 나오지만 일본어 십오원 오십전을 쥬우고엔고쥿센라고 발음하면 일본인 주고엔고짓센으로 발음하면 조선인이라고 구별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특정 발음을 못하는 러시아 사람들의 특징을 이용해서 특정 단어를 발음하라고 해서 제대로 하면 우크라이나인, 틀리면 러시아인으로 구분했듯이요. 그러나 조선 사람들은 적국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이렇게 차별을 하고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들은 우물에 독을 탔다는 악성 루머를 퍼트리고 무려 6천 명의 조선인들을 학살합니다. 이런 일본에서 재일동포는 2등 국민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각종 차별과 대우에 제대로 된 교육이나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웠죠. 그러나 일본인들이 꺼려하는 것이 있었는데 파친코 같은 사행 사업은 잘하려고 하지 않았죠. 이에 온갖 차별과 멸시로 변변한 직장을 가질 수 없었던 재일동포들은 1950년대부터 파친코 사업에 뛰어들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드라마 에서 1989년에 모자수가 파친코 게임장을 개설한 것도 다 재일동포로서 일본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이 없고 이미 재일동포들이 이 파친코 사업을 꽉 잡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의 힘이기도 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차별 대우를 받자 할 게 없어서 대부업을 한 것처럼요. 파친코가 뛰어난 드라마인 이유 3가지 1. 뛰어난 원작과 시나리오 이민진 작가는 무려 4년 동안 일본에서 머물면서 수많은 재일동포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중에 모자수 역을 연기한 박소희 배우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4년 동안 집필한 소설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저도 1권을 읽어 봤는데 드라마와 꽤 다르더라고요. 내용은 동일한데 드라마는 1940년대, 198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합니다. 2개의 시간대가 동시에 출발해서 교차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원작 자체도 뛰어나지만 더 뛰어나게 만든 건 시나리와 연출이었습니다. 원작도 얼마나 철저하게 조사를 했는지 개연성을 넘어서 실제 존재했던 삶을 담은 느낌까지 들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건 4년이라는 지난한 인터뷰와 연구 과정이 잉태해 낸 결과겠죠. 그렇다고 오류가 없었던 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서 시즌 1에서 민족주의자였던 어부가 일본 순사에게 끌려가면서 홍난팜의 봉선화를 불렀지만 1920년대 배경에 친일 이력이 있는 40년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는 역사 전문가 심용환의 자문에 바로 어부가로 수정을 합니다. 이런 유연성도 드라마의 몰입도에 큰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도 뛰어난 자문가가 붙어서 대본을 수정하고 정정하고 가는 이런 탄탄한 원작 위에 유연함까지 들어가니 시나리오의 완성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2. 연출과 미술팀 트윈스터즈 2016년 개봉 연출은 한국계 미국인인 '코고나다'와 '저스틴 전'이 같이 연출을 했습니다. '저스틴 전'은 2016년 개봉한 다큐 를 총괄 기획하고 몇몇 영화를 연출했지만 '트와일라잇'에서 조연을 하는 등 연기자 활동도 많이 했습니다. '코도나다'는 2022년 갭오한 여러 평론가들이 칭송을 한 을 연출한 감독입니다. 두 한국계 미국인 감독이 원작을 더 맛깔스럽게 만들었네요. 미술팀도 칭찬을 안 할 수 없습니다. 1940년대 오사카 거리를 재현한 세트장이 한 방에 그 시절로 안내합니다. 여기에 복장이나 여러 소품을 보면서 탐복을 했습니다. 미술팀이 정말 열일했습니다. 미국 드라마지만 한국 드라마 보다 더 뛰어난 미술팀의 활약에 이게 가능한가 했네요. 스크롤을 살펴보면 미술팀 대부분은 외국인이고 한국 분들이 자문 역할을 했네요. 엄청난 재현에 탐복했습니다. 3. 배우들 보면서 같은 배우도 무대가 달라지면 그 배우가 더 뛰어나게 보일 수도 있구나를 느끼게 했습니다. 윤여정 배우야 말할 것도 없고 낯선 배우였던 주인공 선자를 연기한 김민하의 연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배우가 있었나 할 정도로요. 이외에도 이삭 역을 한 노상현과 모자수의 박소희와 한수의 이민호의 연기도 꽤 좋습니다. 이민호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느낌은 이전에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좀 더 무게감 있는 연기를 해서 좋네요. 이외에도 연기 잘하는 한국 배우들과 외국 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참 좋네요. 파친코 시즌2가 더 재미있는 이유 파친코 시즌2는 1945년 오사카와 1989년 거품경제의 절정이었던 도쿄를 배경으로 합니다. 파친코 시즌2를 보려면 시즌 1을 봐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는데 네! 꼭 봐야 합니다. 안 보면 이야기를 알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다이제스트 영상으로라도 봐야 합니다. 다만 압축 영상으로 보면 감동도 재미도 압축되어서 제대로 즐길 수 없습니다. 파친코 시즌 1에서는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숙박업을 하는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선자가 일본에서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번 한수의 아이를 임신했지만 한수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됩니다. 그렇게 선자는 한수를 손절합니다. 이때 선자네 민박집에 목사 수업을 받는 이삭이 숙식을 하게 되고 병색이 심했던 이삭은 죽다 살아납니다. 이삭은 배가 불러오는 선자를 보고 자신과 결혼하자고 하죠. 이삭은 선자와 함께 오사카로 향하고 거기서 결혼을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아들도 아닌 노아를 키우면서 모자수를 낳습니다. 그러다 이삭이 공산주의를 전파하는 이적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히게 되고 선자는 김치를 담가서 가족을 먹여 살립니다. 시즌 1이 이 장면에서 끝나고 시즌2는 바로 이어집니다. 1945년 오사카는 미군의 폭격이 예정되어 있었고 누구보다 정보력이 좋고 돈이 많은 선자 주변을 여전히 맴도는 한수의 도움을 받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삭이 감옥에서 나옵니다. 시즌 1에서는 마무리되지 못했던 1989년의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이 금융계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담길 듯합니다. 집을 팔지 않겠다던 재일동포 할머니가 드디어 마음을 여네요. 이게 다 선자가 수시로 솔로몬에게 너의 뿌리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간직했기에 가능했을 겁니다. 여기에 오사카가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는 고난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모자수의 똘망함도 볼 수 있고 무엇보다 노아가 겪는 따돌림과 울분의 눈물이 자박자박하게 깔립니다. 시즌 1이 시작이었다면 시즌 2는 시즌 1의 인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닌 그 인기에 더 힘을 내는 부스터를 단 드라마입니다. 최근에 본 드라마 중 가장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이고 친일을 외치는 현 정부의 행동에 더 분노하면서 보게 되네요. 어쩌다 나라가 이 꼬락서니가 되었는지 개탄스럽기만 하네요. 국민이 분노하지 않으면 친일파들이 일제 시대를 찬양하는 일은 더 많아질 겁니다. 그래서 파친코 시즌2가 더 절실하게 느껴지네요. 파친코 시즌2 시간 금 (2024-08-23~) 출연 윤여정, 이민호, 김민하, 진하, 박소희, 정인지, 안나 사웨이, 지미 심슨, 정은채, 김성규, 노상현, 한준우, 미나미 카호 채널 Apple TV+
1984~90년까지 영화잡지 스크린을 영상자료원이 공개
세금 축내는 공공기관들이 엄청 많습니다. 왜 있는지도 모르는 곳도 많고 하는 일도 없는 공공기관을 보면 한숨이 나오죠. 특히 최근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를 보면 세금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다릅니다. 내가 만난 최고의 공공서비스, 가장 열정적인 공공기관이 바로 영상자료원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등등 영화 관련 공공기관이 많지만 영화진흥위원회는 구설수도 많고 신뢰가 안 가지만 영화를 기록하고 보관하고 소개하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은 정말 일 잘합니다. 영화마니아들의 아지트 영상자료원 영상자료원은 한국에서 만든 모든 영화의 백업본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법에 따라서 영화를 제작하면 무조건 1벌을 영상자료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제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지급합니다. 그렇게 지급 받은 영화 필름이나 디지털 파일은 영상자료원에서 보관 관리합니다. 이중 백업으로 하나는 영상자료원 수장고에 또 하나는 파주시에 있는 영상자료원 수장고에 저장합니다. 한 곳에 불이 나서 전소되어도 다른 곳에 백업 본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 있는 시네마테크 1~3관에서 수시로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특히 독립영화를 많이 소개하고 좋은 영화를 현재와 과거 가리지 않고 수시로 상영합니다. 여기서 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관에서 보길 천만다행으로 그 엄청난 비주얼 쇼크는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영화박물관이 1층에 있는데 상설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에서 다양한 영화 관련 전시를 합니다. 한국 영화 역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나가보면 영화관련 서적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영화 이론 서적도 적고요. 가끔 나오기는 하는데 다른 분야보다 유난히 적어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영화 보는 훈련이나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요.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제공했던 영화잡지들 그래서 많이 발달한 것이 잡지입니다. 영화 잡지는 최신 개봉 영화 정보와 해외 영화 흐름이나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나 비평과 인기 스타들의 대형 사진을 통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정보욕을 충족해 줬습니다. 60년대는 출판 기술이 좋지 못해서 위 사진처럼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표지가 있었네요. 그러다 총천연색 컬러 사진으로 무장한 사진잡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스크린으로 1984년 첫 창간을 합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홍콩 영화 스타들을 주로 소개하던 로드쇼가 1989년 창간을 합니다. 로드쇼는 영화계의 예수인 정성일 평론가가 데스크로 있었던 곳입니다. 당시 친구는 스크린을 사고 저는 로드쇼를 사서 학교에서 바꿔보곤 했었고 이때 시네키드가 됩니다. 좌 스크린, 우 로드쇼. 영화 잡지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씨네21만 남아 있는 느낌이고 그 마저도 개봉하는 영화가 적어지다 보니 책 리뷰를 하고 엉뚱한 내용들이 많이 올라와서 영화계 전체가 망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한국일보 출신 국회의원 조세형이 만든 스크린 1984년 3월 스크린이 창간을 합니다. 창간호 표지 모델은 브룩쉴즈입니다. 80년대 서양 3대 미인은 브룩 쉴즈, 왕조현, 소피 마르소였는데 이중 브룩 쉴즈가 항상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닌 당시 설문조사하면 항상 1위였습니다. 이 로드쇼는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거쳐서 국회의원이 되었던 조세형이 만든 영화 잡지입니다. 80년대만 해도 이렇다 할 영화잡지가 없었어요. 해외 영화는 지금과 달리 프랑스, 영국, 미국, 홍콩, 이탈리아 등등 다양한 국가에서 수입한 영화를 만나고 있었고 몇몇 배우들은 엄청난 팬덤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을 충족해 줄 영화 잡지가 없었죠. 이런 영화에 대한 갈망 특히 지금보다 더 심했던 배우들에 대한 갈망을 한 방에 풀어준 것이 스크린이었습니다. 스크린은 잡지에 수 많은 컬러 사진을 잔뜩 실었습니다. 게다가 80년대부터 컬러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총천연색 해외 유명 배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잔뜩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명 배우를 코팅한 책받침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생긴 배우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성형술이 발달한 시절도 아니었고요. 다 추억이죠. 다 추억인데 추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1984년~ 90년까지 월간 스크린을 PDF 파일로 공개하다 영상자료원 2층에는 영상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서 스크린 잡지를 꺼내보곤 합니다. 그 당시 느낌도 가득나고 영화 정보도 많아서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가져가서 볼 수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영상자료원이 저작권자와 협의 후에 1984년 창간호부터 90년대까지 발행한 스크린을 PDF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https://www.kmdb.or.kr/collectionlist/detailList?colId=862&codeNm=&dataNm=&sort1=&sort2=&sort3=&sort4=&sort5=&&nowPage=1&cntPerPage=10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출처 : KMDB] www.kmdb.or.kr 영상자료원 가입을 한 후에 위 링크를 누르세요. 각 호에 대한 정보와 함께 상단 PDF를 누르면 스크린 잡지를 스캔을 한 PDF 파일이 나옵니다. 추억 돋네요. 당시 광고도 보이고 당시 인기 스타들의 대형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데 낮인데도 술이 생각나네요. 돌아올 수 없던 시절이라서 그런가 보네요. 80년대는 야만의 시대이자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사회 시스템이 완성되지 못하던 시절이라서 편법이 몰상식이 난무했지만 누구나 쉽게 돈을 벌던 시절이라서 여유도 있었죠. 지나고 보니 다 그립기만 하네요. 결과를 아니 그리운 것이지 80년대가 현재였다면 불안이를 업고 다녔서 행복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을 겁니다.
1984~90년까지 영화잡지 스크린을 영상자료원이 공개
세금 축내는 공공기관들이 엄청 많습니다. 왜 있는지도 모르는 곳도 많고 하는 일도 없는 공공기관을 보면 한숨이 나오죠. 특히 최근 공무원들의 각종 비리를 보면 세금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다릅니다. 내가 만난 최고의 공공서비스, 가장 열정적인 공공기관이 바로 영상자료원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등등 영화 관련 공공기관이 많지만 영화진흥위원회는 구설수도 많고 신뢰가 안 가지만 영화를 기록하고 보관하고 소개하는 서울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은 정말 일 잘합니다. 영화마니아들의 아지트 영상자료원 영상자료원은 한국에서 만든 모든 영화의 백업본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법에 따라서 영화를 제작하면 무조건 1벌을 영상자료원에 제출해야 합니다. 물론 제출에 들어가는 모든 비용은 지급합니다. 그렇게 지급 받은 영화 필름이나 디지털 파일은 영상자료원에서 보관 관리합니다. 이중 백업으로 하나는 영상자료원 수장고에 또 하나는 파주시에 있는 영상자료원 수장고에 저장합니다. 한 곳에 불이 나서 전소되어도 다른 곳에 백업 본이 있기에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 있는 시네마테크 1~3관에서 수시로 다양한 영화들을 상영합니다. 특히 독립영화를 많이 소개하고 좋은 영화를 현재와 과거 가리지 않고 수시로 상영합니다. 여기서 본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은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관에서 보길 천만다행으로 그 엄청난 비주얼 쇼크는 아직도 기억나네요. 그리고 영화박물관이 1층에 있는데 상설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에서 다양한 영화 관련 전시를 합니다. 한국 영화 역사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점에 나가보면 영화관련 서적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영화 이론 서적도 적고요. 가끔 나오기는 하는데 다른 분야보다 유난히 적어요. 그래서 체계적으로 영화 보는 훈련이나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아요. 영화에 대한 모든 것을 제공했던 영화잡지들 그래서 많이 발달한 것이 잡지입니다. 영화 잡지는 최신 개봉 영화 정보와 해외 영화 흐름이나 다양한 영화에 대한 이론적인 설명이나 비평과 인기 스타들의 대형 사진을 통해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정보욕을 충족해 줬습니다. 60년대는 출판 기술이 좋지 못해서 위 사진처럼 그림인지 사진인지 구분이 안 가는 표지가 있었네요. 그러다 총천연색 컬러 사진으로 무장한 사진잡지가 등장합니다. 하나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진을 많이 볼 수 있었던 스크린으로 1984년 첫 창간을 합니다. 그리고 80년대 중반 홍콩 영화 스타들을 주로 소개하던 로드쇼가 1989년 창간을 합니다. 로드쇼는 영화계의 예수인 정성일 평론가가 데스크로 있었던 곳입니다. 당시 친구는 스크린을 사고 저는 로드쇼를 사서 학교에서 바꿔보곤 했었고 이때 시네키드가 됩니다. 좌 스크린, 우 로드쇼. 영화 잡지의 전성기였던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이었습니다. 지금은 씨네21만 남아 있는 느낌이고 그 마저도 개봉하는 영화가 적어지다 보니 책 리뷰를 하고 엉뚱한 내용들이 많이 올라와서 영화계 전체가 망하고 있다는 느낌까지 듭니다. 한국일보 출신 국회의원 조세형이 만든 스크린 1984년 3월 스크린이 창간을 합니다. 창간호 표지 모델은 브룩쉴즈입니다. 80년대 서양 3대 미인은 브룩 쉴즈, 왕조현, 소피 마르소였는데 이중 브룩 쉴즈가 항상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건 제 생각이 아닌 당시 설문조사하면 항상 1위였습니다. 이 로드쇼는 한국일보 편집국장을 거쳐서 국회의원이 되었던 조세형이 만든 영화 잡지입니다. 80년대만 해도 이렇다 할 영화잡지가 없었어요. 해외 영화는 지금과 달리 프랑스, 영국, 미국, 홍콩, 이탈리아 등등 다양한 국가에서 수입한 영화를 만나고 있었고 몇몇 배우들은 엄청난 팬덤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을 충족해 줄 영화 잡지가 없었죠. 이런 영화에 대한 갈망 특히 지금보다 더 심했던 배우들에 대한 갈망을 한 방에 풀어준 것이 스크린이었습니다. 스크린은 잡지에 수 많은 컬러 사진을 잔뜩 실었습니다. 게다가 80년대부터 컬러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총천연색 해외 유명 배우의 아름다운 모습을 잔뜩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유명 배우를 코팅한 책받침 문화가 발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생긴 배우들이 참 많았습니다. 지금처럼 성형술이 발달한 시절도 아니었고요. 다 추억이죠. 다 추억인데 추억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1984년~ 90년까지 월간 스크린을 PDF 파일로 공개하다 영상자료원 2층에는 영상도서관이 있는데 여기서 스크린 잡지를 꺼내보곤 합니다. 그 당시 느낌도 가득나고 영화 정보도 많아서 즐겨 읽었습니다. 그러나 집에 가져가서 볼 수 없어서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영상자료원이 저작권자와 협의 후에 1984년 창간호부터 90년대까지 발행한 스크린을 PDF로 볼 수 있게 했습니다. https://www.kmdb.or.kr/collectionlist/detailList?colId=862&codeNm=&dataNm=&sort1=&sort2=&sort3=&sort4=&sort5=&&nowPage=1&cntPerPage=10 KMDb -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 [출처 : KMDB] www.kmdb.or.kr 영상자료원 가입을 한 후에 위 링크를 누르세요. 각 호에 대한 정보와 함께 상단 PDF를 누르면 스크린 잡지를 스캔을 한 PDF 파일이 나옵니다. 추억 돋네요. 당시 광고도 보이고 당시 인기 스타들의 대형 사진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보고 있는데 낮인데도 술이 생각나네요. 돌아올 수 없던 시절이라서 그런가 보네요. 80년대는 야만의 시대이자 낭만의 시대였습니다. 사회 시스템이 완성되지 못하던 시절이라서 편법이 몰상식이 난무했지만 누구나 쉽게 돈을 벌던 시절이라서 여유도 있었죠. 지나고 보니 다 그립기만 하네요. 결과를 아니 그리운 것이지 80년대가 현재였다면 불안이를 업고 다녔서 행복함을 크게 느끼지는 못했을 겁니다.
코로나 이전과 달리 신생 패션 브랜드가 늘어난 명동 상권
여름과 가을 사이의 경계가 없는 것 같지만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8월 27일은 가을의 시작이었습니다. 온도는 연일 30도를 웃돌지만 하루 만에 습도가 80%에서 60%로 확 떨어졌죠. 한국 여름이 매서운 건 온도 때문이 아닙니다. 온도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나 인도가 더 높아요. 문제는 습도죠. 습도가 너무 높으면 땀도 안 마르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습식 사우나를 아주 싫어하는데 한국의 여름은 습식 사우나 강제 입장 수준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한국의 무더위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습니다. 서서히 꺾어지고 것 같지만 나이도 확 꺾입니다. 몸이 느낍니다. 이전의 몸과 차원이 다른 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큰 고통을 겪고 나면 각자의 삶에 큰 영향을 줌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변화됩니다. IMF가 그랬고 코로나가 그랬습니다. 다시 살아난 명동 상권 이 사진은 코로나가 시작되던 첫 해 겨울에 촬영한 그러니니까 2020년 겨울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코로나 직격탄으로 출퇴근 대신 재택 근무가 가능한 곳은 재택 근무를 하고 모임도 줄이고 음식점에서도 출입 기록을 남겨야 했던 살벌했던 시기였습니다. 해외관광은 당연히 금지였죠. 해외관광객 특히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많았던 명동 상권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메인 거리와 이면 도로까지 불꺼진 상점이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대기업 매장만 근근히 버티었지만 대부분의 상가는 상가를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동 상권은 2023년부터 서서히 살아나더니 2024년 현재 90% 이상 살아났습니다. 빈 점포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매장 리모델링 또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서 점점 화려한 명동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 점포가 다시 가동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점포가 많이 보이네요. 여기 와펜하우스는 처음 보는 곳이네요. 뭐하는 곳인가 보니 DIY 키링 만드는 곳이라고 해요. 열쇠고리를 직접 여러 요소를 넣어서 만드는 곳입니다. 키링뿐 아니라 스트랩, 에코펙, 앞치마, 강아지 옷을 직접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곳이라고 해요. 메인 도로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온통 신발, 화장품, 옷 등 패션 관련 브랜드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옷 브랜드로 새로운 브랜드, 신생 브랜드 옷가게가 많이 늘었습니다. 신생 패션 브랜드 상점이 크게 늘어난 명동 그런데 좀 변화가 있네요. 기존에는 유명 브랜드가 많았다면 다소 낯선 브랜드 옷가게도 보입니다. Marithe Francois Girbaud(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들어왔네요. 이 브랜드는 명동에서 본 기억이 없고 주로 강남 패션 거리에서 봤던 브랜드가 관광객 상대의 캐주얼 또는 패스트패션인 유니클로이 사라지고 이런 좀 더 고급진 브랜드가 들어서네요. 이미스라는 브랜드도 보이네요. 디스플레이도 기존보다 깔끔하고 좀 더 개방적이네요. 기존처럼 운동화 가게도 많습니다. 다양한 운동화 브랜드들이 다시 입점하고 있네요. ABC마트는 코로나 시국에도 잘 운영하더라고요. 물론 손님 거의 없었지만 체인점이라서 버티고 버텼습니다. 명동에 1개의 매장 가지고 있기도 어려운데 이 HBAF(바프) 믹스너크나 아몬드 상가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허니버터 아몬드인데 대박이 난 상품입니다. 물론 전 유행이라고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먹어 본 적은 없네요. 그런데 CEO 차량이 파킹되어 있네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네요. 기존 화장품 가게들도 꽤 있습니다. 한국 화장품 쓸어 담아가던 중국 일본 관광객을 위한 공간인데 요즘 중국인들 한국 잘 오지 않아요. 코로나 끝나도 안 오는 이유가 중국의 많은 제품들의 품질 수준이 빠르게 오르면서 물건 사로 오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현재도 한국 화장품 품질이 더 좋지만 앞으로 물건 사러 오는 중국 관광객은 크게 줄 듯 합니다. 그래서 내수 시장을 노려야죠. 강남이나 여의도 홍대 같은 곳 말고 명동에도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공간들이 많았으면 했는데 코로나 직격탄 맞고 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닌 내국인 외국인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네요. 솔직히 명동은 너무 외국인 상대 장사만 했어요. 이러다 보니 사드 사태다 뭐다 뭐다 해서 관광객이 안 오면 휘청였는데 이젠 변해야죠. 관광객 안 와도 자생할 수 있는 내국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좋네요. 명동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코로나 이전에는 9만 5천명 대였는데 2023년 4분기에 8만 3천명 대로 올랐고 올해는 더 올랐을 겁니다. 라인 프렌즈 같은 내외국인 모두 좋아하는 공간도 생겼네요. 임대료도 오르고 있습니다. 명동예술극장 이 메인 광장 주변 상가 임대료가 월 1억이 넘는다고 하죠. 공실률도 명동 상권 공실률이 2024년 1분기 현재 1.8%로 크게 줄었습니다. 가장 어두었던 2022년 1분기에는 42.1%까지 올랐는데 1.8%면 엄청 줄었네요. 오히려 명동은 꽉꽉 차는데 서울 전역은 장사가 안 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빈점포가 늘고 있는데 오히려 명동은 꽉꽉 차고 있네요. 명동은 역사적인 공간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명동은 전통적인 상업 공간으로 경기가 어렵다 보니 확실한 상권에 많은 브랜드들이 몰리고 있네요. 한 공간에 다양한 브랜드 패션 상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곳에 가게 하는 큰 역할을 하죠. 특히 명동은 경복궁, 삼청동, 서촌 등 서울 안의 서울인 관광지 근처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내국 관광객들도 자연스럽게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홍대, 신촌 상권마저 예전 같지 않은데 명동은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듯 합니다. 실제로 이런 명동은 꽤 괜찮은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게 다 권리금 사라진 명동이기에 가능하지 다시 권리금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전처럼 체험 및 구매 매장이 아닌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을 유도하는 밍밍한 명동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거를 금방 까먹거든요. 명동성당을 지나서 충무로로 갔더니 힙지로라고 하는 공간도 크게 날아갔네요. 오래된 건물이 많고 인쇄소들이 떠난 자리에 거대한 오피스 건물이 올라가고 있네요. 싼 임대료가 만든 힙한 공간을 날려 버리네요. 충무로에는 다양한 카메라 매장이 있는데 여기에 서울영화센터(서울 시네마 테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연말에 완광되고 내년에 개관하면 죽돌이처럼 자주 들려봐야겠습니다.
코로나 이전과 달리 신생 패션 브랜드가 늘어난 명동 상권
여름과 가을 사이의 경계가 없는 것 같지만 또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8월 27일은 가을의 시작이었습니다. 온도는 연일 30도를 웃돌지만 하루 만에 습도가 80%에서 60%로 확 떨어졌죠. 한국 여름이 매서운 건 온도 때문이 아닙니다. 온도는 중동이나 아프리카나 인도가 더 높아요. 문제는 습도죠. 습도가 너무 높으면 땀도 안 마르고 고통스럽습니다. 제가 습식 사우나를 아주 싫어하는데 한국의 여름은 습식 사우나 강제 입장 수준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인정하는 한국의 무더위입니다. 세상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습니다. 서서히 꺾어지고 것 같지만 나이도 확 꺾입니다. 몸이 느낍니다. 이전의 몸과 차원이 다른 몸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 사회는 어떨까요? 큰 고통을 겪고 나면 각자의 삶에 큰 영향을 줌을 넘어서 사회 전체가 변화됩니다. IMF가 그랬고 코로나가 그랬습니다. 다시 살아난 명동 상권 이 사진은 코로나가 시작되던 첫 해 겨울에 촬영한 그러니니까 2020년 겨울에 촬영한 사진입니다. 코로나 직격탄으로 출퇴근 대신 재택 근무가 가능한 곳은 재택 근무를 하고 모임도 줄이고 음식점에서도 출입 기록을 남겨야 했던 살벌했던 시기였습니다. 해외관광은 당연히 금지였죠. 해외관광객 특히 중국과 일본 관광객이 많았던 명동 상권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메인 거리와 이면 도로까지 불꺼진 상점이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대기업 매장만 근근히 버티었지만 대부분의 상가는 상가를 운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명동 상권은 2023년부터 서서히 살아나더니 2024년 현재 90% 이상 살아났습니다. 빈 점포가 없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도 매장 리모델링 또는 새로운 임차인이 들어와서 점점 화려한 명동이 되고 있습니다. 기존 점포가 다시 가동되는 것이 아닌 새로운 점포가 많이 보이네요. 여기 와펜하우스는 처음 보는 곳이네요. 뭐하는 곳인가 보니 DIY 키링 만드는 곳이라고 해요. 열쇠고리를 직접 여러 요소를 넣어서 만드는 곳입니다. 키링뿐 아니라 스트랩, 에코펙, 앞치마, 강아지 옷을 직접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만드는 곳이라고 해요. 메인 도로입니다. 코로나 전에는 온통 신발, 화장품, 옷 등 패션 관련 브랜드만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옷 브랜드로 새로운 브랜드, 신생 브랜드 옷가게가 많이 늘었습니다. 신생 패션 브랜드 상점이 크게 늘어난 명동 그런데 좀 변화가 있네요. 기존에는 유명 브랜드가 많았다면 다소 낯선 브랜드 옷가게도 보입니다. Marithe Francois Girbaud(마리떼 프랑소와 저버)도 들어왔네요. 이 브랜드는 명동에서 본 기억이 없고 주로 강남 패션 거리에서 봤던 브랜드가 관광객 상대의 캐주얼 또는 패스트패션인 유니클로이 사라지고 이런 좀 더 고급진 브랜드가 들어서네요. 이미스라는 브랜드도 보이네요. 디스플레이도 기존보다 깔끔하고 좀 더 개방적이네요. 기존처럼 운동화 가게도 많습니다. 다양한 운동화 브랜드들이 다시 입점하고 있네요. ABC마트는 코로나 시국에도 잘 운영하더라고요. 물론 손님 거의 없었지만 체인점이라서 버티고 버텼습니다. 명동에 1개의 매장 가지고 있기도 어려운데 이 HBAF(바프) 믹스너크나 아몬드 상가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허니버터 아몬드인데 대박이 난 상품입니다. 물론 전 유행이라고 먹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먹어 본 적은 없네요. 그런데 CEO 차량이 파킹되어 있네요.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네요. 기존 화장품 가게들도 꽤 있습니다. 한국 화장품 쓸어 담아가던 중국 일본 관광객을 위한 공간인데 요즘 중국인들 한국 잘 오지 않아요. 코로나 끝나도 안 오는 이유가 중국의 많은 제품들의 품질 수준이 빠르게 오르면서 물건 사로 오지는 않더라고요. 물론 현재도 한국 화장품 품질이 더 좋지만 앞으로 물건 사러 오는 중국 관광객은 크게 줄 듯 합니다. 그래서 내수 시장을 노려야죠. 강남이나 여의도 홍대 같은 곳 말고 명동에도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공간들이 많았으면 했는데 코로나 직격탄 맞고 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닌 내국인 외국인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네요. 솔직히 명동은 너무 외국인 상대 장사만 했어요. 이러다 보니 사드 사태다 뭐다 뭐다 해서 관광객이 안 오면 휘청였는데 이젠 변해야죠. 관광객 안 와도 자생할 수 있는 내국인들도 즐길 수 있는 공간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좋네요. 명동 하루 평균 유동인구는 코로나 이전에는 9만 5천명 대였는데 2023년 4분기에 8만 3천명 대로 올랐고 올해는 더 올랐을 겁니다. 라인 프렌즈 같은 내외국인 모두 좋아하는 공간도 생겼네요. 임대료도 오르고 있습니다. 명동예술극장 이 메인 광장 주변 상가 임대료가 월 1억이 넘는다고 하죠. 공실률도 명동 상권 공실률이 2024년 1분기 현재 1.8%로 크게 줄었습니다. 가장 어두었던 2022년 1분기에는 42.1%까지 올랐는데 1.8%면 엄청 줄었네요. 오히려 명동은 꽉꽉 차는데 서울 전역은 장사가 안 되는 자영업자들이 늘어나면서 빈점포가 늘고 있는데 오히려 명동은 꽉꽉 차고 있네요. 명동은 역사적인 공간들이 거의 다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명동은 전통적인 상업 공간으로 경기가 어렵다 보니 확실한 상권에 많은 브랜드들이 몰리고 있네요. 한 공간에 다양한 브랜드 패션 상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그곳에 가게 하는 큰 역할을 하죠. 특히 명동은 경복궁, 삼청동, 서촌 등 서울 안의 서울인 관광지 근처라서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내국 관광객들도 자연스럽게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홍대, 신촌 상권마저 예전 같지 않은데 명동은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더 활기가 넘치는 듯 합니다. 실제로 이런 명동은 꽤 괜찮은데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입니다. 이게 다 권리금 사라진 명동이기에 가능하지 다시 권리금 형성되기 시작하면 이전처럼 체험 및 구매 매장이 아닌 저렴한 가격으로 쇼핑을 유도하는 밍밍한 명동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거를 금방 까먹거든요. 명동성당을 지나서 충무로로 갔더니 힙지로라고 하는 공간도 크게 날아갔네요. 오래된 건물이 많고 인쇄소들이 떠난 자리에 거대한 오피스 건물이 올라가고 있네요. 싼 임대료가 만든 힙한 공간을 날려 버리네요. 충무로에는 다양한 카메라 매장이 있는데 여기에 서울영화센터(서울 시네마 테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연말에 완광되고 내년에 개관하면 죽돌이처럼 자주 들려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