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色娃星의 千年君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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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0 posts와일드카드 1차전
오늘 경기에서 LG의 패인은 오지환의 실책으로 내준 두점이 크다. 단기전에서 유격수가 실책을 자주 범하는 것은 큰 짐이 된다. 반대로 KIA는 유격수인 김선빈의 호수비들이 이어졌다. 1차전은 양 팀 투수들이 노련했지만, 유격수의 실책과 호수비의 차이에서 갈렸다. 다만, LG의 패인을 오지환에게만 묻기에는 타선의 상태가 더 심각해 보인다. KIA의 경우에 중심타선이 제역할을 해주며 점수를 만든 반면에, LG는 그렇지 못했다. 8회에 난 두점도 하위타선에서 난 것이었다. 오히려 더 점수를 낼 수 있는 분위기에서 상위타선이 침묵했다. 단기전에서 투수력을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두 축인 수비와 중심타선의 문제를 모두 노출한 LG가 과연 2차전에서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까? 반면 KIA는 두가지가 모두 나쁘지
야구단상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다. 프런트 야구, 혹은 시스템 야구에서 이를 강조하는 이유는,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자는 의미에서다. 감독이 전권을 쥐고 선수 스카웃이나 재활, 운영등 요소요소에 다 간섭하는 것에서 벗어나 각자의 전문성으로 각각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합으로 운영이 되는 것이 시스템 야구다. 그만큼 각자 자기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게 중요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책임도 스스로가 져야 한다. 요즘 한화의 김성근 감독과 관련된 문제점들이 기사로 쏟아져나오는데, 이에 대해서 나는 반쯤은 수긍하면서도 나머지 반에서는 '글쎄요?'라는 입장이다. 그의 야구가 너무 지나치게 선수들, 특히 투수들을 가혹하게 다루고, 또 프런트나 다른 영역에서 제역할을 하게끔 놔두기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두는 문

서울역
요즘의 영화는 애니메이션이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을 움직이게 보이도록 만든다. 예전 스펙터클 영화들은 배경속 이미지들이 실제의 배경이 아니라 그림인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의 영화들에서 특수촬영 기법의 대다수는 애니메이션이다. 하지만 실사영화에서의 애니메이션 효과는 최대한 실사의 표현기법을 따른다. 그래야만 실사영화 특유의 표현에서 튀지 않기때문이다. 반대로 애니메이션 영화는 이런 법칙에서 자유롭다. 이것이 내가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게 된 이유다. '부산행'은 한국도 좀비영화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는 것을 보여준 영화다. 창의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어찌보면 너무 지나친 기대감인지도 모른다. 한국영화에서 장르적 성격의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진 적이 별로 없는데, 이번엔 좀 제대로긴 했다. 하지만 봉준호의

부산행 - 괜찮은 기술, 좋은 아이템, 아쉬운 창의성
한국영화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다. 다만 이제는 한국영화의 수준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볼만하게 꾸며서 보여줄 수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물론 여기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값비싼 필름촬영에서 디지털촬영으로, 필름편집에서 디지털 편집으로, 제작환경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된 여건이 가장 크다. 예전의 신인 감독들은 비싼 제작비탓에 쉽게 입봉을 하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누구나 영화를 만들수 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배포할 수도 있다. 당연히 영화를 만든 경험도가 이전과 많이 다르다. 게다가 영화같은 창작업을 하려는 사람들의 머리속에는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 그들은 언제나 그 아이디어들을 이야기로 꾸미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보려는 구상을 한다. 이것만큼은 세계 누구와도 경

벤허 (2016)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59년작 벤허는 스펙타클한 헐리우드 영화의 백미를 보여주는 명작중 하나입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유대인들 속에서 새로운 인류애적인 이념을 창시한 예수가 활동하던 시대에 또다른 인물인 벤허의 시각으로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의 인간적 우정이 복수극으로 변하고, 그러한 피의 소용돌이 속에서 구원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해주는 작품이기도 하죠.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귀족층이었던 벤허와 그의 친구이자 지배자측인 메살라의 우정이 서로에 대한 복수심으로 화하는 과정은 1959년작이나 2016년작이나 나름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그러나 1959년작에서는 실수로 떨어져내린 기왓장때문에 벤허가문이 몰락하는 것과 달리, 2016년작에서는 벤허가 부득이하게 구해주었던 과격주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