鑑賞小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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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시디어스 : 귀신

인시디어스 : 귀신

鑑賞小説|2012년 9월 25일

귓불에 뚫린 구멍, 아니면 귀걸이 같은 것을 보자니 토인 같아 보이는 외양을 한 악귀인데도 이 대목의 홀연한 출몰 방식과 시뻘건 얼굴 때문인지 그럭저럭 인상에 남았던 장면이다. 결말을 감안하면, 한두 발자국 떨어져 출현한 것도 아니고, 도깨비가 조쉬 바로 뒤에 바싹 붙어 반쯤 가리거나 겹치는 앵글로 나타난 까닭이 플롯상 중요했던 모양이다. 무인도에서 씻나락 까먹으며 소일하는 귀신을 상상하기 힘든 만큼 아무래도 산 자 앞에 나타나야만 하는 운명인 듯하다. 귀신의 특권 중에 웃기는 게 있는데, 살금살금 조용조용 쓱 하고 파라노멀 액티비티를 일삼고 다니면서도 왜 눈에 확 띄는 저런 얄궂은 꼬라지를 하고 나타나는가, 아니, 전혀 인간 같지도 않다는 전략과 디자인을 힘들게 구사하고도 놈들은 어째서 대개

Abraham Lincoln Vampire Hunter : The Greatest American Ax-man

Abraham Lincoln Vampire Hunter : The Greatest American Ax-man

鑑賞小説|2012년 9월 8일

유인원의 중간 형질 같은 구레나룻의 원시적인 위엄과 나란히 당 위인의 엄숙한 얼굴을 구성하여 마지않던 광대뼈는 온데간데없고, 우유 많이 처먹고 유복하게 자란 우량아 같은 키다리 배우와, 원작의 위신을 한껏 추락시켜 마지아니한 까불이 뱀파이어 헨리를 내세운 이 졸작의 각본이 딴 사람도 아니고 세상에, 원작자 손에서 나왔다는 게 어찌 믿기랴. 어쩜 이리도 유치하고 천박하게 각색했을까?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머리에 뿌리고 땅을 치며 통곡할 일이다. 간고하건대 극장판 제목은 그냥 이렇게 개제하는 게 좋다. 『링컨의 대모험』. 밀린 여타 소설들 탓에 안 읽고 있다가 영화가 개봉되는 통에 부리나케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기도 전에 종영될까 봐 부리나케 보러 갈 수밖에 없었다. 올 초

토탈리콜 : 기억, 그리고 정체성

토탈리콜 : 기억, 그리고 정체성

鑑賞小説|2012년 8월 25일

조명이 필요 없었던 빛나리 리치터는 대체 어디 가고... 미래라는, 모든 상상의 융통성이 보장되는 SF 지평과 기억의 디지털화에 힘입어 기억 검색이 가능하고, 기억의 삭제 내지 별도의 저장, 심지어 복원 및 새로운 주입마저 가능하면 무엇까지 가능할까? 오늘의 기억이라 하여 피씨에 전송한 다음 캡처해서 일기처럼 블로그에 올려 놓는 정도의 상상으로 만족할 쪼다가 있기나 하겠느냐마는, 공부 때문에 교과서 들고 설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학교도 필요 없어질 뿐만 아니라, 기나긴 시간을 요하는 모든 종류의 학습을 적어도 이제는 원시적이라 하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놈의 주입식 교육도 단 한 번의 진정한 주입식 입력으로 끝나리라고 상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따금 정신을 휘젓고 지나가는 싫은 기억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 은행털이와 쟌느

은행털이와 아빠와 나 : 은행털이와 쟌느

鑑賞小説|2012년 8월 18일

바보 천치 쪼다 멍청이 삐뇽 으이그, 딸만 아니었으면... 음냐... 왕년에 프랑스 공화국에서 짭새들과 매스컴이 얼굴 한번 보자고 그렇게 쫓아다닌, 명색이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은행강도 쟝 뤼꺄. 출옥하자마자 또 은행 털까 봐 징그럽게 졸졸 따라다니는 뒤로끄는 이 사람보고 제 팔자 개 주랴, 고 했다(근데 경찰서장이나 돼 가지고 왜 직접 쫓아다니는 건가?). 집도 절도 가족도 없었던 이 코주부는 바보 천치 쪼다 멍청이 삐뇽의 외동딸 쟌느를 저리 가라며 박정하게 대했었다. 방긋 웃으며 비위를 맞추고 따뜻하게 대하라는 상식에 맞게 알랑거리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만 해도 닭살이 돋을 판이다. 세상에서 당신에게 가장 안 어울리는 짓이란? 그리 물으면, 목말 태우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애랑 노는

할복 : 사무라이의 죽음 : 가난해서 무사의 체통을 못 지킨 어느 낭인의 이야기

할복 : 사무라이의 죽음 : 가난해서 무사의 체통을 못 지킨 어느 낭인의 이야기

鑑賞小説|2012년 8월 12일

전에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잔인하고 화끈한 단관 개봉용19禁 작품들을 양산하던 미이케가 왜국영화의 명성을 높인 그 미친 짓을 삭 그만두고 이해가 잘 되는 작품을 양산하는 쪽이 나에겐 이해가 안 가던 참이다. 가난의 비애나 부모 자식 및 부부 간의 정에 관한 이런 스토리는 한평생 그런 걸로 먹고사는 야마다 요우지한테나 맡겨라. ...고 생각했다가 생각을 고쳤다. 내용이 시시하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린 일단 배부터 째고 봅니다" 같은 인상이나, 미시마 유키오를 연상시키던 종래의 쫀쫀한 할복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역시 야마다풍의 인간 드라마 때문이다. '사무라이 정신'이라는 허세에 대한 비판은 체제에 대한 반골 기상이 드높았다던 타키구치 야스히코의 오래된 63년 원작 『이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