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다가족의 아름다운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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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유도 을왕리 선녀바위에서 영종도 구읍뱃터까지

용유도 을왕리 선녀바위에서 영종도 구읍뱃터까지

1. 용유도 선녀바위해수욕장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바로 다음날이 시험시작이라 주말도 없이 공부방으로 가버리고, 남겨진 아내와 7살짜리 딸아이와 저는, 가까운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막내의 요청에, 인천을 향해 길을 나섰습니다. 안양에서 가보기 좋은 곳 중 하나가 바로, 용유도에 있는 을왕리해수욕장이지요. 인천대교를 건너면, 그리 멀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가보네요. 을왕리해수욕장. 예전엔 가까워서 자주 다녔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가족 나들이 횟수가 줄어들더니, 이쪽으로 발길을 안 한지 꽤 되었네요. 인천대교를 지나, 영종도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정표를 따라 용유도 쪽으로 방향을 잡았죠. 대략 30분 정도 달렸나? 드디어 을왕리해수욕장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차를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4,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좋았어! 담엔 또 어디로 갈까?”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4,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좋았어! 담엔 또 어디로 갈까?”

칭다오 여행의 마지만 글이네. 아! 아쉽다. 이젠 정말 여행에서 돌아오는 기분이 든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직, 난 칭다오에 있었는데.... 9월 12일, 아침 7시 20분. 정확한 시간에 모두들 모였다. 가이드는 놓고 온 짐은 없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라고 얘기한다. 나는 중국 술, 3병이 들어있는 가방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며, 빠진 것 없노라 얘기했다. 아침부터, 큰형님이 주신 노산맥주를 손에 들었다. 이놈도 집에 가져가야겠다. 캐리어에 집어넣자. 버스는 이틀 동안 우리를 편하게 지내게 해준 호텔을 빠져나간다. 관광지에서는 멀지만, 공항에서는 가까워서 장단점이 있는 호텔. 8시. 공항에 도착했다. 우리 비행기는 9시 50분에 출발한다. 9시 20분 전에는 탑승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3, 양꼬치 120개를 구워먹다!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3, 양꼬치 120개를 구워먹다!

9월 11일, 저녁 8시 칭다오에서의 모든 일정이 이제 끝나간다. 저녁식사만 끝나면, 호텔에서 하룻밤 보내고, 내일 바로 한국으로 돌아간다.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드네. 원래 예정된 식사는 삼겹살에 김치찌개였지만, 우리가족과 다른 팀들이 가이드를 설득하여, 양꼬치 구이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계획된 비용보다 더 추가된 비용은, 우리가 부담하기로 하고서. 가이드는 사실, 간단한 식사가 더 좋다고, 솔직히 얘기한다. 원래 예정된 식사면, 1시간이면 충분히 끝나지만, 양꼬치를 먹으면, 보통 2시간은 기본이 되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늦어진다고. 뭐! 이해는 가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포기할 수 없지 않은가. 굉장히 넓고, 넓고, 넓은 식당에 도착했다. 이름이 ‘한양꼬치광장’이었을 것으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2, 해변조각공원과 청도시박물관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2, 해변조각공원과 청도시박물관

9월 11일, 오후 3시 “조각공원에서 자유 시간을 넉넉히 드릴까요?”“아니요!” 조각공원은 그늘이 전혀 없는 완전 땡볕인 바닷가다. 가장 더운 시간인, 오후 3시에 고생을 자처할 수 없는 노릇. 하여, 아주 잠깐 동안만 둘러보기로 했다. 공원입구라고 우리끼리 명명한 곳. 애들은 달리기 시합 중 이곳 해변조각공원의 정확한 명칭은 ‘칭다오 조각공원 [青岛雕塑园]’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청도해빈조소원[青岛海滨雕塑园]. 칭다오 시, 하이빈(海滨, 해빈)의 동쪽에 있어서 그렇게도 불린단다. 총면적은 8만 평방미터로 실내, 실외로 구성되어있다. 바닷가에 위치한 조각공원, 해변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실내전시관 실내전시관 바로 앞, 산책로가 바닷가를 따라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1, 중국시민들의 휴식 공간, 5.4 광장

주당가족의 칭다오 여행 11, 중국시민들의 휴식 공간, 5.4 광장

5.4광장에 대한 얘기를 하려면, 아무래도 중국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19년 5월 4일을 전후해 무슨 일이 있었나? 1919년 4월 29일, 세계 제1차 대전이 끝나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회의가 열리고 있었고 중국은 이 회의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사절단의 임무는 일본이 요구한 21개조의 요구를 폐지하는 것이었다. 일본이 요구한 21개조에는 외세 및 외국군의 철수, 영사 재판권 취소, 산동 반도의 이권반환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결국 ‘파리 강화 회의’에서 중국의 주장이 반영되지 않았다. 이 결과 독일이 가지고 있던 산둥의 이권이 고스란히 일본에 넘어갈 위기에 처해졌다. 이러한 소식이 중국 베이징 신문에 의해 전해졌고, 그 해 5월 4일, 중국 국민과 베이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