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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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posts일본 수영계의 샛별 '이케에 리카코' 급성 백혈병 판명..
아시안 대회에서 무려 6관왕을 기록하며 일본 여성 수영계의 떠오르는 태양이자 2020년 도쿄 올림픽의 간판으로 온 국민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이케에 리카코(池江 璃花子, 18)양이 급성 백혈병 판정으로 모든 활동을 공식중단하고 투병에 전념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어제 전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일본 남자수영에 금자탑을 세운 기타지마 고스케에 필적, 아니 뛰어넘는 재목이라 봤기에 기대가 컸지만, 세상일은 역시 알 수 없고 선수 본인으로서도 청천벽력 같겠지만 무리하지 말고 치료에 전념하여 꼭 병마를 극복했으면 하는 바램 뿐입니다. 수영일은 파리 올림픽으로 미뤄도 괜찮고, 청춘인데 몸만 건사하면 어떤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그나저나 백혈병, 최근에는 글리벡 등 좋은 치료제가 많이 나오긴 했으나 여전히 예후가
[12년의 밤] 이념아닌 실존으로 본 유폐잔혹사..
만약 누군가가 세상에서 제일 더럽고 싫은 게 뭐냐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들 입에서 자연스레 나오는 말은 똥일 것이다. 똥의 다른 이름인 변이나 대변, 배설물 기타 어떤 지식인적 고상한 언어로 그 본질을 가리려 한다해도 결국 본질은 똥인 그 똥 말이다. 그 다음 단계로 침과 땀, 콧물의 응축인 코딱지, 귀지도 넓게 보아서는 이 똥의 범주에 들어간다. 또한 공통적으로 혐오, 그것도 극혐의 대상에 들어간다는 점도 같다. 감각의 차원에서는 시각도 시각이지만 후각의 메스꺼움이 제일일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 똥을 가장 혐오하는 실존적 대상자가 실은 그 똥을 매일같이 먹고 생산하고 뱃속에 저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몸속에, 그것도 가장 자신의 한가운데에 엄연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오는 자신의 그것조
[체포왕과 2011]스마트폰 보편화 직전시대와의 단절감
2011년이라는 연도는 영화사에 있어 분기점이라 할 수 있는 해이다. 바로 이 해부터 스마트폰의 보급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2012년도에 가며 보편화되기 직전의 시기인데 기계는 보급되었어도 서비스나 데이터요금, 카카오톡 등의 SNS서비스가 미비했던 관계로 아직은 피쳐폰이 대세이던 시기. 딱 그 지점에 '체포왕'이라는 당시 중박의 코믹형사물이 존재했었다. 버디영화의 형식을 빌려 얼핏보면 식상할 수 있는 소재인데, 박중훈과 이선균 투톱과 김정태와 이성민 투톱의 주조연이 잘 어우러져 스토리를 잘 이끌어 중박의 힛트를 치기도 한.. 보는내내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었지만, 문제는 중간중간 나오는 피쳐폰시대에서 느끼는 이질감(분명 불과 8년전임에도)과 나름 당시로서는 최신임을 어필하기 위해 신식 피쳐폰 기종과 회
[이탈리아 무간도] 전설의 "수부라 게이트" 최종장 개봉박두..
겉멋든 홍콩판 무간도에서 밑살을 쫙빼고 드라이함의 의미에서 또다른 호평을 받았던 "디파티드"마저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는 이탈리아의 마카로니식 변주곡 "수부라 게이트(원제 : Suburra)" 3부작의 마지막 시즌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었다. 최근들어 여러 장르에 걸친 실험들이 "나르코스 3부작" 이후 잇달은 흥행-비평 양측에서 실패를 받아온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기사회생의 회심타로 내놓은 측면이 있고, 그만큼 제작진과 출연진도 심혈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전언.. 개인적으로 1부(영호), 2부(드라마) 모두, 필름느와르 + 사회고발극 차원에서 연출면에서의 참신함과 내용면에서의 치밀함에 높은 점수를 주었던 바, 3부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어 그동안 쌓아온 명성을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배경면에서는 대
일상의 변화 - 작은 것, 가까운 사물에 대한 여행..
요즘은 뉴스를 틀면 겁부터 납니다. 사건사고야 늘 있기 마련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전하는 범죄 수위가 상식적이지 않아졌습니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벼운 말다툼거리가 주먹다짐이나 칼부림 같은 대형사고로 커지는 일도 다반사가 되어버렸습니다. 무엇이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던 우리네 정서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을까요. 아마도 그 출발에 무관심이 자리 잡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세상이 변해도 참말로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그때엔 동네 어느 집 아들이 몇 학년이고 누구네 사위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까지 집집마다 알고 지내는 게 당연했습니다. 요즘은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사실 모르는 일이 허다하지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지만 이웃과 마음의 담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