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LLY DONUT 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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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타카 & 네버 렛 미 고

가타카 & 네버 렛 미 고

CHILLY DONUT FACTORY|2012년 11월 14일

가타카와 네버 렛 미 고, 인간을 말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으레 과학은 인문학과는 정반대편에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고등학교가 이과와 문과로 나눠졌던 시절부터 이과생들이 화학, 물리학, 생물학을 이야기하는 동안 인문계열의 학생들은 법학, 철학 그리고 문학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인문학도들이과학에 닿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문학에서 가장 단적으로 드러났다.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나타난 흔히 SF(Science Fiction)이라고 불리는 장르는우리의 문화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유독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는 것은 생명공학이다. 어째서 SF는, 스토리텔러들은 생명공학에 그토록 집중하는 것일 까. 그것은 생명공학이인문학과 과학의 몇 안되는 공유지를 다루기 때문이다.

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CHILLY DONUT FACTORY|2012년 11월 4일

500일의 썸머 - 500 Days of Summer 일단 제일 먼저 영화에 몰입하게 됐던 장면은 아주 초반,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의 US가 흘러나오는 부분이었다. 처음듣는 노래였지만 목소리를 듣는 순간 단박에 레지나 스펙터임을 알아냈다. 짜릿했다. 나말고도 그녀를 아는 사람이 있구나! 싶었다. 얼굴을 모르는 누군가와의 공감대는 항상 즐거운 법이다. 더군다가 그것이 내가 곧 2시간을 집중할 영화의 감독이라니!(혹은 음악감독이라니!) 러시아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러시아계 미국인 여가수, 이국적인 피아노리듬에 맞춰 독특한 가사, 독특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여가수가 바로 레지나 스펙터다. 독특한 만큼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었나, 우리나라에선 모르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하

네버렛미고 - Never Let Me Go

네버렛미고 - Never Let Me Go

CHILLY DONUT FACTORY|2012년 11월 3일

네버 렛 미 고 나는 해리포터 세대다. 이것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쯤 20살에서 22살 즈음 되었을 나이의 사람들인데, 나를 포함한 이 나이또래들은 초등학교 입학 무렵 해리포터 1권을 읽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20대 초 즈음에 해리포터의 마지막 시리즈를 영화로 본 사람들이다. 그야말로 한 작품의 첫부터 끝을 책에서 영화까지 섭렵한 이들인 셈인데, 그 10여년의 시간동안 우리들은 거의 비슷한 감정들을 느꼈을 것이다. 새 책이 나왔을 때의 환희와, 영화를 보았을 때의 실망 말이다. 단언할 수 있다. 두툼한 책을 영화로 바꾸는 건 당연히 완벽할 수 없어서 어떻게든 재단되고 각색된 형태로 탈바꿈한다. 영화 자체로 보았을 때는 어쩔지모르지만 애독자, 그것도 눈을 또랑또랑하게 뜬 해리포터 마니아

안경

안경

CHILLY DONUT FACTORY|2012년 10월 17일

안경 문학이든 영화든 그들의 콘텐츠는 두둥실 부유하다 내 머릿속으로 스며든다. 실체감이 없다고 할까, 소리도 있고 영상도 있지만 눈으로, 귀로 들어온다는 실체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 전 보았던 '철도원'의 경우에도 그랬다. 메시지가 묵직하다 아니다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것을 흡수하는 방식의 차이다. 일본 문화의 개성은 컨텐츠가 아닌 표현방식에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실감할 만큼 쿡 찔러 후벼파는 방식이 아니고 마치 스펀지와 같다. 어느새 스며들어있는데 그토록 진할수가있나. 처음 카모메 식당을 보았을 때의 기억이 난다. 정갈하게 간소하된 하루하루의 반복이 지루해보이기도 했으나 그것은 내 주변이 아닌 나에 집중하려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아무 편집도 음악도 없

철도원

철도원

CHILLY DONUT FACTORY|2012년 10월 13일

철도원 - 다카쿠라 켄 내 인생의 전부를 걸만한 그것이 무엇인지, 그 수많은 예시들 중에 직업만큼은 빠져있었다. 직업이란 무엇인가. 내 모든 것을 걸만한 직업이라는 말은 어딘가 어불성설인 듯 어색하다. 업으로 삼는다, 생전부터 정해져있는 것만 같은 삶의 업. 업이라는 말보다 직업이라는 말이 더 편안한 이유는 전자의 무게감을 견뎌낼 수 있을만큼 치열한 고민을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위해 직업을 가진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면서도 내 모든 걸 걸만한 직업이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씁쓸한 세상의 기운이 삶에 팽배할 때에도 끝까지 놓치지 않을 수 있는 나의 업이란 무엇일까.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기차역 위에 꽂꽂이 세워선 검은 제복의 오토 역장을 보면서 흰벽에 깊이 박힌 대못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