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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 둘쨋날 오후, 미스터 또와의 만남
미스터 또와 함께 미스터 또는 사십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중년의 아저씨였다. 그가 자기 이름을 세 번쯤 알려 주었지만 짧은 기억력 탓에 계속 깜빡깜빡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See you again"을 한국어로 어떻게 말하느냐고 묻기에 "또 만나요"라고 이야기해 주었더니, 자기 이름과 같다며 즐거워했고 그때부터 나는 그의 이름을 더이상 잊지 않았다. 동그랗고 환한 인상의 얼굴 탓인지 체격도 둥그렇게 느껴지는 그는 다른 미얀마 사람들과 똑같이 론지를 입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피부가 흰 편이었다. 나는 혹시 그에게 중국인 혈통이 섞여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중국어는 전혀 하지 못했다. 그를 만난 것은 철길 위를 지나는 큰 다리 위에서였다. 나는 다음날 탈 버스표를 미리 사 둘 생각으로

미얀마 - 둘쨋날 아침, 술레파고다 거리와 양곤의 첫인상
첫날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모르게 둘째날이 왔다. 어두컴컴했던 시내 중심가 술레파고다의 뒷골목은 새벽 여섯 시부터 이미 밝아졌다. 방에는 건물 밖을 향한 큰 창이 나 있어서 해가 일찍부터 들어와 밤에 본 것보다 훨씬 아늑해졌다. 호텔은 작고 허름했지만 깨끗한 하얀 셔츠에 초록색 론지를 입은 직원들은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친절하면서도 잘 웃고 유쾌했다. 나는 또다시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 식민지 어딘가를 방문한 영국 귀부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35불짜리 방에 이틀을 내리 묵을 수는 없었다. 35불이 절대적인 가격으로서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에선 지출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디 가든 예산에 맞게 지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미얀마는 그런 수준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미얀마는 아직까지는

미얀마 - 감상적인 양곤의 첫날
방콕에서 양곤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 것은 오후 네 시가 넘어서였다. 엉뚱한 공항으로 가는 바람에 출발 이십분 전에야 간신히 도착한 게이트 앞은 다양한 연령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빼곡했다. 내 옆자리에는 다섯 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하나를 데리고 온 중국인 가족이 앉아 있었는데, 내가 아이와 말을 트며 친해지자 젊은 부부도 웃으며 말을 걸었다. 북경에서 가족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내가 가족이 함께 계시길래 미얀마에 사시는 분인가 했다고 하니 자신들도 날 보며 혼자 앉아 있길래 미얀마에 옥을 거래하러 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며 서로 웃었다. 다른 한편에는 미얀마에 사는 게 분명해 보이는 한국인 부부가 빽빽 우는 갓난아이를 달래느라 애쓰고 있었고, 한편에는 연령대가 다양한 서양인들이 두런두런 앉아 있었

심천 나들이
주말에 심천에 간 김에 박물관을 다녀왔다. 엄청나게 깨끗한 거리에 엄청나게 깨끗한 박물관.크게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기대를 훌쩍 넘어설만큼 엄청 좋지는 않았다.그냥 두세시간 정도 투자해서 볼만한 정도의 박물관. 심천의 개혁개방전 역사, 개혁개방후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흥미로웠는데나쁘지는 않았지만 좀더 자료를 많이, 풍부하게, 좀더 연관성있게 넣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아쉬웠다.지금은 너무 적고, 협소하고, 뚝뚝 끊어지는 느낌이 든다.하지만 개혁개방 전후를 대비해 볼 수 있도록 꾸미는데에 의의를 둘 만한 박물관이라면 아무래도 심천이 적절할 테니까, 앞으로도 자료를 더 확충할 수 있다면 더 재미있을 듯. "밖으로의 도망을 선동하는 계급의 적들을 엄벌하자"문혁때의 비판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