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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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셨던 많은 한국분들이 그냥 '미동부 최대 정원'이라고만 여행기에 계속 따라 쓰시는 것 같은데, 위기주부가 조사한 바로는 서부에도 더 면적이 넓은 사설 정원(private garden)은 없는 듯 하므로, 사실상 제목처럼 미국 전역에서 최대이자 최고로 유명한 야외 정원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펜실베이니아 주 동남쪽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마침내 다녀왔다. 굳이 '야외'를 덧붙인 이유는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내부의 꽃장식이 공식적으로는 실내 정원인데, 아마도 롱우드보다 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이런 쓸데없는 꼼꼼함이라니...^^
월요일 아침 10시 개장시간으로 예약을 했는데도 문이 열리길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뉴욕 한인여행사에서 필라델피아와 여기 및 아미쉬 마을(Amish Village)을 묶어서 일일관광 상품으로 운영할 정도로, 나이아가라 폭포 말고는 특별한 자연 경관이 없는 미동부에서 가장 유명한 '내츄럴' 여행지들 중의 하나인 듯 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사진을 하도 많이 찍어서 두 편으로 나눠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지만... 3시간 정도 걸려 둘러봤던 모든 곳들을 이 안내지도의 번호와 함께 간단히 소개해서, 앞으로 방문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 26번 비지터센터에서 표를 보여주고 밖으로 나오면 만나는 사거리에서 간단한 토의 후 우리 부부는 좌회전을 했다.
19번 로즈가든(Rose Garden)의 장미들은 아직 다 피지 않았지만 다른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너머는 나무들을 기막히게 다듬어 놓은 20번 토피어리가든(Topiary Garden)인데 잔디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서쪽으로 계단을 내려오면 클래식한 유럽식 장식과 연못이 있는 16번 그로토(The Grotto)를 먼저 만나고 뒤돌아서면...
분수와 나무를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넓은 15번 주분수정원(Main Fountain Garden)에 들어선다. 여기 분수들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2017년에 완전히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지금은 벨라지오 못지않은 화려한 분수쇼를 선사한다. "라스베가스는 잘 있나? ㅎㅎ" 여기는 나중에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고, 북쪽으로 관통해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뒤로 보이는 거대한 온실의 동쪽 입구를 찾아갔다.
12번 동쪽 온실(East Conservatory)의 전체 모습으로 얼핏 밋밋해 보이지만, 정말 구석구석 예쁜 꽃들과 또 재미있는 장소들을 많이 배치해 놓았는데,
실내 어린이 정원(Indoor Children's Garden)은 아이들이 좋아할 재미있는 조각과 분수들로 정말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연결된 전체 건물의 정면에 해당하는 13번 메인컨저버토리(Main Conservatory)로 특히 여기는 '오랑제리(Orangery)'로 불리는데, 이 단어는 이 날 오후의 다음 방문지에서 또 만나게 되므로, 계속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자세히 설명드릴 예정이다. 가운데는 관리 직원들로 어디를 가나 꽃을 심고 시든 낙엽을 떼내는 직원들을 볼 수 있어서, 예약할 때는 비싸다고 느꼈던 현재 32불의 입장료가 나갈 때는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날 커플셀카를 십여장은 찍었는데, 그 중에서 사모님이 엄선해 페북에 올렸던 것으로 하나만 골라 블로그에도 남겨둔다~^^
그 뒤쪽은 전시장(Exhibition Hall)이라 되어 있는데, 이 때는 그냥 가운데 바닥에 얇게 물이 흐르도록 해놓았었다. 여기서 왼편으로 나가면 원래는 연꽃이 핀 동양식 연못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전체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Longwood Reimagined"라는 별도의 온실과 정원들을 추가하는 대규모 공사가 또 진행되어서 올해 11월말에 새로 오픈 예정이라고 한다.
온실은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무도장(Ballroom)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뒤쪽으로는 Pipe Organ & Gallery도 만들어져 있어 둘러보았다. 그 전시를 구경하며 우리 부부는 정확히 10년전에 방문했던 'LA지역 No.2 관광지라던 네더컷 컬렉션'의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떠올랐다!
아무리 간단히 포스팅하려 해도 여기 그린월(Green Wall) 사진은 꼭 하나 보여드리고 싶은데, 양치식물이 가득 덮은 벽에 칸칸이 만들어진 문들이 개인 화장실이다. 옛날에 멋진 풍경의 국립공원 화장실 사진들은 좀 올린 적이 있지만, 그 외 여행지의 화장실 입구를 보여드리는 것은 아마도 블로그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온실의 서쪽 끝에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선인장들이 있던 실버가든(Silver Garden)을 둘러본 후에 시간이 되어서, 전체 지도 14번 온실 전망대(Conservatory Overlook)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현재 낮 분수쇼는 11:15분 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고 있음)
난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으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체 10분을 정말 오기(傲氣)로 모두 찍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화면의 좌우 중앙이 좀 맞지 않고, 바로 옆 한국인 가족의 해설이 곁들여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야간개장을 하는 여름철 목~토요일에는 화려한 조명과 불꽃놀이도 곁들여진 쇼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것도 보고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아주 크고 멋진 분수쇼였다.
그리고는 25번 건물의 카페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사먹었다. 건물 안에는 '1906'이란 레스토랑이 함께 있으며, 야외 테이블 옆에는 비어가든(Beer Garden)도 있었다. "여기서 비어가든이면 맥주를 키우는 정원인가? ㅎㅎ"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첫번째 온실이기도 했고, 지금은 이 곳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가 있는 5번 퍼스-듀퐁 하우스(Peirce-du Pont House)의 겉모습 사진 한 장만 보여드린다. 롱우드는 1730년대부터 퍼스(Peirce) 가문이 살았던 농장인데, 대대로 신기한 꽃과 나무를 심고 잘 관리해서 1850년대부터 식물원으로 제법 명성을 얻었단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 운영이 어려워져 개발업자에게 팔릴 뻔한 것을, 우리가 다 아는 화학회사 듀퐁(DuPont) 창업자의 증손자들 중 한 명인 당시 36세의 피에르 듀퐁(Pierre S. du Pont)이 1906년에 매입하고, 이 집에 살면서 많은 돈을 들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단다.
그렇게 벌목될 뻔했던 숲속에 만들어진 9번 Lookout Loft Treehouse에서 사진 찍어주며 놀고 있는 커플~^^ 여기 전망대와 또 아래에 소개할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는...
숲에 둘러싸인 넓은 초원(Meadow)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정원의 동쪽으로 가는데는 저렇게 초원으로 나가서 걸을 수도 있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비포장도로도 있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나무들 사이로 만들어진 보드워크를 이용했는데, 시간이 되시면 이 멋진 '숲길'도 꼭 걸어보시기를 바란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잠시 북쪽으로 오리들이 사는 연못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초원의 가장자리까지 가 본 후에, 뒤돌아 남쪽으로 롱우드를 대표하는 사진이 자주 찍히는 곳으로 이동했다.
7번 이태리 분수정원(Italian Water Garden)은 듀퐁이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을 여행한 후에 돌아와 1927년에 추가한 곳으로, 지금 내려다보는 발코니의 아래쪽에 장식된 많은 조각들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여기 전망대에서 뒤돌아 보면,
넓은 호수와 함께 건너편의 경사진 잔디밭에는 편하게 뒤로 기대 앉을 수 있는 의자들도 많이 가져다 놓았다. 또 계단을 내려가 호수 속을 보니까 아주 커다란 메기들이 가장자리를 따라 헤엄을 치고 있어서 한 참을 구경하기도 했다.
호수 건너편 넓은 길가에 있는 6번 Canopy Cathedral Treehouse의 정말 성당같은 외관으로, 기둥을 빼고 실내의 사방이 거울로 장식된 저 꼭대기까지도 꼭 올라가보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거의 한바퀴를 다 돌아서 그야말로 제철 '꽃나들이'를 하며 걸은 후에 도착한, 2번 Flower Garden Walk and Compartment Gardens의 정중앙에 있는 동그란 분수의 모습이다. 동서 방향의 기다란 꽃길(flower walk) 좌우에 심어진 신기하고 예쁜 꽃들과 그 남쪽에 두 개의 별도 칸(compartment)으로 꾸며진 정원 사진들 중에서 아래 한 장만 더 올려본다.
요즘 한국에서 봄나들이를 취재한 방송의 인터뷰에 나와 “아내와 꽃이 구분이 안 된다”는 멘트를 날린 남편이 화재가 되고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왜 잘만 구분이 되지? ㅎㅎ 그리고는 무대에도 분수가 설치된 1번 야외극장(Open Air Theatre)을 지나서 출발점으로 돌아왔는데, 2시간만에 다시 또 분수쇼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발걸음을 빨리해 이번에는 높은 분수가 발사되는 곳 바로 앞으로 갔다.
스쿨버스를 타고 단체 견학을 온 아이들애 매달려 있는 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가장 뒤쪽으로 떨어져 있어도 물보라가 엄청나게 날렸다. (물보라하니까 옛날에 디즈니 월드오브칼라 분수쇼를 보면서 홀딱 젖었던 것이 또 떠오름)
대신에 정말 이렇게 시야를 꽉 채우며 솟아오르는 물기둥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분수쇼가 끝난 후에는 뒤쪽 언덕에 있는 종탑(carillon)인 22번 차임타워(Chimes Tower)와 제법 높은 폭포 등도 잠깐 둘러보았다.
Festival of Fountains 분수쇼가 끝나고 2시간 전에 우리가 서있었던 온실쪽을 찍어 본 모습이다. 다시 저리로 건너가 비어가든에서 '키운' 맥주도 한 잔 하고, 꽃들도 더 구경한 후에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충분히 잘 봤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다른 국립 공원 하나를 이 기회에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그만 나가기로 했다.
연분홍 꽃들이 핀 길 가운데서 아마도 히스패닉 성인식에 해당하는 만15세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퀸세네라(Quinceanera)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옛날 아내 친구 딸의 그 파티에 참석했던 추억을 보시려면 클릭) 3년전 대륙횡단 이사 포스팅에도 등장했던 미주중앙일보사 미국여행가이드 책자에도 명소로 소개가 되어있어, 미동부로 이사온 후에 계속 가보고 싶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를 마침내 방문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끝맺는다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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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루에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6곳의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 4월말의 '펜실베이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첫인상은 얼핏 묘비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래 사진의 공원 간판에는,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 국립사적지(Allegheny Portage Railroad National Historic Site)라 씌여 있으니까 기차(train)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테두리의 돌로 만든 아치는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의 교각이나 터널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내륙에 해발고도까지 높아서 나무에 새순이 이제야 올라오고 있었던 숲속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다가...
숲을 지나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니까, 아주 크고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차역같은 건물들이 나와서 놀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주 멋진 기차역을 만나니까... 주변 풍경과 건축 양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15년전에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Kelso)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기차역은 아니고, 이 곳이 196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며 건설된 비지터센터와 관리사무소 등이 모여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 로고가 붙어있는 오른편 안내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기차가 먼저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입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하얀 물체는 배(boat)였다! 퇴근을 준비하다가 종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털보 레인저가 틀어준 안내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의 지도나 그림을 PDF로 못 찾아서 아래에 앞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데, 위기주부가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흥미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30년대는 증기기관(steam engine)을 이용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대량의 물류운송은 아직도 운하(canal)가 효율적이던 시기였다. 1사분면의 펜실베니아 지도와 같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운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높은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니까, 거기 블레어 고개(Blair Gap)를 넘는 36마일 구간은 운하를 다니는 배를 통째로 차량에 실어서 철도로 산을 넘도록 만든게 1834년에 개통된 Allegheny Portage Railroad란다. (두 수로 사이의 구간을 육로 운송하는 행위가 '포티지(portage)'라는 단어의 뜻)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이 디오라마처럼 기관차가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배가 두동강이 나있다? 처음에는 모형이 만든지 오래되어서 갈라져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철도 차량 길이에 맞춰서 화물선이 분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싣는 수고를 할 필요없이 전구간 운송이 가능하도록 했다는건데, 어찌보면 현대의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비지터센터에는 배를 실은 차량을 '평지에서' 끌었던 기관차도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그냥 보일러에 바퀴를 달아놓은 모습이다. 이 철도의 더 대단한 사실은 밖으로 나가서, 옛날 선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 전에 중요한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판 하나만 더 보여드린다.
미국 최초의 기차가 지나는 동굴로 약 300미터 길이의 '스테이플 벤드 터널(Staple Bend Tunnel)'도 이 철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존스타운(Johnstown) 부근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창문 밖으로 이 날 위기주부와 함께 수고했던 차가 보임^^)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 오니까, 미국 토목학회가 지정한 국가유적이라는 의미인 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 간판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뒤쪽으로 보이는 철도가 복선이다. 단선으로 교차 운행도 가능했을 건데 굳이 복선으로 꼭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혹시 브로셔 그림을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복선 철도를 덮고 건설된 저 커다란 하얀 건물인 '엔진 하우스(Engine House)'에 있다. 브로셔 사진 제일 아래에 이 노선의 고도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도가 있는데, 배를 실은 무거운 기차가 산을 넘기 위해서는 10곳의 경사로마다 이런 엔진실을 만들어서 열차를 밧줄로 잡아 당겨야 했던 것이다!
엔진하우스 내부 복선 철도의 바닥에 피스톤 엔진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보이는데, 그냥 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힘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밧줄로 도르래를 이용해 복선 철도의 양쪽의 기차를 연결해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내려오는 식으로 엔진은 바퀴를 돌려주는 역할만 했다고 한다. 즉, 푸니큘라 또는 인클라인이라 부르는 경사철도(incline railroad) 혹은 강삭철도(cable railway) 시스템을 10개나 만든 것이다.
제목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언급했지만, 약 200년전에 이런 기계로 배를 산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여기서는 정말 "의지만 있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처음 15년 동안은 사진에 보이는 삼(hemp)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 짐을 가득 실은 배와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며 사고도 발생을 했지만, 새로 발명된 강철 케이블(iron wire rope)로 1849년에 모두 바꿔서 안정적으로 내륙 물류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으나...
증기기관의 개선으로 기차의 마력이 증가하고, 토목공학의 발달로 보다 긴 터널과 교량의 건설이 가능해져서, 결국 1854년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한 번에 연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가 개통을 하자마자, 운하를 다니는 배를 싣고 밧줄로 끌어서 산을 넘었던 이 구식 철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 6번 엔진하우스의 고도가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해발 717 m이고, 사진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서밋레벨(Summit Level)을 지나 1~5번의 경사로를 내려가서 해발 358 m의 존스타운에서 기차에 실린 배를 다시 운하에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편 동쪽 방향으로 10번 엔진하우스 자리까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쪽으로 철도가 끝나는 홀리데이스버그(Holidaysburg) 마을은 291 m로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고도차는 더 크다.
바로 옆으로는 레몬 하우스(Lemon House)라 불리는 2층 건물이 있는데, 과일 레몬과는 관계가 없고 운영한 부부의 성씨가 레몬이었단다.^^ 철도와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자와 이용객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친목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이미 레인저가 문을 잠그고 퇴근해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레몬하우스 뒤로 버려진 이 철도를 따라 건설되었던 옛날 22번 국도(Old Route 22)가 살짝 보인다. 위기주부는 공원 출입구와 연결된 왕복 4차선의 현재 22번 국도를 이용해 산을 내려가 3시간 거리의 집까지 운전해 돌아갔는데, 여기를 포함해 이 날 방문했던 6곳을 대표하는 연도를 시간 순으로 링크를 걸어보면 1754년, 1789년, 1834년, 1889년, 1936년, 그리고 2001년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시공간(時空間)을 헤집고 다녔던 2024년 4월 22일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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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여기는 남부 버지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당일여행의 계획에 포함되지 않았었다. 순환 경로에서 벗어나 왕복 2시간 이상을 더 운전해야 했고, 사실상 처음 들어보는 사람의 출생지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번째 방문지를 떠나며 여기를 가보기로 한 이유는... 어떤 흑인이길래 태어난 곳이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는지 궁금함과 그의 이력에 등장하는 '터스키기(Tuskegee)'라는 단어 때문이었다. 또 드라이브하기에 딱 좋은 5월초 봄날의 화창한 날씨도 한 몫을 했다~
2021년 대륙횡단 이사를 하며 방문했던 내츄럴브리지(Natural Bridge)보다도 더 남쪽에, 정말 다시는 와볼 일이 없을 것 같은 시골길을 한참 달려서 도착을 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더 크게 잘 지어진 비지터센터며 다른 모든 시설이 아주 깔끔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는 1896년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학위를 받았고, 사후 1940년 우표에 등장하고, 1942년 이름을 딴 수송선이 건조되고, 1946년 동전에 얼굴이 새겨졌으며, 출생 100주년이던 1956년에 여기 태어난 곳이 부커T워싱턴 내셔널모뉴먼트(Booker T. Washington National Monument)로 지정이 되었는데, 흑인으로서는 모두 최초의 기록이라 한다. 또한 우리가 다 아는 1935년작 심훈의 소설 <상록수>에 그의 이름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농민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인물이기도 하다.
국립 공원에서는 월급 받는 레인저보다 자원봉사자들이 수다가 많은데, 저 여성분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론 아시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남부 버지니아 시골에 위치한, 옛날 흑인노예가 태어난 장소를 불쑥 혼자 찾아온 동양인이 신기할 법도...ㅎㅎ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말을 끊고는 안내영화가 있냐고 물었더니,
위기주부만을 위해서 직접 영화를 틀어주셨다. 다 보고 궁금한 점은 나와서 또 물어보라는 말씀과 함께~ 그 제목이 <Measure of a Man>이라서 어떻게 번역해야 좋을 지를 좀 찾아봤더니, 플라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 사람의 척도'라는 뜻으로 엘튼존의 노래, 시드니포이티어 자서전, 프랑스 영화 등의 제목이기도 한 굉장히 심오한 말인 듯 하다.
처음 입구 사진의 배너에도 씌여진 "Born Here, Freed Here"라는 말처럼, 그는 여기서 노예로 태어나 9살이던 1865년에 남북전쟁이 끝나며 자유인이 되었다. 그 후 새아버지와 가족은 웨스트버지니아 몰든(Malden)으로 이주하고, 그는 10살부터 염전과 광산에서 일을 하며 스스로 읽는 법을 깨우친다. (친아버지는 소유주였던 백인으로 추정된다고 함)
영화에도 나오는 장면으로, 연방군 장교가 마을에 와서 노예해방으로 이 시간부터 모든 흑인은 자유인이라는 성명을 낭독하는 모습의 조각이다. (다음 편에 소개할 첫번째 방문지가 바로 그 남북전쟁이 끝난 장소)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래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담배농장은 한 번 둘러봐야 할 것 같아서,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야간학교를 다니며 배움의 열정은 점점 커져만 갔고, 버지니아 햄튼(Hampton)에 흑인들을 위한 고등교육 학교가 있다는 말만 듣고, 15살에 혼자 집을 떠나서 햄튼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도 모른채 동쪽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렇게 500마일(800 km)을 마차를 얻어타거나 걸어서 Hampton Normal and Agricultural Institute에 도착했지만, 최소한의 학비를 낼 돈도 없었기 때문에 학교 청소일을 하며 3년만에 우등으로 졸업한다. (햄튼을 방문했던 여행기는 여기를 클릭) 사진 정면에 보이는 통나무집이 복원한 이 농장의 부엌 건물인데,
흙바닥의 여기서 그가 태어나고, 9살까지 어머니와 함께 지내는 모습이 영화에 나왔었다. 계속해서 그는 1875년에 웨스트버지니아로 돌아가 자신이 다녔던 야간학교에서 3년간 선생을 한 후, DC의 신학대에 입학하지만 1년만에 그만두고, 다시 햄튼의 모교로 돌아가서 강사와 사감을 맡아서 2년을 더 보내게 된다.
옆에 있던 다른 작은 통나무집은 당시의 창고 모습으로 복원을 해놓았다. 그러다가 햄튼 학교의 설립자였던 Samuel Armstrong이 당시 흑인들의 환경이 훨씬 더 열악했던 앨라배마(Alabama) 주에도 유사한 교육기관을 세우기로 하고, 그 책임자로 25살의 부커를 보낸 마을의 이름이 바로 '터스키기(Tuskegee)'였다.
농장에서 가장 큰 왼쪽 건물은 마굿간(horse barn)이었다고 하는데, 말은 볼 수가 없었고 대신에...
닭장에 커다란 닭들은 몇 마리가 있었다. (닭 키우는 연방 공무원 이야기를 보시려면 클릭) 1881년 독립기념일에 터스키기 보통학교(Tuskegee Normal School)가 개교하지만 땅도, 건물도, 선생님도, 돈도 없고 오직 부커와 30명의 학생만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가마를 만들어 벽돌을 직접 구워서 건물을 지으며 첫 해를 보냈지만, 1888년에는 400명의 학생과 여러 건물을 가진 터스키기 기술학교(Tuskegee Institute)로 발전하는데, 흑인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술 교육과 함께 백인 사회에 동화될 수 있는 청결과 매너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교육자인 동시에 흑인 문학가로도 인정을 받는데, 자서전 "노예의 굴레를 벗고(Up From Slavery)"는 지금도 읽히며, 1895년 애틀란타에서 열린 목화 박람회에서의 명연설은 그를 전국적인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그는 의회와 대통령에게 흑인 정책에 대한 자문을 하고, 북부의 산업가들이 남부 흑인학교를 지원하도록 해서, 20세기 초까지 터스키기 졸업생들이 미국 남부 전역에 흑인 공립학교 5,000개를 설립하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하던 부커는 1915년 59세의 나이에 뉴욕에서 갑자기 쓰러져 터스키기의 자택에 실려와 숨을 거두고, 자신이 계속 교장을 맡았던 기술학교의 예배당 옆에 묻혔다. 지금은 터스키기 대학교가 된 캠퍼스에 남아있는 그의 묘지와 기념비, 자택과 박물관 등 초기 건물들은 1974년에 국립사적지(National Historic Site)로 지정이 되었는데, 미국의 수 많은 대학들 중에 캠퍼스 일부가 국립 공원으로 관리되는 유일한 경우라 한다.
또 그의 사후 일이기는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흑인 전투기 조종사들을 일컫는 '터스키기 에어맨(Tuskegee Airmen)'들이 훈련을 받았던 학교 바로 옆의 비행장도 1998년에 별도의 국립사적지가 된다. 1939년 흑백분리 시절에 흑인들만을 위한 조종사 훈련시설이 거기 만들어진 이유도 터스키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군대의 극심한 차별을 극복한 흑인 조종사들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었는데, 위기주부가 터스키기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본 것도 그 때문으로 생각이 된다.
준국립공원을 나가면서 오두막이 함께 그려진 입구 표지판을 찍어봤다. 부커 T. 워싱턴(Booker Taliaferro Washington)은 당시 흑백평등의 즉각 실현은 불가하므로 교육을 통해서 흑인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백인 우월체재를 받아들이는 타협적인 태도를 보인 흑인 교육자인 동시에 지도자이다. 그래서 나중에 급진적인 흑인 민족주의자들은 그의 태도를 백인에게 순순히 복종하는 소설 속 '톰 아저씨'같다며 엉클토미즘(Uncle Tomism)이라 비판하게 된다. 그의 사후 100년이 조금 못미쳐 흑인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과연 누구의 생각이 옳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중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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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문하셨던 많은 한국분들이 그냥 '미동부 최대 정원'이라고만 여행기에 계속 따라 쓰시는 것 같은데, 위기주부가 조사한 바로는 서부에도 더 면적이 넓은 사설 정원(private garden)은 없는 듯 하므로, 사실상 제목처럼 미국 전역에서 최대이자 최고로 유명한 야외 정원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는 펜실베이니아 주 동남쪽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을 마침내 다녀왔다. 굳이 '야외'를 덧붙인 이유는 라스베가스 벨라지오 호텔 내부의 꽃장식이 공식적으로는 실내 정원인데, 아마도 롱우드보다 좀 더 유명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이런 쓸데없는 꼼꼼함이라니...^^
월요일 아침 10시 개장시간으로 예약을 했는데도 문이 열리길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뉴욕 한인여행사에서 필라델피아와 여기 및 아미쉬 마을(Amish Village)을 묶어서 일일관광 상품으로 운영할 정도로, 나이아가라 폭포 말고는 특별한 자연 경관이 없는 미동부에서 가장 유명한 '내츄럴' 여행지들 중의 하나인 듯 하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신기하고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 사진을 하도 많이 찍어서 두 편으로 나눠야 하나 잠깐 고민도 했지만... 3시간 정도 걸려 둘러봤던 모든 곳들을 이 안내지도의 번호와 함께 간단히 소개해서, 앞으로 방문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되고자 한다. 26번 비지터센터에서 표를 보여주고 밖으로 나오면 만나는 사거리에서 간단한 토의 후 우리 부부는 좌회전을 했다.
19번 로즈가든(Rose Garden)의 장미들은 아직 다 피지 않았지만 다른 예쁜 꽃들을 볼 수 있었고, 그 너머는 나무들을 기막히게 다듬어 놓은 20번 토피어리가든(Topiary Garden)인데 잔디밭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서쪽으로 계단을 내려오면 클래식한 유럽식 장식과 연못이 있는 16번 그로토(The Grotto)를 먼저 만나고 뒤돌아서면...
분수와 나무를 기하학적으로 배치한 넓은 15번 주분수정원(Main Fountain Garden)에 들어선다. 여기 분수들은 3년간의 공사를 거쳐 2017년에 완전히 업그레이드가 되어서, 지금은 벨라지오 못지않은 화려한 분수쇼를 선사한다. "라스베가스는 잘 있나? ㅎㅎ" 여기는 나중에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을 보여드릴 예정이고, 북쪽으로 관통해 다시 계단을 올라가서 뒤로 보이는 거대한 온실의 동쪽 입구를 찾아갔다.
12번 동쪽 온실(East Conservatory)의 전체 모습으로 얼핏 밋밋해 보이지만, 정말 구석구석 예쁜 꽃들과 또 재미있는 장소들을 많이 배치해 놓았는데,
실내 어린이 정원(Indoor Children's Garden)은 아이들이 좋아할 재미있는 조각과 분수들로 정말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놓았다.
연결된 전체 건물의 정면에 해당하는 13번 메인컨저버토리(Main Conservatory)로 특히 여기는 '오랑제리(Orangery)'로 불리는데, 이 단어는 이 날 오후의 다음 방문지에서 또 만나게 되므로, 계속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자세히 설명드릴 예정이다. 가운데는 관리 직원들로 어디를 가나 꽃을 심고 시든 낙엽을 떼내는 직원들을 볼 수 있어서, 예약할 때는 비싸다고 느꼈던 현재 32불의 입장료가 나갈 때는 전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 날 커플셀카를 십여장은 찍었는데, 그 중에서 사모님이 엄선해 페북에 올렸던 것으로 하나만 골라 블로그에도 남겨둔다~^^
그 뒤쪽은 전시장(Exhibition Hall)이라 되어 있는데, 이 때는 그냥 가운데 바닥에 얇게 물이 흐르도록 해놓았었다. 여기서 왼편으로 나가면 원래는 연꽃이 핀 동양식 연못이 있었다지만, 지금은 전체 지도에 표시된 것처럼 "Longwood Reimagined"라는 별도의 온실과 정원들을 추가하는 대규모 공사가 또 진행되어서 올해 11월말에 새로 오픈 예정이라고 한다.
온실은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된 무도장(Ballroom)과도 연결되어 있는데, 뒤쪽으로는 Pipe Organ & Gallery도 만들어져 있어 둘러보았다. 그 전시를 구경하며 우리 부부는 정확히 10년전에 방문했던 'LA지역 No.2 관광지라던 네더컷 컬렉션'의 파이프오르간 연주가 떠올랐다!
아무리 간단히 포스팅하려 해도 여기 그린월(Green Wall) 사진은 꼭 하나 보여드리고 싶은데, 양치식물이 가득 덮은 벽에 칸칸이 만들어진 문들이 개인 화장실이다. 옛날에 멋진 풍경의 국립공원 화장실 사진들은 좀 올린 적이 있지만, 그 외 여행지의 화장실 입구를 보여드리는 것은 아마도 블로그 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생각된다.
온실의 서쪽 끝에 '고향'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선인장들이 있던 실버가든(Silver Garden)을 둘러본 후에 시간이 되어서, 전체 지도 14번 온실 전망대(Conservatory Overlook)의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현재 낮 분수쇼는 11:15분 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진행되고 있음)
난간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으로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전체 10분을 정말 오기(傲氣)로 모두 찍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화면의 좌우 중앙이 좀 맞지 않고, 바로 옆 한국인 가족의 해설이 곁들여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야간개장을 하는 여름철 목~토요일에는 화려한 조명과 불꽃놀이도 곁들여진 쇼가 진행된다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그것도 보고싶을 정도로 스케일이 아주 크고 멋진 분수쇼였다.
그리고는 25번 건물의 카페에서 샐러드와 샌드위치로 점심을 사먹었다. 건물 안에는 '1906'이란 레스토랑이 함께 있으며, 야외 테이블 옆에는 비어가든(Beer Garden)도 있었다. "여기서 비어가든이면 맥주를 키우는 정원인가? ㅎㅎ"
가장 오래된 건물이자 첫번째 온실이기도 했고, 지금은 이 곳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가 있는 5번 퍼스-듀퐁 하우스(Peirce-du Pont House)의 겉모습 사진 한 장만 보여드린다. 롱우드는 1730년대부터 퍼스(Peirce) 가문이 살았던 농장인데, 대대로 신기한 꽃과 나무를 심고 잘 관리해서 1850년대부터 식물원으로 제법 명성을 얻었단다. 그러나 1900년대 들어 운영이 어려워져 개발업자에게 팔릴 뻔한 것을, 우리가 다 아는 화학회사 듀퐁(DuPont) 창업자의 증손자들 중 한 명인 당시 36세의 피에르 듀퐁(Pierre S. du Pont)이 1906년에 매입하고, 이 집에 살면서 많은 돈을 들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단다.
그렇게 벌목될 뻔했던 숲속에 만들어진 9번 Lookout Loft Treehouse에서 사진 찍어주며 놀고 있는 커플~^^ 여기 전망대와 또 아래에 소개할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는...
숲에 둘러싸인 넓은 초원(Meadow)의 탁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었다. 여기서 정원의 동쪽으로 가는데는 저렇게 초원으로 나가서 걸을 수도 있고,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넓은 비포장도로도 있지만, 우리는 그 사이에 만들어져 있는
나무들 사이로 만들어진 보드워크를 이용했는데, 시간이 되시면 이 멋진 '숲길'도 꼭 걸어보시기를 바란다.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서 잠시 북쪽으로 오리들이 사는 연못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초원의 가장자리까지 가 본 후에, 뒤돌아 남쪽으로 롱우드를 대표하는 사진이 자주 찍히는 곳으로 이동했다.
7번 이태리 분수정원(Italian Water Garden)은 듀퐁이 이탈리아 플로렌스 지방을 여행한 후에 돌아와 1927년에 추가한 곳으로, 지금 내려다보는 발코니의 아래쪽에 장식된 많은 조각들과 함께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리고 여기 전망대에서 뒤돌아 보면,
넓은 호수와 함께 건너편의 경사진 잔디밭에는 편하게 뒤로 기대 앉을 수 있는 의자들도 많이 가져다 놓았다. 또 계단을 내려가 호수 속을 보니까 아주 커다란 메기들이 가장자리를 따라 헤엄을 치고 있어서 한 참을 구경하기도 했다.
호수 건너편 넓은 길가에 있는 6번 Canopy Cathedral Treehouse의 정말 성당같은 외관으로, 기둥을 빼고 실내의 사방이 거울로 장식된 저 꼭대기까지도 꼭 올라가보시기를 바란다~
그렇게 거의 한바퀴를 다 돌아서 그야말로 제철 '꽃나들이'를 하며 걸은 후에 도착한, 2번 Flower Garden Walk and Compartment Gardens의 정중앙에 있는 동그란 분수의 모습이다. 동서 방향의 기다란 꽃길(flower walk) 좌우에 심어진 신기하고 예쁜 꽃들과 그 남쪽에 두 개의 별도 칸(compartment)으로 꾸며진 정원 사진들 중에서 아래 한 장만 더 올려본다.
요즘 한국에서 봄나들이를 취재한 방송의 인터뷰에 나와 “아내와 꽃이 구분이 안 된다”는 멘트를 날린 남편이 화재가 되고있는 모양이던데... 나는 왜 잘만 구분이 되지? ㅎㅎ 그리고는 무대에도 분수가 설치된 1번 야외극장(Open Air Theatre)을 지나서 출발점으로 돌아왔는데, 2시간만에 다시 또 분수쇼가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발걸음을 빨리해 이번에는 높은 분수가 발사되는 곳 바로 앞으로 갔다.
스쿨버스를 타고 단체 견학을 온 아이들애 매달려 있는 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여기 가장 뒤쪽으로 떨어져 있어도 물보라가 엄청나게 날렸다. (물보라하니까 옛날에 디즈니 월드오브칼라 분수쇼를 보면서 홀딱 젖었던 것이 또 떠오름)
대신에 정말 이렇게 시야를 꽉 채우며 솟아오르는 물기둥을 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분수쇼가 끝난 후에는 뒤쪽 언덕에 있는 종탑(carillon)인 22번 차임타워(Chimes Tower)와 제법 높은 폭포 등도 잠깐 둘러보았다.
Festival of Fountains 분수쇼가 끝나고 2시간 전에 우리가 서있었던 온실쪽을 찍어 본 모습이다. 다시 저리로 건너가 비어가든에서 '키운' 맥주도 한 잔 하고, 꽃들도 더 구경한 후에 레스토랑에서 저녁까지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입장료가 아깝지 않게 충분히 잘 봤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있는 다른 국립 공원 하나를 이 기회에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 그만 나가기로 했다.
연분홍 꽃들이 핀 길 가운데서 아마도 히스패닉 성인식에 해당하는 만15세 생일을 성대하게 축하하는 퀸세네라(Quinceanera) 기념촬영을 하고 있었다. (옛날 아내 친구 딸의 그 파티에 참석했던 추억을 보시려면 클릭) 3년전 대륙횡단 이사 포스팅에도 등장했던 미주중앙일보사 미국여행가이드 책자에도 명소로 소개가 되어있어, 미동부로 이사온 후에 계속 가보고 싶던 롱우드가든(Longwood Gardens)를 마침내 방문한 소감을 한마디로 정리하며 끝맺는다면...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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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하루에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6곳의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 4월말의 '펜실베이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첫인상은 얼핏 묘비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래 사진의 공원 간판에는,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 국립사적지(Allegheny Portage Railroad National Historic Site)라 씌여 있으니까 기차(train)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테두리의 돌로 만든 아치는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의 교각이나 터널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내륙에 해발고도까지 높아서 나무에 새순이 이제야 올라오고 있었던 숲속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다가...
숲을 지나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니까, 아주 크고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차역같은 건물들이 나와서 놀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주 멋진 기차역을 만나니까... 주변 풍경과 건축 양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15년전에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Kelso)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기차역은 아니고, 이 곳이 196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며 건설된 비지터센터와 관리사무소 등이 모여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 로고가 붙어있는 오른편 안내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기차가 먼저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입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하얀 물체는 배(boat)였다! 퇴근을 준비하다가 종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털보 레인저가 틀어준 안내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의 지도나 그림을 PDF로 못 찾아서 아래에 앞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데, 위기주부가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흥미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30년대는 증기기관(steam engine)을 이용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대량의 물류운송은 아직도 운하(canal)가 효율적이던 시기였다. 1사분면의 펜실베니아 지도와 같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운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높은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니까, 거기 블레어 고개(Blair Gap)를 넘는 36마일 구간은 운하를 다니는 배를 통째로 차량에 실어서 철도로 산을 넘도록 만든게 1834년에 개통된 Allegheny Portage Railroad란다. (두 수로 사이의 구간을 육로 운송하는 행위가 '포티지(portage)'라는 단어의 뜻)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이 디오라마처럼 기관차가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배가 두동강이 나있다? 처음에는 모형이 만든지 오래되어서 갈라져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철도 차량 길이에 맞춰서 화물선이 분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싣는 수고를 할 필요없이 전구간 운송이 가능하도록 했다는건데, 어찌보면 현대의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비지터센터에는 배를 실은 차량을 '평지에서' 끌었던 기관차도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그냥 보일러에 바퀴를 달아놓은 모습이다. 이 철도의 더 대단한 사실은 밖으로 나가서, 옛날 선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 전에 중요한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판 하나만 더 보여드린다.
미국 최초의 기차가 지나는 동굴로 약 300미터 길이의 '스테이플 벤드 터널(Staple Bend Tunnel)'도 이 철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존스타운(Johnstown) 부근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창문 밖으로 이 날 위기주부와 함께 수고했던 차가 보임^^)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 오니까, 미국 토목학회가 지정한 국가유적이라는 의미인 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 간판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뒤쪽으로 보이는 철도가 복선이다. 단선으로 교차 운행도 가능했을 건데 굳이 복선으로 꼭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혹시 브로셔 그림을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복선 철도를 덮고 건설된 저 커다란 하얀 건물인 '엔진 하우스(Engine House)'에 있다. 브로셔 사진 제일 아래에 이 노선의 고도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도가 있는데, 배를 실은 무거운 기차가 산을 넘기 위해서는 10곳의 경사로마다 이런 엔진실을 만들어서 열차를 밧줄로 잡아 당겨야 했던 것이다!
엔진하우스 내부 복선 철도의 바닥에 피스톤 엔진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보이는데, 그냥 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힘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밧줄로 도르래를 이용해 복선 철도의 양쪽의 기차를 연결해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내려오는 식으로 엔진은 바퀴를 돌려주는 역할만 했다고 한다. 즉, 푸니큘라 또는 인클라인이라 부르는 경사철도(incline railroad) 혹은 강삭철도(cable railway) 시스템을 10개나 만든 것이다.
제목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언급했지만, 약 200년전에 이런 기계로 배를 산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여기서는 정말 "의지만 있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처음 15년 동안은 사진에 보이는 삼(hemp)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 짐을 가득 실은 배와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며 사고도 발생을 했지만, 새로 발명된 강철 케이블(iron wire rope)로 1849년에 모두 바꿔서 안정적으로 내륙 물류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으나...
증기기관의 개선으로 기차의 마력이 증가하고, 토목공학의 발달로 보다 긴 터널과 교량의 건설이 가능해져서, 결국 1854년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한 번에 연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가 개통을 하자마자, 운하를 다니는 배를 싣고 밧줄로 끌어서 산을 넘었던 이 구식 철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 6번 엔진하우스의 고도가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해발 717 m이고, 사진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서밋레벨(Summit Level)을 지나 1~5번의 경사로를 내려가서 해발 358 m의 존스타운에서 기차에 실린 배를 다시 운하에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편 동쪽 방향으로 10번 엔진하우스 자리까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쪽으로 철도가 끝나는 홀리데이스버그(Holidaysburg) 마을은 291 m로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고도차는 더 크다.
바로 옆으로는 레몬 하우스(Lemon House)라 불리는 2층 건물이 있는데, 과일 레몬과는 관계가 없고 운영한 부부의 성씨가 레몬이었단다.^^ 철도와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자와 이용객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친목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이미 레인저가 문을 잠그고 퇴근해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레몬하우스 뒤로 버려진 이 철도를 따라 건설되었던 옛날 22번 국도(Old Route 22)가 살짝 보인다. 위기주부는 공원 출입구와 연결된 왕복 4차선의 현재 22번 국도를 이용해 산을 내려가 3시간 거리의 집까지 운전해 돌아갔는데, 여기를 포함해 이 날 방문했던 6곳을 대표하는 연도를 시간 순으로 링크를 걸어보면 1754년, 1789년, 1834년, 1889년, 1936년, 그리고 2001년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시공간(時空間)을 헤집고 다녔던 2024년 4월 22일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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