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Allegheny Portage Railroad) 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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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Allegheny Portage Railroad) 국립사적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Allegheny Portage Railroad) 국립사적지

혼자 하루에 10시간 동안 차를 몰고 6곳의 목적지를 찾아다녔던, 지난 4월말의 '펜실베이니아 별볼일 없는 국립 공원들'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해질녘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첫인상은 얼핏 묘비처럼 보이기도 했던 아래 사진의 공원 간판에는, 앨러게니 포티지 레일로드 국립사적지(Allegheny Portage Railroad National Historic Site)라 씌여 있으니까 기차(train)와 관련된 장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저 테두리의 돌로 만든 아치는 철도가 지나가는 다리의 교각이나 터널의 형상을 나타내고자 했던 것 같다. 내륙에 해발고도까지 높아서 나무에 새순이 이제야 올라오고 있었던 숲속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다가... 숲을 지나서 언덕 꼭대기에 도착하니까, 아주 크고 튼튼하게 잘 지어놓은 기차역같은 건물들이 나와서 놀랬다. 전혀 예상하지 않은 장소에서 아주 멋진 기차역을 만나니까... 주변 풍경과 건축 양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15년전에 방문했던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의 켈소(Kelso)가 떠오른다. 그러나 이 건물들은 기차역은 아니고, 이 곳이 1964년에 국립사적지로 지정이 되며 건설된 비지터센터와 관리사무소 등이 모여있을 뿐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국립공원청 로고가 붙어있는 오른편 안내소로 들어가면, 당연히 기차가 먼저 나오겠지 생각했는데... 입구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하얀 물체는 배(boat)였다! 퇴근을 준비하다가 종소리에 놀라 밖으로 나온 털보 레인저가 틀어준 안내영화를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원 브로셔의 지도나 그림을 PDF로 못 찾아서 아래에 앞면 전체를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는데, 위기주부가 이렇게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할 정도로 흥미로운 경우는 매우 드물다.^^ 1830년대는 증기기관(steam engine)을 이용한 철도가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대량의 물류운송은 아직도 운하(canal)가 효율적이던 시기였다. 1사분면의 펜실베니아 지도와 같이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운하로 바로 연결하는 것은 높은 앨러게니 산맥(Allegheny Mountain)에 가로막혀 불가능하니까, 거기 블레어 고개(Blair Gap)를 넘는 36마일 구간은 운하를 다니는 배를 통째로 차량에 실어서 철도로 산을 넘도록 만든게 1834년에 개통된 Allegheny Portage Railroad란다. (두 수로 사이의 구간을 육로 운송하는 행위가 '포티지(portage)'라는 단어의 뜻) 아주 잘 만들어 놓은 이 디오라마처럼 기관차가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인데... 배가 두동강이 나있다? 처음에는 모형이 만든지 오래되어서 갈라져 떨어졌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철도 차량 길이에 맞춰서 화물선이 분리가 가능하도록 일부러 만든 것이란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이나 짐을 옮겨 싣는 수고를 할 필요없이 전구간 운송이 가능하도록 했다는건데, 어찌보면 현대의 규격화된 컨테이너 화물운송의 원조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론 비지터센터에는 배를 실은 차량을 '평지에서' 끌었던 기관차도 하나 전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흔히 아는 증기 기관차가 아니라 그냥 보일러에 바퀴를 달아놓은 모습이다. 이 철도의 더 대단한 사실은 밖으로 나가서, 옛날 선로가 지나가는 곳에서 직접 확인하게 되는데, 그 전에 중요한 장소를 설명하는 안내판 하나만 더 보여드린다. 미국 최초의 기차가 지나는 동굴로 약 300미터 길이의 '스테이플 벤드 터널(Staple Bend Tunnel)'도 이 철도와 함께 만들어졌는데, 시리즈 전편에 소개했던 존스타운(Johnstown) 부근에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다고 한다. (창문 밖으로 이 날 위기주부와 함께 수고했던 차가 보임^^) 철도가 놓여진 곳으로 오니까, 미국 토목학회가 지정한 국가유적이라는 의미인 National 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 간판이 먼저 보였다. 그런데 뒤쪽으로 보이는 철도가 복선이다. 단선으로 교차 운행도 가능했을 건데 굳이 복선으로 꼭 만들어야 했던 이유는 혹시 브로셔 그림을 자세히 보신 분이라면 이미 알겠지만, 복선 철도를 덮고 건설된 저 커다란 하얀 건물인 '엔진 하우스(Engine House)'에 있다. 브로셔 사진 제일 아래에 이 노선의 고도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도가 있는데, 배를 실은 무거운 기차가 산을 넘기 위해서는 10곳의 경사로마다 이런 엔진실을 만들어서 열차를 밧줄로 잡아 당겨야 했던 것이다! 엔진하우스 내부 복선 철도의 바닥에 피스톤 엔진과 커다란 톱니바퀴가 보이는데, 그냥 줄을 감아서 끌어올릴 힘은 없었기 때문에, 하나의 밧줄로 도르래를 이용해 복선 철도의 양쪽의 기차를 연결해서, 한 대가 올라가면 다른 한 대는 내려오는 식으로 엔진은 바퀴를 돌려주는 역할만 했다고 한다. 즉, 푸니큘라 또는 인클라인이라 부르는 경사철도(incline railroad) 혹은 강삭철도(cable railway) 시스템을 10개나 만든 것이다. 제목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을 언급했지만, 약 200년전에 이런 기계로 배를 산으로 끌어올린 것을 보면... 여기서는 정말 "의지만 있으면 배도 산으로 간다"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처음 15년 동안은 사진에 보이는 삼(hemp)을 꼬아서 만든 밧줄이 짐을 가득 실은 배와 차량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지며 사고도 발생을 했지만, 새로 발명된 강철 케이블(iron wire rope)로 1849년에 모두 바꿔서 안정적으로 내륙 물류수송의 대동맥 역할을 했으나... 증기기관의 개선으로 기차의 마력이 증가하고, 토목공학의 발달로 보다 긴 터널과 교량의 건설이 가능해져서, 결국 1854년에 필라델피아와 피츠버그를 한 번에 연결하는 완전히 새로운 철도가 개통을 하자마자, 운하를 다니는 배를 싣고 밧줄로 끌어서 산을 넘었던 이 구식 철도는 한순간에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 6번 엔진하우스의 고도가 전구간에서 가장 높은 해발 717 m이고, 사진의 서쪽 방향으로 완만한 서밋레벨(Summit Level)을 지나 1~5번의 경사로를 내려가서 해발 358 m의 존스타운에서 기차에 실린 배를 다시 운하에 내렸던 것이다. 여기서 반대편 동쪽 방향으로 10번 엔진하우스 자리까지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쪽으로 철도가 끝나는 홀리데이스버그(Holidaysburg) 마을은 291 m로 거리는 훨씬 가깝지만 고도차는 더 크다. 바로 옆으로는 레몬 하우스(Lemon House)라 불리는 2층 건물이 있는데, 과일 레몬과는 관계가 없고 운영한 부부의 성씨가 레몬이었단다.^^ 철도와 함께 만들어져서 작업자와 이용객들에게 식사와 음료를 파는 친목의 장소였다고 하는데, 이미 레인저가 문을 잠그고 퇴근해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되었다는 내부는 들어가 볼 수 없었다. 레몬하우스 뒤로 버려진 이 철도를 따라 건설되었던 옛날 22번 국도(Old Route 22)가 살짝 보인다. 위기주부는 공원 출입구와 연결된 왕복 4차선의 현재 22번 국도를 이용해 산을 내려가 3시간 거리의 집까지 운전해 돌아갔는데, 여기를 포함해 이 날 방문했던 6곳을 대표하는 연도를 시간 순으로 링크를 걸어보면 1754년, 1789년, 1834년, 1889년, 1936년, 그리고 2001년까지... 참으로 부지런히 시공간(時空間)을 헤집고 다녔던 2024년 4월 22일의 이야기가 모두 끝났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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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4개월만에 암살당한 대통령의 집이었던 클리블랜드 외곽의 가필드(James A. Garfield) 국립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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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트럼프가 제47대로 다시 취임하며 미국 역사상 두번째의 '징검다리 임기' 대통령이 되었다. 그 첫번째는 1885~1897년의 가운데 4년을 뺀 제22·24대를 역임한 그로버 클리블랜드(Grover Cleveland)였다. 비록 그는 뉴저지 출생에 뉴욕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되어 오하이오(Ohio) 주와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1796년에 이리 호(Lake Erie) 연안을 탐험하다 쿠야호가 강(Cuyahoga River)이 호수로 흘러드는 곳에 자신의 이름을 딴 마을을 처음 만들었던 모세스 클리블랜드(Moses Cleaveland) 장군의 먼 후손이다. 그 마을이 20세기 전반에 인구 1백만의 돈이 넘쳐나는 '철강도시' 클리블랜드(Cleveland)로 발전했지만, 중반 이후 오대호 지역의 제조업 쇠퇴와 함께 현재는 인구 40만명으로 쇠락한 대표적 '러스트 벨트' 도시이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서는 세계적 명성의 종합병원으로 다시 알려지며 '의료도시'로 탈바꿈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오케스트라와 미술관이 유명하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이 대표적 관광지라지만, 위기주부는 그 모두를 제쳐두고 북동쪽의 멘토(Mentor)라는 위성도시로 향했다. 제임스 가필드 국립사적지(James A. Garfield National Historic Site)는 미국 제20대 대통령이 1880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4년전에 구입한 농장과 저택을 보존하기 위해 1980년에 지정되었다. 그는 남북전쟁 중인 1862년에 처음 하원에 당선되어 대선때가 18년째로, 미국 역사상 지금까지도 유일하게 현직 연방 하원의원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경우이다. 농장의 말과 마차를 보관하던 커다란 캐리지 하우스(Carriage House)를 개조한 비지터센터의 입구로, 계속 내리던 진눈깨비는 그쳤지만 꾸물꾸물한 날씨가 이제 소개할 그의 슬픈 죽음과 맞물려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를 장식하는 제임스 A. 가필드(James Abram Garfield) 대통령의 옆모습으로, 워싱턴DC 내셔널몰에 있는 그의 동상을 찾아봤던 여행기에서 이력을 짧게 소개한 것을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들게 공부해서 윌리엄스 대학을 졸업하고 고대문학을 가르치는 교수를 거쳐 모교의 학장이 되었고, 변호사와 군장교를 거쳐 정치에 입문해 대통령까지 된 정말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마굿간을 개조해서 그런지 비지터센터 내부구조가 좀 특이했는데, 취임선서를 하는 모습의 하얀 동상이 있는 곳에서 오른편 안쪽으로 전시관이 만들어져 있었다. 지금은 대통령도서관(Presidential Library)이라면 그냥 특정 대통령의 기념관을 좀 우아하게(?) 부르는 표현으로 인식되지만, 여기는 그가 암살되고 4년후인 1885년에 계속 여기에 거주하던 미망인이 집의 일부를 그가 문학교수와 변호사로 일하며 소유했던 책들을 모아서 따로 공개하는 공간으로 만들었기에, 공식적인 최초의 미국 대통령 도서관으로 인정되는 유적지이다. 인문학자답게 남북전쟁을 노예제에 대항하는 성전으로 인식해서, 스스로 의용군을 조직해서 북군에 합류해 서부전선의 최대 격전이었던 치카모가 전투(Battle of Chickamauga) 등에서 활약해 명성을 얻기도 했다. (다른 오하이오 출신의 미래 대통령이 두 명이나 참전했던 동부전선 버지니아 지역의 전투에 대한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다음으로 대통령 선거와 취임식 등을 보여주는데, 제일 왼쪽에 빨간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당시 선거운동원 모습이란다. 공화당 내 급진파였던 가필드는 선거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에, 다른 최대파벌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부통령 후보로 그쪽 계파 사람을 골랐고, 당선되면 상대 파벌에도 요직을 준다는 조건에 합의해야만 했다. 그 결과로 아주 근소한 차이로 대선에서 승리해서 1881년 3월에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대통령이 된 가필드는 돈으로 관직을 사고파는 엽관제가 만연한 당시의 부패한 공직사회를 일소하려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 파벌에 행정부 요직을 준다는 약속도 지킬 수가 없었다. 이에 불만을 품은 Charles J. Guiteau가 불과 취임 4개월만에 기차역에서 그의 등 뒤에 두 발의 총격을 가했다. 문제는 자신이 가필드 대통령 당선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믿었던 암살범은 정치판 주변을 기웃거리는 과대망상증 환자였고,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하면 자신은 사면될거라 주장했지만, 약 1년 후에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총알 하나가 몸에 박힌 상태로 가필드는 2개월 이상을 병석에 누워 있다가 패혈증이 겹치면서 결국 사망했는데, 안타깝게도 의사들이 무리하게 총알을 찾으려다가 병세가 오히려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높단다. 마지막에는 병상에 누운 상태로 백악관을 떠나 기차를 타고 뉴저지 바닷가 휴양지로 향했다가 거기서 사망하는데, 당시 덜컹거리는 기차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철망으로 특수 제작되었던 매트리스 실물이란다. 이외에도 사망 후에 제작한 데드마스크와 손의 모형 등도 유리함 안에 전시되어 있었다. 앞서 링크로 소개한 그의 동상에서도 묘사된 것처럼... 학자, 군인, 정치가로서 모두 역량을 보여준 훌륭한 인물이었기에, 만약 암살되지 않았다면 대통령으로 어떤 업적을 이루고 또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았을지가, 짧은 안내영화를 보면서 계속 궁금했다~ 저택의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이 날의 마지막 무료 가이드투어에 20분 정도 기다리면 참여가 가능했지만, 예약해 놓은 숙소까지 또 2시간을 더 운전해서 가야했기 때문에, 그냥 혼자 집 주위만 둘러보고는 떠나기로 했다. 가필드 사망 후에도 많은 확장과 시설 추가를 거친 후에, 자녀들에 의해서 1936년에 클리블랜드 역사학회에 기증되었다가, 국립사적지로 지정된 후에 대대적인 보수를 거치면서, 19세기 미국 대통령 유적지들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복원되고 세부묘사가 뛰어난 실내로 여겨진단다. 본채 옆으로는 대선 때 선거운동 본부로 사용되었던 작은 별채인 캠페인오피스(Campaign Office)가 있어서,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살짝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상당히 독특한 외관의 1895년에 추가된 풍차(Windmill)는 곡식을 빻는 용도가 아니라, 창문이 보이는 2~3층의 안에 있는 커다란 저수조의 물을 지하로 매설된 파이프를 통해 저택 꼭대기의 작은 물탱크로 보내는 역할을 했단다. 이외에 마굿간 옆으로는 지하 가스전에서 나오는 연료를 보관해서 집의 난방과 취사에 사용하기 위해 1885년에 설치된 가스홀더(Gasholder) 건물도 있었다. 이상으로 또 한 명의 미국 대통령에 대한 공부를 마치고는 대각선으로 오하이오의 중심을 향하는 71번 고속도로를 따라 주도인 콜럼버스(Columbus)로 향했다. 시간이 있었으면 사진 가운데 빌딩의 뒤에 위치한 주청사라도 잠깐 구경하고 싶었지만, 도심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나왔을 때는 사진보다 더 어두워진 저녁에 겨울비까지 내리는 초행길이었기 때문에, 바로 외곽순환 270번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도시 북서쪽의 예약한 모텔로 향했다. 따로 저녁 먹을 곳을 찾기도 귀찮을 것 같아 미리 준비해간 즉석밥에 팝콘과 맥주를 후식으로 먹고는 바로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도 방에서 간단히 해결하고는 이미 블로그에 소개한 1시간 거리의 미공군 국립박물관을 찾아갔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