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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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북서쪽 쉐난도어 계곡에 있는 시더크릭 벨그로브(Cedar Creek and Belle Grove) 국립역사공원

버지니아 북서쪽 쉐난도어 계곡에 있는 시더크릭 벨그로브(Cedar Creek and Belle Grove) 국립역사공원

반응형 쉐난도어 밸리(Shenandoah Valley)는 존 덴버의 유명한 노랫가사에 등장하는 쉐넌도어 강이 굽이 흐르는 평야지대로,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한 1965년 영화 의 무대이다. 또 그 영화의 주제가로 사용된 작곡자를 알 수 없는 미국민요도 인데, 곡명을 클릭해서 가장 잘 알려진 버전인 노르웨이 가수, 시셀 슈사바(Sissel Kyrkjeb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이 단어의 뜻이 "별들의 딸"이라는 낭만적인 전설이 있기는 하지만, 인디언 언어로 '전나무 숲의 강' 또는 '높은 산의 강'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단다. 국립공원청 브로셔의 조감도로 살펴보면 블루리지(Blue Ridge)와 앨러게니(Allegheny) 산맥 사이의 노란색 땅으로 웨스트버지니아와 메릴랜드 및 펜실베니아까지 평원이 이어진다. 그래서 최초로 정착한 서양인들도 1731년 독일계 Jost Hite가 16가족을 끌고 펜실베니아에서 내려왔으며, 비옥한 땅에서 밀농사를 지어서 식민지는 물론 유럽까지 수출을 해서 "Breadbasket"이라는 별명의 곡창지대로 번성했다.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쉐난도어 밸리는 남부의 식량 확보를 위한 요충지라서, 1862~64년 사이에 대규모 전투만 6번이나 벌어진 전쟁터가 되었고, 현재 계곡 전체가 '국가유산지역(National Heritage Area)'에 해당하는 Shenandoah Valley Battlefields National Historic District로 지정이 되었다. 그 중에서 유일하게 연방정부가 직접 관리하는 국립 공원으로 2002년에 지정된 곳을 메리스락(Mary's Rock) 겨울 등산 후에 찾아가 보았다. 시더크릭 벨그로브 국립역사공원(Cedar Creek and Belle Grove National Historical Park) 본부라고 된 곳을 찾아왔는데, NPS 로고 외에는 공원 이름도 없고 뭔가 좀 이상했다. 문도 잠겨 있어서 여기가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직원이 직접 나와서는 내가 찾는 트레일이 시작되는 곳은 약간 아래쪽으로 걸어가면 된다고 친철히 알려주었다. (멀리 언덕 위에 해드쿼터 건물과 주차장이 보임) 여기는 6회의 전투들 중 마지막인 1864년 10월 19일 시더크릭 전투(Battle of Cedar Creek)의 최초 교전이 발생한 곳으로, 안내판의 공원 지도를 확대해 보여드리며 간단히 설명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스트라스버그(Strasburg)에 주둔한 2만명의 남군이 쉐난도어 강의 지류인 시더크릭을 경계로 3만명의 북군과 대치하고 있다가,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신념으로 남군이 안개낀 새벽에 3방면으로 물을 건너 기습공격을 했는데, 그 사령관은 3개월전 '남군 최후의 도박' 작전을 이끌었던 주발 얼리(Jubal Early)이다. 남군이 불과 몇 시간만에 미들타운(Middletown)까지 밀고 올라가다 잠시 멈춘 사이에, 북쪽 윈체스터(Winchester)에서 내려온 필립 셰리든(Philip Sheridan)의 본진이 반격에 성공해서 북군의 최종 승리로 끝난 전투로 양측에서 8,6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단다. 당시 준장이었던 필립 셰리든이 자신의 트레이드마크 모자를 쓰고 말에 올라서, 북군의 전열을 정비하는 유명한 그림이다. 그는 이 전투 후에 소장으로, 남북전쟁이 끝난 몇 년 후에 중장으로 진급해서 인디언 전쟁을 지휘하며 "착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 뿐이다!"라는 말을 처음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 후 1883년에 대장으로 진급하며 미육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고, 1888년에 5성 장군인 원수(General of the Army) 계급을 받은지 2달 후에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 그의 나이는 고작 57세였다. 작은 연못을 낀 짦은 트레일을 걸어 찾아간 곳은 버몬트 기념비(Vermont Monument)가 있는 곳이다. 나가 싸워서 기습한 적군의 진격을 늦추라는 자살작전에 가까운 명령을 받고, Stephen Thomas 대령이 이끄는 여단 1,500명이 여기서 남군과 싸워서 1,06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30분 정도 시간을 벌어줬단다... 안내판의 그림은 대령이 속한 버몬트 제8연대가 성조기와 군기, 버몬트 주기를 지키기 위해 포위되어서 육탄으로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나중에 그린 것으로, 연대원 164명중 110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며 기수 3명도 모두 전사했지만, 생존자들이 깃발들은 회수해서 퇴각을 했단다. 당시 18세로 여기 지옥같았던 전투에서 살아남아 북쪽으로 돌아간 Herbert Hill 병사가, 그의 동료들을 기리기 위해서 직접 고향의 버몬트 대리석으로 이 기념비를 만들어 가지고 와서 1885년에 이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공원 본부에서 조금 북쪽에 그들의 주둔지였던 벨그로브(Belle Grove)로 들어가는 삼거리에, 이 자리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한 남군의 장군인 스티븐 램수(Stephen Ramseur) 추모비가 1920년에 세워졌다. 노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1860년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했지만, 이듬해 바로 남부연맹에 가담해 중령으로 시작해서 단 3년만에 불과 27세의 나이로 소장(Major General) 계급장을 단 인물이다. 소장 임명 후에 찍은 그의 사진으로, 당시 남군 병사들 사이에 퍼졌던 수염은 기르고 머리는 박박 깍는 '삭발투혼'에 동참한 모습이다. 특히 전투 하루 전날에 아내가 첫딸을 낳았다는 편지를 받았고, 북군 포로로 잡혀 죽으면서도 사랑하는 아내에게 천국에서 만나자는 말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단다. 앞서 언급한 이 계곡의 첫번째 이주자 리더의 손자인 Issac Hite Jr.가 1797년에 완공한 대저택이 오른쪽에 보이는 벨그로브 플랜테이션(Belle Grove Plantation)으로, 그의 아내 Nelly는 나중에 미국 제4대 대통령이 되는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의 여동생이었다. 국립역사공원에 속하지만 기존의 재단에서 계속 소유 및 운영을 하고 있는데, 커다란 빨간 헛간의 1층에 새로 단장을 했다는 비지터센터와 기념품 가게는 겨울철에는 주말에만 문을 연다고 해서 들어가 볼 수 없었고, 트레일 표시를 따라 도로 건너편으로 가봤다. 발굴을 토대로 노예들이 살았던 당시의 모습을 건너편의 안내판에 재현해 놓았는데, 이 대농장의 전성기 때는 농장주가 300명 가까운 흑인 노예를 소유했을거라 한다. 노예들의 통나무집과 대비되는 으리으리한 벨그로브 저택은 버지니아에서 가장 잘 보존된 18세기 플랜테이션 건물들 중의 하나로, 여름철에 진행되는 유료투어로 내부 구경도 가능하단다. 다시 11번 국도 Valley Pike로 돌아나와 조금 올라가면, 민간 재단인 Cedar Creek Battlefield Foundation 안내소 겸 박물관이 나오는데 역시 문을 닫았다. 이 단체에서 매년 10월에 회원 및 자원봉사자들이 모여서 조금 전 벨그로브 앞마당에서 남북전쟁 당시의 모습을 재현(reenactments)하는 행사가 아주 유명한 모양이다. 위기주부가 미국의 다양한 국립 공원들 비지터센터를 100곳은 가본 듯 한데, 이렇게 시내 쇼핑몰 건물에 미용실, 방송국, 가구점과 함께 입주해 있는 곳은 처음 봤다.^^ 자동차 뒤의 나지막한 단층 건물의 2/5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간판 크기로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역시 미들타운 시내의 이 곳도 겨울철은 주말에만 오픈한단다. 이상으로 또 하나의 '별 볼일 없는' NPS 오피셜유닛 방문을 마쳤는데, 남북전쟁 유적지에 와서 대포 하나 구경을 못 한게 좀 아쉬워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옛날에 이미 소개한 다른 전쟁터의 못 가본 구역을 들리기로 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우리 동네에 있는 남북전쟁 유적지인 볼스블러프 전쟁터 지역공원(Ball's Bluff Battlefield Regional Park)

우리 동네에 있는 남북전쟁 유적지인 볼스블러프 전쟁터 지역공원(Ball's Bluff Battlefield Regional Park)

반응형 지난 봄에 우리 동네에 있는 트럼프 골프장을 소개하면서, 그가 자랑스럽게 만들어 놓은 "The River of Blood" 동판이 붙어 있는 국기 게양대를 보여드린 적이 있다.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 그 포스팅에서, 남북전쟁 당시에 강물을 피로 물들이는 그런 대규모 전투가 그의 골프클럽 바로 옆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뻥이고, 실제로는 포토맥 강의 상류 11마일 떨어진 리스버그(Leesburg) 강가에서 벌어진 작은 전투가 부근에서 유일한 교전이라고 알려드렸었다. 마침 리스버그 프리미엄아울렛에 급히 환불을 하러 혼자 갈 일이 있는 김에, 현재 북버지니아 지역공원으로 관리되고 있는 그 전쟁터를 둘러보았다. 공원 간판이 나오며 진입로가 비포장으로 바뀌어서, 약간 망설이다가 조심해서 계속 안으로 운전해 들어갔다. 볼스블러프(Ball's Bluff)라는 이름의 '볼(Ball)'은 동그란 공을 말하는게 아니고,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이름을 딴 George Washington Ball의 성씨인데, 그는 워싱턴의 어머니 Mary Ball 집안의 후손이었단다. 넓은 비포장 주차장의 옆에는 봄~가을의 주말에만 진행되는 무료 가이드투어를 위한 만남의 장소까지 잘 만들어져 있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안내판들도 여러 개가 세워져 있는데, 지도를 겸해서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것 하나만 아래에 보여 드린다.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의 7월에 남북이 맞붙었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 이후로, 북버지니아에서는 처음으로 다시 교전한 10월 21일의 여기 전투상황을 보여주는 지도이다. 리스버그에 주둔하고 있던 빨간색 남군을 괜히 파란색 북군이 강을 건너 쳐들어 왔다가, 그림처럼 후퇴도 제대로 못하는 상태에서 포위 공격을 받게 된다. 양측 각각 1,700명 가량이 전투에 참가해서 사상자가 남군은 150명 정도였지만, 북군은 약 1,000명이나 되는 패배로 기록된단다. 트레일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래쪽으로 나무들이 거의 없는 풀밭이 나오는데, 가장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졌던 장소이다. 바로 직진하면 거기를 지나서 묘지가 나오지만, 안내에 따라서 왼편으로 Interpretive Battlefield Trail을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는데, 그 때 풀숲에서 나타난 사슴 두 마리... 아침 일찍 도로 옆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우리 동네에서는 흔한 야생 동물이다. 소소한 기념비와 안내판 등을 지나서 풀밭을 북쪽으로 돌아 강쪽으로 걸어가니까, 북군의 대포라는 설명과 함께 두 문이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 남북전쟁 당시의 이런 대포 사진이 슬슬 지겨워지는 것을 보니, 그 동안 관련된 장소들을 참 많이 소개한 것 같다...^^ 전망대인 Bluff Overlook에 도착했지만 빽빽한 나무들 때문에 강물은 내려다 보이지 않았고, 멀리 보이는 언덕의 집은 포토맥 강 건너 메릴랜드 주이다. 5년전 러시모어와 콜로라도/와이오밍 주 자동차 여행의 스코츠블러프(Scotts Bluff) 준국립공원 여행기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여기 이름의 '블러프(bluff)'는 뻥이 아니라 절벽을 뜻한다. 즉, 북군은 하필이면 강가의 절벽 위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던 것이다. 조금 하류쪽에 있는 삼거리 표지판으로 강가로 내려가는 River Trail은 딱 봐도 경사가 너무 급해서 포기하고, 묘지가 있는 가운데 초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나무에 칠해진 하늘색 직사각형과 포토맥 헤리티지 트레일(Potomac Heritage Trail) 표식이 보이는데, 여기서 강물로 내려간 후에 조금 더 이어지는 산책로가 버지니아 주 PHT의 마지막 북쪽 끝 구간이었다. 묘지로 향하는 길가의 작은 표석 옆에 성조기가 꽂혀 있고, 주변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캘리포니아 출신 지원병들로 구성되었던 펜실베이니아 71 연대(71st PA Regiment)를 지휘한 에드워드 D. 베이커(Edward Dickinson Baker) 대령이 여기서 전사한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그가 누군고 하니...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전쟁에서 사망한 현직 상원의원(Senator)으로 그의 유해는 샌프란시스코 국립묘지에 묻혀있다. 그는 1811년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으로 이민와서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가 되어 주의회에서 활동하며 1935년경부터 링컨과 친구가 되었고, 그 후 캘리포니아에서 정치활동을 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북쪽 오레곤으로 옮겨서 남북전쟁 발발 전해에 연방 상원의원으로 뽑혔다. 그래서 1861년 3월에 링컨이 대통령 취임식에 함께 마차를 타고 갈 만큼의 절친이었는데, 그의 전사 소식에 링컨은 거의 쓰러질만큼 오열했단다. 원래 링컨은 친구를 최전방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여단장급의 소장(major general)에 임명하려 했지만, 그가 자신의 군경력에 비춰 대령(colonel)이면 충분하다며 사양했다고! 그 옆으로 나지막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볼스블러프 국립묘지(Ball's Bluff National Cemetery)가 나오는데, 현재 미국 전역의 164개 국립묘지들 중에서 3번째로 작은 규모라 한다.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에 만들어져서, 이 전투에서 사망한 북군 54명의 유해가 여기 매장되었지만, 신원이 밝혀진 병사는 매사추세츠 주에서 온 1명 뿐이란다.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담 너머로 묘지 내부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둥글게 세워진 비석은 모두 25개인데, 혹시라도 나중에 무료 가이드 투어를 하게되면 왜 54개가 아닌지는 물어볼 생각이지만... 아마 그럴 가능성은 없을 듯 하다~^^ 대통령의 절친까지 전사한 굴욕적인 참패였던 이 전투 이후에, 미의회는 전쟁수행공동위원회(Joint Committee on the Conduct of the War)를 만들어서 전쟁의 진행상황을 감독하고 평가하게 되는데, 지휘관의 교체나 강경한 전략 추진 등으로 남북전쟁의 종전까지 큰 영향을 미친다. 초원을 가로질러 돌아가는 길에 이번에는 까만색의 다른 표석이 또 눈에 띄었는데 "그의 고향 주를 지키다가 용감히 쓰러졌다(fell bravely depending his native state)"고 적혀 있다. Thomas Clinton Lovett Hatcher는 붉은 수염에 193cm의 장신으로 연대깃발을 들고 고향 버지니아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가 21살의 나이로 이 자리에서 전사한 후에, 리스버그 서쪽의 퍼셀빌(Purcellville) 교회 공동묘지에 묻혔단다... 지금까지 남북전쟁 관련 유적지는 연방정부 국립공원청 소유의 장소들만 둘러보다가, 처음으로 남부연합 지역의 주정부가 관리하는 곳을 방문한 셈인데 분위기에서 미묘한 차이가 느껴졌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남군의 입장에서 내전을 서술하고 전시한 장소들도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그런 곳도 찾아가 볼 생각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남군 최후의 도박이었던 모노카시 국립전쟁터(Monocacy National Battlefield)와 포트스티븐스(Fort Stevens)

남군 최후의 도박이었던 모노카시 국립전쟁터(Monocacy National Battlefield)와 포트스티븐스(Fort Stevens)

반응형 남북전쟁의 막바지였던 1864년 6월, 버지니아 피터스버그(Petersburg)에서 북군의 총공세를 힙겹게 막아내고 있던 남군 총사령관 리(Lee) 장군은 15,000명의 병력을 주발 얼리(Jubal Early)에게 주면서 몰래 쉐난도어 계곡으로 우회해서 워싱턴DC를 기습 공격할 것을 명령한다. 이미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기에는 늦었지만, 북군의 수도에 직접적인 피해를 일으켜 링컨 정권에 타격을 줘서 휴전협상을 이끌어 내거나, 또는 그 해 11월의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반전파가 유리해지도록 하기 위한 최후의 도박을 한 것이다. 그 보다 2년전인 1862년 9월에 남군이 처음으로 포토맥 강을 건너서 싸웠던 앤티텀 전쟁터를 구경하고 시간이 빠듯했지만, 약 8만의 인구로 메릴랜드 주에서 2위 도시인 프레더릭(Frederick) 근처의 모노카시 국립전쟁터(Monocacy National Battlefield)를 또 찾아왔다. 자동차 앞유리를 통해서 공원의 간판 사진을 급히 찍고는 왼편의 비지터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인구수 1위인 볼티모어는 약 60만^^) 안내판 오른쪽의 마름모 모양 지도에 회색으로 표시된 경로로 우회한 얼리(Early)의 남군 15,000명이 7월 9일에 이 곳에서 루 월러스(Lew Wallace) 소장이 이끄는 북군 6,600명과 전투를 벌였다. 월러스는 대부분 전투 경험이 없는 신병 3,200명을 데리고 볼티모어에 주둔하고 있다가, 북군 총사령관 그랜트가 급히 보낸 3,400명과 함께 허겁지겁 도착해서 두 배가 훨씬 넘는 적군과 싸우게된 것이었다. 하루 동안 전투가 벌어진 여러 장소들이 앞서 안내판 왼쪽의 공원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만, 시간이 없어서 한 곳도 직접 방문하지는 못했으므로, 전투가 벌어졌던 농장에 남아있는 건물과 기념비 및 전투 내용 등이 궁금하시면 공원 홈페이지에서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옥색 지붕이 특이했던 비지터센터에 들어가니, 직원이 전시실은 의외로 2층이라고 안내를 해줬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입구에 이라 적혀 있는 의미는 차차 아시게 되고... 모노카시 강은 포토맥 강의 지류로 원주민들이 "river with many bends"라는 뜻의 Monnockkesey로 부른 것에서 유래한 이름이란다. 윗줄 오른편의 까만 턱수염이 북군 지휘관 월러스(Wallace)로, 그는 전쟁이 끝나고 뉴멕시코 준주의 지사로 재임하면서 역사소설을 하나 출간하는데, 영화로도 만들어져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책의 제목은 바로 Ben-Hur: A Tale of the Christ 이다. 이 전투 직전까지의 남북전쟁 상황 등을 설명하는 전시물 앞에서, 아이 한 명이 바닥에 앉아 쥬니어레인저 과제를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다. 리치먼드에서 출발했던 남군의 우회로가 가운데 큰 지도에 빨간색으로 표시되어 있고, 세부적인 전투 상황이 위에 기재되어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 북군이 1,300명의 사상자를 내고 볼티모어로 패퇴했고, 남군은 그보다 적은 900명의 사상자 피해만 보고 여기서 야영한 후에 다음날 워싱턴DC로 계속 진군을 해서 11일 정오에 도착했지만, 그 날 오후에 포토맥 강을 거슬러 배를 타고 올라온 많은 북군이 수도 방어를 위해 증원되었다. 즉, 월러스의 북군은 모노카시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남군의 진군을 하루 지연시켜서 수도 워싱턴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7월 12일의 포트 스티븐스 전투(Battle of Fort Stevens)는 남북전쟁에서 유일하게 워싱턴DC 내에서 발생한 교전으로, 특히 링컨 대통령이 직접 참관한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링컨은 남군의 예상되는 습격과 무더위를 피해서 백악관을 떠나 북쪽으로 4마일 정도 떨어진 여름 별장으로 피신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 근처로 남군이 공격을 해온 것이었다나...^^ 남북전쟁 당시에 워싱턴DC는 반란군의 주력인 버지니아와 접해 있고, 나머지 3면은 중립이지만 노예주인 메릴랜드에 둘러싸여 있어서 수도를 지키기 위해 빨간 점으로 표시된 많은 군사시설을 급하게 지었다. 그래서 1864년경에 무려 93개의 포대(battery)에 설치된 800문의 대포와 68개의 요새(fort)를 연결하는 30마일의 군용도로로 에워싸진 DC는 세계에서 가장 방어가 잘 된 도시가 되었고, 그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17곳은 Civil War Defenses of Washington 이름으로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고 있다. 남군이 쳐들어 왔다는 소식에 링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직접 스티븐스 요새로 향했고, 1892년에 그려진 위의 그림처럼 요새 의 난간(parapet)에 올라서서 "저 반군 놈들을 당장 격퇴하라"고 소리쳤단다! 안 그래도 큰 키에 높은 모자까지 써서 남군 저격수들이 알아보고 쏜 총알들이 빗발쳐서 옆에 있던 주치의까지 총에 맞자, Oliver Wendell Holmes, Jr.라는 젊은 장교가 다음과 같이 고함을 질렀다~ “Get down, you damn fool!” 대통령에게 "내려오라고, 이 빌어먹을 멍청아!"라고 소리쳤던 홈스는 1902년에 미국의 대법관이 되어 30년간 일했다고...^^ 그 상황을 직접 목격했던 퇴역 군인들이 1920년에 만든 기념물이 당시 링컨이 서있던 자리에 지금까지 세워져 있다는데, 동판의 그림은 더 리얼하게 바로 옆의 사람이 총에 맞아 쓰러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흔히 '포트 스티븐스 사건'으로 불리는 이 순간은 미국의 현직 대통령이 전쟁터에서 적군의 사격에 노출되었던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경우라고 한다. 이상으로 지난 8월의 토요일 하루만에 미국 대통령의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Camp David)가 있는 캐탁틴 산악공원과 두 곳의 남북전쟁 격전지를 둘러봤던 메릴랜드 주 서쪽의 여행기 3편이 모두 끝났는데, 가을 단풍이 다 떨어지기 전에 이번에는 메릴랜드 주의 동쪽으로 다른 특이한 국립 공원과 유명한 NASA 연구소 등을 구경하러 또 한 번 시간을 내볼까 하는 욕심이 난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너무 잘만든 한국 6.25 남북 전쟁 영화 정보 - 넷플릭스 추천 고수 신하균 이제훈 출연진(평점, 명대사)

너무 잘만든 한국 6.25 남북 전쟁 영화 정보 - 넷플릭스 추천 고수 신하균 이제훈 출연진(평점, 명대사)

사는게 예술이다|2023년 9월 21일

최근 고지전을 다시보며 또 다시 느껴본다. 전쟁속 아수라장에 대한 느낌또한 당시의 상황을 잘 묘사하지만 만약 그때 그 시대를 살았다면, 그들이 전장터에서 느끼던 그 심리를 너무 잘 표현했던 작품이었으며 절묘하게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끼워 넣으면서 재미를 찾음과 동시에 그 사건들이 발생된 이유들과 그 사건들이 영화에서 주는 메시지의 전반적인 모든걸 설명해주기도 한다. 살아남는 것, 생존하는 것. 망할 이 남북전쟁은 왜 하는지도 모른다. 관심고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영화속에서 수혁이란 캐릭터를 맡은 고수가 바로 이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가장 현명했고 전쟁이 낳은 괴물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