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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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posts미국 국립식물원인 보타닉가든(Botanic Garden)과 율리시스그랜트 기념상(Ulysses S. Grant Memorial)
반응형 지난 8월 여름에 우리집을 방문한 누나 가족과 함께 했던 3일간의 워싱턴DC 관광의 마지막 5번째 여행기로, 둘쨋날 미국의회 의사당과 도서관을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후에 내셔널몰로 돌아가면서 들린 두 곳을 짧게 소개한다. (글의 마지막에 3일간의 투어코스를 지도로 보여드리지만, 셋쨋날 구경한 곳들은 이미 모두 블로그에 포스팅 되었음) 처음에는 4편으로 끝낼까 했지만, 바로 아래 소개하는 곳을 다시 가서 자세히 구경하려면 내년 봄이나 되어야 할 것 같아서, 전반적인 소개는 이 기회에 먼저 해놓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당에서 Independence Ave를 따라 서쪽으로 캐피톨힐(Capitol Hill)을 내려오면, 왠지 이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커다란 유리 건물과 함께 미국 국립식물원(United States Botanic Garden)이 나온다. 1820년에 지금의 캐피톨 리플렉팅풀(Capitol Reflecting Pool) 위치에 최초로 만들어졌다가 1933년에 현재의 조금 떨어진 위치로 이전했는데, 미국에서 계속 운영되고 있는 식물원으로는 가장 오래되었다 한다. 옆문으로 들어가서 만난 안내판의 지도로, 이 날 우리 일행은 1번 온실(Conservatory)만 잠깐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미국의 역대 영부인들을 기념하는 First Ladies Water Garden과 로즈가든(Rose Garden), 그리고 도로 건너편의 유명한 분수 등은 다시 방문기회를 노려야 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식물원답게 온실을 찾아가는 길의 좌우로도 나무들이 울창하게 잘 가꾸어져 있어서, 8월의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가는 나뭇가지들을 엮어서 만든 이 설치미술 작품의 제목은 "O Say Can You See"로 미국 국가의 첫 소절에서 따왔다. 저 속을 미로처럼 만들어서 안에 들어가서 돌아다닐 수도 있다고 안내되어 있었는데, 그래서 작품의 제목을 그렇게 붙였나 보다. 2019년에 식물원 200주년을 기념해서 설치되었는데, 9월말에 철거되어서 더 이상 볼 수는 없다고 한다. 온실 앞의 테라스에서는 나무들 너머로 언덕 위 의사당의 돔 지붕이 살짝 보였다. (의사당 내부투어 포스팅은 여기를 클릭) 건물의 입구는 유리가 아니라 석조로 만들어져 있어서 수도의 분위기에 어울렸다. 오래전 LA 헌팅턴라이브러리(Huntington Library)와 샌디에고 발보아파크(Balboa Park)에 이어서, 정말 오래간만에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3번째로 소개되는 식물원으로 생각된다. 석조건물의 내부로 들어서니 정말로 시원해서 살 것 같았다. 하지만, 여기 입구쪽 로비만 에어컨이 나오는 것이고... 오래간만에 보는 커다란 소철나무가 심어진, 여기 온실과 연결되는 통로부터는 다시 후덥지근 해졌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온실안에 한 번은 들어가줘야 할 것 같아서 정면의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는데... 사진으로도 보이는 것처럼 분무기로 물까지 뿌리면서 열대우림을 재현해 놓아서, 바로 뒤돌아 나가는 일행들도 있었다.^^ 넓은 내부에는 작은 개울도 흐르고 다리도 만들어 놓아서, 추울 때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빨리 한 바퀴 휙 돌아보고는 나갔다. 입구 건물과 온실이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다시 나와서 위를 올려다 본 모습이다. 아무래도 여기 미국식물원((United States Botanic Garden)은 내년 봄에 장미꽃이 필 때, 다시 들러서 구석구석 구경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뒤돌아 북쪽으로 걸어갔다.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의 동쪽 끝에 위치한 율리시스그랜트 메모리얼(Ulysses S. Grant Memorial)은 남북으로 뻗은 전체 대리석 기단의 길이가 77 m나 되는 기념물이다. 북군의 총사령관으로 남북전쟁을 끝낸 그랜트 장군의 기마상이 가운데 서서, 내셔널몰 서쪽 끝에 있는 당시 링컨 대통령과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국이다. 4마리의 사자에 둘러싸인 그의 청동상은 높이 5.2 m로 미국에서 가장 큰 기마상(equestrian statue)으로 1924년에 여기 세워졌다.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S. Grant)는 남북전쟁이 끝나고 미국의 제18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어서 연임까지 하는데, 바로 미국 50달러 지폐의 앞면에 등장하는 후덕한 이 분이시다. (뒷면에는 의사당 건물의 서쪽면이 그려져 있음) 우리가 LA에 살면서 자주 방문했던 세쿼이아 국립공원의 그랜트 그로브(Grant Grove)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나무라는 '미국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모두 이 사람의 이름에서 나왔다. 그런데 8년간 대통령을 했음에도 그 보다는 남북전쟁을 끝낸 명장으로 역사책에 먼저 나와서 그런지, 모든 사람들이 '그랜트 대통령'보다는 '그랜트 장군(General Grant)'으로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기마상의 남쪽에는 먼저 보여드린 포병대(Artillery), 그리고 여기 북쪽에는 기병대(Cavalry)의 군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쓰러지는 말을 포함해서 정말 역동적으로 잘 만들어 놓았다. 2011년에 우리 가족이 미동부 여행에서 찍었던 똑같은 사진을 여기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당시에는 청동상이 완전히 청록색으로 보이고 흘러내린 녹물이 기단까지 퍼렇게 만들었지만, 2016년에 끝난 대대적인 보수와 청소 작업으로 지금은 아주 깨끗한 모습이다. 그 때는 여기 캐피톨 리플렉팅풀(Capitol Reflecting Pool)도 보수중이라 물이 하나도 없는 황량한 모습이었지만, 지금은 이렇게 오리들이 유유히 떠있었다. 이제 연못 너머 정면에 보이는 현대미술관을 시작으로 국립미술관을 여유있게 둘러보고는 아침에 주차한 사설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2일차 DC 관광을 끝냈다. 마지막으로 3일간의 모든 투어코스를 국립공원청이 만든 워싱턴 관광지도 위에 마우스로 구불구불 그린 것을 보여드린다. 1일과 2일차는 주차를 해놓고 각각 서쪽과 동쪽을 루프로 돌았던 반면에, 3일차는 토요일이라서 요금이 싼 지하철을 타고 가서 남쪽 Smithsonian 역에서 내려서, 위로 올라가며 차례로 구경을 한 후에 북쪽 Metro Center 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직선 코스였다. 이렇게 효율적인 동선을 철저하게 연구해서 가이드를 한 번 했더니, 워싱턴DC 관광을 전문으로 하는 맞춤투어 비지니스라도 해야할 듯하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미국의 '잃어버린 식민지'와 남북전쟁 역사가 있는 로어노크 섬의 포트롤리(Fort Raleigh) 국립사적지
반응형 정확히 1년전에 버지니아(Virginia) 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미동부를 돌아다닌 여행기를 쓰고 있으면... 본인이 미국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가 된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열심히 찾아보고 정리해서 재미있게 블로그에 올려봐야 알아주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왜 계속 이 짓을 하고있을까?"라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지난 9월에 집에서 남쪽으로 다녀온 1박2일 여행도 거의 '역사투어'에 가까웠는데, 지금의 미국땅에 영국인들이 최초로 식민지를 건설했던 두 곳이 목적지에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본편은 자료조사와 정리를 다 마쳤으니 평소처럼 논문...이 아니라 여행기를 완성하고, 앞으로도 역사공부를 계속 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전편에서 소개한 미국에서 가장 높은 등대를 구경하고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 주의 해안을 따라 길게 만들어진 섬들을 이어주는 다리를 달려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사진 정면에 나지막히 건물들이 보이는 땅이 그 평행사도(Barrier Island) 안쪽에 있는 로어노크 섬(Roanoke Island)으로, 이제 찾아가는 유적지가 있는 곳이다. Whalebone Junction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64번 국도로 좌회전 후에 또 다리를 건너면 로어노크 섬이다. 마땅히 점심을 먹을만한 곳이 없어서 만테오(Manteo) 마을의 맥도널드에서 투고를 해서 국립공원의 피크닉 장소에서 먹기로 했다. 섬의 제일 북쪽에 포트롤리 국립사적지(Fort Raleigh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그 밑에 별도로 적혀있는 두 곳은 아래의 공원지도를 보며 설명을 드리기로 한다. 참고로 노스캐롤라이나 주도(state capital)도 같은 사람의 이름을 딴 롤리(Raleigh)인데, 실제 영어발음은 '랄리'에 가깝지만 대부분의 한글 사이트에서 '롤리'로 표기를 해서 그에 따르기로 한다. 먼저 다른 색으로 표시된 엘리자베스 가든(The Elizabethan Gardens)은 1950년대에 조성된 영국식 정원인데, 시간도 없었고 별도의 입장료가 있어서 들리지 않았다. 또 수변무대(Waterside Theatre)는 193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여름마다, 이제 소개할 '잃어버린 식민지'를 소재로 한 로스트 콜로니(The Lost Colony) 야외공연을 하는 장소이다. 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과 코로나 팬데믹이 정점이던 2020년의 두 시즌만 건너뛰고 지금까지 계속 같은 내용의 공연을 한 장소에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케스트라가 동원되는 공연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이어지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두 곳을 빼고나면 사실 여기서 남는 것은 거의 이 비지터센터 밖에는 없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여기 나무 그늘의 피크닉테이블에서 늦은 점심으로 '1+1버거'를 참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다. 비지터센터에 붙어있는 이름인 린제이 워런(Lindsay Warren)은 1941년에 이 곳이 국립사적지로 지정되는데 기여한 연방 하원의원이다. 안내영화 시작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먼저 제일 안쪽에 보이는 전시실을 구경했다. "그럼 역사공부를 또 시작해볼까?" 1584년에 영국인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이 당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후원으로 신대륙을 탐험해, 여기 로어노크 섬에 도착해서 최초로 잉글랜드 깃발을 꼽고 '처녀여왕'을 기리는 의미로 버지니아(Virginia)라 명명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탐험대 수준이라서 오래 머물 수 없었고, 다음 해에 병력을 끌고 다시 와서 주둔지를 만들기는 했지만 역시 또 포기하고 철수해야 했다. 마침내 1587년 여름에 친구인 존 화이트(John White)를 책임자로 여성과 어린이가 포함된 약 120명의 이주민이 도착해서 여기에 최초의 잉글랜드 식민지를 건설한다. 하지만 원주민과의 분쟁 및 식량부족 등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자, 연말에 존 화이트가 보급품과 추가인력을 데리고 다시 돌아오기로 하고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남아있는 사람들 중에는 존 화이트의 딸과 사위, 그리고 최초로 아메리카 대륙에서 태어난 영국계(English) 사람으로 기록된 그의 손녀인 버지니아 데어(Virginia Dar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스페인과 전쟁 중이던 영국은 바로 구호선단을 보낼 여력이 없었고... 결국 화이트는 손녀의 3번째 생일인 1590년 8월 18일에야 로어노크 섬에 돌아왔지만, 마을은 전투가 벌어진 흔적도 없이 버려진 상태로 120명의 사람들도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고 한다. 유일한 단서는 울타리 기둥에 새겨진 '크로아토안(Croatoan)'이라는 남쪽 원주민 부족의 이름이었기 때문에, 화이트는 바로 40마일 떨어진 그 곳에 가서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폭풍우도 몰아치고 그의 선원들은 스페인 무역선의 해적질이 항해의 주목적이라서 탐사를 거부하는 바람에 사라진 사람들의 행방은 결국 미궁으로 남았다. 이상의 내용을 모두 보여주는 안내영화를 재미있게 보고 다른 전시실로 들어갔더니, 그 곳에는 왼쪽의 월터 롤리 경과 오른쪽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신대륙 탐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창문 너머 실루엣으로 보이는 두 명이 움직이면서 실제 대화를 하는 영상이 나오는데, 아내가 조종판 앞에서 꼼꼼히 내용을 읽어보고 있는 모습이다. 롤리는 영국의 정치인, 탐험가, 작가, 시인이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총신으로, 진흙길 위에 자신의 값진 망토를 펼쳐 엘리자베스 1세를 지나가게 했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일설에는 그가 엘리자베스 1세의 숨겨진 애인이라는 주장도 있단다. 특히 그는 신대륙에서 들여온 담배를 영국에 최초로 전파한 인물로 유명한데, 그가 담배연기를 내뿜자 하인이 불이 붙은 줄 알고 롤리에게 물을 퍼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렇게 엘리자베스 시절에는 잘 나가던 그였지만... 1603년에 제임스 1세가 즉위하자 정쟁에 휘말려 런던탑에 갇혀 12년을 보내야 했으며, 65세에 특별사면을 받아서 다시 신대륙으로 탐험을 떠나지만, 항해중에 스페인과 싸우지 말라는 왕명을 어겼다는 이유로 다시 송환되어서, 결국 웨스트민스터에서 참수형으로 최후를 맞이한 한마디로 '풍운아'라 할 수 있다. 비지터센터 앞마당에 세워진 Freedmen's Colony Monument라는 까만 기념비에 우리 부부가 비친 모습이 살짝 보인다. 시간이 한참 흐르고 흘러 1860년대 미국 남북전쟁 때 북군이 로어노크 섬을 점령해서 롤리 요새(Fort Raligh)를 만들고, 남부 여러 주에서 탈출한 흑인 노예들을 여기에 받아들여 그들의 목숨을 살린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볼거 다 본거 같았지만 그래도 국립공원에 왔으니 조금은 걸어주는 것이 예의일거 같아서, 비지터센터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서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원지도에 1896 Monument라 되어있는 비석인데, 이 장소의 역사적 가치를 최초로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회에서 1896년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앞서 언급한 영국인들의 탐험 기록들과 함께 이 땅에서 태어난 Virginia Dare가 세례받은 이야기 등이 자세히 적혀있다. 20세기 들어서 여기 '로어노크의 잃어버린 식민지(Lost Colony of Roanoke)'의 고고학적 발굴이 진행되기는 했지만 대장간의 쇳덩이나 도자기 조각 등이 약간 나온 것 말고 큰 성과는 없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남아있는 무슨 건물의 흔적같이 보이는 이것도, 1585년에 영국 탐험대가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으로, 1950년대에 일부러 다시 만든 토성(Earthen Fort)의 잔해일 뿐이다. 전시실에 작게 붙어있던 삽화로, 존 화이트가 사람들은 사라지고 'CROATOAN' 글자만 남아있는 로어노크 식민지(Roanoke Colony)에 돌아온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여드린다. 이 잃어버린 식민지와 흔적없이 사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양한 상상력이 더해져서 소설과 영화의 소재가 되었으며, 지금도 DNA 분석기법 등을 이용해서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단다. 이렇게 월터 롤리(Walter Raleigh)가 주도했던 영국인들의 첫번째 아메리카 식민지는 실패로 끝났지만, 그 후 런던 주식회사(London Company)에서 다시 3척의 배로 100여명의 남성을 1607년에 북쪽의 체사피크 만 안쪽에 상륙을 시켜서 성공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게 되는데... 그 곳도 다음날 오후에 직접 찾아갔으므로, 이어지는 1박2일 여행기에서 역사공부는 계속된다. "To Be Continued"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남북전쟁 최초의 불런(Bull Run) 전쟁터인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
반응형 미국의 남북전쟁은 링컨 대통령의 취임 직후인 1861년 4월 12일 새벽에, 이미 연방을 탈퇴한 남부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계속 연방군이 주둔하고 있던 섬터 요새(Fort Sumter)를 남군이 공격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일방적인 포격을 받은 요새의 지휘관이 다음 날 오후에 남군에 항복을 하고 요새를 내어주었기 때문에, 남과 북 사이에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북군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예포를 발사하다가 대포가 폭발하는 사고로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한 것이 남북을 통틀어 첫번째 인명 피해임)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은 그로부터 약 3개월 후에 북부 버지니아에서 시작되었다. 대지가 완전히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했던 지난 4월에, 버지니아 최대의 한인타운인 센터빌(Centreville)의 서쪽에 있는 게인스빌(Gainesville)에 일이 있어서 다녀오는 길에 그 두 마을의 사이에 있는 매너서스 국립전장공원(Manassas National Battlefield Park)을 방문했는데, 집에서는 30분 정도 거리이다. 국립공원청에서 관리하는 군사공원의 한 종류인 배틀필드파크(Battlefield Park)는 전적지공원 또는 전쟁터공원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이 블로그에서는 그냥 전장공원(戰場公園)으로 한 글자 줄여서 부르기로 한다. 나무들 사이로 보이던 하얀 건물은 헨리힐 비지터센터(Henry Hill Visitor Center)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전쟁터는 1861년 7월 21일에 미국 남과 북의 첫번째 불런 전투(First Battle of Bull Run)가 벌어진 곳으로, 황소가 달리는 곳이 아니라 미동부에서는 물이 흐르는 개울을 '런(run)'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번역하자면 황소개울 싸움... 안내데스크 뒤로 공원의 지도가 보이는데, 우리는 비지터센터 뒤쪽 들판만 돌아보는 짧은 트레일을 했기 때문에, 전체 공원지도를 따로 보여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참고로 공원 서쪽에서 이듬해인 1862년 8월에도 전투가 벌어져서, 두 전쟁터를 묶어서 하나의 국립공원으로 관리가 되고 있다. 10시가 조금 지났는데 안내영화는 11시 정각에 시작한다고 해서, 트레일을 먼저 하고와서 보기로 했다. 비지터센터 뒷문으로 나오니 푸른 초원 너머로 옛날 건물들과 기념비가 나무 난간과 함께 만들어져 있고, 그 너머로는 하얀 천막들도 많이 보였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가 반가워 했던 것은... 이 대포들이다~ 지난 번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대포와 사랑에 빠지신 사모님... 안 말리면 그대로 주차장까지 끌고 가서 우리 차 뒤에 붙들어 메고 집으로 가지고 가실 것 같았다.^^ 대포들이 잘 나와야 한다고, 커플셀카를 몇 번이나 찍었는지 모른다. 아내가 쓰고있는 모자는 "Parents of 23"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내년이면 벌써 딸이 대학교 졸업이다.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입학연도가 아니라 졸업연도로 학년을 구분함) 불런 기념비(Bull Run Monument)는 4년간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인 1865년에 6월에, 여기 헨리힐의 유해를 수습하는 임무를 맡았던 연방군 병사들이 3주만에 만들어서 세운 것으로, 남북전쟁과 관련된 기념물로는 최초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하얀 천막이 만들어져 있던 곳에는 이렇게 옛날 복장을 하고 마차를 끌고 나와서 무슨 장사를 하시는가 했는데,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오신 분들은 이 두 명만이 아니었다! 각양각색의 군복을 입고 머스킷 소총을 든 19세기 남부연합군 병사들이 20여명이나 모여 있었는데, 그들을 지금 지휘하고 있는 사람은 21세기의 국립공원청 파크레인저...^^ 마침 일요일이라서 'Living History: Civilian & Infantry' 행사를 하는 것인데, 여름철에 매주 일요일마다 진행이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재연배우까지는 아니지만 진지한 모습의 사람들로 왠지 자원봉사같지는 않았다. 요 근래에 뮤지컬 해밀턴(Hamilton: An American Musical)이나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Bridgerton) 등의 역사극과 디즈니 영화에서도 인종불문 캐스팅이 유행이던데, 미국 남북전쟁 모습의 재연에 동양인도 받아줄까? 남부연합군과 함께 진군(?)하는 아내의 모습을 클릭해서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다. 비디오에서는 북소리도 나오고 마지막에는 아메리카 연합국(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의 펄럭이는 깃발도 보실 수 있다. 저 분은 업무시작과 동시에 잔디밭에 드러누웠는데, 아마도 누워서 휴식하는 병사가 자신이 맡은 배역일 수도 있겠다.^^ 조금 주변을 둘러보다가 루프트레일도 다 돌지 않고, 비지터센터 근처에 있는 가장 유명한 동상을 보러 가기로 했다. 참, 이 때는 몰랐는데 11시 정각에 병사들이 머스킷(musket) 소총을 실제로 발사하는 재연행사를 했다고 하는데 직접 못 봐서 아쉬웠다~ 동상으로 걸어가는 길의 나무 아래에 있던 추모비 하나... 조지아 사바나(Savannah) 출신으로 켄터키 주의 부대를 이끌고 여기 버지니아에서 싸우다가, 이 자리에서 중상을 입고 사망한 Francis S. Bartow는 남북전쟁에서 최초로 사망한 남군의 장교라고 한다. 버지니아는 물론이고 미국 남부 곳곳에서 '스톤월(Stonewall)'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할 수 있는데, 바로 그 주인공이자 이 전쟁터에서 탄생한 스타라고 할 수 있는 남부연합의 토마스 잭슨(Thomas 'Stonewall' Jackson)의 동상이다. 한국에서도 뉴스 등을 통해서 본명보다는 오히려 '스톤월 잭슨'으로 더 널리 알려져 있고, 석벽(石壁) 또는 돌담 장군으로 번역해서 쓴 뉴스 기사나 글들도 많이 볼 수 있다. 동상의 반대편에는 잭슨에게 그러한 별명을 안긴 유명한 말이 씌여있는데, 북군에게 밀려서 후퇴하던 남군의 제3여단장이던 비(Barnard Elliott Bee, Jr.) 준장이 뒤쪽에 있던 버지니아 출신으로만 구성된 제1여단을 이끄는 잭슨 준장을 바라보며 아래와 같이 말했단다. "There is Jackson standing like a stone wall. Let us determine to die here, and we will conquer. Rally behind the Virginians!" 저기 잭슨이 돌담처럼 버티고 있다. 우리가 여기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버지니아인들을 지원하자! 돌담처럼 버티고 선 잭슨이 지휘한 남군은 지원군이 올 때까지 5시간 동안 북군의 공세를 막아낸 후 반격에 성공해서 남북전쟁 첫번째 전투는 남군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후 2년 동안 '스톤월 잭슨(Stonewall Jackson)'으로 불리며 셰넌도어 계곡 등에서 전설적인 지휘관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1863년 게티스버그 직전의 챈슬러스빌(Chancellorsville) 전투가 끝난 후에 어이없는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사망한다. 만약 잭슨이 살아있었다면 게티스버그 전투의 첫날에 남군이 세메터리힐을 점령해서, 최소한 게티스버그 전투의 판도는 바뀌었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내가 동상 앞에서 찍은 사진의 왼편에 멀리 보이던 이 기념물은 바로 잭슨에게 '스톤월'이라는 별명을 선사한 비(Bee)의 추모비인데, 그는 위의 말을 한 직후에 여기서 사망했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위와 같이 말한 것은 맞지만, 자신의 부대는 전방에서 싸우는데 잭슨은 도와주러 안 오고 뒤쪽에 "돌담처럼 우두커니 서있다"고 화가 나서 한 말이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몸통이 비틀어지고 위쪽도 부러진게 수령이 2백년은 넘어 보이니, 아마도 이 나무는 160년 전에 이 언덕에서 있었던 남북전쟁 최초의 전투를 직접 목격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비지터센터로 돌아갔다. 영화시간까지 좀 남아서 전시장을 먼저 둘러봤는데, 입구에는 남군 병사들의 순진한 얼굴이 부조로 새겨져 있고, 사진 왼쪽에 처참한 흑백사진과 함께 '순수의 종말(The End of Innocence)'이라고 씌여있다. 이 말은 잠시 후에 본 무려 45분 길이의 안내영화의 제목이기도 한데, 이 첫번째 전투에서 남과 북은 각각 약 3만명의 군인들이 동원되어서 연방군 약 3천명과 남부군 약 2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전투에 참가했던 남북의 여러 부대의 군복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당시에는 남과 북 모두 통일된 군복이 없었기 때문에 200종에 가까운 유니폼이 등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군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 사진에서도 알 수 있지만 남부연합국의 깃발이 당시 미연방 국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아군인지 적군인지 멀리서는 도저히 구분이 불가능했단다. 결국 이 전투가 끝나고 남부연합은 군기를 새로 만들었는데, 그것이 지금도 남부지역이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집회에서 볼 수 있는 X자 모양의 남부연합기(Confederate Flag)이다. 마지막으로 1차 불런 전투의 진행상황을 보여주는 LED가 깜박이는 지도인데, 인적물적 자원이 우세했던 북군이 첫 전투에서 참패하면서, 남북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는 장기전이 된 것이다. (상세한 전쟁사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이듬해인 1862년 8월에 벌어진 2차 불런 전투의 비지터센터와 기념비 등도 공원 서쪽에 따로 만들어져 있는데, 집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언제 또 방문해서 거기도 가 볼 수 있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에서 남북전쟁의 격전지를 차로 돌아보기
반응형 미국 국립공원청이 직접 관리하는 420여곳의 장소들 중에서 '국립군사공원' 분류에 해당하는 25곳은 독립전쟁, 남북전쟁 등에서 중요한 전투가 실제로 일어났던 장소를 기념하는 것으로 National Military Park 9개, National Battlefield Park 4개, National Battlefield 11개, 그리고 National Battlefield Site 1개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군사공원으로 따로 분류되는 이유는 대부분이 1930년대 이전에 지정되어서 전쟁부에서 관리를 하다가 내무부 국립공원청으로 이관되었기 때문이다. 예전에 전체 NPS Official Units 정리를 하면서 이 군사공원들이 미서부에는 하나도 없다고 투덜댄 적이 있었는데, 작년에 이사를 온 여기 미동부 버지니아 부근에는 오히려 집중적으로 모여있어서 참으로 격세지감이 든다. 그 중에서 처음으로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는 펜실베니아 주의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을 방문한 두번째 이야기로, 이제 차를 몰고 남북전쟁의 사망자들이 묻힌 묘지와 실제 전투가 일어났던 격전지들을 돌아보려고 한다. (사진의 박물관과 비지터센터를 둘러본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비지터센터 바로 북쪽에 있는 게티스버그 국립묘지(Gettysburg National Cemetery)는 전투가 끝나고 4개월여 후에, 전사한 연방군의 병사 3,512명의 유해를 안치했는데, 그 후에 세계대전 등의 다른 전사자들의 묘역도 추가되어서 미국의 공식적인 국립묘지들 중의 한 곳이다. 입구로 들어가면 바로 오른편에, 앞서 전편에서 자세히 소개했던 링컨 대통령이 이 곳에서 1863년에 한 연설을 기념해서 1912년에 만들었다는 Lincoln Address Memorial이 그의 흉상과 함께 만들어져 있다. 철책 너머로 많은 비석들이 세워진 곳은 게티스버그 전투 전부터 있던 일반묘지인 Evergreen Cemetery라서 이 언덕이 세메터리힐(Cemetery Hill)로 불렸다. 이 언덕에서도 전투가 있었기 때문에 좌우의 대포와 함께 여기서 싸웠던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북군들에게 헌정된 기념물이 앞쪽에 보인다. 높이 18 m의 Soldiers' National Monument가 국립묘지 중앙에 세워져 있고, 그 너머에 반원형으로 남북전쟁 북군의 묘역이 배치되어 있다. 그 앞에서 지혜가 지금 읽고 있는 것은 링컨이 출생한 켄터키 주에서 게티스버그 연설을 기념해서 1975년에 만든 기념물이다. 반원형의 묘역은 높은 비석도 없이 바닥에 이렇게 표석으로만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아마도 그 후손 중의 한 명이 최근에 다녀간 모양이다. 미국이 분단될 뻔한 남북전쟁의 묘역에 50개의 별이 박힌 지금의 성조기가 꽂혀있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입구에서 만났던 자원봉사자가 실제로 링컨이 연설을 했던 위치는, 저 멀리 나무 뒤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New York State Monument와 여기의 중간쯤이었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하지만 이 묘지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구경을 하고는 차로 돌아갔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의 지도로 비지터센터와 국립묘지가 중앙 오른편에 표시되어 있다. 게티스버그 마을 북쪽은 3일간의 전투 중에서 첫날이라서 그냥 생략하고, 남쪽 왼편으로 만들어진 자동차 투어코스를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았다. 그리고 지도의 제일 왼쪽 아래에 보면 별도의 국립공원인 아이젠하워 국가유적지(Eisenhower National Historic Site)가 있는데, 미국의 34대 대통령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농장이 있던 곳이란다. 하지만 5월부터 10월까지만 게티스버그 비지터센터에서 셔틀을 타고 가서 무료투어를 할 수 있고, 당시에는 직접 차로 가서 건물 외관만 볼 수 있다고 해서 이 때는 들리지 않았다. 격전지 자동차 셀프투어에서 제일 먼저 정차한 곳은 지도에 4번으로 표시된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North Carolina Memorial)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2일째와 3일째는 서쪽 평지의 남군이 동쪽 언덕의 북군을 공격했는데, 남북전쟁이 내전(civil war)이다 보니까 북군이 묻힌 국립묘지와 함께 이렇게 남군쪽에서 만든 추모비들도 함께 볼 수 있는게 처음에는 신기했다. 올바른 비유인지는 좀 의문이지만... 만약에 한국도 6·25전쟁에서 북진통일을 했다고 가정하면, 인천상륙작전 기념지에 그 곳에서 전사한 북쪽출신 병사들의 위령비가 따로 만들어져 있는 셈이라고나 할까? (노스캐롤라이나는 이름에 'North'가 들어있다고 북군이 아니고, 버지니아 남쪽에 있는 주로 남부동맹에 가담했음) 결과적으로 남군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간 전투라서 그런지, 노스캐롤라이나 기념비로 만들어진 병사들의 동상도 왠지 좀 안타깝고 짠한 느낌이 들었다~ 남군의 주둔지들을 연결하는 이 남쪽으로 일방통행 도로의 이름도 West Confederate Ave인데, 그 옆으로는 이렇게 대포들이 수 없이 줄지어 놓여져 있었다. 동쪽 언덕에 있는 북군에게 대포를 발사하려고 하는 아내인데... "큰 나무가 앞에 있어서 쏠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남부의 주력군인 버지니아 군대가 주둔했던 장소에 만들어진 Virginia Memorial로 말을 타고있는 동상은 멀리서 봐도 남군 총사령관인 Robert Lee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비록 반란군의 수장으로 군생활을 마감했지만, 남북전쟁 발발 당시에 미국 최고의 군인이었다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는 게티스버그 전투의 마지막 3일째에 George Pickett 소장에게 12,000명을 이끌고 정동쪽으로 약 1 km 떨어진 언덕에 주둔한 북군을 정면돌파할 것을 명령하는데 (지도의 15번 High Water Mark), 이것은 그가 지휘관으로 내린 가장 큰 실수였다. 전편에 소개했던 사이클로라마 그림으로도 그려진 이 무모한 '피켓의 돌격(Pickett's Charge)'으로 남군 5,000명이 1시간만에 전사하며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다음날 빗속에서 버지니아로 퇴각하게 된다. 다른 곳들은 건너뛰고 자동차 투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8번 리틀라운드탑(Little Round Top) 언덕에 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이 곳은 전투 2일째에 남군의 2인자였던 롱스트리트(James Longstreet)가 점령을 시도했으나 북군이 필사적으로 방어에 성공한 곳이다. 가운데 보이는 기념비는 이 곳에서 싸웠던 펜실베니아 부대를 추모하는 것인데, 사람들이 있는 언덕 끝 쪽으로 걸어가면... 군복(?)을 입으신 분이 저 멀리 바위 위에 세워진 동상의 사진을 찍고있는 것이 보인다. 북군의 공병대 장교였던 워렌(Gouverneur K. Warren)은 방비가 허술했던 이 언덕이 요충지임을 파악하고, 남군의 공격에 대비해서 미리 병력을 보충하도록 해서 "Hero of Little Round Top"이라고 불린단다. 그래도 남군의 반복되는 돌격에 북군도 병력이 부족해졌고, 탄약까지 모두 떨어지자 메인 주에서 온 체임벌린(Joshua Chamberlain)이 이끄는 연대는 '착검 돌격'으로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남군을 육탄전으로 물리치며 이 고지(高地, high ground)를 사수했다고 한다. 역시 전투에서는 높은 위치에 자리를 잡는 것이 중요한데, 일찌기 오비완 케노비가 아나킨 스카이워커와 용암이 흐르는 무스타파 행성에서 맞짱을 뜰 때 마지막에 한 말이 있다... "I Have the High Ground!" 마침 5월 4일 스타워즈데이(Star Wars Day)도 다가오고 해서, 해당 영화장면과 대사를 이용해서 정말 잘 만든 뮤직비디오가 있어서 소개해드린다. 참 대단한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은 듯...^^ 자신의 뉴욕 주 부대를 이끌고 이 고지를 방어하다가 26살로 숨진 Patrick O'Rork의 얼굴이 새겨진 동판의 뒤로 1889년에 뉴욕 주에서 만든 추모탑이 작은 성처럼 우뚝 서있다. 모녀가 어느새 성의 위에 올라가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찍어주고 뒤따라 올라갔더니 벌써 내려오더라는... 미국 남북전쟁 최대의 전투가 벌어졌던 게티스버그 들판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2022년 봄방학 여행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언덕을 내려가서도 자동차 투어코스가 더 남아있기는 했지만, 표지판을 놓치면서 다음 번호를 찾아가는 것을 관두고 그냥 약 1시간반 거리의 집으로 향했다. 게티스버그 국립군사공원(Gettysburg National Military Park)은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다시 찾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펜실베니아의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에 여행을 간다거나 또는 그 위쪽으로 지나가는 길이라면 잠시 들러서, 이번에 다 보지 못한 다른 격전지와 기념물들도 둘러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