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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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리암 니슨표 액션 영화이자, 역시 일 년에 한 번 찾아오는 자움 콜렛 세라의 액션 스릴러 영화. 니슨 형님은 말그대로 노년에 쿵짝 잘 맞는 감독을 만나 짝짜꿍 잘하고 계시는 것 같아 보기도 좋고..... 열려라, 스포 천국! 이나 와 결이 매우 비슷한 영화지만, 그럼에도 딱 하나를 꼽으라면 역시 같은 감독에 같은 배우인 을 꼽을 수 있겠다. 밀폐된 공간에서의 살인 사건이 주된 내러티브인데, 그저 비행기를 통근열차로만 바꿨을 뿐. 몰랐는데 배경이 뉴욕과 그 교외 지역인 것 같더라. 예전에 뉴욕 갔을 때 지하철 몇 번 타보긴 했었지만 한낱 여행자가 어찌 통근자들의 고통을 그 잠깐으로 깨닫겠나. 오히려 경기

매드니스 In The Mouth Of Madness (1995)
[미저리]가 작가의 공포라면 이 쪽은 독자의 공포. 좋아하는 작품의 세계관이 현실이 된다. 환상 문학의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 쯤 해볼 법한 상상이다. 그러나 그 대상이 러브크래프트의 종말론적 세계관이라도 괜찮은 걸까. 독자의 로망에 딜레마를 부여하는 짓궂은 상상력. 광기와 혼돈으로 가득찬 작품을 탐닉하며, 나도 이 광기에 물들지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느껴 본 사람에게라면 더 큰 공포와 블랙 코미디로 다가올 것이다. 광기의 전염성이라는 아이디어는 영화의 척추와도 같다. 인간의 광기를 일종의 바이러스처럼 묘사하는데, 세상을 멸망으로 몰아간 건 어떠한 물리적인 테러나 화학적 재앙이 아닌, 상상력의 자극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었다는 결론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멋지다. 아주 멋지게 그로데스크하다. 흔히

바이센테니얼 맨 Bicentennial Man (1999)
아이작 아시모프의 원작은 프랑켄슈타인의 역발상인 동시에 피노키오의 어른 버젼 혹은 해방 이후의 흑인에 대한 은유가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요소들을 갖고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것은 사회의 시스템이 아닌, 자기 스스로 결정할 일이라는 메시지가 읽히기도 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응원 같기도 하다. 영화는 여기에 로맨스를 가미해, 마치 해방된 노예와 주인 가문 여성의 투쟁처럼 보이게 각색된다. 혹은 사회적으로 암묵의 금기인 모든 관계의 로맨스를 대입해도 좋을 것이다. 로봇의 시선에서 인간성을 정의하는 과정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집사 로봇인 앤드루는 자신의 몸을 점차 인간에 가깝게 개조해 나가는 과정에서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유한함" 혹은 "불완전성"이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즉, 그토록

쥬라기 공원 Jurassic Park (1993)
잠자는 사자의 콧털도 함부로 건드리는 게 아닌데, 영원한 잠에 빠졌던 종을 되살림에 있어서 자본가의 이상은 충분한 고찰을 거치지 않았다. 금지된 영역을 건드린 자본가와 과학자들 앞에서 공룡들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되어 자신을 창조한 자들을 저주한다. 사육할 수 있는 짐승에 불과할 거라 믿었던 공룡은 인간이 통제에 사용한 기술의 헛점을 절묘하게 파고든다. 전기가 끊긴 철조망을 찢고 개구리의 DNA를 이용해 교미의 통제 마저 깨부순 공룡들은 어쩌면 오만하게도 신의 영역에 침범한 인간들을 향한 대리 심판자였을 것이다. 또한 영화는 과학에 대한 순수한 탐구심과 자본의 논리, 그 경계에서 중심을 잃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최악의 결과물 중 하나다. 마치 나비효과처럼 예상치 못한 악천후가 모든 일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