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를리즈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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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 Fury Road, 2015
4월에 개봉했던 이 국내 천만관객을 달성한 그 주차에 개봉한 영화 는 누적관객수 400만에 가까운 수치로 기대이상의 흥행을 거뒀다. (이는 국내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었다.) 본인이 79년부터 시작한 시리즈 세편의 후속을 ‘이제서야’ 가지고 나타난 조지 밀러 감독의 야심은 기대이상의 신선함으로 찾아왔다. 마초적이고 남성적인 로드 액션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실망을 안길 정도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맥스’가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그리고 동류의 액션영화들 속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페미니즘’ 영화였다. 그리고 이런 영화가 이정도 흥행을 거둬낸 사실이 반갑다. 물론 단 한 편을 보더라도 다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 그녀들의 집
는 어떻게 페미니즘 영화가 되었나 (이하 )가 개봉하자 미국의 남성인권 운동가 아론 클레어리는 가 페미니즘 영화라며 보이콧을 주장했다. 이런 엉뚱한 주장의 바통이라도 이어받듯 한국에서도 를 두고 치열한 페미니즘 논쟁이 오갔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아론 클레어리는 적어도 가 페미니즘 영화임을 인식하는 수준의 판단력을 갖췄지만, ‘페미니즘’이란 단어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는 한국의 몇몇 남성들은 그런 판단력조차 부재하여 의 서사를 추동하는 페미니즘 앞에 진짜, 가짜 딱지나 붙이는 참담한 상황이라는 정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분노의 도로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4DX 3D - 예수에 비견되는 구원자, 맥스
※ 본 포스팅은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파괴 조지 밀러 감독의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를 압축하는 단어는 ‘파괴’와 ‘질주’입니다. 극중에서 핵전쟁으로 인해 문명이 파괴되어 암흑기에 접어들었지만 인류는 파괴를 멈추지 않습니다. 영화는 인류의 우매한 파괴 본능을 부각시키지만 관객은 파괴의 쾌감에 빨려 들어갑니다. 전 세계에 동시적으로 쾌감을 주는 현대 인류의 가장 큰 오락거리 중 하나인 영화가 지닌 최대 매력이 파괴입니다. 거대 규모의 오락 영화를 압축하는 단어가 파괴의 의미를 지닌 ‘블록버스터(Blockbuster)’임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인류는 기본적으로 창조에서 쾌감과 만족을 느끼지만 파괴를 통해서도 못지않은 쾌감과 만족을 느낍니다. 파괴의 본

매드맥스 : 분노의 도로 - 피가 끓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아이맥스 3D로 보고 왔습니다. 3D 효과는 생각했던 것보다 훌륭하더군요. 화면의 입체감도 그렇고 몇몇 장면은 노골적으로 튀어나오는 효과를 노리고 만들어졌는데 정말 화면 저편에서 튀어나오는 느낌이 듭니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본 적은 없고 전부 간접지식만 갖고 있었습니다. 사막에서 폭주족이나 데스메탈 생각나는 룩의 미친놈들이 기름이나 물을 두고 다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관과 비주얼의 시초 같은 작품이라는 것, 북두의 권 역시 여기에 큰 빚을 지고 있다는 것 등등. 하지만 30년만에 돌아온 네 번째 작품을 보는데는 아무런 장벽이 없었습니다. 그냥 예고편 보고 어떤 분위기인지만 파악하고 와도 충분해요. 전편들도 그리 연결성이 깊었던 것은 아니며, 이번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