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모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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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posts뉴욕 배터리파크 캐슬클린턴(Castle Clinton)과 시티크루즈 타고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구경
반응형 위기주부가 미국 뉴욕을 처음 구경했던 것은 1996년 5월에 보스턴에서 열렸던 학회에 참석할 때였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뉴욕을 잠깐 경유했었는데, 그 때 타임스퀘어를 구경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전망대를 올라간 후에, 맨하탄 남쪽에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자고 일행들이 의견일치를 했다. 밤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경보하는 수준으로 초여름 늦은 오후의 무더운 뉴욕도심을 1시간반 이상 걸었는데, 당시에 우리는 맨하탄의 남쪽 끝까지 걸어만 가면 커다란 여신상이 거기에 그냥 우뚝 서있을 줄 알았지, 배를 타고 건너가야하는 섬에 세워져 있는건지 몰랐었다... (서두가 너무 길어지니까 후속 이야기는 본문에서 계속) 월요일 이른 아침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44번가를 따라 조금 걸어서 타임스퀘어에 다시 왔다. ABC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인 굳모닝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GMA)를 딱 하고있을 시간이었는데, 저기 전광판 아래 스튜디오에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볼걸 그랬나? 아침부터 타임스퀘어를 찾은 이유는 저 유명한 세로 전광판 지나 왼편에 있는 크리스피크림(Krispy Kreme) 매장에서 도넛 2박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호텔방에서 커피와 도넛으로 간단히 식사를 한 후에, 누나 가족과 함께 우리 7명은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 남쪽 끝의 배터리파크(Battery Park)에 도착을 했다. 서두의 26년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두워진 후에 겨우 도착했던 곳도 아마 이 부근이었을건데, 그 때 여기서는 바다 건너 작게 겨우 보이는 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제대로 봤던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겨를도 없이 모두 황급히 지하철을 타고 어떻게 해서 JFK 공항으로 갔었는데, 그 때 황당한 맨하탄 종주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힘들게 걸을 때 둘이 딱 붙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위기주부의 연구실 동료와 다른 회사에서 출장 왔던 여성분이 몇 년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배터리 공원에는 동그란 성채인 캐슬클린턴 내셔널모뉴먼트(Castle Clinton National Monument)가 있다. 1812년 영국의 침입에 대비한 요새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전후에 차례로 정원과 공연장 (1823-1854), 미국 입국심사장 (1855-1890), 뉴욕시 수족관 (1896-1941)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46년에 두번째 브루클린 다리 건설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는 도중에, 다리 대신에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외벽만 겨우 남아있는 상태로 준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우리는 배표를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캐슬클린턴 안에 있는 매표소를 들리지 않고 바로 엄격한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에 여기 부두에서 우리가 탈 페리를 기다렸다. 10여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온 레이디리버티(Lady Liberty) 시티크루즈에 탑승을 해서 제일 위 3층의 뒷꽁무니에 자리를 잡았다. 간발의 차이로 배를 놓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빠이빠이~ 좀 더 서두르지 그랬어..." 왼쪽의 하얀 가건물이 보안검색 시설이고, 그 옆으로 캐슬클린턴의 동그란 외벽이 보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잠시 후 맨하탄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고, 벌써 20년도 더 흘렀지만 아직도 쌍둥이 빌딩의 빈 자리가 느껴진다... 맨하탄에서 떠나는 배는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으면, 이렇게 완벽한 구도의 인물사진을 쉽게 찍을 수가 있다.^^ 날씨도 좋고 배 위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지만, 그냥 한 바퀴 돌아본 비디오를 올려드리니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맨하탄을 시작으로 허든슨 강 건너의 저지시티(Jersey City), 그 앞쪽의 엘리스 섬(Ellis Island),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배 위의 많은 사람들, 브루클린과 다시 맨하탄 순서로 360도 감상하실 수 있다. 작은 리버티 섬(Liberty Island)의 높은 석조기단 위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지혜와 조카들이 바라보고 있다. (제일 왼쪽은 다른집 아이) 특이한 것은 섬을 둘러싼 바다는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고, 땅은 뉴욕(New York) 주에 속하지만, 섬 전체가 일찌기 1924년에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땅의 소유권은 연방정부에 있다.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니까 예의상 정면 독사진 한 장 찍어서 올려드린다. 우리 가족 3명은 2011년 봄방학 미동부 여행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아일랜드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었다. "자유의 아줌마,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선착장이 섬의 뒤쪽에 있기 때문에, 배가 이렇게 뒤로 돌아가면 맨하탄을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을 조망할 수도 있다. 한 쪽 발의 뒷꿈치가 들려있는 이유는 횃불을 들고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벌써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타고 온 배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가득했다. 이 배는 저 사람들을 태우고 이민 박물관이 있는 엘리스 섬을 거쳐서 다시 맨하탄으로 돌아가게 된다. 태양을 들고 서있는 것 같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발밑까지 올라가보기 위해서 기단 안에 만들어진 건물로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한 번 더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 발판(Pedestal)까지 195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것이냐? 아니면, 한 번에 4명만 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것이냐? 참고로 현재는 동상의 몸속을 지나서 왕관(Crown)까지 올라가는 것은 중단된 상태이다. 수면 위로 27미터 높이의 발판 전망대에서 바라본 뉴욕 맨하탄(Manhattan)과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고층건물 풍경이다. 왼쪽에 빨간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1892-1954년 동안에 배를 타고 온 이민자들의 입국심사와 수용시설이 있었던 엘리스 섬으로 1천2백만명 이상이 저기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단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이렇게 밖으로 다시 나와서, 부녀가 함께 오른손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반대편 선착장 부근에 있는 2019년에 문을 연 최신의 저 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이다. 옛날에는 기단 안의 어두운 중앙홀에 있던 오리지널 횃불이 여기 새 박물관에서 자연광을 받으며 놓여져 있고,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여신의 무서운 얼굴도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모녀가 2011년과 똑같은 포즈로 다시 사진을 찍어서 그 때 모습과 합쳐 봤는데, 모녀의 좌우 위치가 바뀐 것까지는 미처 고려를 못했다.^^ 이것으로 자유의 여신상 구경은 마치고 돌아가는 시티크루즈를 탔는데, 우리는 배도 고프고 시간도 부족해서 엘리스 섬에는 내리지 않고 바로 맨하탄으로 돌아갔다. 정오의 땡볕 아래에서 우리가 타고 온 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안검색장까지 부두에 가득 차 있었다. 오후로 갈 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므로, 뉴욕 맨하탄쪽에서 리버티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실 계획인 분들은 가능한 아침 일찍 출발하는 표를 사전에 예매하시는 것을 꼭 권해드린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두 번의 대륙횡단을 통틀어 가장 추억에 남는 점심식사를 한 곳인 키바 커피하우스(Kiva Koffeehouse)
반응형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참 신기해서... 바로 얼마 전까지 잘 알던 내용이 도무지 생각이 안 날 때가 있고, 또 그 반대로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갑자기 또렷이 떠오를 때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인 2009년에 딱 한 번 달려봤던 그 길을, 작년에 2차 대륙횡단을 하며 다시 지나가면서, 참으로 그 때 미서부 30일 여행의 많은 추억들과 또 잊어버리고 있던 소중한 인연도 모두 함께 갑자기 생각이 났다. 브라이스캐년 관광을 마치고 미국의 '국민도로(All-American Roads)' 중의 하나인 유타 12번 도로를 동쪽으로 조금 달리니,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속의 준국립공원인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내셔널모뉴먼트(Grand Staircase-Escalante National Monument)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다리꼴 모양의 표지판이 나왔다. 12번 도로와 이 멋진 곳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함께, 13년 전에 위 사진과 똑같은 위치를 지나가면서 찍은 사진을 여기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그 때는 노란색 주의 표지판이 오른쪽으로 90도만 꺽여 있었는데, 지금은 180도 턴을 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나서 조금만 내려가니까 왼편에 넓은 주차장이 나왔는데, 입구가 비포장이라서 그냥 지나쳐야겠다고 생각한 그 짧은 순간에... "아! 여기가 홍사장님이 말한 그 커피집이구나~" 미리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안 했었는데, 어떻게 그게 그 때 갑자기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LA에서 트레킹 전문 여행사인 유니투어를 운영하시는 홍사장님과는 지난 몇 년간 존뮤어트레일(John Muir Trail, JMT)과 미서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로 하이킹을 함께 다녔었다. 위 사진의 리플렉션캐년(Reflection Canyon)을 찾아가는 3차 오지탐험 계획을 세웠던게 마지막 포스팅인데... "언제 다시 못 다한 JMT의 남은 구간들과 미서부의 오지들을 함께 또 찾아다닐 수 있을까요? 정말 그립습니다~" 대륙횡단 이삿짐을 가득 실어서 차체가 낮아진 승용차를 조심조심 비포장 주차장에 세우고는, 길을 따라 절벽 끝까지 내려와 보니 키바 오두막(Kiva Kottage)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작은 숙소도 운영을 하는 모양인데, 영어 단어에서 일부러 'C' 대신에 'K'를 쓰는 것은 한글에서 가끔 '미국'을 '미쿡'이라고 쓰는 것처럼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가 여기서 오늘 잘 것은 아니니까 다시 조금 걸어 올라와서, 홍사장님이 항상 이 길을 지나갈 때마다 들린다고 극찬했던 키바 커피하우스(Kiva Koffeehouse)에 들어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주문하는 아내의 모습을 대충 찍었더니, 한쪽 발을 들고 손가락을 찌르는 디스코 댄스타임이 되어버렸당~^^ 키바(Kiva)는 미서부 원주민들이 거주지 지하에 만든 동그란 방을 말하는데, 여기를 클릭하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진짜 키바에 들어가봤던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보실 수 있다. 그래서 반원형의 카페 가운데에는 지상으로 올라가는 용도로 사용된 사다리도 하나 가져다 놓았다. 무엇보다도 어디서 이렇게 굵은 통나무와 통유리를 가져와서 멋지게 커피숍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정말 감탄이 계속 나왔다. 아내에 이어서 위기주부도 이번에는 자리에 앉아서 창밖으로 손가락을 찌르고 있다. 통유리창 밖으로는 에스칼란테 강(Escalante River)이 흘러오는 계곡을 따라서, 붉은 바위산 가운데가 노랗게 단풍이 들어 있었다. 왼쪽에 보이는 지붕은 앞서 보여드렸던 오두막 숙소인데 숙박비는 얼마나 할까? 두 번의 대륙횡단을 하면서 사먹었던 여러 점심식사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 날의 메뉴이다. 커다란 샌드위치와 머핀에 라떼 한 잔... 사이좋은 우리 부부는 모두 절반씩 나누어서 먹었다~^^ 테이블 유리 아래에 깔려있는 종이는 그랜드스테어케이스-에스칼란테 준국립공원의 지도였다. "자~ 사진 다 찍으셨으면 이제 먹어도 됩니까?" 아침을 작은 컵라면 하나로 먹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풍경과 분위기에 취했는지? 반년이나 지나서 구체적인 기억은 없지만 음식과 커피도 무조건 맛있었을거라는 추측(?)만 남아있다.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식사를 마치고, 반대편으로 나가보니 야외 발코니가 만들어져 있어서 또 잠시 앉아봤다. 잠시 후 우리가 또 달릴 도로로 트럭을 개조한 작은 캠핑카 한 대가 내려가고 있다. "그냥 우리도 저런 차 한 대 장만해서, 다 잊고 떠돌아 다녀볼까?" "우리는 안 싸우고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면서 다시 출발~ 2009년의 30일 여행 때, 에스칼란테 강을 건너는 다리 직전에 똑같은 위치에서 찍었던 사진을 작게 출력해서 기념품 자석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붙여 두었었다. 여기 주차를 하고 조금 전에 카페 창밖으로 봤던 상류쪽으로 하이킹을 하면 멋진 내츄럴브리지(Natural Bridge)도 볼 수가 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서는 지류인 Calf Creek을 따라 도로가 이어지는데, 이 쯤에서 나오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개울을 따라 하이킹을 하면 또 멋진 로워캐프크릭 폭포(Lower Calf Creek Falls)가 나온다고... 훗날 다시 이 도로를 달릴 때는 모두 다 직접 꼭 가봐야지~ 처음 링크한 13년전 포스팅의 마지막에 보시면, 선글래스를 낀 젊은 위기주부가 이 근처 전망대에서 찍었던 에이스크래커 광고사진을 보실 수 있다. 이제는 노안이 와서 더 이상 콘택트렌즈를 못 하기 때문에, 그런 멋진 선글래스를 다시 쓸 수가 없다... 흑흑 볼더(Boulder) 마을을 지나서 마지막으로 해발 2,700미터가 넘는 고개를 넘어갈 때는 길가에는 하얀 눈이 보였고, 노란 아스펜 단풍은 거의 다 떨어지고 끝자락만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산 넘어 토레이(Torrey) 마을에서 유타 12번 국민도로는 끝나고, 동쪽으로 우회전을 하면 '미서부와 이별여행'의 다음 목적지인 또 다른 내셔널파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P.S.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여름방학을 한 지혜를, 이 고유가 시대에 또 직접 차를 몰고 보스턴까지 올라가서 집으로 데리고 왔고,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추억이 될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내일 비행기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납니다. 3일마다 규칙적으로 올라오던 포스팅이 끊겼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미리 알려드리며 5월말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라바튜브 동굴이 있는 엘말파이스(El Malpais) 준국립공원 구경하고 뉴멕시코를 횡단해서 텍사스로~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미본토의 48개 주(state)들 중에서 마지막으로 1912년 1월에 뉴멕시코(New Mexico), 2월에 아리조나(Arizona)가 미연방에 가입이 되었다. 1차 대륙횡단 이사를 하며 그 두 주를 지나갔던 여행기는 본편이 마지막이다 보니, 조만간에는 다시 아리조나와 뉴멕시코의 이야기는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쓸 기회가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간단한 역사를 끄적여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삿짐을 꽉 채우고 머리에 봇짐까지 올린 상태로 비포장도로까지 조금 달려서 차에게 정말 미안했던 기억이 난다.^^ 트레일 안내판 위에 적혀진 이 곳의 이름은 엘말파이스 내셔널모뉴먼트(El Malpais National Monument)로 뉴멕시코 주에 있는 13개의 준국립공원들 중 하나이다. 원래 이리로 오는 길에 있는 국립공원청의 Information Center에 먼저 들리려고 했지만, 문을 열지 않아서 바로 트레일헤드를 찾아왔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공원지도에서 53번 도로의 동쪽끝에 이전 여행기로 소개했던 별도의 준국립공원인 엘모로(El Morro)가 작게 보인다.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바위산으로 일찌감치 1906년에 지정된 엘모로와는 달리, 엘말파이스는 화산지형(volcanic field)을 보호할 목적으로 1987년에야 지정되었는데, 녹색 영역이 국립공원청이 관리하는 준국립공원이고 그 주변의 노란색은 국토관리국(Bureau of Land Management, BLM) 소관의 El Malpais National Conservation Area로 구분되어 있다. 무엇을 찾아 어디로, 어디까지 가는지도 모르지만, 사모님은 앞서서 잘도 걸어가신다~^^ 얼핏 보기에는 그냥 들판같지만, 가운데 땅이 까맣게 보이는 곳까지 가보면... 이렇게 땅이 꺼져서 동굴이 만들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옛날에 용암이 흘렀던 곳에 만들어지는 라바튜브(lava tube)인데, 공원의 이름인 스페인어는 영어로 "The Badlands" 즉 황무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주차한 곳에서 0.1마일만 걸으면 이 짧은 트레일의 목적지인 정션케이브(Junction Cave)의 입구가 나온다. 이 트레일은 여기까지만 보고 돌아간다고 했더니, 사모님이 아주 좋아하셨다는...^^ 그래서 셀카를 찍는 표정도 아주 밝으시다~ 여기는 라바튜브 동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사전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되어있는데, 저 속이 어떤 모습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지난 여름에 많이 들어가봤기 때문이다. 북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라바베즈(Lava Beds) 준국립공원 여행기를 클릭해서 보시면, 작은 것부터 아주 큰 동굴까지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를 3편의 여행기로 모두 보실 수 있다. 주차장의 안내판 반대편에 이 루프트레일의 이름인 엘칼데론(El Calderon)과 우측 위에 지도가 작게 보이는데, 우리는 루프가 시작되는 입구까지만 조금 걸어갔다 온 것이다.^^ 거기에 있던 동굴의 이름이 '정션(Junction)'인 이유는 아주 중요한 다른 트레일과 교차하는 곳이기 때문인데, 바로 미대륙을 지형적으로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따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이어지는 컨티넨탈디바이드 트레일(Continental Divide Trail)을 지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즉, 여기 북쪽의 콜로라도에서 록키산맥 고개를 넘는 것처럼, 우리는 방금 뉴멕시코 고원지대에서 대륙을 동서로 나누는 경계를 넘어온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의미심장한 생각은 하지 않았고, 빨리 큰 마을로 가서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말이다. 두 곳의 준국립공원 구경을 마치고 다시 40번 고속도로와 만나는 그랜츠(Grants)에서 점심을 먹었던 아시안 슈퍼뷔페(Asian Super Buffet)의 모습이다. 나는 간단히 서브웨이를 먹자고 했지만, 아내가 여기 가보자고 해서 따라갔는데, 조금 과장해서... 내 평생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뷔페를 먹은 곳이라, 나와서 사진 한 장 찍어 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황량한 고속도로를 1시간 정도 달려 뉴멕시코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앨버커키(Albuquerque)에서 별다방 커피와 함께 주유를 한 후에, 다시 3시간 이상을 동쪽으로 더 달려야 뉴멕시코와 텍사스의 주경계에 도착을 할 수 있었다. 보라색 황혼과 함께 "매혹의 땅(Land of Enchantment)"을 떠나고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반대쪽의 뉴멕시코로 들어가는 방향은 저 기둥 두 개를 세워서 아예 환영게이트를 만들어 놓았는데, 이번에 대륙횡단을 하면서 지나간 17개의 주들 중에서 뉴멕시코가 주경계의 간판을 가장 거창하게 만들어 놓은 주였다. 그리고, 우리의 이삿짐차는 텍사스(Texas)로 들어섰다. "Drive Friendly - The Texas Way"라 환영간판에는 적혀 있지만, 이 40번 고속도로를 지배하는 컨테이너 트럭들은 어두워질수록 별로 '프랜들리'하지는 않았던 기억이다. 물론 밤눈이 어두운 위기주부는 초행길이고 잘 안 보여서 속도를 줄였지만, 그들은 낮이나 밤이나 자주 다닌 이 길을 같은 속도로 계속 달리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그래서 2차선으로 얌전히 달렸기 때문에, 조수석의 아내가 창밖으로 풍력발전기들 위로 뜬 그믐달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금방 완전히 어두워져서 지나가는 길에 있는 관광지는 내일 아침에 돌아와서 보기로 하고, 숙소를 예약한 도시인 아마리요(Amarillo)로 직행을 해야 했다. 점심을 아시안 푸드로 거하게 먹고 5시간을 내리 운전만 했기 때문에, 저녁은 간단히 '치맥'으로 하기로 했다. 윙스탑(Wingstop)에 닭날개를 주문해놓고 마트에 맥주를 사러 들어가는 우리를 텍사스가 환영해주었다.^^ 1차 대륙횡단의 2일째는 아리조나 홀브룩에서 텍사스 아마리요까지 정동쪽으로만 총 538마일(866 km)을 9시간41분 동안 운전한 것으로 구글 타임라인에 기록되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뉴멕시코(New Mexico) 주의 엘모로(El Morro) 준국립공원의 인스크립션락(Inscription Rock) 트레일
지금으로부터 6년반 전인 2015년 봄에 LA의 집에서 자동차로 출발해 아리조나를 지나서 뉴멕시코(New Mexico) 주까지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순백의 화이트샌드 국립공원과 신성한 산타페 등등의 전체 여행기 목록과 경로를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 1차 대륙횡단 이사의 둘쨋날에는 그 때 시간이 없어서 들리지 못했던 준국립공원 두 곳을 구경한 후에, 동서로 완전히 뉴멕시코 주를 횡단해서 텍사스까지 가서 숙박을 할 예정이다. 아침을 먹은 모텔 식당에 걸려있던, 미국 각 주의 자동차 번호판으로 만든 미국지도의 사진이다. 이 날은 갈색 아리조나 번호판의 숫자 1의 머리에서 출발해 노란색 뉴멕시코를 횡단하고, 텍사스 제일 위쪽에 별이 있는 곳까지 가면 되는 셈이다~^^ 그런데, 자동차 번호판들을 이어붙인 것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영화 의 아래 포스팅이 떠올랐다. 우리 부부도 약 한 달간... 영화 속의 주인공과 같이 '하우스리스(houseless)' 생활을 하는 노매드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우리가 영화처럼 저 차에서 자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앞 두자리를 빼고는 뒷좌석과 지붕까지 이삿짐이 빼곡해서 쥐새끼 한마리 들어가 잘 틈도 없었다~^^ 참, 이삿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들은 따로 작은 여행가방에 넣어서 숙소에 도착하면 방에 두기로 계획했었지만, 첫날밤부터 2층까지 별도로 가지고 올라가기가 귀찮아서 그대로 차에 두고 잤는데, 이후로는 대륙횡단을 마칠 때까지 중요물품 가방이 따로 있는지도 거의 잊어버리고 여행을 했다는... 40번 고속도로가 관통하는 페트리파이드포레스트(Petrified Forest) 국립공원은 두 번이나 방문을 했었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고 (11년전의 첫번째 여행기를 보시려면 클릭), 샌더스(Sanders)라는 곳에서 처음으로 인터스테이트40을 벗어나 191번 국도로 빠져 조금 남쪽으로 내려간 후에, 동쪽으로 방향을 트니까 뉴멕시코(New Mexico) 주가 시작된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옛날에는 노란 바탕에 빨간색과 녹색의 칠리(chili)가 그려진 단순한 디자인이었는데, 최근에 새로운 디자인의 환영간판으로 바뀌었다. 뉴멕시코 53번 주도를 따라 주니 인디언 보호구역(Zuni Reservation)을 지나면서 1시간쯤 달려서, 이 날의 첫번째 목적지인 엘모로 내셔널모뉴먼트(El Morro National Monument)라는 곳에 도착을 했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비지터센터 내부에는 방문객보다도 일하는 직원들이 더 많았고, 우리는 이 지역 원주민들과 개척자들의 역사에 관한 전시를 후다닥 둘러본 후에, 빨리 트레일을 하기 위해서 건물을 관통해 나갔다. 그랬더니 젊은 남자 직원이 뒤따라 달려나와서는 위기주부 손에 들린 코팅된 안내책자를 하나 전해주었다. 이 곳은 따로 공원지도를 보여드릴 필요없이 책자에 보이는 두 개의 트레일이 거의 전부인 작은 준국립공원으로, 우리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전체 0.5마일의 인스크립션락 루프트레일(Inscription Rock Loop Trail)을 한다. 개울을 건너는 다리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는데, 이 트레일은 전체 구간이 휠체어로도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잘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아주 멋진 바위산 아래에 도착하는데, 공원 이름인 스페인어 El Morro는 "The Headland"라는 뜻으로 머리처럼 툭 튀어나온 지형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바위절벽으로 둘러싸인 전망대에 쉼터와 안내판을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여기서 사진 가운데 폭포수가 떨어진 까만 자국이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찍은 동영상을 아래에 보여드리니까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해발 2천미터가 넘는 곳에서 올려다 보는 파란 하늘 아래에 우리 두 명만 있는 고요함도 느끼실 수 있는데, 한 없이 맑고 상쾌했던 공기는 동영상으로도 전달해드릴 수 없어서 유감이다.^^ 폭포수가 떨어진 자국이 있던 바위 아래에는 이렇게 물웅덩이(pool)가 있었는데, 물이 제법 고여 있었다. 600 풀 앞에서 커플셀카 한 장 찍었는데, 아무리 각도를 맞춰도 배경으로는 높은 바위들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파란색 LA 다저스 셔츠를 입은 커플이 우리를 뒤따라 오길래 우리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왔다고 인사를 하면서, 이제 버지니아로 이사가면 다저스가 워싱턴 내셔널스와 원정경기를 하러 DC에 오면 '고향팀'을 응원하러 야구장에 한 번 가봐야 겠다는 생각을 속으로 했다. 그런데 이 커플은 벽면을 꼼꼼히 바라보면서 걷는 것이 아닌가... "바위에 뭐가 있나?" 괜히 직원이 뒤따라 뛰어나와서 우리에게 안내책자를 전해준 것이 아니었다. 이 바위산의 벽면에는 원주민의 암각화(petroglyph)와 서양인들이 여기 다녀갔다고 바위를 깍아서 남긴 인스크립션(inscription)이 약 2천개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즉 이 거대한 바위산 전체가 화폭이자 방명록인 셈인데, 트레일에 설치된 각 번호판에 대한 설명이 안내책자에 사진과 함께 나와 있었다. 특히 아내가 보고있던 이 스페인어는 뉴멕시코 식민지의 총독이었던 Juan de Oñate가 1605년에 새긴 것으로, 방명록 중에서는 여기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글씨가 까맣게 선명한 이유는 1920년대에 희미해져 가는 흔적들을 남겨둘 목적으로 굵은 연필로 홈을 따라 덧칠을 해서 메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캘리포니아 제1기병대의 대장이었던 R. H. Orton이 남북전쟁이 끝나자, 1866년에 여기를 지나서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이란다. 이렇게 바위에 새겨진 방명록이 가지는 역사적 중요성으로 일찌감치 1906년 12월에 미국의 두번째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해 보호되었고, 그 후로는 더 이상 바위에 새로 무엇을 새기는 것은 연방법으로 금지되었다 한다. 그렇게 구경하면서 걷다보면 바위산이 끝나는 곳에 삼거리가 나오는데, 광각으로 찍어서 삼각형으로 보이지만, 양쪽 모두 거의 수직의 절벽인 바위산이었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계속 돌아가면 바위산 위로 올라가는 헤드랜드 트레일(Headland Trail)로, 멋진 경치와 함께 원주민들의 1300년대 집단 거주지인 Atsinna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안내판에는 어떻게 바위에 새겨진 그림과 글씨를 보존해왔는지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처음에는 방수 파라핀(paraffin)을 바르거나 바위를 깍아서 물길을 바꾸고 또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연필로 글씨에 덧칠을 하기도 했지만, 1930년대부터는 이런 인위적인 방법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지금은 바위에 심각한 손상이 있는 경우에만 구멍을 메우거나 고정을 하는 정도로만 관리를 한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참 자기 이름을 남겨놓고 싶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테두리까지 둘러서 빼곡히 새겨진 이름들을 구경하고는, 비지터센터로 돌아가서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안내책자를 반납을 했다. 1시간도 채 머물지 않았지만 참 와보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엘모로 준국립공원이었는데, 언젠가는 다시 와서 저 바위산 위로 올라가는 헤드랜드 트레일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다시 우리는 차에 올라서 바로 옆에 10분 거리에 있는 이름은 비슷하지만 풍경은 차이가 나는 다른 준국립공원을 또 찾아간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CV] [Comi] 'ファイブスター物語'(더 파이브 스타 스토리즈) 19권. 연재분에서 벌어지는 '검성 대 검성'](https://img.zoomtrend.com/2026/06/06/1780766083-ECB2ABEB93B1EC9EA5EB8DB0ECBD94EC8AA4.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