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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1954)
전국 시대의 막바지, 존재 가치를 잃고 낭인이라는 이름의 사회 잉여가 된 사무라이들이 작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모인다. 그러나 엉뚱하게도 사무라이들을 배척하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도적떼가 아닌, 애초에 그들을 고용한 농민들이다. 이것은 "배후의 아군이 진짜 적이었다" 따위의 문제가 아니다. 뜻을 모아 한 공간 안에 섞이게 됐으나 근본적으로 공존할 수 없는 계급간 벽에 대한 이야기다. 세끼 식사마저 보장되지 않는 조건을 수락하며 명예롭게 죽을 자리를 찾아 고매한 사무라이 정신을 지키지만, 그들이 보호하는 농민들은 도적떼나 사무라이나 똑같이 약탈자로서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먹이서열 맨 아래의 약자들이었던 것. 지키려는 자들에게 신뢰받지 못한다. 때문에 영화는 일곱 사무라이들을 마치 활극의 주인공

카게무샤 影武者 (1980)
주인공인 좀도둑 혹은 카게무샤는 그 자신의 말마따나 작은 그릇의 인물이었다. 어차피 죽을 목숨 뭐가 두렵겠냐 싶으면서도 당대의 호걸인 타케다 신겐의 디코이로서 일생을 보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여기서의 공포는 단순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으로 산다는 공포보다 더한 것은 남이 되어, 내가 아닌 채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카게무샤는 결국 좀도둑이라는 "이드(id)"를 감추고 100퍼센트 카게무샤라는 "초자아"만으로 타케다 신겐이라는 "자아"를 형성하기를 선택한다. 고통스러운 일일 것임을 스스로도 알았으나 어찌됐건 그 길을 가기를 선택한 것. 카게무샤는 적절한 임기응변 등으로 거의 완벽하게 타케다 신겐 "역할"을 수행한다. 현실에도 가식이 오래되면 그게 곧 성격이라

란 乱 (1985)
제목이 뜻하는 바 처럼, 어지러운 것은 열도의 정세도 가족의 질서도 아닌 다이묘의 통찰력이다. 난세를 헤쳐 온 늙은 권력자의 눈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다. 종자로 붙어있는 익살꾼조차 정확히 보고있는 것들을 마치 하늘에 구름 끼듯 흐려진 통찰력으로 인해 모두 놓치고 만다. 큰 아들 타로는 우유부단했으며 둘째 지로는 피를 보는 성정이었다. 각각 노란색, 빨간색의 기치(旗幟)는 그들의 그러한 성품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하늘색 기치를 내세우는 셋째 사부로는 세 아들 중 유일하게 정직한 대장부였으나, 새파란 하늘에 적란운이 뭉글거리는 도입부 장면은 사부로의 앞날에 대한 복선이기도 하다. 모르긴 몰라도 며칠을 꼬박 기다리며 영화 스탭들을 고생시키며 찍었을 게 뻔한 그 (고요하면서도 아찔한) 장면이야말로

라쇼몽 羅生門 (1950)
등장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기 다른 진술을 하는 식의 연출 기법을 상징하는 말이 된 그 유명한 제목 라쇼몽, 나생문. 요즘 애들은 롤로노아 조로 필살기 이름인줄만 알겠지. 늙은 나는 기스 하워드를 먼저 떠올린다. 무사와 아내는 산 길을 지나는 중에 산적의 눈에 띄여 봉변을 당한다. 무사는 죽고 아내는 범해진다. '사실'은 여기까지. 거기에 각기 달리 주장하는 '각자의 진실'이 살 붙는다. 산적은 비겁하고, 무사는 비열하고, 아내는 비참하며, 나무꾼은 비굴하다. 그들은 각기 자신의 비겁함, 비열함, 비참함, 비굴함이 들킬까 자신을 보호할 살을 보태어 진술한다. 영화는 '사실'과 '인지'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들이 말하는 사실과 인지의 갭에 숨은 것이 의도적인 거짓말일지, 본능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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