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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의 건맨 Per Qualche Dollaro in Piu (1965)
이견이 있겠으나, 나는 이것이 세르조 레오네라는 "유파"에서 설법하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한 순간을 담은 영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전작에서 아주 짧은 순간 내비친 휴머니즘으로 인해 죽을 고비를 넘긴 황야의 요짐보, 아니 브롱코, 아니 몽코는, 이번에는 보란듯이 마지막 남은 윤리관의 한 톨 마저 돈에 대한 욕망으로 교체해 돌아온다. 예전 명랑만화 등에선 간혹 주인공의 눈에 달러 마크($)가 그려지는 연출이 있곤 했는데, 이 영화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눈에 그게 있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태도는 깔끔하나 오로지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줌의 달러라도 더 쥘 생각만 하는 주인공. 악랄하나마 오히려 악당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강박에 시달리는 등 나름대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황야의 무법자 Per Un Pugno Di Dollari (1964)
카피 대상인 [요짐보]와 결정적을 다른 점, 요짐보의주인공 무명의 방랑 검객 일명 '산주로'는 남루한 행색이나마 전직이 사무라이, 즉 특권 계층이었을 것임을 짐작하는 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본작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분한 (역시나 무명의) 건맨에게는 산주로가 가졌던 일말의 선민의식이 있을 수가 없다. 불분명한 시대적 배경이지만 대충 남북전쟁 전후라고 간주하더라도 작중에는 그 어떤 아프리카계 노예 출신들이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는 건 영화가 계급의식에 대해 이야기할 의도가 없다는 뜻이다. 즉, 사정 딱한 민초들을 구원하기 위해 같은 눈높이로 내려 온 특권계층이 산주로의 이미지였다면, 이쪽의 건맨은 총만 들었을 뿐 거기 뒹굴고 있는 멕시코인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입장이다. 덕분에 건맨이 돈을 요구할
에바 Eva (2011)
자아를 갖게 된 로봇(혹은 다른 어떤 형태의 피조물)이 언제나 반란을 일으키거나 인간을 말살하려는 것만은 아니다. 단순히 자아를 넘어 정서라는 것을 갖게 된 로봇은 사랑을 사이에 두고 인간과 갈등할 수도 있다. 로봇이 인간에게 인간과도 같은 애정을 요구한다면 인간은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영화에서 알렉스가 집사 로보소 맥스에게 그랬듯 "너의 감정 레벨을 낮추라" 건조하게 명령할 것인가, 아니면 [A.I.]에서의 엄마가 그런 것처럼 그 가련한 인조 휴머니티를 외면한 채로 상처 줄 것인가. 결국 또 한 번의 피노키오 이야기의 변주다. 차이가 있다면, 이 영화의 제페토는 무에서 창조된 피노키오 대신, 사랑하는 여자의 딸을 카피해 소녀 로봇을 만들려는 괴상한 선택을 했다는 것. 그 하나의
렛 미 인 Låt den rätte komma in (2008)
흡혈귀에게는 언제나 노예가 있다. 있어야 그림이 그럴 듯 하다. 이엘리의 시종(Familiar) 호칸은 충성도에 비해 업무 처리 능력은 영 시원찮다. 나이 때문인지 원래 그런 건지는 알 수 없다. 늙고 지친 노예는 은퇴시키고 새로운 노예를 물색 중인 흡혈귀 여왕 앞에 칼잡이 꿈나무 소년이 나타난다. 마침 친구도 없는 것 같으니 회유하기 좋은 컨디션이다. 동백꽃 점순이 마냥 새침을 떨어주니 아니나다를가 저쪽에서 미끼를 덥썩 물어븐다. 노예의 기본 조건은 피지컬보다는 멘탈. 일단 쓸 데 없이 성가신 윤리의식은 없는 녀석이니 깡부터 길러준다. 알아서 체력단련을 시작하니 이 얼마나 기특한 노예 재목인가. 노예 쪽에서도 주인을 테스트한다. 제법이다. 들어오란 소리를 안 해? 감히 여왕으로 하여금 초대를


![[웹툰단행본] 『통제구역관리부』 1권 후기 : 이상한 변칙과 기이한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에 대하여](https://img.zoomtrend.com/2026/06/09/1780996474-SE-5eda86fa-0d63-4afd-b8dd-b801879fed52.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