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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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라 ゴジラ (1954)

고지라 ゴジラ (1954)

멧가비|2017년 8월 29일

그 위치의 중요성을 구태여 다시 언급하기 귀찮을 정도로, 이후 일본 대중문화의 모티브적 정점. [킹콩], [심해의 괴물] 등 서구 크리처 호러의 한 분파처럼 시작했으나 "수트 액션"이라는 일본 특촬만의 고유한 형식을 완성함으로써, 장르로서는 완벽히 분리독립한다. 고지라에서 [울트라맨]이 나오고, 울트라맨에서 그 [드래곤볼]이 나오게 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 일본 SF 판타지 장르사의 모티브적 원형으로서 고지라가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겠다. 저 조악한 특촬기술로 완성된 50년대 영화에서 순수한 공포가 날 것 그대로 느껴지는 데에는 인간의 원초적인 공포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 흔히 알려졌듯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에 대한 공포가 투영된

에일리언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

에일리언 커버넌트 Alien Covenant (2017)

멧가비|2017년 5월 15일

데이빗은 정말 쇼 박사를 사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랑이라는 게 인간의 범위에서 생각할 만한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를 것이고, 실제로 그걸 승화한 방식은 다르다못해 섬뜩하다. 데이빗의 사랑은 쇼를 창조신화의 대지모신(大地母神)으로 만든 것이다. 많은 민족의 창조신화에서는 여성성을 띈 신 혹은 거인이 죽음을 통해 세상에 생명을 부여하고 인류를 창조한다. 데이빗은 쇼의 육체를 통해 페이스허거를 제작함으로서 창조주 혹은 프로듀서가 된다. 데이빗이 프로듀싱한 건 이미 잘 알려진 "그 에일리언"이고. 커버넌트 호의 제어 컴퓨터 인공지능 이름이 "마더"인 것도 영화 이후에 잠들어있는 수 많은 개척민들이 당할 꼴에 대한 복선이겠지. 도입부 데이빗과 웨이랜드 회장의 독대 장면은 데이빗이 느낀 피조물로서의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프로메테우스 Prometheus (2012)

멧가비|2017년 5월 6일

이 탐사는 처음부터 글러먹었다. 이성적 탐구 대신 다분히 종교적인 환상에 집착하는 과학자들에게 맡겨진 순간부터 말이다. "너희는 아무 것도 아니란다", 자의식 과잉의 오만한 인류라는 종에게 한 방 먹이는, 누군가에겐 절망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속 시원한 이야기. 영화를 관통하는 담론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영화 속 탐사 대원들이 인류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 그렇게 까지 집착하는 이유는 순수한 과학적 탐구심이 아닌, 상위 존재에 기대고 싶어하는 의존성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영화 외적으로 보면, 태고에 미신이나 종교로 설명해야 했던 수 많은 현상들을 이제 과학이 모두 정복했음에도 여전히 현실의 종교가 사라지지 않는 이유와도 일맥상통할 것이다. 인간은 결국 눈에 보이는 건 뭐든 파헤치면서도 진심으로

콩 스컬 아일랜드 Kong: Skull Island (2017)

콩 스컬 아일랜드 Kong: Skull Island (2017)

멧가비|2017년 3월 10일

탐험가들이 해골섬에서 원주민을 만나고 괴물들과 대왕 고릴라를 만난다. 사실 그 밥에 그 나물인 상차림이다. 하지만 각각의 캐릭터들이 가진 태도를 대대적으로 수정함으로써 새 부대에 담긴 새 술이 된다. 섬의 괴물들은 임무 수행하듯 기계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는 게임 몬스터가 아니다. 온순한 녀석도 있고 자연에 의태하는 녀석도 있다. 조금 더 "생태계"라는 느낌이 강해진다. 원주민들은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콩에게 경외심을 바치고 콩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던 관계에도 조금은 유기적인 변화가 생긴다. 해골섬은 이제 유원지의 어트랙션이 아니다. 더불어 콩은 공포의 대왕으로 군림하지도, 금발 미녀에게 까닭 모를 집착을 품지도 않는다. 콩은 다른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이자, 영역을 지키려고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