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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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서성 행화촌의 술이 유명해진 이유

콩지의 중국여행기|2021년 12월 21일

중국의 10대 명주의 하나로 꼽히는 "汾酒"(분주 펀지오우) 입니다 제가 중국 여행하면서 사서 마시던 술의 일부 입니다 분주는 뒷 줄의 서안(西安) 명주 서봉주(西鳳酒) 옆에 있습니다 대만에서 쌍십절 기념술로 만든 죽엽청주(竹葉靑酒) 입니다 맨 오른 쪽에 있는 유리 병에 담은 분주 입니다 유리 병의 것은 도자기 병에 담은 것보다는 다소 저렴해서 서민들이 애용 합니다 중국의 주류 판매점이나 국제공항의 매장에는 도자기 병에 담은 술들이 많이 보이는데 값이 무척 비쌉니다 술 보다는 도자기 판매에 열을 올리는 느낌인데, 술 맛은 같은 것이니 애주가라면 굳이 비싼 도자기에 담은 술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더구나 술병에 불과한 것이지 도자기 자체에도 값어치는 별로 없는 것이랍니다 ~ 대만에서 쌍십절 때마다 판매하는 도자기에 담은 금문도 고량주는 병에 기념의 연도가 표기되어 있는 한정판이므로 소장의 의미는 있겠습니다 ~

산서성의 운강석굴

콩지의 중국여행기|2021년 12월 19일

따통(大同)의 구룡벽(九龍壁)입니다 높이가 8m ,폭이 2.02 m 그리고 길이는 45.5m로서 북경의 자금성 안에 있는 것 보다도 훨씬 큽니다 대동 시내에 있는 운강석굴은 동서 길이가 1km에 이르며, 중국 3대 석굴 중에서 규모가 아주 큽니다. 3대 석굴이란 감숙성 돈황의 막고굴, 하남성 낙양의 용문석굴 그리고 산서성 대동의 운강석굴을 말 합니다 운강석굴은 대동 시내의 서편 16km떨어져 있는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습니다 돈황의 막고굴 보다 시기적으로 다소 늦은 북위시대(460년)에 석굴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40여 년의 시간이 걸렸는데 낙양으로 천도를 하기 전까지인 494년까지입니다. 동굴 조성에 동원된 인원도 4만 여 명에 이르렀습니다. 계속하여 석굴 조상을 만드는 공정에는 사자국(獅子國 지금의 스리랑카)의 불도도 520~525년 기간 동안 이 역사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운강석굴은 주요 석굴이 53개, 보존된 석조상들이 크고 작은 것 합쳐서 5.1만 개가 넘으며, 동서로 1km의 길이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 53개의 석굴 중에서 대표적인 것 몇 개를 여기에 소개하여 올려드리니 혹시 다른 곳에서 운강석굴의 사진을 볼 경우에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사진 자료가 수중에 없어서 다음 블로그에 올려져 있는 괜찮은 사진들이 있기에 여기에 소개함을 양지 바랍니다 제3굴 최대의 규모인데 북위시대에 완공을 보지 못하였던 것인데, 수나라 당나라의 기풍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제5굴 중앙에 단정히 좌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운강 석굴 중에서 높이가 무려 17m의 좌상(坐像)으로 가장 큽니다 제6굴 이어지는 석각들은 석가모니 탄생에서 성불 하기 까지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운강석굴 중에서 대표성을 지닌 곳의 하나 입니다 제7굴 굴 꼭대기의 부조 비천(飛天)은 연꽃을 중심으로 선무(旋舞)하는 모습이 무척 생동감을 보여 줍니다 제9~13굴 청대에 와서 채색을 하여 오화동(五華洞)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9~10굴은 두 굴이 한 조이며,11~13굴은 세 굴이 한 조입니다 12굴 상단에 옛 고전의 비파,피리,북 등 악기를 든 악사들이 비천하는 모습에서 볼 수 있습니다 13굴 정 중앙에 높이 13m의 교각(交脚)의 미륵불이 있습니다 16~20굴은 雲岡縣曜5굴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곳 주지스님인 현요가 5개의 석굴을 조성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운데의 주불들은 모두 높이가 13m를 넘습니다. 19굴 높이 16.7m의 석가모니 좌상은 운강의 석굴 중에서 두 번째로 큰 대불 입니다 20굴은 높이 13.7m의 노천대불인데 운강석굴의 상징입니다. 얼굴이 자상한 모습이고 귀가 어깨에 까지 내려와 있습니다 21~53굴은 대부분 서쪽에 있는데 낙양르로 천도한 이후에 조성된 것들인데 이 무렵부터는 중국화의 움직임이 확연히 나타납니다 팁 참고 하실 블로그 주소 입니다 https://blog.daum.net/sunghwa/2033262 운강석굴 (중국 산서성) 운강석굴 전경 석굴 입구 석굴 내 건축물 석굴 표시돌 운강석굴   (출처- http://www.e-worldphoto.com/china/chinamain.htm) 중국 산시성[山西省] 다퉁[大同] 서쪽 15km, 우저우강[武州江] 북안에 있는 사암.. blog.daum.net 또는 운강석굴의 다른 사진과 글도 검색 창에서 검색해 보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 됩니다

산서성 평요고성(平遙古城) 더 보기

콩지의 중국여행기|2021년 12월 17일

이 사진은 “고성평요“를 사진들과 함께 소개한 책자의 표지입니다. 제가 구입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건축물들은 큰 변화가 안 보이는데 거리의 상점들이 화려해졌고 오가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 나 있는 것이 눈에 뜁니다 평요는 북경 기차역에서 야간에 떠나는 열차를 타면 다음 날 이른 새벽에 도착을 합니다 한 번에 많은 것을 보려는 사람들은 평요고성 구경을 빨리 끝내고 다시 열차를 타고 내몽골의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好特)로 가서 왕소군의 묘인 청총(靑塚)을 찾아가기도 합니다 또는 북쪽에 있는 석탕의 도시인 따통(大同)시에 있는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운강(雲岡)석굴을 보러 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시내에 있는 구룡벽을 구경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사진은 “고성평요“를 사진들과 함께 소개한 책자의 표지입니다. 제가 구입한 지 20년의 세월이 흘렀는데 건축물들은 큰 변화가 안 보이는데 거리의 상점들이 화려해졌고 오가는 관광객이 많이 늘어 나 있는 것이 눈에 뜁니다 아래는 평요의 옛 성곽입니다 평요의 랜드마크인 시루(市樓 스러우)가 보입니다. 3층 높이 18.5m의 벽돌과 목재로 지은 누각인데 2층에만 올라가도 평요의 주변 풍광이 한 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금정고 (금정고 )의 현판 아래는 동서로 살고 있는 주민들과 외지에서 방문 하는사람들이 내왕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채색의 소상은 쌍림사(雙林寺)의 보살전(菩薩殿)안에 있습니다 아래는 성곽의 북성루(北城樓)입니다 중국에서 최초로 송금이나 태환(兌換) 업무를 시작했던 일승창표호(日昇昌票號)입니다. 앞에는 영업을 하는 곳이고 뒤는 사람들이 살던 거주지로서 북경의 사합원(四合院) 식입니다 백천(百川)은 표호 중의 하나 입니다 이 상점은 장승원(長昇源)이란 간판이 걸려 있는데, 오래된 상점의 간판이 걸린 상점은 대개 라오쯔하오(老字號)라고 합니다. 이 가게는 황주(黃酒)를 전문적으로 파는 상점으로  오래 되었습니다 비단을 가지고 수제로 만든 슬리퍼들 입니다 구룡벽(九龍壁)을 실내에다 만들어 놓았습니다 구룡벽은 북경 자금성 안과 밖의 경도(景島)에 하나씩 그리고 대동시에 하나 모두 세 개가 유명하며, 대동시의 것이 크기와 높이가 셋 중에 가장 높고 큽니다 산서성 연극 중의 한 장면 입니다 쌍림사 천왕전 안에 있는 미륵보살입니다. 오른 쪽은 사천왕 중 한 명입니다 무성전(武殿전)에 있는 관우(關우)의 좌상 입니다 천불전(千佛殿) 안의 오백 여 존(尊)중의 일부 사진입니다 이 중에 자재관음(自在觀音)이 보이는데 明대의 소상(塑像) 작품들 중에서 보기 드문 예술 걸작품의 하나로 꼽히고 있습니다 보살전 안에 있는 천수천안(千手千眼)보살 입니다 석가모니의 좌상 입니다

산서성의 평요고성(平遙古城 핑야오꾸청)

콩지의 중국여행기|2021년 12월 12일

평요고성(平遙古城 핑야오꾸청) 태원시(太原市)에서 남쪽으로 약 90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지금 볼 수 있는 이 고성은 명,청대에 수 차례 보수와 복원 작업을 거친 네모 모양의 벽돌로 쌓은 성곽으로서 둘레 길이가 6,613m나 되며, 높이는 12m나 되고 폭은 평균 5m인데 성 주위로는 동서로 각2개, 남북으로 각 1개의 길 즉 6개의 성주벽문(城周辟門)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방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 동서 문 밖에다 옹성(甕城)도 만들어 놓았습니다 평요의 성곽 외모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안에 포진하고 있는 먕,청대의 옛 모습을 하고 있는 상점들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청허관(淸虛觀)이란 도교의 패루(牌樓)를 포함한 도교의 건축물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구경하다보면 시간이 잘 맞아서 이런 공연을 볼 기회도 갖게 됩니다 상가가 있는 거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붐빕니다 이 인력거를 끄는 사람의 복장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청나라 때의 황제 모자와 옷차림이 어울리지 않네요 ㅋㅋㅋ 산서성은 강소성 진강시(鎭江市)의 식초와 함께 진초(晉醋)로 유명합니다 사진은 초를 담은 항아리 인데, 흑초(黑醋)가 아주 좋습니다 구경하다가 피곤하고 배가 출출하면 산서성의 도삭면(刀削麵 따오사오미엔)을 한 그릇 시켜 산서성 본 고장의  맛을 즐기십시오

산서성의 면산(綿山)과 개자추(介子推)

콩지의 중국여행기|2021년 12월 11일

널판지를 하나씩 꿰어서 만든 흔들 사다리 입니다 오른 쪽은 오르는 길이고 왼쪽은 내려오는 길 입니다 지금도 그냥 걸어 오르기도 쉽지 않은 험한 길 입니다 철판을 징검 다리로 생각하고 올라 가는데, 겨울엔 철판이 미끄러워서 정말 위험할 것 같습니다 개자추 모자의 묘와 비석 입니다 개자추묘(介子推墓)라고 써 있습니다 진 문공은 이를 계기로 이 날은 불을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찬 음식을 먹도록 하였으니 한식(寒食)의 유래가 만들어진 것 입니다  중국,대만,홍콩에서는 대개 청명절인 4월 5일을 전후하여 한식 날로 잡고 있습니다 한식 날의 유래 진나라의 왕위 다툼이 있던 때, 세자(나중의 문공)는 난을 피해 개자추와 함께 유랑생활을 하였습니다. 고달픈 유랑생활 19년에 수중에는 돈도 없어서 제대로 먹지도 못하여 세자의 몸은 무척 쇄약해 있었습니다. 어느날 개자추는 자기의 허벅지 살을 베어서 주군에세 먹였습니다. 고기를 맛 있게 먹은 주군이 이 고기가 무슨 고기냐고 물어 보았고, 개자추는 “이리”고기라고 답을 했습니다. 개자추의 충정어린 주군 모심에 하늘도 감동을 하였는지 주군의 쇄약했던 몸이 회복되었고 이어서 왕위에도 오르게 되었는데 이 주군이 바로 진의 문공입니다 그러나 이 문공은 아첨꾼들의 논공행상 다툼과 궁중의 호화판 연회에 푹 빠져서 개자추를 잊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이 문공은 개자추가 만들어 주었던 “이리”고기 생각이 나서 개자추를 궁궐에 불렀습니다. 그러나 이 때는 개자추가 문공이 은공을 잊어버리고 자기를 부르지도 않자 크게 실망하고는 면산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들어가서 은둔생활을 할 때 였습니다. 여러 번 개자추를 면산에 가서 개자추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자 문공은 “산에다 불을 질러라, 불을 피해서 개자추가 산을 내려오기를 기다리자"고 했습니다. 불길이 사그러들었지만 개자추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문공이 직접 개자추를 찾아 나서고 얼마 후에 버드나무 아래에 개자추와 그 어머니가 함께 불에 타 죽은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에 탄 버드나무에 작은 구멍 속에 쪽지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쪽지에는 피로 쓴 붉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