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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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산서성(山西省)을 지나는 황하(黃河)
무한의 황하를 내려다 보는 황학루(黃鶴樓) 입니다 이 루각의 자리는 원래의 장소에서 지금의 장소로 옮겨 지은 것 입니다 황하의 긴 여행 황하(黃河 황허)의 총 길이는 5.464km로 장강의 6,300km 다음으로 긴 강입니다. 청해성의 곤륜산맥 파안객라(巴顔喀喇)산의 북쪽에서 발원한 물 줄기는 청해성,감숙성,영하(寧夏)회족자치구,내몽고자치구,하남성,산서성,산동성의 동영(東榮) 앞 발해만까지 긴 여행을 합니다. 청해성 안에서만 해도 1,693km를 흐릅니다 란주의 황하 부두와 다리 입니다 지도에서 붉은 글씨의 "양쯔강"은 마치 장강의 전부처럼 보이는데, 실은 揚子江(양자강)은 강소성의 揚州(양저우)와 상해 앞 바다까지를 부분 구간을 일컫는 것입니다 양쯔강은 서양인들과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했습니다, 여하간 장강의 전체를 양쯔강으로 표현하면 잘 못이므로 바로 잡습니다, 제가 중국에 사는 동안 중국인들 입에서 양쯔강이란 단어는 거의 들어 보지 못했습니다 란주의 황하제일교(黃河第一橋) 입니다 감숙성의 성도인 란주(蘭州 란저우) 시내를 지나는 황하에서는 양의 가죽에 바람을 넣어 만든 배로 유람을 합니다 중산대교 옆에는 모자(母子)의 석상이 있는데황하는 어머니의 젖줄이란 말을 새겨 놓았습니다 황학루 루각에서 내려다 본 황하와 무한의 2층(아래는 철로이고 위는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 입니다 다리 왼편은 장강삼협유람선이 정박하는 부두 입니다. 그런대 최근의 유람선은 무한 오기 전에 삼협댐이 있는 이창(宜昌)에서 하선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내몽고의 包頭(빠오터우)에서는 황하의 물이 도도하게 흐르는 광경을 저는 1995년12월말에 가서 구경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鄭州)에서도 황하에서 유람선을 타고 유람하기도 했습니다. 정주의 황하 강변에도 중요한 젖줄임을 상징하는 여인의 석상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산서성으로 넘어 온 황하의 물은 변화무쌍한 호구(壺口)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황하를 따라 태행산맥 벼랑에 군락을 이루며 살았던 옛 사람들의 요동(窯洞)촌락을 구경할 수도 있습니다 산동성의 성도인 제남(濟南)시에서는 넓어 진 황하의 폭을 보면서 여러 번 강을 오가면서 볼 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동요리인 노채(魯菜 루차이) 즐기는 것을 놓치면 서운하겠습니다 황하의 마지막 종착지는 산동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동영(東榮)의 앞 바다인 발해만입니다 강을 따라 인류의 문명을 심어 놓은 이집트,인도 등과 함께 황하가 세계문명발상지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나면 황하가 새롭게 보일 것입니다 장강(長江 창지앙 청해성 唐古拉 산 북쪽의 各拉丹冬氷峰 아래 쪽에서 발원)의 발원지 주변은 해발 6천m가넘는 높은 빙설의 산들이 50개가 넘습니다. 황하가 문명의 역사를 보여 주었다면 장강은 역사의 흔적을 따라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져지는 것을 찾아보는 좋은 기회를 안겨 줍니다. 현대의 대역사였던 장강삼협댐 건설은 자연환경파괴라는 비난의 화살을 많이도 받아왔지만 결국은 댐 건설을 완공하였습니다. 수몰지역의 주민들 대대적인 이주가 시작되면서 중경시는 세계에서 인구 수가 3200만 명이 넘는 초대형 도시로서 중경직할시로 승격까지했습니다 중경인민대회당 옆에 지어 놓은 장강삼협박물관은 삼협댐건설 그리고 관련한 수몰지역의 문화재 전시는 볼만 합니다. 저는 4박4일의 장강삼협 유람선 여행을 한 바 있고 장강삼협댐 건설 후 나중에 장강삼협박물관을 둘러 보았기에 감회가 깊었습니다. 장강삼협유람선을 타고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장소를 잠시 배에서 내려서 본 것은 상상 속의 크기 보다는 훨씬 작게 느껴졌지만, 무한(武漢)에 만들어 놓은 삼국지 이야기의 적벽 보다 못하다는 것이었고 무석(无錫) 태호(太湖)호수 주변에 건설해놓은 “삼국성수호성(三國城水湖城)“의 대규모 영화셋트장에 비하여 훨씬 못 미쳤다고 느꼈습니다 계림양삭이 잔잔한 산수화 같은 느낌을 준데 비하여 삼협 협곡의 주변 풍광은 상당히 역동적이고 규모도 컸습니다 상해에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자리 잡고 있는 장강의 남경(南京) 항구는 마치 바다의 큰 항구로 여겨질 정도로 규모가 컸습니다 팁 중국의 긴 강 순위 1위 장강 6,300km 2위 황하 5,464km 3위 송화강 2,308km 4위 주강(珠江) 2,214km
산서성 동굴 집(窯洞 요동)
산서성의 동굴 집 모양은 겉은 현대식으로 변화되었지만 굴을 파서 그 안에 거주공간을 마련해서 살아 왔습니다 굡굡아 아오자눈 고산의 언덕 위에 사람들이 와서 굴을 파서 기거할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라자어산촌(李家新村)은 이씨 집안의 집성촌 입니다 겉으로는 오늘날의 집들과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겉 모양만 보면 동굴 집이란 생각이 안들 정도로 산간 지방의 집들과 비슷 한 양식입니다 아랫 집의 자븅이 웃집의 마당 입니다 이곳에 사는 주민이 배를 직접 만들어 고기잡이를 나가려고 합니다 황하는 늘 누런 흙탕문이지만 눌에 실려오는 황토 흙은 농작물에 새로운 영양의 비료역활을 합니다 황하의 잉어는 중국인들이 즐겨 먹는 생선의 하나 입니다 황하에서는 잉어 외에 메기,농어 등이 잡힙니다 잉어는 주로 양념을 하여 짬아나 퇴김 요리를 해 먹습니다 잉어는 가시가 세기 때문에 억을 때 이야기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 하는데, 이야기 도중에 가시가 목에 걸릴 수 있기 때문 입니다
산서성 황하는 중국 문명 발상지의 하나
청해성에서 발원한 황하(5,464m로 長江 다음으로 김)는 감숙성의 란저우(蘭州), 하남성의 낙양,정주(鄭州)를 지나 내몽고의 빠오터우(包頭)를 거쳐 산서성으로 넘어 옵니다 유유히 소리없이 흐르는 황하지만 호구폭포에서와 같이 한바탕 요동을 치기도 합니다 황하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황하에 나가서 쪽배를 타고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요동(窯洞 야오똥)이라는 토굴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민들은 텃밭에서 채소며 고추,토마도 그리고 주변의 산에서 호도,대추,감 등을 따다가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팔아서 살림에 보태기도 합니다 태행산맥의 북쪽 산들도 험한 기세를 보여줍니다 높은 산 위에 이런 도회지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곳 가까이에는 香爐寺(시앙루쓰)라는 사찰도 있습니다 향로사의 조망대에서 유유히 흘러가는 황하를 내려다 봅니다
산서성, 민간 상인이 만든 보루 같은 대원(大院)
왕가대원(王家大院)의 입구 입니다 현판에는 "왕씨박물관', '중국민속예술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왕부(王府)"라는 두 글자를 쓴 홍등이 걸려 있습니다 10m 높이의 높은 벽을 쌓아서 외부와 차단하고 있습니다 성벽 위의 길로 관광객들이 왕가대원의 전경을 관람하고 있습니다 목조의 기둥과 창문 틀들의 조각을 들여다 보면 북방의 전통 건축 양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맞으면 민속공연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야간 상가 거리에는 관광객들로 북적 입니다 이런 루각은 군왕(君王)도 짓기가 쉽지 않을텐데 자본을 축적한 거상(巨商)이 대단한 세(勢)를 과시하는 것 같습니다 산서성의 특산물인 진초(晉醋)가 들어 있는 항아리 입니다. 대개는 작은 유리병 또는 전통의 용기에 담아서 파는데 중국인들은 흑초(黑醋)를 채소를 볶아 낼 때나 생선요리를 먹을 때 많이 사용 합니다 오늘은 산서성의 민간 거상들이 조성한 교가(喬家 치아오지아)대원, 왕가(王家 왕지아)대원,상가(常家 창지아))대원 등 대원(大院)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왕가대원(王家大院) 태원시에서 남쪽 150km, 여기 영석현(靈石縣)에서 다시 12km 거리의 정승진(靜升鎭)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정승왕가(정승 4대 가문의 하나인 靜升王家)들이 대대로 살았던 곳입니다 입구에 세운 홍문보(紅門堡_)가 위엄을 갖추고 있습니다. 청대의 康熙,擁正,乾隆,嘉慶 시기에 조성한 왕씨 가족들의 주거지는 15만 m2의 황토고원 위에 배산면수(背山面水)로 배치해 놓았습니다. 건축물들은 고가애(高家崖)건축군과 홍문보(紅門堡) 건축군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고가애에는 11728m 부지 위에다 218칸의 집을 홍문보에는 19800m2의 부지 위에다 540칸의 집을 지어 ‘王“자 모양으로 군락을 이뤄놓았습니다 이 왕가의 민가 건축물은 중국의 보배같은 주거지라고 하면서 ”華夏第一宅“이란 이름을 달아 놓았습니다 1997년에 ”中國民居藝術館“으로 이름을 달고 고가애건축군을 개방하였고 다음 해인 1998년부터는 ”왕씨박물관“을 ”홍문보건축군“이란 이름을 정식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가대원(喬家大院 치아오지아 따위엔) 교가(喬家 치아오지아)대원은 태원시내에서 남쪽 6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만들어진 시기는 청 건륭황제 때인 1755년부터인데 그동안 두 번의 확장공사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총 부지면적은 8,725m2이고 건축면적은 3,870m2로서 313개의 가옥을 지어 놓았습니다. 외관상 성의 보루(堡壘)같기도 한데, 3면은 거리와 연계되어 있고 사방은 10 여 m 높이의 벽돌 담장으로 밀페식으로 쌓아 외부와 차단해 놓았습니다 교가대원은 현재 기현(祁縣)의 민속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말하길 "황가에 고궁이 있지만 민가에는 교가대원이 있다"고 ~ 이 글을 쓰면서 20여 년 전에 TV에서 "巨商 喬家(거상 치아오지아)"를 다큐멘타리로 만들어 방영하는 것을 재미있게 본 일이 생각 났습니다 거가대원(渠家大院 쥐지아 따위엔) 교가대원과 5km 떨어진 거리에 300년이 넘는 거가대원(渠家大院)이 또 있으니 시간이 나면 한 번 둘러볼만 합니다 부지 면적은 2.36만 m2에 204개의 주택을 지어 놓았는데 원내에는 패루(牌樓)와 누각(樓閣)도 있고, 연못과 그 위의 다리는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실내와 외부에는 길상(吉祥)의 그림들과 목각,석각 등이 수준 있는 예술품이니 감상할 만 합니다 교가대원이 민속박물관으로 만들었듯이 거가대원은 진상(晉商)문화박물관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교씨나 거씨 집 안은 모두 유통과 금융업으로 부호 거상이 되었는데 이 산서성은 상거래에서 신용을 바탕으로 한 어음거래를 처음으로 도입한 곳입니다 팁 산서성에 금융이 발전했음을 알리려는지 "주산(珠算)박물관"도 만들어 놓았으니 시간이 나면 관람 한 번 하기를 추천 합니다. 박물관은 기현 고성(古城)의 동대가(東大街)에 위치하는데, 춘추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셈 법의 변천과정을 보여 줍니다 한편 주판의 재료가 철, 금, 동, 나무 등 외에도 궁중에서 사용하던 옥주판, 수정주판, 상아주판 그리고 도자기 주판도 전시되어 있으며, 길이가 6m인 여의주판(如意算盤)은 중국에서 가장 큰 것이고 가장 작은 것은 1mm의 것도 있으며 이 외에 장식용의 작은 주판들도 눈에 띕니다
산서성의 호구폭포(壺口瀑布)
호구폭포(壺口瀑布) 호구폭포의 이름대로 황하의 물줄기가 서서히 흐르다가 폭포의 지점까지 이르게 되면 갑자기 협곡의 폭이 좁아지면서 마치 주전자의 물주둥이에서 쏟아붓는 물같은 급격한 폭포를 이루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입니다. 폭포의 위치는 산서성의 중서부에 있는 길현(吉縣)과 섬서성의 동쪽 경계의 의천현(宜川縣)과 거의 맞닿아 있는 곳으로 길현의 중심지에서는 49km 거리이고 임분시(臨汾市)와는 176km(태원시와는 450km)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서서히 넓은 폭으로 흐르던 황하의 물줄기가 이곳에 이를 때 쯤이면 폭이 30m의 좁은 골짜기를 5.000m를 지나면서 무척 거칠게 파도를 일으키면서 급하게 아래로 떨어집니다. 수량이 많을 때는 폭의 넓이가 천여m를 넘어 최대의 폭포 면적이 3만 km2를 넘기도 합니다 호구폭포를 관람하는 시기는 4~5월은 노도와 같이 급류로 변하면서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며, 가을의 폭포는 강물을 뒤집으면서 흐르는 물 위에 가끔 무지개가 걸리는 광경을 보게 되면 또한 마치 딴 세상에 와 있는 느낌이 들 것입니다 겨울의 풍광은 나름대로 바위에 얼어 붙어 있는 얼음들이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빙판길이 무척 미끄러우니 구경하면서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퍼붓는 것 같습니다 모택동이 국민당 군대에 밀려 정강산(井崗山)에서 이 산서성의 연안(延安 옌안)까지 도보로 대장정(大長征)으로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 감행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한 번 생각하게 하는 곳이 바로 이 산서성입니다 관심이 있다면 연안을 먼저 둘러보고 기차를 타고 호구(壺口)로 4시간의 여정을 보내는 것도 여행의 한 묘미일 것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