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지의 중국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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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5 posts강서성, 용호산의 현관(懸棺) 공연 2~1
옛 고관이나 부유한 사람들은 죽어서 높은 곳에 자기의 관이 안치되기를 바랬습니다 우선은 하늘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고, 관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훼손 당하거나 관 속의 물건들이 도난 당하지 않을 것을 배려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런 풍습은 동남아 몇 국가에도 남아 있습니다 길 바닥은 청석(靑石)으로 깔아 놓았습니다 관광객들은 인력거를 타고 거리를 구경하기도 하는데, 이 인력거꾼은 여성 입니다 800~1000년이 넘는 고목들이 많은 곳 입니다 사람들은 오래 된 고목은 영험할 것으로 믿고 자기의 소원을 적은 붉은 천을 나무 가지에 묶어놓습니다 길가에 토속신을 모신 곳이 보이면 가던 걸음을 멈추고 향을 피우며 소원을 빕니다 ~ 선수암(仙水岩)은 강을 낀 아주 가파른 절벽을 따라 춘추전국 시대부터 조성되어 온 절벽 위의 동굴 묘지가(중국 역사상 최초의 고대 애묘(崖墓)들이 여기저기 있는데 지금까지 100구가 넘는 관들이 발견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현지 사람들이 관광객을 위해서 배로 관을 옮겨 온 후 밧줄을 이용하여 동굴까지 관을 위로 올리는 위험스런 묘기(升棺)를 시간에 맞추어 공연을 합니다 . 묘기 공연을 배 위에서 구경하고는 마치 계림의 이강(漓江)에서 대나무 땟목을 타고 강 위를 쩌나면서 유람하듯이 주위 풍광을 즐깁니다 굴 안에 안치된 관이 보입니다 두 봉우리는 하나는 용(龍)이고 다른 하나는 호랑이(虎) 입니다 12시에 시작하는 현관 공연을 보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팁 용호산 풍경구(龍虎山風景區) 중국 남방 도교의 명산으로 남창시에서 동남쪽으로 160km 떨어진 귀계시(貴溪市)의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99개의 산봉우리에 66 곳의 절경을 지니고 있는데 붉은 절벽에 푸른 물이 잘 어울리는 풍광을 만들어 줍니다. 동한(東漢) 시대인 90년에 도교의 창시자로 알려진 장도릉(張道陵, 제1대 장천사(張天師))이 이곳 용호산 아래에 와서 용호관(龍虎觀)을 세웠는데 19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 때 도관이 당송 때 한창 융성했을 때는 10대 도궁(道宮)에 도관(道觀) 81좌(座)에다 도원(道院) 36좌(座)를 거느린 적도 있습니다 상청궁(上淸宮)은 역대의 장천사(張天師)들이 이곳에서 도교의 교조인 태상노군(太上老君)을 모시던 곳입니다 이곳에는 항주(杭州)에서 제조하여 옮겨 온 5000kg이나 되는 큰 동종(銅鐘)이 볼거리입니다
강서성 경덕진의 도자기박물관
박물관의 복도 입니다. 중국 옛 도자기엔 여인들의 인물들이 많이 그려져 있습니다 황색 바탕에 용무늬가 들어가 있는 삼채(三彩) 접시 입니다 화조나 꽃무의의 접시들이 화려 합니다 왼쪽의 위는 국화와 목단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 쪽엔 목단이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의 천도 복숭아가 그려진 화병은 시중에도 모사품이 많습니다 경덕진 기차 역北북참)인데 북경에서 출발하는 고속열차가 구걍역, 남창역 등과 함께 정차 합니다 고요민속박람구(古窯民博區구)라고 굴뚝에 써 놓았습니다 컵의 두께가 아주 얇아서 투명하다고 말 할 정도 입니다 식기류 입니다 작은 차호(茶壺 차주전자) 입니다 청대엔 이런 코발트 색을 입힌 도자기들 생산이 많았습니다 팁 1) 중국의 도자기로 유명한 도시들 중국엔 강서성의 경덕진시가 자도(瓷陶)로 불려지고, 강소성의 의흥시(宜興市)는 자사(紫沙)도자기로 유명하여 자도(紫都)라고 부릅니다 경덕진은 1957년 시(市)로 승격했습니다 중국에는 4개의 명진(名鎭)이 있는데 즉 경덕진과 광동성의 불산진(佛山鎭), 호북성의 한구진(漢口鎭),하남성의 주선진(朱仙鎭)을 말 합니다 2) 경덕진의 1957년에 만들어진 고도자빅람구(古陶瓷博覽區)는 “整舊如舊(정구여구)”를 원칙으로 하면서 고요자창(古窯瓷廠), 도자역사박물관, 명청건축군(明淸建築群) 세 곳으로 나뉘어 있으며, 도자기의 궁(宮)으로 불려지는 곳입니다. 광동성의 불산시(佛山市) 역시 도자기 생산기지의 하나인데 현대 유럽풍의 커피 찻잔 셋트와 접시 등의 식기류 수출을 유럽 쪽으로 많이 하고 있습니다 산동성의 치박시(淄博市)는 예술도자기, 유리공예로 유명하며, 하북성의 도시 전체가 건물 하나 남기지 않고 폐허가 된 당산지진으로 이름이 알려진 唐山市는 지금은 도시가 완전히 복구되어 위생도기와 건축용 내장과 외장의 타일 및 도자기, 생활도자기를 많이 생산 합니다. 3) 대만 잉꺼(鸚歌 앵가)에는 도자기 전문대학이 2000년도 즈음에 만들어 졌습니다 잉꺼는 장개석국제공항이 있는 도원(桃園)의 반대편 서쪽 산골짜기에 있는데, 입구에 들어서면 높은 붉은 벽돌 굴뚝들이 여기저기에 보입니다. 제가 대만에서 1994년까지 근무할 당시엔 도자기대학을 만들자는 이야기만 나돌 때였는데, 나중에 보니 대학이 생겨 있었습니다 동네가 모두 도자기 만드는 공방들을 가지고 가게를 내어 자기네가 만든 도자기들을 직접 파는 동네입니다. 대만의 서쪽 끝인 금문도(金門島 복건성의 하문(廈門 시아먼)과 가까움)는 도자기에 알맞는 고령토가 자체 생산되어 금문도 도지기란 이름으로 생산하여 유명합니다 4) 우리나라 경기도에도 큰 요(窯)인 가마가 있습니다 2001년 경기도 광주,이천,여주 세 도시가 함께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개최한바가 있으며, 중부고속도로의 광주 톨게이트에서 나와 곤지암 방향으로 가다 오른 편에 도자기박물관을 도자기엑스포가 끝난 후 만들어 놓았는데 전시품들이 다양하며, 예술적 전문 도예가들의 작품들도 상시 볼 수 있으니 한 번 둘러서 감상할만 합니다
강서성 자도(瓷都) 경덕진(景德鎭)
경덕진의 도자기를 말 할 때 중국인들이 흔히 쓰는 말 입니다 "白如玉, 明如鏡(백여옥 명여경),薄如紙,聲如磬 (박여지 성여경 )" 커다란 화분들이 길바닥 위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이 큰 화분은 물을 담아서 물고기를 키울 수도 있습니다. 겨울철 방 안이 무척 건조하기에 습도 올리는데 한 몫 합니다 호텔 로비나 큰 레스트랑의 입구에 이런 키 큰 화병을 놓아두기도 합니다 경덕진 시는 옛날 진(鎭)이었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아직도 많이 긴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꽃장식이 화려한 찻잔들은 명, 청대의 유물로 박물관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시중 상점에 내놓고 파는 것들은 진품은 거의 없고 모사품이 대부분 입니다 세계문화유산에 올라 있는 백록동서원 입니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길이가 엄청나게 깁니다 경덕진 민속박물관의 입구 입니다 도자기의 음이 연주에 신비함을 안겨 줍니다 가로등의기둥이 도자기로 만든 것 입니다 자도(瓷都) 경덕진(景德鎭) 경덕진에서 도자기를 생산하기 시작한 역사는 한(漢)부터 이니 1700년이 넘습니다. 경덕진시는 자도(瓷都)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까지도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송나라 진종(眞宗)인 조황(趙恒) 때 창남진(昌南鎭 경덕진의 이전 이름)에서 생산하는 도자기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도자기임을 알 수 있도록 도자기 밑바닥에 “경덕(景德)이란 연호를 넣도록 명을 내렸습니다. 경덕진이란 진(鎭)에 황실의 연호가 사용되기 시작하여 창남진 역시 경덕진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진(鎭)이란 작은 마을이 지금은 경덕진시(市)가 되어 있습니다 경덕진 시와 연결되는 교통편은 철로, 고속도로는 물론 편하게 이용할 수 있으며, 시내에서 10km 거리에 는 국내선 공항도 있는데 대개 하루에 한 편만 운행되고 있습니다 시내 택시는 기본거리 2km에 더하여 초과 거리에 따라서 또는 시간(야간 11시 이후)에 따라서 할증료가 부과되고 있습니다 경덕진을 일부러 찾아가는 주요 이유로는 도자기박물관을 찾아 가서 자도(瓷都)의 역사와 도자기 굽는 옛 가마 그리고 경덕진 도자기의 참 모습 등을 관람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자기를 파는 가게 앞 길바닥에다 길게 늘어 놓은 2m가 넘는 큰 도자기와 작은 화병 도자기들을 우선 구경하고나서 상점 안에 들어가서 잘 진열된 도자기들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우선은 눈이 휘둥그레 커 집니다 벽에다가 장식용으로 할 타일에 그려진 산수화나 화조 (花鳥)그림들(瓷板畵라고 함)은 경덕진의 특산물이기도 합니 다. 기념으로 가져 올만한 작은 크기도 있습니다
강서성 여산은 세계별장박람회장
펄벅의 기념관 입니다. S.Buck를 賽珍珠라고 번역 한 것 입니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펄벅이 어릴 때의 모습입니다 펄벅의 반신 상(1892~1973) 입니다 외국인들이 조성해 놓은 별장들 입니다 구강(九江) 기차역에서 45분 거리 입니다 북경역에서 홍콩까지 가는 열차는 이 구강역을 지나 갑니다 가까이 있는 310호 별장은 펄벅이 “大地“(대지 Thr Good Earth) 장편소설을 1932년에 집필한 곳(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입니다 사진은 펄벅이 어렸을 적에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모습인데, 워낙 글쓰기를 좋아했나 봅니다 모란(牧丹 The Peony)이나 “북경에서 온 편지"(Letter from Peking) 등 작품을 읽어 보면 펄벅이 중국에서 오랫동나 살아왔다곤 하지만 중국의 문화, 관습, 여성들의 섬세한 표현 등이 중국인에 결코 뒤지지 않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진사(淸眞寺)는 회족(回族)들의 음식점을 말하며, 양고기가 위주로 나오는 요리는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만 심하게 나지 않으면 먹을만 합니다. 저는 양갈비 구이를 곧잘 시켜먹곤 하였습니다 ~! 1895년 영국 선교사가 이곳에 최초의 별장을 지은이래 미국,독일,이태리,러시아,일본 등 1897년 ~1935년에 25개 국에서 지어 놓은 별장들이 1927년에 이미 887동이나 되었고 동시에 교회, 성당, 병원, 학교 등 총면적이 50여 만 m2의 건축물까지 1천 여개나 들어 서 있어서 당시엔 이곳을 별장 박람회장 같다고 말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장개석,송미령이 “미려별장(美廬別墅)”이란 별장(180호)을 그대로 두고 대만으로 떠난 뒤에 모택동이 와서 이 별장에서 남겨두고 간 비품이나 용품 등을 버리지않고 그대로 사용하면서 지낸 바도 있다고 했습니다. “미려별장(美廬別墅)”은 원래는 영국의 파레이 여의사가 1922년 지은 것인데 1930년 장개석 송미령 부부에게 기증을 하여 남겨진 것입니다. 별장 원내에는 돌 바위(臥石)에 “미려(美廬)” 두 글자를 크게 새겨 놓은 것이 있는데 그 옆에 “호년중정4월제(虎年中正4月題)”란 글씨가 있는데 이것은 中正(장개석)이 쓴 것임을 말 해 줍니다
강서성 여산(廬山) 삼첩천(三疊泉)
여산(廬山 루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명승지입니다 남창시에서 120km, 구강(九江)시에서 기차를 타면 45분 소요되는 거리에 위치 합니다 중국에서 담수호로는 가장 큰 파양호가 가까이에 있습니다 여산의 풍광사진에 항상 운무(雲霧)가 자욱한 것은 구강시의 아홉 줄기의 장강 물이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여산의 운무는 여름에는 산 정상 부근에, 가을에는 산허리에 운무가 감겨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산 산의 진면목(眞面目)을 이태백이 쓴 시를 통해서 감상하기에 바쁜 곳이기도 합니다. 여산의 오로봉(五老峰)은 다섯 개의 봉우리 모양이 다섯 노인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다석 봉우리 중에서 한양봉(漢陽峰)은 1,436m로 가장 높습니다 송나라의 소동파가 여산의 삼첩천(三疊泉) 폭포를 구경하러 갔을 때입니다. 많은 지인들이 소동파에게 이 여산의 멋진 풍광을 읊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 옆에서 보니 고개인데 다른 쪽에서 보니 봉우리인가보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아도 산은 그때마다 똑 같지가 않구나 ~ 이백(李白)은 여산의 진면목(眞面目)을 알 수가 없는데, 단지 이 몸은 산 속에 있을뿐이라네 ~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진주알 같은 물방울이 공중을 날면서 3천척을 떨어지니 구만리 밖 하늘의 은하수가 쏟아지는 것인가?라고 하면서 자연 신의 조화에다 말을 돌렸습니다 원나라 때 서화에 능했던 조맹부(趙孟頫)는 “飛泉如玉簾. 直下數千尺. 新月如簾釣 遙遙挂空碧(비천여옥렴. 직하수천척. 신월여염조 요요괘공벽)라고 읊었는데 이백이 읊었던 삼천척을 수천척으로 표현했습니다 ~ 선인동(仙人洞)입니다 동굴 입구는 부처의 손모양이어서 불수애(佛手崖)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협곡의 낭떠러지에 있는 자연 동굴입니다. 팔선과해(八仙過海)의 그림 속 인물 중 하나인 신선 여동빈(呂洞賓)이 이 동굴에서 수행을 하고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악어 모양의 바위 입니다 화경(花徑) 꽃길을 뜻하는데 이 화경(花徑)이란 붉게 칠한 돌 위에 새겨진 두 글자는 모택동이 남겨 놓은 것 입니다 여산의 오로봉(五老峰)은 다섯 개의 봉우리 모양이 다섯 노인 모습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 다석 봉우리 중에서 한양봉(漢陽峰)은 1,436m로 가장 높습니 강서성의 여산, 절강성의 안탕산(雁蕩山) 안휘성의 황산은 중국의 “신삼산(新三山)”으로 불려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