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권력이다
Posts
1383 posts영화 전,란 스토리 액션 미술 연출 모든 것이 참 좋았던 참 좋은 추천 영화
넷플릭스가 각성을 했나 봅니다. 에 이어서 도 이상으로 아주 잘 만든 영화였습니다. 이런 영화가 영화관에 걸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작은 TV로 봐야 하네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액션, 연출, 스토리, 미술, 미장센과 연기까지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화끈한 결말이 아닌 2부가 나옴직한 결말이라는 점이 좀 아쉽긴 하네요. 전,란의 스토리는 이몽학의 난에서 영감을 받은 듯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은 조선 시대의 최악의 왕이 누군지 잘 아실 겁니다. 광해군, 연산군이라는 당대에 인정한 폭군도 있긴 하지만 군이 아닌데 가장 무능하고 저질인 왕이 있는데 그 왕은 바로 선조입니다. 선조 인조 이 두 왕은 정말 역사에서 도려내고 싶을 정도로 못난 조선의 왕이었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아직도 많은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빤스런을 한 왕이 선조입니다. 선조가 떠나자마자 경복궁에 불이 나는데 이 불은 왜군들이 지른 게 아닙니다. 빤스런을 한 왕에 대한 분노심에 백성들이 지른 불입니다. 민심이 천심인데 조선의 왕이 빤스런을 했죠. 여기에 시기심도 많아서 이순신 같은 자기보다 돋보이는 명장을 질투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의병들이 왜군을 막아섰고 천민인 노비들이 왜군과 싸웠으면 그 공을 인정해서 노비 문서를 태우고 후한 대접을 해줘야 합니다. 이런 논공행상을 얼척없이 한 왕이 선조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선조에 대한 민심은 극악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선조의 무능한 행동으로 여러 민란이 일어납니다. 영화 은 전쟁으로 인한 난리도 다루지만 전쟁 후에 일어난 민란까지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니 토굴이나 정확히 똑같지 않지만 대동을 외치는 걸 봐서는 '이몽학의 난'을 많이 참조한 듯합니다. 흥미롭게도 '이몽학의 난'은 2010년 개봉한 이 다룬 소재이고 이 영화에서 이몽학은 차승원이 연기를 했습니다. 이몽학의 난의 원인은 피지배층인 서울, 농민, 승려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엄청났습니다. 흉년이 들어도 엄청난 부역과 과세에 민심이 들어섰죠. 특히 충청도 지역 관리들의 수탈에 가까운 행패에 이몽학이 대동을 외치면서 민란을 일으킵니다. 영화 에서는 차승원이 선조 역할을 기가 막히게 합니다. 정말 역대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외형적으로나 비열함을 아주 잘 보여줬다고 할 정도로 연기도 외모도 뛰어나네요. 이몽학의 난은 1,000명의 농민들이 일어나서 충청도 일대를 장악했던 아주 큰 민란이었습니다. 영화 에서는 농민 대신 노비로 대체를 합니다. 줄거리 시대 배경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천영은 부모가 노비입니다. 부모 중 한쪽이 노비 집안이면 자식은 자동으로 노비가 되는 신분 세습의 시절에 노비로 태어납니다. 저는 조선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조선 시대에 노비로 태어났으면 자결을 했을 정도로 조선 시대에 노비로 사는 삶은 개돼지만도 못했습니다. 천영은 부모처럼 노비로 삶을 시작합니다. 천영은 아버지로부터 배운 뛰어난 검술 실력이 있었지만 이종려의 몸종이 되어서 종려가 검술 대결에서 실수를 하거나 지면 대신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이렇게 둘은 어려서부터 가까이 지내게 됩니다. 이종려(박정민 분)은 그런 천영(강동원 분)을 친구처럼 지냅니다. 물론 조선 법에 위배되는 행동입니다만 이종려는 어떻게 노비보다 강아지를 더 소중히 여기냐고 합니다. 이에 아내는 개는 기르는 것이고 종은 부리는 것이는 것이며 조선의 확고한 계급제도를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종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천영과 함께 무술 공부를 하면서 천영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이 틀어지게 됩니다. 무과 시험에 매번 떨어지자 천영은 자신이 종려 대신 무과 대리 시험을 치겠다고 합니다. 대신 노비 문서를 태워달라고 하죠. 그렇게 천영은 무과 시험에서 장원 급제를 합니다. 그러나 종려의 아버지인 대감은 천영을 죽이라고 명령하죠. 이 둘은 이렇게 헤어지게 되고 임진왜란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선조의 호위무사인 종려는 선조와 함께 빤스런을 하게 되자 종려 집안의 노비들이 노비문서를 태우면서 종려 가족을 몰살시킵니다. 이 대목이 무척 쓰라리지만 당시 노비들의 울분이 드러납니다. 노비의 입장에서는 조선 양반의 종으로 사는 것이나 전쟁으로 죽는 것이나 크게 다를 것이 없고 이런 전란 속에 노비들은 신분 상승 또는 신분을 숨기고 살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평소에 종려 집안이 노비를 사람 대접 해주었다면 달랐겠죠. 종려의 가족을 노비들이 죽였지만 천영이 죽인 것으로 오해한 종려는 노비들을 다른 조선 양반들처럼 벌레 취급을 하기 시작합니다. 한편 찬영은 사람을 모아서 왜군을 물리치는 의병이 됩니다. 그렇게 기나긴 7년 전쟁 끝에 잔혹한 전쟁이 끝이 나고 찬영과 찬영의 의병군을 이끄는 김자령(진선규 분) 장군이 이 공을 직접 조정에 올라가서 보고하려고 합니다. 증인이 없다는 조정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왜군 고위 장교까지 체포해서 압송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혼란으로 치닫습니다. 줄거리는 예고편만 봐도 예상할 수 있을 겁니다. 개돼지로 사느니 민란을 일으켜서 왕을 치겠다는 내용으로 이어지겠죠. 그런데 이 과정으로 가는 이야기가 참 좋네요. 뛰어난 스토리의 이 이 화제가 된 이유는 이 넷플릭스 영화의 시나리오를 박찬욱 감독과 신철이 함께 썼습니다. 시나리오가 좋냐? 엄청 좋습니다. 먼저 전체적인 스토리 구성이 좋습니다. 먼저 선조에 대한 묘사가 너무 좋네요. 빤스런의 대가 선조를 악마에 가까운 모습으로 그립니다. 백성을 백성으로 여기지 않고 개돼지로 여기는 모습이나 경복궁을 백성들이 태웠으면 왜?? 가 아닌 내가 못나서 민심이 돌아섰구나를 깨달아야 하는데 전쟁이 끝나자 백성들의 궁핍함과 고통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경복궁 재건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다만 이 이야기는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경복궁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당백전까지 만들면서 재건했었고 선조는 경복궁 대신 덕수궁에 많이 머물렀습니다. 이건 가공된 이미지 같네요. 이 가공된 이야기를 통해서 선조가 잡아온 왜군을 항왜라는 아군으로 만들어서 민란을 토벌하는 모습은 마치 고종이 일본군을 끌어들여서 동학 농민을 학살한 모습과 비슷합니다. 고종과 선조를 압축해 놓은 사람이 바로 차승원의 선조입니다. 가장 통쾌했던 것은 왜놈들이 소중하게 여겨서 숨겨 놓은 보물을 찾아서 경복궁 재건을 하려고 항왜를 보냈고 결국 보물을 찾아내는데 그 보물 내용에 기겁하는 선조가 어찌나 통쾌한지 씁쓸하면서도 짜릿함이 가득했습니다. 대단한 상상력입니다. 제가 나름 조선 역사를 많이 살펴보는데 고증도 꽤 좋습니다. 조선의 무기 중 가장 뛰어난 무기 중 하나가 편곤인데 편곤 액션의 등장도 놀랍지만 조선이라는 나라가 사농공상에서 상을 가장 천하게 여겨서 물류가 발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왜군들이 진군하는데 길이 없어서 애를 먹었다고 하죠. 조선의 모든 물자 이동은 뱃길을 이용했고 보물을 뱃길로 이송하는 모습에 조선 역사 고증이 잘 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가 왜 재미있는데요. 고증이 엄청나게 잘 되어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첨언에 바로바로 드라마 제작에 반영했다고 하죠. 여기에 주요 이야기를 시간 순으로 풀어낸 것이 아닌 중요 이야기를 숨기는 플롯으로 영화 보다가 궁금한 장면을 결정적일 때 꺼내드는 모습도 좋네요. 이는 감독이 연출 및 편집 능력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핵심 서사는 계급 사회 속에서 핀 양반과 천민 사이의 우정입니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박정민이 양반이고 강동원이 노비라고요. 두 배우의 이미지와 달리 캐스팅을 했고 실제로 강동원은 에서 양반 검술사로 나오죠. 그런데 두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다 보니 이 이질감은 일도 없습니다. 박정민과 강동원의 우정과 반목이 영화 내내 긴장감과 서러움을 넣었다 뺐다 합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찬영이라는 이름입니다. 어린 종려는 몸종인 찬영에게 한자를 적어주는데 따를 찬에 그림자 영이라고 말하죠. 전형적인 양반의 시선입니다. 그러나 의병장인 김자룡 장군은 궁에 입궐하기 전에 찬영에게 하늘 천(天)에 빛날 영(煐)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같은 사람이라도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신분 상승이 막힌 세계에서는 찬영은 그냥 노비로 살다 죽었겠지만 전쟁이 뒤집어 놓은 신분이 느슨해진 세상에서는 노비도 큰 공을 올리고 왜군을 잡는 선봉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놀라운 액션 시퀀스와 배경음악과 역동적인 카메라 액션이라는 것이 스타일이 없어진 시대입니다. 모든 액션 스타일은 다 나온 상태라고 할 정도로 액션은 이제 레퍼런스 할 것이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른 영화의 액션을 반복하면 지루하죠. 이에 조금이라도 비틀고 다르게 담고 신선한 앵글로 담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의 검술 액션은 초미니 카메라를 이용했는지 검에 상대방의 얼굴이 드리우는 초근접 촬영 장면이 압권입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누가 냈나요? 칭찬해 주고 싶네요. 그렇다고 쓸데없이 카메라를 흔들어 찍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검술이 묘기에 가까운 장면도 없습니다. 아주 정교한 합으로 담백하지만 화려한 액션을 잘 담았습니다. 특히 마지막 액션 장면인 3명의 검술 대결은 마치 영화 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합니다. 제가 특히 눈여겨보게 하는 무기도 나옵니다. 김신록이 연기하는 범동이 들고 다니는 편곤입니다. 편곤은 도리깨 같이 끝에 회전이 가능한 짧은 봉이 달려 있습니다. 쌍절곤처럼 끝이 회전하면서 강력한 파괴력을 지닙니다. 그래서 칼을 주로 사용하는 왜군들이 칼로 편곤을 막으면 이 편곤 끝의 봉이 180도 이상 돌면서 왜군 머리를 타격하거나 강력한 타격으로 큰 피해를 줍니다. 이 편곤을 조선 전투에서 거의 본 적이 없는데 편곤의 등장에 깜짝 놀라고 반가웠습니다. 액션의 표현력은 극강입니다. 사지 절단 장면이 꽤 나옵니다. 따라서 어린아이들은 볼 수 없습니다. 특히 실제 전투 장면을 보여주려는지 목을 관통하는 찌르기 장면은 이 영화 이 박찬욱 영화라는 걸 보여주는 느낌도 듭니다. 박찬욱 감독 영화는 은근히 표현력이 쎄잖아요. 전 오히려 이런 모습이 신선했지만 잔혹한 장면을 못 보는 분들에게는 약간은 충격일 겁니다. 여기에 음악도 아주 신선했습니다. 음악은 전체적으로 60~70년대 한국 사극 영화에 많이 사용한 금속 악기 위주의 배경음악이 많고 노비를 설명할 때나 여러 장면에서 한국의 판소리나 창을 섞어서 소개하는 모습도 좋았습니다. 심야의 FM의 김상만 감독의 화려한 부활 홍익대학교 디자인학과 출신의 김상만 감독의 영화라서 그런지 때깔이 아주 좋습니다. CG도 꽤 있지만 이질적이지 않습니다. 고증도 좋고 표현력도 전체적인 미장센이 조선 시대를 그대로 재현한 느낌까지 듭니다. 미술팀의 열일에 박수를... 그런데 이 김상만 감독의 필모를 보면 큰 성공을 한 영화가 없습니다. 그나마 잘 알려진 것이 수애 주연의 입니다. 심야의 FM은 새벽 2시에 FM 영화음악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를 스토킹 하는 살인마를 다루고 있는데 여러 면에서 허술한 스토리가 아쉬웠던 그러나 꽤 재미있게 봤던 영화입니다. 그런데 같은 감독이 맞나 할 정도로 너무나도 잘 뽑아낸 영화에 각성을 하신 건지 무슨 일이 있었나? 할 정도로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네요. 김상만 감독님 앞으로 대작 영화 연출에서 뵙고 싶네요. 모든 것이 좋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아쉽고 기대된다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정말 이런 영화가 여름에 개봉했어야죠. 이라는 망작이 470만 명이 볼 정도면 은 청소년 관람 불가 딱지가 붙어도 최소 700만 명 이상이 들었을 겁니다. 작은 화면으로 보면서 아쉽고 아쉽다만 외쳤네요.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딱 하나 있는데 영화가 란이라는 부제가 붙고 이제 선조를 어떻게 치러 가나 했는데 허무하게 모이면서 끝납니다. 이게 2편을 염두한 포석 같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긴장감이 확 풀리네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봤네요. 정말 추천하고 강력하게 추천하는 잘 만들어진 영화 입니다. 넷플릭스에 있으니 주말에 챙겨보세요. 보는 내내 요즘 대한민국을 보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들어서 분노 게이지가 더 치밀어 오르네요. 왕은 대통령이고 충주시 현감이라는 고위직 공무원들의 백성은 없고 왜군과 붙어먹는 모습 하나가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게 합니다. 어떻게 보면 반란 영화이자 전쟁 영화이자 사회 비판 영화로 비추어집니다. 그래서 가산점을 더 주고 싶네요. 그리고 강동원 배우 앞으로 이런 영화를 고르세요. 오랜만에 좋은 시나리오 잘 골랐네요. 아니 박찬욱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으니 반대일 수도 있겠네요. 별점 : ★ ★ ★ ★ 40자 평 : 헬조선에서 피어난 계급을 넘어서는 우정을 통해 본 대한민국이라는 그림자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그리고 노벨문학상
영화 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을 때도 전율이 일었지만 그보다 1.5배는 더 강한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도 엄청난 일이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내 평생 단 한번 경험해 볼 기적이지만 어느 정도 군불을 지피고 있던 터라 감독상까지는 어찌어찌해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탈 수 있었을 겁니다. 부커상을 받았다는 건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소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국내 언론 및 해외 언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터졌습니다. 바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다들 한강 작가 책을 꺼내면서 한강 부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미리 밝히지만 작가 한강의 열렬한 팬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작가의 데뷔작을 군대에서 읽었고 그때의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첫 소설집 1993년인지 1994년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공군 군복무가 무려 30개월이었습니다. 너무 길어서 나보다 한 달 늦게 육군에 입대한 친구가 나 놀리려고 먼저 전역 후에 면회를 와서 짜증이 났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공군이 육군보다는 좋았습니다. 공군은 부대마다 기지서점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어서 책 읽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병장 월금 1만 원 조금 넘던 그 시절에도 돈을 털어서 소설책을 꽤 많이 사 봤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중 하나가 이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문학 소설과 문화계간지를 알게 된 건 군대 고참 덕분입니다. 공군은 책 읽을 시간도 많고 점호 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점호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당시 이별이라는 처음 경험한 엄청난 고통을 달랠 방법이 없었는데 절 구원해 준 건 소설과 철학책이었습니다. 여기에 고참이 천문학과 다니다 입대했는데 문학청년이었습니다. 매번 문학동네와 여러 문예 계간지를 우편으로 받아 보기에 몇 권 빌려 봤습니다. 그때부터 소설 읽는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좋아했던 소설가들은 공교롭게도 여성 소설가들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소설가는 '신경숙'으로 를 시작으로 등등 신간 나오는 족족 다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무장 난로가에서 새벽에 근무 서면서 소설과 함께한 1994년 그 늦은 겨울밤은 내 기억에서는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 입니다. 은 아주 달콤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의 은 뭐가 자꾸 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보푸라기를 나게 하게 합니다. 은 여러 단편 소설의 모음집입니다. 따라서 단편 소설의 묶음이라서 쉽게 읽힐 겁니다. 특히 은 한강 소설의 입문하기에 아주 좋은 소설입니다. 시를 쓰던 작가의 습속 때문인지 소설이지만 시적인 한강 작가의 소설 세계 에는 총 6편의 소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중 은 길이감이 좀 있는 중편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2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정선은 고향인 여수로 돌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여수라는 공간은 정선에게 있어서 잊고 싶은 끔찍한 과거가 있는 곳입니다. 정선은 여수에서 함께 지낼 동거인을 찾게 됩니다. 이때 자흔이 동거인으로 참여하게 되고 둘은 함께 지냅니다. 둘의 성격은 너무 다릅니다. 정선은 섬세하고 작은 떨림에도 큰 요동을 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자흔은 털털함 그 자체입니다. 쾌활하고 활달하고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수역에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수가 고향인지도 모릅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여수에서 태어났지만 끔찍스러운 기억 때문에 여수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두 여자는 여수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는데 정선은 결벽증에 히스테리까지 주변에 방사합니다. 결국 자흔조차 밀어내 버리는 정선. 그렇게 자흔이 떠난 공간에서 정선은 드디어 자신의 끔찍한 과거에 마주 서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놀랍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수라는 공간에서 두 여자의 상처를 통해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렇게 게워내야 또 새로운 살이 돋아난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건 시를 썼던 작가라서 그런지 시적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림원 사무총장도 "그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이 문장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얼마나 현란한 언어 구사력을 가졌는지를요. 물론 이런 것도 훈련하면 됩니다. 지금 제 책장을 보니 소설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지식 고향, 경제, 사회과학 책들이 참 많네요. 그러나 군대에서는 소설책만 엄청 읽었습니다. 이유는 사회과학책이 지식 교양 책이 제 상처를 달래주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상처 입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절 치유해 주었으니까요. 동질감. 나 말고 세상에는 사랑으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소설 특히 문학 소설의 장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미려한 표현력도 문인 집안에서 자란 한강 작가의 복이라면 큰 복이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독학으로 소설가가 된 구로공단 여공 출신의 신경숙 작가의 삶이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강 작가의 복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축복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도 과실이 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후 한참 지나서 EBS에서 자주 봤습니다. 소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매주 나와서 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말을 너무 차근차근하게 해서 천상 작가구나 할 정도로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고 잘 정돈된 말을 실타래를 풀어내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힘이 좋은 작가구나 했었네요. 지적 허영이라도 좋다. 한글로 글을 쓰는 한각 작가를 접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고백하자면 집에 한강 작가의 책이 몇 권 있습니다.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몽고반점도 있고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그린 도 있습니다. 는 이북으로 있습니다. 최근 한강작가의 작품을 보면 폭력에 대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책을 잘 내는 듯하네요. 고백하자면 이 책 모두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구매한 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읽어볼까 합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좋습니다. 한강 소설을 통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봤으면 하네요. 가 5.19 광주민주화 항쟁을 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한강. 아직도 제주 4.3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극우주의자들이 강제로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지적해도 좋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미려한 글과 문제의식을 통해서 오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의 나를 만드는 가을이 되었으면 하네요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내 평생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고은 시인 이후로는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대단한 결과입니다. 이후 한국 문학들이 부흥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하네요.
소설가 한강의 데뷔 소설집 여수의 사랑 그리고 노벨문학상
영화 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을 때도 전율이 일었지만 그보다 1.5배는 더 강한 소름이 온몸을 휘감았습니다. 도 엄청난 일이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내 평생 단 한번 경험해 볼 기적이지만 어느 정도 군불을 지피고 있던 터라 감독상까지는 어찌어찌해 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이번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언젠가는 탈 수 있었을 겁니다. 부커상을 받았다는 건 노벨문학상 후보라는 소리이기도 하니까요. 그러나 국내 언론 및 해외 언론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터졌습니다. 바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다들 한강 작가 책을 꺼내면서 한강 부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미리 밝히지만 작가 한강의 열렬한 팬은 아닙니다. 다만 이 작가의 데뷔작을 군대에서 읽었고 그때의 감성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첫 소설집 1993년인지 1994년인지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당시 공군 군복무가 무려 30개월이었습니다. 너무 길어서 나보다 한 달 늦게 육군에 입대한 친구가 나 놀리려고 먼저 전역 후에 면회를 와서 짜증이 났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그러나 공군이 육군보다는 좋았습니다. 공군은 부대마다 기지서점이 있었고 도서관이 있어서 책 읽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병장 월금 1만 원 조금 넘던 그 시절에도 돈을 털어서 소설책을 꽤 많이 사 봤던 것이 기억나네요. 그중 하나가 이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환경에 잘 적응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제가 문학 소설과 문화계간지를 알게 된 건 군대 고참 덕분입니다. 공군은 책 읽을 시간도 많고 점호 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병사들도 많았습니다. 저도 점호 마치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책을 읽었던 적이 참 많았습니다. 당시 이별이라는 처음 경험한 엄청난 고통을 달랠 방법이 없었는데 절 구원해 준 건 소설과 철학책이었습니다. 여기에 고참이 천문학과 다니다 입대했는데 문학청년이었습니다. 매번 문학동네와 여러 문예 계간지를 우편으로 받아 보기에 몇 권 빌려 봤습니다. 그때부터 소설 읽는 훈련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좋아했던 소설가들은 공교롭게도 여성 소설가들이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소설가는 '신경숙'으로 를 시작으로 등등 신간 나오는 족족 다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근무장 난로가에서 새벽에 근무 서면서 소설과 함께한 1994년 그 늦은 겨울밤은 내 기억에서는 행복한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읽었던 책이 입니다. 은 아주 달콤한 기억으로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강 작가의 은 뭐가 자꾸 돌아보게 하고 마음에 보푸라기를 나게 하게 합니다. 은 여러 단편 소설의 모음집입니다. 따라서 단편 소설의 묶음이라서 쉽게 읽힐 겁니다. 특히 은 한강 소설의 입문하기에 아주 좋은 소설입니다. 시를 쓰던 작가의 습속 때문인지 소설이지만 시적인 한강 작가의 소설 세계 에는 총 6편의 소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중 은 길이감이 좀 있는 중편 소설입니다. 소설에는 2명의 여자가 등장합니다. 정선은 고향인 여수로 돌아가면서 시작됩니다. 여수라는 공간은 정선에게 있어서 잊고 싶은 끔찍한 과거가 있는 곳입니다. 정선은 여수에서 함께 지낼 동거인을 찾게 됩니다. 이때 자흔이 동거인으로 참여하게 되고 둘은 함께 지냅니다. 둘의 성격은 너무 다릅니다. 정선은 섬세하고 작은 떨림에도 큰 요동을 치는 내성적인 성격이라면 자흔은 털털함 그 자체입니다. 쾌활하고 활달하고 모든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합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여수역에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그래서 여수가 고향인지도 모릅니다. 자흔도 상처가 있습니다. 여수에서 태어났지만 끔찍스러운 기억 때문에 여수를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두 여자는 여수에 대한 깊은 상처가 있는데 정선은 결벽증에 히스테리까지 주변에 방사합니다. 결국 자흔조차 밀어내 버리는 정선. 그렇게 자흔이 떠난 공간에서 정선은 드디어 자신의 끔찍한 과거에 마주 서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내용 자체가 엄청나게 재미있거나 놀랍거나 하지 않습니다. 다만 여수라는 공간에서 두 여자의 상처를 통해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 넌지시 물어보는 듯한 느낌이나 그렇게 게워내야 또 새로운 살이 돋아난다는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아직도 기억하는 건 시를 썼던 작가라서 그런지 시적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림원 사무총장도 "그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냅니다"라고 밝혔습니다. 여수, 그 앞바다의 녹슨 철선들은 지금도 상처 입은 목소리로 울부짖어대고 있을 것이다. 여수만의 서늘한 해류는 멍든 속살 같은 푸릇푸릇한 섬들과 몸 섞으며 굽이돌고 있을 것이다. 저무는 선착장마다 주황빛 알전구들이 밝혀질 것이다. 부두 가건물 사이로 검붉은 노을이 불타오를 것이다. 이 문장만 보아도 알 수 있죠. 얼마나 현란한 언어 구사력을 가졌는지를요. 물론 이런 것도 훈련하면 됩니다. 지금 제 책장을 보니 소설책은 거의 없고 대부분 지식 고향, 경제, 사회과학 책들이 참 많네요. 그러나 군대에서는 소설책만 엄청 읽었습니다. 이유는 사회과학책이 지식 교양 책이 제 상처를 달래주지는 못합니다. 또 다른 상처 입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절 치유해 주었으니까요. 동질감. 나 말고 세상에는 사랑으로 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통받고 사는 사람들이 많음을 알게 해주는 것이 소설 특히 문학 소설의 장점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미려한 표현력도 문인 집안에서 자란 한강 작가의 복이라면 큰 복이겠죠. 그런 면에서 저는 독학으로 소설가가 된 구로공단 여공 출신의 신경숙 작가의 삶이 더 좋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한강 작가의 복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건 아닙니다. 그런 축복 같은 환경 속에서 자라도 과실이 되지 못한 분들도 많습니다. 한강 작가는 이후 한참 지나서 EBS에서 자주 봤습니다. 소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매주 나와서 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말을 너무 차근차근하게 해서 천상 작가구나 할 정도로 말을 함부로 하지도 않고 잘 정돈된 말을 실타래를 풀어내듯 자연스럽게 말하는 모습에 힘이 좋은 작가구나 했었네요. 지적 허영이라도 좋다. 한글로 글을 쓰는 한각 작가를 접하는 가을이 되었으면 한다 고백하자면 집에 한강 작가의 책이 몇 권 있습니다. 2005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몽고반점도 있고 나무가 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을 그린 도 있습니다. 는 이북으로 있습니다. 최근 한강작가의 작품을 보면 폭력에 대한 인간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책을 잘 내는 듯하네요. 고백하자면 이 책 모두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구매한 후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읽어볼까 합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좋습니다. 한강 소설을 통해서 우리의 아픈 역사를 돌아봤으면 하네요. 가 5.19 광주민주화 항쟁을 는 제주 4.3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한강. 아직도 제주 4.3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수많은 극우주의자들이 강제로 읽어봤으면 하는 소설입니다. 지적 허영이라고 지적해도 좋습니다. 소설가 한강의 미려한 글과 문제의식을 통해서 오늘보다 더 나아진 내일의 나를 만드는 가을이 되었으면 하네요 다시 한번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정말 내 평생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줄은 몰랐네요. 고은 시인 이후로는 포기하고 있었거든요. 대단한 결과입니다. 이후 한국 문학들이 부흥하는 새로운 시대가 열렸으면 하네요.
바람도 멈춘듯한 한적함의 최대치 파주 삼릉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를 믿는 국가였죠. 불교였다면 지금보다 더 화려한 역사적인 공간과 조형물이 가득했을 겁니다.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무척 탄압한 국가가 조선입니다. 유교의 가르침 덕분인지 조선은 참 검소한 나라였습니다. 상업을 천박하게 여겨서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죠. 그래서 대로도 없고 길도 닦아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뱃길로 물류를 이동했습니다. 부를 축적하지 않았고 안빈낙도를 즐기는 선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이 남긴 흔적은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전각이죠. 그중에서 향교나 왕릉 빼면 조선시대가 남긴 위대한 유물은 많지 않습니다. 유물이 있었다고 해도 6.25 전쟁, 임진왜란 등으로 많이 사라졌습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파주 삼릉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조선의 왕릉은 서울과 경기도에 참 많습니다. 서울에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경기도에 있습니다. 세종대왕릉은 여주에 있죠. 선정릉도 조선 당시에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습니다. 파주에도 능이 있습니다. 이 왕릉이라는 것이 왕만 묻혀 있는 건 아니고 세자비나 왕비나 왕이 되지 못한 왕족들도 묻혀 있습니다. 파주 삼릉은 인기 조선왕릉은 아닙니다. 교통편도 안 좋습니다. 차 없으면 걸어 거야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한 1km 이상 걸어야 합니다. 도로도 사람이 안 지나다니는지 관리가 안 되어 있네요. 사람이 없다 보니 경치도 좋고 소음도 적고 한적해서 좋네요. 현대자동차 파주인재개발센터 근처입니다. 파주 삼릉 앞 버스 정류장입니다. 063번이 다녔나 본데 지금은 변색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전에 폐선되었네요. 파주 삼릉을 찾는 사람이 많거나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다닐 텐데 마을과 삼릉은 500m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 평일은 어디든 한적하지만 여기는 더 한적하네요. 주차한 차량들이 꽤 있지만 관리자나 방문객 차량일 듯 합니다. 주말에도 꽉차지 않을 듯하네요. 파주 삼릉은 3릉입니다. 3개의 능이 있는 곳입니다. 입장료는 1,000원이고 카드도 됩니다. 개방 시간은 6~8월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30분, 봄가을인 2~5월, 9~10월은 오후 6시, 겨울인 11 ~ 1월은 오후 5시 30분까지 개방합니다. 여기가 다른 곳과 달리 조명 시설도 없고 해지면 위험하기에 해지기 전에 종료해야 합니다. 뱀, 벌 조심이 섬뜩하네요. 요즘 폭염 때문에 말벌이 늘었다고 하죠. 해설사도 계시는데 오전 오후 3회에 걸쳐서 있네요. 그런데 이 해설 사람 없으면 안 하더라고요. 휠체어와 유모차를 대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워낙 넓어서 아이들 칭얼거리면 유모차에 태우면 됩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서 그러닞 관리는 아주 잘 되어 있네요. 파주 삼릉 역사 문화관은 보수 공사 중이네요. 작은 하천이 있는데 아주 잘 정리된 자연 풍광이 가득하네요. 관람객은 저 포함 한 10명 정도였로 아주 적었습니다. 그 마저도 지역 주민이 대부분입니다. 월정액을 끊으면 산책코스 또는 워킹 코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능 이외에 있는 유일한 전각은 이 재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능 관리소 같은 곳으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머물면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종 9품 참봉이 머무는 곳으로 능을 관리해서 능참봉이라고 합니다. 9급 공무원이 머무는 관리소 같은 곳이네요. 사무를 하는 공간은 궁이라도 단청을 하지 않습니다. 전각은 3개가 있네요. 예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 한씨의 공릉 삼릉은 3개의 능이 있습니다. 이중 따로 떨어져 있는 능이 공릉이고 나머지 2개의 능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공릉은 독특하게도 길이 90도로 꺾여 있습니다. 조선 왕릉은 가람 배치가 정해져 있습니다. 예법에 따라서 규모나 위치의 룰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비슷합니다. 여기는 공릉으로 조선 8대 왕인 예종이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맞이했던 한씨의 능입니다. 한명회의 셋째 딸입니다. 한명회는 조선 전기의 대단한 모사꾼으로 수양대군의 쿠데타인 계유정난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명회는 두 딸을 예정과 성종의 아내로 만들어서 왕의 장인이 됩니다. 한명회라는 인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딱히 큰 감흥은 없네요. 물론 딸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 공릉은 삼릉 중에 가장 규모가 작은데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 등등이 있고 봉분에 두르는 호안도 없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수양대군인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아내인 장순왕후 한씨는 세조 7년인 원손인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의 어린 나이에 승하합니다. 17살에 아이를 낳고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네요. 이 삼릉의 능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이 왕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세자비의 능으로 만들어졌으나 추후 9대 왕인 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대되어서 능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 전각이 바로 제사를 지내는 전각입니다. 매년 1월 14일에 기신제를 지낸다고 하니 제사 지내는 걸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때 가면 될 듯 합니다. 1월 14일에 하는 이유는 이 날이 장순왕후가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신제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경기도지원 분원 봉향회에서 하는데 능 45개 능에서 1년에 한 번 치러집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조선이 워낙 예법과 제사에 진심이라서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이런 죽음과 관련된 곳이 많네요. 공릉을 나오니 순릉 영릉과 산책로에서 택할 수 있었는데 산책로를 돌아봤습니다. 길이는 1.9km이고 60분 소요한다고 했는데 중간에 멈추지 않으면 성인은 한 30분 정도면 돌 수 있습니다. 이 산책로는 동산을 약간 타고 올라가야 해서 약간의 헐떡임이 발생할 수 있기에 등산 싫어하는 분들이나 무릎 안 좋은 분들은 추천 안 합니다. 이 산책로는 나무와 길 밖에 없습니다. 그냥 숲 속 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왕릉에 많은 소나무가 많다는 것이 좀 다를 뿐 여느 숲과 다를 게 없네요. 그래서 좀 심심합니다. 중간에 쉼터라 몇 군데 있어서 중간중간 쉴 수도 있습니다. 바로 뒤에 호수가 보이는데 공릉저수지입니다. 공릉저수지 둘레길에 나무 데크길을 만들던데 공릉천과 공릉국민관광단지인 하니랜드와 이 삼릉을 연계하면 어떨까 하네요. 공릉 갔다가 바로 하니랜드 가고 공릉저수지 들리면 딱 좋은데요. 그런데 막혀 있더라고요. 차 있는 분들은 차로 이동하면 되지만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펜스로 막아서 못 가게 해 놓았네요. 심심해서 그렇지 길은 참 좋네요. 지나가는 사람은 딱 두 분 봤는데 사적인 대화를 크게 하다가 저를 보더니 조용해 지더라고요. 여길 자주 들리는지 사람 없다는 걸 잘 아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단풍 나무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단풍이 들긴 하겠지만 단풍나무 구간이 적은 게 아쉬웠어요. 그랬다면 단풍철에 또 들렸을 텐데요. 한명회의 넷째 딸이 묻혀 있는 순릉 순릉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왕릉의 규모로 만들어졌습니다. 공릉보다 더 크고 웅장하고 문무석 있고 봉분도 크죠. 여기는 조선 9대왕 성종의 왕비이지 한명회의 넷째 딸인 공혜왕후 한 씨의 능입니다. 공릉이 셋째 딸이었으니 동생이었습니다. 한명회는 딸 둘을 모두 왕비로 만들었네요. 대단한 권세가였습니다. 1469년 성종이 즉위하기 전 결혼했다가 성종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됩니다. 보시면 문무석이 있고 각종 조형물이 있고 봉분도 크고 둘레에 돌로 둘렀습니다. 저 혼자 이 공간을 다 차지했습니다. 아무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공간. 서울에서는 이런 곳을 볼 수가 없는데 여기서 가능하네요. 한적함이 최대 매력이 파주 삼릉이네요. 영릉은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이 길에 단풍나무가 있네요. 여기는 가을에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겠네요. 영조 첫째 아들이 묻혀 있는 영릉 장수한 영조의 첫째 아들인 진종과 효순황후 조씨의 능이 영릉입니다. 왕릉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성 연도는 삼릉중 가장 늦은 1729년 영조 5년입니다. 쌍릉이라서 능이 2개입니다. 영조와 정빈 이 씨의 아들로 1719년 창의궁에서 태어난 진종은 영조가 왕이 되자 경의 군이 되었다가 바로 왕세자가 됩니다. 그러나 1728년 10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에 영조는 효장세자라고 시호를 내립니다. 1776년 영조는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양자로 입양합니다. 정조가 왕이 되자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됩니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 후인 1908년 진종소황제로 추존됩니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진종의 아내인 효순황후는 1751년 3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3개의 능인 공릉, 순릉, 영릉은 다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십니다. 다들 10대에 돌아가셨네요. 어떻게 보면 왕의 권력을 누리면서 세상을 호령했을 수 있었지만 피지 못한 꽃과 같은 분들이네요. 그래서 그러지 이 파주 삼릉은 조용하고 쓸쓸하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그러나 죽어서 이런 양지 바른 곳에서 후손들의 손길을 받고 있네요. 그리고 저 같은 한적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조건을 다 갖추고 있네요. 다른 계절에 또 들려 보고 싶은 삼릉입니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어서 좋네요. 조선왕릉 분포도입니다. 보시면 서울에 북쪽과 남쪽에 좀 있고 여주에도 있습니다. 파주는 장릉, 삼릉이 있네요. 파주 삼릉은 바람 소리마저 안 들리는 적막하고 한적한 공간이었습니다.
바람도 멈춘듯한 한적함의 최대치 파주 삼릉
조선이라는 나라는 유교를 믿는 국가였죠. 불교였다면 지금보다 더 화려한 역사적인 공간과 조형물이 가득했을 겁니다.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를 무척 탄압한 국가가 조선입니다. 유교의 가르침 덕분인지 조선은 참 검소한 나라였습니다. 상업을 천박하게 여겨서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죠. 그래서 대로도 없고 길도 닦아 놓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주로 뱃길로 물류를 이동했습니다. 부를 축적하지 않았고 안빈낙도를 즐기는 선비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이 남긴 흔적은 많지 않습니다. 거의 대부분이 전각이죠. 그중에서 향교나 왕릉 빼면 조선시대가 남긴 위대한 유물은 많지 않습니다. 유물이 있었다고 해도 6.25 전쟁, 임진왜란 등으로 많이 사라졌습니다.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파주 삼릉 버스도 다니지 않는다 조선의 왕릉은 서울과 경기도에 참 많습니다. 서울에는 거의 없고 대부분은 경기도에 있습니다. 세종대왕릉은 여주에 있죠. 선정릉도 조선 당시에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였습니다. 파주에도 능이 있습니다. 이 왕릉이라는 것이 왕만 묻혀 있는 건 아니고 세자비나 왕비나 왕이 되지 못한 왕족들도 묻혀 있습니다. 파주 삼릉은 인기 조선왕릉은 아닙니다. 교통편도 안 좋습니다. 차 없으면 걸어 거야 합니다. 버스에서 내려서 한 1km 이상 걸어야 합니다. 도로도 사람이 안 지나다니는지 관리가 안 되어 있네요. 사람이 없다 보니 경치도 좋고 소음도 적고 한적해서 좋네요. 현대자동차 파주인재개발센터 근처입니다. 파주 삼릉 앞 버스 정류장입니다. 063번이 다녔나 본데 지금은 변색되어 있을 정도로 오래전에 폐선되었네요. 파주 삼릉을 찾는 사람이 많거나 근처에 마을이 있으면 다닐 텐데 마을과 삼릉은 500m 이상 차이가 있습니다. 평일은 어디든 한적하지만 여기는 더 한적하네요. 주차한 차량들이 꽤 있지만 관리자나 방문객 차량일 듯 합니다. 주말에도 꽉차지 않을 듯하네요. 파주 삼릉은 3릉입니다. 3개의 능이 있는 곳입니다. 입장료는 1,000원이고 카드도 됩니다. 개방 시간은 6~8월은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30분, 봄가을인 2~5월, 9~10월은 오후 6시, 겨울인 11 ~ 1월은 오후 5시 30분까지 개방합니다. 여기가 다른 곳과 달리 조명 시설도 없고 해지면 위험하기에 해지기 전에 종료해야 합니다. 뱀, 벌 조심이 섬뜩하네요. 요즘 폭염 때문에 말벌이 늘었다고 하죠. 해설사도 계시는데 오전 오후 3회에 걸쳐서 있네요. 그런데 이 해설 사람 없으면 안 하더라고요. 휠체어와 유모차를 대여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가 워낙 넓어서 아이들 칭얼거리면 유모차에 태우면 됩니다. 세계문화유산이라서 그러닞 관리는 아주 잘 되어 있네요. 파주 삼릉 역사 문화관은 보수 공사 중이네요. 작은 하천이 있는데 아주 잘 정리된 자연 풍광이 가득하네요. 관람객은 저 포함 한 10명 정도였로 아주 적었습니다. 그 마저도 지역 주민이 대부분입니다. 월정액을 끊으면 산책코스 또는 워킹 코스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능 이외에 있는 유일한 전각은 이 재실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능 관리소 같은 곳으로 제사 지내는 사람들이 머물면서 제사를 준비하는 공간입니다. 종 9품 참봉이 머무는 곳으로 능을 관리해서 능참봉이라고 합니다. 9급 공무원이 머무는 관리소 같은 곳이네요. 사무를 하는 공간은 궁이라도 단청을 하지 않습니다. 전각은 3개가 있네요. 예종의 첫 번째 왕비인 장순왕후 한씨의 공릉 삼릉은 3개의 능이 있습니다. 이중 따로 떨어져 있는 능이 공릉이고 나머지 2개의 능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공릉은 독특하게도 길이 90도로 꺾여 있습니다. 조선 왕릉은 가람 배치가 정해져 있습니다. 예법에 따라서 규모나 위치의 룰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나 비슷합니다. 여기는 공릉으로 조선 8대 왕인 예종이 세자 시절 세자빈으로 맞이했던 한씨의 능입니다. 한명회의 셋째 딸입니다. 한명회는 조선 전기의 대단한 모사꾼으로 수양대군의 쿠데타인 계유정난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한명회는 두 딸을 예정과 성종의 아내로 만들어서 왕의 장인이 됩니다. 한명회라는 인물을 좋아하지 않아서 딱히 큰 감흥은 없네요. 물론 딸이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이 공릉은 삼릉 중에 가장 규모가 작은데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 등등이 있고 봉분에 두르는 호안도 없습니다. 1453년 계유정난으로 집권한 수양대군인 세조의 아들인 예종의 아내인 장순왕후 한씨는 세조 7년인 원손인 인성대군을 낳고 산후병으로 17세의 어린 나이에 승하합니다. 17살에 아이를 낳고 어린 나이에 돌아가셨네요. 이 삼릉의 능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편이 왕이 되기 전에 돌아가셔서 세자비의 능으로 만들어졌으나 추후 9대 왕인 성종 1년에 장순왕후로 추대되어서 능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이 전각이 바로 제사를 지내는 전각입니다. 매년 1월 14일에 기신제를 지낸다고 하니 제사 지내는 걸 보고 싶으신 분들은 이때 가면 될 듯 합니다. 1월 14일에 하는 이유는 이 날이 장순왕후가 돌아가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신제는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경기도지원 분원 봉향회에서 하는데 능 45개 능에서 1년에 한 번 치러집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조선이 워낙 예법과 제사에 진심이라서 대부분의 유적지들이 이런 죽음과 관련된 곳이 많네요. 공릉을 나오니 순릉 영릉과 산책로에서 택할 수 있었는데 산책로를 돌아봤습니다. 길이는 1.9km이고 60분 소요한다고 했는데 중간에 멈추지 않으면 성인은 한 30분 정도면 돌 수 있습니다. 이 산책로는 동산을 약간 타고 올라가야 해서 약간의 헐떡임이 발생할 수 있기에 등산 싫어하는 분들이나 무릎 안 좋은 분들은 추천 안 합니다. 이 산책로는 나무와 길 밖에 없습니다. 그냥 숲 속 길을 걷는 느낌입니다. 왕릉에 많은 소나무가 많다는 것이 좀 다를 뿐 여느 숲과 다를 게 없네요. 그래서 좀 심심합니다. 중간에 쉼터라 몇 군데 있어서 중간중간 쉴 수도 있습니다. 바로 뒤에 호수가 보이는데 공릉저수지입니다. 공릉저수지 둘레길에 나무 데크길을 만들던데 공릉천과 공릉국민관광단지인 하니랜드와 이 삼릉을 연계하면 어떨까 하네요. 공릉 갔다가 바로 하니랜드 가고 공릉저수지 들리면 딱 좋은데요. 그런데 막혀 있더라고요. 차 있는 분들은 차로 이동하면 되지만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분들은 펜스로 막아서 못 가게 해 놓았네요. 심심해서 그렇지 길은 참 좋네요. 지나가는 사람은 딱 두 분 봤는데 사적인 대화를 크게 하다가 저를 보더니 조용해 지더라고요. 여길 자주 들리는지 사람 없다는 걸 잘 아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쉬운 것이 있다면 단풍 나무가 많지 않다는 겁니다. 물론 단풍이 들긴 하겠지만 단풍나무 구간이 적은 게 아쉬웠어요. 그랬다면 단풍철에 또 들렸을 텐데요. 한명회의 넷째 딸이 묻혀 있는 순릉 순릉에 도착했습니다. 여기는 왕릉의 규모로 만들어졌습니다. 공릉보다 더 크고 웅장하고 문무석 있고 봉분도 크죠. 여기는 조선 9대왕 성종의 왕비이지 한명회의 넷째 딸인 공혜왕후 한 씨의 능입니다. 공릉이 셋째 딸이었으니 동생이었습니다. 한명회는 딸 둘을 모두 왕비로 만들었네요. 대단한 권세가였습니다. 1469년 성종이 즉위하기 전 결혼했다가 성종이 왕이 되자 왕비가 됩니다. 보시면 문무석이 있고 각종 조형물이 있고 봉분도 크고 둘레에 돌로 둘렀습니다. 저 혼자 이 공간을 다 차지했습니다. 아무도 없고 소음도 없는 공간. 서울에서는 이런 곳을 볼 수가 없는데 여기서 가능하네요. 한적함이 최대 매력이 파주 삼릉이네요. 영릉은 바로 근처에 있습니다. 이 길에 단풍나무가 있네요. 여기는 가을에 단풍으로 아름답게 물들겠네요. 영조 첫째 아들이 묻혀 있는 영릉 장수한 영조의 첫째 아들인 진종과 효순황후 조씨의 능이 영릉입니다. 왕릉의 형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성 연도는 삼릉중 가장 늦은 1729년 영조 5년입니다. 쌍릉이라서 능이 2개입니다. 영조와 정빈 이 씨의 아들로 1719년 창의궁에서 태어난 진종은 영조가 왕이 되자 경의 군이 되었다가 바로 왕세자가 됩니다. 그러나 1728년 10살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이에 영조는 효장세자라고 시호를 내립니다. 1776년 영조는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를 양자로 입양합니다. 정조가 왕이 되자 효장세자는 진종으로 추존됩니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 후인 1908년 진종소황제로 추존됩니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진종의 아내인 효순황후는 1751년 37세에 세상을 떠납니다. 이 3개의 능인 공릉, 순릉, 영릉은 다들 어린 나이에 돌아가십니다. 다들 10대에 돌아가셨네요. 어떻게 보면 왕의 권력을 누리면서 세상을 호령했을 수 있었지만 피지 못한 꽃과 같은 분들이네요. 그래서 그러지 이 파주 삼릉은 조용하고 쓸쓸하다는 생각까지 드네요. 그러나 죽어서 이런 양지 바른 곳에서 후손들의 손길을 받고 있네요. 그리고 저 같은 한적함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조건을 다 갖추고 있네요. 다른 계절에 또 들려 보고 싶은 삼릉입니다. 대중교통이 없어서 한참 걸어가야 하는 점이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서 찾는 사람이 적어서 좋네요. 조선왕릉 분포도입니다. 보시면 서울에 북쪽과 남쪽에 좀 있고 여주에도 있습니다. 파주는 장릉, 삼릉이 있네요. 파주 삼릉은 바람 소리마저 안 들리는 적막하고 한적한 공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