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주부의 미국 여행과 생활 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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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월스트리트(Wall St)의 황소상과 소녀상, 세계무역센터 911 메모리얼과 쇼핑몰 오큘러스(Oculus)

반응형 6월초에 시작해서 두달반 동안 뉴욕시(New York City) 맨하탄에서 진행되었던 지혜의 여름인턴 덕분에, 우리 부부는 6월과 7월에 모두 당일치기로 두 번 뉴욕을 잠깐 구경했었다. 그리고 지혜가 인턴을 마치는 8월의 주말에 맞춰서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누나 가족이 처음으로 뉴욕여행을 하기로 하셔서, 우리도 함께 1박만 하면서 '가이드'를 해드기로 했던 것이다. 도착하신 일요일 저녁에는 요즘 가장 인기있는 전망대에 올라가서 야경을 구경했고, 다음날 오전에 페리를 타고 자유의 여신상을 갔다가 이제 로워맨하탄(Lower Manhattan)으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할 차례이다. 우리집 3명은 이 날 오후에 차를 몰고 버지니아의 집으로 먼저 돌아갔기 때문에, 이 포스팅이 당분간은(?) 위기주부가 보여드리는 뉴욕의 마지막 모습이 되지 싶다. 페리에서 내려 사람들을 따라 걸어 나오면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작은 공원인 볼링그린(Bowling Green)이 나오고, 그 정면에 1907년에 만들어졌다는 멋진 건물이 서있다. 안에는 스미소니언 재단에서 무료로 운영하는 국립 인디언박물관(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의 뉴욕별관이 있지만, 시간이 없는 관계로 내부 구경은 또 다음을 기약하고 공원 건너편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운타운의 빌딩에 둘러싸인 작은 공원의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들 너머로 관광버스와 인파가 가득 몰려있고, 그 가운데에 뭔가가 반짝거리며 우뚝 솟아있는 것이 보인다.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반짝이는 커다란 물체는 황소의 엉덩이였다~ 그 아래에 노랗게 더 반짝이는 '쌍방울'에 양손을 갖다데고 사진을 찍으신 분이 막 일어나시는 참인데, 그런 포즈로 자신도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왼편에 만들어져 있었다. 별도로 또 오른편에도 철제펜스 너머로 만들어진 줄을 지나서 앞쪽으로 가보면, 세계금융의 중심인 맨하탄 월스트리트(Wall Street)의 상징이 된 유명한 '돌진하는 황소(Charging Bull)'를 볼 수 있었다. 이 황소상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져서 우여곡절 끝에 뉴욕시를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잡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2011년 여행기에 설명이 나와있다. 저 때 10여년 전에는 황소상 주변에 펜스도 없고 줄도 없어서, 낮에는 무조건 저렇게 '단체사진'만 가능했던 기억이고, 클릭해서 보시면 황소에 올라타고 안 내려오는 사람들도 있고 그랬었다. 지금은 주변에 펜스가 쳐져서 독사진을 찍는 것이 가능하지만, 많이 기다려야 해서 우리 일행은 황소뿔을 잡고 사진을 찍는 것은 생략했다. 뾰족한 교차로 모퉁이에 이렇게 너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위험성 때문에, 2019년에 뉴욕시에서 안전을 위해 다른 위치로 옮기려고 했지만, 30년 이상 전시된 이 자리에 계속 남아있기를 바란 조각가의 의견에 따라 철회되었다. 그런데 작년 2021년에 그 이탈리아 조각가가 80세의 나이로 고향 시칠리아에서 숨졌기 때문에,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상황이란다.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은 후에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는 모녀가 서있는 곳은 브로드스트리트(Broad St)이고, 이 길이 교차하는 월스트리트(Wall St)와 만나는 모퉁이에 저 성조기가 걸려있는 건물이... 월가를 대표하는 뉴욕 증권거래소(New York Stock Exchange, NYSE)로 빌딩의 전면만 커다란 돌기둥을 세워 신전처럼 보이게 1903년에 만들어서 국가유적으로도 지정되어 있다. 그런데 이 건물의 정면사진을 찍는 위기주부 옆에 왠 작은 소녀 한 명이 당돌한 자세로 서서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뉴욕 월가의 용감한 소녀상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원제를 직역하자면 '겁없는 소녀(Fearless Girl)'인 이 조각은 원래 2017년 3월에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서 앞서 소개한 황소상을 마주보는 위치에 처음 세워졌다. 하지만 황소의 돌진, 즉 주식시장의 상승을 막는 것 같다는 의견과 황소상을 부정적으로 보이게 한다는 조각가의 항의에 따라서 2018년 11월에 현재의 이 위치로 옮겨졌다. "앞으로 이 곳은 내가 접수한다!" 이 소녀상이 남성 중심의 월가 금융계에서 여성 참여의 확대와 승진에서의 성평등을 주장하는 의미의 조형물로 만들어진 것은 맞지만, 제작을 후원한 곳이 성별다양성지수(Gender Diversity Index)가 높은, 즉 쉽게 말해서 여성 임원이 많은 상장사에 투자하는 인덱스펀드를 운용하는 나스닥 투자회사라는 점에서, 공공예술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도 따른다고 한다. 여기서 월스트리트 바로 건너편에... 황소상과 소녀상에 밀려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미국의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동상이 정면에 세워져 있는 페더럴홀 국립기념관(Federal Hall National Memorial)이 자리잡고 있다. 정면 입구는 보수중이었기 때문에 뒷문으로 잠깐 들어가서 구경해보기로 했다. 지금의 그리스 신전과 같은 건물은 1842년에 세관(Custom House)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건물이 세워진 장소가 가지는 의미이다. 원래 이 자리에는 1703년에 만들어진 뉴욕 시청(City Hall)이 있었는데, 미국 독립 후에 뉴욕이 미국의 수도이던 1785~1789년 기간에 국회가 열렸고, 1789년에 워싱턴이 대통령 취임선서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시청은 1812년에 완전히 철거가 되고, 지금의 이 건물이 새로 들어선 것이다. 월스트리트는 맨하탄을 남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하는 도로인 브로드웨이(Broadway)를 만나면서 끝나고, 그 건너편에 서있는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라는 트리니티처치(Trinity Church)를 잠깐 바라보고는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더 가까이 다가가면 광각으로도 사진에 다 들어오지 않는, 전체높이 1,776피트(541.3 m)의 원월드트레이드센터(One World Trade Center, 1WTC)의 사진을 한 장 찍고는 그 아래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안내판에 그려진 파란색 정사각형 두 개가 911테러로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서있던 자리이고, 지금은 그 자리에 두 개의 정사각형 연못이 대신 만들어져 있는... 국립 911메모리얼(National September 11 Memorial) 또는 '그라운드제로(Ground Zero)'에 들어선 것이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남쪽 타워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사우스풀(South Pool)인데, 그냥 추모의 의미로 흑백으로 올려본다~ (마침 여기 그라운드제로를 방문했던 여행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날이 911테러가 발생한 지 정확히 21주년!) 연못의 정사각형의 테두리를 둘러싼 사방에서 쏟아진 눈물이 모여서 다시 한가운데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직접 들려드리기 위해서 찍은 짧은 동영상을 클릭해서 보실 수가 있다. 911박물관이 추모공원 안에 만들어져 있는데, 우리 일행은 시간이 빠듯한 관계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참고로 박물관은 유료로 운영되지만 매주 월요일 아침 7시에 그날 오후 3시반에 입장하는 한정된 수량의 무료 티켓을 온라인에서 선착순으로 예약이 가능하다고 한다. NYPD 경찰차들만 서있는 도로 건너편으로 이제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뉴욕의 명소가 등장을 해주셨다. 여기서 봐서는 하얀 생선가시처럼 보이지만, 노스풀(North Pool) 너머 멀리에서 보면 양쪽으로 날개를 펼친 하얀 새처럼 보인다고 하는 세계무역센터 교통허브(Transportation Hub)로 2016년에 만들어진 쇼핑몰 겸 지하철 역사인 오큘러스(Oculus)이다. 회색의 고전적인 빌딩들 아래의 공사가림막에 원색으로 그려진 현대적 벽화들을 잠깐 구경하고는 총공사비가 40억불, 한국돈으로 5조원 이상이 들어가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전철역이라는 오큘러스 안으로 들어갔다. 스페인의 건축가이자 구조공학자인 산티아고 칼라트라바(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타원형의 내부는 한마디로 엄청났다! 뉴욕시의 지하철 노선 5개와 허드슨 강 건너의 뉴저지와 연결되는 PATH의 환승역인 동시에 웨스트필드(Westfield) 쇼핑몰이 만들어져 있지만, 여기서 바라본 느낌은 오히려 초현대식 신전이나 예배당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아내와 지혜는 둘만의 2017년 크리스마스 시즌 뉴욕여행에서 벌써 와봤던 곳이라서 두번째 방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거대한 역사(station)는 911테러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역할도 하는데, 양쪽의 구조물 사이에 만들어진 천정의 좁고 긴 유리창이 그러한 장치이다. 매년 9월 11일 오전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한 8:46분부터 두번째 타워가 무너져 내린 10:28분까지의 그 사이 동안에 태양이 정확히 저 슬릿을 통과해 바닥 중앙에 일직선의 햇빛을 비추도록 설계되어서, 항상 덮여있는 천정의 유리창을 9월 11일에만 딱 한 번 열어 놓는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온 누나 가족 4명은 뉴욕에 하루 더 숙박하면서 저녁에 뮤지컬도 관람하고, 다음 날 센트럴파크와 현대미술관도 구경을 하기로 해서, 우리집 3명만 여기서 전철을 타고 숙박했던 호텔 건너편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아서 버지니아 집으로 먼저 돌아갔다. 이것으로 작년에 미동부 DC 지역으로 이사를 온 후에 아껴두었던 뉴욕을 6~8월 동안 3번 방문한 총 6편의 여행기록이 끝났고, 아마도 내년 여름 전까지 뉴욕이 다시 위기주부의 블로그에 소개되는 일은 없을 듯 하다. 내년 여름에 다시 뉴욕을 꼭 방문하게 되는 이유는... 저 위쪽의 작은 사진에 엄마와 함께 주황색 쟈켓을 입고 황소상의 콧구멍을 만지고 있던 꼬맹이가, 내년 대학교 졸업후에 첫번째 풀타임 직장생활을 뉴욕 맨하탄에서 시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캔사스 외딴 시골집에 사는 도로시를 만나보자~ 와미고(Wamego)에 있는 오즈 박물관(OZ Museum)

반응형 미국에 이사와서 가끔 배달이나 우편이 뜬금없이 캔사스(Kansas) 주에서 오는 경우가 있어 알아보니까, 거기가 미본토의 가운데라서 미국전역에 골고루 물건을 보내기에 좋은 위치라는 설명이 있었다. 실제로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제외한 48개주가 붙어있는 땅덩어리의 '지리적 중심(geographic center)'이 캔사스 북쪽의 레바논(Lebanon)이라는 작은 마을 부근이다. 대륙횡단 여행계획을 세우며 참고했던 950페이지의 미국여행가이드에 캔사스 주는 딱 2면을 할애해 가장 큰 도시인 위치타(Wichita)만 관광지로 소개가 되어있을 뿐이라서, 그 미본토의 중심이라는 이정표라도 일부러 찾아가봐야 하나 고민이 될 지경이었다. 2차 대륙횡단의 9일째, 대평원 위로 떠오르는 아침해를 I-70 고속도로에서 바라본다. 콜비(Colby)의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IHOP을 찾아가서 아침을 먹었는데, 손님이 우리 부부 빼고는 전부 컨테이너 트럭의 운전기사들이었던게 기억난다. 대도시인 위치타와 시골 마을인 레바논 모두 I-70에서 많이 떨어져서 가볼 수가 없었고, 대신에 간밤에 아내가 찾아낸 흥미있는 관광지를 가보기로 하고, 아침을 잘 먹은 후에 70번 고속도로를 4시간 가까이 쉬지않고 동쪽으로 달렸다. 1900년에 출간된 동화책인 The Wonderful Wizard of Oz는 "캔사스 외딴 시골집에..."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정확한 마을의 이름은 책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주도 근처의 시골인 여기 와미고(Wamego)에 살던 Todd Machin이 자신의 수집품으로 2003년에 오즈 박물관(OZ Museum)을 처음 만들었고, 이후에 다른 수집가들로부터 기증도 받아서, 지금은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련물품을 소장하고 있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단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커다란 양철 나무꾼 옆의 창구에서 다른 커플이 입장권을 사고 있다. 우리도 저들과 함께 직원으로부터 박물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에 내부로 들어가서 자유롭게 구경을 하게된다. 녹색 조명의 글자가 비추는 입구를 지나면, 제일 먼저 강아지 토토를 안고있는 도로시를 만나게 된다. 캔사스 외딴 시골의 '초가이간' 앞에 서있는 도로시인데 심하게 좀 연세가 들어보이신다... 그런데, 오른쪽에 서있는 키작은 분은 누구신지? 작가인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초상이 보이고 를 비롯해 그가 쓴 다른 동화책들이 전시가 되어 있다. 그는 The Wonderful Wizard of Oz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오즈(OZ)를 배경으로 한 후속편을 13권이나 더 썼으며, 그의 사후에 다른 작가들도 가세해서 총 40권이 정식 스토리로 인정받고 있다. 즉, 지금의 스타워즈나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새로운 판타지 세계관을 만든 최초의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세계의 언어로 번역된 책들도 전시가 되어 있어서 한글판도 4권이나 보이는데, 왼쪽에 펼쳐져 있는 만화책은 도로시와 토토가 집과 함께 회오리 바람에 날라가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20세기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들 중의 하나인 1939년작 영화와 관련된 전시들도 있다. 영화가 미국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은 지대해서, 국립 미국사박물관에 쥬디 갈란드(Judy Garland)가 도로시를 연기할 때 신었던 루비슬리퍼가 넓은 공간에 전시되어 있던 것을 예전에 보여드린 적이 있다. 주요 캐릭터들이 영화속 모습과 최대한 비슷하게 전시가 되어 있는데, 허수아비와 같은 포즈를 취한 위기주부...^^ 빈티지 장난감과 피규어들도 이렇게 미개봉 상태로 전시해 놓았다. 약간 무서워 보이는 양철 나무꾼... 아마도 하트(heart, 심장? 마음? 양심?)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제일 안쪽에는 영화 포스터가 붙어있는 작은 극장을 만들어 놓고, 오리지널 영화의 장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노부부 두 분이 뚝 떨어져서 오랫동안 영화를 보고 계셨다. 와이드 16:9 영상도 있을텐데, 왜 4:3 화면을 틀어 놓았을까? 이번에는 우리집 용감한 아내가 겁쟁이 사자의 모습을 따라하고 계시다. 2015년에 LA에서 봤던 뮤지컬 Wicked에서는 주인공이었던 서쪽의 마녀 엘파바(Elphaba)와 그녀가 부리는 날개달린 원숭이의 모습이다. 참고로 위키드 이야기는 원작동화보다는 영화에 기반해서 나중에 창작된 것이며, 마녀의 이름 엘파바는 원작자의 머릿글자인 L.F.B.의 발음에서 따왔다고 한다. 소설에서는 착하게 나오는 남쪽의 마녀 글린다(Glinda)를 본 후에, 녹색의 에머랄드 성으로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러 갔다. 숨어있는 마법사는 만나지를 못하고, 그가 타고왔던 열기구를 타고 우리는 오즈를 떠나 캔사스의 시골 마을로 돌아갔다. 우리가 탄 열기구가 내린 곳은 어김없이 기념품 가게...^^ 판매하는 티셔츠를 저렇게 빨랫줄에 걸어놓은 아이디어가 좋았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하트가 생긴 입구의 양철 나뭇군 따라하기~ (전시장 안의 양철 나뭇꾼은 하트가 없었음) 이렇게 박물관 구경은 마쳤지만, 오즈의 마법사 체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물관을 나가서 맞은 편으로 도로를 건너면... 소설과 영화 속의 '노란 벽돌길' 옐로브릭로드(Yellow Brick Road)가 실제로 만들어져 있다. 길지는 않지만 길의 좌우 벽에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서, 구경하며 걷는 재미가 있었다. 이 마을 이름인 와미고(Wamego)가 씌여진 열기구 그림이 있는 끝까지 걸어본 후에 뒤돌아서 주차한 곳으로 돌아가는 아내의 뒷모습이다. 노란 벽돌에는 누구를 추억하거나 기념하는 글귀들이 적혀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커플셀카를 빼먹을 뻔 해서 마지막으로 벽화 앞에서 한 장 찍고는 다시 차를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참, 캔사스 출신으로 도로시보다 훨씬 유명한 - 사실상 전세계인들이 다 아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슈퍼맨(Superman)' 클라크 켄트이다. DC코믹스 원작에서 슈퍼맨은 미국 캔사스 주의 인구 11만명의 소도시인 스몰빌(Smallville)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스몰빌은 가상의 마을이라서 캔사스 주를 여행해도 찾아갈 수는 없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지혜를 대학교 기숙사에 내려주고, 메인(Maine) 주의 포틀랜드(Portland)까지 하루에 640마일을 운전

반응형 정확히 3년전에 지혜가 대학교 신입생 기숙사에 처음 들어가는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이제는 4학년 졸업반이 되어서 '마지막'으로 다시 기숙사에 바래다 주고 왔다. 신입생 때는 LA에서 비행기로 보스턴에 가서 렌트카로 기숙사에 짐을 넣어 준 후에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누나집과 나이아가라 폭포를 구경했었는데, 이번에는 이틀 휴가를 내어서 버지니아 집에서 차를 몰고 그 위쪽에 있는 메인(Maine) 주를 여행했다. 가을에 일주일 이상 시간을 내어서 뉴햄프셔의 단풍과 캐나다 퀘벡까지 함께 구경을 하면 좋겠지만, 당장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아서 보스턴까지 올라간 김에 뉴잉글랜드(New England) 지역의 내셔널파크 한 곳과 그 주변만 찍고 내려오기로 한 것이다. 위의 지도는 일요일 아침 5시반에 출발한 첫날의 이동경로가 구글 타임라인에 기록된 것이다. 이번에는 유료도로를 최대한 피해서 펜실베니아 주로 우회해서 뉴욕을 지나갔다. 이렇게 하면 뉴욕시를 가는 경우에도 거리가 좀 멀어져 시간은 30분 정도 더 걸리지만, 통행료를 30달러 정도 아낄 수 있어서 아마 바쁘지 않은 경우에는 앞으로 더 자주 이용하게 될 듯 하다. 지난 봄에 처음 보스턴까지 운전했던 경로와 이지패스에 대한 설명은 위를 클릭해서 보실 수 있는데, 코네티컷 주 이후로는 이와 동일한 루트로 이동했다. 이 날 아침에 버지니아 집에서 15번 국도를 따라 메릴랜드 주를 통과해서 펜실베니아 주로 들어설 때쯤 가족 3명의 대화 주제가 "행복하게 살자"였는데, 펜실베니아(Pennsylvania) 주 관광청의 "pursue your happiness"라는 홍보문구가 씌여진 환영간판이 딱 맞춰서 등장을 해주셨다! 인터넷에 다른 깨끗한 사진들도 많았지만, 마침 구글스트리트뷰가 아침 안개가 끼었던 그 때와 가장 비슷한 것 같아서 그대로 캡쳐를 했다. 펜실베니아 주도인 해리스버그(Harrisburg)에서 인터넷으로 찾은 여기 토마토파이카페(Tomato Pie Cafe)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3명의 아침 메뉴를 함께 찍은 사진으로 모든 음식이 싸고 맛있어서, 이 경로로 또 뉴욕이나 보스턴을 가게 된다면 아마 앞으로도 계속 이용하게 될 것 같다. 그 다음은 달리고, 기름 넣고, 달리고, 간단히 점심 먹고, 또 달려서... 오후 3시반 정도에 지혜가 하버드에서 마지막 대학생활을 할 기숙사인 레버렛 하우스(Leverett House)에 도착을 했다. 씩씩하게 두 개의 캐리어를 끌고 6층의 자기 방으로 향하는 지혜와 뒤를 따라 가는 엄마의 뒷모습~ 이 넓은 방을 혼자 쓰는데 바닥을 이번에 새로 깔아서 아주 깔끔했고, 커튼을 친 창밖으로는 보스턴을 가로지르는 찰스 강(Charles River)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도 좋았다. 지혜는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의 수다가 급했고, 우리 부부는 또 갈길이 남았기 때문에, 짐들은 혼자 풀어서 정리하는 것으로 하고 바로 쿨하게 작별했다. 네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데로 힘들게 시내를 벗어나서, 다시 인터스테이트 95번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니 위기주부는 처음 만나는 새로운 주가 등장을 해주셨다.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퀘벡과 접해 있어서, 환영 단어가 불어로도 씌여있는 뉴햄프셔(New Hampshire)인데, 제일 아래에 적혀있는 "LIVE FREE OR DIE"라는 주의 모토(motto)가 무시무시하다... 유명한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구호는 프랑스 혁명부터 등장했지만, 뉴햄프셔 출신의 미국 독립전쟁 영웅인 John Stark 장군이 전승기념식에 보낸 편지의 말미에 이 문구를 쓴 것을 기념해 1945년에 공식적으로 주표어로 채택되어서, 뉴햄프셔 주 자동차 번호판에도 모두 들어가 있다. 뉴햄프셔에 관해 하나만 더 소개하면, 고속도로에 이렇게 리커스토어(liquor store) 표지판을 큼지막하게 붙여 놓은 것이 특이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소비세(sales tax)가 없는 5개주 중의 하나라서 인접한 다른 주들보다 싸게 술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뉴햄프셔는 주소득세(state income tax)가 없는 9개주 중의 하나이기도 해서, 일반적으로 알래스카와 함께 소비세와 소득세가 모두 없는 주로 유명하단다. (알래스카는 카운티에서 약간의 소비세를 부과하는 곳이 있고, 뉴햄프셔는 이자와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세금을 내야함) 95번 고속도로를 그대로 조금만 더 달리면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미국의 북동쪽 끝에 있는 메인(Maine)이 나오는데, 단순한 환영간판 아래의 씌여진 "The Way Life Should Be"는 메인 주의 홍보 슬로건이란다. 처음 방문하는 주니까 간단히 역사를 살펴보면, 1820년에 미주리 협정에 따라서 메사추세츠에서 분리되어 미국의 23번째 주가 되었다. 따라서 미국 독립전쟁 당시 별도의 공화국이었던 버몬트(Vermont)와 함께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13개 식민지'에 포함되지 않는 주이다. 주도는 사진 왼쪽의 표지판에 희미하게 보이는 내륙의 어거스타(Augusta)이지만, 이제 우리가 저녁을 먹기위해 들리는 곳은 그 전에 나오는 메인 주 최대의 도시로 바닷가에 있는 포틀랜드(Portland)이다. 포틀랜드 관광의 중심인 구시가지 올드포트(Old Port)에 도착한 것은 저녁 6시가 넘어서였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19세기에 만들어진 붉은 벽돌집과 자연석을 깍아서 바닥에 깐 도로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유럽의 어느 오래된 항구를 방문한 느낌이었다. 저녁을 먹기로 한 Street & Co. 해산물 식당에 빈자리가 없어서, 길가의 야외 좌석을 7시에 예약하고는 바닷가쪽으로 걸어 나가보았다. 손님들이 아주 많았던 랍스터 전문 Portland Lobster Company 야외 식당의 입구 모습이다. 미국인들이 메인(Maine)하면 깡촌, 추위, 캐나다 옆 동네, 그리고 랍스터를 떠올린다고 하는데, 이번 우리 부부의 메인주 여행도 정말 랍스터로 시작해서 랍스터로 끝났다~^^ 작년에도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 근교의 로이무어 랍스터(Roy Moore's Lobster)를 먹은 적이 있는데 (포스팅을 보시려면 클릭), 이번에는 기록을 위해서 여기 메뉴판 사진 한 장을 남겨둔다. 올해 메인 주 여행기 전체가 끝날 때 쯤에는 아마도 '뉴잉글랜드에서 랍스터 싸게 사먹기'에 관한 논문이 한 편 나올지도 모르겠다. ㅎㅎ 구시가지 바닷가에는 이렇게 요트들만 정박해 있지만, 외곽의 큰 부두는 뉴잉글랜드 지역에서 두번째로 물동량이 많은 항구로 캐나다에서 파이프라인으로 운반된 원유도 수출하고 대형 크루즈 유람선도 정박을 한단다. 참, 도시의 이름은 영국 남단의 포틀랜드 섬(Isle of Portland)에서 유래했고, 혼동하기 쉬운 미서부 오레곤 주의 포틀랜드는 이 곳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하니, 여기가 미국에서는 '원조 포틀랜드'인 셈이다. 저녁 식사로 랍스터와 다른 해산물이 함께 들어간 Lobster Diavolo와 로컬 맥주도 한 병 곁들였다. 랍스터와 조개는 맛있었지만 아래에 깔린 면은 너무 짜서 많이 먹지를 못했고, 남은 것은 포장해서 다음 날 국립공원 피크닉 장소에서 점심으로 한 번 더 먹어야 했다. 이렇게 전체 3박4일 여행의 첫날 일정을 마무리하고 조금 더 북쪽의 1번 국도 선상에 있는 호텔에 도착해 마지막으로 차의 계기판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다. 하루만에 총 11시간여를 운전하면서 차례로 버지니아, 메릴랜드, 펜실베니아, 뉴욕, 코네티컷, 메사추세츠, 뉴햄프셔, 메인의 동부 8개 주를 지나온 거리는 총 640마일(1,030 km)로 작년 대륙횡단에서의 일일 최장거리를 넘어서는 신기록이었다.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라, 진짜 목적지는 다음 날에 메인 주의 꼬불꼬불한 해안을 따라서 북동쪽으로 4시간 정도를 더 운전해서 가야만 나오는 멀고 먼 곳이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뉴욕 배터리파크 캐슬클린턴(Castle Clinton)과 시티크루즈 타고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 구경

반응형 위기주부가 미국 뉴욕을 처음 구경했던 것은 1996년 5월에 보스턴에서 열렸던 학회에 참석할 때였다.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뉴욕을 잠깐 경유했었는데, 그 때 타임스퀘어를 구경하고 엠파이어스테이트 전망대를 올라간 후에, 맨하탄 남쪽에 있다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자고 일행들이 의견일치를 했다. 밤비행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거의 경보하는 수준으로 초여름 늦은 오후의 무더운 뉴욕도심을 1시간반 이상 걸었는데, 당시에 우리는 맨하탄의 남쪽 끝까지 걸어만 가면 커다란 여신상이 거기에 그냥 우뚝 서있을 줄 알았지, 배를 타고 건너가야하는 섬에 세워져 있는건지 몰랐었다... (서두가 너무 길어지니까 후속 이야기는 본문에서 계속) 월요일 이른 아침에 숙소인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44번가를 따라 조금 걸어서 타임스퀘어에 다시 왔다. ABC방송의 아침 프로그램인 굳모닝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 GMA)를 딱 하고있을 시간이었는데, 저기 전광판 아래 스튜디오에 가서 손이라도 흔들어볼걸 그랬나? 아침부터 타임스퀘어를 찾은 이유는 저 유명한 세로 전광판 지나 왼편에 있는 크리스피크림(Krispy Kreme) 매장에서 도넛 2박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호텔방에서 커피와 도넛으로 간단히 식사를 한 후에, 누나 가족과 함께 우리 7명은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 남쪽 끝의 배터리파크(Battery Park)에 도착을 했다. 서두의 26년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어두워진 후에 겨우 도착했던 곳도 아마 이 부근이었을건데, 그 때 여기서는 바다 건너 작게 겨우 보이는 저 자유의 여신상이라도 제대로 봤던지 아닌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겨를도 없이 모두 황급히 지하철을 타고 어떻게 해서 JFK 공항으로 갔었는데, 그 때 황당한 맨하탄 종주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힘들게 걸을 때 둘이 딱 붙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누던, 위기주부의 연구실 동료와 다른 회사에서 출장 왔던 여성분이 몇 년 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배터리 공원에는 동그란 성채인 캐슬클린턴 내셔널모뉴먼트(Castle Clinton National Monument)가 있다. 1812년 영국의 침입에 대비한 요새로 처음 만들어졌다가, 전후에 차례로 정원과 공연장 (1823-1854), 미국 입국심사장 (1855-1890), 뉴욕시 수족관 (1896-1941)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 후 1946년에 두번째 브루클린 다리 건설을 위해 철거가 진행되는 도중에, 다리 대신에 해저터널을 건설하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면서, 현재의 외벽만 겨우 남아있는 상태로 준국립공원에 지정되었다. 우리는 배표를 미리 예약을 했기 때문에, 캐슬클린턴 안에 있는 매표소를 들리지 않고 바로 엄격한 보안검색을 통과한 후에 여기 부두에서 우리가 탈 페리를 기다렸다. 10여분 정도 기다려서 들어온 레이디리버티(Lady Liberty) 시티크루즈에 탑승을 해서 제일 위 3층의 뒷꽁무니에 자리를 잡았다. 간발의 차이로 배를 놓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든다. "빠이빠이~ 좀 더 서두르지 그랬어..." 왼쪽의 하얀 가건물이 보안검색 시설이고, 그 옆으로 캐슬클린턴의 동그란 외벽이 보인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잠시 후 맨하탄 마천루의 스카이라인이 한 눈에 들어오고, 벌써 20년도 더 흘렀지만 아직도 쌍둥이 빌딩의 빈 자리가 느껴진다... 맨하탄에서 떠나는 배는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으면, 이렇게 완벽한 구도의 인물사진을 쉽게 찍을 수가 있다.^^ 날씨도 좋고 배 위에서 사진을 참 많이 찍었지만, 그냥 한 바퀴 돌아본 비디오를 올려드리니 클릭해서 보실 수 있다. 맨하탄을 시작으로 허든슨 강 건너의 저지시티(Jersey City), 그 앞쪽의 엘리스 섬(Ellis Island), 자유의 여신상, 그리고 배 위의 많은 사람들, 브루클린과 다시 맨하탄 순서로 360도 감상하실 수 있다. 작은 리버티 섬(Liberty Island)의 높은 석조기단 위에 우뚝 서있는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Liberty)을 지혜와 조카들이 바라보고 있다. (제일 왼쪽은 다른집 아이) 특이한 것은 섬을 둘러싼 바다는 뉴저지(New Jersey) 주에 속하고, 땅은 뉴욕(New York) 주에 속하지만, 섬 전체가 일찌기 1924년에 내셔널모뉴먼트(National Monument)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땅의 소유권은 연방정부에 있다. 포스팅의 주인공이시니까 예의상 정면 독사진 한 장 찍어서 올려드린다. 우리 가족 3명은 2011년 봄방학 미동부 여행에 이어서 두번째로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아일랜드를 직접 방문하는 것이었다. "자유의 아줌마, 그 동안 잘 계셨어요?" 선착장이 섬의 뒤쪽에 있기 때문에, 배가 이렇게 뒤로 돌아가면 맨하탄을 배경으로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을 조망할 수도 있다. 한 쪽 발의 뒷꿈치가 들려있는 이유는 횃불을 들고 앞으로 전진하는 모습을 형상화했기 때문이다. 오전 11시 정도였는데 벌써 구경을 마치고, 우리가 타고 온 배로 돌아가려는 사람들로 선착장이 가득했다. 이 배는 저 사람들을 태우고 이민 박물관이 있는 엘리스 섬을 거쳐서 다시 맨하탄으로 돌아가게 된다. 태양을 들고 서있는 것 같은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저 발밑까지 올라가보기 위해서 기단 안에 만들어진 건물로 들어갔는데, 입구에서 한 번 더 보안검색을 거쳐야 한다. 발판(Pedestal)까지 195개의 계단을 걸어서 올라갈 것이냐? 아니면, 한 번에 4명만 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것이냐? 참고로 현재는 동상의 몸속을 지나서 왕관(Crown)까지 올라가는 것은 중단된 상태이다. 수면 위로 27미터 높이의 발판 전망대에서 바라본 뉴욕 맨하탄(Manhattan)과 뉴저지 저지시티(Jersey City)의 고층건물 풍경이다. 왼쪽에 빨간 지붕의 낮은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이 1892-1954년 동안에 배를 타고 온 이민자들의 입국심사와 수용시설이 있었던 엘리스 섬으로 1천2백만명 이상이 저기를 통해 미국에 들어왔단다. 계단으로 내려오는 중간에 이렇게 밖으로 다시 나와서, 부녀가 함께 오른손을 높이 들고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으로 반대편 선착장 부근에 있는 2019년에 문을 연 최신의 저 박물관을 구경할 차례이다. 옛날에는 기단 안의 어두운 중앙홀에 있던 오리지널 횃불이 여기 새 박물관에서 자연광을 받으며 놓여져 있고,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여신의 무서운 얼굴도 여기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모녀가 2011년과 똑같은 포즈로 다시 사진을 찍어서 그 때 모습과 합쳐 봤는데, 모녀의 좌우 위치가 바뀐 것까지는 미처 고려를 못했다.^^ 이것으로 자유의 여신상 구경은 마치고 돌아가는 시티크루즈를 탔는데, 우리는 배도 고프고 시간도 부족해서 엘리스 섬에는 내리지 않고 바로 맨하탄으로 돌아갔다. 정오의 땡볕 아래에서 우리가 타고 온 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안검색장까지 부두에 가득 차 있었다. 오후로 갈 수록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져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므로, 뉴욕 맨하탄쪽에서 리버티 섬으로 향하는 배를 타실 계획인 분들은 가능한 아침 일찍 출발하는 표를 사전에 예매하시는 것을 꼭 권해드린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

백악관을 포함하는 프레지던트파크(President's Park)와 1차세계대전 기념물(World War I Memorial)

반응형 한국에서는 올해 당선된 새로운 대통령이 청와대를 공원으로 만들어서 "국민들에게 돌려줬다(?)"고 하던데, 미국의 워싱턴DC에 있는 화이트하우스(White House), 즉 백악관은 1800년에 완공된 이후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POTUS)의 집무실 겸 관저로 현재도 계속 사용되고 있다. 비록 일반인은 철제 담장 밖에서 그 건물의 앞뒤 모습만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백악관을 포함한 주변 지역은 프레지던트파크(President's Park)라는 이름의 공원으로 이미 지정이 되어서 국립공원청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유닛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원' 영역을 보여주는 지도로, 우리는 2011년 봄방학 동부여행 때부터 남쪽 타원형의 넓은 잔디밭인 Ellipse에서 백악관의 남쪽 모습은 여러 번 봤지만, 더 가까이 보이는 북쪽 정문의 모습은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지하철을 타고 Farragut West 역에서 내린 후에, 먼저 지도 좌측상단에 작게 표시된 렌윅갤러리(Renwick Gallery)를 구경했고, 이제 백악관이 주소를 둔 펜실베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nue)를 따라 걸으며 구경을 하는 것이다. 백악관 서쪽에 있는 아이젠하워 행정동(Eisenhower Executive Office Building)은 1888년에 완공되어서, 1943년에 펜타곤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사무실 건물이었단다. 처음에는 국무부/전쟁부/해군이 사용했지만 지금은 대통령실 부서들과 부통령 집무실이 입주해 있다. 여기를 거쳐간 많은 부통령과 대통령들을 다 제치고 아이젠하워의 이름을 붙인 이유는, 그가 육군에 복무하며 1927년부터 1935년까지 가장 오랫동안 이 건물에서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안내판의 씌여있었다. 백악관을 마주보고 있는 라파예트 공원(Lafayette Park)의 네 귀퉁이에는 미국 독립전쟁에 기여한 4명의 외국인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제일 먼저 소개하는 남서쪽의 동상은 미국독립을 도왔던 프랑스 원정군의 최고사령관이었던 로샹보 백작(Comte de Rochambeau)이다. 여기서 오래간만에 '알쓸미잡' 하나... 샌프란시스코를 중심으로 북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 가위바위보 게임을 '로샴보(Roshambo, Ro-Sham-Bo)'라고 불러서, 이 프랑스의 장군이 가위바위보를 미국에 처음 전파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고, 일본 사람들이 '짱껨뽀(Jan-Ken-Po)'라 부르며 전파한 것이 미국 역사책에 나오는 비슷한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얀집'의 북쪽 정문이 철제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행동 순서는 모두 똑같다. 일단 중앙까지 걸어와서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한 장 찍어주고, 그 사람들이 나오면 핸드폰을 건네주고 이번에는 우리 사진을 부탁한다.^^ (구글맵으로 위치를 보시려면 클릭) 그리고는 난간 사이로 핸드폰을 갖다 대고는 백악관의 독사진을 한 장 더 찍는다. 이 때 손이나 카메라가 담장 안쪽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특히 커다란 DSLR 카메라같은 물체가 담장 안으로 많이 들어가면, 주변에 관광객들 사이에 섞여있는 사복 비밀경찰의 제지를 받는다는 소문이 있다. 오른쪽 제일 앞에 혼자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콧수염 아저씨가 왠지 비밀경찰같아 보이는데... 아니면 말고, 그 분이 입고 있는 스타워즈 티셔츠가 마음에 든다~^^ 이 곳에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41년째 여기 백악관 바로 앞에서 핵전쟁 반대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저 분이었는데, 어떻게 보안구역 안에서 텐트를 치고 노숙하면서 시위를 이어갈 수 있는지가 참 궁금했다. 한 번 물어볼 걸 그랬나... 이렇게 백악관 정면을 바로 마주보고 있는데, 노란 도화지에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라는 한글 구호도 씌여있었다. 조사를 해보니까 White House Peace Vigil은 1981년에 William Thomas가 시작했는데, 그가 2009년에 사망한 후에는 Concepción Picciotto라는 여성이 2016년에 죽을 때까지 이어갔단다. 그 후로는 여러 참가자들이 24시간 돌아가면서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사람이 없으면 당국에서 시설을 철거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라파예트파크(Lafayette Park)의 중앙에는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이자 20달러 지폐의 모델인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의 기마상이 자리잡고 있다. 소위 미국 최초의 '흙수저' 출신 대통령으로 잭슨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를 정립한 업적이 있지만, 100명 이상의 흑인노예를 소유하고 인디언 강제이주를 잔인하게 주도한 문제로 평가가 엇갈리는 편이다. 공원의 북동쪽 귀퉁이에는 미국독립에 기여한 외국인으로 폴란드의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Tadeusz Kościuszko)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는 공병장교로 독립전쟁에 지원해서 웨스트포인트 방어와 사라토가 전투 등에서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북서쪽에는 지난 봄 밸리포지(Valley Forge) 국립역사공원 여행기에서 잠깐 언급했던 프러시아 출신의 슈토이벤 남작(Baron Steuben)의 동상이 있는데 사진을 찍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남동쪽에는 넷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그래서 이 공원의 이름이기도 한 프랑스의 라파예트 후작(Marquis de La Fayette)이 멋진 모습으로 서있다. 그는 사실상 미국 독립전쟁에서 프랑스의 지원을 이끌어 낸 결정적 인물로, 마지막 요크타운 전투에서 그의 활약상을 뮤지컬 에서 봤던 추억이 떠오른다~ 여기가 '펜실베니아 애비뉴 1600번지' 주소인 집의 정문이다. 무장한 비밀경찰이 지키고 있는 것과 문짝에 '별이 다섯개' 그려진 것만 빼면, 사실 이 정도 입구의 저택은 미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다. ㅎㅎ 백악관 동쪽에는 1869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완공된 미국 재무부(Department of the Treasury) 건물이 우뚝 서있다. 사진의 동상은 제퍼슨의 지명으로 13년 가까이 재무장관을 지냈던 앨버트 갤러틴(Albert Gallatin)으로 지금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 NYU)의 설립자이기도 하단다. 재무부 건물을 끼고 돌아서 남쪽으로 내려오면 펜실베니아 애비뉴(Pennsylvania Avenue)가 직선으로 국회의사당까지 뻗어있는 것이 보인다. 대통령 취임식 등의 국가적인 행사가 있을 때 퍼래이드가 벌어지는 이 도로 자체도 국가유적지로 지정되어 있지만, 이렇게 바라보기만 해서는 방문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으니까, 다음에는 저 시계탑을 꼭 올라가봐야 겠다. 그리고 양방향 차선의 가운데에 만들어진 오른쪽 나무들이 있는 공원이 또 독립적인 국가기념물이다. 원래 이 곳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군을 이끌었던 John J. Pershing 장군을 기념하는 퍼싱 공원(Pershing Park)으로 1980년대에 만들어졌다가, 2014년에 공식적으로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기념관(World War I Memorial)으로 변경되었다. 기다란 석조물의 뒷면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미국 시인 Archibald MacLeish의 헌정시가 씌여있고, 추모 기념물에 빠질 수 없는 연못을 향하는 앞면에는 "The Weight of Sacrifice"라는 제목의 조각이 미국의 참전 100주년이던 2017년부터 만들어지고 있다. 집을 떠나서 유럽의 전쟁에 참여했다가 돌아오는 군인의 모습을 38개의 인물상으로 표현을 하는데, 현재 그림으로 가려진 부분까지 모두 완성이 되는 것은 빨라야 내년말이라고 한다. 워싱턴DC 중심의 프레지던트파크(President's Park) 구경의 마지막으로 파란색 차양이 눈에 띄는 백악관 방문자센터(White House Visitor Center)를 들렀지만 이 날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아 이렇게 밖에서 구경만 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에 누나 가족과 함께 3일간 DC를 구경하면서, 첫날 비지터센터 내부를 구경했던 사진 한 장을 아래에 마지막으로 보여드린다. 보안검색을 거쳐서 내부로 들어오면 가운데 백악관의 모형을 중심으로 많은 흥미로운 전시가 있으며, 특히 출구쪽에 있는 가게에서는 백악관 공식 기념품도 구입할 수가 있으므로 시간이 되시면 꼭 방문하는 것을 권해드린다. (화~토요일, 7:30 AM–4:00 PM, 연방 공휴일 제외) 참고로 백악관 경내로 들어가는 내부투어는 현재 미국인은 거주지 국회의원 사무실을 통해서 신청 후에 신원조사를 거쳐서 가능하며, 외국인은 자국 대사관을 통해서 미리 신청을 해야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아래 배너를 클릭해서 위기주부의 유튜브 구독하기를 눌러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