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마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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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posts여행 816일차, 남미 최대의 인디오 시장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
여행 816일차, 남미 최대의 인디오 시장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
여행 816일차, 남미 최대의 인디오 시장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
여행 816일차, 남미 최대의 인디오 시장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에콰도르를 여행한다면 거의 무조건 갈라파고스 제도를 떠올릴 만큼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곳이지만 나는 부족한 시간, 돈으로 인해 포기하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했다. 다음 목적지는 콜롬비아로 넘어가기 전 잠깐 들린 오타발로(Otavalo)였다. 키토에서 오타발로행 버스를 타려면 북쪽에 있는 터미널로 가야 했다. 도시 구조가 길게 늘어져 있는 형태라 가는 데만 1시간이 걸렸다. 터미널에 도착해 보니 지역별 버스 회사가 엄청나게 많은지 간판이 많이 보이고, 직원들은 좁은 공간에서 상반신만 쭉 내밀고 영업을 하고 있다. 버스 회사는 트란스 오타발로(Trans Otavalo)였고 2.5달러였다. 오타발로까지는 약 2시간 정도 걸렸다. 오타발로에 도착해 일단 숙소로 향했다. 빈센트가 오타발로에 있을 때 지냈던 곳이라며 알려줬는데 호텔 예약사이트에는 나오지 않았다. 체크인을 하고 보니 빈센트가 왜 여기로 가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10달러짜리 저렴한 숙소인데 침대가 3개나 놓인 커다란 방을 나 혼자 썼다. 사람이 많으면 도미토리로 운영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아무도 없었다. 옥상에 올라갈 수도 있었다. 탁 트인 풍경은 아니지만 뒤에 높은 산이 자리 잡고 있어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오타발로는 그리 북적이는 도시가 아닌가 보다. 딱히 오타발로에 대해 아는 게 있는 것도 아니라 일단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금 걷다 보니 동네의 중심지로 보이는 볼리바르 공원(Parque Simón Bolivar)이 나왔다. 남미의 큰 도시에서 봤던 거대한 광장에 비하면 아담한 편이고, 사람도 많지 않아 조용했다. 공원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성당이 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한 후 근처에 있는 동네 끝에 있는 시장을 둘러봤다. 우리나라에서만 돼지 머리를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미에서 저렴하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으면 시장을 찾았다. 오타발로 시장에도 허름해 보이는 현지 식당이 몇 군데 있었는데 바로 점심을 먹은 터라 메뉴만 구경했다. 정육점과 야채 코너가 있다. 산딸기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0.5달러에 한 주먹 샀다. 보통 시장이 가장 북적이고 그래서 남미를 여행할 때는 소매치기 위험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오타발로 시장은 무슨 일인지 북적이는 느낌 없이 한적했다. 평소 오타발로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듯했다. 공원으로 돌아오니 아까는 못 봤던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눈에 띄었다. 계절이 반대였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혹독한 추위를 경험했는데 북쪽으로 올라오다 보니 조금은 따뜻한 연말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네를 조금 돌아봤지만 볼거리는 별로 없었다. 오타발로에 대해 몇 번 들었던 적이 있어 나름 관광객이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에콰도르의 전통 옷이라고 해야 할지 돌아다니면 자주 보게 되는데 이렇게 허리가 날씬한 사람이 있으려나? 아무튼 날씬한 사람이 입으면 정말 예쁠 것 같다. 숙소에서 쉬다가 배고픔과 무료함에 밖으로 나갔다. 어두워진 공원에는 여전히 사람이 없었다. 대형 크리스마스트리 근처에 가니 사진을 찍는 가족들이 보였다. 왜 이렇게 심심한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적당히 끼니를 해결할 식당을 찾아 들어가 가장 만만한 '뽀요'를 달라고 했다. 남미에서는 워낙 치킨을 많이 먹으니 아마 내가 가장 먼저 익힌 스페인어는 '뽀요'가 아니었을까. 다음날 떠나기 직전이 되어서야 오타발로는 살아있는 가축을 사고파는 '가축시장'이 유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장이 열리는 날과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가축시장이 열리는 날까지 기다리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인디오들의 일반 시장도 있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시장이 열린다는 곳으로 향했다. 정말로 재래시장이 있었다. 공터에는 벌써 노점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고, 몇 군데는 분주하게 준비 중이었다. 오타발로에 온 이후 한 번도 여기가 관광지라는 느낌을 받지 못했는데 인디오 재래시장에서 여행자들이 흥정하는 모습을 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에콰도르는 남미에서 원주민(인디오) 비율이 유난히 높은 나라이고, 그중에서도 오타발로는 에콰도르의 대표적인 인디오 마을이라고 한다. 때문에 인디오들의 전통적인 의상이나 먹거리, 공예품을 쉽게 볼 수 있는 편인데 그래서 이런 시장이 열리게 된 것 같다. 색깔이 알록달록하고 독특한 무늬나 그림이 있어 기념품으로는 딱이다. 단지 여행이 아직 얼마나 더 남아 있는지 모르는 나에겐 이런 기념품은 짐이다.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가방이 너무 사고 싶어 졌다. 그런데 가방의 모양은 다 비슷해 보여도 색깔과 패턴이 워낙 다양해 마음에 드는 걸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돌면서 가방만 구경했는데도 금방 시간이 갔다. 결국 가방을 사버렸다. 남미의 원주민들이 많은 볼리비아부터 북쪽으로 올라오니 직접 손으로 짠 옷이나 스웨터를 많이 보게 되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가격을 물어보면 그리 싸지 않다. 흥정을 더 해봐야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페루 쿠스코가 가장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그냥 커다란 기념품 가게로 보면 된다. 인디오 시장은 이제 막 열어서 그런지 구경하는 손님은 별로 없었다. 인디오들의 모습이 담긴 그림도 많다. 돌아다니다가 인디오가 그려진 냉장고 자석을 잠깐 구경만 했을 뿐인데 아주머니가 내 손을 꼭 잡으며 1달러를 깎아준다고 강매 아닌 강매를 당했다. 그래도 에콰도르 최고봉인 침보라소 산을 바라보고 있는 인디오의 모습을 누군가가 직접 그린 거라 꽤 마음에 들었다. 어제 갔던 현지 시장과는 정반대의 느낌으로 철저하게 여행자들을 상대하는 시장이다. 에콰도르를 마지막으로 한국으로 간다면 여기서 카펫을 하나 사고 싶다. 가방도 사고, 자석도 샀으니 더이상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국경을 넘어 콜롬비아로 가려면 서둘러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한 바퀴 더 돌아보고 나왔다. 오타발로 시장이 남미 최대 인디오 시장이라고 하는데 낮에 조금 더 북적인다면 분위기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냥 기념품 구경하는 재미로 가보면 될 것 같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커다란 돼지머리가 있는 식당을 보고 곧장 들어가 봤다. 주문을 하기 전에 어떤 음식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오르나도(Hornado)라고 한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말이다. 커다란 돼지머리가 귀엽게 보이까지 했다. 하나 달라고 하니 그 자리에서 이것저것 퍼서 담아줬다. 3달러였다. 고기는 보쌈을 먹는 듯한 부드러운 식감과 바삭한 돼지 껍데기가 있었고, 상큼한 양파 샐러드가 있어 기름진 돼지고기와 잘 어울렸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게 한 끼를 해결한 것 같다.
여행 814일차, 회색빛 도시와 어설픈 적도 박물관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바뇨스를 떠나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Quito)로 향했다. 바뇨스에는 한국인 여행자로 가득했기에 키토로 향하는 버스에 나 말고 한국인 여행자가 3명 더 있었다는 건 그리 놀라운 사실이 아니었다. 아주 잠깐 대화를 이어가긴 했지만 키토에 도착한 후 바로 헤어졌다. 택시를 타고 가겠다는 무리와 달리 나는 버스를 택했기 때문이다. 택시는 20달러나 했지만 버스는 고작해야 0.25달러였다. 키토는 북쪽과 남쪽에 큰 버스터미널이 있다. 바뇨스에서 출발한 버스는 남쪽에 있는 터미널에서 내려다 줬는데 사람들 사이로 배낭을 메고 걸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겨우 마리스칼 수크레(Mariscal Sucre)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일반 버스를 2개 연결한 큰 버스였지만 앉을자리는 없었다. 미리 알았던 숙소를 찾아가 체크인을 하고 밖으로 나와 점심을 먹었다. 빈약한 치킨 한 조각에 콩과 밥이 놓여 있을 뿐이었는데 4달러였다. 키토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무려 2년 전 아르메니아에서 만났던 빈센트와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빈센트는 미국에서 차를 가지고 중미를 거쳐 남미로 내려오고 있었고, 마침내 나와 에콰도르에서 마주치게 된 것이다. 나보다도 오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는 반가움을 더 격하게 표했던 빈센트는 곧바로 축배를 들자고 했다. 그동안 어떤 여행을 했는지 각자의 모험담을 쏟아내느라 맥주 한 병을 해치우는 건 순식간이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국식 프라이드치킨을 파는 식당을 발견해 자연스레 2차를 시작했다. 맥주와 안주가 더 필요했던 우리에게 치킨은 딱이었다. 여행을 하다가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건 정말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다음날 나는 고장 난 휴대폰을 고치러 사설 수리소를 방문했다. 생각보다 전문적인 곳인지 1시간 만에 말끔한 휴대폰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빈센트와 함께 키토를 돌아보기로 했다. 남미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구 시가지에는 스페인 식민지 시절 건축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하늘이 흐려서인지 매연으로 가득해서인지 키토의 분위기는 그리 밝지 않았다. 구 시가지로 가는 도중 보였던 보토 나시오날 대성당(Basílica del Voto Nacional)이 눈에 띄었다. 규모가 크고 중후한 멋이 있어 나름 키토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라 할 수 있다. 특이하게도 성당 외벽에 악어나 재규어(?)와 같은 동물 석상이 있다. 보토 나시오날 대성당 2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성당의 내부나 첨탑을 올라갈 수 있다. 꼭 가봐야 하는 곳 중 하나라고 하는데 그냥 내키지 않았다. 조금 더 걸어가니 키토의 구 시가지가 나타났다. 여행하다 만났던 동생이 키토에서 강도를 만나 칼로 위협도 당하고 가방도 뺏겼던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자연스레 가방 끈을 한 번 더 꼭 죄였다. 플라사 그란데(Plaza Grande)는 구 시가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남미의 다른 도시에 비해 광장의 규모가 작아 보였다. 좀도둑이 많다는 게 사실인지 광장 주변에는 경찰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구 시가지는 시장처럼 번잡해 보이기만 했지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프란시스코 성당 주변은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건물이 몰려 있었지만 무슨 이유인지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빈센트와 나는 아무 곳이나 들어가 봤다. 과거 에콰도르 원주민들의 생활 모습을 담은 그림이나 조각들이 걸려 있어 흥미로웠다. 잠시 휴식을 취할 겸 근처 펍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구석진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몇 개월 간 남미를 여행하다 보니 이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이런 거리가 익숙했다. 낡은 집 사이로 분위기가 좋아 보이는 카페나 식당도 몇 군데 보였다. 키토의 남쪽 언덕 위에는 천사상(Loma El Panecillo)이 있는데 유명한 관광지이자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빈민촌에 위치하고 있어서 걸어서 올라가면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수 없이 들었다. 실제로 보니 확연히 다른 동네 분위기가 느껴졌다. 여행을 하면서 지나고 보니 위험한 동네를 모르고 다녔던 적은 많은데 그렇다고 위험하다는 것을 미리 알고 가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물론 택시를 타고 오를 수 있지만 이날 키토의 날씨가 너무 안 좋았고 빈센트도 별로 가고 싶지 않다고 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회색빛으로 물든 키토는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동행하니 그냥 즐거웠다. 우리의 수다는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저녁에 나와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하고 맥주를 마셨다. 고작해야 2잔 정도 마셨기에 취기가 올라온 것도 아닌데 우리는 동네 한복판에서 셀카를 찍으며 신이 났다. 이렇게 몇 년 만에 예상하지도 못한 곳에서 재회를 하면 가끔은 세계가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다음날 아침을 먹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녔는데 터무니없이 비쌌다. 주변에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꽤 많이 몰려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물가가 꽤 비쌌던 거 같다. 빈센트도 여기 너무 비싸다는 말을 계속하며 일부러 저렴한 곳까지 찾아가자고 했다. 다른 데서는 3달러로 충분히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었는데 여기서는 아침이 10달러가 넘었으니 비싸다는 말이 절로 나올만했다. 스페인어로 적도(Ecuador)라는 뜻인 '에콰도르'에 왔으니 적도 박물관에는 가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빈센트는 오후에 떠날 예정이라 적도 박물관을 다녀오면 다시 볼 수 없을 것 같다며 미리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웠지만 서로의 방향이 다르기에 헤어짐은 당연했다. 아쉬워하지 않았다. 또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겠지. 적도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에서 엄청나게 익숙한 국방색 가방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이었다. 먼저 다가가 인사를 하니 예상대로 적도 박물관으로 가는 중이라고 했다. 잠깐의 동행자가 생겼다. 사실 난 잘 모르고 갔지만 적도 박물관은 두 군데가 있었다. 하나는 '세상의 중앙'이라고 불리는 미타델문도(Mitad del Mundo)로 여기에 기념탑과 적도선이 있다. 그런데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진짜 적도가 이곳이라고 믿고 있는 인디오 적도 박물관(Museo de Sitio Intiñan)이 더 유명하다. 입장료도 4달러로 저렴하고 볼거리도 더 많다고 해서 인디오 적도 박물관으로 갔다. 인디오 박물관이라 그런지 가이드가 나서서 과거 이 적도 부근에서 살았던 인디오들의 독특했던 생활상을 얘기해준다. 가령 다른 부족의 적을 죽인 후 머리를 잘라 가지고 다녔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미라처럼 변한 그 머리를 볼 수 있다. 사람의 머리가 저렇게 작아질 수 있나 보다. 언뜻 보면 잔인해 보이기도 하고, 야만적이라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현재의 기준에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예나 지금이나 남미에서 식용으로 먹고 있는 기니피그(꾸이)가 있다. 실제 모습을 보니 너무 귀엽다. 이런 귀여운 친구들이 남미에서는 별미로 식탁에 오른다니. 부족들이 실제 사용했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이다. 인디오 관련 조형물이 곳곳에 배치돼 있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다. 인디오들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적도 체험이 이어졌다. 적도에 있기 때문에 1년 내내 해시계의 그림자의 방향이 똑같다고 한다. 너무나도 유명한 적도를 기준으로 싱크대의 물 회오리 방향을 관찰했다. 그러니까 적도에서는 물이 그대로 빠진다는 것이고 남쪽에서는 시계 방향, 북쪽에서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물 회오리를 치며 빠진다는 논리다. 오래전에 싱크대의 물이 빠지는 방향은 적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글을 봐서 그런지 시작부터 어설프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다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신기했던 실험 중 하나로 적도에서는 쉽게 할 수 있다는 계란 세우기였다. 여기서 계란을 잘 세우면 일종의 인증서 같은 것을 주는데 난 아무리 시도해도 세울 수 없었다. 근데 상식적으로 적도가 아니더라도 계란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이게 적도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눈감고 적도선을 똑바로 걸어보라고 한다. 당연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균형을 잃으며 빨간 선을 벗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것도 적도와는 관련이 없어 보였다. 나중에 적도 실험에 관한 내용을 찾아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처럼 전부 적도와 관련이 없었다. 적도가 아닌 곳에서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만 단지 자주 해보지 않는 실험일 뿐이다. 물 빠짐과 코리올리 효과(전항력)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빨간 선도 적도가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찝찝하다는 생각보다는 임의로 그어진 적도 위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더 크다는 게 다행이랄까. 야마에게 먹이 주는 것도 언제나 재밌다. 미타델문도 박물관도 그리 멀지 않으니 가봤다. 그런데 굳이 들어갈 필요도 없어 보였고 멀리서 보였던 적도탑이 전부였다. 에콰도르에서 적도 체험은 이렇게 마무리했다. 잠깐 동행했던 한국인 역시 같은 동네에 있는 숙소에서 묵고 있어서 버스를 타고 같이 돌아와 근처 중국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도 특별한 계획이 없다고 하니 이따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아침부터 열심히 걸어 다녀 너무 피곤했던지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했다. 저녁시간에 일어나 한국인 여행자에게 연락을 해봤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몇 시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저녁을 먹으러 나갔고, 숙소로 돌아와서는 베네수엘라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한참이 지나고 난 후 한국인으로부터 연락이 오긴 왔는데 뭔가 씁쓸했다. 깊게 잠이 들었다고, 그리고 저녁을 먹었다니 다행이라고 했다. 그럴 수 있다. 근데 연락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만나자는 말이 나온 것도 아니었다.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생각하는 여행자의 마인드와는 너무도 달랐다. 오랜 경험상 여행지에서 짧은 만남도 길고 긴 인연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경우는 맥주를 마시며 피식 쓴웃음을 지어야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