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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827일차, 메데인이 아닌 '메데진'

하쿠나마타타|2021년 12월 14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살렌토(Salento)를 떠나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Medellin)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뒤였다. 이 도시는 원래 스페인어로 '메데인'이라 부르는 게 맞으나 콜롬비아식 스페인어로는 '메데진'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라고 해도 발음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아르헨티나였다면 '메데쉰'정도 되었으려나? 메데진은 굉장히 큰 도시라고 들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잠시 거리를 걷다 숙소로 돌아와 여러 한국 사람을 만났다. 콜롬비아에도 한국인 여행자가 꽤 많았다. 본격적인 여행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했다. 다만 처음 여행지는 메데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엘 페뇰(El Peñol)부터 가게 되었다. 메데진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철이 있어 버스터미널까지 쉽게 이동이 가능했다. 남미의 다른 버스터미널과 비슷한 풍경이라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여러 버스 회사가 난잡하게 있었지만 엘 페뇰이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확히는 과타페(Guatape)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과타페까지는 약 2시간 걸렸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버스는 엘 페뇰 입구에서 내려줬다. 바로 앞 커다란 바위가 오늘의 주인공 엘 페뇰임을 알 수 있었다. 엘 페뇰 입장료는 18,000페소였다. 이제부터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높고 지그재그로 계단이 주욱 이어져 있었다. 이럴 때 케이블 카라도 있으면 좋았으려나? 하긴 그러기엔 애매한 높이다.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춰서 주변 경치를 바라봤다. 다행히 계단이 몇 개나 되는지 셀 필요는 없었다. 미련하게 하나하나 세면서 올라가는 사람을 배려한 것인지 바닥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총 649개의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살짝 땀이 흐를 즈음 엘 페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날씨가 아주 맑지 않아 걱정했으나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인공 호수의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호수가 복잡한 리아스 해안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잘못된 정보로는 엘 페뇰의 인공 호수는 콜롬비아의 유명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마약으로 번 돈이 넘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메데진의 케이블카도 그가 만들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하는데 이렇게 콜롬비아에서는, 특히 메데진에서는 범죄자인 그의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는 영웅담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중년의 남자가 반지를 꺼내 프로포즈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엘 페뇰 정상에서 프러포즈라니, 오로지 반지 하나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왕 정상에 올랐으니 몇 바퀴를 돌며 한참을 구경했다. 엘 페뇰에서 내려온 후 과타페로 이동했다. 걸어가기엔 조금 애매한 거리라 뚝뚝을 탔다. 과타페는 작은 동네였지만 바로 옆에 있는 엘 페뇰 덕분인지 꽤나 관광지다워 보였다. 과타페의 작고 아담한 광장에는 남미에서 늘 보는 것과 비슷하게 알록달록한 집과 성당이 자리 잡고 있고,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흔하게 보였다. 메데진처럼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인지 아니면 관광지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살짝 들뜨게 했다.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 커다란 고기 두 덩어리가 있는 요리를 주문해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마을 안쪽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골목을 가보니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한적했다. 벽에는 아기자기한 조각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벽에 조각이 되어 있는 강아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강아지가 귀엽다. 혹시 여자 친구일까? 소박하지만 동화 같은 아름다운 골목이었다.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호수 옆에는 미끄럼틀과 보트, 그리고 집라인이 있어 옛날 느낌이 나는 어느 유원지에 온 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을의 중심부로 다시 돌아오니 아까보다 더 많은 여행객들이 보였다. 콰타페가 큰 도시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하루 정도는 여기서 머무른다 해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름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산거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침 하늘에는 우산이 가득해 어렵지 않게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알록달록 동화 속 마을 같은 과타페를 뒤로 하고 너무 늦지 않게 메데진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만나 잠깐 인사만 했던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 승연이가 빨리 일루미네이션 축제에 가자고 꼬드겨 또 나가게 되었다. 무척 피곤했지만 다시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도착해 전철역에서 바라보니 온통 환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승연이가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다는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와 만나 3명이서 돌아다니게 됐다. 저녁도 먹지 않고 나왔으니 여러 먹거리에 눈이 절로 갔다. 이미 깔리(Cali)에서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보고 왔지만 규모는 메데진이 더 커 보였다. 사람은 정말 많았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라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싶다. 거대한 조형물과 화려한 조명이 눈을 즐겁게 했다. 구경하는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그 자체,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다! 콜롬비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은 처음이지만 아마 남미의 다른 나라에 있었어도 이런 분위기였을 것 같다. 넓은 지역을 다 보고 사진까지 찍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는 귀여운 닭 한마리와 사진도 함께 찍었다. 아름다운 불빛으로 이루어진 집과 꽃을 바라보면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아 깊은 곳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있던 동심이 되살아난다. 비록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사진을 찍는가 보다.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한쪽에서는 훌라후프 3개를 돌 여러 개의 고리를 던지는 서커스 묘기를 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은 나무를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연출해 다른 차원으로로 입장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승연이가 메데진의 전망대 겸 근사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가자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푸에블리토 파이자(Pueblito Paisa)에 도착하니 어린이 공원에 온 듯한 아기자기함이 있었다. 정상에 설치된 커다란 선물 상자가 눈에 띄었다. 메데진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하다거나 다른 도시와 다른 특별한 것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냥 전망대에서 경치를 보는 것 자체로 좋았다. 사실 메데진에 도착한 이후 메데진을 제대로 돌아다닌 적도 없지 않았던가. 어디가 어딘지 모를 도시의 야경을 눈에 대충 주워 담았다. 아침부터 정신 없이 돌아다녀서 너무 피곤했다. 어쩌면 장기여행자는 이미 게을러질 만큼 게을러져 누군가를 만나고 따라 다녀야 겨우 부지런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 827일차, 메데인이 아닌 '메데진'

하쿠나마타타|2021년 12월 14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살렌토(Salento)를 떠나 콜롬비아 제2의 도시 메데진(Medellin)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떨어져 어두워진 뒤였다. 이 도시는 원래 스페인어로 '메데인'이라 부르는 게 맞으나 콜롬비아식 스페인어로는 '메데진'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남미라고 해도 발음의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아마 아르헨티나였다면 '메데쉰'정도 되었으려나? 메데진은 굉장히 큰 도시라고 들었으나 크리스마스 이브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잠시 거리를 걷다 숙소로 돌아와 여러 한국 사람을 만났다. 콜롬비아에도 한국인 여행자가 꽤 많았다. 본격적인 여행은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했다. 다만 처음 여행지는 메데진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엘 페뇰(El Peñol)부터 가게 되었다. 메데진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전철이 있어 버스터미널까지 쉽게 이동이 가능했다. 남미의 다른 버스터미널과 비슷한 풍경이라 그리 특별할 것은 없다. 여러 버스 회사가 난잡하게 있었지만 엘 페뇰이 워낙 유명한 관광지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정확히는 과타페(Guatape)로 가는 버스를 타면 된다. 과타페까지는 약 2시간 걸렸다. 생각보다 먼 거리였다. 버스는 엘 페뇰 입구에서 내려줬다. 바로 앞 커다란 바위가 오늘의 주인공 엘 페뇰임을 알 수 있었다. 엘 페뇰 입장료는 18,000페소였다. 이제부터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높고 지그재그로 계단이 주욱 이어져 있었다. 이럴 때 케이블 카라도 있으면 좋았으려나? 하긴 그러기엔 애매한 높이다. 계단을 오르다 잠시 멈춰서 주변 경치를 바라봤다. 다행히 계단이 몇 개나 되는지 셀 필요는 없었다. 미련하게 하나하나 세면서 올라가는 사람을 배려한 것인지 바닥에는 숫자가 적혀 있다. 총 649개의 계단을 올라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살짝 땀이 흐를 즈음 엘 페뇰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날씨가 아주 맑지 않아 걱정했으나 360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는 인공 호수의 풍경은 사진으로 담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구불구불 이어진 호수가 복잡한 리아스 해안에 떠 있는 섬처럼 보였다. 누군가의 잘못된 정보로는 엘 페뇰의 인공 호수는 콜롬비아의 유명인(?)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마약으로 번 돈이 넘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메데진의 케이블카도 그가 만들었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기도 하는데 이렇게 콜롬비아에서는, 특히 메데진에서는 범죄자인 그의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에서는 영웅담으로 변질되는 경우가 많다. 중년의 남자가 반지를 꺼내 프로포즈를 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엘 페뇰 정상에서 프러포즈라니, 오로지 반지 하나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로맨틱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이왕 정상에 올랐으니 몇 바퀴를 돌며 한참을 구경했다. 엘 페뇰에서 내려온 후 과타페로 이동했다. 걸어가기엔 조금 애매한 거리라 뚝뚝을 탔다. 과타페는 작은 동네였지만 바로 옆에 있는 엘 페뇰 덕분인지 꽤나 관광지다워 보였다. 과타페의 작고 아담한 광장에는 남미에서 늘 보는 것과 비슷하게 알록달록한 집과 성당이 자리 잡고 있고, 중앙에는 작은 분수대가 있었다. 누가 봐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흔하게 보였다. 메데진처럼 복잡한 도시에서 벗어나서인지 아니면 관광지에 와서 그런지 기분이 살짝 들뜨게 했다.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 커다란 고기 두 덩어리가 있는 요리를 주문해 점심을 해결했다. 점심을 먹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시작했다. 마을 안쪽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골목을 가보니 관광객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한적했다. 벽에는 아기자기한 조각이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벽에 조각이 되어 있는 강아지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강아지가 귀엽다. 혹시 여자 친구일까? 소박하지만 동화 같은 아름다운 골목이었다. 작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호수가 있는 곳으로 나왔다. 호수 옆에는 미끄럼틀과 보트, 그리고 집라인이 있어 옛날 느낌이 나는 어느 유원지에 온 것만 같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마을의 중심부로 다시 돌아오니 아까보다 더 많은 여행객들이 보였다. 콰타페가 큰 도시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지만 하루 정도는 여기서 머무른다 해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나름 일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우산거리에 들어서자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침 하늘에는 우산이 가득해 어렵지 않게 비를 피할 수 있었다. 알록달록 동화 속 마을 같은 과타페를 뒤로 하고 너무 늦지 않게 메데진으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전날 만나 잠깐 인사만 했던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 승연이가 빨리 일루미네이션 축제에 가자고 꼬드겨 또 나가게 되었다. 무척 피곤했지만 다시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이동했다. 도착해 전철역에서 바라보니 온통 환한 불빛으로 가득했다. 승연이가 온라인에서 알게 되었다는 또 다른 한국인 여행자와 만나 3명이서 돌아다니게 됐다. 저녁도 먹지 않고 나왔으니 여러 먹거리에 눈이 절로 갔다. 이미 깔리(Cali)에서 일루미네이션 축제를 보고 왔지만 규모는 메데진이 더 커 보였다. 사람은 정말 많았다.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라는 게 이럴 때 쓰는 표현인가 싶다. 거대한 조형물과 화려한 조명이 눈을 즐겁게 했다. 구경하는 인파를 뚫고 지나갔다. 크리스마스 분위기 그 자체, 그러고 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였다! 콜롬비아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낸 적은 처음이지만 아마 남미의 다른 나라에 있었어도 이런 분위기였을 것 같다. 넓은 지역을 다 보고 사진까지 찍으려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한다. 우리는 귀여운 닭 한마리와 사진도 함께 찍었다. 아름다운 불빛으로 이루어진 집과 꽃을 바라보면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온 것 같아 깊은 곳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있던 동심이 되살아난다. 비록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고 사진을 찍는가 보다. 볼거리가 생각보다 많았다. 사진으로 다 담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한쪽에서는 훌라후프 3개를 돌 여러 개의 고리를 던지는 서커스 묘기를 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비추는 조명은 나무를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연출해 다른 차원으로로 입장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승연이가 메데진의 전망대 겸 근사한 야경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가자고 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닐까 싶었지만 이미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푸에블리토 파이자(Pueblito Paisa)에 도착하니 어린이 공원에 온 듯한 아기자기함이 있었다. 정상에 설치된 커다란 선물 상자가 눈에 띄었다. 메데진의 경치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려하다거나 다른 도시와 다른 특별한 것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냥 전망대에서 경치를 보는 것 자체로 좋았다. 사실 메데진에 도착한 이후 메데진을 제대로 돌아다닌 적도 없지 않았던가. 어디가 어딘지 모를 도시의 야경을 눈에 대충 주워 담았다. 아침부터 정신 없이 돌아다녀서 너무 피곤했다. 어쩌면 장기여행자는 이미 게을러질 만큼 게을러져 누군가를 만나고 따라 다녀야 겨우 부지런하게 여행할 수 있지 않을까.

여행 825일차, 살렌토의 비현실적인 야자수

하쿠나마타타|2021년 6월 17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칼리(Cali)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의지와 관계가 없는 몸치라 살사는 더 이상 배울 수 없었으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생각했다. 반대로 종원이형은 춤바람이 아주 단단히 났던 것인지 칼리에서 더 지내겠다고 해서 혼자 살렌토(Salento)로 향했다. 칼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도착했고 여기서 살렌토로 가는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살렌토에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은 길을 따라 마을의 중심가로 가봤더니 화려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집들이 보였다. 광장의 중심에는 포장마차처럼 여러 노점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번쯤은 여기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다 생각했는데 안쪽의 거리로 들어가 보니 제법 북적였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기념품 가게가 많은 것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살렌토는 작은 마을이지만 구경할 거리가 꽤 있었다. 남미에서는 매번 비슷해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핸드메이드 기념품 들었다 놨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다르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도착한 첫날은 무작정 걷기만 한다. 당장 살렌토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복잡함과는 거리가 먼 작은 마을을 거닐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 '작다'라는 범위가 시야에 다 들어올 정도였으니 이내 걷기를 멈추고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콜롬비아 역시 커피벨트에 속한 나라이기도하고, 특히 살렌토는 커피투어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난 커피투어는 관심도 없었다!) '신 맛이 강했던 에티오피아 커피와는 좀 다르군.' 나름의 아는 척 커피 품평을 마치고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사람 구경했다. 그들의 일상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외국인 한 명이 끼어든 느낌이다. 쾌쾌한 배낭여행자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호스텔은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꽤 좋아졌다. 잔잔한 라이브 공연이 이어지고, 와인을 곁들인 서양식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식당이라니. 그렇다고 침대에 혼자 누워있기는 뭐하니 1층으로 내려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애써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저항하듯 맥주를 한잔 더 달라고 했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이제 익숙하다. 살렌토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참 시원했다. 커피투어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야자수가 많다고 하는 코코라 계곡(Valle de Cocora)만 가보기로 결정했다. 코코라 계곡은 지프를 타고 가야 했다. 지프는 거의 1시간마다 있었는데 난 10시 반에 탔다. 지프에 올라타 조금 달리니 입구인 듯 보이는 주차장이 보였다. 코코라 계곡에 도착해서는 지프에서 내려걸어야 했다. 대충 만든 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아찔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코코라 계곡을 찾아갔지만 여기는 트레킹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말을 타고 돌아보는 것도 가능했다. 페루에서 '무지개산'이라고 불리는 비니쿤카를 오를 때 고산지대에 급경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말을 타기도 했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많이 걷다 보면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걸으니 안개에 살짝 가려진 야자나무 숲이 보였다. 여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진 찍는 장소인가 보다. 보통 따뜻한 나라의 해안에서만 보던 야자수인데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야자수가 빼곡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 나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체 야자수가 많은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을 보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엄청나게 작게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야자수가 엄청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도 뒤늦게 알아채다니 내가 여행을 너무 오래 한 탓이거나 감수성이 메마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코라 계곡에는 몇 시간 동안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만 한참 동안 바라보다 살렌토로 돌아왔다. 살렌토로 돌아와 다시 동네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치킨 2조각을 먹었다.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치킨 2조각은 정말 자주 먹었는데 고작해야 1,500~2,000원 정도라 에콰도르에 비해 엄청 저렴했고, KFC치킨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끝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언덕이 있었다. 높아 보이진 않지만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낮은 언덕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소박한 살렌토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여행자들처럼 나 역시 시간을 때웠다. 불량식품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물며.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살렌토에 들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해가 서서히 사라질 즈음에 언덕에서 내려왔다. 광장에 있던 야시장이 눈에 띄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초리소 굽는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하나 달라고 했다. 밤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북적였다. 적당히 기념품 가게를 돌며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1층 식당으로 가서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추천해 준 코스요리가 15달러가 넘었는데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저렴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보통 2~3달러였으니 놀랄만 했다.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오랜만에 사치 좀 부려 보자고 주문을 했다. 그럭저럭 맛도 괜찮았고 디저트로 예쁜 컵케익도 있었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그들과 한참 동안 웃고 떠들게 되었다. 노르웨이 친구들이랑 헤어지자 마자 내가 입고 있던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클럽) 저지를 보자 엄청 반가워하는 커플을 만났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샀던 짝퉁 저지가 콜롬비아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줄이야! 비록 보카 주니어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축구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냥 즐거웠다.

여행 825일차, 살렌토의 비현실적인 야자수

하쿠나마타타|2021년 6월 17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칼리(Cali)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의지와 관계가 없는 몸치라 살사는 더 이상 배울 수 없었으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생각했다. 반대로 종원이형은 춤바람이 아주 단단히 났던 것인지 칼리에서 더 지내겠다고 해서 혼자 살렌토(Salento)로 향했다. 칼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도착했고 여기서 살렌토로 가는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살렌토에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은 길을 따라 마을의 중심가로 가봤더니 화려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집들이 보였다. 광장의 중심에는 포장마차처럼 여러 노점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번쯤은 여기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다 생각했는데 안쪽의 거리로 들어가 보니 제법 북적였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기념품 가게가 많은 것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살렌토는 작은 마을이지만 구경할 거리가 꽤 있었다. 남미에서는 매번 비슷해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핸드메이드 기념품 들었다 놨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다르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도착한 첫날은 무작정 걷기만 한다. 당장 살렌토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복잡함과는 거리가 먼 작은 마을을 거닐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 '작다'라는 범위가 시야에 다 들어올 정도였으니 이내 걷기를 멈추고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콜롬비아 역시 커피벨트에 속한 나라이기도하고, 특히 살렌토는 커피투어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난 커피투어는 관심도 없었다!) '신 맛이 강했던 에티오피아 커피와는 좀 다르군.' 나름의 아는 척 커피 품평을 마치고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사람 구경했다. 그들의 일상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외국인 한 명이 끼어든 느낌이다. 쾌쾌한 배낭여행자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호스텔은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꽤 좋아졌다. 잔잔한 라이브 공연이 이어지고, 와인을 곁들인 서양식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식당이라니. 그렇다고 침대에 혼자 누워있기는 뭐하니 1층으로 내려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애써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저항하듯 맥주를 한잔 더 달라고 했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이제 익숙하다. 살렌토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참 시원했다. 커피투어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야자수가 많다고 하는 코코라 계곡(Valle de Cocora)만 가보기로 결정했다. 코코라 계곡은 지프를 타고 가야 했다. 지프는 거의 1시간마다 있었는데 난 10시 반에 탔다. 지프에 올라타 조금 달리니 입구인 듯 보이는 주차장이 보였다. 코코라 계곡에 도착해서는 지프에서 내려걸어야 했다. 대충 만든 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아찔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코코라 계곡을 찾아갔지만 여기는 트레킹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말을 타고 돌아보는 것도 가능했다. 페루에서 '무지개산'이라고 불리는 비니쿤카를 오를 때 고산지대에 급경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말을 타기도 했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많이 걷다 보면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걸으니 안개에 살짝 가려진 야자나무 숲이 보였다. 여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진 찍는 장소인가 보다. 보통 따뜻한 나라의 해안에서만 보던 야자수인데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야자수가 빼곡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 나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체 야자수가 많은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을 보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엄청나게 작게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야자수가 엄청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도 뒤늦게 알아채다니 내가 여행을 너무 오래 한 탓이거나 감수성이 메마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코라 계곡에는 몇 시간 동안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만 한참 동안 바라보다 살렌토로 돌아왔다. 살렌토로 돌아와 다시 동네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치킨 2조각을 먹었다.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치킨 2조각은 정말 자주 먹었는데 고작해야 1,500~2,000원 정도라 에콰도르에 비해 엄청 저렴했고, KFC치킨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끝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언덕이 있었다. 높아 보이진 않지만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낮은 언덕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소박한 살렌토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여행자들처럼 나 역시 시간을 때웠다. 불량식품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물며.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살렌토에 들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해가 서서히 사라질 즈음에 언덕에서 내려왔다. 광장에 있던 야시장이 눈에 띄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초리소 굽는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하나 달라고 했다. 밤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북적였다. 적당히 기념품 가게를 돌며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1층 식당으로 가서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추천해 준 코스요리가 15달러가 넘었는데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저렴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보통 2~3달러였으니 놀랄만 했다.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오랜만에 사치 좀 부려 보자고 주문을 했다. 그럭저럭 맛도 괜찮았고 디저트로 예쁜 컵케익도 있었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그들과 한참 동안 웃고 떠들게 되었다. 노르웨이 친구들이랑 헤어지자 마자 내가 입고 있던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클럽) 저지를 보자 엄청 반가워하는 커플을 만났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샀던 짝퉁 저지가 콜롬비아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줄이야! 비록 보카 주니어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축구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냥 즐거웠다.

여행 825일차, 살렌토의 비현실적인 야자수

하쿠나마타타|2021년 6월 17일

세계일주를 할 당시 짤막한 형태로 틈틈이 올렸던 '실시간 여행기'를 마무리하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올리려 합니다. 시간이 너무 지나버려 비록 '뒤늦은 여행기'가 되었지만 여행했던 순간을 기록으로 끝까지 남기고 싶습니다. 아마도 이 시리즈를 끝내야 밀린 다른 여행기를 작성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잠깐 스쳐 지나갈 줄 알았던 칼리(Cali)였는데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되었다. 애석하게도 나의 의지와 관계가 없는 몸치라 살사는 더 이상 배울 수 없었으니 이제는 떠날 때가 됐다 생각했다. 반대로 종원이형은 춤바람이 아주 단단히 났던 것인지 칼리에서 더 지내겠다고 해서 혼자 살렌토(Salento)로 향했다. 칼리에서 출발한 버스는 아르메니아(Armenia)에 도착했고 여기서 살렌토로 가는 작은 버스로 갈아타야 했다. 살렌토에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했다. 미리 예약한 호스텔로 가서 짐만 풀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와서 축축하게 젖은 길을 따라 마을의 중심가로 가봤더니 화려하지 않지만 알록달록한 집들이 보였다. 광장의 중심에는 포장마차처럼 여러 노점이 자리 잡고 있어 한 번쯤은 여기서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적하다 생각했는데 안쪽의 거리로 들어가 보니 제법 북적였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라고 들었는데 기념품 가게가 많은 것을 보니 정말인가 보다. 살렌토는 작은 마을이지만 구경할 거리가 꽤 있었다. 남미에서는 매번 비슷해 보이는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핸드메이드 기념품 들었다 놨다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여기서도 다르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도착한 첫날은 무작정 걷기만 한다. 당장 살렌토에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저 복잡함과는 거리가 먼 작은 마을을 거닐며 여유로운 분위기를 흠뻑 느낄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 '작다'라는 범위가 시야에 다 들어올 정도였으니 이내 걷기를 멈추고 어느 카페로 들어갔다. 콜롬비아 역시 커피벨트에 속한 나라이기도하고, 특히 살렌토는 커피투어를 할 수 있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물론 난 커피투어는 관심도 없었다!) '신 맛이 강했던 에티오피아 커피와는 좀 다르군.' 나름의 아는 척 커피 품평을 마치고 주변을 천천히 살피며 사람 구경했다. 그들의 일상에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외국인 한 명이 끼어든 느낌이다. 쾌쾌한 배낭여행자들로만 가득할 것 같았던 호스텔은 저녁이 되자 분위기가 꽤 좋아졌다. 잔잔한 라이브 공연이 이어지고, 와인을 곁들인 서양식 코스 요리를 소개하는 식당이라니. 그렇다고 침대에 혼자 누워있기는 뭐하니 1층으로 내려와 맥주를 한잔 마셨다. 애써 이런 분위기가 어색하지 않다고 저항하듯 맥주를 한잔 더 달라고 했다. 혼자 마시는 맥주는 이제 익숙하다. 살렌토는 산속 깊은 곳에 있어서 그런지 아침 공기가 참 시원했다. 커피투어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 야자수가 많다고 하는 코코라 계곡(Valle de Cocora)만 가보기로 결정했다. 코코라 계곡은 지프를 타고 가야 했다. 지프는 거의 1시간마다 있었는데 난 10시 반에 탔다. 지프에 올라타 조금 달리니 입구인 듯 보이는 주차장이 보였다. 코코라 계곡에 도착해서는 지프에서 내려걸어야 했다. 대충 만든 나무다리를 건널 때는 아찔했다. 비가 와서 질척해진 것 같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이 코코라 계곡을 찾아갔지만 여기는 트레킹 코스로 많이 찾는 곳인가 보다. 말을 타고 돌아보는 것도 가능했다. 페루에서 '무지개산'이라고 불리는 비니쿤카를 오를 때 고산지대에 급경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말을 타기도 했는데 여기는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많이 걷다 보면 피곤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 더 걸으니 안개에 살짝 가려진 야자나무 숲이 보였다. 여기가 사람들이 말하는 사진 찍는 장소인가 보다. 보통 따뜻한 나라의 해안에서만 보던 야자수인데 이런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다. 야자수가 빼곡한 주변 경치를 바라보다 나도 사진을 몇 장 찍었다. 대체 야자수가 많은 게 뭐가 그렇게 신기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찰나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을 보자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야자수 근처로 간 사람이 마치 개미처럼 엄청나게 작게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야자수가 엄청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풍경을 보고도 뒤늦게 알아채다니 내가 여행을 너무 오래 한 탓이거나 감수성이 메마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코코라 계곡에는 몇 시간 동안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하늘 높이 치솟은 야자수만 한참 동안 바라보다 살렌토로 돌아왔다. 살렌토로 돌아와 다시 동네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점심으로는 가볍게 치킨 2조각을 먹었다.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치킨 2조각은 정말 자주 먹었는데 고작해야 1,500~2,000원 정도라 에콰도르에 비해 엄청 저렴했고, KFC치킨을 먹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맛도 괜찮았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리 끝에는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는 언덕이 있었다. 높아 보이진 않지만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낮은 언덕의 끝에 도달했을 때는 소박한 살렌토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정상에는 특별한 것도 없었다. 해가 질 때까지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 보는 여행자들처럼 나 역시 시간을 때웠다. 불량식품 맛이 나는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 물며. 정말 특별할 것도 없는 마을이지만 살렌토에 들리길 잘했다 생각했다. 해가 서서히 사라질 즈음에 언덕에서 내려왔다. 광장에 있던 야시장이 눈에 띄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초리소 굽는 냄새에 참지 못하고 하나 달라고 했다. 밤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북적였다. 적당히 기념품 가게를 돌며 구경하다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1층 식당으로 가서 메뉴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추천해 준 코스요리가 15달러가 넘었는데 콜롬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저렴한 한 끼를 해결하는데 보통 2~3달러였으니 놀랄만 했다. 길거리에서 먹는 음식도 아니고 오랜만에 사치 좀 부려 보자고 주문을 했다. 그럭저럭 맛도 괜찮았고 디저트로 예쁜 컵케익도 있었다.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여행자들과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노르웨이에서 왔다는 그들과 한참 동안 웃고 떠들게 되었다. 노르웨이 친구들이랑 헤어지자 마자 내가 입고 있던 보카 주니어스(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클럽) 저지를 보자 엄청 반가워하는 커플을 만났다. 당연히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샀던 짝퉁 저지가 콜롬비아에서도 역할을 발휘할 줄이야! 비록 보카 주니어스에 대해 아무 것도 몰라 축구는 대충 얼버무렸지만 우연한 만남이 그냥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