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레슬링관련 읽을거리 및 피규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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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짜고치기'를 잊게 만든 레슬러의 '육체'

9. '짜고치기'를 잊게 만든 레슬러의 '육체' 나에게 있어서 바바와 이노키는 어렸을적부터 동경해왔던 슈퍼스타, 구름위의 존재였다. 아무리 프로레슬링 팬을 졸업했다고는 해도, 기자가 되어 직접 만났을 때는 당연히 기쁨과 감개가 솟아올라왔다. 특히, 안토니오 이노키는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주간 파이트'에게 있어서도 그렇고 특별한 선수였다. 쉽게 잘 모르는 사람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자이언트 바바와는 달리, 이노키는 기본적으로 어떤 기자에게나 신사적이었다. 72년 10월, 오사카 부립체육관. 나는 당시 '주간 파이트' 편집장의 도움으로 처음으로 시합 후 이노키 본인에게 간단한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나는 20세. 아직 '주간 파이트'를 발행하는 신오사카 신문사에 입사하기 전 아르바이트

대거인 앙드레 자이언트는 OO에 볼일을 봤다.

223센티(실제 키 213cm)의 대거인 앙드레 더 자이언트. 본인에게 맞는 양말이 없어 늘 맨발로 다닐정도로 거구의 몸이었던 프로레슬러.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던 당시, 호텔 등 숙소의 변기가 너무 작아서 욕조에서 큰일을 해결했다고 한다.

8. 프로레슬링의 진실을 알고도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8. 프로레슬링의 진실을 알고도 일에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 골든타임 중계 종료, 버블 경제 붕괴라는 역풍을 개의치 않고 90년대에 들어 일본의 프로레슬링계는 더욱 시장 규모를 확대해나갔다. 돔 시대의 개막과 다단체화에 의해 관객동원수에서는 역도산 시절을 뛰어넘는 전후 최대의 프로레슬링 붐이 도래했다. 메이저단체의 경영상태는 너나할 것 없이 호황을 맞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 때, 프로레슬링 쇠토의 스위치가 켜졌던 것이다. 80년대 후반까지, 지상파 골든타임 중계가 떠받치고 있던 프로레슬링 팬의 신진대사는, 이미 이 시대에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이 때부터 팬의 고령화, 분산화가 시작되었지만 그 변화를 눈치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95년 신일본프로레슬링 VS U 인터네셔널 대항전. 공전

7. "UWF 만큼은 실전이야"

7. "UWF 만큼은 실전이야" 80년대 중반, UWF라는 단체가 출현했다. 기존 프로레슬링계의 틀과 질서를 거부하고, 실력본위의 자세를 전면에 내세운 신흥단체. 그 후, 프로레슬링 역사에 남을 일대 무브먼트를 일으켰지만 U계 단체의 싸움의 본질이 프로레슬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나에게 있어서는 어디까지나 격투계 프로레슬링 단체라는 인식이었다. 당시 UWF 신봉자들 중에서는 "다른 단체는 몰라도 UWF는 진짜"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단체의 톱인 마에다 아키라, 타카다 노부히코가 프로레슬링 출신인 한, 그들이 프로레슬링에서부터 발을 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취재기자들 중에서도 적게나마 "UWF는 진짜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간 파이트'의 일을

29. 프로레슬러의 자질

29. 레슬러의 자질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하지만, 프로레슬링이란, '뛰어난 엔터테인먼트'이다. 이 얘기는, 우수한 엔터테인먼트에 어울리는 우수한 엔터테이너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엔터테이너란, 역시 프로레슬러를 말한다. 이 '인간'이라는 것 만큼은 하루아침에 만들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의외로 어렵다. 과연 어떠 녀석이 프로레슬링에 어울리는 녀석일까. 하시모토 신야도 막무가내에 될대로 되라는 식의 성격이었고, 초슈 리키도 보통의 성격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들은 성격이 조금 이상하지만, 분명 프로레슬링계의 체질과 딱 맞아떨어지는 면이 있었을 것이다. 때문에 초슈 리키는 한 번 은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 업계에 남아있는 것이다. 레슬러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