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Mini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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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15

Diary Minimo|2016년 3월 13일

#15 120524. 목요일 오랜만에 꿈 없이 깊은 잠을 잤다. 다리께를 비추는 아침햇살이 싱그러워 상쾌하게 잠에서 깼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 제치고, 볕이 비추는 방바닥에 누워 담배를 입에 문다. 담배 연기가 행복한 구름이 되어 피어 오른다. 좁은 창으로 비쳐 쬐는 볕이 바닥에 작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온전히 속해 빛의 세례를 받는다. 누런 색 장판에 네모 반듯한 관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 벌거벗고 누운 거인이 있다. 혹시라도 손발 끝이 그 금을 넘어갈 까 몸을 살짝 웅크린다. 눈을 감고 담배를 빨아들인다. 담배를 들지 않은 오른손으로 바닥을 다그닥 두드려 리듬을 만들고 있다. 자세히 들어 보니 작은 소리로 콧노래까지 흥얼거리고 있다. 담배를 다 태우고 눈을 뜨면, 작은 소리로 외우고

강원도 #14

Diary Minimo|2016년 3월 12일

#14 시퍼렇게 눈을 뜨고 누워있는 생선에서 바닷물 냄새와 비린내가 풍긴다. 얼음을 품고 싸전을 메운 생선들 위로 상인들의 침이 튄다. 수다스럽게 입을 놀리며 고등어 대가리를 쳐 내는 아줌마의 손길이 부산스럽다. 분주한 상인과 손님, 그리고 생선들 사이를 비집고 골목을 트니 비린내가 스친 코 끝에 고소한 냄새가 다가온다. 보아하니 속초 명물로 유명한 닭강정 골목이다. 가게마다 서로 앞다투어 간판에 '원조'라는 말을 큼지막하게 적어놨다. 가마 안에서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자글자글 튀겨지는 닭고기를 보니 식욕이 동해 하나 사 먹어볼까 하지만, 아직 목구멍 밑에서 술 냄새가 가시지 않아 그만두기로 한다. 메밀 전병을 구워 파는 가게와 뽀얀 튀김옷을 입은 각종 튀김을 파는 가게들을 지나칠 때까진 잘 참았는데, 골

강원도 #13

Diary Minimo|2016년 2월 28일

#13. 날씨가 더럽게 좋다. 머리위에 높이 떠 있는 해가 날 뚫어지게 째려본다. 구름이라도 짙었으면 눈은 덜 부실 텐데, 싸구려 선글라스라도 하나 사서 껴야 할 판이다. 예전에 속초 시장에서 좌판을 깔아놓고 싸구려 짭퉁 선글라스를 팔았던 생각이 난다. 좀 있다 가서 하나 사야지,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터미널에서 내려 속초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에 아줌마들이 따라 붙는다. 이어폰을 빼고, 가까이 다가온 한 아줌마의 이야기를 듣는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팔에는 토시와 장갑까지 끼고 있지만 아줌마의 얼굴은 검게 그을려 있다. 아줌마는 대단한 영업 기밀이라도 누설하려는 듯, 바싹 붙어 내 그림자 안에 들어와 속삭이듯 숙소를 권한다. 방 있어요. 네? 몇 명? 아... 혼자. 몇 박? 하루. 호텔 4만원. 오.

강원도 #12

Diary Minimo|2016년 2월 27일

#12 120523, 수요일 엄마의 얼굴이 알록달록하다. 맥주를한 잔 하신 것 같다. 치킨을 시켰는데, 요즘 몸무게가 너무불어서 밤에는 안 드신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몇 개 집어 드셨을 거다. 아들은 자꾸 싫다는 엄마 입에고기만 발라내 넣어 드린다. 엄마는 그만 하라고 하면서도 아들이 주는 고기를 맛있게 먹는다. 당연히 엄마도 먹고 싶다. 아들은 엄마의 핑계가 저녁을 거른 자기를위한 거라는 걸 안다. 항상 그런 식이다. 엄마는 아들 걱정만하신다. 회사에서 상사들과 트러블은 없는지, 밥은 챙겨 먹고다니는지, 여자친구랑은 잘 지내는지(내심 헤어졌으면 하시지만), 돈은 모으고 있는지. 엄마와의 대화는 일정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 엄마는 걱정하고, 아들은 방어한다.아들이 다니는 회사에 대한 뉴스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

강원도 #11

Diary Minimo|2016년 2월 20일

#11 스무 살 때였다. 엄마 아빠가 세탁소에서 늘 틀어 놓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새 코너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시락을 보내세요, 특명, 도시락을 배달하라!' 누나는 4남매를 키워내는 엄마아빠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담아 정성스레 사연을 보냈고, 놀랍게도 그 첫 회에 당장 당첨이 됐다. 고급 중화요리를 세탁소로 보내주기로 했는데, 첫사랑에 빠져있던 똥멍청이 아들은 그게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먹성 좋았던 여자친구를 가게로 데려갔다. 사연이 뭐였는지, 엄마 아빠, 그리고 누나들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등은 나와는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그저 맛있는 음식을 여자친구에게 먹여주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리고 돌이켜 보면, 그 후에도 꽤나 오랫동안 그게 어떤 자리였는지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방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