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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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posts![[조선 한양] 광희문은 지금 복원 중](https://img.zoomtrend.com/2013/07/10/e0002487_51dc30f4dde71.jpg)
[조선 한양] 광희문은 지금 복원 중
조선에 사대문이 있다면 사소문도 있다고 저번에 '[조선 한양] 한 때는 자하문, 지금은 창의문' 편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었지요. 그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을 찾아가는 건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자주 가는 동대문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것이 바로 광희문 입니다. 흥인지문은 동대문을 찾는 사람에게 빼놓지 않고 들르는 관광명소라곤 하지만 한낮 사소문 중 하나인 광희문을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광희문 주변은 지금은 주택가가 되었고 고등학교가 들어서 있으며 재대로 된 문도 아닌 광희문을 굳이 찾아본다는 건 아주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힘들죠... 광희문은 사소문 중 동남쪽에 있는 문입니다. 한 때는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는데 광희문으로 시신이 성곽 밖으로 나가 매장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
![[대한제국] 약소국 황제의 피난처... 구 러시아 공사관](https://img.zoomtrend.com/2013/06/15/e0002487_51bbd3afa6866.jpg)
[대한제국] 약소국 황제의 피난처... 구 러시아 공사관
정동에는 정동 근린 공원이란 곳이 있습니다. 정동 주민들의 쉼터 같은 곳이지요. 그 곳 가장 높은 곳에는 허연 탑 같은 예전 건물이 하나 들어서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구 러시아 공사관입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한러수호조약이 체결된 1885년에 착공되어 1890년 준공됐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벽돌조의 2층 건물로 건물 옆에 별도의 탑을 세웠습니다. 자금은 탑만 남아있는데 탑의 입구는 반원 아치 형태이며 2층 역시 반원 아치형의 창을 냈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이 서있던 정동 일대는 예전 공사관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던 국제도시 같은 곳이었는데 구 러시아 공사관은 정동의 꼭대기에 위치해 있어 경복궁과 경운궁 등 서울 4대문 안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동의 첨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구 러시아 공사관은
![[대한제국] 덕수궁의 외톨이... 중명전](https://img.zoomtrend.com/2013/06/13/e0002487_51b88381d197b.jpg)
[대한제국] 덕수궁의 외톨이... 중명전
지금의 덕수궁이라면 생각하기 힘들지만 원래 덕수궁의 궁역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물론 그 궁역이 이리저리 치이고 치여서 궁역 자체가 이상하게 되었지만 생각보다 컸습니다. 덕수궁 중명전은 1897년 경운궁이 확장되면서 궁궐로 편입되었던 신 궁역 중 하나입니다. 원래는 수옥헌이라는 이름의 건물이 있었지만 1901년 화재로 전소된 후 지금과 같은 2층 벽돌 건물의 외형을 갖춘 건물로 재탄생했습니다. 독립문이나 정관헌을 건축한 러시아 건축가 사바찐이 만들어 낸 괜찮은 건물입니다. 덕수궁 중명전은 우리의 역사에서 너무나 중요한 곳입니다. 1904년 경운궁에는 큰 불이 났는데 경운궁 대화재 이후 고종황제는 중명전으로 옮겨 편전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다 1905년 11월 고종이 거처하던 이 중명전에서 을사늑약
![[조선 한양] 한 때는 자하문, 지금은 창의문](https://img.zoomtrend.com/2013/05/26/e0002487_51a18866c3c8a.jpg)
[조선 한양] 한 때는 자하문, 지금은 창의문
태조가 조선을 창업할 때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한양성곽을 축조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1395년부터 도성을 축조하는 작업을 시작했는데요. 도성에는 동.서.남.북에 4대 문을, 그 사이 사이에 4개의 작은문을 만들었는데, 4대문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문들을 사소문이라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부암동에 있는 창의문입니다. 창의문은 성곽의 서북에 위치하여 고양.양주 방면으로 통하는 문으로, 자하문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1416년, 태종 16년에 자하문을 통해 통행하면 왕조에 해를 입힌다는 풍수지리학에 의하서 한때는 폐문 되기도 했습니다만은 1506년, 중종 원년에 다시 문을 열고 통행을 재개했습니다. 창의문은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때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안으로 들어가 광해군
![[조선 한성] 창경궁 돌아보기](https://img.zoomtrend.com/2013/05/09/e0002487_518a644310a3b.jpg)
[조선 한성] 창경궁 돌아보기
조선 성종시대에 중건됨 창경궁은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로 불렸습니다. 창경궁의 원래 이름은 수강궁으로 태조다음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된 태종을 모시기 위해 중건되었습니다. 그 후 성종 14년에 대왕대비인 세조의 비 정희왕후 윤씨, 성종의 생모 소혜왕후 한씨,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 한씨를 모시기 위하여 수강궁을 확장하게 되었으며 그 수강궁의 별칭인 창경궁이 지금의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창경궁은 임진왜란 때 완전히 불타 잿더미가 되었는데 그 후 광해군 7년에 복원 증축을 시작하여 이듬해인 광해군 8년에 복원 중건이 끝났는데 바로 옆에 자리잡은 창덕궁이 7년먼저 복원 중건되는 바람에 창경궁은 그게 쓰이지 못했습니다. 그 후로도 창경궁은 꽤나 많은 화재로 소실되고 중건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일상] Eave 65와 목새 택타일 | 토프레 무접점 느낌 | 타건 영상 있음](https://img.zoomtrend.com/2026/06/07/1780838085-SE-77297eb3-90bf-43a7-9629-75fd8530e370.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