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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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한성] 종묘 나들이

[조선 한성] 종묘 나들이

종묘는 조선 왕조의 역대 제왕들과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봉행하는 유교 사당입니다. 태조가 한성으로 천도한 후 정궁인 경복궁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종묘는 조선의 창업이념인 유교 이념에 따라 정궁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세우게 되었는데, 종묘는 경복궁을 세우기 전에 가장 먼저 세워졌으며 그 다음에 사직을 세웠습니다. 현재 종묘는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종묘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되어 있고 종묘제례악은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적 제125호로 지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종묘는 예전부터 창덕궁, 창경궁과 연결되어 거대한 궁역을 조성했었습니다만은 일제강점기에 도로가 나면서 연결되어 있는 길

[현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둘러보기

[현대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 둘러보기

남산골 한옥마을은 개장한 지 얼마되지 않은 곳으로 서울 남산 제모습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시행되었습니다. 남산골 한옥마을은 서울 중구 필동의 남산골공원에 있는 한옥 마을의 이름입니다. 1989년에 시작된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으로 각지에 흩어져 있는 한옥을 한군데 모아 조그마한 볼거리가 있는 마을을 조성하여 1998년에 남산골 한옥마을로 문을 열었습니다. 원래 남산골 한옥마을이 있는 자리는 수도방위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던 부지로 군사보호구역이었다 합니다. 하지만 서울시가 남산 제모습 찾기사업에 의해 서울시와 수도방위사령부가 합의하여 서울시가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남산골 한옥마을이 들어선 지금의 땅을 인수하고 군사보호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서울시 민속자료와 한옥 5개동을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총

[근대 경성] 민족의 서러움이 함축되어 있는 서대문 형무소

[근대 경성] 민족의 서러움이 함축되어 있는 서대문 형무소

서대문 형무소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에선 빠질 수 없는 곳으로 대한의 독립투사들이나 일제의 탄압에 저항했던 민초들이 수감되었던 민족의 애환이 서려져 있는 서러운 곳입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조선총독부의 전신인 한국통감부가 대한제국 침략의 일환으로 조선인 범죄자 및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조선인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하여 1907년 감옥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1908년에 기결수들을 옮겨오면서 경성감옥으로 시작했던 서대문 형무소는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이 투옥하기 시작하면서 수용공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일제는 1912년에 옛 마포교도소 자리인 마포구 공덕동 자리에 새로운 감옥을 짓고 그 감옥을 경성감옥으로 불려지게 되면서 1908년에 만들었던 구(舊) 경성감옥을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

[근대 한성] 독립의 상징인가, 오욕의 상징인가... 독립문을 가다

[근대 한성] 독립의 상징인가, 오욕의 상징인가... 독립문을 가다

지금 사적 32호로 지정되어 있는 독립문은 1890년대 초 서재필 등 개화파에 의해 건립이 추진되었습니다. 독립협회는 중국 사신들을 환영하던 중국 사대의 치욕스런 상징이었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의 상징을 건설하기위해 고종에게 건의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라는데... 사실 영은문은 독립문이 세워질 당시에 이미 헐려 있었습니다. 중일전쟁이 끝난 후 승전국인 일본은 영은문을 헐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독립문은 1896년에 공사를 시작해 1897년에 완공되었습니다. 사바틴의 설계로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본따 만들어진 독립문의 현판은 지금은 희대의 매국노로 일컬어지는 이완용이 썼습니다. 사실 독립문이 건립될 당시만 하더라고 이완용은 조선의 독립에 열망이 컸던 독립열사였습니다. 독립협회 창립당시 독립협회

[조선 한성] 흥인지문(興仁之門)

[조선 한성] 흥인지문(興仁之門)

조선의 사대 관문 중 하나인 흥인지문은 도성을 만들 당시 만들었던 사대문 중 동쪽에 있는 문이라 해서 동대문이라고도 합니다. 원래 조선 창업 당시 사대문의 이름은 유학의 덕목인 “인의예지신”을 따라 지었는데 이에 따라 동서남북의 사대문은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으로 지었는데 다른 문들과 달리 흥인지문만 이름이 넉자입니다. 이는 고종 때 한양 동쪽의 지기가 약하다고 하여 그 지기를 돋우기 위하여 넉자로 지었다고 합니다. 흥인지문은 숭례문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숭례문이 크고 화려한 면이 특징이라면 흥인지문은 숭례문보다는 소박하고 아담한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흥인지문은 숭례문과 동일한 2층의 누각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정면 5칸 측면이 2칸인 다포계열의 2층 건물입니다. 석축 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