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저기에서 그녀가 날 왜 어이없이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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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 (2012, 한국)
광해군 8년, 중국에서는 명나라가 금나라에게 밀려나는 형국이 진행되는 와중에양측에서의 압박이 조선에 밀려들고 내부에서는 탐관오리와 권문세가의 기세가 등등하여 왕권이 위태로운 시기였다. 임진왜란의 참상이 아직 채 회복되지도 않은 상태에서서자의 몸으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을 해하려는 수많은 사대주의자들이 있었고이를 피하기 위해서 광해군은 자신을 꼭 닮은 남자를 찾아서 대역으로 내새우는데.. 스토리상으로는 아주 기발할것은 없는 작품이었으나왕과 광대를 아주 적절하게 잘 표현한이병헌의 1인 2역이 돋보였으며류승용씨의 연기 또한 돋보였던 작품 그러나 한효주와 그 외 인물의 비중은 아주 적어서이 영화는 이병헌과 류승용 두 배우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는 아주 대단하다, 라고 할만한 점은 없었으
![[MBC] OF, 백인천](https://img.zoomtrend.com/2012/10/15/d0002642_507acf181f10c.jpg)
[MBC] OF, 백인천
MBC의 선수겸 감독, 일본 퍼시픽리그 타격왕 출신의 외야수원년에 .412라는 아시아 최고 기록으로 야구무대를 주름잡았지만 후에 구단과의 불화, 간통등의 혐의로무너진 영웅. 감독으로 다시 돌아와 친정팀인 LG를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롯데를 꼴데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기도 한 인물이다.(마해영, 조경환 방출. FA로 이상목을 영입하고 문동환 보상. 그외 신인 조련 실패, 등 어떻게 하면 팀을 개박살을 낼수 있는지 교과서적인 방법을 보여줬다-_-) 62년 경동고를 졸업하고 일본 도에이 플라이어스(현 니혼햄)에입단한 그는 원래 포지션이 포수였으나,빠른 발을 살려주기 위해 감독이 중견수로 보직을 변경하였다.63년 후반부터 1군에서 활약하였고,도에이 시절에는 2할대 중후반을 쳤으나75년 다이헤이요 라이온스로 옮기
![[삼성] C, 이만수](https://img.zoomtrend.com/2012/10/12/d0002642_50774e3e57744.jpg)
[삼성] C, 이만수
97년, 그의 출장때 삼성팬들이 환호하는걸 보고그 시즌의 기록이 좋지 않은 선수인데 왜 환호할까..하고 생각했었는데.. 2004년, 박정태가 출장할때마다예전에 그의 모습을 찾아볼수 없음에도 그에게환호하며, 나도 그 삼성팬들의 마음을 이해할수 있었다. 대구상고시절부터 최고의 포수로 두각을 나타낸 이만수는,특히 파이팅과 공격력이 돋보이는 그런 포수였다. 비록, 프로에서 우승은 85년 한번밖에 맛보지 못했지만한국 프로야구의 첫 안타, 첫 타점, 첫 홈런을 기록하였으며올스타 12회, 골든글러브 5회, 홈런왕 3회 연속 수상등타자로서 할수 있는 극한을 보여준 타자라고 할수 있다.그것도, 포수라는 수비부담이 큰 포지션에서 말이다. 용병이 없던 시대에 한국형 슬러거를 제대로 보여준 타자. 84년에 타자 최초의 3관왕
![[해태] SP,CP 선동렬](https://img.zoomtrend.com/2012/10/11/d0002642_507570d162a6b.jpg)
[해태] SP,CP 선동렬
85-91, 93년 방어율 1위86, 89, 90년 페넌트레이스 MVP89-91 4시즌동안 투수부문 4관왕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억대 연봉자. 명실상부한 국보급 투수. 아마 그의 방어율 기록은 어느 누구도 깨기 힘들것이다.비록 그가 해태라는 당시 최강팀 소속에,김응룡 감독이라는 명장 밑에서 경기를 했다고는 해도그의 기록은, 그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엄청나다. 아니, 어쩌면 왕조 해태를 이룬 최고의 조건은 그였을지도.. 역대 야구선수중에 그만큼 유명할 사람은앞으로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지 않을까.. 고교시절때는 1981년 세계선수권대회전대회 MVP세계선수권대회 MVP, 체육훈장 거장상등을 받았고, 85년에 해태에 입단해서 96년에 주니치로 이적하기까지,소속 팀에서 무려 6회나 우승을 시킨 주역중 하나.
![[롯데] SP, 최동원](https://img.zoomtrend.com/2012/10/11/d0002642_50754e996368c.jpg)
[롯데] SP, 최동원
84년 다승, 탈삼진왕, 골든 글러브, 한국시리즈 MVP무엇보다, 아마 프로야구 역사상 다시는 나오지 않을,한 시즌의 한국시리즈 4승을 독차지한 선수. 경남고 시절부터 당대 최강 경북고를 노히트 노런시키고,야구명문 군산상고에게 한게임 20탈삼진을 뽑아내는 등경남고에 첫 청룡기 우승을 안기며 이미 초고교급 투수가 되어있었다. 연세대에 진학 한 후에도 일본 롯데에서 스카웃 제의도 받고3학년때는 선배 박철순에게 맞는 구타사건을 겪는 등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81년 당시로는 엄청났던 금액인 1억원 가량에 실업 롯데에 입단,캐나다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서 블루제이스 구단에서 계약제의를 받으나,불공정 계약으로 밝혀져 파기한 후 83년 재창단된 프로 롯데에 입단한다. 그리고, 당시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150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