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려는 것

u'd better|2016년 3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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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보여주려는 것

u'd better|2016년 3월 8일

영화는 보지 않았지만 무척 공감 가는 글. * * * (...) 물론 가장 처참한 상황은 한꺼번에 너무 많이 몰려든 유대인을 소각로가 감당하지 못하자 구덩이에 빠뜨려 죽이는 장면일 것이다. 이 장면은 왜 아우슈비츠가 지옥이었는지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라슬로 네메시는 이러한 일련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숏을 단 한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울이 그 지옥의 일부이듯, 카메라도 그 안에서 언제나 파편화된 상황만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아우슈비츠의 리얼리티를 영화에 새기기 위해 라슬로 네메시가 선택한 재현의 윤리다.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흐릿한 이미지와 마주했을 때, 관객은 시선을 돌릴지언정 완전한 이미지가 시야에 펼쳐지기를 원한다. 오랫동안 카메라와 관객은 이러한 포르노그래피적인 욕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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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의 아들](2016)

|2018년 12월 21일

아웃포커싱이 주인공인 영화다. 카메라는 집요하게 사울의 목덜미 뒤를 좇고, 목덜미 너머로 아우슈비츠의 참상이 블러 처리된다. 만약 그것들 모두가 팬포커싱으로 스크린에 형형하게 그려졌다면 이 영화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목덜미 너머 초점이 모조리 나간 부분이, 이 영화를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와 다르게끔 만들었다. 제국의 폭력에도 민족해방운동의 폭력에도 모두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서, 조중동이 제일 좋아할 법한 수정-수정주의적 주장으로 빠지지 않고 제국의 통치가 얼마나 심원한지를 밝히는 것은 탈식민주의 비평의 기본적인 착상이다. 멀리 갈 것 없이 군사독재와 운동권을 동시에 까는 봉준호 감독의 (2003)을 떠올리면 되겠다. 그렇다면 그 둘을 어렵게 밀쳐두고 대체 뭘

사울의 아들

사울의 아들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 사울만을 비칩니다. 그것도 사울의 어깨, 혹은 머리만 중점적으로 잡습니다. 그렇다보니 시야가 제한이 되어서 배경이 되는 아우슈비츠는 시각적으로 많은 것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끔 상당히 답답하기도 합니다. 사울의 얼굴, 사울의 뒷통수, 옆통수, 좀 멀리 잡아봐야 어깨까지 잡은 샷만 보여주니 말입니다. 화면도 탁 트인 시야가 아닌 4:3 화면이라서 더 답답합니다. 하지만 이게 묘하게 막막함을 이뤄냅니다. 아우슈비츠는 수용된 사람들에게는 죽고 싶을 정도로 막막한 곳이었으니, 특이한 방향으로 감정적인 공감을 불러오는 겁니다. 심지어 가스실의 시체가 옆에 산처럼 쌓여있음에도 카메라는 묵묵히 바닥을 닦는 사울의 얼굴만을 비칩니다. 어쩌면 카메라 시점은 세상 만사 관심없어진

오늘의 자작시 : 사울의 아들 고소

데굴데굴 감참외|2016년 3월 22일

그들의 억울함에 눈물 흘리고자 했던 그 순간 난 이미 억울해지고 있었다 내가 받는 형벌로 당신들의 억울함을 갚는 것 그것이 정녕 사울의 법도인가 부정을 탓하는 채찍 또한 부정할 때 그것은 과연 정의인가 종로에서 뺨 맞고 서울역에서 성낼 때 사울은 당신을 치욕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