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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번의 구타 Les 400 Coups (1959)

멧가비|2020년 5월 19일

유년기의 비행이란 선천성과 후천적 환경이 모두 영향을 끼치는 것이지, 어느 한 쪽만이 작용할 것이라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앙투안은 그저 수업시간에 낄낄대고 낙서나 하면 그 뿐인 흔한 개구쟁이. 그러나 아이들에게 필요한 "애가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넘어가 줄 어른의 부재는, 관용 없는 유압식 통제는, 결과적으로는 아이의 자존감을 깎고 비행(非行)을 부추겨 거리로 내몰 뿐이다. 아빠와 사이가 좋구나 싶을 때는 엄마로부터 사소한 학대를 받고, 엄마의 태도가 좋아진 순간에는 계부임이 밝혀진다. 부모 모두와 저대로 지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하면 교사가 눈을 흘긴다. 앙투안에게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을 맘 놓고 발산할 곳이 없다. 거듭되며 점점 커지는 비행은 앙투안을, 사회에서 완전히 낙

알파빌 Alphaville, une étrange aventure de Lemmy Caution (1965)

멧가비|2020년 5월 19일

레이 브래드버리의 저 유명한 풍자 소설 [화씨 451]을 고다르가 읽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영향 받았다기엔 이야기의 결이 다르고, 미래에 대한 묘사도 일치하지 않는 면이 크다. 하지만 미래에 대해 인간적인 어떠한 면이 '통제의 대상'으로 간주될 거라 비관한 점이 상통하고 있다. [화씨 451]이 반지성주의를 경고했다면 고다르는 조금 더 거시적으로 감정, 즉 인간성 그 자체의 거세를 상상한 것이다. 중독자 같은 목소리의 슈퍼 컴퓨터는 '알파빌'이라는 정체불명의 도시 행성을 관장하며 인간이 감정을 갖는 일을 처벌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기계화 되는 미래 사회에 대한 걱정이다. 그러나 반대 쪽에서,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질투한 기계의 서글픈 질투의 우화이다. 기계가 특별히 인간의 감정을 통제하려 드

화씨 451 Fahrenheit 451 (1966)

멧가비|2018년 11월 28일

프랑수아 트뤼포가 생각한 디스토피아는 여러가지 의미로서 독특하다. 다분히 말장난에서 착안했을 'Fireman'들은 불을 끄는 대신 불을 지르는 게 업무인 사법기관 공무원들인데, 그들이 불질러 태우는 대상은 제목처럼 451도에서 발화한다는 물건, 책이다. 영화 속에는 그 어떤 "허가된" 활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 몬태그가 읽는 만화에는 말풍선이 없으며, 숫제 영화 자체도 오프닝 크레딧을 생략하고 나레이션으로 스탭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읊는 지경이다. 독특하다 한 것은, (유대인들을 잡아갔던 식민지 프랑스에서의 나찌들처럼) 책이란 책은 걸리는 족족 불태워버린다는 어느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지만, 또 여느 디스토피아처럼 (빅 브라더 등의) 파시스트의 존재나 그 숭악한 국가적 분서갱유의 뚜렷한 목적은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뇌의 영화와 심장의 영화 사이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 뇌의 영화와 심장의 영화 사이

SARABANDE|2012년 12월 30일

올해 나이 90이 된 알랭 레네의 새로운 영화를 본다는 것은 마치 사라져 가는 (혹은 이미 사라진)누벨 바그의 마지막 페이지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리얼리즘 속에서 이미지의 감각적 박동을 느끼게 해주었던 누벨바그 초기의 다른 감독들과 달리, 같은 다큐멘타리 나 이나 처럼 역사와 개인적 기억을 무게감 있는 이미지에서 보여주었던 알랭 레네 초기의 영화와는 다르게 90년대 후반부터의 그의 스타